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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그가 짐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자 조은서는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그의 옷자락을 살며시 잡아당겼다.

그녀는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유선우는 손을 내밀 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녀는 몇 번 더 애원했지만 유선우는 끝내 아랑곳하지 않고 차를 타고 떠났다.

그 후 그는 H시에 약 일주일간 머물렀고, 바로 그 일주일 동안 백아현은 첫 번째 다리 수술을 마쳤고, 백아현과 그의 관계를 언론에서 파헤쳐 처음으로 그에 대한 불륜설이 터져 떠돌기 시작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친정 얘기를 더는 꺼내지 않았고, 여느 때와 같이 그의 짐을 정리하고 목욕물을 준비하였다...

유선우는 씻고 나서 그녀를 끌어안고 침대로 향해 그녀와 두 번이나 관계를 가졌지만 그건 그들이 결혼한 후로 가장 침묵이 흘렀던 잠자리였다. 잠자리하는 내내 그는 아무 소리 내지 않았고, 그녀도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온몸으로 느껴지는 쾌락과 전율을 신음으로 터뜨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녀는 죄책감을 줄이고 싶었다.

한바탕 뒹굴고 나서 그는 침대 머리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조은서가 작은 소리로 그한테 돈이 필요하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잠시 그녀를 보다가 이천만짜리 수표를 건넸다.

일 년이 지났는데도 유선우는 그 일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았다.

수표를 받으면서 심하게 떨고 있던 그녀의 손... 아마 그 시각부터였을까, 그녀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이. 그때부터 그녀는 유선우의 어린 아내가 아닌 유 대표 사모님으로 변신하였다.

이때 갑자기 문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와 그의 회상을 멈췄다.

하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식사가 다 준비되었는데 내려가서 식사하시겠어요?”

“좀 이따 내려갈게요!”

유선우는 일기장의 맨 마지막에 쓴 글귀를 지그시 쳐다보며 하인한테 대답했다.

그건 조은서가 제일 마지막으로 남긴 여자애의 속마음이었다.

몇 글자 안 되는 구절이었지만, 유선우의 뇌리에서 끊임없이 맴돌며 크게 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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