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하의 깊은 눈동자와 따뜻한 손길에 소은정의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은정 씨가 사과할 일 아니에요. 때가 되면 제가 직접 설명할게요. 은정 씨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요.”사랑이 가득 담긴 그의 시선이 왠지 쑥스럽고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리려다 너무 내숭을 떠는 건가 싶어 대신 고개를 들었다.“아니요. 일단 숨겨요. 마이크 스스로 알아채기 전에는 비밀로 해요. 어른들 편하자고 마음대로 밝히는 건... 마이크한테 너무 불공평하잖아요.”다른 일도 아니고 출생의 비밀에 관한 일이다. 가뜩이나 예민한 시기, 그 아이에게 진실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으로 다가갈 수도 있으니까.마이크를 배려해 주는 소은정의 예쁜 마음에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또래보다 똑똑한 마이크라면 아마 곧 스스로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지도 모르겠지만...전동하는 소은정의 휠체어를 창가로 옮긴 뒤 방금 전 꽃집에서 사온 백합을 화병에 꽂았다.꽃향기를 느끼며 미소를 짓는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의 마음도 흐뭇해졌다.전동하와 소은정의 사이는 여느 갓 사귄 커플처럼 불같이 뜨겁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 사귀기 전과는 뭔가 달라져있었다.소은정도 전동하도 서로가 노력하고 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고 행동 하나하나 그녀를 배려하며 조금씩 다가오는 전동하가 소은정도 싫지 않았다.잠시 후, 소찬식이 소은호를 대동한 채 허둥지둥 병원으로 달려왔다. “은호야, 은정이 몸 안 좋으니까 퇴원하기 전까진 회사 업무 네가 다 맡아서 하도록 해.”어차피 피할 수도 없으니 대신 즐기기로 하는 소은호였다.은정 이 자식... 워커홀릭인 것 같다가도 은근히 농땡이를 잘 피운단 말이지.잠시 후, 병실문을 벌컥 연 두 사람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휠체어에 앉은 채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고 있는 소은정.그리고 책상 위에 놓인 아이패드와 아이패드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그녀의 옆에서 사과를 깎고 있는 전동하는 사과조각 하나를 포크에 꽂아 소은정에게 건넸다.“아...”소은정은 시선은 아이패
소찬식의 막연한 시선에 분위기가 어색해졌다.아무리 딸이 귀하다지만 떡하니 옆에 있던 사람을 못 봤을 리가 없을 테고...아, 장인어른의 테스트인 건가?전동하는 바로 소찬식의 의도를 눈치챘다.평소였다면 소은정의 생명의 은인이라며 누구보다 더 고마워했겠지만 전동하와 소은정의 사이가 미묘하게 달라진 걸 소찬식은 직감적으로 느낀 듯했다.하지만 전동하는 화를 내기는커녕 솔직하게 대답했다.“아닙니다. 은정 씨와 대화하고 계셔서 제가 일부러 인기척을 내지 않았으니까요.”전동하의 지혜로운 대답에 소은호가 눈썹을 치켜세웠다.소은정에 관한 일에서만큼은 애처럼 유치해지는 소찬식의 억지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전동하의 처세술에 몰래 감탄했다.소찬식도 전동하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소은정이 바로 지원사격에 들어갔다.“아빠. 이번에도 동하 씨가 제때에 와줘서 우리 네 사람 모두 무사할 수 있었어요.”전동하를 쭉 훑어 보던 소찬식이 물었다.“이렇게 또 한 번 신세를 졌는데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을까 몰라?”“전 은정 씨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전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은정 씨가 무사해서 저도 기쁘고요.”소은정을 향한 전동하의 애정어린 눈빛에 소찬식이 눈을 가늘게 떴다.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소찬식이 괜히 딸을 꾸짖었다.“은정이 너도 말이야. 나이도 먹을만큼 먹은 녀석이 아직도 노는 게 그렇게 좋아? 이번에도 전 대표가 와줬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어쩔 뻔했어!”소찬식의 말에 어제의 상황을 다시 떠올린 소은정 또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어두워진 딸의 표정에 소찬식 역시 마음이 약해져 훨씬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꼭 산으로 가야 별똥별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렇게 별이 좋으면 네 오빠한테 천문망원경이며 다른 설비들 사달라고 하면 되잖아. 따뜻한 곳에서 편하게 보면 좀 좋아!”부녀의 대화에 전동하 역시 소찬식이 딸을 얼마나 아끼는지 느낄 수 있었다.“그래도 돼죠? 고마워, 오빠!”역시나 소은정 역시 마다하지
전동하의 질문에 소은정이 당황했다.공개한다고? 벌써?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잠깐 망설이던 소은정이 대답했다.“아직은 너무 이르지 않나요. 조금 시간이 더 흐르면...”두 사람이 사귄다고 인정하면 좁은 이 바닥에 소문이 쫙 퍼짐과 동시에 주가에도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하지만 가장 예측할 수 없는 게 바로 남녀관계. 그녀의 연애 때문에 회사 상황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았다.난처한 듯한 소은정의 모습에 전동하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요. 나 그렇게 막 나가는 사람 아니에요. 시간이 얼마나 걸려도 기다릴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런데... 대신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소은정이 고개를 들고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전동하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퇴원하면 본가로 들어가지 말고 자취하면 안 돼요?”소은정은 복잡미묘한 표정과 함께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경계 가득한 그녀의 표정에 전동하가 한숨을 쉬더니 피식 웃었다.“남자친구한테 잘해 줄 기회 정도는 줘야 할 거 아니에요. 본가로 돌아가면 난 어떻게 하라고요.”방금 전 소찬식의 기세를 보아 하니 소은정을 조금만 늦게 들여보내면 바로 몽둥이라도 들고 찾아온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하긴... 동하 씨 말이 맞긴 해. 내가 괜히 이상한 쪽으로 생각한 건가?“네. 집에 말할게요. 그런데... 동거는 안 돼요.”소은정의 말에 분위기가 어색하게 가라앉았다.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전동하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요. 은정 씨 말대로 해요.”그래. 어쨌든 일단 그 집에서 데리고 나오는 게 중요한 거니까.한편, 저녁 시간이 되자 전동하는 직접 요리를 해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병원의 VIP 병동에는 작은 주방이 구비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직접 저녁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아무리 말려도 고집을 부리는 모습에 소은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왜 남자들은 이렇게 요리에 집착하는 걸까? 시켜먹는 게 힘도 덜 들고 훨씬 더 맛있을 것 같은데...잠시 후, 우연준
하지만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어떻게 할지는 주인 마음이니 우연준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 뒤로 우연준은 최근 회사의 상황에 대해 보고한 뒤 바로 병실을 나섰다.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전동하가 바로 우연준을 향해 인사를 하고 우연준 역시 허리를 숙였다.“저희 대표님, 케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아니에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다른 대표들과 달리 훨씬 더 친화적인 전동하의 모습에 다시 고개를 까딱하고 돌아선 우연준은 바로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뭐지? 당연히 해야 할 일?대표님의 가족도 아니고... 지금가지 여기 있다는 건... 설마...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우연준은 연애를 다시 시작한 소은정의 모습에 기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박수혁 대표가 알면... 한바탕 난리나겠는데?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온 우연준이 차에 타려던 그때 뚱뚱한 남자가 그의 곁을 스쳐지나갔다.어딘가 익숙한 모습에 잠깐 고민하던 우연준이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저 사람은 박수혁의 집사... 오한준이잖아.휴대폰을 꺼낸 우연준이 바로 문자를 작성했다.“대표님. 방금 전 지하주차장에서 오한진 집사를 마주쳤습니다. 병실로 올라가는 것 같던데요.”“알겠어요.”소은정의 답장이 도착한 뒤에야 우연준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한편, 휴대폰을 내려놓은 소은정의 표정에 차갑게 굳고 전동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아까 우 비서와 대화할 때까지만 해도 기분 좋아보이더니 왜 갑자기...잠시 후 누군가 병실문을 두드리고 전동하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소은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박수혁 집사예요.”아마 그녀가 다친 걸 알고 오한진을 보낸 거겠지. 본인이 직접 온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무엇보다 전동하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만나고 싶지 않으면 돌려보낼까요?”“아니요. 동하 씨가 불편할 것 같아서...”어느새 그의 편에서 생각하고 배려해 주는 그녀의 모습에 전동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딱히 만나고
오한진은 전동하의 존재가 불편했지만 소은정의 친구이니 차마 뭐라고 할 순 없었다.결국 탁자에 보온병을 올려놓은 오한진이 넉살 좋은 미소를 지었다.“은정 대표님이 좋아하시는 제비집 수프 좀 만들어 봤어요. 피부에도 좋고 칼로리도 낮고 대표님 같은 분한테 꼭 맞는 음식이죠?”오한진의 실력을 알고 있는지라 소은정은 흔쾌히 그가 따라주는 제비집 수프를 받아들었다.숟가락으로 수프를 휘휘 저으니 역시나 박수혁이 만든 것과 달리 맛있는 향이 물씬 밀려왔다.하지만 오한진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박수혁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바로 먹지 않고 컵을 내려놓았다.“내가 병원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소은정의 질문에 오한진이 바로 미소를 지었다.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완벽하게 준비해 둔 상태였으니까.“아, 당연히 저희 대표님께서 가보라고 하신 거죠. 은정 대표님을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몰라요. 한지산에서 산사태를 당하실 뻔했다면서요? 지그 박 대표님은 현장으로 가셔서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계세요. 저희 대표님 평소에 말수는 적으셔도 착하고 진국이시라니까요. 그쪽에 사고가 났다는 걸 들으시고 바로 달려가셨잖아요. 은정 대표님과는 엇갈리신 것 같지만...”“직접 갔다고요?”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기업의 대표란 무릇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 게다가... 한 기업의 총수가 굳이?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소은정의 질문에 오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박 대표님은 노블레스 오블레주 그 자체라고 할까요? 해마다 기부도 얼마나 많이 하시는지 몰라요. 외모도 차갑고 말수도 적으셔서 오해를 많이 사시긴 하지만 저희 대표님 누구보다 따뜻하신 분입니다.”그리고 창문 앞에 서 있는 전동하를 힐끗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젠틀한 외모로 순진한 여자들 꼬여내는 남자와는 차원이 다르죠.”누가 봐도 전동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그 말에 숨은 가시를 소은정이 눈치 못 챌리가 없고 그녀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하, 박수혁 칭찬을 그렇다 치고 왜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정의 모습에 순간 오한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이 사실을 대표님께서 아신다면...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조차 아니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뒤로 한 발 물러선 오한진이 속삭였다.“안... 안 돼...”“뭐가요?”“아, 아닙니다. 은정 대표님. 저... 저는 따로 볼일이 있어서 이...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오한진은 벌벌 떨며 도망치듯 병실을 나가버렸다.그 모습에 소은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뭐야? 왜 저렇게 오버하는 거래?오한진이 나간 뒤에야 전동하가 다시 다가왔다.입도 대지 않은 제비집 수프를 힐끗 보던 전동하가 물었다.“아직 공개 안 할 거라면서요.”그의 질문에 소은정이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이건 뭐 공개라기보다 공지에 가깝죠. 누가 괜히 또 헛짓거리 할까 봐요.”소은정의 대답에 눈썹을 치켜세우던 전동하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사실 박수혁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꽤나 궁금한 전동하였다.왠지... 재밌을 것 같단 말이지.한숨을 푹 내쉰 소은정이 숟가락을 들고 수프를 맛보려던 그때.전동하가 컵을 홱 가져가버렸다.소은정의 의아한 시선에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이런 거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요. 그게 사실 내가 절대미각이거든요? 일단 먼저 맛 보고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아봐야겠어요. 그래야 똑같게 만들어주죠.”말을 마친 전동하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컵에 담긴 수프를 벌컥벌컥 전부 마셔버렸다.당황한 소은정이 눈만 끔벅이고 있던 그때. 전동하가 미간을 찌푸렸다.“한 번 마셔서는 잘 모르겠네요... 좀 더 먹어봐야겠는데요?”그리고 보온병에 담긴 수프까지 전부 마셔버리는 전동하의 모습에 소은정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그래서... 뭐가 들었는지는 알아냈어요?”뭐야? 왜 환자 걸 뺏어먹고 그런대?“아니요.”진지한 듯, 장난스러운 듯 묘한 전동하의 표정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
그 뒤로 전동하는 소은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매일 그녀의 병실에서 살다시피 했다.생각보다 훨씬 집착이 더 심한 전동하의 모습에 소은정이 골치가 아파지려고 할 무렵, 밀려드는 업무에 소은호가 그녀에게 내린 최후통첩 덕분에 소은정은 드디어 퇴원할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하지만 퇴원 후 소은정은 본가가 아닌 청원동 오피스텔로 향했다.우연준이 미리 청소는 물론이고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 둔 덕에 거의 몸만 다시 들어가면 되는 수준이었다.다시 나가서 살겠다는 소은정의 말에 소찬식은 상당히 내키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결국 소은정이 원하는대로 해줄 수밖에 없었다.퇴원 당일, 연구소에 “감금”되어 있는 소은찬을 제외하고 가족들은 모두 청원동 오피스텔에 모였다.청원동 오피스텔은 소은정의 스타일대로 깔끔한 인테리어에 최첨단 AI 매커니즘이 어우러져 왠지 SF 영화속에나 나오는 미래 아파트 같은 모습이었다.괜히 심술을 부리며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 소찬식과 달리 주위를 둘러보던 소은정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공손한 인사와 함께 다시 회사로 돌아가려던 우연준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전 대표님...”우연준의 목소리에 소은정을 비롯해 모든 가족들의 시선이 문쪽으로 쏠렸다.소은정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은 전동하는 소찬식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아버님,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여기서 만나다니.”우연?이런 것도 우연이 가능한 거야? 그리고 전동하 대표가 왜 여기에...소은정이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때 소찬식이 대신 질문했다.“전 대표? 자네가 왜 여기 있나?”“아, 저도 며칠 전에 윗층으로 이사왔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아버님을 다 뵙네요.”전동하의 뻔뻔한 해명에 소찬식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러게. 우연이구만.”전동하는 편안한 홈웨어 차림임에도 고급스러운 자태는 숨길 수가 없었다.참나. 우연은 무슨... 일부러 문 앞에 떡하니 서 있어 놓고는...소은해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소은정이 문쪽으로 다가갔다.“그럼 같이 식사라도 할까
소찬식은 눈을 질끈 감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전동하가 소은정을 구해 준 은인인 건 사실이지만 굳이 이런 방식으로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물론 전동하의 인품은 인정하는 바지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왠지 마음이 걸렸다.그런 아버지의 착잡한 마음을 눈치챈 걸까? 소은호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그냥 사귀는 거잖아요. 당장 결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은정이 마음대로 하게 하세요...”그의 말에 망설이던 소찬식이 훨씬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래. 방해 안 할게. 은정이 네가 알아서 할 거라고 믿는다.”소은정의 확신에 찬 고갯짓에 소찬식도 마음이 놓이는 듯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한 마디 덧붙였다.“연애란 뭐랄까... 파스타에 올리는 파슬리 같은 거야... 너무 깊게 빠지지는 말고 알겠지?”아버지의 이상한 비유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네. 언제나 저를 가장 일순위로 생각할게요.”그제야 소찬식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마침 전동하와 소은해가 식자재를 들고 나란히 들어왔다.딱 봐도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재료들...도대체 언제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거야?장바구니에서 앞치마까지 꺼낸 전동하가 말했다.“다들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끝날 거니까.”그렇다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소찬식의 눈짓에 한숨을 푹 내쉰 소은해가 일어서며 소매를 걷었다.“전 대표님, 저도 같이 해요...”사실 소은해는 전부터 전동하를 속마음음 시커면 여우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번에 전동하가 병원에서 한 말 때문에 김하늘과는 아직도 냉전 상태.그런데 전동하의 “조수” 노릇까지 하려니 밸이 꼬이는 게 당연했다.부엌에 들어온 소은해는 코웃음을 치더니 느릿느릿 채소를 씻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전동하가 먼저 소은해에게 말을 걸었다.“아직도 하늘 씨랑 화해 못 하셨나 봐요?”하, 이 자식이... 굳이 먼저 그 말을 꺼낸다 이거지?“제가 한 말 때문에 화난 거라고 생각하세요?”“그게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