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사람들 눈에 침묵은 곧 인정과도 같은 법. 소은해는 손은하와 “연인” 사이가 되고 말았다.손은하가 할리우드에서 연기 생활을 시작하고 오스카에서 상까지 탄 뒤에야 회사는 슬그머니 두 사람이 바쁜 스케줄로 자연스레 헤어지게 되었으며 좋은 동료이자 오빠 동생 사이로 남게 되었다는 찌라시를 흘렸고 그렇게 손은하는 소은해의 전 여친이 되어 버렸다.어차피 수많은 연애를 거친 소은해에게 손은하 한 명 더 추가되는 건 별일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었던 건데 손은하 그 여자가 김하늘을 직접 찾아갈 줄이야!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야?소은해가 다가갈 수록 왠지 모르게 피하는 김하늘 때문에 두 사람의 사이는 살얼음판이나 마찬가지였다.이런 상황에서 손은하까지 수작을 부린다면 김하늘은 더 멀리 도망칠 게 분명할 터...소은해가 씻고 있던 야채를 홱 던져버리고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 씩씩거리자 그의 뒤를 이어받아 채소를 다듬던 전동하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물었다.“사실 제가 손은하 씨에 대한 정보를 좀 알고 있는데... 좀 알려드릴까요?”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소은해의 시야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전동하가 보였다.“이제 가족인데... 그 정도는 충분히 알려드릴 수 있죠.”뻔뻔한 전동하의 모습에 소은해가 웃음을 터트렸다.역시... 양의 탈을 쓴 여우구만. 지금 내 약점 하나 잡았다 이거지? 은정이 이 자식... 왜 하필 이런 자식들만 만나고 난리야...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던 그때 소찬식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내가 좀 도와줄까?”하지만 눈동자를 빠르게 돌리던 소은해는 눈부신 미소와 함께 전동하 손에서 야채를 빼앗았다.“아니요. 저랑 매부면 충분해요!”마침 주방을 지나던 소은정 역시 이 말을 듣고 발걸음을 멈추었다.뭐야? 며칠 전까지 마음에 안 들어 하던 거 아니었어? 갑자기 왜 저런대? 하여간 남자들이란... 단순한 척 하면서도 복잡해...약 40분 뒤, 새 식탁에 진수성찬이 차려졌다.레스토랑 못지 않은 플레이팅에 소찬식
소은정의 질문에 한숨을 푹 내쉰 전동하가 진지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그냥 은정 씨랑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싶어서요. 할 수만 있다면 은정 씨 명의로 된 부동산 전부를 알아내서 그 옆에 제 집도 사두고 싶은 마음이에요.”그의 말에도 애매한 표정을 짓던 소은정이 물었다.“거성 프로젝트가 끝나면 동하 씨는 아마 미국으로 돌아가겠죠?”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의 잘생긴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롱디는 걱정하지 말아요. 아시아 시장이 차세대 다크호스라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에요. 전 한국에 더 있고 싶은데요?”그의 대답에 소은정은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괜히 그가 떠나길 바라는 꼴이 되어버릴까 봐 더 묻지 않았다.전동하가 뭔가 더 말하려던 그때 전동하의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하던 전동하가 미간을 찌푸린 채 수락 버튼을 눌렀다.잠시 후 통화를 마친 전동하가 말했다.“급한 사정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보고 싶으면 전화해요.”“얼른 가요.”전동하는 소은정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에야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떠난 뒤에도 집안에 전동하의 향기가 남은 것 같은 기분에 소은정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며칠 뒤, 소은정은 파티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하필 전동하와 데이트를 하려고 약속한 날이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전동하가 문자를 보내왔다.“데이트 장소 바꿀까요?”그리고 첨부된 이미지에는 그녀와 똑같은 초대장이 담겨있었다.문자를 확인한 소은정이 미소와 함께 답장을 전송했다.“좋죠.”전동하와의 연애는 적당히 달콤했고 적당히 편안했다.연애가 이런 기분이었나? 왜 이제까지 다가오는 남자들을 밀어내기만 했을까 라고 생각하는 소은정이었다....한편 태한그룹.한지산에서 돌아온 박수혁은 바로 해외로 출장을 나가는 등 살인적인 스케줄을 수행하고 있었다.매일 잠 한 숨, 밥 한 술 뜰 시간도 부족했지만 밤이 깊으면 소은정에게 잘 자라는 문자를 보내는 건 잊지 않았다.물론 문자에 대답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적어
소씨 일가에서 소은정을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까지 보냈다는 말에 이한석도 혀를 내둘렀었다.전세기를 한번 띄우는 데 드는 돈도 돈이지만 구청에서 허가를 내준 것만 해도 SC그룹의 기부금 또한 결코 적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그럼에도 인터넷에 SC그룹에 관한 기사 한 줄 찾아볼 수 없는 건 그쪽에서 일부러 이 사실을 누르고 있다는 뜻이겠지.이한석의 대답에 침묵하던 박수혁이 고개를 들었다.그의 손목에 걸린 은색 시계가 박수혁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듯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내가 물은 건 SC그룹이 아니라 은정이야.”그제야 흠칫하던 이한석이 대답했다.“오 집사가 가보았는데 많이 다치신 것도 아니고 지금은 이미 퇴원하셨답니다.”하지만 그의 대답에도 박수혁은 여전히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하, 결국 못 숨기겠네. 하긴, 숨기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결국 알게 되실 거야.두 눈을 질끈 감은 이한석이 대답했다.“그리고...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소은정 대표님과 전동하 대표가 사귀고 있다고 합니다.”역시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박수혁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순식간에 사무실 온도가 3 섭씨도 쯤은 내려간 것 같은 기분에 이한석이 몸을 움찔 떨었다.어느새 호흡까지 거칠어진 박수혁이 이를 갈았다.“그런데 왜... 바로 보고하지 않은 거지?”박수혁의 질문에 망설이던 이한석이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도대체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서 그만...”이한석의 대답과 함께 박수혁이 책상 위에 올려둔 물건을 전부 뒤엎었다.파일더미와 함께 고가의 인테리어 소품들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윽, 역시... 이러실 줄 알았어... 이제부터 전쟁인 건가?“이렇게 중요한 일을 숨겨?”정말 화가 난 건지 눈까지 빨개진 박수혁의 모습에 이한석이 고개를 푹 숙였다.“죄송합니다.”책상을 다 쓸어버리고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자리에서 일어선 박수혁이 책상 다리를 쾅 걷어찼다.고개를 든 박수혁이 단 일말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혐오 섞인 얼굴로 손은하를 훑어보던 박수혁은 한 발 뒤로 물러서더니 바로 돌아섰다.하지만 손은하가 다시 한발 다가섰다.“박 대표님,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는데 들어갔다 가시죠.”손은하의 손끝이 박수혁의 소매를 스치려했지만 박수혁은 마치 쓰레기라도 잡는 듯 팔을 홱 뽑아냈다.“손은하 씨, 연예계 생활 똑바로 하고 싶으면 가만히 있어요.”박수혁의 차가운 경고에 손은하의 머리를 자리잡았던 추잡한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성큼성큼 멀어지는 박수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손은하가 아쉽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됐어. 어차피 소은해가 있으니까!”오피스텔에서 나온 박수혁은 소은정의 본가로 달려가다 갓길에 끼익 차를 세웠다.소은정의 그 맑은 눈동자를 보면, 진실을 정말 알게 되면 진짜로 무너질 것만 같았다.박수혁의 집.소은정이 없는 집은 유난히 차갑고 휑하게 느껴졌다. 코트를 아무렇게나 소파에 벗어둔 박수혁은 털썩 주저앉아 마음을 눅잦혔다.터벅터벅이때 2층에서 무거운 발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대표님, 오셨어요?”오한진 특유의 깐족거리는 목소리에 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오 집사가 왜 아직도 집에 있는 거죠?”박수혁의 질문에 오한진이 머리를 긁적였다.“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전 당연히 여기 있어야죠...”내가 박 대표님 집사인데 어딜 가라는 거지?“은정이 연애하는 거... 나한테 숨겼던데요? 오 집사 아이디어죠?”무슨 상황인지 알아보라고 병문안까지 보냈는데 감쪽같이 날 속여?박수혁의 차가운 표정에 오한진의 얼굴이 바로 창백해지더니 조심스레 다가갔다.“대표님, 한석이 너무 꾸짖지 마세요. 한석이 걔 성격 아시죠? 걔는 감히 대표님 속일 생각도 못해요!”오한진의 설명에도 박수혁은 차가운 눈빛으로 노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오한진은 말을 이어갔다.“제가... 제가 숨기라고 한 거 맞습니다. 어차피 이미 사귀게 된 거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때 말씀드리려고...”“시간이 더 지나면? 어느 정도로 지나면? 결혼하고 애까지 낳은 뒤
지금 당장이라도 오한진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오한진의 말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이 자식을 정말 계속 믿는 게 맞는 걸까...망설이던 박수혁이 차가운 눈동자로 오한진을 훑어보았다.“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일단 한석이부터 다시 불러들이시죠.”하, 이 자식이 이제 나랑 딜까지 하려고 해?박수혁의 언짢은 표정을 눈채친 걸까? 오한진이 대답했다.“솔직히 은정 대표님... 대표님보다 한석이한테 훨씬 더 친절하게 말씀하시잖아요...”또 한번의 팩폭에 박수혁이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냥 두 분 사이에서 말만 전하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한참 뒤에야 박수혁이 코웃음과 함께 말했다.“그래. 대신 벌로 올해 보너스는 없는 거야. 얼른 다시 돌아오라고 해.”“역시. 대표님이 가장 착하십니다!”박수혁의 비수 같은 눈빛에 오한진은 오금이 저리는 기분이었다.등은 식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고 다리에는 힘이 풀려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아마 1초만 늦었더라면 바로 밑천이 드러났을지도?한석아, 이번에는 형이 너 살린 거다!소파에서 일어서서 2층으로 올라가던 박수혁이 멈칫했다.“이 비서처럼 잘리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겁니다.”이한석의 능력과 충성도는 분명 대단했지만 이 바닥에서 대체할 수 없는 인재란 존재하지 않는 법.태한그룹에 그런 사람은 항상 넘쳐났으니까.하지만 오랫 동안 함께 일했으니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만은 사실. 갑자기 사람이 바뀌면 불편해질 테니 계속 남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잠시 후, 오한진이 떨리는 손으로 이한석에게 전화를 걸고 이한석은 사무실 개인 용품을 담은 수납상자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박수혁이 방금 전 조사한 사실을 박수혁에게 전송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다시 한번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대 져버리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한편, 무표정한 얼굴로 문자를 바라보던 박수혁은 바로 첨부한 파일을 클릭했다.하지만
원래 함께 오기로 한 전동하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혼자 참석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이때 신한그룹 회장이 다가왔다.“소은정 대표님, 와주셨네요. 정말 영광입니다.”싱긋 미소 짓던 소은정이 들고 있던 선물 상자를 회장의 뒤에 서 있는 비서에게 넘겼다.“아닙니다. 저야말로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상자를 힐끗 바라본 신한그룹 회장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고가인 한정판 여성 시계... 안면도 없는 딸을 위해 10억이 넘는 시계를 선물하다니...파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거물급 인사들이 하나둘씩 도착하기 시작했다.“오늘 모신 분들이 워낙 많아 제대로 모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신한 대표의 미안한 듯한 미소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이려던 그때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은정 대표님은 제가 모시도록 하죠.”고개를 돌리니 윤시라가 그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화려한 레드 드레스를 입은 윤시라는 풍만한 가슴 노출은 물론 옆트임까지 시원하게 나있어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흰 다리가 아찔하게 드러났다.섹시를 넘어 왠지 천박하게 보이는 옷차림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던 그때 신한그룹 회장이 환한 미소와 함께 소개를 시작했다.“소 대표님, 이쪽은 새로 취임한 저희 회사 CEO 윤시라 씨입니다. 전에는 신포그룹에서 일하던 인재였는데 제가 바로 스카우트해 왔죠. 그럼 소은정 대표님은 시라 씨가 모시도록 해요.”말을 마친 신한그룹 대표는 바로 다음 손님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윤시라를 훑어보던 소은정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CEO라...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나 보네요?”이에 윤시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대표님 덕분에 신포그룹에서 나오고 이런 좋은 일이 생겼네요.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더니 그 말이 맞나봐요.”윤시라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소은정을 향해 와인잔을 들었다.이제 신포그룹 직원이 아니니 박수혁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SC그룹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없으니 소은정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생
아니, 안 궁금한데...솔직히 파트너고 뭐고 윤시라와는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이런 귀찮은 여자가 들러붙을 줄 알았으면 그냥 안 오는 거였는데...“관심없는데요?”소은정의 시큰둥한 대답에 윤시라가 머리를 넘기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오늘 전동하 대표님도 파티에 오시는 거 모르세요?”전동하의 이름에 소은정이 발걸음을 멈추었다.“설마 지금 그쪽 파트너가 전동하 대표라는 건가요?”“네. 실망하셨나요? 이제 곧 올 텐데 얼굴이라도 보고 가시죠?”돈으로도 싸움으로도 밀린다면 기분이라도 더럽게 만들고 싶은 윤시라가 대충 지어낸 거짓말이었다.그래. 당장 화를 내. 내 머리채라도 잡으라고!한편 소은정은 묘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그러게요. 정말 놀랍네요.”방금 전까지 함께 입장을 못해 미안하다던 남자가 네 파트너라고? 잠시 후에 동하 씨가 정말 나타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한데?짐짓 부끄러운 듯 교태를 부리던 윤시라가 말을 이어갔다.“대표님을 좋다고 하는 남자가 어디 한둘인가요? 한 명 정도는 저한테 내주셔도 괜찮으시죠? 사실 신포그룹에서 나오고 많이 힘들었거든요. 전 대표님 덕분이 그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답니다. 뭐랄까... 전생에 몸과 마음이 하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면에서 다 맞는달까요? 전 대표님 응원 덕분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소은정이 그토록 무시하는 그녀가 남자를 빼앗아 갔다는 사실에 어떤 표정을 지을지 너무나 기대됐다.어서 화내... 실망해... 분노하라고.하지만 말도 안 되는 윤시라의 “소설”에 소은정은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윤시라가 왜 웃냐고 물으려던 그때 소은정이 누군가를 향해 손을 저었다.돌아선 윤시라의 눈동자에 전동하의 모습이 들어왔다.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분위기, 기업가가 아닌 학자나 시인에 가까운 모습에 잠깐 넋을 잃었던 윤시라는 곧 미간을 찌푸렸다.뭐야? 거짓말이 들통나게 생겼잖아? 어쩔 수 없지 뭐.윤시라가 섹시한 미소와 함께 전동하에게 다가갔지만 그는 윤
아니야. 저 정도로 젠틀한 분이시면 대충 넘어가 주실 거야...윤시라가 어떻게든 핑계거리를 찾아내려던 그때 소은정이 바로 전동하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풀고 카톡을 열어보았다.역시나 윤시라의 연락처는 저장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소은정이 고개를 돌리자 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은정 씨가 거드니까 그날 추가는 했지만 바로 지웠어요. 뭐 개인적으로 연락할 일도 없고요.”순간 윤시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사실 전동하가 그녀를 삭제했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 친구 추가 요청을 보내도 받아주지 않는 그의 모습에 더 짜증이 났었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될 줄이야...!얄팍한 거짓말이 전부 들통나고 윤시라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었다.휴대폰을 전동하에게 돌려준 소은정이 차갑게 웃었다.“윤시라 씨. 망상도 병이에요. 원한다면 제가 잘 아는 정신과 의사 소개해 드릴게요.”윤시라가 뭐라고 또 반박하려던 그때, 소은정은 더 이상 그녀와 대화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돌아섰다.그러자 윤시라는 바로 타깃을 전동하에게로 돌렸다.잔뜩 억울한 표정으로 눈을 깜박이던 윤시라가 묘한 눈빛을 보냈다.“소은정 대표님 왜 저렇게 화가 나신 거죠? 제가 또 뭘 잘못한 건가요? 사실... 저번에 있었던 일 제대로 사과드리려고 한 건데...”하지만 전동하는 바로 그녀의 말을 잘라버렸다.“연기는 그만하죠. 부끄럽지도 않습니까?”그가 도착하기 전 윤시라가 어떤 말로 소은정을 도발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지만 오늘 같은 날 얼굴을 붉히지 않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체면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하지만 전동하는 자신의 여자친구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걸 보고서도 가만히 넘어갈 정도로 성인군자가 아니었다.그의 젠틀함은 친한 사람들에게만 보여주는 것뿐. 여러 번이나 선을 넘어오는 윤시라에게는 친절함을 베풀 의미가 없었으니까.말을 마친 전동하는 수치심으로 빨갛게 물든 윤시라만을 남겨둔 채 소은정의 그림자를 찾기 시작했다.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