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성민은 오늘 있었던 일을 지현승에게 간단히 전했다.곧 지현승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아버지랑 할아버지는 미혜 씨하고 미혜 씨 외할머님에 대해 인상이 꽤 좋으셨어. 아마 그래서일 거야.]지현승의 말대로라면 지철호가 연미혜를 신경 쓰는 데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였지만 염성민은 여전히 뭔가 석연치 않았다.‘아무리 좋은 첫인상이었다 해도, 겨우 한두 번 본 사이에 그 정도로 각별할 수 있을까?’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현승에게 더 따져 묻는 건 의미 없었다.날씨 예보에 따르면 오늘 오후부터 비가 내릴 거라고 했
연미혜는 얼굴빛이 살짝 굳었다.“이러지 말고... 나 좀 내려놔.”그러나 경민준은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우산 단단히 잡아.”그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연미혜를 그대로 안은 채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고개를 살짝 돌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마디 남겼다.“먼저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따로 뵙죠.”경민준과 안면이 있는 몇몇 기업 대표들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모두가 알다시피, 연미혜와 김태훈의 관계는 넥스 그룹 안팎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이였다.게다가 오늘처럼 정부 주최 간담회에 김태훈 대신 연미혜가 공식 대표로 참
연미혜는 차에서 내린 후 차 문을 닫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경민준의 손에 들린 우산을 가져가며 차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경민준은 시선을 내리더니 그녀의 발을 훑어보며 조용히 물었다.“발은 괜찮아?”‘좀 아프지만 걸을 수는 있어.’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고, 오늘 경민준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그저 우산을 펼치며 담담히 말했다.“이혼 절차는 어떻게 되어가? 정리되면 그때 연락해.”그 말은 곧 이혼에 관련된 일 외엔 연락하지 말라는
그날 저녁, 일정이 있었던 하승태는 공적인 이야기를 마친 뒤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회의실을 나서기 전, 그는 연미혜를 한 번 바라보았다.그 시선을 느낀 연미혜가 고개를 들었다.“하 대표님, 혹시 더 하실 말씀이라도...”내일이 발렌타인데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그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연미혜는 지금 온통 일에만 집중해 있었고, 발렌타인데이 같은 기념일은 아예 잊고 지내는 듯했다.다음 날 아침.연미혜는 늘 그렇듯 조금 이른 시간에 출근했다.회사에 도착해 사무실 쪽으로 향하던 중, 동료
세인티로 향하던 차 안에서 연미혜의 휴대폰이 울렸다. 노현숙이 걸어온 전화였다.전화를 받자 익숙하고도 정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미혜야... 잘 지내지?”“그럼요. 할머니도 잘 계시죠?”“며칠 전에 다솜이가 그러더라. 너 요즘 일 많아서 밤샘도 한다고... 그래서 내가 며칠 전에 선물 받은 보약 좀 챙겨놨어. 곧 도착할 테니까 꼭 챙겨 먹어. 알겠지?”연미혜는 설령 거절해도, 노현숙은 끝까지 밀어붙일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더는 사양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감사해요. 할머니, 꼭
임지유는 이제 세인티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방금까지 자리에 없던 건 경민준 일행과 회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지유 언니!”손아림이 반갑게 달려와 임지유 옆에 붙었다. 그러곤 슬쩍 연미혜를 흘끗 바라본 뒤,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연미혜가 꽃 받았다고 아까는 으쓱대더니, 언니한테 꽃이랑 선물 잔뜩 왔단 얘기, 거기다 형부가 지분까지 넘겼단 말 듣고는 완전 말문이 막혔지 뭐야.”임지유는 특별한 반응 없이 조용히 연미혜 쪽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 묘한 여유가 스쳤다.손아림은
놀란 것도 잠시, 염성민은 이 자리에 김태훈과 유명욱까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보고 고개가 끄덕여졌다.‘유 교수님 정도 인맥이면... 연미혜가 이 자리에 있어도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지.’그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염용석 역시 아들과 이 자리에서 마주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물었다.“성민아, 고객 만나러 온 거야?”“네. 아버지.”그 대화를 들은 한명현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용석아... 이 청년이 네 아들이야?”염용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내 아들 녀석이야. 이렇게 우연히 얼굴을 보여주게 됐
유명욱의 무심한 반응에도, 임지유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부드럽게 웃었다.그리고 한명현과 박찬호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그녀는 일부러 한 사람 한 사람 따로 인사하진 않았다.국무위원급 인사들에게 먼저 나서서 일일이 인사하는 건 경우에 따라선 오히려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한명현과 박찬호의 시선은 이미 오래전부터 연미혜 쪽에 머물러 있었다.그들 역시 지철호처럼, 임해철과 임지유가 등장했을 때 연미혜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진 걸 알아차렸고 그 눈빛의 이유를 짐작
고창완은 정말로 화가 나 있었다.그는 경민준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연미혜를 바라보며 말했다.“가자! 미혜야, 할아버지가 밥 사줄게.”연미혜는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네.”그 말이 끝나자마자, 고창완은 경민준에게 다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연미혜와 함께 자리를 떴다.경민준은 여전히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차를 마셨고, 두 사람을 따라 나가지도, 붙잡지도 않았다.연미혜와 고창완이 함께 자리를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임지유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어떡해...”경민준은 개의치 않는 듯 말했다.“괜찮아. 시
경민준은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그래. 알겠어.]토요일 아침.연미혜는 차를 몰아 고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고씨 가문의 가족 대부분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저택에는 도우미 몇 명만 있을 뿐, 고창완 혼자 머무르고 있었다.연미혜가 도착하자, 고창완은 직접 현관까지 나와 반갑게 맞이했다.“우리 미혜 왔구나?”“할아버지, 정말 오랜만에 인사드려요!”연미혜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그의 얼굴에 여전히 기운이 있어 보이자 마음이 놓였지만 문득 걱정이 앞섰다.“많이 야위셨어요.”고창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좀 빠지긴
연미혜가 시선을 멈춘 방향을 따라가던 김태훈도 곧 경민준과 임지유를 발견했다.김씨 가문과 경씨 가문은 예전부터 교류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김태훈 역시 경씨 가문 본가에 가본 적이 없었고, 그 본가가 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경민준과 임지유를 본 그는 입꼬리를 비틀듯이 씰룩이며 말했다.“쟤네 둘은 왜 또 우리 눈앞에 나타난 거야? 여긴 또 왜 왔대?”연미혜는 시선을 거두며 덤덤히 말했다.“저기가 경씨 가문 본가로 들어가는 유일한 진입로예요.”연미혜가 무심히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김태훈은 순간 멈칫하더니
더군다나 그들 곁엔 경민준이 있다. 임지유에 대한 그의 애정과 신뢰를 생각하면, 두 사람의 결혼은 시간문제일지도 몰랐다.‘그렇게만 된다면 임씨 가문과 손씨 가문은 또 한 단계 위로 올라갈 테고 연씨 가문은 그 뒤를 쫓기도 힘들어질 거야!’한효진은 혼자 히죽 웃더니, 연미혜 쪽을 곁눈질하며 비웃듯 흘겨보았다. 그러고는 가족들과 함께 임지후를 남학생 기숙사로 데려다주었다.연유라의 짐 정리를 끝내고 학교를 나선 연미혜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 소리와 함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문을 열
반대편 룸 안.식사가 마무리되자 한명현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천재는 많이 봤지만 미혜 씨처럼 젊은 나이에 이렇게까지 성과를 낸 친구는 드물지. 그래서 여기 있는 아저씨 셋이 다 같이 한번 보고 싶다고 했던 거야. 혹시 불편했다면 미안하네.”말끝은 가볍지만 그 말이 지닌 무게는 만만치 않았다.한명현은 국방부 장관으로서 정계 실세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직접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곧 연미혜에 대한 ‘인정’이었다.연미혜는 몸을 바로 세우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과찬이십니다. 장관님, 이렇게 귀한 자리에 함께할
유명욱의 무심한 반응에도, 임지유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부드럽게 웃었다.그리고 한명현과 박찬호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그녀는 일부러 한 사람 한 사람 따로 인사하진 않았다.국무위원급 인사들에게 먼저 나서서 일일이 인사하는 건 경우에 따라선 오히려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한명현과 박찬호의 시선은 이미 오래전부터 연미혜 쪽에 머물러 있었다.그들 역시 지철호처럼, 임해철과 임지유가 등장했을 때 연미혜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진 걸 알아차렸고 그 눈빛의 이유를 짐작
놀란 것도 잠시, 염성민은 이 자리에 김태훈과 유명욱까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보고 고개가 끄덕여졌다.‘유 교수님 정도 인맥이면... 연미혜가 이 자리에 있어도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지.’그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염용석 역시 아들과 이 자리에서 마주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물었다.“성민아, 고객 만나러 온 거야?”“네. 아버지.”그 대화를 들은 한명현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용석아... 이 청년이 네 아들이야?”염용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내 아들 녀석이야. 이렇게 우연히 얼굴을 보여주게 됐
임지유는 이제 세인티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방금까지 자리에 없던 건 경민준 일행과 회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지유 언니!”손아림이 반갑게 달려와 임지유 옆에 붙었다. 그러곤 슬쩍 연미혜를 흘끗 바라본 뒤,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연미혜가 꽃 받았다고 아까는 으쓱대더니, 언니한테 꽃이랑 선물 잔뜩 왔단 얘기, 거기다 형부가 지분까지 넘겼단 말 듣고는 완전 말문이 막혔지 뭐야.”임지유는 특별한 반응 없이 조용히 연미혜 쪽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 묘한 여유가 스쳤다.손아림은
세인티로 향하던 차 안에서 연미혜의 휴대폰이 울렸다. 노현숙이 걸어온 전화였다.전화를 받자 익숙하고도 정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미혜야... 잘 지내지?”“그럼요. 할머니도 잘 계시죠?”“며칠 전에 다솜이가 그러더라. 너 요즘 일 많아서 밤샘도 한다고... 그래서 내가 며칠 전에 선물 받은 보약 좀 챙겨놨어. 곧 도착할 테니까 꼭 챙겨 먹어. 알겠지?”연미혜는 설령 거절해도, 노현숙은 끝까지 밀어붙일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더는 사양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감사해요. 할머니,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