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회장의 따뜻한 정이 아닌 불화 반목의 주선으로 소개팅이 부랴부랴 일정에 올랐다.구아람은 욕실에서 메이크업을 하며 준비하고 있고 임수해는 밖에 서서 아이패드를 들고 오늘의 스케줄을 보고하고 있다.“점심 11시 30분, H 그룹 장 사장님과 점심 식사. 오후 1시 30분, S 그룹 오 회장님의 장남과 애프터눈 티. 오후 3시 30분, Z 그룹 유 회장님의 차남과 뮤지컬 관람…….”소개팅은 두 시간에 한 번씩 있다. 세상 그 누구도 이 정도로 바쁘지 않을 거다!한참 지나서 욕실의 문이 열렸다.정성스럽게 차려입은 구아람이 임수해의 앞에 나타나자,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아가씨, 너무 심하신 건 아닙니까!”아가씨는 닭장 모양의 폭탄 머리 가발을 쓰고 얼굴에 곰보 더미를 그렸고 코밑은 수염이 난 것처럼 검었다. 왼손은 문틀을 짚고 오른손은 코딱지를 파는 척하는 모양은 그야말로 여화와 똑같았다.“이게 심하다고? 난 입에 칼자국 두 개를 더 붙이고 싶었는데.”구아람은 빙그레 웃으며 검은 앞니를 드러내며 임수해를 향해 손짓을 했다.“손님, 어서 오세요. 무조건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거예요.”수석 비서인 임수해는 일할 땐 늘 엄숙한데, 이번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배꼽을 잡으며 웃고 있었다.톡 튀는 성격의 소유자는 역시 구아람뿐이다.구아람은 성이 차지 않아 핸드폰을 들고 셀카를 한 장 찍어 오빠들과의 단톡방에 올렸다.순간, 단톡방의 분위기는 물고기가 뜨거운 기름 솥에 들어간 것처럼 달아올랐다.[구윤: 누구세요?][구아람: 맞춰보세요, 오빠.][백신우: 푸하하하하하! 너무 웃겨! 아람아 참 대단해!][구진: 헉! 아침부터 놀라서 하마터면 혼이 빠질 뻔했네! 바지에 실수할 뻔했어!][셋째 오빠: 아람아, 아무리 주성치 배우님을 모방하고 싶어도 캐릭터를 고려해야지…… 왜 여화를 따라 하는 거야? 여연을 따라 해야지!] [백신우: 구향을 따라 해! 내가 당백호를 할게! 아람이와 꼭 붙어있을 거야!]그러자 넷째 오빠는 곰 두 마리를 껴 안
‘분장도 나의 매력을 가릴 수 없는 건가, 아니면 이놈들이 구만복의 데릴사위가 되고 싶은 건가, 내가 봐도 토할 것 같은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밥이 넘어가는 거지?’‘권력의 힘은 참 대단하네, 이것을 위해 장님인 척하다니.’‘흥, 하지만 난 여지를 남겨 두었지.’첫 번째 맞선 상대와 같이 식사를 하던 중, 구아람은 솜씨를 자랑하겠다고 상대방의 맥을 짚어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제 서른 살밖에 안 됐으면서 70세의 몸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그는 화가 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즉시 데이트를 끝내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그리고 두 번째 소개팅을 할 때, 구아람은 계속 맞선 상대의 뒤를 빤히 쳐다보고 있어 남자를 소름 돋게 했다.“구아람 씨, 무엇을 보고 있어요?”“도련님, 꼬마 아이가 계속 뒤에 서서 당신을 쳐다보고 있어요, 같이 식사하자고 부르지 않을 거예요?”구아람의 말투는 점점 음산해졌다.“너무…… 불상해 보이네요.”그러자 그는 차도 마시지 못한 채 겁에 질려 도망을 쳤다.세 번째 소개팅을 할 때에는 뮤지컬을 보고 있었기에 구아람은 그와 많은 교류를 하지 않아 화기애애해 보였다.마침내 뮤지컬이 끝나자, 유 도련님은 공손하게 그녀에게 물었다.“구아람 씨, 오늘 너무 재밌었어요. 함께 저녁식사를 하실래요?”“좋아요.”그러자 구아람은 빙그레 웃으며 자신의 캔버스 가방을 멨다.유 도련님이 그녀와 뮤지컬을 보러 올 때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자세히 보니 가방에는 큰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해문시 정신치료센터 기념.’“도련님, 왜 안 가세요?”구아람은 순진하게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겁먹은 유 도련님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연신 뒤로 물러섰다.“저기…… 갑자기 회의가 있다는 걸 깜빡해서요, 다음에 만납시다!”……이때, 구아람과 임수해는 오늘 마지막 데이트 장소에 도착했다.고풍스러운 찻집은 조용하고 우아하며 공기 중에 부드러운 차 향기가 떠 있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이곳은 해장원의 느낌이 났다. 이
“왜, 왜 여기에 있어요?”구아람은 어안이 벙벙했다.얼굴의 주근깨와 어수선한 가발은 살짝 귀여운 허당미가 느껴지게 하였다.윤유성은 입꼬리를 올리고 눈웃음을 지었다.“제가 맞선 상대면 안 되는 건가요?”구아람은 입술을 오므리고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몰랐다.이건 너무 직설적인 물음이다.그러나 그의 부드러운 눈웃음은 어색한 분위기를 없애고 그저 품위를 손상하지 않을 정도의 농담이라고 느끼게 하였다.“앉아도 돼요?”윤유성은 신사적으로 물었다.“네, 앉으세요.”구아람도 대범하게 응답했다.오늘 그녀를 만나러 온 윤 도련님은 첫 만남 때와 별다름이 없었다. 네이비 바탕에 잔 스트라이프의 고급 슈트를 입고 금테 안경을 쓴 모습은 우아하면서도 고상했다.“구아람 씨, 오늘 스타일이 너무 귀엽고 개성 있네요.”윤유성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하지만 제 앞에서는 분장을 하지 않아도 돼요. 원래 모습대로 하세요.”구아람은 어색한 듯 가볍게 기침을 했다.“저의 맞선 상대가 당신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저를 다시 보고 싶어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왔어요. 마침 저도 그렇고요.”윤유성은 안경을 치키며 가볍게 웃었다.정말 곰곰이 생각할 수 없는 말이다, 그 안에는 많은 뜻이 숨겨져 있다.“좋네요, 지난번에 헤어지고 나서, 당신의 신분이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다시 만나보고 싶었어요.”문득 구아람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윤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 윤유성.”윤유성은 놀라서 무릎 위에 올려진 손을 떨면서 강렬한 기쁨을 억누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구아람 씨, 오랜만이에요”놀란 구아람은 곧 예의있게 응답했다.“네, 오랜만이네요.”비록 그들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사이좋게 지냈지만, 십여 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나보니 구아람은 이 남자가 낯설기만 했다.그녀는 어린 시절의 윤유성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그는 키도 작고 엄청 말랐으나 이목구비가 뚜렷했고 피부가 눈처럼 하얬다. 게다가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다
윤유성이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리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모습은 마치 옛 그림에서 나온 귀공자 같았다.두 사람은 잠시 잡담을 나누었다.그녀는 지난 몇 년 동안 윤유성이 S 국에서 요양하고 있는 어머니의 곁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어머니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점점 몸을 가누지 못했다. 성주로 돌아올 기회가 많았지만 그는 어머니를 위해 S 국에 남아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구아람은 윤씨 가문의 형편이 많이 복잡하다는 걸로 알고 있었다.윤씨 가문에는 아이가 네 명이 있고 윤유성에게 형 두 명과 누나 한 명이 있다. 그러나 형, 누나들은 모두 윤 회장의 본처가 낳은 아이이고 윤유성만이 후처가 낳은 아이이다.그녀는 윤씨 사모님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어렸을 때 두 가문이 친하게 지냈고 윤씨 가문의 별장에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여전히 사모님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올해는 왜 갑자기 돌아온 거예요?”구아람이 물었다.“고향으로 돌아와야죠, 전 윤씨 가문의 아들이잖아요, 이번에 와서 저만의 것들을 돌려받고 싶어요.”윤유성은 고개를 숙이고 갸름한 손끝으로 아담한 컵을 만지작거렸다.구아람은 그의 뜻을 깨닫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귀족 출신인 아이들은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약육강식을 당하고 마지막엔 뜯겨서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구씨 가문처럼 화목한 귀족 가문은 아마 소설에서만 볼 수 있을 거다.“저녁 식사를 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뭐 하면 좋을까요?”윤유성은 갑자기 웃으며 물었다.“네?”너무 갑자기 약속이 잡힌 것 같아 구아람은 어리둥절했다.“석양에 비낀 장미를 보러 갈래요?”천천히 그녀에게 몸을 기울인 윤유성은 성심성의로 말했다.“저에게 개인 장미 정원이 있어요, 오늘 공개 전시가 하는 날인데, 같이 구경하러 갈래요?”‘장미?’구아람은 마음이 흔들려 눈이 반짝거렸다.그것은 구아람이 가장 좋아하는 꽃이다. 해장원의 뒷마당에 그녀가 전문적으로 장미를 심는 작은 꽃밭도 있다. 그녀가 없는 동안 줄곧 민지 이모 등
윤유성만 아니었더라면 구아람은 성주 서구에 이렇게 큰 장미 정원이 있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이곳은 윤씨 가문의 소유가 아닌 그의 개인 자산이다. 수백 묘의 꽃밭에는 다마스크 장미만 재배되었다.유화처럼 짙은 석양 아래 푸른빛이 물씬 풍기고 핑크색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모습이 구아람의 시선을 끌었다.정원에서 한가하게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는 커플도 있었고, 심지어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인플루언서들도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은 구아람이 일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주었다.두 사람의 뛰어난 미모는 관광객의 부러움을 샀다.누가 봐도 그들은 천생연분인 커플이다.구아람은 몸을 숙이고 두 손으로 마치 연인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듯 부드럽게 장미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코끝을 움직이며 냄새를 맡더니 향기에 취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윤유성은 슬쩍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아람, 이름이 본인과 참 어울리네요, 정말 꽃보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어요.”구아람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호탕하게 웃었다.“저도 제가 예쁘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래도 칭찬해 줘서 고마워요.”“어렸을 때처럼 제가 아람이라고 부르면 당신도 예전처럼 유성이라고 불러줄 거예요?”윤유성은 기대하는 듯 눈을 반짝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러나 구아람은 그를 등지고 있었고 여전히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아직도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그녀에 대한 감정은 변함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그 추억 속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다시 만나게 된 윤유성은 그녀에게 낯선 사람과 마찬가지였다.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정하게 말했다.“우리가 친해지면 그렇게 할게요.”“우린 어렸을 때처럼 친해질 거예요. 기다릴게요.”구아람은 이 분위기가 살짝 이상한 것 같아 말을 돌려 정색을 하고 물었다.“도련님, 이 장미들의 매년 총생산량이 얼마예요? 그리고 재배하는 원가는 얼마예요? 지금 어느 회사랑 전속계약을 맺었어요?”“구아람 씨, 저랑 협력할 생각이 있으세요?”윤유성은
‘설마…….’‘운명의 짝을 만났으면 좋겠어…….’임수해가 구아람의 말을 떠올리자 가슴이 아파나며 속절없이 한숨을 쉬었다.이때, 검은색 고급차 세 대가 멀리서 다가왔다.젤 앞에서 달리고 있는 마이바흐의 번호판을 본 임수해는 눈빛이 차가워졌다.‘신경주의 차네!’고급차가 멈춰 서자 한무가 조수석에서 내려오더니 공손하게 차 문을 열었다.깨끗한 수제 구두에는 티끌만 한 먼지도 없었고 곧은 긴 다리를 내밀며 차에서 내려온 신경주는 눈썹을 찌푸리며 우아하게 슈트의 단추를 매고 있었다.‘재수 없어!’임수해는 그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보자 화가 나서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곧, 가늘고 하얀 손이 차 안에서 천천히 뻗어 나왔다.“오빠…… 날 잡아줄 수 있어?”차 옆에 서 있던 신경주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김은주에게 손을 내밀었다.김은주는 이 남자가 마음이 바뀔까 봐 두려운 듯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그녀의 얼굴에는 온유한 미소를 띄며 너무 기뻐했다.비록 신경주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지만, 그녀는 이 남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신경주 그 나쁜 자식이 김은주 그년의 손을 잡고 정원으로 다가오자 임수해는 경멸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고 욕하기도 귀찮았다.‘재수 없어! 너무 재수 없어!’“오빠, 내가 꽃구경을 하고 싶어서 따라온 건데…… 혹시 부담스러워?”김은주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억울한 척하고 있었지만 남자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아니면…… 나 그냥 돌아갈게, 오빠가 부담될까 봐 무서워.”사실, 신경주가 오늘 장미 정원에 온 이유는 꽃구경이 아닌 프로젝트 시찰을 하러 온 것이다.이곳에는 성주뿐만 아니라 전 성에서 제일 큰 다마스크 장미꽃밭이 있다. 그가 이번에 와서 장미의 모양과 이곳의 토양이 어떤지 보고 싶어 식물계 전문가 두 명을 불러 함께 고찰하러 왔다.모든 종합 지수가 우수하다면 그는 장미 정원의 주인과 비즈니스를 협상할 것이고 신씨 그룹의 산하에 설립될 여성 스킨케어 브랜드에 대한 원자재 지원을 받
신경주와 임수해는 서로 대치하고 있고 곧 일촉즉발의 형세였다.“신 사장님, 여기서 만나다니 참 의외네요.”임수해는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구아람이 안에 있어요?”신경주는 눈을 찌푸리며 담담하게 물었다.이 이름을 들은 김은주는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아가씨가 계시면 안 되는 겁니까?”임수해는 피식 웃었다. 그의 말속에는 가시가 돋쳤다.“신 사장님께서 이곳을 청부 맡았나요?”“우리 신 사장님께서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 왜 계속 말대꾸를 하는 겁니까!”한무는 참다못해 그에게 대들었다.“그냥 물어본 거라고요? 이 말을 하기 부끄럽지 않아요? 제가 듣기도 거북한데.”임수해는 눈썹을 찌푸리며 경멸하는 말투로 말했다.“저기요!”“그만해, 한무야.”신경주가 짜증을 내면서 말하더니 곧 침착하게 말했다.“구아람이 여기에 뭘 하러 왔어요?”임수해는 신경주에게 살포시 기대어 있는 김은주를 차갑게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우리 아가씨가 온 이유는 아마 신 사장님과 같을 겁니다.”신경주는 안색이 어두워졌다.‘역시, 구아람도 장미꽃밭에 관심이 있네,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 양보하지 않겠어!’……이때, 구아람은 치맛자락을 들고 꽃밭으로 들어갔다. 예쁜 노을에 비친 그녀는 마치 꽃밭의 요정처럼 신나게 돌아다녔다.질퍽질퍽한 꽃밭에 쭈그리고 앉아 섬세한 작은 손으로 흙을 주무르고 장미의 꽃줄기와 꽃잎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핸드폰에 자세히 기록했다.다른 여자애들은 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으러 온 것이지만 아가씨는 마치 보물과 금을 캐러 온 것 같았다.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낭만적인 감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프래그머티즘과 비즈니스를 추구하고 오직 사업만 하고 돈을 벌려고 한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욕심이 많은 여자는 너무 사랑스러워 보인다.윤유성은 뒤짐을 짚고 지긋하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사랑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아람아, 넌 아직 어렸을 때랑 똑같아서 좋네.
구아람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유난히 몰두하고 그 안으로 완전히 몰입하며 시간마저 잊어버린다.그녀는 그제야 윤유성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구아람은 급히 돌아서서 보니 그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지긋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는 아름다운 분홍색 장미꽃이 꽂혀있는 짚으로 엮은 꽃바구니를 들고 있었다.너무 아름다운 모습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쉼보르스카의 말이 떠올랐다.“오직 장미만이 장미로 피어날 수 있다.”“구아람 씨.”윤유성은 꽃바구니를 들고 그녀를 부르며 다가갔다.“들어오지 마세요! 옷이 더러워져요!”구아람은 그가 너무 깨끗하게 차려입은 것을 보고 급하게 말렸다.그러나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직 그녀의 곁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곧장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갔다.구아람은 미안한 마음에 입술을 오므렸다.“구아람 씨, 받아요.”윤유성은 다정한 눈빛으로 꽃바구니를 그녀에게 주었다.“도련님, 너무 고맙지만 마음만 받을게요, 이 꽃은 받을 수 없어요.”구아람은 가볍게 웃으며 거절했다.비록 꽃바구니일 뿐이지만, 장미의 꽃말이 애매하여 받으면 안 될 것 같았다.그녀가 거절할 것을 예상한 윤유성은 말을 돌렸다.“물론 아름다운 꽃은 미인과 잘 어울리죠, 하지만 그 뜻뿐만 아니에요. 구아람 씨가 장미에 관심이 많아 보여서 연구해 보라고 선물해 주는 거예요. 밑에 이곳의 흙도 깔려 있으니, 가져가서 마당에 옮겨 심어 봐요. 잘 돌봐주면 항상 피어져 있을 거예요.”그가 이렇게 말하자 구아람은 더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어져 머뭇거리다가 손을 뻗어 꽃바구니를 받았다.“그럼…… 선물해 주셔서 고마워요.”윤유성은 갑자기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뒷짐을 집고 그녀에게 몸을 기울였다.잘생긴 얼굴이 갑자기 가까이 오니 구아람은 순간 눈을 부릅뜨고 숨을 머금고 눈만 깜빡거렸다.“왜요? 제 얼굴에 뭐 있나요?”“네.”윤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어디요?”구아람은 어리둥절해져 손을 들고 얼굴을 닦더니 또 진흙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