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다.경민준이 몇 년 전에 결혼했다는 소문이 무성했지만 아내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심지어 결혼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다.뭐가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감히 물어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그런데 경민준이 먼저 딸을 언급하자 다들 깜짝 놀랐다.물론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도 하나같이 말을 아꼈다....저녁을 먹고 나서 경다솜은 연미혜가 집에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하지만 9시가 넘어 샤워까지 마쳤는데도 감감무소식이었다.그녀는 밖에서 나는 인기척에 모든 주
이때, 벨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우연히 고개를 돌린 연미혜는 식탁 위에 놓인 경민준의 휴대폰 화면에 뜬 ‘자기’라는 두 글자를 발견했다.사실 딱히 신경 쓰이지 않을 줄 알았다.오랫동안 사랑해온 만큼 쉽게 단념할 수 있는 건 아닌 듯싶었다.유난히 눈에 거슬리는 단어 때문에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경민준은 고개를 드는 순간 상처받은 그녀의 표정을 눈치챘지만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받고 부드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왜?”경다솜도 경민준에게 주의를 빼앗겼다.아빠는 항상 지유 이모를 대할 때마다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거로 기억
“팀장님...”연미혜가 손을 내밀었다.“그동안 감사했어요.”비록 어안이 벙벙했지만 손을 뻗어 악수했다.“별말씀을요.”잠시 후, 연미혜는 짐을 싸서 회사를 나섰다.강철우는 그녀가 떠났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뭐해?”정시원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연미혜가 퇴사했어.”정시원은 흠칫 놀랐다.“진짜?”정말 회사를 떠났다고? 그게 말이 되나?이내 코웃음을 쳤다.“지금 떠났다고 해서 나중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법은 없잖아. 두고 봐, 며칠 뒤에 어르신의 도움으로 복귀할 테니까.”강철우는 묵묵부답했다.이유
다음 날.차예련이 열이 내리고 나서야 연미혜는 집으로 돌아갔다.내일 저녁 모임에 입고 갈 드레스도 얼른 준비해야 했다.오후가 되자 그녀는 집을 나섰다.고급 드레스 숍에 도착하니 점장과 점원 몇 명이 한 드레스를 둘러싸고 분주하게 움직였다.연미혜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죄송합니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좀 둘러볼게요.”“네.”경씨 가문에 시집와서 여태껏 모임에 참가한 적이 거의 없었다.설령 공식 석상에 얼굴을 비칠 일이 있다고 해도 경민준과 심여정은 그녀를 데려가지 않았다.
연미혜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임지유? 오빠가 말한 사람이 임지유였어요? 혹시 얼마 전에 아이리스에서 돌아왔나요?”김태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맞아. 알아?”“제 이복동생이에요.”김태훈은 깜짝 놀랐다.그녀의 가정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공교로운 줄은 몰랐다.연미혜는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한마디 보탰다.“또한 경민준의 외도 상대이기도 하죠.”차가 급정거했다.김태훈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뭐?”연미혜가 대답했다.“괜찮아요.”이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권력
그들이 도착했을 때 연회장에는 이미 손님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외모가 뛰어나고 기품이 있는 연미혜가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많은 손님들의 시선을 끌었다.연회 주최자는 김태훈과 아는 사이였기에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웃으며 맞이했다.주최자가 김태훈과 연미혜에게 인사를 하려 할 때 연회장 입구에 또 다른 손님이 도착했다.그 손님을 본 주최자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듯 멈칫했다.연회장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도착한 사람들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연회장 입구를 등지고 있는 연미혜와 김태훈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연미혜도 처음에는 많이 놀랐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많은 사람들이 경민준 일행 쪽으로 몰려들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에 경민준은 연미혜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연미혜가 겉으로 보기에 온화하고 얌전해 보이지만 속은 얼마나 강인하고 결단력이 있는 사람인지 김태훈은 잘 알고 있었다.전문 분야에서 그녀는 관심만 생기면 일심전력으로 몰두했고 연구 결과가 시장에서 효용성이 없더라도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였다.시도해보기 전에는 쓸모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감정적인 부분에서도 연미혜는 같은 생
김태훈이 대답하기도 전에 연미혜는 누군가 인사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가 임지유와 시선이 맞닥뜨렸다.입가에 예의 바른 미소를 머금고 있던 임지유는 연미혜를 발견하는 순간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갔다.이내 눈길을 피하고 그녀를 무시한 채 김태훈을 향해 웃으면서 말을 걸려고 했다. 하지만 김태훈은 입꼬리를 올리며 연미혜를 바라보더니 먼저 입을 열었다.“미혜야, 임지유 씨랑 인사 나눌래?”그의 말에 세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첫째는 연미혜와 사이가 돈독하다는 것.둘째는 두 여자의 원한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셋째는 바로 입장
그럴 경우 경다솜은 경씨 가문에서 새해를 보내야 할 확률이 높았다.허미숙은 마음속으로 경다솜을 떠나보낼 수 없었지만, 동시에 연미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연미혜는 침착하게 할머니에게 말했다.“할머니, 솜이가 행복하기만 하면 전 괜찮아요.”허미숙은 연미혜가 자신이 걱정할까 봐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다고는 걸 느꼈다.허미숙은 한숨을 쉬며 다시는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아침 식사를 마친 연미혜와 하여진은 함께 새해 선물을 사러 나섰다.밖은 조명으로 장식되고 친숙한 새해 노래가 곳곳에서 들리며 새해 전야의 분위기가 풍기고
넥스 그룹의 리셉션은 사흘 뒤에 열렸다.그날 저녁, 하승태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주변에 임지유, 경민준, 염성민 등이 보이지 않아서였는지, 이번 리셉션은 별다른 소란 없이 차분하게 흘러갔다.그날 밤, 참석자는 많았고 연미혜와 김태훈은 쉴 틈 없이 바빴다. 그래서인지 하승태에게 특별히 신경을 쓸 겨를은 없었다.리셉션 중간에 연창훈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하승태를 보고서야 그들은 그가 일찍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하필이면, 오늘 밤은 임씨 가문 쪽에서도 리셉션이 열리는 날이었다.하승태가 이렇게 일
염성민은 무심하게 물었다.“둘이 무슨 얘기를 하고 계셨죠?”경민준은 웃었다.“아직 할 얘기가 더 있긴 합니다만...”염성민이 말을 하기도 전에 인사할 기미가 전혀 없었던 연미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곧장 그를 지나쳐 자리를 떴다.염성민은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연미혜에게 시선을 거두었고 경민준이 들고 있는 두 잔의 와인을 발견하고는 물었다.“이게 뭐죠?”“특별 제작한 와인이라고 할 수 있죠. 염성민 씨도 한잔 마셔보시겠어요?”염성민이 물었다.“다른 한 잔은 임 대표를 위한 건가요?”“네.”염성민이 말하려던 찰
경민준과 임지유를 본 후, 하승태의 시선은 곧바로 연미혜에게로 향했다.두 사람을 마주하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는 그녀를 보며, 그는 고개를 숙여 가볍게 웃었다.“잠깐 저쪽에 다녀올게요.”연미혜와 김태훈은 고개를 끄덕였다.하승태가 경민준과 임지유 쪽으로 가 몇 분간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즈음, 염성민이 도착했다.임지유를 본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임지유도 염성민을 보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염 대표님, 안녕하세요.”“지유 씨, 반갑네요.”그동안 바쁜 일정에 치여 임지유를 보지 못했던 염성민
임지유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연미혜를 향한 하승태의 부드러운 태도는 모두 넥스 그룹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했고 정범규 또한 그녀와 생각이 같았다.한편, 임지후가 연미혜를 본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저분은 승태 형님의 여자 친구인가요?”“콜록콜록!”그의 말을 들은 정범규는 기침하며 답했다.“무슨 여자 친구? 두 사람은 그런 관계가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임지후는 도원시에 막 도착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다.그들은 임지후가 예쁜 연미혜와 훤칠한 하승태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임지후가 말했다.“모두가 누나를 존경하는 것 같아요.”그를 맞이하는 사람은 임지후의 조금 전 한마디에 웃음을 지었다.“그야 당연하죠. 임 이사님은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고 우리 팀원 모두가 이사님을 따르고 있어요.”게다가 임지유와 경민준의 관계 덕분에 팀 내의 복지 또한 매우 좋았다.물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상대방의 입에서 누나의 칭찬을 들은 임지후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으로 크나큰 자부심을 느꼈다.하지만 그는 임지유가 일하는 중에 들어가서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다른 곳도 보여주세요.”“네.”밖으로 나가려
온진명과의 협상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이틀 뒤, 양측은 계약서에 서명을 마쳤고, 온진명은 다음 일정을 위해 넥스 그룹을 떠났다.반나절 내내 업무로 지친 연미혜와 김태훈은 회의실로 돌아와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잠깐 숨을 돌리고 있었다.그때 전아현이 무거운 파일을 안고 들어와 탁자 위에 툭하고 내려놓았다.“이번 주까지 도착한 연말 파티 초대장이에요.”서른 장은 족히 되어 보이는 두툼한 초대장 뭉치 안에는, 염성민, 하승태, 경문 그룹, 세인티에서 보낸 초대장도 섞여 있었다.연미혜와 김태훈이 대충 훑어보던 중, 임씨 가문에서
하지만 임해철 일행은 이미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던 터라 갓 차에서 내린 김태훈을 보지 못했다.김태훈은 시선을 거두고 온진명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온진명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바로 그때 경민준이 도착했다.차에서 내리던 그를 발견한 온진명이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경 대표님! 이런 기막힌 우연이 또 있네요!”경민준은 연미혜와 김태훈이 있는 것을 보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는 미소 지으며 다가와 온진명과 악수를 했다.“온 대표님, 도원시에 언제 오신 겁니까?”
막 협력사 대표인 온진명을 맞이하려던 찰나, 연미혜는 예상치 못한 얼굴을 발견했다.온진명의 뒤편에 임해철이 있었다.연미혜는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그를 본 순간에도 표정 변화 하나 없었지만, 그 곁에 있던 열일곱,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흠칫 했다.“엄마! 누나! 나랑 아빠 여기 있어!”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연미혜는 발걸음을 멈췄다.그리고 곧바로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아챘다.고개를 돌리자, 손수희와 임지유의 얼굴이 보였다. 임지유는 얌전히 웃고 있었고, 손수희도 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