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어떻게 할지는 주인 마음이니 우연준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 뒤로 우연준은 최근 회사의 상황에 대해 보고한 뒤 바로 병실을 나섰다.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전동하가 바로 우연준을 향해 인사를 하고 우연준 역시 허리를 숙였다.“저희 대표님, 케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아니에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다른 대표들과 달리 훨씬 더 친화적인 전동하의 모습에 다시 고개를 까딱하고 돌아선 우연준은 바로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뭐지? 당연히 해야 할 일?대표님의 가족도 아니고... 지금가지 여기 있다는 건... 설마...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우연준은 연애를 다시 시작한 소은정의 모습에 기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박수혁 대표가 알면... 한바탕 난리나겠는데?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온 우연준이 차에 타려던 그때 뚱뚱한 남자가 그의 곁을 스쳐지나갔다.어딘가 익숙한 모습에 잠깐 고민하던 우연준이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저 사람은 박수혁의 집사... 오한준이잖아.휴대폰을 꺼낸 우연준이 바로 문자를 작성했다.“대표님. 방금 전 지하주차장에서 오한진 집사를 마주쳤습니다. 병실로 올라가는 것 같던데요.”“알겠어요.”소은정의 답장이 도착한 뒤에야 우연준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한편, 휴대폰을 내려놓은 소은정의 표정에 차갑게 굳고 전동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아까 우 비서와 대화할 때까지만 해도 기분 좋아보이더니 왜 갑자기...잠시 후 누군가 병실문을 두드리고 전동하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소은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박수혁 집사예요.”아마 그녀가 다친 걸 알고 오한진을 보낸 거겠지. 본인이 직접 온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무엇보다 전동하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만나고 싶지 않으면 돌려보낼까요?”“아니요. 동하 씨가 불편할 것 같아서...”어느새 그의 편에서 생각하고 배려해 주는 그녀의 모습에 전동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딱히 만나고
오한진은 전동하의 존재가 불편했지만 소은정의 친구이니 차마 뭐라고 할 순 없었다.결국 탁자에 보온병을 올려놓은 오한진이 넉살 좋은 미소를 지었다.“은정 대표님이 좋아하시는 제비집 수프 좀 만들어 봤어요. 피부에도 좋고 칼로리도 낮고 대표님 같은 분한테 꼭 맞는 음식이죠?”오한진의 실력을 알고 있는지라 소은정은 흔쾌히 그가 따라주는 제비집 수프를 받아들었다.숟가락으로 수프를 휘휘 저으니 역시나 박수혁이 만든 것과 달리 맛있는 향이 물씬 밀려왔다.하지만 오한진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박수혁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바로 먹지 않고 컵을 내려놓았다.“내가 병원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소은정의 질문에 오한진이 바로 미소를 지었다.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완벽하게 준비해 둔 상태였으니까.“아, 당연히 저희 대표님께서 가보라고 하신 거죠. 은정 대표님을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몰라요. 한지산에서 산사태를 당하실 뻔했다면서요? 지그 박 대표님은 현장으로 가셔서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계세요. 저희 대표님 평소에 말수는 적으셔도 착하고 진국이시라니까요. 그쪽에 사고가 났다는 걸 들으시고 바로 달려가셨잖아요. 은정 대표님과는 엇갈리신 것 같지만...”“직접 갔다고요?”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기업의 대표란 무릇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 게다가... 한 기업의 총수가 굳이?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소은정의 질문에 오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박 대표님은 노블레스 오블레주 그 자체라고 할까요? 해마다 기부도 얼마나 많이 하시는지 몰라요. 외모도 차갑고 말수도 적으셔서 오해를 많이 사시긴 하지만 저희 대표님 누구보다 따뜻하신 분입니다.”그리고 창문 앞에 서 있는 전동하를 힐끗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젠틀한 외모로 순진한 여자들 꼬여내는 남자와는 차원이 다르죠.”누가 봐도 전동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그 말에 숨은 가시를 소은정이 눈치 못 챌리가 없고 그녀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하, 박수혁 칭찬을 그렇다 치고 왜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정의 모습에 순간 오한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이 사실을 대표님께서 아신다면...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조차 아니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뒤로 한 발 물러선 오한진이 속삭였다.“안... 안 돼...”“뭐가요?”“아, 아닙니다. 은정 대표님. 저... 저는 따로 볼일이 있어서 이...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오한진은 벌벌 떨며 도망치듯 병실을 나가버렸다.그 모습에 소은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뭐야? 왜 저렇게 오버하는 거래?오한진이 나간 뒤에야 전동하가 다시 다가왔다.입도 대지 않은 제비집 수프를 힐끗 보던 전동하가 물었다.“아직 공개 안 할 거라면서요.”그의 질문에 소은정이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이건 뭐 공개라기보다 공지에 가깝죠. 누가 괜히 또 헛짓거리 할까 봐요.”소은정의 대답에 눈썹을 치켜세우던 전동하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사실 박수혁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꽤나 궁금한 전동하였다.왠지... 재밌을 것 같단 말이지.한숨을 푹 내쉰 소은정이 숟가락을 들고 수프를 맛보려던 그때.전동하가 컵을 홱 가져가버렸다.소은정의 의아한 시선에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이런 거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요. 그게 사실 내가 절대미각이거든요? 일단 먼저 맛 보고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아봐야겠어요. 그래야 똑같게 만들어주죠.”말을 마친 전동하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컵에 담긴 수프를 벌컥벌컥 전부 마셔버렸다.당황한 소은정이 눈만 끔벅이고 있던 그때. 전동하가 미간을 찌푸렸다.“한 번 마셔서는 잘 모르겠네요... 좀 더 먹어봐야겠는데요?”그리고 보온병에 담긴 수프까지 전부 마셔버리는 전동하의 모습에 소은정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그래서... 뭐가 들었는지는 알아냈어요?”뭐야? 왜 환자 걸 뺏어먹고 그런대?“아니요.”진지한 듯, 장난스러운 듯 묘한 전동하의 표정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
그 뒤로 전동하는 소은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매일 그녀의 병실에서 살다시피 했다.생각보다 훨씬 집착이 더 심한 전동하의 모습에 소은정이 골치가 아파지려고 할 무렵, 밀려드는 업무에 소은호가 그녀에게 내린 최후통첩 덕분에 소은정은 드디어 퇴원할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하지만 퇴원 후 소은정은 본가가 아닌 청원동 오피스텔로 향했다.우연준이 미리 청소는 물론이고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 둔 덕에 거의 몸만 다시 들어가면 되는 수준이었다.다시 나가서 살겠다는 소은정의 말에 소찬식은 상당히 내키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결국 소은정이 원하는대로 해줄 수밖에 없었다.퇴원 당일, 연구소에 “감금”되어 있는 소은찬을 제외하고 가족들은 모두 청원동 오피스텔에 모였다.청원동 오피스텔은 소은정의 스타일대로 깔끔한 인테리어에 최첨단 AI 매커니즘이 어우러져 왠지 SF 영화속에나 나오는 미래 아파트 같은 모습이었다.괜히 심술을 부리며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 소찬식과 달리 주위를 둘러보던 소은정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공손한 인사와 함께 다시 회사로 돌아가려던 우연준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전 대표님...”우연준의 목소리에 소은정을 비롯해 모든 가족들의 시선이 문쪽으로 쏠렸다.소은정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은 전동하는 소찬식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아버님,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여기서 만나다니.”우연?이런 것도 우연이 가능한 거야? 그리고 전동하 대표가 왜 여기에...소은정이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때 소찬식이 대신 질문했다.“전 대표? 자네가 왜 여기 있나?”“아, 저도 며칠 전에 윗층으로 이사왔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아버님을 다 뵙네요.”전동하의 뻔뻔한 해명에 소찬식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러게. 우연이구만.”전동하는 편안한 홈웨어 차림임에도 고급스러운 자태는 숨길 수가 없었다.참나. 우연은 무슨... 일부러 문 앞에 떡하니 서 있어 놓고는...소은해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소은정이 문쪽으로 다가갔다.“그럼 같이 식사라도 할까
소찬식은 눈을 질끈 감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전동하가 소은정을 구해 준 은인인 건 사실이지만 굳이 이런 방식으로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물론 전동하의 인품은 인정하는 바지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왠지 마음이 걸렸다.그런 아버지의 착잡한 마음을 눈치챈 걸까? 소은호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그냥 사귀는 거잖아요. 당장 결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은정이 마음대로 하게 하세요...”그의 말에 망설이던 소찬식이 훨씬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래. 방해 안 할게. 은정이 네가 알아서 할 거라고 믿는다.”소은정의 확신에 찬 고갯짓에 소찬식도 마음이 놓이는 듯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한 마디 덧붙였다.“연애란 뭐랄까... 파스타에 올리는 파슬리 같은 거야... 너무 깊게 빠지지는 말고 알겠지?”아버지의 이상한 비유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네. 언제나 저를 가장 일순위로 생각할게요.”그제야 소찬식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마침 전동하와 소은해가 식자재를 들고 나란히 들어왔다.딱 봐도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재료들...도대체 언제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거야?장바구니에서 앞치마까지 꺼낸 전동하가 말했다.“다들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끝날 거니까.”그렇다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소찬식의 눈짓에 한숨을 푹 내쉰 소은해가 일어서며 소매를 걷었다.“전 대표님, 저도 같이 해요...”사실 소은해는 전부터 전동하를 속마음음 시커면 여우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번에 전동하가 병원에서 한 말 때문에 김하늘과는 아직도 냉전 상태.그런데 전동하의 “조수” 노릇까지 하려니 밸이 꼬이는 게 당연했다.부엌에 들어온 소은해는 코웃음을 치더니 느릿느릿 채소를 씻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전동하가 먼저 소은해에게 말을 걸었다.“아직도 하늘 씨랑 화해 못 하셨나 봐요?”하, 이 자식이... 굳이 먼저 그 말을 꺼낸다 이거지?“제가 한 말 때문에 화난 거라고 생각하세요?”“그게 아니
하지만 사람들 눈에 침묵은 곧 인정과도 같은 법. 소은해는 손은하와 “연인” 사이가 되고 말았다.손은하가 할리우드에서 연기 생활을 시작하고 오스카에서 상까지 탄 뒤에야 회사는 슬그머니 두 사람이 바쁜 스케줄로 자연스레 헤어지게 되었으며 좋은 동료이자 오빠 동생 사이로 남게 되었다는 찌라시를 흘렸고 그렇게 손은하는 소은해의 전 여친이 되어 버렸다.어차피 수많은 연애를 거친 소은해에게 손은하 한 명 더 추가되는 건 별일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었던 건데 손은하 그 여자가 김하늘을 직접 찾아갈 줄이야!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야?소은해가 다가갈 수록 왠지 모르게 피하는 김하늘 때문에 두 사람의 사이는 살얼음판이나 마찬가지였다.이런 상황에서 손은하까지 수작을 부린다면 김하늘은 더 멀리 도망칠 게 분명할 터...소은해가 씻고 있던 야채를 홱 던져버리고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 씩씩거리자 그의 뒤를 이어받아 채소를 다듬던 전동하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물었다.“사실 제가 손은하 씨에 대한 정보를 좀 알고 있는데... 좀 알려드릴까요?”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소은해의 시야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전동하가 보였다.“이제 가족인데... 그 정도는 충분히 알려드릴 수 있죠.”뻔뻔한 전동하의 모습에 소은해가 웃음을 터트렸다.역시... 양의 탈을 쓴 여우구만. 지금 내 약점 하나 잡았다 이거지? 은정이 이 자식... 왜 하필 이런 자식들만 만나고 난리야...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던 그때 소찬식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내가 좀 도와줄까?”하지만 눈동자를 빠르게 돌리던 소은해는 눈부신 미소와 함께 전동하 손에서 야채를 빼앗았다.“아니요. 저랑 매부면 충분해요!”마침 주방을 지나던 소은정 역시 이 말을 듣고 발걸음을 멈추었다.뭐야? 며칠 전까지 마음에 안 들어 하던 거 아니었어? 갑자기 왜 저런대? 하여간 남자들이란... 단순한 척 하면서도 복잡해...약 40분 뒤, 새 식탁에 진수성찬이 차려졌다.레스토랑 못지 않은 플레이팅에 소찬식
소은정의 질문에 한숨을 푹 내쉰 전동하가 진지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그냥 은정 씨랑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싶어서요. 할 수만 있다면 은정 씨 명의로 된 부동산 전부를 알아내서 그 옆에 제 집도 사두고 싶은 마음이에요.”그의 말에도 애매한 표정을 짓던 소은정이 물었다.“거성 프로젝트가 끝나면 동하 씨는 아마 미국으로 돌아가겠죠?”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의 잘생긴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롱디는 걱정하지 말아요. 아시아 시장이 차세대 다크호스라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에요. 전 한국에 더 있고 싶은데요?”그의 대답에 소은정은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괜히 그가 떠나길 바라는 꼴이 되어버릴까 봐 더 묻지 않았다.전동하가 뭔가 더 말하려던 그때 전동하의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하던 전동하가 미간을 찌푸린 채 수락 버튼을 눌렀다.잠시 후 통화를 마친 전동하가 말했다.“급한 사정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보고 싶으면 전화해요.”“얼른 가요.”전동하는 소은정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에야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떠난 뒤에도 집안에 전동하의 향기가 남은 것 같은 기분에 소은정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며칠 뒤, 소은정은 파티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하필 전동하와 데이트를 하려고 약속한 날이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전동하가 문자를 보내왔다.“데이트 장소 바꿀까요?”그리고 첨부된 이미지에는 그녀와 똑같은 초대장이 담겨있었다.문자를 확인한 소은정이 미소와 함께 답장을 전송했다.“좋죠.”전동하와의 연애는 적당히 달콤했고 적당히 편안했다.연애가 이런 기분이었나? 왜 이제까지 다가오는 남자들을 밀어내기만 했을까 라고 생각하는 소은정이었다....한편 태한그룹.한지산에서 돌아온 박수혁은 바로 해외로 출장을 나가는 등 살인적인 스케줄을 수행하고 있었다.매일 잠 한 숨, 밥 한 술 뜰 시간도 부족했지만 밤이 깊으면 소은정에게 잘 자라는 문자를 보내는 건 잊지 않았다.물론 문자에 대답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적어
소씨 일가에서 소은정을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까지 보냈다는 말에 이한석도 혀를 내둘렀었다.전세기를 한번 띄우는 데 드는 돈도 돈이지만 구청에서 허가를 내준 것만 해도 SC그룹의 기부금 또한 결코 적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그럼에도 인터넷에 SC그룹에 관한 기사 한 줄 찾아볼 수 없는 건 그쪽에서 일부러 이 사실을 누르고 있다는 뜻이겠지.이한석의 대답에 침묵하던 박수혁이 고개를 들었다.그의 손목에 걸린 은색 시계가 박수혁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듯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내가 물은 건 SC그룹이 아니라 은정이야.”그제야 흠칫하던 이한석이 대답했다.“오 집사가 가보았는데 많이 다치신 것도 아니고 지금은 이미 퇴원하셨답니다.”하지만 그의 대답에도 박수혁은 여전히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하, 결국 못 숨기겠네. 하긴, 숨기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결국 알게 되실 거야.두 눈을 질끈 감은 이한석이 대답했다.“그리고...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소은정 대표님과 전동하 대표가 사귀고 있다고 합니다.”역시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박수혁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순식간에 사무실 온도가 3 섭씨도 쯤은 내려간 것 같은 기분에 이한석이 몸을 움찔 떨었다.어느새 호흡까지 거칠어진 박수혁이 이를 갈았다.“그런데 왜... 바로 보고하지 않은 거지?”박수혁의 질문에 망설이던 이한석이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도대체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서 그만...”이한석의 대답과 함께 박수혁이 책상 위에 올려둔 물건을 전부 뒤엎었다.파일더미와 함께 고가의 인테리어 소품들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윽, 역시... 이러실 줄 알았어... 이제부터 전쟁인 건가?“이렇게 중요한 일을 숨겨?”정말 화가 난 건지 눈까지 빨개진 박수혁의 모습에 이한석이 고개를 푹 숙였다.“죄송합니다.”책상을 다 쓸어버리고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자리에서 일어선 박수혁이 책상 다리를 쾅 걷어찼다.고개를 든 박수혁이 단 일말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