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이 되어서야 쉴 틈이 생겨 점심도 먹게 되었다. 이때 연미혜의 핸드폰이 울렸다. 오후에 함께 스키 타러 가지 않겠냐는 차예련의 문자였고 문자를 작성하기 귀찮았던 연미혜는 음성으로 메시지를 보냈다.“나 오늘은 안 돼. 바빠서 못 가니까 너 혼자 가.”차예련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알았어.]그날 오후 연미혜는 유명욱의 서재에서 나와 물 한 잔 마시고 있을 때쯤 또 차예련의 문자를 받게 되었다. 이번에 받은 것은 사진 몇 장이었다. 사진 속에는 경민준과 임지유, 경다솜, 그리고 하승태와 수연이, 총 다섯 명이 찍혀 있었고 이
경다솜과 하승태 그들이 떠난 후 경민준은 임지유와 함께 차에 올라타 어느 한 식당으로 갔다. 그들이 예약한 룸에 도착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유명욱이 도착했다.“유 교수님.”유명욱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경민준과 임지유가 일어나 그를 맞이해 주었다. 임지유를 본 유명욱은 전혀 놀란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임지유는 공손하게 자기소개를 했다.“유 교수님, 안녕하세요. 전 임지유라고 해요. 전에도 인공지능 세미나에서 한번...”“알고 있어요.”유명욱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내밀어 임지유와 악수했다. 유명욱이 자리에 앉아 임지유도
임지유는 그만 당황한 표정을 짓고 말았고 이내 아랫입술을 짓이겼다. 이것은 그녀가 원한 대답이 아니었다. 유명욱이 문을 열고 나가려던 때 임지유가 빠르게 다가가 물었다.“교수님께서는 제가 뭘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유명욱은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말했다.“연구 자료와 인공지능에 관한 것을 더 많이 찾아보고 공부해요.”말을 마치자마자 통화하러 간 경민준이 돌아왔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명욱이 말했다.“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미 다 했고, 며칠 동안 내 연락을 기다려요.”경민준이 대답했다.“네.”말을 마친 유명
아마도 연미혜와 김태훈이 정말로 피곤해 보였는지 유명욱은 밤 9시가 되자 두 사람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바쁜 하루를 보낸 연미혜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샤워한 뒤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세인티 쪽에 문제가 생겨 그들이 처리해야 했다. 연미혜와 김태훈은 오후에 바로 세인티로 가버렸다. 도착하자마자 연미혜와 김태훈은 기술 쪽 문제를 맞이하게 되었고 염성민과 윤신재도 세인티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왔다.연미혜를 발견한 염성민과 윤신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윤신재가 눈썹을 꿈틀대며 말했다.“뭐야. 세인티 직원이었어요? 이런
다만 연미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계속 세인티의 기술팀 직원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김태훈의 말을 들은 장건식은 웃으며 말했다.“김 대표님, 이 두 분과 아는 사이예요?”“네.”여하간에 도원시의 상류사회는 대부분 2세대, 3세대였던지라 당연히 두 사람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과 걷는 길이 달라 친하지 않을 뿐이다. 염성민과 그들은 김태훈과 인사를 한 뒤 장건식과 한쪽으로 가면서 일 얘기를 했다.임지유는 따라가지 않고 김태훈의 옆에 남아 있었고 당연히 연미혜도 발견했지만 그저 힐끗 보기만 할 뿐 연미혜의 존재를 무시하며
염성민이 물었다.“저 여자랑 친해요?”염성민의 말을 들은 임지유는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살짝 떨렸다. 연미혜는 확실히 예쁘게 생겼던지라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염성민이 연미혜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매장에서 들었던 대화와 연미혜를 대하던 염성민의 태도를 떠올리면 또 아닌 것 같았다.임지유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별로 안 친해요. 왜요?”염성민은 연미혜와 김태훈이 사라진 곳을 힐끗 보았다.“김태훈 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보니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서요.”임지유는 담담하게 말했다.“전 잘 몰라요.
연미혜는 김태훈의 미소를 보고는 바로 염성민을 남몰래 비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네.”김태훈이 연미혜에게 아주 잘해준다는 것을 발견한 임지유는 미간을 구겼다. 염성민은 비록 저녁 식사 함께할 시간이 없다고 했지만 맴버가 이미 정해졌던지라 연미혜와 김태훈 그들과 함께 회사 로비로 내려가 밖을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이때 임지유는 누군가의 연락을 받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민준 씨가 도착했다고 했으니까 저도 같이 내려가요.”그들이 로비로 내려왔을 때 경민준은 이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을 보자
연미혜는 멈칫하며 경다솜에게 물었다.“언제 가고 싶은데?”“그건...”경다솜은 조금 망설이게 되었다. 연미혜는 경다솜이 일부러 임지유와 경민준이 시간이 없을 때 그녀와 가자고 할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임지유와 경민준이 언제 바쁜지를 몰랐기에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연미혜는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괜찮아. 가고 싶을 때 엄마한테 말해. 엄마도 시간이 되면 가줄 테니까.”경다솜은 아주 기뻤다.“네!”그녀는 한 주 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다.어느새 금요일 저녁이 되고 연미혜는 전보다 일찍 퇴근한 상태였다. 집으로 돌
놀란 것도 잠시, 염성민은 이 자리에 김태훈과 유명욱까지 함께 있다는 사실을 보고 고개가 끄덕여졌다.‘유 교수님 정도 인맥이면... 연미혜가 이 자리에 있어도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지.’그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염용석 역시 아들과 이 자리에서 마주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 물었다.“성민아, 고객 만나러 온 거야?”“네. 아버지.”그 대화를 들은 한명현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용석아... 이 청년이 네 아들이야?”염용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내 아들 녀석이야. 이렇게 우연히 얼굴을 보여주게 됐
임지유는 이제 세인티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방금까지 자리에 없던 건 경민준 일행과 회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지유 언니!”손아림이 반갑게 달려와 임지유 옆에 붙었다. 그러곤 슬쩍 연미혜를 흘끗 바라본 뒤,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연미혜가 꽃 받았다고 아까는 으쓱대더니, 언니한테 꽃이랑 선물 잔뜩 왔단 얘기, 거기다 형부가 지분까지 넘겼단 말 듣고는 완전 말문이 막혔지 뭐야.”임지유는 특별한 반응 없이 조용히 연미혜 쪽을 바라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 묘한 여유가 스쳤다.손아림은
세인티로 향하던 차 안에서 연미혜의 휴대폰이 울렸다. 노현숙이 걸어온 전화였다.전화를 받자 익숙하고도 정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미혜야... 잘 지내지?”“그럼요. 할머니도 잘 계시죠?”“며칠 전에 다솜이가 그러더라. 너 요즘 일 많아서 밤샘도 한다고... 그래서 내가 며칠 전에 선물 받은 보약 좀 챙겨놨어. 곧 도착할 테니까 꼭 챙겨 먹어. 알겠지?”연미혜는 설령 거절해도, 노현숙은 끝까지 밀어붙일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더는 사양하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감사해요. 할머니, 꼭
그날 저녁, 일정이 있었던 하승태는 공적인 이야기를 마친 뒤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회의실을 나서기 전, 그는 연미혜를 한 번 바라보았다.그 시선을 느낀 연미혜가 고개를 들었다.“하 대표님, 혹시 더 하실 말씀이라도...”내일이 발렌타인데이라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그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연미혜는 지금 온통 일에만 집중해 있었고, 발렌타인데이 같은 기념일은 아예 잊고 지내는 듯했다.다음 날 아침.연미혜는 늘 그렇듯 조금 이른 시간에 출근했다.회사에 도착해 사무실 쪽으로 향하던 중, 동료
연미혜는 차에서 내린 후 차 문을 닫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경민준의 손에 들린 우산을 가져가며 차분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경민준은 시선을 내리더니 그녀의 발을 훑어보며 조용히 물었다.“발은 괜찮아?”‘좀 아프지만 걸을 수는 있어.’그녀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고, 오늘 경민준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굳이 알고 싶지 않았다.그저 우산을 펼치며 담담히 말했다.“이혼 절차는 어떻게 되어가? 정리되면 그때 연락해.”그 말은 곧 이혼에 관련된 일 외엔 연락하지 말라는
연미혜는 얼굴빛이 살짝 굳었다.“이러지 말고... 나 좀 내려놔.”그러나 경민준은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우산 단단히 잡아.”그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연미혜를 그대로 안은 채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고, 고개를 살짝 돌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한마디 남겼다.“먼저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따로 뵙죠.”경민준과 안면이 있는 몇몇 기업 대표들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모두가 알다시피, 연미혜와 김태훈의 관계는 넥스 그룹 안팎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이였다.게다가 오늘처럼 정부 주최 간담회에 김태훈 대신 연미혜가 공식 대표로 참
염성민은 오늘 있었던 일을 지현승에게 간단히 전했다.곧 지현승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아버지랑 할아버지는 미혜 씨하고 미혜 씨 외할머님에 대해 인상이 꽤 좋으셨어. 아마 그래서일 거야.]지현승의 말대로라면 지철호가 연미혜를 신경 쓰는 데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얘기였지만 염성민은 여전히 뭔가 석연치 않았다.‘아무리 좋은 첫인상이었다 해도, 겨우 한두 번 본 사이에 그 정도로 각별할 수 있을까?’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현승에게 더 따져 묻는 건 의미 없었다.날씨 예보에 따르면 오늘 오후부터 비가 내릴 거라고 했
간담회가 끝난 뒤, 정부 측에서 참석한 기업 대표들에게 준비한 오찬 자리가 이어졌다.연미혜는 조용히 짐을 챙겨 일어났고, 경민준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곧 뒤따라 나왔다.회의실을 나서던 중, 염성민은 회의에 함께 참석했던 지철호를 발견하고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지씨 가문과 염씨 가문은 원래부터 교류가 있는 편이었고, 염성민과 지철호 역시 자주 마주치는 사이였다.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던 연미혜는 잠시 주춤했지만 곧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 지철호에게 고개를 숙였다.“장관님, 안녕하세요.”지철호는 눈가에 미소를
퇴근 후, 연미혜와 김태훈이 유명욱의 자택에 도착했을 때, 그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심각한 얼굴로 통화를 이어가던 유명욱은 두 사람이 들어서는 걸 보고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이번 연구 내용은 꽤 인상 깊었어. 너를 한 번 만나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몇 있어. 이번 기회에 소개해 줄게.”연미혜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히 대답했다.“알겠습니다.”이번 연구는 국가 연구 과제로 정식 채택되었고, 이후의 행정적 절차나 관련 사항도 그 자리에서 간단히 조율되었다. 두 사람은 유명욱에게 남은 질문들을 이어가며 늦게까지 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