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에서 갑자기 차 소리가 들려왔다.코트를 입고 뒷좌석에 단정히 앉은 함은숙의 얼굴에는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옷차림은 여전히 단정했고 그녀는 평소에도 항상 품위를 가장 중요시했었다.조은서에게 찾아가 유선우를 보러 오라고 부탁할 계획이다.20분 뒤, 검은색 꽃무늬 대문 앞에 검은색 캠핑카가 멈춰서고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려 하자 함은숙이 이를 말리며 조용히 말했다.“직접 걸어 들어갈게.”그녀의 말에 기사가 넋을 잃었지만 함은숙은 이미 차 문을 열고 밤바람을 무릅쓰고 차에서 내렸다.경비원이 그녀가 왔음을 알린 뒤에야 함은숙은 별장 내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맑고 휘영청 한 달빛 아래, 함은숙은 하이힐을 신고 20㎝ 가까이 되는 눈밭을 밟았다. 잠시 후, 높이 쌓인 눈이 녹으며 그녀의 신발과 양말을 적시고, 차가운 기운이 뼈에 사무쳤다...엄청난 추위에 온몸을 떨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그녀는 반드시 조은서를 데리고 돌아갈 것이다.함은숙이 별장 앞에 이르자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은 불빛이 환했다. 그녀는 문밖에 서서 높이 외쳤다.“조은서를 만나고 싶어요! 은서를 꼭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문이 열리고 물 한 대야가 그녀를 향해 쏟아졌다.심정희였다.함은숙은 온몸이 흠뻑 젖어 가슴이 서늘하고 온도가 낮아 옷이 거의 얼 것 같았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심정희를 바라보며 또 방금 한 말을 되풀이했다.“은서를 만나고 싶어요.”심정희는 이미 유선우가 병이 나서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함은숙이 조은서에게 한 일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때 하마터면 조은서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기에 함은숙에게 찬물을 끼얹은 것은 곧 그녀더러 다시 돌아가라는 뜻이었다.하지만 함은숙은 심정희를 보고도 동요하지 않았다.함은숙은 심정희가 그녀를 원망하고 그녀의 야박함을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잠시 망설이더니 옷이 전부 눈밭에 묻히도록 즉시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그렇게 무릎을 꿇고
함은숙을 보고 있으면 이전의 암담한 날들이 다시 떠오를 것 같았다.조은서는 외투를 조이며 냉담한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우리 사이는 그 글자를 감당할 수 없어요. 그리고 나도 두 아이 얼굴을 봐서 도와주는 거지 당신 때문이 아니에요.”함은숙은 곧바로 그녀의 승낙을 알고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였다.“알아. 다 알아.”이토록 비천하게 굴었지만, 조은서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나중에 차에 탄 후에도 조은서는 줄곧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고 함은숙은 몇 번이고 말을 건네려 했지만 모두 말이 끊기고 결국에는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은서야,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건 나도 알아.”조은서의 여전히 시선을 차창 밖에 고정한 채 새하얀 눈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 그 시절을 평생 잊을 수 없어요. 그래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함은숙은 결국 다시 얼굴을 가렸다.나이가 든 건지 아니면 또 큰 상처를 입은 것인지 어릴 적 만나기만 하면 이모라고 달콤하게 불러주던 조은서가 그리웠다... 분명 예전에는 함은숙도 조은서를 좋아했지만, 막상 조은서가 시집오자 함은숙은 오히려 그녀를 박대했다.하지만 지나간 일은 더 이상 추억할 필요가 없었고 두 사람도 더 이상 서로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밤이 되자 검은색 캠핑카는 천천히 검은 꽃무늬 현관문으로 들어가 저택 앞 주차장에 세워졌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조은서가 먼저 차에서 내리자 함은숙도 기다리지 않고 조은서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 현관으로 들어갔다.이곳은 그녀의 집이었고 이 집의 벽돌과 기와 한 장까지 모두 꿰뚫고 있었기에 그녀는 눈을 감고도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함은숙 역시 그녀의 걸음을 따라 바삐 움직였다.그녀는 이윽고 운전기사 김병훈을 바라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아이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선우가 있지만 단지 인정하기를 원하지 않을 뿐이에요.”하지만 김병훈은 그녀를 말리며 답해주었다.“사모님께서 마음고생이 심하세요.”그러자 함은숙은 눈물을 닦으며 더 이상 아무
말을 마치고 유선우는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조은서는 저도 모르게 숨을 헐떡였다. 몸은 유선우에게 굴복하고 있지만 남아 있는 이성은 그녀에게 이러면 안 된다고 경고를 하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그들은 다시는 이런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조은서의 몸은 유선우에 의해 우악스럽게 좌지우지되었고 그녀의 자태는 형편없이 흐트러졌으며 문도 굳게 닫혀 있지 않아 만약 누가 갑자기 들어온다면 그녀의 처지가 얼마나 난감할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결국, 조은서는 어쩔 수 없이 유선우의 뺨을 때려서 그를 깨웠다.그 순간 유선우는 다시 정신이 들었다.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듯 검은 눈동자가 그녀를 약간 흐릿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손바닥은 여전히 그녀의 몸에 있었다... 그가 발견하고 다급히 손을 거둘 때, 두 사람은 서로 이미 매우 난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분명 몸이 아파 날 정도로 그녀를 원했지만 조은서는 이 상황이 너무 난감했다.조은서는 몸을 빼내면서 결국 참지 못하고 그를 질타했다.“이제 다 놀았어요? 놀 만큼 놀았으니 이제 그만 내려줘요.”침대에 누워있는 유선우는 얇은 유카타에 땀으로 흠뻑 젖어있어... 마치 방금 물에서 건져낸 듯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섹시함을 가지고 있다.유선우는 조은서가 침대에서 일어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고 그녀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조은서는 결국 화장실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신체적인 일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 역시 이젠 소녀가 아니기에 다른 사람에게 몇 번 만지는 것을 서운해할 정도는 아니다. 조은서는 단지 조금 슬펐을 뿐이다.세수하고 마음을 추스른 그녀는 유선우에 의해 찢긴 스타킹을 보며 잠깐 고민한 뒤, 결국 봉투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드레스룸으로 가서 자신이 신었던 스타킹 한 켤레를 찾아냈다.다시 침실로 돌아오자 유선우는 가만히 침대에 누워 위쪽의 샹들리에를 바라보고 있었다.이윽고 그에게 다가오는 그녀의 발소리를 듣고, 그녀가 나왔
함은숙은 아쉬운 듯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렇게 빨리? 그래도 좀 쉬고 날이 밝은 뒤에 가지 그러니.”“그럴 수는 없어요.”조은서는 비굴하지 않게 말하고 나서 신발을 바꾸어 신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저는 아이들 얼굴을 봐서 온 거지 선우 씨와 옛정을 나누러 온 것이 아니에요. 1초라도 더 있는 것은 적합하지 않아요.”강철마냥 강한 듯 보이지만 그녀 역시 어찌 마음이 상하지 않겠는가?그래도 유문호는 역시 이치를 따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그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은서야, 한밤중까지 폐를 끼쳤는데 널 혼자 보내는 건 안 돼. 내가 바래다줄게.”조은서는 필요 없다며 기사님이 데려다주시면 된다고 거절했지만, 유문호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어쩌면, 그도 이곳에 남아서 함은숙과 계속 말다툼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결국, 조은서는 유문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차에 탔을 때는 이미 동이 트고 있었고 저 멀리 수탉의 울음소리가 새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조은서의 별장에 도착하니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흩어지며 하늘을 환히 밝혀주고 있었다.심정희는 결국 밤새 한숨도 못 자고 조은서를 기다리며 유선우의 건강을 걱정했다.머리가 지끈거리며 잠이 밀려 왔지만, 마당에서 승용차 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정신이 번쩍 든 심정희는 다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과연, 그녀의 예상대로 조은서가 돌아온 것이다.그리고 그녀와 함께 덩달아 내린 사람은 다름 아닌 유문호였다.몇 년 전부터 유문호는 심정희와 알고 지내오며 지금도 그는 여전히 그녀를 사돈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그는 겸손한 자세를 취하며 계속하여 조은서에게 폐를 끼쳤다고 말하고 심정희가 두 아이를 돌봐 준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건넸다.하여 심정희도 체면치레 답을 해주었다.유문호가 차를 타고 떠나자 심정희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최근 몇 년 동안 저분도 참 힘들었던 모양이야. 몸이 망가진 것도 모자라 식구들도 그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잖니.”이윽고 그녀는 조은서를
유문호는 유선우를 방해하고 싶지 않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유문호가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은서가 쓴 거니?”유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이건 은서가 아주 어렸을 적 쓴 거예요. 한 번은 제가 실수로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화가 난 은서가 일기장을 불에 태워버려서 지금과 같이 된 거예요.”말을 마친 그는 한참 동안 말없이 넋을 잃고 있었다.그는 생각했다. 만약 건강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그는 남은 생 동안 계속하여 이 물건들을 보면서 조은서를 그리워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조은서에게도 새로운 애인이 생기는 건 아닐까?유문호도 그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낮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위로를 건넸다.“정말 은서를 놓아줄 수 없다면 네 몸 잘 챙겨. 완전히 나을 수 없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은서도 아직 너에게 정이 남아 있어. 은서는 단 한 번도 널 짐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 선우야, 여자의 청춘은 길지 않아. 네가 계속 은서를 기다리게 하고 은서를 쫓아내면... 언젠가 이 감정이 정말로 되돌릴 수 없을 땐 네가 아무리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어버렸어.”유문호의 목소리는 조금 흐느끼고 있었다.그는 창밖을 내다보며 흐릿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선우야, 넌 나처럼 되지 마. 내 아쉬움은 영원히 말로 이룰 수 없어.”평소 유문호는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도무지 슬픈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유선우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문을 열고 자리를 떴다... 유선우는 뒤늦게 고개를 들어 침실 입구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그는 여전히 조은서를 찾지 못했다.그들은 오직 아이들에 관한 연락만 주고받으며 사적인 얘기는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유선우는 이제 열심히 운동하고 몸조리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루에 연달아 피우던 담배의 양도 두세 개비로 줄였다허민우도 임도영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신약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고 연말에는 표적 치료제의 1차 개발을 완료했다.개발이 완료되고 그는
저녁 무렵, 은빛 롤스로이스 한 대가 별장으로 들어와 대문 앞에 멈췄다.유선우는 일찍이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휠체어에 앉은 그는 흰색 셔츠에 짙은 회색 모직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황혼에 물든 모습이 굉장히 근사했다.롤스로이스의 차 문이 열리며 유이안이 내렸다.그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빠의 품에 뛰어들며 강아지처럼 비비적거렸다.유선우가 그녀의 작은 머리통을 만지며 눈을 가늘게 뜨고 운전석에서 내리는 젊은 남자를 보았다.비즈니스 착장을 하고 있는 것 하며, 잘생긴 얼굴과 근사한 분위기를 봤을 때 절대 운전기사는 아닌 것 같았다.하지만 조은서가 그에게 운전석을 내줬다라...그때, 조은서가 유이준을 안은 채 차에서 내렸다.그녀는 유선우의 눈빛을 보고는 두 사람을 소개해 줬다.“여기는 장비훈 씨, 영어 이름은 john이고, 내 개인 비서예요.”“안녕하세요. 저는 유선우라고 합니다. 조은서의 전남편이에요.”유선우는 너그럽게 대처했다.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 유선우는 장씨 성의 비서를 보며 조은서에게 조용히 말했다.“비서가 너무 젊은 거 아니야? 비서가 필요한 거면 우리 YS그룹에서 경험 많은 비서로 두 명 보내줄게.”조은서가 담담하게 말했다.“젊든 아니든, 유 대표님이 무슨 상관이죠?”유선우는 그 말에 상처를 받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나랑은 상관 없지. 너 좋을 대로 해.”그리고는 그녀에게 이어서 물었다.“무슨 개인 사정이길래 며칠이나 나가는 거야? 여행 가?”그가 집요하게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조은서는 어이가 없어졌기에 그냥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두 아이의 짐을 꺼내고 아주머니에게 주의 사항을 당부한 뒤 고민 끝에 유선우에게 말했다.“샹겐, 샹겐에 가요!”김 비서의 말실수 덕분에 그녀는 조은혁과 박연희가 샹겐에서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에 직접 가서 만나고 올 생각이었다.유선우는 그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좋은 곳이지. 시간 나면 온천도 들러 봐.
그러다 유이안은 유선우가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있는 걸 발견했다.아빠는 오른손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아니었던가?하지만 여섯 살짜리 꼬마 아가씨는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열심히 밥을 먹었다.어찌 열심히 먹었는지 밥을 두 공기 비웠고 유 이준에게도 고기를 집어주곤 했다.유이준이 도도하게 말했다."나 고기 싫어해."밥을 먹은 후 유선우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다.한 아이는 카페 위에 앉아 장난감을 놀고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유선우가 곁에서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가 명둔대를 졸업했다는 걸 알고 난 유이안은 점점 더 아빠를 존경하게 되었다.유이안이 자신의 펜을 유선우의 손에 쥐여주었다.유선우는 자신의 오른손에 들린 펜과 유이안을 번갈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여섯 살짜리 꼬마 애가 벌써부터 이렇게 교활하다고?하지만 아버지로서 유선우는 그에 자랑스러움을 느꼈고, 유이안의 행동에 별말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도와 수학 문제를 풀어주었다.똑똑한 유이안는 이제 겨우 유치원생이지만 초등학교 삼학년 문제도 풀 줄 알았다.그리고 유선우를 매우 좋아해 하루 종일 그의 곁에 붙어 있었다.저녁이 되자 유선우는 아들을 재웠다.유이준이 깊게 잡는 걸 확인하고 나가려고 할 때, 유이안이 옆방에서 들어오더니 베개와 담요를 들고 아빠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유이안이 작은 얼굴을 유선우의 팔에 기대고는 동화책 하나를 그에게 주며 빤히 쳐다보았다.사실 유이안은 혼자 잘 수 있었지만 어쩌다가 아빠를 만났기에 더 붙어 있고 싶었다.특히 유선우의 비밀을 발견한 뒤로는 그와 함께 있는 게 더 즐거웠다.유선우는 자신의 양쪽에 있는 두 아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는 유이안의 작은 머리통을 어루만지며 듣기 좋은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 주었다.하지만 아이는 아이였던지라 두 개의 이야기를 다 읽기도 전에 유이안은 곯아떨어졌다.사람은 잠을 잘 때 가장 진실하다고 했던가?유이안은 잠이 들었음에도 유선우의 발을 꼭 잡
말이 좋아 관리지 사실상 감시나 다름없었다.조은혁이 집에 있을 때를 제외하고 박연희는 자유가 없는 몸이었다. 조은혁이 그녀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좋은 음식을 먹였지만 그녀는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의지가 없는 몸 같았다.조은서 이번에 박연희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그녀는 생각보다 어렸고 피부도 하얗고 눈코입이 예뻐서 아슬아슬한 느낌을 자아내는 미인이었다.박연희는 늦은 밤, 흰 실크 가운을 입고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가운은 펑퍼짐해서 그녀가 6개월 차 된 임신부라는 게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그 옆에 있는 소파에는 조은혁이 일할 때 입던 정장 차림 그대로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일을 하고 있었다.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꽤 분위기 좋은 모습이었다.그때 조은서가 낮은 목소리로 조은혁을 불렀다."오빠."조은혁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여동생을 보며 그녀가 여기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전혀 놀라지 않았다.두 사람은 오랫동안 눈을 마주하고 있다가 그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늦게 왔어? "조은혁이 노트북을 덮으며 말했다."아주머니, 은서한테 방 하나 내주세요. 그리고 야식도 좀 만들어 주시겠어요? 요즘에 소고기 만두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조은혁의 말이 끝나자 도우미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들은 대표님이 제일 예뻐하는 게 바로 이 여동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사모님보다 더 예뻐했다.그때, 피아노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조은혁이 몸을 돌리더니 자신의 아내를 보며 부드럽게 물었다."이제 안 칠 거야? 이리 와."박연희는 낯을 좀 가렸던지라 쭈뼛쭈뼛하게 다가와 조은혁의 곁에 앉았다.그가 박연희의 배를 만지며 조은서에게 말했다."여기는 박연희, 네 새언니야. 이제 석 달만 지나면 너도 조카가 생길 거야."그리고는 박연희에게도 부드럽게 말했다."여기는 은서, 내 동생이야."박연희는 여전히 그의 품에 안긴 채 겁을 먹은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조은서가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다.그녀가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