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유선우는 과다 출혈로 YS 병원에 입원했다.아무리 숨기려 해도 의사는 은은한 남성 호르몬 냄새와 아무렇게나 채워진 셔츠 단추,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운동복 바지를 보고 병원에 오기 직전까지 격렬한 운동을 했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의사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다친 곳을 꿰맬 때, 의사가 나지막하게 헛기침하며 당부했다.“유 대표님,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급하시더라도 잠시 격렬한 운동을 중단하고 즉시 병원으로 오셔서 치료부터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 날 거예요.”“멈출 수 없었어요!”유선우는 소파에 기대어 그윽한 눈으로 옆에 있는 조은서를 힐끗 보았다.‘뜻밖에도 조은서가 나를 데리고 병원에 오려고 하다니, 비웃을 작정이겠지!’조은서는 유선우를 무시했고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유선우는 그 모습을 보고 전에 봤던 어린놈과 문자를 주고받는 건 아닌지 추측하지 않을 수 없었다.조은서는 유선우의 마음을 짐작하고 담담하게 말했다.“남들도 다 당신처럼 더러운 생각만 하고 사는 건 아니거든요.”유선우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더러운 생각을 해? 너도 즐겼잖아!”의사는 눈을 둘 곳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유 대표 부부의 눈앞에서 이런 비밀스러운 대화를 엿듣고 싶지 않았다. 의사는 서둘러 여섯 바늘 꿰매는 데 전념한 후, 상처가 남지 않게 하려면 주의해야 할 사항들을 전달했다.유선우는 개의치 않는다.“여자도 아니고, 상처 좀 남아도 괜찮아요!”의사는 유선우의 준수한 얼굴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과연 하느님이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이라 그런지 아주 제멋대로네... 나도 다음 생엔 상처 좀 남아도 괜찮은 얼굴로 태어나고 싶네.’유선우는 입원해서 하룻밤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조은서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조은서는 함께 병원에 온 것만으로도 인정과 의리가 다했다고 생각했다.조은서는 유선우가 입원 수속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떠날 준비를 했다.유선우는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는 조은서를 노려보며 물었
유선우는 골똘히 방금 조은서가 한 말을 생각했다. 그리고 문이 다시 열리자, 그는 당연히 조은서가 돌아왔으리라 생각하고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물었다.“조은서, 네 꿈에도 내가 있었지?”백아현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다. 그녀는 유선우가 조은서에게 고백하는 듯한 말을 한다는 것을 두 귀로 듣고도 믿을 수 없었다. 유선우는 지금까지 이렇게 다정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백아현에게 말한 적이 없었다.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도 한참 동안 응답이 없자, 유선우는 고개를 돌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백아현인 것을 확인했다. 그 순간 유선우의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고, 몸을 뒤로 기대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너였어?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병실로 돌아가 쉬어!”백아현은 또 한 번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유선우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조은서를 좋아하는 거예요?”유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백아현은 곧 울 것 같았지만, 여전히 센 척했다.“괜찮아요, 선우 씨! 저는 선우 씨의 사랑을 축복할 거예요. 조은서 씨도 선우 씨를 사랑한다면 더 축복할 일이죠.”유선우는 백아현이 하는 이런 말들을 듣고 싶지 않아 인터폰으로 의사와 간호사를 불러 백아현을 데려가라고 했다. 김춘희는 소식을 듣고 와서 유선우에게 큰소리로 몇 마디 따져보고 싶었지만, 유선우의 눈치를 보다가 말을 삼켰다.백아현이 돌아가고 병실 문이 살짝 닫히자, 세상이 다시 맑아진 것 같았다.유선우는 미간을 가볍게 문질렀다. 그리고 문득 진 비서의 말이 떠올랐다.「대표님, 백아현 씨 치료를 해외에서 하는 건 어떨까요?」유선우는 진 비서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고민에 빠졌다...그런데 바로 그때, 진 비서가 찾아왔다. 진 비서는 병문안을 온 것이 아니라 유선우에게 기밀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유선우가 거금을 주고 탐정에게 그 해 힐튼 호텔에서 있었던 일을 조사한 결과였다.진 비서는 서류를 내려놓고, 유선우의 이마에 난 상처를 보며 물었다.“대표님, 조은서가 그런 거예요
이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유선우의 어머니 함은숙이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함은숙은 여전히 흠잡을 데 없이 정갈한 옷차림이었고 반짝이는 장신구를 온몸에 휘감았다.유선우는 손끝으로 사진 한 장을 집어 들고 조용히 함은숙을 바라보았다.함은숙은 문 앞에 서서, 아들의 손가락 사이에 끼인 사진 한 장에 시선을 옮겼다. 함은숙은 유선우의 엄마로서 유선우가 어떤 마음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꿰뚫고 있었다. 함은숙은 따라오는 도우미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장씨 아주머니, 밖에서 기다리세요.”장숙자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급히 나가며 문을 닫았다. 닫힌 문짝을 보고 함은숙은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젊은 시절 겪었던 남편의 배신과 불륜 때문에 얼음처럼 차가워졌다.부드러운 조명 아래에서도 함은숙의 얼굴은 약간 까칠해 보였다. 그녀는 날이 선 눈빛으로 아들을 보며 말했다.“도우미들끼리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은서가 허구한 날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 것도 모자라 너랑 부부 싸움을 크게 해서 병원까지 오게 됐다면서? 유선우, 정신 차려. YS 그룹 작은 사모님으로서 이런 행동은 절대 용납할 수 없어.”유선우의 눈빛에도 날이 서 있었다. 함은숙의 불평이 끝나자, 유선우가 작은 소리로 되물었다.“왜 직접 혼내지 않으세요? 찔려서 그래요? 찔려서 감히 은서에게 직접 이런 말을 할수 없으신 거죠? 어머니도 은서가 유씨 가문 사모님 자리에 욕심도 관심도 없다는 걸 잘 알고 계신 거죠... 안 그래요?”말을 마치고 유선우는 사진 한 장을 함은숙 앞으로 내던져졌다. 함은숙은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차갑게 웃었다.“이제 알게 된 거야? 그래서 마음이 아프기라도 한 건가? 어찌 됐든 간에 조은서는 지금 우리 유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이야. 지켜야 할 품위라는 게 있단 말이다! 행실이 바르지 못하고 삼류 망나니들과 어울리면 우리 유씨 가문의 위신이 서지 않을 거다!”유선우는 입술
최고급 VIP 병실이었지만 주룩주룩 내리는 빗소리가 유선우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는 휴대전화 사진첩을 열어 조은서가 베개에 엎드려 있는 사진을 보았다.함은숙의 말이 유선우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기 시작했다.“결혼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밤마다 그 아이를 노리개처럼 갖고 논 건 너 아니니? 그 아이가 예뻐서인가? 아니면 억눌렀던 너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기 때문인가...”유선우는 함은숙의 말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 사진이야말로 가장 좋은 증거였다. 결혼 생활 3년 내내, 유선우는 조은서를 미워하면서도 그녀와 잠자리를 가지는 것은 마다하지 않았다. 조은서를 3년 동안 괴롭힌 사람은 바로 유선우 자신이었다.밖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유선우는 옷을 입기 시작했다...비 오는 밤, 검은색 롤스로이스 한 대가 별장으로 들어섰다.차가 멈춘 뒤에도 와이퍼는 계속해서 작동했다. 차 앞에 있는 금빛 여신 마크가 빗속에서 울고 있는 것 같았다.유선우는 하얀 셔츠를 입고 운전석에 타고 있었다. 어두운 밤에도 눈이 부셨지만 도우미들도 모두 잠든 깊은 밤이라 아무도 그를 맞이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2층을 보니, 소등된 상태였다.유선우는 가만히 앉아있다가 비속에 고요한 별장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왜 집에 돌아왔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저 빨리 조은서를 만나고 싶었다.유선우는 심지어 지난 3년이 꿈이기를 바랐다. 당장이라도 위층으로 올라가서 조은서의 귀에 대고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면 조은서에게 그녀의 인생을 돌려주고 싶었다.유선우는 의자에 기대어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와보니 조은서의 털끝 하나 건드리는 것조차 죄악인 것 같았다.새벽 4시, 유선우는 차에서 내려 별장으로 들어갔고 방안은 매우 조용했다. 가을밤의 비는 기온을 최저로 낮추었고, 달랑 셔츠 하나 입은 유선우는 온몸이 오싹하고 추웠다.2층 안방은 오히려 따뜻했다.조은서는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곤히 잠들
유선우는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깨어났을 때, 그는 조은서를 꼭 껴안고 있었고, 그녀의 몸에 있는 실크 잠옷은 약간 흐트러져 있었다. 그녀의 드러난 한쪽 어깨는 새벽녘의 한줄기 희미한 빛에 의해 은은한 윤기가 돌았다.그녀가 아직 그의 품속에 있다!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니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며 마음이 편해졌다.그는 잠시 그렇게 있다가 침대에서 일어났다.오전에는 회사에 중요한 입찰 회의가 있어,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일어나 간단히 씻고 옷을 가라 입은 후 넥타이를 매면서 침실로 걸어가는데, 조은서는 이미 깨어나 침대 머리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그녀는 눈을 들어 그의 눈빛과 마주치게 되었다.몇 초 후, 그녀는 어젯밤의 일이 생각난 것 같았다.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선우 씨, 사실이 어떻든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이렇게 시간이 오래 흘렀는데, 저도 그동안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우린 이제 앞을 내다봐야죠.”아침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췄다.그녀는 매우 이성적으로 말을 내뱉었다.“어젯밤 내가 한 말을 잘 생각해 봐요.”유선우는 그에 아무 대꾸 하지 않고 그저 큰 침대를 향해 한 걸음 걸어가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넥타이 좀 매줄래? 아무리 해도 잘 안되네.”마지막 몇 글자를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이 순간이 그의 3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몇 안 되는 따뜻한 장면이라서 그런가...의외로 조은서는 거절하지 않고, 예전처럼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넥타이를 매주었고, 그는 그녀가 매기 편하도록 몸을 기울여 낮췄다.그렇게 그들 둘은 서로의 숨결이 들릴 정도로 가까워졌고 콧김이 짧고 급하게, 또 따뜻하게 서로의 얼굴에 떨어졌다.조은서는 손재주가 좋아 넥타이를 매우 보기 좋게 매듭지었다.그녀는 시선을 위로 올려, 또 조금 전의 일을 꺼내려 했다.“선우 씨, 우리...”그러나 그때 유선우가 한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쉽사리 감싸 쥐었고, 그는 고개를 숙여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도 우스운 일이었다.조은서는 아무래도 임지혜가 걱정되어 그녀와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임지혜는 먼저 도착해서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다가, 조은서가 차를 몰고 오는 것을 목격했다.조은서가 커피숍 안으로 들어오자, 그녀는 턱을 쳐들고 물었다.“왜 직접 운전했어? 너희 부잣집 사모님들은 다 기사가 있는 거 아니야?”조은서는 자리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앞으로는 운전해서 다닐 거야.”이 말이 나오자 임지혜는 그녀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정말 이혼할 거야? 나 요즘 유선우를 보니 꽤 널 잘 챙기던데.”조은서는 그런 일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아, 정색하고 임지혜한테 물었다.“너랑 차준호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임지혜는 멋쩍은 웃음 지어 보이며 머리카락을 뒤로 쓸며 얘기를 피하는 눈치였다.“나랑 그 사람은 무슨 일이 더 있겠어. 그냥 남자 여자 사이 다 그러루한 얘기 아니야? 누굴 떠난다고 못 살 것도 아니고.”조은서는 말이 없었다.그러자 임지혜는 참지 못하고 아예 솔직하게 털어놨다.“얘기했잖아, 그 사람이 내 목줄을 틀어쥐고 안 놓는다니까. 나랑 그 사람이 완전히 틀어지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 은서야, 난 있지,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아. 내가 완전히 타락한 거지 뭐!”조은서는 이 말이 그녀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임지혜는 마치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녔다.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그녀도 임지혜가 차준호한테 마음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다만 지금 차준호한테 약혼녀가 있으니, 그녀도 마음이 괴로워 애써 개의치 않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조은서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에서 수표 한 장을 꺼냈다.10억 원.임지혜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은서가 유선우의 돈을 쉽게 받진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그럼 이 돈은... 조은서가 집 판 돈?.자신이 어떻게 이 돈을 가지겠는가. 그렇다면 사람도 아니지.그러나 조은서는 그녀의 손을 누르며 약간 단단한 소리로 그녀한테 말했다.“내가 널 먹여 살릴게!”“내
조은서는 별장으로 돌아왔다.하얀색 마세라티가 멈추자마자, 고용인이 차 문을 다급하게 열어주며 매우 들뜬 표정을 하고 있었다.“사모님, 방금 집에 사람이 왔는데 귀한 물건을 잔뜩 보내왔어요.”고용인은 비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주인님이 보낸 걸 겁니다.”고용인은 온전히 조은서를 위해 기뻐했다. 조은서가 끝내 참고 견뎌 좋은 날이 온 것 같아서 말이다.그러나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 결혼이 조은서한테 얼마나 잔인하고 숨 막히고 억울한지.조은서는 나무라지 않고 싱긋 웃었다.그녀는 2층으로 올라가 안방 문을 열었다.거실에는 명품 브랜드의 정교한 박스가 가득 쌓여 있었고, 그것들은 각양각색이었다.귀한 옷, 진귀한 보석, 여자들이 좋아하는 하이힐... 심지어 엊그제 파리 런웨이 할 때 나왔던 맞춤 드레스까지 있었다.사치스럽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이때 유선우가 소리 없이 걸어 들어와 그녀 뒤에서 백허그를 하며, 턱을 그녀의 어깨에 얹으며 부드럽게 물었다.“마음에 들어?”조은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그녀는 상자를 살짝 열었는데, 안에는 큐빅 새틴 소재의 하이힐이 매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정말 예뻤다, 유선우의 취향에 감탄할 만큼.조은서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런 걸 안 좋아하는 여자도 있어요? 선우 씨, 이건 제게 주는 보상인가요?”입으로는 좋아한다고 말하면서, 말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유선우도 당연히 그걸 알아들었다.그는 그녀의 몸을 돌리며 안아서 소파 팔걸이 위에 앉혀놓고, 그도 바짝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몸을 그녀 다리 사이로 끼워 넣어 매우 부끄러운 자세를 취했다.그리고 빳빳한 양복바지의 얇은 옷감을 사이에 둔 채 그녀와 몸을 살짝살짝 비볐다.조은서도 당연히 느낌이 있었다.그녀의 미간은 느슨하게 풀렸고, 유선우는 고개를 숙여 그녀와 키스하려고 했다. 그의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우 관능적으로 들렸다.“은서야, 우리도 즐거울 때가 있었어, 그렇지?”“그거 할 때 말이에요?”조은서는 몸을 뒤로 젖
말을 마친 유선우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유선우가 조은서와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이유가 전부 그녀에게 보상을 해주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유선우는 온전히 조은서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두 사람 역시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다른 사람과는 그런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다.유선우는 조은서를 진심으로 원했다. 하지만 조은서는 유선우의 말을 더는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천천히 유선우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백아현을 만나러 가려던 거 아니었어? 왜 아직도 안 내려가?”유선우는 자기가 백아현을 만나러 가든 가지 않든 조은서는 전혀 관심 없어 하는 것을 알아챘다.유선우는 사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조은서는 더 이상 유선우를 신경 쓰지 않았고, 심지어 백아현도 신경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홀가분한 모습을 보였다....백아현의 병세는 점점 더 위중해졌다. 그녀는 김춘희도 모르게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간호사에게 유선우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접대실에서 아주 오래 기다렸다.백아현은 접대실에서 위층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들을 수 있었다. 2층에는 유선우와 조은서만 있었기에, 그 소리는 분명히 두 사람이 낸 것일 수밖에 없었다.백아현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자기도 모르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저녁 이맘때쯤,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선우 씨는 조은서와 잠자리를 갖는 건가...’마침 홀 문이 열리고 유선우가 들어왔다.백아현은 유선우의 하얀 셔츠 깃에 립스틱 자국이 묻은 것을 발견하고 얼굴이 핏기를 잃은 것처럼 창백해진 채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애절한 눈빛으로 유선우를 바라보며 비명에 가까운 애원을 했다.“선우 씨, 제발 부탁할게요. 저는 해외로 나가고 싶지 않아요. B시에 남아서 치료받고 싶어요. 조은서 씨를 대신할 생각도 없고, 그럴 마음도 없다고요.”유선우는 백아현을 데리고 온 의료진들에게 나가라고 지시했다. 조용해진 뒤에야 유선우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 일은 내 뜻이고 은
신혼부부의 열정이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을 빨갛게 태웠다.피로연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한 특별한 손님이 조용히 다녀갔는데 다름이 아니라 그 여자가 자기를 보고 슬퍼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그러나 원수는 항상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 그들은 생각지도 못하게 복도에서 마주쳤다.성현준은 유이안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이안은 강윤을 데리고 화장실에 왔지만 어린아이를 혼자 두지 못해서 작은딸도 데려왔다. 아마 강원영을 위해 낳은 딸인데 오누이 쌍둥이다. 쌍둥이 이름은 강온과 강민이다.강윤은 동생들을 아주 좋아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먼저 동생들과 한참을 놀았고 저녁에도 여동생을 방으로 ‘훔쳐 와’ 인형처럼 꼭 끌어안고 잤다.처음에 유이안은 많이 걱정했지만 동생이 생긴 후 강윤이 더 밝아지자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 평소에 강윤과 여동생을 데리고 나올 때가 많았고 아들은 강원영이 데리고 다녔다.이때 그들 부부가 막 돌아가려던 참에 지인을 만났다.성현준이 출국한 후 그들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그녀가 출산할 때 그가 돌아왔지만 병원에는 가지 않고 그저 값비싼 선물을 보냈다.유이안의 마음이 자기한테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원영은 이 부분에 있어 아량이 넓었다.갑자기 만났으나 서로 말이 없었다. 결국 성현준이 몸을 쪼그리고 앉아 강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저씨 기억나?”기억이 좋은 강윤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쏜살같이 유이안한테 다가가 그녀의 다리를 꽉 껴안았다.성현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이안은 강윤의 작은 얼굴을 만지며 저도 모르게 슬퍼졌다.성현준은 명의상 강윤의 아버지고 또 별장도 선물했었다.어린 강윤은 마음을 진정시켰는지 유이안을 놓고 천천히 성현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줬다.성현준은 잠긴 목소리로 유이안에게 물었다.“잘 지냈어? 아이들은 어때? 그 사람과 사이는 좋아?”“다 좋아요.”유이안도 목소리가 잠기는 것 같다. 이 나이가 되어서 사실 따질것도 없고 과거는 과거일 뿐 연연하지 않았다.유이안도 성현준에게 물었다.“당신
아침의 첫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있다.오늘은 조씨 가문이 잔치를 치르는 날이다.조은혁 부부의 제일 어린 딸이 마침내 시집갔고 그것도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남자에게 시집갔다. 전통 혼례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진석이 보았던 그 여느 여자보다도 예뻤다.진석의 부모님도 쉴 틈이 없이 바빴다. 그들은 비록 큰 부자가 아니지만 진석의 아버지인 진대용은 한 가문을 이끄는 어르신으로서 능력이 대단했다. 팔방미인처럼 하객을 잘 접대했을 뿐만 아니라 뜻밖에도 유선우와도 잘 어울렸다.조은혁은 의견이 많았다. 유선우는 사돈도 없는가?유선우는 그와 따지지 않고 아내 조은서와 함께 결혼식 진행을 도왔다. 전통 결혼은 현대식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다행히 양측에 일손이 충분해서 허둥거리지 않아도 된다. 낮에는 떠들썩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저녁에는 B시의 제일 럭시리한 호텔의 가장 큰 홀에 200상을 넘게 안배했다. 조씨와 유씨의 양가 친척과 진석의 협력 파트너를 포함해 모두 축하해주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이 결혼식은 올해 제일 거대한 행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규모가 컸고 앞으로 3년 동안 이렇게 성대한 결혼식이 없을 수 있다.B시의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진석은 조은희와 손잡고 곁에 술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을 8명이나 데리고 하객에게 술을 권했다. 200상에 달하는 손님을 한 분이라도 빠뜨리지 않기 위해 진석은 필사적으로 마셨고 8명의 술막이 친구들도 충분히 역할을 발휘했다. 그러나 진석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술을 권할 때 술에 취해 쓰러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에는 학생의 본보기가 되어야 하므로 자제하고 있던 이 선생님들은 진석이 결혼하고 조은희도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다 보니 10억을 위해서라도 신랑, 신부를 열정적으로 대했다. 그 결과 진석은 거의 취했고 조진범과 조우현이 대신 막아줘서야 겨우 룸으로 끌려갔다.조은혁은 잠자코 진석을 지켜보다가 놀려줬다.“괜찮겠어? 혹시 밀랍으로 만든 총대여서 쓸모없는 거 아니지?”이때 진대용이 감쪽같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다.유이준과 진은영은 진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집에 돌아가자마자 진별이은 숙제하러 갔고 진은영은 잠든 막내아들을 보러 갔다. 막내아들은 돌보고 있는 가정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조용히 말했다. “오셨어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자고 있었어요. 엄청 착해요.”진은영은 가볍게 웃으며 아줌마에게 내려가 쉬라고 했다.문이 받히고 그녀는 고개를 숙여 막내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는 이미 8개월이 지났고 용모는 유이준을 완전히 물려받았고 거의 판에 박힌 것 같았다. 심지어 진별이 조차도 때때로 동생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이건 정말 하느님의 걸작이야!”유이준이 물었다.“하느님의 걸작이 뭔지 알아?”진별이가 답했다.“남편의 용모, 아내의 영광!”진은영은 유이준에게 속삭였다.“모델 렌위이를 보고 저러는 거야.”유이준은 즉시 그에게 예쁘냐고 물었다.진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이준은 침실 문을 살짝 열고 들어왔다. 남자는 아내의 뒤로 와서 가는 허리를 가볍게 껴안고 막내아들의 잠든 얼굴을 함께 보았다. 진은영은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진별이 과제는 보았어?”유이준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고 말했다.“봤어, 열 개 중 아홉 개가 틀렸어.”진은영은 참지 못하고 가서 직접 확인하려 하였다. 유이준이 그녀를 가로막으며 웃었다.“진별이가 실수하는 것을 어떨 땐 넘길 줄도 알아야 해! 은영, 우리 아이는 그렇게 빠듯하게 살 필요가 없어. 봐, 조민희와 조은희도 잘 살고 있잖아.”진은영은 망설였다.하지만 진별이는 진은영의 아이였고 그녀는 어려서부터 강했다.유이준은 또 진안영을 두고 말했다.“안영도 잘 살고 있잖아. 그녀는 어렸을 때 분명 문제집을 제일 잘 푸는 사람은 아니었을 거야.”진은영이 물었다.“왜 또 안영을 끌어들이는 거야?”유이준은 답했다.“내가 주변 사람들을 예로 들어야 더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 안영도 진범을 찾았고 지금 딱 쥐고 있잖아.”진은영이 입을 열었다.“고생은 한
2층.조은희는 내일 입을 드레스를 입어보고 있었다. 진석이 그토록 원하는 드레스였다.하얀 눈꽃을 두른 듯한 드레스는 국내 최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쳐 아주 세심하고도 화려한 기품을 뿜고 있었다. 그녀가 쓰고 있는 보석이 박힌 티아라는 수억 단위의 거액으로 마련한 것이었다.거울 속의 여인은 꽃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고 조은희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혼잣말했다.“자기 애호 때문에 정말 돈을 아끼지 않았네.”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다행이지 이 어린 딸은 정말 말문이 막혔다. 박연희는 어머니로서 머리를 툭툭 쳤다.그녀는 조민희가 시집갈 때처럼 두둑한 혼수를 주었고 조은희도 마찬가지로 조 씨 그룹의 주식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진석이 번 돈은 그녀와 그의 작은 취미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했다.한편, 조민희는 동생을 도와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고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다. 조은희는 집안의 막냇동생이었고 이제 시집을 가려고 한다.조은희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언니, 언제 귀국해서 정착할 거예요? 평소에 일 년에 한두 번 볼 수밖에 없잖아요.”조민희는 그녀의 얼굴을 비비며 답했다.“몇 년만 더!”조은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며 조민희의 품에 안겼고 조민희는 항상 인내심을 가지며 그녀를 아끼며 함께 해주었다.박연희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나와 너의 아버지도 너와 설진이 빨리 귀국해서 정착하기를 바라고 있어.”조민희는 말했다.“설진의 사업은 대부분 밖에 있고, 돌아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아이들도 그곳 생활에 익숙합니다.”말이 끝나자, 김설진이 밖에서 걸어들어왔다.그는 박연희를 먼저 불렀고 돈봉투를 조은희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돈봉투를 받으며 달콤한 말투로 형부라고 불렀고 김설진은 그제야 아내에게 말했다.“김욱의 다리가 찰과상을 입어서 아래층에서 울고 있어.”비록 작은 사나이이자 울보이지만, 김설진은 그런 아이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있었다.조민희가 낳은 아이였다!조민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남
김설진은 말했다.“너랑 나 다 아프잖아.”조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욱은 한창 활동적인 나이지만 아버지가 엄격한 교육 아래 매우 예의 바르고 규칙적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김욱은 조우현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둘째 외삼촌.”조우현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자신의 아이보다 더 튼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유설이 너무 약한 탓도 있었다. 그는 돌아가 조우찬에게 영양을 공급해야겠다고 생각했다.검은색 롤스로이스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저녁이 되기 전에 사람들을 조 씨 저택으로 데려 보냈다.조씨 집안의 아들들은 모두 이사를 나갔지만, 조은희만이 여전히 집에 남아있었다. 조민희가 모처럼 돌아왔어도 그녀는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조은희는 며칠 묵은 후에 하와이에 가서 친부모님께 향을 피울 계획이었다.차는 저택으로 들어섰고 집안의 불빛은 휘황찬란했다.정원의 주차 공간에는 유명한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고 집안의 어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조은희의 내일 결혼식을 위해 남자들은 한 곳에서 이야기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2층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김욱은 마당에 남아 조우진, 조우찬과 함께 놀았다.작은 공 하나가 남자아이의 발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노는 과정에 김욱이 실수로 넘어졌다.사내 녀석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와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조진범은 마침 복도에 서 있었고 그는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겨울이라 검은 코트를 입은 그의 몸집은 더욱 방대해 보였고 그의 성숙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작은 아이를 안아 가볍게 품에 안았고 그의 눈매는 매우 부드러웠다.“어디가 아픈지 외삼촌에게 말해?”녀석은 희고 작은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글썽였다.“무릎이 아파요.”말을 마치자, 그는 외삼촌의 품에 안겨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조진범은 의자에 가서 앉아 한 손으로 꼬마를 껴안고 있었다. 조우찬과 조우진도 다가왔고 조우진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아빠, 우리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저녁, 조은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녀는 주차장에서 진석의 차를 보았지만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침, 학교 상사가 지나가며 말을 걸었다.“진석이 학교에 와 강당에서 기증식을 하고 있어. 가서 보고 이따가 같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걸. 이 추운 날 뜨거운 훠궈를 같이 먹으면 얼마나 좋아.”조은희는 장난스레 답했다.“삶을 즐기실 줄 아네요.”상사는 손에 든 요리를 들며 답했다.“이봐, 네 사모님이 아침 일찍 집에 가서 손자를 위해 밥을 해라고 재촉하셨어.”조은희는 가볍게 웃으며 그를 배웅했다.하늘에는 구름이 주황빛을 띠며 금빛 테두리를 두르고 있다.조은희는 뜨거운 물컵을 들고 강당 쪽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몇몇 학생들이 그녀를 향해 재잘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장난스럽게 그녀를 진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조 선생님이라고 해.”학생들은 답했다.“진 사모님! 진 선생님은 강당에 계십니다.”지나가는 모든 사람은 그녀에게 진석이 강당에 있다고 말했고 조은희는 속으로 생각했다.[진석의 구십억이 가치가 있긴 하네. 학교 유명인이 다 됐어.]그녀는 자작나무 숲을 가로질러 강당 계단을 올라갔고 멀리서 진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연설하고 있었고 아주 틀에 박힌 듯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좋았다.강당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정면으로 앉아 집중하고 있다.진석은 남자의 꿈이자 여자의 꿈이었고 조은희의 모든 청춘과 미래였다. 그녀는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조용히 그녀의 남편이 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약 5분 후, 진석이 강연을 끝내고 그도 그녀를 보았다.조은희는 흰색 코트를 입고 뜨거운 물컵을 들고 그가 가르치던 곳에 서 있다. 그녀는 현재 이곳의 선생님이었다.진석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조은희가 그에 대한 사랑은 그에 비해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그녀는 젊고 활발했지만, 아주 용감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하늘이 진석에게 맞춤 제작한 인생의 동반자였다. 조은희가 있으니, 그는 이번 생에 여한이 없을 것
조은희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진석은 키가 컸고 그런 그가 서재에 서 있자, 그녀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걸어와 고양이처럼 우는 어린 소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울지 않는다면서요.”조은희는 그의 어깨 위에 엎드려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야?”“좀 감동하지 않았나요?”그녀는 그를 나긋하게 때렸다.진석은 술에 취해 나지막이 웃었고 그녀가 감정을 내뱉도록 내버려두었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도 쓰라렸다.지난 5년 동안 그는 사실 방황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은서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만약 그때가 오면 그는 무엇을 가지고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부탁할까?가난한 집 부잣집 딸의 사랑은 소설 속에만 있고 현실은 참혹했다.조은희는 개의치 않지만, 그는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지금, 그들은 서재에서 서로를 끌어안았고, 그들은 곧 결혼할 것이었다.창밖으로 가랑눈이 흩날리고, 그는 눈을 밟고 돌아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진석은 어린 소녀가 그의 목을 껴안고 애교를 부릴 수 있도록 한 손으로 코트를 벗고 소파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감정에 그치지 않게 서로를 사랑했지만, 한 발짝도 그 선을 넘지 않았다.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그녀는 아주 따가웠고 힘줄 또한 뜨겁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물었다.“그녀가 준 것을 왜 진작 주지 않았어?”“어제 받았어요.”“편지를 봤는데 잘 쓴 것 같아서 보여드리려고 했어요.”……조은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그를 껴안고 소리 없이 애교를 부렸다. 잠시 후 그의 턱에 뽀뽀를 해주었고 순간 진석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그는 조은혁 부부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조은희를 낳은 덕분에 그는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볼 수 있었다.그는 엿처럼 달게 여겼다.문밖에서 아주머니가 문을 두드렸다.“선생님 아가씨, 식
진석 그리고 조은희의 혼사는 순리대로 이루어졌고 아무도 발버둥 치지 않았다.가끔, 조은희는 이런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과정이 너무 순조로운 나머지 몇 년간의 헤어짐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마치 항상 붙어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회한 후에도 그는 그녀에게 해외 생활에 대해 더 묻지 않고 여전히 예전처럼 그녀를 대했다.그녀는 예전처럼 어리지 않았지만, 진석은 그녀를 20세 소녀로 여겼다. 조은희는 그가 18세 소녀를 더욱 좋아할 거라 마음속으로 생각하곤 했다.세월은 야속하게도 흘러만 갔지, 되돌아오진 않았다.진석은 그냥 미소를 지을 뿐.겨울, 낮이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고 조은희는 퇴근 후 진석의 별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진석은 아직 퇴근하지 않았고 도우미 두 아주머니를 집으로 불러 이미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조은희가 차에서 내릴 때 마침 진석의 전화를 받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언제 돌아와?”전화 한편의 진석은 손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일곱 시쯤 집에 도착해요.”조은희는 소녀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진석은 그녀에게 서재로 가서 서류를 가져오라고 지시했고 조은희는 일부러 작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내가 너의 직원도 아니고 월급도 받지 않는데 내가 왜.”진석이 답했다.“가족 수당을 받잖아요.”조은희는 핸드폰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준 후 차에서 내렸다.집안의 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잇달아 멈추어 인사를 하였다.“아가씨가 돌아왔나요, 진 선생님은 몇 시에 돌아오죠?””일곱 시요, 바쁜 사람이잖아요.”하인들은 모두 그녀를 좋아했고 배가 고플가 먼저 과일 한 접시를 씻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조은희는 과일 접시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고 잠시 후 진석의 노트북에 무슨 영화가 있는지 찾아보려 하였다. 영화 한 편을 보며 진석을 기다리기로 하였다.진석의 서재는 단순하고 섬세하며 고급 원목 가구는 반짝반짝 광을 내고 있었다.조은희는 코트를 벗고 가죽 의자에 놓은 후 서랍을 열어 서류를 찾
조은희는 진석을 빤히 바라보았다.진석은 낮게 웃으며 외투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블랙 카드를 한 장 꺼내 조은희의 손바닥 위에 가만히 올려놓았다.“내 카드야. 한도가 없으니까 마음껏 써.”조은희는 놀란 듯 작은 목소리로 외쳤다.“진석 씨, 정말 통 크시네요! 진 선생님, 감사합니다.”진석이 장난스럽게 그녀를 가볍게 툭 치자 조은희는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웃었다.“스폰서 오빠, 감사합니다.”진석은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녀의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강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예전에는 학문적이고 온화했던 그의 이미지가 지금은 사업가다운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조은희의 장난스러운 태도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맞춤 후 그녀의 귀에 낮고 거친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 조은희는 그 말을 듣고 묘하게 떨리는 감정을 느꼈다...진석은 그녀의 코끝을 장난스럽게 살짝 물었다.“넌 은근히 독특한 취향이네.”조은희는 더 이상 그를 자극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운전하라고 했다. 진석은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천천히 시선을 돌려 차를 출발시켰다...둘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석의 어머니는 고향 요리로 한 상을 가득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진석이 조은희가 좋아한다고 말해준 요리도 포함되어 있었다.진석의 아버지는 붉고 싱싱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 가지런히 접시에 놓고 있었다.진석의 차가 멈추자 그는 조은희를 데리고 내렸다. 진석의 부모는 반갑게 나와서 두 사람을 맞았다.아버지는 조은희가 가져온 선물을 받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요.”어머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감기 조심하라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조은희의 피부는 밝고 투명하게 하얀 편이라 마치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진석의 부모 눈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속으로 진석과 조은희가 아이를 낳는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정말 예쁘고 훌륭한 아이가 태어날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