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현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방유설은 정말 작고 가녀렸다.방유설은 조우현이 한 손으로 충분히 감쌀 수 있을 만큼 작았고, 부드럽고 연약한 몸이 그의 가슴에 꼭 붙어 있는 느낌은 꽤 오묘했다.그 순간, 묘한 감정이 스며들었지만, 조우현은 그런 감정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여의사는 웃으며 말했다.“바로 이렇게 해야죠!”여의사는 수다스럽지만 전문적이었다.의사는 곧 방유설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여의사가 상처에서 도자기 조각을 뽑아낼 때, 방유설은 조우현의 허리를 꽉 움켜쥐었다.조우현은 시선을 내려 방유설을 쳐다보았다. 고통에 몸을 떠는 방유설은 마치 상처 입은 새처럼 가여워 보였다.조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한 손으로 방유설의 어깨를 잡고 방유설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그 순간만큼은 어렴풋한 연민이 느껴졌다....병원을 나선 후, 방유설은 그가 자신을 호텔로 데려갈 줄 알았다.그러나 예상과 달리 조우현은 방유설을 예전 학교 근처의 오래된 거리로 데려갔다.그곳은 학생들이 자주 찾는 작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였다. 그들은 젊은 시절 몇 번이나 이곳을 찾았던 추억이 있다.방유설이 차에서 내리며 잠시 멈칫하자 조우현이 안전벨트를 풀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왜? 이곳이 너 같은 대스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방유설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아니야. 그냥 네가 여길 다시 올 줄 몰랐어.”조우현은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았다.사실, 조우현은 방유설과 함께 있을 때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그날 밤 호텔 스위트룸에서 몇 시간 동안 함께했지만, 주고받은 대화는 열 마디도 되지 않았다.그들은 근처의 한 고깃집으로 들어갔다.이윽고 조우현은 방유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고기를 두 판, 채소 몇 가지를 시켰다.그리고 방유설에게는 라임차를 주문해 주고 본인은 평소처럼 따뜻한 물을 주문했다.고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둘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조우현의 표정은 한치의 변화도 없었다. 고기가 익기 시작했을 때,
조우현의 침대에 누운 방유설의 검고 긴 머리카락이 베개 위로 흘러내려 있었다. 방유설의 몸은 가늘고 작아서, 미세한 숨결에서도 방유설의 연약함이 느껴졌다. 방유설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더 원해?"조우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조우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을 보니 조은혁의 전화였다. 조우현은 방유설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고는 전화를 받았다."출장 중이에요. 오늘 밤은 집에 안 들어갈 겁니다."전화기 너머의 조은혁은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출장? 네가 출장 간 거야, 아니면 네 아랫도리가 출장 간 거야?"조우현은 침묵했다.조은혁이 이어서 말했다."우현아, 네가 바깥에서 뭘 하든 상관 안 한다. 하지만 하나만 기억해라. 스스로를 속이고 살다 보면 후회할 일이 많아진다는 걸 말이야."조우현은 목이 멘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아버지."조은혁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네가 알긴 뭘 알아."조우현이 최근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은혁은 이미 알고 있었다.아버지로서, 조은혁은 조우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로 그 여자애를 잊지 못하겠다면 진지하게 만나 보라고 조언하고 싶었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관계를 맺고, 나중에 차버린 다음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그에게도 못 할 짓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조우현은 침대 머리에 기대어 방유설을 내려다보았다.방유설은 마치 애완동물처럼 그에게 얌전히 기대어 있었다.오늘 밤의 방유설은 지난번과 확연히 달랐다.지난번에는 조우현의 손길에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고, 조우현의 차가운 태도에 완전히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녀가 먼저 다가와 끊임없이 조우현의 이름을 부르며 조우현을 사로잡았다.조우현은 긴 손가락으로 방유설의 머리카락 한 올 잡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지난번에 네가 원했던 헌신 기술의 광고 말이야. 네 이미지에 잘 맞는 제품이 있어. 기획부에 연락해서 계약서를 준비하라고 할게. 비용은 연간 16억
아침 일찍 방유설은 잠에서 깨어났다.조우현은 이미 떠나고 없었지만 옆자리 베개의 온기는 그가 얼마 전에 떠났음을 말해주고 있었다.방유설은 따스함이 남아 있는 베개를 어루만지며 평온한 얼굴에 그리움을 담았다. 조우현과 함께했던 매 순간이 그리웠다. 그가 자신을 증오하고 노리개로 삼았다고 해도 3개월 후 이별할 운명이라고 해도 그녀는 이렇게라도 추억을 가질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하얀 시폰 커튼을 통해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었다.흰색 침대 발밑에는 조우현이 놓고 간 얇은 남성용 캐시미어 코트가 놓여 있었다... 방유설은 떠나면서 코트를 집어 들고 잠시 생각하다가 9시 이후에 조우현의 회사에 직접 가져다주기로 했다.방유설은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여전히 발소리를 죽이며 들어갔지만 김미숙은 이미 익숙한 듯했다.김미숙이 말했다.“할머니께서 외박한 걸 알면 큰일 나요.”방유설의 얼굴은 화끈거렸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할머니와 시간을 보낸 후, 방유설은 미니밴을 몰고 먼저 현신기술로 향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현신기술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조우현을 보았다.그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어떤 젊은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었다.정장 차림의 늘씬하고 몸매가 좋은 여자는 현신기술의 임원인 듯 보였고 조우현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꽤 잘 어울렸다. 방유설은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지금까지 방유설은 마음속에 집착 하나를 품고 있었다. 세상에는 오직 자신과 조우현 두 사람 사이에만 사랑과 증오가 존재한다고 말이다.하지만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사실 조우현에게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그만 원한다면 어떤 아름답고 뛰어난 여성이라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방유설, 네가 뭔데 그가 널 못 잊을 거라고 생각해?'순간 자격지심이 방유설을 휩쓸었다.이때 조우현이 그녀를 발견했다.그는 먼저 미간을 찌푸렸다가 정장 차림의 미녀에게 가보라고 조용히 말하고는 그녀가 떠난 후 방유설 앞으로 다가
말을 끝낸 조우현은 방유설을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조금 전 그 정장을 입은 여성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우현이 들어서자 그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고 그의 표정은 방유설을 대할 때와는 달리 한결 부드러웠다. 로비는 사람들로 북적였다...방유설은 조용히 서 있었고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그녀를 깊이 찔렀다.한참 후,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방유설, 당연한 거 아니겠어? 조우현은 처음부터 분명히 말했잖아. 너희는 그저 서로 원해서 만나는 관계라고. 네가 선을 넘었고 네가 마음속으로 그에게 기대를 걸었기 때문에 이런 굴욕을 자초한 거야.'하지만 마음은 너무나 아팠다.방유설은 미니밴에 올라탔다. 홍이현은 이미 안에 와 있었다. 그녀가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방유설은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가 피우고 싶었다. 간절하게.그해 조우현과 헤어지고 나서 방유설은 마음의 병을 얻었다.조우현이 그녀가 불량소녀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방유설은 담배를 찾았다. 그렇지 않으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고 온몸이 떨렸기 때문이다.지금처럼...홍이현은 방유설의 손을 잡고 다급하게 말했다.“유설아, 너 미쳤어?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이럴 필요 없잖아.”그렇게 말하면서도 홍이현은 직접 방유설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방유설은 급하게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그녀는 의자에 기대앉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조우현은 평범한 남자가 아니야. 그는 내 인생에서 유일한 행복이었고 내가 가져본 것 중 가장 소중한 존재였어. 하지만 내가 그걸 내 손으로 망쳐버렸어. 그와 함께했던 반년 동안, 난 늘 꿈을 꿨어... 웃으면서 깨어난 날도 있었고 울면서 깨어난 날도 있었어. 난 그를 잃는 게 너무 두려워. 하지만 결국 내 것이 아니잖아. 속여서 얻은 건 결국 잃게 될 거니까.”...방유설
조우현은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몇 초 뒤 시선을 돌렸다.오히려 홍이현이 정중하게 불렀다.“조 대표님.”조우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는데 뭔가 잘난 척하는 느낌으로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다.그들이 나가고 엘리베이터에 방유설과 홍이현만 남게 되자 홍이현은 참지 못하고 투덜거렸다.“겉으로만 번지르르하네! 사석에서도 저래?”방유설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홍이현은 그녀의 붉어진 눈을 볼 수 없었다. 홍이현의 불평을 들은 방유설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사석에서는 저러지 않아. 예전에는 더 안 그랬어.”홍이현은 방유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한참 후 홍이현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유설아, 네가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 거 알아.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사랑도 있었으니까. 근데 지금 그는 너한테 어떻게 하는데? 난 네가 너무 힘든 거 원치 않아. 정말 힘들다면 이 사랑은 그만하는 게 나을 수도 있어.”방유설은 작게 대답했다.“알아. 이현 언니.”홍이현은 그녀가 자신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조우현은 외모면 외모, 재력이면 재력, 게다가 젊기까지 했다. 겨우 스물넷의 나이에 수십조억 자산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으니... 이런 화려한 조건 앞에서 어떤 여자가 정신을 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잠시 후, 두 사람은 현신기술 홍보팀에 도착했다.그 남자 배우의 매니저는 이미 도착했지만 정작 배우 본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방유설을 깔보는 태도였다.홍이현은 신경 안 썼다. 연예계에선 인기가 금방 식으니까.계약할 때, 현신기술은 남녀 모델의 촬영 일정을 조율했고 문제가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함께 계약서에 서명하게 했다. 홍이현은 그 남자 배우의 모델료가 12억으로 방유설보다 4억이 적다는 것을 알아냈다. 물론 그 남자 배우의 매니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홍이현은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그녀는 광고 촬영이 끝나면 바로 언론에 알려 방유설의 몸값을 높일 생각이었다.반면, 남자 배우
방유설은 조용히 부인했다.“나랑 조 대표님은 예전에 알고 지냈던 사이일 뿐이에요.”박도원의 매니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그냥 일면식일지라도 큰 도움이 되죠.”조금 전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방유설은 분명 현신기술 대표님의 사람인 게 틀림없었다. 조우현의 소유욕은 정말 대단했다. 오자마자 은근히 질투심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이따가 돌아가면 박도원에게 분명히 얘기해야겠다. 방유설과 함께 작업하는 동안 괜한 스캔들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의 길이 순탄치 않을 테니까.바로 그때, 방유설의 휴대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확인해 보니 조우현이 보낸 문자였다.[이따가 호텔에서 기다려.]방유설은 그 몇 글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단순한 문장이었지만 그들 사이의 위계질서가 그 몇 글자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그녀는 화를 내는 대신, 순순히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그 시각 조우현은 사무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몸을 천천히 돌리고 있었다.카톡 문자를 받자 그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저녁 8시.특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조우현은 두 시간을 꼬박 기다렸다.방유설은 늦었다.그녀가 스위트룸 문을 열자 방안은 칠흑같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은은한 남성의 체취가 감돌았다. 상쾌한 향기로 보아 조우현은 방금 샤워를 마친 듯했다.방유설은 불을 켜지 않고 희미한 빛을 빌어 침실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침대에 가까이 다가가자 손목이 큰 손에 잡혔고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며 그녀의 가냘픈 몸은 부드러운 침대 위로 쓰러졌다. 곧 뜨겁게 달아오른 남자의 몸이 그녀 위로 덮쳐 왔다.“우현 씨.”방유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조우현은 너무 조급하고 거칠어서 이 혈기왕성한 남자를 그녀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곧 그녀의 쉰 목소리는 삼켜졌고 남은 것은 서로를 향한 억누를 수 없는 감정뿐이었다...달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쳐졌다.새벽이 다 되어서야 조우현은 보름 동안 쌓인 욕망을 모두 풀었다. 그는 후련하
방유설은 멍하니 서 있었다.한참 동안 그녀는 반응하지 못했다. 조우현이 왜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었고 혹시 그가 자신이 섹시한 옷만 입은 걸 좋아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방유설은 서둘러 식기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럼 갈아입고 올게.”“갈아입어.”조우현의 목소리는 낮고 어두웠으며 알 수 없는 음울함이 묻어 있었다.방유설은 침실 드레스룸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갔다. 조우현이 이곳을 3개월간 빌렸기에 방유설은 종종 그를 시중들기 위해 이곳에 왔고 따라서 몇 벌의 옷도 가져다 두었다. 지금 조우현이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기에 그녀는 입고 있던 꽃무늬 원피스를 벗고 검은색 오프숄더 미니 드레스를 꺼내 입었다...그러나 옷을 갈아입은 방유설은 갑자기 멈칫했다.곧 그녀는 크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담배 한 대가 간절했다. 그래야만 이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그렇다, 담배가 필요했다!방유설은 떨리는 손으로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옷장에 기대어 탐욕스럽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니코틴이 폐에 들어가니 좀 진정됐지만 몸은 계속 떨렸다.드레스룸 문 앞에서 조우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또 왜 이런 옷을 입었어? 유설아, 너...”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방유설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모습은 그에게 과거를 떠올리게 했다. 방유설이 불량소녀들과 어울려 담배를 피우고 돈다발을 들고 사랑을 팔던 추악한 모습을.고개를 든 방유설은 그의 시선과 마주쳤다.그녀는 조우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실 조우현뿐만 아니라 방유설에게도 그 순간은 생애 가장 거센 폭우였다.방유설의 눈에는 환멸감이 서렸고 몸은 끊임없이 떨리고 있었다.문 앞에 서 있는 젊은 남자는 풍채가 좋고 잘생겼지만 그녀는 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어도 여전히 그때 그 시절 구타당해 정신을 잃었던 시궁창 쥐와 같은 존재였다. 조우현을 보면서 방
방유설은 진심을 바랐지만 조우현의 진심은 단 한 번뿐이었다.그는 그들의 관계가 단지 서로의 필요에 의한 관계임을 분명히 했고 그녀가 감당할 수 없다면 당장 떠나라고 했다.방유설은 떠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런 대화는 좀처럼 오지 않는 기회였기에 그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조우현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다른 걸 원해?”검은색 레인지로버는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고 가로등 불빛이 차창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렇게 몇 번 가로등을 지나고 나서야 조우현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말했잖아. 우리는 그냥 자는 사이라고.”“알아.”방유설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후 고개를 돌려 차창 밖 야경을 바라보았다. 차 안은 조용했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묘하게 은밀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앞쪽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지자 차는 천천히 멈춰 섰다. 방유설이 앞쪽 도로 상황을 살피려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조우현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잠깐 잡았다가 놨지만 따뜻하고 힘 있는 손길이었다.방유설은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신호가 바뀌어 파란불이 켜지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우현 씨?”하지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액셀을 밟았고 검은색 차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그들의 떳떳하지 못한 관계처럼...방유설은 더 이상 물어볼 용기와 체면이 없었다.30분 후, 조우현은 방유설의 집 앞에 차를 세웠다. 그녀는 오늘 작별인사로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할머니가 한밤중에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김미숙은 휠체어를 밀고 있었는데 두툼한 담요로 할머니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할머니는 앞을 보지 못했지만 후각이 예민했다. 그녀는 방유설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냄새를 맡았다.“유설이 왔구나.”방유설은 코트도 걸치지 않고 휠체어 옆으로 달려가 쪼그리고 앉아 할머니의 두 손을 감싸 쥐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이렇게 추운데 밖에 있어요?”김미숙이 대신 대답했다.“할머니께서 잠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