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이현이 도와주지 않는 것을 보고 여진숙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이현아, 저년 말을 들으면 어떡하니? 난 네 어머니야. 어머니를 감옥에라도 보낼 셈이야? 네가 구미호 년한테 홀려도 단단히 홀린 모양이구나!”흥분한 여진숙은 모든 분노를 온지유에게 돌렸다.“너 이현이한테 무슨 짓을 했어? 내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줄 알아? 다시 한번 승아를 건드리면 죽어서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 넌 내가 꼭 지옥에 보낼 거라고!”그녀는 온갖 듣기 싫은 말을 다 퍼부으며 끌려 나갔다.여진숙이 떠나자 집은 훨씬 조용해졌다. 여이현은 검게 타버린 바닥을 바라보며 말했다.“당분간은 다른데 가서 살아야겠다. 그게 편하겠어.”“괜찮아요, 그냥 살짝 탔을 뿐인데요. 금방 고칠 수 있을 거예요. 이거 때문에 귀찮게 옮겨 다닐 필요는 없어요.”“너를 위해서라면 무엇도 귀찮지 않아.”“저는 여기서 지내는 게 좋아요.”여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을 복구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이 별장에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엄격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의 가족도 포함해서 말이다. 온지유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다.여이현이 할 일을 끝낸 다음에야 온지유는 물었다.“혹시 이현 씨가 노승아 씨를 풀어줬어요?”“응, 그건 왜?”“...조직이랑 연관되어 있는 걸 알면서 왜 그랬어요? 희생한 사람한테 불공평하잖아요.”여이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증거가 없잖아.”“증거요? 그걸 꼭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요? 노승아 씨랑 노석명이 어떤 사이인지, 이현 씨도 알잖아요. 저한테 독을 먹인 건 증거가 아니에요? 뭐든 이현 씨 눈으로 봐야 해요?”“진정해, 애 생각해야지.”그는 그녀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치면서 말했다.“아직도 노승아 씨를 잊지 못한 거죠? 이러는 건 예전이랑 다를 바 없어요. 노승아 씨는 계속해서 절 괴롭힐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제 생활을 방해할 거라고요! 오늘 일도 분명히 노승아 씨랑 연관 있어요.”“증거 있어?”“아
여이현은 이제야 온지유를 풀어줬다. 온지유의 손목에는 빨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손목을 바라봤다. 여이현이 이 정도로 힘을 줄 줄은 몰랐던 것이다.온지유는 어두운 표정으로 여이현을 바라봤다. 여이현도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목을 바라봤다. 이상한 기분이 든 것도 잠시 죄책감이 들었던 그는 황급히 사과했다.“미안해.”힘이 잔뜩 빠진 사과였다. 어찌 됐든 그녀가 다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도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온지유는 화가 났다. 안 그래도 그녀는 노승아 때문에 화가 났었다. 어쩐지 세 사람의 연애를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이현이 그녀를 다치게 하기까지 했으니 더욱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감정에 휩쓸린 온지유는 그의 사과를 받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사과가 소용 있어요? 어차피 이현 씨는 또 이럴 거잖아요. 저 그냥 나갈게요. 여기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온지유는 떠날 생각이었다. 이곳은 그녀의 집도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여이현과 이혼한 상태였다. 그를 쫓아낼 수는 없으니 그녀가 떠날 수밖에 없었다.온지유가 발걸음을 옮기기 바쁘게 여이현이 그녀를 불러세웠다.“넌 임신했으니까 여기 가만히 있어. 내가 갈게.”온지유는 발걸음을 멈춰서 그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한 번도 바라보지 않고 훌쩍 떠나버렸다.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온지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설명 한마디 없이 떠날 줄은 몰랐다. 만약 그녀를 좋아한다면 조금이라도 달래 줄 만한데 말이다.그녀가 의심을 품고 있다고 해도 그가 안전감을 줄 수 있었다. 조금 전 다치게 한 것도 계속 사과하다 보면 그녀가 용서했을 것이다. 한마디라도 더 했으면 말이다.‘그냥 가버리는 건 무슨 뜻이야? 노승아랑 그런 사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야?’온지유는 아직도 기대를 품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가 멈춰 서서 그녀를 바라보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주저 없이 나가버리고 말았다.속상하기도 하고 화나기도 했던 온지유는 어찌할 바를 몰
이번 일로 노승아는 많은 일이 끊겼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국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해외에 가면 된다. 다행히 일이 해외까지 퍼지지 않아서 자그마한 활동 정도는 참석할 수 있었다.이는 게임에 연관된 활동이었다. 대부분 참석자가 플레이어여서 그녀는 가장 인기 있는 게임 캐릭터를 코스프레 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사진 한 방 더 찍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노승아는 나름 똑똑했다. 그녀는 어떻게 화제를 이끌지 알았다. 활동에 참석할 때마다 센터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동시에 그녀는 여진숙의 소식을 기다렸다. 그녀는 온지유가 자신을 괴롭힌 만큼 되돌려줄 생각이었다. 여진숙이 화가 잔뜩 난 채 찾아갔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많은 일을 겪고 나서 그녀는 드디어 깨달았다. 무슨 일이든 직접 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들킨다면 그녀만 손해였다. 지금도 큰코다치지 않았는가?앞으로는 모든 일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서 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에게 유리한 일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여진숙은 소식이 없었다. 잠시 후 알고 보니 그녀는 경찰서에 갔다고 했다.이 소식을 들은 노승아는 안색이 확 변했다.“그럴 리가? 어머니가 경찰서에 갔는데 이현 오빠는 가만히 있었대? 감옥에 안 가게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여이현 씨가 보낸 거라고 합니다. 온지유 씨를 위해서요.”“하, 이런 쓸데없는 것들!”화가 치밀어 올랐던 노승아는 언성을 높였다.“승아 씨도 조심해요.”상대가 경고했다.“지금으로 봐서 승아 씨를 도와줄 사람은 없어요. 그러니 조심할 수밖에요.”노승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알았다. 그녀를 도와줄 만한 사람은 이제 없었다. 아름다운 인생은 한순간 곤두박질쳤다.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안 되는 상대는 소식만 전하고 금방 떠났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노승아는 발만 동동 굴렀다.무심코 고개를 들어서 거울을 봤다가, 그녀는 아직 일하는
외침이 점점 커지자, 노승아는 얼빠진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인파 속에 서서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뒤에서 욕먹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니 상관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가 보고 듣는 앞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MC는 애써 분위기를 환기해 보려고 말했다.“인터넷에서 떠도는 루머는 믿지 마세요. 다시 마지막 캐릭터를 환영해 볼까요?”“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어요? 인터넷에 설명글이 올라와 있어요! 노승아는 구린 데가 있는 게 분명해요! 당장 경찰 불러요! 범죄자가 마구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요?”“진정하세요. 다들 진정하세요.”MC는 아직도 질서를 유지하려고 했다.“그게 사실이라면 승아 씨가 이곳에 오지도 못...”사람들은 MC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노승아를 미워하다 못해 증오했던 그들은 급기야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악!”무언가에 머리를 부딪힌 노승아는 머리를 감싸며 설명하려고 했다.“아니에요, 제가 한 거 아니에요...”현장 스태프는 후다닥 달려와서 그녀를 데려가려고 했다. 사람들은 아직도 분에 차서 외쳤다.“안 그래도 여자 시체가 발견돼서 분위기가 흉흉한데, 노승아가 진짜 연루된 거면 인간도 아니에요! 여자들을 위해서라도 처단해야 한다고요! 저런 사람이 멀쩡히 연예인 놀음하고 있는 거라면 희생자의 속은 누가 달래요!”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말이었다. 그들은 더욱 일치한 목소리로 말했다.“나가라! 나가라!”“나가라! 나라가!”노승아는 처음으로 이토록 선명한 증오를 느껴봤다. 어쩐지 인생이 망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완전히 망하는 것이었다.그녀는 아직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다.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루머는 증거도 필요 없이 그녀를 감옥보다 더 한곳에 넣을 수 있었다.원래의 그녀는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어야 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스태프를 따라 무대 뒤로 들어간 그녀는 손을 덜덜 떨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몸에는 날아오는 물건에 부딪혀 난 상처로 가득했다.
말을 마친 김예진은 물건을 정리하게 시작했다.노승아는 아직도 울고 있었다. 그러나 안색은 싸늘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갯벌에 빠진 것처럼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었다.‘이제 어떡하지? 이제 어떡해야 하지?’그녀는 최고의 스타가 되어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이때 또다시 노크가 들려왔다. 김예진은 짜증 난다는 듯이 문을 열었다.“글쎄 나간다고 했...”찾아온 사람은 여이현의 부하였다. 김예진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언니!”절망에 빠져 있던 노승아도 여이현의 사람을 보자마자 눈을 반짝였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면서 후다닥 달려갔다.“이현 오빠는요? 오빠가 저를 찾았어요?”여이현은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여이현만 손을 뻗어주면 그녀는 살길이 있었다.“노승아 씨, 따라오시죠.”“네. 이현 오빠가 가만히 있지 않을 줄 알았어요. 오빠가 저를 도와주려고 하는 거죠? 지금 당장 갈게요!”노승아는 여이현을 포기한 적 없었다. 그에게는 무조건적인 신뢰가 있었다. 더군다나 지난 세월 동안 그는 한 번도 그녀를 포기할 적 없었다.이번에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노승아는 흔쾌히 그들을 따라갔다.차 안은 아주 조용했다. 노승아가 웃는 얼굴로 이것저것 묻는데도 그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그래도 노승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곧 여이현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일이 무사히 풀릴 것으로 자부했다.하지만 이번에는 그녀의 생각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그녀는 한적한 교외에 가게 되었다. 사방이 전부 산이라 왠지 음침한 느낌을 줬다.차가 잠깐 멈춘 사이 노승아를 주변을 둘러봤다. 이때 한 사람이 그녀를 폭력적으로 밀쳤다.“뭐 하는 짓이에요? 난 이현 오빠 약혼녀예요. 죽고 싶지 않으면...”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손이 포악하게 묶였다.“뭐 하는 짓이냐고요?!”노승아는 몸부림치며 반항했다.“그쪽이야말로 죽고 싶지 않으면 입 다물어요.”노승아는 묶인 채로
노승아는 여이현의 말에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이제 노승아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여이현은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그마저도 자신을 버린다면 이제는 완전히 끝이었다.“이현 오빠!”노승아는 눈물을 쏟으며 아픔도 잊고 여이현 쪽으로 기어갔다.“잘못했어요. 나 정말 잘못했어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발밑에 매달리는 노승아를 여이현은 마치 벌레 보듯 냉랭하게 바라보았다.그는 고개를 숙였지만 여전히 당당한 태도로 차갑게 웃었다.여이현은 길고 섬세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잡으며 나지막이 물었다.“잘못했다고? 말해봐, 뭘 잘못했는지.”그의 말에 노승아는 순간 멍해졌다.‘잘못 했나? 내가 대체 무얼?’하지만 살아 남기 위해서는 여이현의 도움이 필요했고 지금은 여이현에게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이현 오빠가 뭘 잘못 했다고 하면 내가 뭘 잘못한 거겠죠. 말만 해주시면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노승아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가련한 모습으로 여이현의 자비를 바랐다.여이현은 불쾌하다는 듯 잡고 있던 노승아의 턱을 놓고 소독용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으며 말했다.“노승아, 네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지금 그 말 속에서 진심은 느껴지지 않네. 반성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거든.”노승아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여이현의 눈빛은 여전히 싸늘했다.“온지유에게 독을 주입했을 때 넌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 생각이나 해봤어?”노승아의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하지만 말했잖아요. 오빠가 나와 결혼만 해준다면 언니에게 해독제를 줄 거라고!”노승아의 말에 여이현의 눈빛은 한층 더 날카로워졌고 이마에 핏줄이 서기 시작했다.그의 분노는 최고조에 달해 더는 참지 못하고 노승아의 목을 움켜쥐었다.“해독제? 네가 해독제를 가지고 있긴 해? 한 번만 더 말해 봐, 네가 정말 해독제를 가지고 있긴 하냐고!”여이현은 처음부터 노승아가 진짜 해독제를 가지고 있
여이현은 노승아가 감옥에 갇히는 건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직접 처리하고 싶었다“아직 머리는 굴러가나 보네.”여이현이 비웃으며 말했다. 마치 그녀의 운명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저승사자처럼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최후통첩을 날렸다.“네 인생도 여기서 끝이야!”“아니, 안 돼요!”노승아는 감정이 격해져 소리쳤다.“함부로 날 가두는 건 불법이에요. 이렇게 하면 오빠도 쉽게 넘어가지 못할걸요!”그녀는 여이현이 어떤 무리수를 둘까 봐 두려웠다.감옥에 보내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 그가 자신을 가둔다면 그 결과는 더욱 참혹할 것이 분명했다.순순히 잡혀가서 고통받을 수는 없다.차라리 감옥에 갇히는 게 나을 것이다.그렇게 생각하니 노승아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도망쳐야만 했다.노승아는 곧바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여이현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전혀 말리지 않았다. 그는 노승아가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의 입가에는 잔혹한 미소만이 떠올랐다.그 모습은 어떤 살인마보다도 더 오싹했다.노승아는 미친 듯이 달렸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었다.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그저 한 방향으로 내달렸다.오랫동안 뛰다 보니 온몸에 힘이 빠졌지만 여이현에게 잡힐까 두려워 멈출 엄두도 나지 않았다.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둘러보니 주위는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마치 미로와 같아 도무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어 햇빛조차 들어오지 못했다.그리고 앞쪽에는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절벽이 펼쳐져 있었다.‘여긴 대체 어디지?’노승아는 점점 더 불안감과 혼란스러움에 사로잡혔다.“꺄악!”부주의로 돌에 걸려 노승아는 그만 땅에 넘어져 주저앉고 말았다.손이 땅에 닿으면서 날카로운 풀 가시가 그녀의 손바닥을 찔렀다.순간 피가 흘러나왔다.온몸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머리카락은 땀으로 엉겨 붙어 있었으
이곳의 경비들은 용경호와 가까운 사이었기에 온지유는 먼저 그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대장님은 아직 귀가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 돌아오실지는 저희도 알지 못합니다.”경비가 대답했다.“어디로 가셨는지 아세요?”온지유가 다시 물었다.“저희는 잘 모릅니다.”묻나 마나 한 답변이었다.아무런 해결책도 되지 않았다.당장 곁에 여이현이 필요한데 그는 하필 지금 온지유의 옆에 없었다.시간이 지나면서 화도 절반은 누그러졌고 제대로 설명만 해준다면 온지유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하지만 여이현은 기어코 그 쉬운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더 이상 온지유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사랑하지 않더라도 말은 똑바로 해야 하지 않을까.온지유는 이런 애매한 태도가 가장 싫었다.그래서 다시 물었다.“용경호 씨에게 전화해서 어디에 있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물어봐 주세요!”“알겠습니다, 사모님.”경비는 즉시 온지유의 요청대로 행동했다.온지유는 체면을 지키려 에둘러서 여이현의 행방을 알아내고자 했다.전화가 걸렸다.온지유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경비는 질문을 던졌다.전화를 끊은 후 그가 말했다.“사모님, 대장님은 오늘 밤에는 돌아오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어디에 있는지는 물어보았나요?”“말씀해 주지 않았습니다.”온지유는 입술을 꽉 다물었다. 마음이 답답했다.어디 있는지 그렇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걸까?노승아를 풀어준 이후로 그는 행방을 감춘 채 전화도 받지 않았다.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온지유는 실망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모호한 상황이 정말 싫었다.경비는 온지유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물었다.“사모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온지유는 차가운 표정으로 매우 불쾌한 듯 말했다.“저쪽이 어디 있는지도 말해주지 않는데 내가 어디를 가든 이젠 상관없잖아요.”“사모님, 이미 늦은 시간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나가시면 저희는 대장님께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경비가 걱정스럽게 말했다.온지유는 헛웃음을 지
은서우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인명진은 이미 돌아서서 갈 길을 가고 있었다.비록 인명진이 병원의 원장이었지만 은서우는 회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를 본 적이 거의 없었다.오늘 처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는 것이었다.그는 수술용 멸균복을 입고 마스크와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다.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깊고 차가운 그의 검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수술 내내 상황이 아무리 긴박해도 인명진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고 그의 침착함과 냉정함은 뛰어난 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은서우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이제야 왜 병원의 많은 여성 간호사, 인턴, 심지어 여의사들까지도 그에게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은서우는 가볍게 몸을 풀며 수술실을 나왔다.막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한 동료가 그녀를 찾아왔다.가슴에 걸린 명찰을 보고 은서우는 상대가 인턴임을 알았다.은서우는 예의 바르게 물었다.“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은 선생님, 방금 원장님과 함께 수술을 마치셨죠?”인턴의 질문에 은서우는 약간 의아했다.“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인턴은 자신의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은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원장님 카톡 좀 추가해서 저한테 넘겨주시거나 아니면 원장님 사진 몰래 몇 장만 찍어 주세요. 제가 이만큼 드릴게요.”인턴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은서우는 인턴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제가 원장님 연락처를 넘긴다고 해도 원장님 입장에서는 그냥 낯선 사람일 뿐일 텐데 원장님이 연락 받아줄 것 같아요? 그리고 몰래 사진 찍는 건 불법인 거 모르나요? 고작 그 정도 푼돈으로 저를 이런 큰일에 끌어들이겠다고요? 당신이 미친 걸까요? 아니면 제가 미친 걸까요?”은서우는 거침없이 인턴을 몰아붙였다.인턴이 급히 덧붙였다.“아니에요, 은 선생님. 도와주시기만 하면 백만 원 아니 천만 원도 문제없어요.”‘천만 원에 사진 몇 장과 연락처? 저 인턴 진짜 제정신이 아니네.’은서우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이명진은 병원에서 만약 어떤 의료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이 병원의 명성은 그대로 무너질 것으로 생각했다.그의 말에 한 간호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원장님, 병원 내부 번호와 원장님 개인번호 모두 통화 중이셨어요. 원장님 인기가 지금 장난 아닌 걸 모르시는 건 아니시죠?”문 앞에 대기 중인 인턴들로도 모자라 소문 듣고 연락이 오는 환자도 있었고 학생들도 있고 심지어 부잣집 부인들도 어디서 개인번호를 얻었는지 매일 전화를 걸어 이명진의 전화는 항상 통화 중 상태였다.긴급 상황만 아니라면 인명진이 직접 나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인명진은 간호사의 필요 없는 말을 들을 시간도 없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가 문을 열자 밖에서 있던 인턴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진짜 너무 멋있고 젊잖아. 이렇게 젊으신데 원장 선생님이라고?”“너무 잘생겼어. 여자 친구도 없다 그러던데.”“많은 수술도 직접 하신대. 그리고 학술논문도 봐주고 기타 강의도 하신다고 들었어.”“이렇게 훌륭한 사람 품에 안겨있는 느낌은 어떤지 상상도 안 가.”그들은 미친 사람처럼 저마다 한마디씩 주고받고 있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인명진에게 달려들어 길을 막고 있었다.“인 원장님, 저랑 사귀시면 이런 병원 몇 개라도 더 해줄 수 있어요. 당신을 경성의 의료센터에서 우두머리로 만들어 드릴게요.”“인 원장님, 저 사람 말 믿지 마세요. 저랑 사귀시면 더 많은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드릴게요.”“인 원장님, 저랑...”“다들 꺼져!”인명진은 평소에 이 사람들에게 무관심이었지만 지금은 급한 수술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한 간호사가 데리고 온 경호원들도 그녀들을 막을 수가 없었지만 항상 따뜻하고 우아하고 부드러운 말만 할 거로 생각했던 인턴들은 인명진의 화내는 소리 한 번에 더 이상 앞으로 다가서지 못했고 자리를 피해 길을 열어 주었다.인명진은 재빨리 수술용 무균복으로 갈아입고 소독한 후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다.수술실 안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했
온지유는 그의 앞에 다가서며 말했다.“이건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어떻게 생각할 겨를도 없을 수 있어요? 병원의 간호사나 의사들도 휴가가 있던데 명진 씨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에요? 당신 생각도 잘 알아요. 아이를 입양할 생각도 괜찮지만 그래도 결국 친자식은 아니잖아요.. 그런 생각할 에너지가 있으면 친자식을 낳으면 되잖아요.”지금은 좋은 마음으로 입양했다 하여도 커서 입양한 자녀들 간의 모순으로 불행하게 된 사람들도 너무 많아서 온지유의 걱정이 틀리진 않았다.인명진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런 말은 왜 해. 너의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데 내가 왜 다른 아이를 입양할 생각 하겠어? 법로가 나한테 너하고 별이를 잘 지켜달라고 부탁한 것도 있고 또 별이가 나중에 크면 이 삼촌이 외롭고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을 알고 그냥 내버려두진 않을 거잖아. 그때가 서 별이가 날 너희 별장으로 데리고 가면 우린 또 한 지붕 아래에서 살 수 있고 내가 곁에서 지켜줄 수 있잖아.”온지유는 인명진의 이런 생각에 너무 어이없어하며 말했다.“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우리 아버지가 어떤 임무를 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분명하게 알아둬야 할 것은 명진 씨 옆에는 반드시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 해요.”온지유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명진의 자료를 만들었고 바로 소개팅 사이트에 올리려고 했지만 그 순간 망설이게 되었다.분명 좋은 마음으로 하는 건데 혹시나 인명진이 원하지 않으면 되려 부담이라도 될가봐 다시 자료들을 쓰레기통에 버려 버렸다.그때 여이현은 집에 돌아와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 온지유를 보며 말했다.“왜 그래? 요즘 항상 기분이 다운되어 있던데, 무슨 일 있는 거야?”온지유는 있는 그대로 털어 놓았다.“인명진 씨 땜에 그래. 우리 주변 사람들은 다 각자의 삶을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인명진 씨는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냥 혼자 살고 있잖아. 금방 그의 자료를 만들어 소개팅 사이트에 올리려 했
양시은은 더 이상 나도현에게 빌붙어 사는 작은 변호사가 아니었고 심지어 임다혜와의 앙금도 풀고 둘은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김혜연 쪽은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다.온지유는 여름방학에 윤별을 데리고 Y 국으로 갈 계획이었고 인명진도 직접 나설 예정이었다.온지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결혼도 하고 홍혜주는 출산도 앞두고 있었고 양시은과 나도현도 이젠 너무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인명진만 미혼에 아직도 혼자였다.여이현은 여희영이 만난 남자를 처음엔 좋게 보지 않았지만 그 남자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는 것을 증명하자 안심되었다.심지어 나민우도 지난달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고 연락이 왔고 결국 이제 남은 건 인명진뿐이었다.옆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많이 도와준 인명진을 가족으로 생각한 온지유는 그의 앞날이 걱정되어 하지 않으려던 말을 참지 못하고 내뱉고 말았다.“명진 씨, 제 주변을 돌아보면 다들 자기 행복 찾아 잘 살고 있는데 명진 씨도 이젠 그럴 때가 된 거 같아요. 명진 씨처럼 훌륭한 남자가 본인만 원한다면 좋은 사람은 많을 거잖아요.”인명진은 온지유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잘 알고 있었다.전에 여이현이 죽었다고 생각한 5년 동안은 인명진에게 가장 좋은 기회였지만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온지유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그 뒤로 인명진은 뒤에서 지켜주는 것도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온지유의 그림자가 되어주었다.“난 지금 충분히 행복해. 네가 무슨 일이 있다고 하면 바로 나설 수 있어 좋고 더욱이 법로가 떠나시면서 옆에서 너를 잘 지켜주라고 특별히 당부하셨어.”“하지만 저는 명진 씨 인생의 전부가 아니잖아요. 명진 씨도 자신을 위한 인생을 사셔야죠. 홍혜주 씨도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데 이젠 정말 명진 씨만 남았어요. 그러면...”온지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명진은 말을 끊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인류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 사는 건 아니잖아. 율아, 난 지금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어.”인명진은 항상 온지유가 행복하
현민아는 엉엉 울면서 말했다.“그건 내가 준 예물인데 나한테서 뺏어가려 하지 마요.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아빠가 말했잖아요. 근데... 아빠는 사기꾼이야.”현민아의 끝없는 투정 부림에 현민아의 아버지도 어쩔 수가 없었다.집 계약서도 돌려받았고 사람들 앞에서 더 이상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은 현민아의 아버지는 현민아가 원하든 하지 않든 일단 둘러메고 집으로 들어갔다.양시은은 옆에 서 있는 하민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너희들은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니 이런 일로 어떤 스트레스도 받으면 안 돼. 유치원에서도 일부러 남을 냉정하게 대해서도 안 돼, 알았지?”“알겠어요.”하민은 양시은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고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최정숙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우리 귀염둥이 손자가 유치원에서 이렇게 인기가 있는 줄은 몰랐네.”그러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말했다.“집 계약서 8권이면 재산도 적지 않은데 어려서부터 알고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은 거 같은데?”양시은은 최정숙이 이런 생각까지 할 줄은 몰랐다.“요즘 애들이 뭘 알겠어요. 애들끼리 뭔 생각을 못 하겠어요.”“엄마, 왜 어릴 때부터 그런 일을 만들어요.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거에 정말 탄복해요. 집 계약서 8권이 뭐가 대단하다고, 우리 하민이랑 비기면 턱도 없는걸요. 그 여자아이는 단지 의도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뿐이에요.”지금 좋아한다고 해도 아직도 이십여 년이나 남았는데 사람의 마음은 당연히 변할 것으로 생각한 나도현은 아들이 어릴 때부터 혼약을 맺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그와 같이 직접 경험한 사람에게는 이런 일은 귀찮다고만 생각되었다.최정숙은 나도현의 말에 변명하며 말했다.“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그렇게 하라고는 안 했잖아? 뭐가 그렇게 안 달아 할 지경이니?”“그럴 만도 했잖아요. 전에 저도 엄마가 벌려놓은 이런 일 때문에 편하게 지내지도 못했는데 제 아들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죠.”나도현의 말에는 토하나라도
“제가 어제 집에 돌아와 하민이의 가방을 열어보니 이런 집 계약서들이 있었어요. 현민아가 가방에 집어넣었나 봐요.”알고 보니 하민이가 잘생겼다고 오랫동안 지켜본 현민아는 그와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하민이가 평소에 말을 잘 안 한 것 땜에 삼촌한테 고민을 털어놓았었고 그런 행동이 귀여웠던 삼촌은 조롱하는 식으로 현민아에게 친구보다 결혼이 좋은 거라고 말해줬는데 그 말에 현민아가 몰래 집 계약서들을 학교에 가져가 예물이라면서 하민이의 가방에 넣어 준 것이었다.현민아의 아버지는 말을 듣고 더욱 난처해졌다.“우리 꼬마 아가씨, 넌 아직 어려서 예물이라는 것이 뭔지 몰라. 다음부터는 남의 책가방에 물건을 함부로 넣으면 안 돼.”현민아는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근데 난 하민이랑 친구 하고 싶단 말이에요. 친구가 되고 싶으면 뭐라도 보여줘야 내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잖아요.”옆에서 듣고 있던 양시은도 현민아의 진지한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현민아의 아버지는 미안해하며 말했다.“하민 어머님,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민아가 어디서 어떤 말을 듣고 저런 행동까지 했는지 모르겠어요. 마음에 두시지 말았으면 좋겠어요.”“현민아 아버님, 여기 집 현민아가 넣어 둔 계약서들입니다. 맞는지 한번 확인해 보세요.”현민아의 아버지가 계약서를 확인하자 현민아는 기분 나빠하며 말했다.“전 돌려받기 싫어요. 아빠가 말했었잖아요. 이미 준 것은 곧 엎질러진 물이랑 같아 주워 담을 수 없다면서요. 그럼 책임을 져야잖아요. 이 물건들은 제가 이미 하민한테 줬고 하민이도 받아들이고 집에 가져갔으니 앞으로 제 사람이 될 건데 이렇게 다시 제가 준 예물을 회수하면 앞으로 저보고 어떻게 하민이랑 잘 지내라는 거예요? 아빠가 이렇게 하면 하민이 한테는 제가 신용이 없는 사람이 되잖아요.”현민아는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울어댔다.요즘 아이들은 응석받이로 자라서 고집을 부리면 누구도 말릴 수 없어 현민아 아버지와 양시은도 현민아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다만 양시은이 예상치 못했던
“어젯밤에 집에 도착했는데 네가 없길래 전화하려고 하자 마침 여이현 씨가 널 데려다주셨어.”나도현은 어제 마음이 심란하여 술을 많이 마신 게 분명했다.“여기 비타민이라도 좀 먹어.”양시은은 나도현이 깨어나기 전에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고 비타민 한 알을 건네주었다.나도현도 어제 양시은과 잘 소통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고 심지어 양시은이 너무 바쁜 탓에 돌아오지 못하면 그녀가 간 도시를 찾으러 가려고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출장에서 돌아와 지금 옆에 있는 양시은을 보며 쓰디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시은아, 넌 이러는 내가 싫지?”“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넌 하나뿐인 내 남편인데 왜 싫겠어. 그리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 아직도 내 마음을 모르는 거야?”양시은은 항상 아이가 평안하고 나도현이 건강하고 그렇게 그들 세 식구가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것으로 매우 소박한 소원을 품고 지내왔다.“하지만 나...”“어제 여이현 씨가 널 데려왔을 때 나한테 둘이 잘 소통해 보라고 하길래 네가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예측했어.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생겼다고 널 버릴까 봐 그러는 거지?”양시은은 나도현의 옆에 앉아 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녀는 나도현이 이렇게 불안해하는 것이 심리 건강에도 안 좋다고 생각되어 자신의 진심을 확실하게 말해주기로 했다.양시은의 말을 아니라고 부정하지 못한 나도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하지만 전날 술자리에서 여이현과 배진호가 양시은의 우수함을 부정하지 말고 더욱이 양시은의 앞길을 가로막지 말라고 한 말이 생각나 머리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며 말했다.“내 생각이 좀 많이 유치했던 것 같아.”“아니야, 날 사랑하는 표현이라는 거 잘 알아. 만약 내가 너라면 너보다 더 했을지도 몰라. 나도현, 내가 너에 대한 사랑을 의심하지 마. 지금 하고 있는 사업도 네가 옆에서 많은 도움을 줘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양시은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도현의 두 손을 잡고 말하자 그는 더 부끄러워졌다.나도현의 도움과 격려하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고 착하게 자란 윤별은 초등학교에 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으며 여이현도 매우 기뻐했다.하지만 윤별은 항상 외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고 심지어 작은 빨간 꽃을 만들어 외할아버지가 있던 방에 붙여놨다.온지유는 윤별의 행동을 눈치채고 바로 다가가서 위로해 주며 말했다.“별아, 너무 슬퍼하지 마. 외할아버지는 지금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셔서 우리를 보고 계실 꺼야. 그리고 내년이면 외숙모 집에서 별이 남동생과 여동생도 태어날 거야.”“그런데요 엄마, 외할아버지께서 제가 1학년이 되어 글자를 배우면 공부를 가르쳐 주신다고 약속했어요. 그리고 외할아버지께서 또...”윤별은 말하다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전에 윤별이가 브람을 따라갔을 때 브람은 매우 엄하게 대했지만, 온경준이 경성에 데려다 키우는 동안은 윤별에게 끝없는 사랑을 주면서 모든 것을 만족시켜 주었다.그리고 윤별의 몸이 허약하니 온경준은 옆에서 정성껏 보살펴 주었고 쓴 약도 잘 먹게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달래여 먹이면서 많은 추억을 쌓아 주었다.그때 윤별은 온경준에게 물었었다.“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온경준의 집은 Y 국이었고 윤별의 말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해 주었다.“별이랑 엄마가 어디에 있으면 할아버지 집은 거기에 있는 거야. 할아버지는 예전에 많은 잘못을 했고 그렇게 되어 너희 엄마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었어. 이제 겨우 같이 살게 되였는데 할아버지가 어찌 Y 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겠어? 게다가 이쪽에 오래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온경준은 그때 윤별이랑 함께 많은 수공예도 했고 병아리도 기르고 꽃을 심고 풀도 심었지만, 지금은 반 친구들 외에 하민 동생이 놀러 오고 평소에 윤별은 항상 혼자였다.온지유는 윤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부드럽게 말했다.“외할아버지는 그저 우리보다 먼저 다른 세계로 가신 거야.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오면 사명이라는 걸 가지고 와. 그리하여 사람은 언젠가 죽을 것이고 앞으로 때가
여이현이 추천해 주겠다는 의사는 인명진이었다.인명진의 능력은 상당히 좋았다.당시 그와 지석훈이 하민에게 수술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하민은 지금처럼 이렇게 빨리 낫지 않았을 것이다.“난 병이 없거든.”나도현이 자신의 심병을 인정하지 않자 여이현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지난 4년 동안 치료해 온 걸 아니까 너의 이런 심리는 이해는 할 수 있어. 근데 넌 배 비서가 말했듯이 양시은 씨의 우수함을 부정하면 안 돼. 그녀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도 있을 텐데 네 옆에만 가둬 두고 있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게다가 네가 뭐 사랑을 강제로 시키는 대표도 아니고 결혼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이런 사소한 일로 다투지 마.”나도현은 여이현의 말을 다 알아들었지만 자신의 답답하고 복잡한 이 심정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었다.그는 양시은이 모두에게 존중받는 것도 원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앞에서만 이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마시다 보니 나도현은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양시은은 오늘 저녁에야 출장에서 돌아왔고 여이현이 만취한 나도현을 데려온 것을 보고 그녀는 갑자기 마음이 아팠다.“여이현 씨, 저의 남편 데려다줘서 고마워요.”“별말씀을요. 둘이 잘 소통해 봐요.”여이현의 한마디에 양시은은 바로 눈치채고 나도현이 열일곱 살 난 아이 같아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웃음을 터뜨렸다.양시은은 도우미를 불러 나도현을 위층으로 옮기고 침대에 눕혀 신발을 벗기고 넥타이를 풀어줬다.금방 출장 다녀온 탓에 힘들었지만 인내성 있게 나도현을 돌보았고 혹시라도 토할까봐 곁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그런데 뜻밖에도 나도현은 갑자기 양시은을 품에 안더니 그녀에게 입을 맞추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양시은, 나 정말 널 너무 사랑해. 그래서 또 잃을까 봐 두려워.”“너의 마음을 나도 다 알고 있어.”“니가 너무 우수해서 다른 사람들이 눈여겨볼까 봐 겁이 나, 그리고...”양시은은 그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했다.“바보야, 너는 내가 인생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남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