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자기 소유의 부동산을 어떻게 할지는 주인 마음이니 우연준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 뒤로 우연준은 최근 회사의 상황에 대해 보고한 뒤 바로 병실을 나섰다.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전동하가 바로 우연준을 향해 인사를 하고 우연준 역시 허리를 숙였다.“저희 대표님, 케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아니에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요.”다른 대표들과 달리 훨씬 더 친화적인 전동하의 모습에 다시 고개를 까딱하고 돌아선 우연준은 바로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뭐지? 당연히 해야 할 일?대표님의 가족도 아니고... 지금가지 여기 있다는 건... 설마...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우연준은 연애를 다시 시작한 소은정의 모습에 기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박수혁 대표가 알면... 한바탕 난리나겠는데?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온 우연준이 차에 타려던 그때 뚱뚱한 남자가 그의 곁을 스쳐지나갔다.어딘가 익숙한 모습에 잠깐 고민하던 우연준이 다시 고개를 홱 돌렸다.저 사람은 박수혁의 집사... 오한준이잖아.휴대폰을 꺼낸 우연준이 바로 문자를 작성했다.“대표님. 방금 전 지하주차장에서 오한진 집사를 마주쳤습니다. 병실로 올라가는 것 같던데요.”“알겠어요.”소은정의 답장이 도착한 뒤에야 우연준은 차에 시동을 걸었다.한편, 휴대폰을 내려놓은 소은정의 표정에 차갑게 굳고 전동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아까 우 비서와 대화할 때까지만 해도 기분 좋아보이더니 왜 갑자기...잠시 후 누군가 병실문을 두드리고 전동하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소은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박수혁 집사예요.”아마 그녀가 다친 걸 알고 오한진을 보낸 거겠지. 본인이 직접 온 게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무엇보다 전동하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만나고 싶지 않으면 돌려보낼까요?”“아니요. 동하 씨가 불편할 것 같아서...”어느새 그의 편에서 생각하고 배려해 주는 그녀의 모습에 전동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딱히 만나고
오한진은 전동하의 존재가 불편했지만 소은정의 친구이니 차마 뭐라고 할 순 없었다.결국 탁자에 보온병을 올려놓은 오한진이 넉살 좋은 미소를 지었다.“은정 대표님이 좋아하시는 제비집 수프 좀 만들어 봤어요. 피부에도 좋고 칼로리도 낮고 대표님 같은 분한테 꼭 맞는 음식이죠?”오한진의 실력을 알고 있는지라 소은정은 흔쾌히 그가 따라주는 제비집 수프를 받아들었다.숟가락으로 수프를 휘휘 저으니 역시나 박수혁이 만든 것과 달리 맛있는 향이 물씬 밀려왔다.하지만 오한진의 갑작스러운 방문이 박수혁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바로 먹지 않고 컵을 내려놓았다.“내가 병원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소은정의 질문에 오한진이 바로 미소를 지었다.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완벽하게 준비해 둔 상태였으니까.“아, 당연히 저희 대표님께서 가보라고 하신 거죠. 은정 대표님을 얼마나 걱정하시는지 몰라요. 한지산에서 산사태를 당하실 뻔했다면서요? 지그 박 대표님은 현장으로 가셔서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계세요. 저희 대표님 평소에 말수는 적으셔도 착하고 진국이시라니까요. 그쪽에 사고가 났다는 걸 들으시고 바로 달려가셨잖아요. 은정 대표님과는 엇갈리신 것 같지만...”“직접 갔다고요?”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기업의 대표란 무릇 이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법. 게다가... 한 기업의 총수가 굳이?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소은정의 질문에 오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박 대표님은 노블레스 오블레주 그 자체라고 할까요? 해마다 기부도 얼마나 많이 하시는지 몰라요. 외모도 차갑고 말수도 적으셔서 오해를 많이 사시긴 하지만 저희 대표님 누구보다 따뜻하신 분입니다.”그리고 창문 앞에 서 있는 전동하를 힐끗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젠틀한 외모로 순진한 여자들 꼬여내는 남자와는 차원이 다르죠.”누가 봐도 전동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그 말에 숨은 가시를 소은정이 눈치 못 챌리가 없고 그녀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하, 박수혁 칭찬을 그렇다 치고 왜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은정의 모습에 순간 오한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이 사실을 대표님께서 아신다면...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할 수조차 아니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뒤로 한 발 물러선 오한진이 속삭였다.“안... 안 돼...”“뭐가요?”“아, 아닙니다. 은정 대표님. 저... 저는 따로 볼일이 있어서 이...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오한진은 벌벌 떨며 도망치듯 병실을 나가버렸다.그 모습에 소은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뭐야? 왜 저렇게 오버하는 거래?오한진이 나간 뒤에야 전동하가 다시 다가왔다.입도 대지 않은 제비집 수프를 힐끗 보던 전동하가 물었다.“아직 공개 안 할 거라면서요.”그의 질문에 소은정이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이건 뭐 공개라기보다 공지에 가깝죠. 누가 괜히 또 헛짓거리 할까 봐요.”소은정의 대답에 눈썹을 치켜세우던 전동하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사실 박수혁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꽤나 궁금한 전동하였다.왠지... 재밌을 것 같단 말이지.한숨을 푹 내쉰 소은정이 숟가락을 들고 수프를 맛보려던 그때.전동하가 컵을 홱 가져가버렸다.소은정의 의아한 시선에 전동하가 싱긋 웃었다.“이런 거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요. 그게 사실 내가 절대미각이거든요? 일단 먼저 맛 보고 무슨 재료가 들어갔는지 알아봐야겠어요. 그래야 똑같게 만들어주죠.”말을 마친 전동하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컵에 담긴 수프를 벌컥벌컥 전부 마셔버렸다.당황한 소은정이 눈만 끔벅이고 있던 그때. 전동하가 미간을 찌푸렸다.“한 번 마셔서는 잘 모르겠네요... 좀 더 먹어봐야겠는데요?”그리고 보온병에 담긴 수프까지 전부 마셔버리는 전동하의 모습에 소은정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그래서... 뭐가 들었는지는 알아냈어요?”뭐야? 왜 환자 걸 뺏어먹고 그런대?“아니요.”진지한 듯, 장난스러운 듯 묘한 전동하의 표정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
그 뒤로 전동하는 소은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매일 그녀의 병실에서 살다시피 했다.생각보다 훨씬 집착이 더 심한 전동하의 모습에 소은정이 골치가 아파지려고 할 무렵, 밀려드는 업무에 소은호가 그녀에게 내린 최후통첩 덕분에 소은정은 드디어 퇴원할 명분을 찾을 수 있었다.하지만 퇴원 후 소은정은 본가가 아닌 청원동 오피스텔로 향했다.우연준이 미리 청소는 물론이고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해 둔 덕에 거의 몸만 다시 들어가면 되는 수준이었다.다시 나가서 살겠다는 소은정의 말에 소찬식은 상당히 내키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결국 소은정이 원하는대로 해줄 수밖에 없었다.퇴원 당일, 연구소에 “감금”되어 있는 소은찬을 제외하고 가족들은 모두 청원동 오피스텔에 모였다.청원동 오피스텔은 소은정의 스타일대로 깔끔한 인테리어에 최첨단 AI 매커니즘이 어우러져 왠지 SF 영화속에나 나오는 미래 아파트 같은 모습이었다.괜히 심술을 부리며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 소찬식과 달리 주위를 둘러보던 소은정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공손한 인사와 함께 다시 회사로 돌아가려던 우연준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전 대표님...”우연준의 목소리에 소은정을 비롯해 모든 가족들의 시선이 문쪽으로 쏠렸다.소은정을 향해 싱긋 미소를 지은 전동하는 소찬식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아버님,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여기서 만나다니.”우연?이런 것도 우연이 가능한 거야? 그리고 전동하 대표가 왜 여기에...소은정이 의아한 표정을 짓던 그때 소찬식이 대신 질문했다.“전 대표? 자네가 왜 여기 있나?”“아, 저도 며칠 전에 윗층으로 이사왔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아버님을 다 뵙네요.”전동하의 뻔뻔한 해명에 소찬식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그러게. 우연이구만.”전동하는 편안한 홈웨어 차림임에도 고급스러운 자태는 숨길 수가 없었다.참나. 우연은 무슨... 일부러 문 앞에 떡하니 서 있어 놓고는...소은해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소은정이 문쪽으로 다가갔다.“그럼 같이 식사라도 할까
소찬식은 눈을 질끈 감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전동하가 소은정을 구해 준 은인인 건 사실이지만 굳이 이런 방식으로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 건가 싶었다.물론 전동하의 인품은 인정하는 바지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이 왠지 마음이 걸렸다.그런 아버지의 착잡한 마음을 눈치챈 걸까? 소은호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그냥 사귀는 거잖아요. 당장 결혼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은정이 마음대로 하게 하세요...”그의 말에 망설이던 소찬식이 훨씬 밝아진 표정으로 대답했다.“그래. 방해 안 할게. 은정이 네가 알아서 할 거라고 믿는다.”소은정의 확신에 찬 고갯짓에 소찬식도 마음이 놓이는 듯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한 마디 덧붙였다.“연애란 뭐랄까... 파스타에 올리는 파슬리 같은 거야... 너무 깊게 빠지지는 말고 알겠지?”아버지의 이상한 비유에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네. 언제나 저를 가장 일순위로 생각할게요.”그제야 소찬식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마침 전동하와 소은해가 식자재를 들고 나란히 들어왔다.딱 봐도 혼자 먹기에는 너무 많은 재료들...도대체 언제부터 계획하고 있었던 거야?장바구니에서 앞치마까지 꺼낸 전동하가 말했다.“다들 잠시만 기다리세요. 금방 끝날 거니까.”그렇다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소찬식의 눈짓에 한숨을 푹 내쉰 소은해가 일어서며 소매를 걷었다.“전 대표님, 저도 같이 해요...”사실 소은해는 전부터 전동하를 속마음음 시커면 여우 같은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저번에 전동하가 병원에서 한 말 때문에 김하늘과는 아직도 냉전 상태.그런데 전동하의 “조수” 노릇까지 하려니 밸이 꼬이는 게 당연했다.부엌에 들어온 소은해는 코웃음을 치더니 느릿느릿 채소를 씻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전동하가 먼저 소은해에게 말을 걸었다.“아직도 하늘 씨랑 화해 못 하셨나 봐요?”하, 이 자식이... 굳이 먼저 그 말을 꺼낸다 이거지?“제가 한 말 때문에 화난 거라고 생각하세요?”“그게 아니
하지만 사람들 눈에 침묵은 곧 인정과도 같은 법. 소은해는 손은하와 “연인” 사이가 되고 말았다.손은하가 할리우드에서 연기 생활을 시작하고 오스카에서 상까지 탄 뒤에야 회사는 슬그머니 두 사람이 바쁜 스케줄로 자연스레 헤어지게 되었으며 좋은 동료이자 오빠 동생 사이로 남게 되었다는 찌라시를 흘렸고 그렇게 손은하는 소은해의 전 여친이 되어 버렸다.어차피 수많은 연애를 거친 소은해에게 손은하 한 명 더 추가되는 건 별일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었던 건데 손은하 그 여자가 김하늘을 직접 찾아갈 줄이야!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야?소은해가 다가갈 수록 왠지 모르게 피하는 김하늘 때문에 두 사람의 사이는 살얼음판이나 마찬가지였다.이런 상황에서 손은하까지 수작을 부린다면 김하늘은 더 멀리 도망칠 게 분명할 터...소은해가 씻고 있던 야채를 홱 던져버리고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듯 씩씩거리자 그의 뒤를 이어받아 채소를 다듬던 전동하가 여유로운 목소리로 물었다.“사실 제가 손은하 씨에 대한 정보를 좀 알고 있는데... 좀 알려드릴까요?”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 소은해의 시야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전동하가 보였다.“이제 가족인데... 그 정도는 충분히 알려드릴 수 있죠.”뻔뻔한 전동하의 모습에 소은해가 웃음을 터트렸다.역시... 양의 탈을 쓴 여우구만. 지금 내 약점 하나 잡았다 이거지? 은정이 이 자식... 왜 하필 이런 자식들만 만나고 난리야...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던 그때 소찬식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내가 좀 도와줄까?”하지만 눈동자를 빠르게 돌리던 소은해는 눈부신 미소와 함께 전동하 손에서 야채를 빼앗았다.“아니요. 저랑 매부면 충분해요!”마침 주방을 지나던 소은정 역시 이 말을 듣고 발걸음을 멈추었다.뭐야? 며칠 전까지 마음에 안 들어 하던 거 아니었어? 갑자기 왜 저런대? 하여간 남자들이란... 단순한 척 하면서도 복잡해...약 40분 뒤, 새 식탁에 진수성찬이 차려졌다.레스토랑 못지 않은 플레이팅에 소찬식
소은정의 질문에 한숨을 푹 내쉰 전동하가 진지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그냥 은정 씨랑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싶어서요. 할 수만 있다면 은정 씨 명의로 된 부동산 전부를 알아내서 그 옆에 제 집도 사두고 싶은 마음이에요.”그의 말에도 애매한 표정을 짓던 소은정이 물었다.“거성 프로젝트가 끝나면 동하 씨는 아마 미국으로 돌아가겠죠?”소은정의 질문에 전동하의 잘생긴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롱디는 걱정하지 말아요. 아시아 시장이 차세대 다크호스라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에요. 전 한국에 더 있고 싶은데요?”그의 대답에 소은정은 눈썹을 치켜세웠지만 괜히 그가 떠나길 바라는 꼴이 되어버릴까 봐 더 묻지 않았다.전동하가 뭔가 더 말하려던 그때 전동하의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을 확인하던 전동하가 미간을 찌푸린 채 수락 버튼을 눌렀다.잠시 후 통화를 마친 전동하가 말했다.“급한 사정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보고 싶으면 전화해요.”“얼른 가요.”전동하는 소은정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에야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떠난 뒤에도 집안에 전동하의 향기가 남은 것 같은 기분에 소은정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며칠 뒤, 소은정은 파티 초대장을 받게 되었다.하필 전동하와 데이트를 하려고 약속한 날이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전동하가 문자를 보내왔다.“데이트 장소 바꿀까요?”그리고 첨부된 이미지에는 그녀와 똑같은 초대장이 담겨있었다.문자를 확인한 소은정이 미소와 함께 답장을 전송했다.“좋죠.”전동하와의 연애는 적당히 달콤했고 적당히 편안했다.연애가 이런 기분이었나? 왜 이제까지 다가오는 남자들을 밀어내기만 했을까 라고 생각하는 소은정이었다....한편 태한그룹.한지산에서 돌아온 박수혁은 바로 해외로 출장을 나가는 등 살인적인 스케줄을 수행하고 있었다.매일 잠 한 숨, 밥 한 술 뜰 시간도 부족했지만 밤이 깊으면 소은정에게 잘 자라는 문자를 보내는 건 잊지 않았다.물론 문자에 대답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적어
소씨 일가에서 소은정을 데려오기 위해 전세기까지 보냈다는 말에 이한석도 혀를 내둘렀었다.전세기를 한번 띄우는 데 드는 돈도 돈이지만 구청에서 허가를 내준 것만 해도 SC그룹의 기부금 또한 결코 적지 않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그럼에도 인터넷에 SC그룹에 관한 기사 한 줄 찾아볼 수 없는 건 그쪽에서 일부러 이 사실을 누르고 있다는 뜻이겠지.이한석의 대답에 침묵하던 박수혁이 고개를 들었다.그의 손목에 걸린 은색 시계가 박수혁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듯 차가운 빛을 내뿜었다.“내가 물은 건 SC그룹이 아니라 은정이야.”그제야 흠칫하던 이한석이 대답했다.“오 집사가 가보았는데 많이 다치신 것도 아니고 지금은 이미 퇴원하셨답니다.”하지만 그의 대답에도 박수혁은 여전히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하, 결국 못 숨기겠네. 하긴, 숨기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결국 알게 되실 거야.두 눈을 질끈 감은 이한석이 대답했다.“그리고...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소은정 대표님과 전동하 대표가 사귀고 있다고 합니다.”역시나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박수혁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순식간에 사무실 온도가 3 섭씨도 쯤은 내려간 것 같은 기분에 이한석이 몸을 움찔 떨었다.어느새 호흡까지 거칠어진 박수혁이 이를 갈았다.“그런데 왜... 바로 보고하지 않은 거지?”박수혁의 질문에 망설이던 이한석이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도대체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몰라서 그만...”이한석의 대답과 함께 박수혁이 책상 위에 올려둔 물건을 전부 뒤엎었다.파일더미와 함께 고가의 인테리어 소품들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윽, 역시... 이러실 줄 알았어... 이제부터 전쟁인 건가?“이렇게 중요한 일을 숨겨?”정말 화가 난 건지 눈까지 빨개진 박수혁의 모습에 이한석이 고개를 푹 숙였다.“죄송합니다.”책상을 다 쓸어버리고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자리에서 일어선 박수혁이 책상 다리를 쾅 걷어찼다.고개를 든 박수혁이 단 일말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