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유선우는 과다 출혈로 YS 병원에 입원했다.아무리 숨기려 해도 의사는 은은한 남성 호르몬 냄새와 아무렇게나 채워진 셔츠 단추,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운동복 바지를 보고 병원에 오기 직전까지 격렬한 운동을 했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의사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다친 곳을 꿰맬 때, 의사가 나지막하게 헛기침하며 당부했다.“유 대표님,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급하시더라도 잠시 격렬한 운동을 중단하고 즉시 병원으로 오셔서 치료부터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 날 거예요.”“멈출 수 없었어요!”유선우는 소파에 기대어 그윽한 눈으로 옆에 있는 조은서를 힐끗 보았다.‘뜻밖에도 조은서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오려고 하다니, 비웃을 작정이겠지!’조은서는 유선우를 무시했고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유선우는 그 모습을 보고 전에 봤던 어린놈과 문자를 주고받는 건 아닌지 추측하지 않을 수 없었다.조은서는 유선우의 마음을 짐작하고 담담하게 말했다.“남들도 다 당신처럼 더러운 생각만 하고 사는 건 아니거든요.”유선우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더러운 생각을 해? 너도 즐겼잖아!”의사는 눈을 둘 곳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유 대표 부부의 눈앞에서 이런 비밀스러운 대화를 엿듣고 싶지 않았다. 의사는 서둘러 여섯 바늘 꿰매는 데 전념한 후, 상처가 남지 않게 하려면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전달했다.유선우는 개의치 않는다.“여자도 아니고, 상처 좀 남아도 괜찮아요!”의사는 유선우의 준수한 얼굴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과연 하느님이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이라 그런지 아주 제멋대로네... 나도 다음 생엔 상처 좀 남아도 괜찮은 얼굴로 태어나고 싶네.’유선우는 입원해서 하룻밤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조은서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조은서는 함께 병원에 온 것만으로도 인정과 의리가 다했다고 생각했다.조은서는 유선우가 입원 수속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떠날 준비를 했다.유선우는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는 조은서를 노려보며 물었
유선우는 골똘히 방금 조은서가 한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문이 다시 열리자, 그는 당연히 조은서가 돌아왔으리라 생각하고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물었다.“조은서, 네 꿈에도 내가 있었지?”백아현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다. 그녀는 유선우가 조은서에게 고백하는 듯한 말을 한다는 것을 두 귀로 듣고도 믿을 수 없었다. 유선우는 지금까지 이렇게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백아현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도 한참 동안 응답이 없자, 유선우는 고개를 돌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백아현인 것을 확인했다. 그 순간 유선우의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고, 몸을 뒤로 기대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너였어?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병실로 돌아가 쉬어!”백아현은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유선우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조은서를 좋아하는 거예요?”유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백아현은 곧 울 것 같았지만, 여전히 센 척했다.“괜찮아요, 선우 씨! 저는 선우 씨의 사랑을 축복할 거예요. 조은서 씨도 선우 씨를 사랑한다면 더 축복할 일이죠.”유선우는 백아현이 하는 이런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아 인터폰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불러 백아현을 데려가라고 했다. 김춘희는 소식을 듣고 와서 유선우에게 큰소리로 몇 마디 따져보고 싶었지만, 유선우의 눈치를 보다가 말을 삼켰다.백아현이 돌아가고 병실 문이 살짝 닫히자, 세상이 다시 맑아진 것 같았다.유선우는 미간을 가볍게 문질렀다. 그리고 문득 진 비서의 말이 떠올랐다.「대표님, 백아현 씨 치료를 해외에서 하는 건 어떨까요?」유선우는 진 비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고민에 빠졌다...그런데 바로 그때, 진 비서가 찾아왔다. 진 비서는 병문안을 온 것이 아니라 유선우에게 기밀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유선우가 거금을 주고 탐정에게 그 해 힐튼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한 결과였다.진 비서는 서류를 내려놓고, 유선우의 이마에 난 상처를 보며 물었다.“대표님, 조은서가 그런 거예요
이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유선우의 어머니 함은숙이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함은숙은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정갈한 옷차림이었고 반짝이는 장신구를 온몸에 휘감았다.유선우는 손끝으로 사진 한 장을 집어 들고 조용히 함은숙을 바라보았다.함은숙은 문 앞에 서서, 아들의 손가락 사이에 끼인 사진 한 장에 시선을 옮겼다. 함은숙은 유선우의 엄마로서 유선우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함은숙은 따라오는 도우미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장씨 아주머니, 밖에서 기다리세요.”장숙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급히 나가며 문을 닫았다. 닫힌 문짝을 보고 함은숙은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젊은 시절 겪었던 남편의 배신과 불륜 때문에 얼음처럼 차가워졌다.부드러운 조명 아래에서도 함은숙의 얼굴은 약간 까칠해 보였다. 그녀는 날이 선 눈빛으로 아들을 보며 말했다.“도우미들끼리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은서가 허구한 날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 것도 모자라 너랑 부부 싸움을 크게 해서 병원까지 오게 됐다면서? 유선우, 정신 차려. YS 그룹 작은 사모님으로서 이런 행동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유선우의 눈빛에도 날이 서 있었다. 함은숙의 불평이 끝나자, 유선우가 작은 소리로 되물었다.“왜 직접 혼내지 않으세요? 찔려서 그래요? 찔려서 감히 은서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할수 없으신 거죠? 어머니도 은서가 유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 욕심도 관심도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신 거죠... 안 그래요?”말을 마치고 유선우는 사진 한 장을 함은숙 앞으로 내던져졌다. 함은숙은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차갑게 웃었다.“이제 알게 된 거야? 그래서 마음이 아프기라도 한 건가? 어찌 됐든 간에 조은서는 지금 우리 유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이야. 지켜야 할 품위라는 게 있단 말이다!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삼류 망나니들과 어울리면 우리 유씨 가문의 위신이 서지 않을 거다!”유선우는 입술
최고급 VIP 병실이었지만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가 유선우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는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어 조은서가 베개에 엎드려 있는 사진을 보았다.함은숙의 말이 유선우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기 시작했다.“결혼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밤마다 그 아이를 노리개처럼 갖고 논 건 너 아니니? 그 아이가 예뻐서인가? 아니면 억눌렀던 너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인가...”유선우는 함은숙의 말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 사진이야말로 가장 좋은 증거였다. 결혼 생활 3년 내내, 유선우는 조은서를 미워하면서도 그녀와 잠자리를 가지는 것은 마다하지 않았다. 조은서를 3년 동안 괴롭힌 사람은 바로 유선우 자신이었다.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유선우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비 오는 밤, 검은색 롤스로이스 한 대가 별장으로 들어섰다.차가 멈춘 뒤에도 와이퍼는 계속해서 작동했다. 차 앞에 있는 금빛 여신 마크가 빗속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유선우는 하얀 셔츠를 입고 운전석에 타고 있었다. 어두운 밤에도 눈이 부셨지만 도우미들도 모두 잠든 깊은 밤이라 아무도 그를 맞이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2층을 보니, 소등된 상태였다.유선우는 가만히 앉아있다가 비속에 고요한 별장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왜 집에 돌아왔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저 빨리 조은서를 만나고 싶었다.유선우는 심지어 지난 3년이 꿈이기를 바랐다. 당장이라도 위층으로 올라가서 조은서의 귀에 대고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면 조은서에게 그녀의 인생을 돌려주고 싶었다.유선우는 의자에 기대어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와보니 조은서의 털끝 하나 건드리는 것조차 죄악인 것 같았다.새벽 4시, 유선우는 차에서 내려 별장으로 들어갔고 방안은 매우 조용했다. 가을밤의 비는 기온을 최저로 낮추었고, 달랑 셔츠 하나 입은 유선우는 온몸이 오싹하고 추웠다.2층 안방은 오히려 따뜻했다.조은서는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곤히 잠들
유선우는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깨어났을 때, 그는 조은서를 꼭 껴안고 있었고, 그녀의 몸에 있는 실크 잠옷은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그녀의 드러난 한쪽 어깨는 새벽녘의 한줄기 희미한 빛에 의해 은은한 윤기가 돌았다.그녀가 아직 그의 품속에 있다!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니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며 마음이 편해졌다.그는 잠시 그렇게 있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오전에는 회사에 중요한 입찰 회의가 있어,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일어나 간단히 씻고 옷을 가라 입은 후 넥타이를 매면서 침실로 걸어가는데, 조은서는 이미 깨어나 침대 머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그녀는 눈을 들어 그의 눈빛과 마주치게 되었다.몇 초 후, 그녀는 어젯밤의 일이 생각난 것 같았다.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선우 씨, 사실이 어떻든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이렇게 시간이 오래 흘렀는데, 저도 그동안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우린 이제 앞을 내다봐야죠.”아침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췄다.그녀는 매우 이성적으로 말을 내뱉었다.“어젯밤 내가 한 말을 잘 생각해 봐요.”유선우는 그에 아무 대꾸 하지 않고 그저 큰 침대를 향해 한 걸음 걸어가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넥타이 좀 매줄래? 아무리 해도 잘 안되네.”마지막 몇 글자를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이 순간이 그의 3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몇 안 되는 따뜻한 장면이라서 그런가...의외로 조은서는 거절하지 않고, 예전처럼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넥타이를 매주었고, 그는 그녀가 매기 편하도록 몸을 기울여 낮췄다.그렇게 그들 둘은 서로의 숨결이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고 콧김이 짧고 급하게, 또 따뜻하게 서로의 얼굴에 떨어졌다.조은서는 손재주가 좋아 넥타이를 매우 보기 좋게 매듭지었다.그녀는 시선을 위로 올려, 또 조금 전의 일을 꺼내려 했다.“선우 씨, 우리...”그러나 그때 유선우가 한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쉽사리 감싸 쥐었고, 그는 고개를 숙여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조은서는 아무래도 임지혜가 걱정되어 그녀와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임지혜는 먼저 도착해서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다가, 조은서가 차를 몰고 오는 것을 목격했다.조은서가 커피숍 안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턱을 쳐들고 물었다.“왜 직접 운전했어? 너희 부잣집 사모님들은 다 기사가 있는 거 아니야?”조은서는 자리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앞으로는 운전해서 다닐 거야.”이 말이 나오자 임지혜는 그녀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정말 이혼할 거야? 나 요즘 유선우를 보니 꽤 널 잘 챙기던데.”조은서는 그런 일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아, 정색하고 임지혜한테 물었다.“너랑 차준호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임지혜는 멋쩍은 웃음 지어 보이며 머리카락을 뒤로 쓸며 얘기를 피하는 눈치였다.“나랑 그 사람은 무슨 일이 더 있겠어. 그냥 남자 여자 사이 다 그러루한 얘기 아니야? 누굴 떠난다고 못 살 것도 아니고.”조은서는 말이 없었다.그러자 임지혜는 참지 못하고 아예 솔직하게 털어놨다.“얘기했잖아, 그 사람이 내 목줄을 틀어쥐고 안 놓는다니까. 나랑 그 사람이 완전히 틀어지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 은서야, 난 있지,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아. 내가 완전히 타락한 거지 뭐!”조은서는 이 말이 그녀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임지혜는 마치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녔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녀도 임지혜가 차준호한테 마음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다만 지금 차준호한테 약혼녀가 있으니, 그녀도 마음이 괴로워 애써 개의치 않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조은서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에서 수표 한 장을 꺼냈다.10억 원.임지혜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은서가 유선우의 돈을 쉽게 받진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럼 이 돈은... 조은서가 집 판 돈?.자신이 어떻게 이 돈을 가지겠는가. 그렇다면 사람도 아니지.그러나 조은서는 그녀의 손을 누르며 약간 단단한 소리로 그녀한테 말했다.“내가 널 먹여 살릴게!”“내
조은서는 별장으로 돌아왔다.하얀색 마세라티가 멈추자마자, 고용인이 차 문을 다급하게 열어주며 매우 들뜬 표정을 하고 있었다.“사모님, 방금 집에 사람이 왔는데 귀한 물건을 잔뜩 보내왔어요.”고용인은 비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주인님이 보낸 걸 겁니다.”고용인은 온전히 조은서를 위해 기뻐했다. 조은서가 끝내 참고 견뎌 좋은 날이 온 것 같아서 말이다.그러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 결혼이 조은서한테 얼마나 잔인하고 숨 막히고 억울한지.조은서는 나무라지 않고 싱긋 웃었다.그녀는 2층으로 올라가 안방 문을 열었다.거실에는 명품 브랜드의 정교한 박스가 가득 쌓여 있었고, 그것들은 각양각색이었다.귀한 옷, 진귀한 보석, 여자들이 좋아하는 하이힐... 심지어 엊그제 파리 런웨이 할 때 나왔던 맞춤 드레스까지 있었다.사치스럽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이때 유선우가 소리 없이 걸어 들어와 그녀 뒤에서 백허그를 하며, 턱을 그녀의 어깨에 얹으며 부드럽게 물었다.“마음에 들어?”조은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그녀는 상자를 살짝 열었는데, 안에는 큐빅 새틴 소재의 하이힐이 매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 예뻤다, 유선우의 취향에 감탄할 만큼.조은서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런 걸 안 좋아하는 여자도 있어요? 선우 씨, 이건 제게 주는 보상인가요?”입으로는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말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유선우도 당연히 그걸 알아들었다.그는 그녀의 몸을 돌리며 안아서 소파 팔걸이 위에 앉혀놓고, 그도 바짝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몸을 그녀 다리 사이로 끼워 넣어 매우 부끄러운 자세를 취했다.그리고 빳빳한 양복바지의 얇은 옷감을 사이에 둔 채 그녀와 몸을 살짝살짝 비볐다.조은서도 당연히 느낌이 있었다.그녀의 미간은 느슨하게 풀렸고, 유선우는 고개를 숙여 그녀와 키스하려고 했다. 그의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우 관능적으로 들렸다.“은서야, 우리도 즐거울 때가 있었어, 그렇지?”“그거 할 때 말이에요?”조은서는 몸을 뒤로 젖
말을 마친 유선우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유선우가 조은서와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이유가 전부 그녀에게 보상을 해주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유선우는 온전히 조은서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두 사람 역시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다른 사람과는 그런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유선우는 조은서를 진심으로 원했다. 하지만 조은서는 유선우의 말을 더는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천천히 유선우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백아현을 만나러 가려던 거 아니었어? 왜 아직도 안 내려가?”유선우는 자기가 백아현을 만나러 가든 가지 않든 조은서는 전혀 관심 없어 하는 것을 알아챘다.유선우는 사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조은서는 더 이상 유선우를 신경 쓰지 않았고, 심지어 백아현도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홀가분한 모습을 보였다....백아현의 병세는 점점 더 위중해졌다. 그녀는 김춘희도 모르게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간호사에게 유선우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접대실에서 아주 오래 기다렸다.백아현은 접대실에서 위층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들을 수 있었다. 2층에는 유선우와 조은서만 있었기에, 그 소리는 분명히 두 사람이 낸 것일 수밖에 없었다.백아현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자기도 모르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저녁 이맘때쯤,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선우 씨는 조은서와 잠자리를 갖는 건가...’마침 홀 문이 열리고 유선우가 들어왔다.백아현은 유선우의 하얀 셔츠 깃에 립스틱 자국이 묻은 것을 발견하고 얼굴이 핏기를 잃은 것처럼 창백해진 채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애절한 눈빛으로 유선우를 바라보며 비명에 가까운 애원을 했다.“선우 씨, 제발 부탁할게요. 저는 해외로 나가고 싶지 않아요. B시에 남아서 치료받고 싶어요. 조은서 씨를 대신할 생각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고요.”유선우는 백아현을 데리고 온 의료진들에게 나가라고 지시했다. 조용해진 뒤에야 유선우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 일은 내 뜻이고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