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우는 전화를 끊고 소파에 기대어 조용히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소파에 웅크리고 있는 조은서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지금 그녀의 집으로 가서 그녀의 몸과 마음을 다 잡을 수도 있었다. 예상처럼 오늘 밤 조은서는 그의 품에 안길 것이다. 그녀는 유선우를 좋아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순순히 그의 행동을 받아줄 것이다.하지만 유선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필요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미 그녀를 다시 얻었다. 조은서는 몸과 마음이 모두 다시 과거처럼 사랑에 빠져 있었다.고요한 눈이 내리는 밤이었다.서재 문 앞에서 고용인이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대표님, 백씨 성을 가진 분이 찾아오셔서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백 씨...유선우는 그가 백아현의 아버지라고 짐작했다. 그는 만나고 싶지 않아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돌려보내세요! 제가 이미 잠들었다고 전하세요!”하지만 고용인은 주저하며 말했다. “그분이 대문 밖에서 무릎을 꿇고 계세요. 오늘 밤 날씨도 추운데 혹시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내일 뉴스에 나올지도 모릅니다.”새벽 한 시, 유선우는 백아현의 아버지를 만났다.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그 운전기사는 딸 덕분에 중년이 되어서야 좋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유선우의 별장에 왔기에 화려한 장식에 깜짝 놀라 다리를 떨고 있었다.고용인이 그에게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어서 차 향기가 퍼졌다. 백정수는 고개를 숙이고 차를 마셨는데 찻잔을 든 거친 손도 미세하게 떨렸다.유선우는 소파에 기대어 앉아 약간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백아현의 병세는 안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눈이 그치면 바로 출발해서 해외로 갈 수 있을 거예요. 앞으로는 그곳에서 요양하면 됩니다. 당신과 당신 부인도 함께 가세요. 그 돈으로 두 분의 남은 인생을 충분히 보낼 수 있을 겁니다.”백정수의 손에 든 따뜻한 차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생겼고 유선우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치료라고 하지만 사실은 죽음을 기다리는 거잖아요
깊은 밤, 진 비서는 전화를 받고 깊은 충격에 빠졌다. 그녀는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대표님, 병원 특실은 유 씨 집안의 직계 가족만 이용할 수 있는데 백아현은... 사모님이 알게 되면 분명히 기분 나빠 할 겁니다.”그러나 유선우는 강경하게 말했다. “내 말대로 해!”진 비서는 당연히 그의 지시를 따라야 했지만, 전화를 끊기 전에 한 마디 덧붙였다. “대표님, 언젠가는 후회하실 겁니다.”진 비서는 전화를 끊고 깊은 한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심지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에 대해서 그녀는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 조은서가 어떻게 유선우에게 돌아왔는지, 유선우가 조은서에게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가 그녀를 어떻게 배신했는지! 그녀는 한때 유선우가 조은서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사랑이란 감정은 유선우의 냉정한 마음속에 싹틀 수 없는 것이다! ... 다음 날 저녁, 눈은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조은서는 음악 센터에서 나와 유선우의 차가 밖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부드러운 눈송이가 머리카락에 내리는 것을 그대로 맞고 있었는데 마음이 복잡했다. 두 시간 전, 임도영은 YS 그룹에 가서 유선우와 계약을 맺고 유선우로부터 400억의 투자를 받아서 그는 김재원 선생님의 글로벌 클래식 음악회의 최대 후원자가 되었다. 이것은 그녀가 온종일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고 자신과의 타협이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서로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검은색 벤틀리 차 문이 열리고 유선우가 긴 다리를 내디디며 차에서 내렸다. 그는 한 손으로 설리를 안고 있었지만 그의 멋진 모습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약간 아버지 같은 느낌을 더했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유선우가 먼저 그녀 앞으로 걸어가 머리카락 위의 눈을 쓸어내며 부드럽게 말했다. “눈이 조금 충혈됐네. 어젯밤에 많이 울었어?”그녀는 부끄러워 얼굴을 돌렸다
다시 저택에 돌아오니, 마치 모든 게 달라진 것 같았다. 유선우는 차를 저택 앞에 세우고 조은서에게 그녀의 외투를 건네며 다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눈이 많이 내리지 않으니 차에서 내려 같이 산책하자.” 조은서는 설리가 걱정돼서 말했다. “추워하지 않을까요?” 유선우는 고개를 돌려 설리를 바라보고는 조은서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내가 품에 안고 있을게. 네가 질투하지 않는다면.” 조은서는 코트를 입고 문을 열었다. “나는 질투 안 해요!” 유선우는 가볍게 웃으며 몸을 기울여 설리를 안아서 쓰다듬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화났어!” 설리가 왈왈 짖었다. 유선우는 외투를 입고 강아지를 안고서 차에서 내렸다. 문을 닫고 몇 걸음 빠르게 걸어 조은서에게 다가가 그녀와 나란히 걸었다. 설리는 아빠 품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 하늘에서는 부드러운 눈이 내렸다... 잠시 후, 조은서는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설리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손을 빼려는데 유선우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남자의 손바닥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 손끝의 건조함과 습기가 만나며 두 사람 사이의 야릇한 느낌이 전달됐다... 이윽고 조은서의 손은 유선우의 코트 주머니 안에 들어갔고 그녀의 허리에도 그의 팔에 얹어졌다. 그녀의 몸은 그에게 기대 있었다. “선우 씨!” 조은서는 쉰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놓아달라고 했다. 유선우는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봤는데 말은 하지 않았고 불빛 아래 그의 눈빛은 형용할 수 없이 부드러웠다...추운 날에 눈이 내리자 주방 아주머니는 특별히 작은 냄비로 샤부샤부를 준비했는데 버섯이 매우 신선하다며 조은서에게 계속 먹어보라고 권했다. 조은서가 먹어보고 맛있다고 하니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모님이 맛있게 드시니 다행입니다. 나중에 신선한 것을 더 구해서 식탁에 올리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주방 아주머니는 앞치마에 손을 문지르며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별장 안은 따뜻해서 유선우는 외투를 벗고 흰
조은서의 나른한 몸은 침대에 깊이 파묻혔다. 그녀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유선우는 그녀를 부드럽게 누르며 다가왔다. 유선우는 조은서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젖은 눈에 입맞춤하며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일들을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해. 유 사모님, 나는 당신을 기쁘게 하고 싶어...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줄 수 있어? 지금 당신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말하며 그는 조은서의 손을 꼭 잡았다... 그는 잘생긴 데다가 유혹까지 잘하는 사람이었으니 어떤 여자가 그런 공세를 막아낼 수 있을까, 게다가 조은서는 그를 6년 동안 사랑했었다. 조은서는 그의 몸 아래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유선우가 그녀에게 키스할 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들어 그의 키스에 떨리는 몸으로 응답했다. 하지만 그는 작게 웃으며 그녀를 피했다. 조은서는 유선우를 원했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며 그의 목을 끌어안고 그에게 다가갔는데 유선우는 이런 모습을 보고 기쁜 웃음을 작게 짓고는 그녀와 열정적이고 미친 듯한 키스를 나누며 그녀를 만족시켰다. 벽에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야릇하게 겹쳐져 있었고 그들은 그렇게 밤새도록 타올랐다. ... 서로 눈이 맞아서 하는 정사는 아무래도 다르다. 하룻밤 동안 유선우는 여러 번 즐겼다. 이른 아침, 조은서는 따뜻하게 옷을 입고 설리와 함께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유선우는 편안한 잠옷을 입고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어 있었다. 그는 바닥까지 내려오는 유리창을 통해 밖에서 뛰놀고 있는 아내와 강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은서는 설리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았다. 작은 강아지가 눈 속에 빠질 때마다, 조은서는 설리를 들어 올려주고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녀가 만든 작은 눈사람도 설리 모습이었다. 설리는 아마도 그것을 알아차린 듯 유독 기분이 좋아 멍멍 짖으며 눈 위에서 뛰어다니면서 작은 발자국을 남겼다. 그 모습은 보기에 꽤 귀여웠다. 유선우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함은숙한테서
임지혜가 퇴원하는 날이라 조은서는 병원에 그녀를 데리러 갔다.기사가 차를 금방 세웠는데 누군가 차 문을 열었다.고개를 돌려보니 차준호가 하얀 눈을 맞으며 서 있었는데 그 느낌이 매우 쓸쓸했다.조은서는 그가 나타난 데 대해 좀 의외이기도 했고 또 그를 다시 보게 된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그녀는 말하지 않고 가만히 차에 앉아있었는데, 한참의 침묵 끝에 차준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은서 씨, 우리 얘기 좀 해요.”......길가 커피숍.통창을 사이에 두고 조은서는 조용히 바깥 눈 내리는 광경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스틱으로 커피잔에 든 커피만 기계적으로 휘젓고 있었다.그러다 귓가에 차준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걔는 잘 지내요?”흐릿했던 의식을 다시 가다듬으며 시선을 차준호한테 돌렸다.그는 여전히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옷차림과 외모였지만, 손에는 장소 때문에 피지도 못하는 애꿎은 담뱃갑을 꼭 쥐고 있는 것이 왠지 약간 초조해 보였다.조은서는 스틱을 꺼내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그리고 눈을 들지 않고 커피만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매번 지혜랑 커피를 마시면 걔는 항상 커피가 쓰다고 투덜댔어요. 그러면서 또 남기지 않고 다 마셨죠. 맛있어서 마신 게 아니라, 단지 돈이 아까워서...”“예전에 준호 씨랑 같이 있으면서 보기에는 흥청망청 씀씀이가 헤픈 된장녀 같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많은 돈을 보육원에 기부했어요.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걔가 원래 그렇게 갈 곳이 없었거든요. 자신의 처지가 우산이 남한테 찢겨 비를 폭삭 맞은 사람 같다고 했어요. 자기는 남들한테 그런 우산이 되고 싶어 했고요.”......조은서의 두 눈은 약간 촉촉해졌고, 목소리는 더욱 울먹이기 시작했다.“준호 씨가 준 100억은 걔가 기부 안 하겠대요! 앞으로 돈을 벌 수도 없을 것 같아서요. 늙어 죽을 때까지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그녀는 그제야 눈을 들어 차준호를 보며 거의 울부짖다시피 말했다.“이제 당신이
임도영은 웃으며 말했다.“시장 반응이 너무 좋아. 어젯밤에 H시에서 판매한 첫 공연 티켓이 전부 매진됐어.”조은서는 그 소식에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이내 고민 좀 하더니 물었다.“그럼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건 어때요?”그녀의 반응에 임도영은 저도 모르게 우스갯소리를 몇 마디 건넸다.전화를 끊으니 임지혜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난 이제 괜찮아! 은서야, 가서 네 할 일을 해, 그리고 나 대신 유선우 씨한테 고맙다고 전해줘.”임지혜는 조은서를 살갑게 껴안고 중얼거렸다.“그 사람이 너한테 잘해주면 옛날 일은 그냥 잊고 잘 살아.”“알아... “조은서의 목소리는 약간 쉰 듯했다.껴안고 있던 둘은 떨어져서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웃는 눈에는 이슬을 머금었다.그들은 마치 옛날 둘이 함께 있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조은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차에 올라탔다.그녀의 기분이 꽤 좋아 보여 운전기사는 그녀에게 몸을 돌리며 물었다.“사모님, 우리 이제 별장으로 돌아가는 겁니까?”뒷좌석 등받이에 기대어 그녀는 휴대전화로 내일 아침 H시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유선우에게 톡을 보냈다.‘저녁에 일찍 돌아와요. 얘기할 게 있어요.’그녀는 메시지를 보낸 후 옅은 미소를 지었다.모처럼 달콤한 기분이 든 것이다.기사는 다시 한번 물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조은서는 나지막이 말했다.“우진 백화점으로 가주세요. 뭘 좀 살 게 있어요.”모레는 유선우의 생일이다.내일 아침에 그녀는 H시로 가야 하므로 그 사람의 생일을 챙길 수 없어 선물이라도 사줄 생각이었다. 그걸로도 그나마 좀 기뻐하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그녀는 30분을 들여 유선우한테 선물 할 정교한 커프스 한 쌍을 골랐다.가격은 3천2백만, 조금 비싼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그리고 별장에 돌아오니 때는 이미 저녁 7시였다.유선우는 돌아오지 않았고, 톡으로 답장이 왔는데, 좀 늦으니 그녀한테 먼저 식사하라는 내용이었다.조은서는 별로 배고픈 감이 없어, 목욕을 한 후 설리
조은서는 눈을 천천히 들어 유선우를 깊숙이 들여다봤다.그의 눈빛은 칠흑 같은 밤보다 더 어두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한참 후, 그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걸 다 봤어?”조은서는 땅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주체할 수 없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날 정신과 의사한테 의뢰해 연구하고 분석했어요? 선우 씨, 당신은 대체 날 뭐로 본 거예요? 당신한테 난 대체 뭐냐고요. 아내? 아니면 당신의 노리개쯤 되나? 날 좋아한다면서, 그게 결국 날 정신과 의사 10명한테 벗겨놓고 까발려서 연구분석 상대로 만들어놓는 거였어요?”“강아지 한 마리 데려와서 내 기분을 맞춰보려 한 거... 난 그걸로 당신이 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건 다 나에 대한 분석 결과에서 비롯된 거였네요? 그 강아지도, 그냥 당신의 도구였죠?”“당신이 나한테 했던 모든 것이 사실은 다 당신의 치밀한 계획이었어요. 나랑 언제 자는 것까지 다 정확하게 계산했으니까!”“선우 씨, 난 나의 프라이버시, 나의 존엄까지 다 잃었어요, 당신 때문에! 당신은 날 사랑한 게 아니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날 소유하려는 변태적인 욕망뿐이었잖아요. 유선우 당신은 사람을 사랑할 줄 전혀 몰라!”......말을 마친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너무 역겹고 분노가 차올랐다.매번 겨우 그를 떠나려고 마음먹었을 때마다 그는 항상 그녀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또 어쩔 수 없이 한차례 한차례 그의 진정성을 믿게 되고, 사실은 그도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믿어보려 했다. 심지어 이젠 그의 아이까지 낳는 기대를 하였는데...진실의 본모습은 원래 이렇게 추악하고 잔인한 거였다.그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아내가 아니라, 그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여자에 불과했다. 그녀가 그걸 매번 사랑이라 믿고 빠져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걸 그는 그저 냉담하게 지켜만 보았을 뿐이다....서재 안은 무서울 만큼 조용했다.유리창에는
가운이 활짝 열려 젖히고, 그녀의 순백의 몸이 불빛 아래 은은한 빛을 발산했다.유선우는 그녀의 가녀린 허리를 단단히 부여잡고, 수치스럽게 그녀의 엉덩이를 툭툭 치기까지 하며 차갑게 웃었다.“내가 이제 보여줄게, 여자를 갖고 노는 게 대체 어떤 건지.”얼굴이 종잇장처럼 창백해진 조은서는 도망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밝은 조명 아래에서 그녀는 그한테 맘대로 휘둘리고, 거칠게 다루어졌다. 헐값에 사 온 여자만도 못했다.눈앞의 불빛은 흔들거리며 눈이 부셨다.몸에서 오는 아픔보다 마음이 더 쓰라렸다. 그녀는 책상 가장자리를 꽉 붙들어 잡았고, 전신의 힘으로 그의 분노를 견뎌냈다.손에 꼭 쥔 딱딱하고도 작은 물건이 그녀의 손바닥을 뚫고 나갈세라 아프게 했다.견딜 수 없어지자 그녀는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손을 폈고, 땀으로 흠뻑 젖은 손에는 정교한 커프스 한 쌍이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었다. 원래는 눈부신 다이아몬드 빛을 발해야 할 그것들이 지금은 약간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건 그녀 손끝도 마찬가지였다.......바깥의 눈가루는 점점 흩날리기를 멈추었고, 그렇게 새벽 2시 반이 돼서야 유선우는 그녀를 놓아주었다.그녀의 흐트러진 모습을 서늘하게 쳐다보며 셔츠를 정리해 바지 속에 밀어 넣었다.휴대전화가 울렸고, 그것은 진 비서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유선우는 전화를 받더니 담담한 목소리로 저편에 대고 말했다.“지금 바로 갈게. 3시 반에 회의 소집해.”그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도 조은서는 책상 위에 누운 채 일어나지 않았다.하얀 살갗에서 연한 핑크빛이 돌고 있었고, 긴 머리는 유선우가 늘 쓰는 문진 위에 여기저기 늘어뜨려져 있었는데, 그대로 누워있는 자태는 매우 관능적이었다.몸에 달은 불을 어느 정도 끈 탓인지, 유선우도 좀 누그러진 표정이었다.그는 옆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고는 그런대로 온화한 말투로 말했다.“옷 입고 방에 돌아가서 자!”조은서는 그저 조용히 누워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그녀를 흘깃 곁눈질하더니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