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은 윤유성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그런 미묘한 감정을 느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여자 화장실? 한 번 봐봐요. 이게 여자 화장실이에요?”백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나가야 할 사람은 당신이에요. 아가씨.”서현의 하얀 얼굴은 더욱 빨개졌다.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서 떠나려 했지만 백신우에게 덥석 잡혀 격렬하게 뒤로 당겨졌다. 서현은 백신우의 단단한 가슴에 부딪혀 머리가 어지러웠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백신우는 서현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매력적이게 웃었다.“가려고요?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아요?”“고, 고마워요.”서현은 눈빛을 반짝이며 호흡이 흐트러졌다.“누구 닮았다는 말을 들은 적 없어요?”백신우의 따뜻한 콧바람이 서현의 붉어진 코끝에 닿았고, 차가운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서현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백신우에게 꽉 잡혔다.“아니요. 전 누구와도 닮지 않았어요. 저는 저예요.”왠지 모르게 소심하고 열등감이 느껴졌다. 지신이 마치 구차한 복제품인 것 같았다. 이 얼굴은 윤유성만 좋아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얼굴의 원래 주인, 구씨 가문 아가씨 아람을 좋아한다.“네, 그럼 알려줘요. 누구세요?”백신우는 의아한 눈빛으로 서현의 당황한 얼굴을 바라보았다.“이름이 뭐예요?”“서...”말이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이 울렸다. 서현이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어 보니 사장님이라는 글을 보고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다. 힘을 다해 백신우의 품에서 벗어나 넋이 나간 듯 밖으로 나갔다.백신우는 날카로운 눈썹을 올렸다. 호기심이 솟구쳐 올라 서현을 따라갔다. 서현은 당당하게 정문으로 나갈 용기가 없어 뒷문으로 황급히 나갔다. 얼마 가지 않아 멀지 않는 곳에서 눈부신 불빛이 서현의 얼굴을 비추었다. 눈부신 빛 때문에 눈을 뜨지 못해 팔로 눈을 가렸다. 이때, 경호원 한 명이 서현을 향해 다가갔다.“서현 씨, 사장님이 기다리고 있어요. 얼른 가세요.”“네.”이 순간 서현은 술이 깼다. 정신을 차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검은 리
“죄, 죄송해요.”서현의 얼굴이 빨갛게 부어오르며 의식이 흐려졌다.“내가 말했지. 이 얼굴로 성주에 와도 천세당에만 있을 수 있어. 넌 내가 정성스럽게 만든 필살기야. 내 소유물이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돼. 과시할 자격도 없고 무모하게 행동할 자본도 없어!”윤유성의 눈은 어둠으로 가득 찼다. 서현의 목을 조른 손은 계속 힘을 키워서 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우 비서는 서현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걸 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윤 사장님, 서현 씨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해요. 오랜 세월 충성을 다한 것을 봐서 한 번만 살려주세요. 명령을 억이고 돌아온 건 잘못이지만, 사장님을 만나기 위해 그런 거잖아요. 모두 사장님을 위한 것이에요. 제발 한 번만 봐줘요!”윤유성은 예술 작품 같은 얼굴을 차갑게 보며 숨을 쉬더니 풀어주었다. 서현은 땀에 흠뻑 젖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헐떡이며 눈물을 흘리며 윤유성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로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평을 하지 않았다. 단지 윤유성을 화나게 만든 자신의 탓을 했다.“죄송해요, 윤 사장님. 정말 죄송해요.”서현은 고통스럽게 목을 가린 채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윤유성은 서현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천천히 손을 닦은 다음 손수건을 창밖으로 던지며 극도로 역겨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이 얼굴, 돌아가서 보양하려면 많은 돈을 써야겠어. 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목을 졸라 죽였을 거야.”서현은 가슴이 아팠고 온몸을 떨었다.“고마워요, 고마워요, 구아람 씨.”갑자기 윤유성은 안경을 밀며 나지막하게 물었다.“술직에서 어떤 남자가 널 만졌어?”“아, 아니에요. 제가 실수로 부딪혔어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주제넘는 행동을 했어요.”서현은 가슴이 조여오며 모든 문제를 자기 탓을 했다. 윤유성은 서현을 차갑게 바라보며 우 비서에게 말했다.“조사해. 그 남자의 신분, 배경 다 조사해.”“네, 사장님.”서현은 무릎에 놓던 두 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한동안 문별은 충격과 굴욕감에 입을 꽉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중 한 외국인이 구진을 향해 F 국어로 말했다.“누구야, 비켜, 너와 상관없어!”“내가 보지 못했다면 상관없지만, 봤으니 상관있어.”구진은 미소를 지으며 능숙한 F 국어로 답했다.‘헐, 이 남자가 F 국어를 이렇게 잘해?’문별은 깜짝 놀랐다.‘사부님의 형들은 다 괴물이야? 잘생기긴커녕, 이렇게 훌륭해? 그나저나, 구진이 F 국어를 하는 모습이 조금 섹시하네.’문별의 귀끝이 뜨거워졌다.“넌 누구야?”다른 한 사람은 Y 국어로 말했다. 표정을 점점 찡그렸다.“껴져!”“네 아버지야.”구진도 Y 국어로 대답했다. 준수한 얼굴이 차가워졌다.“선 넘지 마, 당장 놔줘!”“경호원!”남자가 소리를 지르자 복도 반대편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몇 명이 달려왔다. 이 두 사람의 정체는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밖에서 지켜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구진은 무서워하지 않았다. 눈썹을 찌푸리고 경계하며 주위를 살폈다. 어렸을 때부터 구만복은 전문 격투기 사범을 고욕해 네 아들과 아람에게 목숨을 지키는 법을 배워주었다. 경호원이 많아도 24시간 지켜줄 수 없다. 위기 상황에서는 호신술로 자신의 안전을 지켜야 했다. 하지만 구진은 오랫동안 싸우지 않아 몸이 서툴러졌다. 이 사람들을 상대로 아직 완전한 승리를 거둘 자신이 없었다.“구진, 날 내버려둬!”문별은 자신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갑자기 구진의 안전을 걱정하며 소리를 질렀다.“먼저 가, 먼저 여기서 나가!”“그래도 같이 나가야 해, 걱정하게 만드네.”구진은 주먹을 쥐고 문별을 잡고 있는 두 외국인을 향해 돌진했다. 이때 모든 경호원들도 달려들었다.“안 돼!”구진이 순식간에 표적이 된 것을 본 문별은 겁에 질려 얼굴이 창백해졌고 심장이 뚫고 나올 것 같았다. 구진은 가슴이 떨렸지만, 문별을 구하기 위해 주먹을 더욱 굳게 움켜쥐었다. 평생 동안 아람을 제외하고는 여자를 위해 목숨을 건 적은 없었다.구진은 민첩하고 속도가
쿵-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아!”뒤에서 비참한 비명 소리가 들렸고, 구진을 공격하려던 경호원은 갑자기 날아온 쓰레기통에 머리를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 장면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놀랍게도 그들은 무기를 거두고 아무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구진! 왜 이렇게 반응이 느려!”구진은 격렬하게 돌아보니 주머니에 손을 여유롭게 집어놓고 고개를 흔들거리며 다가오는 백신우를 보았다. 백신우가 차버린 쓰레기통에 깜짝 놀랐다. 문별은 두 손으로 구진의 슈트 옷깃을 잡고 충혈된 눈을 천천히 뜨며 창백한 얼굴로 구진을 깊게 바라보았다.“괜, 괜찮아?”구진은 눈을 내리깔고 문별의 뜨거운 시선을 보자 가슴이 두근거리더니 드럼처럼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괜찮아. 여기서 나가자.”“나간다고? 우리 사장님을 때렸는데, 아무도 여기서 못 나가!”경호원들이 다시 그들을 에워쌌다.“야, 야.”백신우는 무심코 훑어보았다.“상확 파악을 해. 우리 형수님이 두 외국인에게 성희롱을 당했는데, 때린 것도 가벼운 거야. 머리를 찢어 쓰레기처럼 차버려도 과하지 않아. 무슨 할 말이 있어?”‘형, 형수?’문별은 눈을 점점 크게 떴다. 부끄러워 입술을 꽉 깨물고 뺨도 붉어졌어. 구진도 멍해졌지만 잠시 생각했다.‘형수님은 그렇다 쳐도, 신우가 돌려서 날 형이라고 부른 거잖아? 대박이네!’“구진, 먼저 형수를 데리고 가, 내가 수습할게.”백신우는 눈빛이 반짝이며 목을 흔들고 손을 꺾으며 싸움을 할 준비를 했다. 성주로 돌아온 며칠 동안 너무 한가했다. 좋아하는 여가 활동을 마주하자 흥분했다.“네가 할 수 있어?”구진의 말투는 의심에 가득 차 있었다.“남자는 못한다고 할 수 없어.”백신우는 턱을 살짝 치켜들고 휘파람을 불며 구진의 품에서 떨고 있는 문별을 장난스럽게 바라보았다.“못 믿겠으면 네가 남아, 내가 형수님을 데리고 나갈게.”“안녕!”구진은 아무 말도 없이 문별을 안고 달렸다.“하, 여자가 생기니 인간성이 사라졌네. 돌아가서 큰형과 아람한테 말할 거야
“엄마의 맏이들은 네쌍둥이야. 그중 난 둘째였어. 난 큰형을 닮았고 셋째는 넷째와 닮았다. 둘 다 엄마를 닮았어.”구진은 평소 사람들한테 가족 얘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문별이 궁금해하자 대답해 주고 싶었다. 마침 너무 겁에 질린 문별에게 이런 식으로 주의를 돌려주고 싶었다.“아, 그렇다면 우리 사부님은 반은 어머니를 닮고 반은 구 회장님을 닮았네.”문별의 눈에 빛이 나며 감탄했다.“사부님의 얼굴이 대단해. 부모님의 좋은 부분만 닮았어.”구진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울렸다. 갑자기 문별이 아람보다 더 마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예쁜 직각 어깨에 튀어나온 뼈는 옷걸이처럼 보이게 했지만, 살이 있어야 할 곳은 다 있고 전혀 모호하지 않았다.구진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문별의 어깨에 놓인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방금 널 괴롭힌 두 사람은 누구야? 왜 같이 있어?”문별은 갑자기 어깨를 떨며 몸을 뒤로 피했다. 눈도 고의적으로 구진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피했다.“비즈니스에서 만난 사람이야. 많이 만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무례한 사람일 줄은 몰랐어.”“비즈니스? 아람이 패션 디자이너라고 했었는데, 보통 스튜디오에 있으면서 그림을 그리고 재봉틀이나 밟지 않아? 이런 자리에 굳이 어울릴 필요가 있어?”구진의 말투는 조금 급했다.문별은 냉정하게 눈썹을 치켜 올렸다.“허, 구 도련님의 눈에 우리 디자이너들은 그저 재봉틀을 밟는 사람이야? 우리 브랜드를 홍보하고 확장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그래서 외국인 두 명과 함께 술을 취할 정도로 마셔? 그들의 나쁜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어?”구진은 더욱 화가 나서 눈시울을 붉히며 문별을 쳐다보았다.“여자아이가 왜 경계심도 없어? 아니면 브랜드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어?”“응, 의지할 사람도 없는데, 나 자신 만 의지해야지.”문별의 마음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아예 얼굴을 돌리고 구진을 보지 않았다. 구진은 무관심한 태도를 취한 문별을 보자
한편, 백신우는 이미 두 외국인을 해결했다. 나약한 경호원들도 두들겨 맞은 채 룸 화장실에 채워 넣고 문을 잠갔다. 그리고 룸 밖에 방해 금지 표지판을 걸었다. 그들이 너무 나약해 몸풀기도 부족하다. 하지만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아 빠르게 해결했다. 결국 지금은 해외가 아닌 성주에 있어 조심해야 했다. 백신우의 신분으로 겸손하게 있는 게 좋았다.백신우는 클럽을 떠나자 구진의 전화를 받았다.“다 해결했어. 마음 편하게 여자친구와 데이트해. 그들이 찾아가지 않을 거야.”백신우는 지루한 듯 하품을 하며 말했다.“여자 친구가 아니야, 헛소리하지 마!”구진은 분명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징징거리는 말투로 말했다.“쯧, 내가 멍청한 줄 알아? 항상 차분하던 놈이 여자를 구했다고? 그 여자도 네 이름을 알고, 네 품에 안겼는데, 분명 무슨 사이야.”백신우는 휘파람을 불었다.“왜 인정하지 않아? 사랑에 빠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네가 40세까지 모태솔로가 되고 싶어? 그럼 노총각이라 불러야지!”“신우야, 부탁 하나만 들어줘.”구진은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오늘 밤 문별을 괴롭힌 두 외국인을 알아봐 줘. 지금 절반밖에 해결해서, 며칠 뒤에도 문별을 노릴까 봐 두려워.”“나도 그 생각이 들어서 조사했어. 사실 이 두 사람은 성주에서 큰 인물이 아니야. 외국 건설 회사의 고위층이야.”“건설 회사?”“그래, 네 여자친구가 꽤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네.”백신우는 장난스럽게 웃었다.“오늘 밤 돌아가서 아람과 수다나 떨어야겠어!”“아람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면 오늘 밤의 사건을 한 마디도 말하지 마.”구진은 나지막하게 말했다.“문별은 아람의 가장 친한 친구야. 네가 말하면 아람이 걱정돼서 잠도 잘 수 없을 거야.”백신우는 깜짝 놀랐다.“대박, 겹사돈이야!”“꺼져, 끊을게!”말을 마치자 구진은 전화를 끊었다.백신우는 피식 웃더니 품에서 손바닥 크기의 노트북을 꺼냈다. 이 최첨단 하이테크는 고위 요원들에게 하나씩 있다. 국내에서 거의 구할
문별은 이 말을 듣자 마음이 편해졌다. 수년간 함께 지낸 아람은 오랫동안 역경 속에서 희망의 빛을 주는 사람뿐만 아니다. 이제는 친구고, 가족이다. 그래서 아람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고,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이때, 문별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자 안색이 어두워지며 핸드폰을 힘껏 쥐었다.구진은 문별의 기분이 다운된 것을 눈치채고 일부러 방을 나가 문을 닫았다. 하지만 바로 떠나지 않고 방안을 엿듣고 있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는 걸 알지만, 왠지 모르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클럽에서 돌아오는 내내 문별은 구진의 질문을 솔직하게 대답해 주지 않은 것 같았다. 구진은 오랫동안 검사로 일해왔고 이미 횃불 같은 눈이 있어 문별의 속마음을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었다.방 안에서 문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아버지.”“오늘 밤, 어떻게 된 거야?”전화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문별의 아버지인 문사훈의 목소리에는 온도도 감정도 없이 분노만 가득했다.“무슨 일이 있어서 술자리가 일찍 끝났어요.”문별은 나지막하게 말했다.“일? 뭐가 중요한 일인지도 구분 못해?”이때 한 여자의 비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상훈의 부인 표지애였다.“허, 내가 말했잖아. 얌전히 도와주겠어? 당신 딸이 집안을 망치지 않는 것도 다행이야.”문별은 주먹을 꽉 쥐고 얼굴이 종이처럼 창백해졌다.사람들이 모르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심지어 아람조차도 모르고 있다. 문별은 문씨 그룹 회장님의 사생아다. 그저 문씨 가문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문별은 열여섯 살 때 문상훈의 친구에게 강간을 당했다. 분노한 문별의 어머니는 그 남자를 수십 차례 찔러 즉사시켰다. 문씨 가문은 스캔들이 두려워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 문별의 어머니의 소송을 했다. 문별 어머니는 정신 병원에 수감되었지만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문씨 가문은 수년 동안 이 약점으로 문별을 협박했다. 현재 디자인 업계에서 자리를 잡고 있더라도 문씨 가문의 말 한마디면 여전히 돌아가서 일
“오늘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내일도 그들을 만나러 가지 않을 거예요. 오늘 밤 하마터면...”문별은 여기까지 얘기하자 목이 메었다.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한참 지나자 문상훈은 태도를 바꿨다. 말투는 조금 온화해졌지만 더 상처를 주는 말이었다.“별아, 네가 곤란한 걸 알아. 하지만 문씨 가문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 넌 문씨 가문의 딸로서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하는 것도 맞잖아? 네 동생도 요즘 북성 손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과 결혼할 예정이야. 문정이도 우리 가족을 위해 많은 희생을 했어!”문별은 순간 눈시울이 불어지고 또박또박 말했다.“그 두 남자가, 저에게 성희롱을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래요?”문상훈은 말문이 막혔다.“다 아시면서 만나라고 했어요? 이렇게 딸을 불덩이로 밀어 놓는 거예요?”문별은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을 글썽이며 목이 터져라 울부짖었다. 문밖에 서 있는 구진은 다른 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이 말은 또렷하게 들렸다. 전에 들은 말과 결합하면 전체 이야기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자 가슴이 찢어진 듯 아팠다. 주먹은 무쇠처럼 굳게 쥐어졌으며, 격렬한 분노로 가득 찼다.‘무슨 악마 가족이야! 친 부모가 어떻게 딸에게 이런 일을 시켜?’얼마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방 안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구진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숨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문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구진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문을 열었다.“문별아?”구진은 눈을 부릅뜨며 깜짝 놀랐다. 흰 깃털처럼 야위고 안색이 창백한 문별은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구진은 서둘러 다가가서 확인했다. 곧 문별이 심정지 상태라는 것을 알고 순식간에 공포가 사지에 퍼졌다.“버텨, 문별아!”구진은 심폐소생술을 하려고 양손으로 문별의 가슴을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문별아, 문별아.”구진은 문별의 창백한 입술을 보자 마음을 다잡고 깊게 입맞춤을 했다. 그들의 입술은 서로 단단히 밀착되어 있고 문별의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