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찬 오빠가 스위스에서 상을 받고 찍은 사진이었다. 17살에 논문을 발표하고 바로 세계 일류 물리학자 대열에 이름을 올린 그녀의 오빠는 수많은 나라에서 욕심내는 천재였다. 수려한 이목구비에 따뜻한 미소를 짓고 있는 오빠를 바라보던 소은정이 미소를 지었다.“은찬님을 알아요?”신나리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달려왔다.“제 롤모델이요. 언젠가 은찬님을 직접 만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예요!”오버스러운 말투로 말하는 신나리의 눈빛은 당장이라도 하트를 발사할 것만 같았다.그런 신나리의 모습에 소은정은 침묵했다. 잘생긴 외모, 천재적인 재능, 완벽해 보이는 그녀의 오빠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여자와 대화하는 걸 극도로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아빠도 소은찬이 평생 외롭게 혼자 사는 게 아닐까 가끔씩 걱정을 내비치기도 했다.한편, 이런 사정은 까맣게 모르고 있는 신나리는 그녀의 팔을 흔들며 말을 이어갔다.“정말 잘생기지 않았어요? 웬만한 연예인 저리 가라라니까요. 저 옷 속의 몸은 어떤 모습일까요...”영낙없이 사랑에 빠진 신나리를 바라보던 소은정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평범해요...”어렸을 때, 웃통을 벗은 채 돌아다니는 오빠들의 모습을 모두 지켜봤던 소은정이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워낙 운동도 안 하는 책벌레다 보니 큰 오빠와 셋째 오빠와 비교하면 조금 밀리는 건 사실이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신나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더니 물었다.“아니, 그전에 어떻게 은찬님을 아는 거죠?”소은정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망설였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신나리라면 무뚝뚝한 은찬 오빠의 마음을 열 수 있지도 않을까?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이 사람 연락처를 아는데. 드릴까요?”신나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정말요?”소은정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 소은찬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시차로 아직 일어나기 전인지 소은찬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모습이었다.평소 흠모하던 롤 모델의 흐트러진 모습이라니.
소은정은 신나리와 번호를 교환한 뒤 호랑이를 안고 실험실에서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춘식은 생각보다 빨리 나온 그녀를 향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은정은 호랑이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나리가 선물로 줬어요. 집에 데려가도 되죠.”흠칫 놀라던 임춘식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물론이죠. 이건 나리가 입사 전에 만든 로봇이라 회사 소유가 아닙니다. 나리가 허락했다면 얼마든지요.”말을 마친 임춘식은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 배신자야, 잘 가. 은정 씨 말 잘 듣고.”“흥, 내가 어련히 알아서 잘 할 텐데요 뭘.”마지막까지 발칙한 호랑이의 모습에 임춘식은 웃음을 터트렸다.“가시죠. 제가 댁까지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집에 도착하고 호랑이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던 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셋째 오빠 소은해가 보낸 영상통화 알림음이었다.한편, 호랑이는 그녀의 집에 돌아오자마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이러저리 훑어보았다. 깔끔하지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호랑이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둘러보던 호랑이는 소파 위에 풀쩍 뛰어올라 에르메스 스카프를 이불 삼아 편안히 눈을 감았다.소은정이 수락 버튼을 누르자 소은해의 잘생긴 얼굴이 나타났다. 데뷔와 동시에 뛰어난 외모로 연기력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는 최연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단점을 찾아볼 수 없는 조각 같은 외모에 타고난 끼, 연예인이 천직인 사람이었다.“우리 동생, 더 이뻐졌네?”소은정은 짐짓 머리를 넘기더니 말했다.“뭐 새삼스럽게.”소은해는 여동생의 자뻑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동생, 이혼 축하해. 이럴 때일수록 가족이랑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오빠가 스케줄 다 비워두고 내일 귀국하려고. 공항까지 마중 나와야 해.”소은정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소은해는 영상통화를 끊어버렸다.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젓던 소은정은 호랑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물었다.“너 이름 있어?”“내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멋진
흐뭇한 얼굴로 단톡방을 들여다보고 있던 소은정의 귓가에 익숙한 단어가 들려왔다.“수혁아...”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소은정의 얼굴에 걸린 미소는 차갑게 굳어버렸다.서민영, 여기서 만나다니!박수혁은 비서인 이한석과 함께 직접 마중을 나와있었다. 박수혁의 얼굴을 확인한 서민영은 눈시울을 붉히며 달려갔다.서로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커플 같은 두 사람의 모습에 소은정의 가슴은 또 욱신거렸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있었음에도 씁쓸함은 지워지지 않았다.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려 애쓰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익숙한 향기... 그녀는 애써 밝게 웃으며 애교를 부렸다.“오빠, 유치하게 정말.”신이 정성스레 조각한 듯한 소은해의 얼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여자인 그녀조차도 질투가 나는 미모였다.소은해는 선글라스를 올리며 괜히 퉁명스레 말했다.“야, 너 많이 컸다?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어! 은해 오빠다!”누군가 소리쳤다. 순식간에 소녀팬들이 그녀를 둘러쌌다. 그녀들의 맹렬한 기세에 깜짝 놀란 소은정이 나지막이 물었다.“경호원은?”“휴가 줬는데?”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럼 어떡해?”“네가 오빠를 지켜야지...”소은해가 뻔뻔하게 말했다.소은해가 공항에 나타났다는 소식은 일파만파 퍼져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몰려들었다. 소은해는 동생이 인파에 휩싸일까 그녀의 어깨를 꼭 안았다. 수많은 카메라에서 터져 나오는 플래시가 소은정의 눈을,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팬들의 목소리가 소은정의 귀를 자극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안 오는 건데!사진에 찍히고 싶지 않아 소은정은 애써 손으로 얼굴을 막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팬들이 찍은 사진은 SNS에 빠르게 퍼졌고 그녀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댓글을 남겼다.“소은해가 안고 있는 여자, 박수혁 대표랑 전 와이프 아니야?”“그러네. 진짜 소은정이잖아. 저 두 사람이 왜...”“설마 두 사람 사귀는 거야?”국내 최고의 톱스타와 전 재벌 며느리의 스캔
소은해는 차에 오르자마자 입을 열었다. 선글라스를 벗자마자 그의 찌푸려진 눈살이 드러났다. 그는 확실히 본 것이 틀림없었다. 박수혁 그 개자식도 분명 공항에 있었다.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맞아, 전 애인이 돌아왔거든.”박수혁의 존재감은 누구든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를 소은해가 못 알아볼 리는 만무했다.“허, 옆에 끼고 있던 그 여자? 쯧쯧, 눈이 멀었구만.”소은정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취향이지 뭐. 맞다, 공항 사진은 분명 인터넷에 퍼질 텐데… 사람 시켜서 제재해야 하는 거 아니야?”소은해는 아랑곳 않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아니, 그럴 필요 없어. 내 동생이 얼마나 잘나가는지 사람들한테 보여줘야겠어!”박수혁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없었더라면 그는 소은정을 대중에 노출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수혁은 이미 모습을 드러냈고, 이렇게 된 이상 소은정이 얼마나 매력 있는 사람인지를 그에게 똑똑히 인식시켜야 했다.그녀가 수천수만 명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오라버니, 내가 요즘 얼마나 많은 스캔들에 휘말렸는지 알아요? 연예계 사람이라도 된 것 같다니까!”소은정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소은정에게 쏟아지는 관심은 연예인들도 눈시울을 붉힐 수준이었다.“그럼 뭐 어때, 오빠가 여기 있잖아. 어떤 일에 휘말리던 걱정할 필요 없어!”공항 입구의 차 안, 그 내부의 공기는 무섭도록 가라앉아 있었다.이한석은 한참의 침묵 뒤에야 입을 열었다.“박 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 민영 아가씨 먼저 호텔로 모실까요?”서민영은 재빨리 시선을 박수혁에게로 옮겼다.“나는 집에 가보고 싶은데, 어머님 아버님 못 뵌 지도 너무 오래됐잖아. 두 분 드릴 선물도 챙겨왔어.”박수혁의 낯이 어두웠다.“성준상의 기일이 곧인데, 그쪽에 먼저 가봐야 하는 거 아닌가? 돌아온 것도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그의 제안에는 왜 인지, 서민영에 대한 반감이 느껴졌다.자
박수혁은 냉랭한 눈을 한 채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이내 한없이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었다.“이미 저지른 일은 절대 되돌리지 못해. 난 소은정을 대신해서 너를 용서해 줄 자격도 없고, 네 사과 따위는 받을 가치도 없다는 거 똑똑히 알아 둬!”서민영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물들었다. 박수혁은 더 이상 볼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거두고는 말했다.“뭘 기다리고 있지? 출발해!”“네, 대표님.”운전을 일초라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차는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서민영은 온몸이 굳은 채 떠나는 차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내 그녀의 억울함은 분노로 뒤바뀌었다.자신이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박수혁이 저렇게나 냉담하게 변한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제 눈앞에서 있지도 않은 소은정의 편을 들어주었다.소은정, 기량 하나는 끔찍이도 대단하구나!서민영은 핸드폰을 집어 들고는 번호를 입력하였고, 곧 상대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왔다.“예리야? 나 입국했어…….”소찬식은 아직 해외에 있었고, 소은호는 출장 중에 있었다. 그런데도 소은해는 죽자 사자 소은정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길 고집했다.두 사람은 투닥거리며 문 앞에 다다랐고, 소은정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 입을 열었다.“관리인 아저씨께서 오빠 지낼 곳을 이틀 내내 깨끗하게 쓸고 닦았는데, 뭐 하러 꼭 여기서 지내겠다는 거야?”소은해가 그런 소은정의 귀를 죽 잡아당기며 말했다.“반대해도 소용없어. 거기는 하도 오래 비워 둬서 지내기 낯설어. 난 여기서 지낼 거니까 말리지 마!”소은정은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주었고, 출입문에 그의 지문까지 인식시켜 두었다. 그러고 나서야 소은해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어깨를 으쓱여대며 실내로 들어섰다.안으로 들어선 그는 곧장 인테리어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수수한 듯하나 세련됨이 드러났으며 값비싼 물건들임을 알 수 있었다. 머리 바로 위에서 다이아몬드의 빛이 일렁였다. 소은정이 가장 애정 하는 모란디 스타일이 곳곳에 스며 있었다.“좋
소은정은 전화를 끊고, 작은 소호랑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착하지…….”그 무렵 브랜드 매장 측은 소은정의 번호를 입력하여 고객 정보를 조회하였고, 직원은 깜짝 놀라 큰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소은정 아가씨?!”소은해는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샤워를 마친 뒤 재빨리 욕실을 나왔다. 어서 그 작은 호랑이를 더 보고 싶어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 때, 마침 현관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주문한 스카프가 도착했을 거야. 결제는 오라버니가 해주는 거 잊지 말고!”소은해는 소파 위에 소호랑과 세상 편히 엎드려 누운 소은정을 째려보았다. 결코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맨몸에 샤워타올만 두른 채로 급히 현관으로 향하며 비아냥거렸다.“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현관문을 연 소은해의 말은 이어지지 않은 채 뚝 끊겼고, 그의 표정 또한 삽시간에 굳어졌다.“여긴 무슨 일이지?”공기가 한 순간 무거워졌다.표정이 안 좋아진 건, 박수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매서운 눈으로 소은해에게 말했다.“그러는 그 쪽은, 여기 왜 있지?”제 앞의 소은해는 분명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모습을 하고있었다. 공항에서 나서자마자 여기로 곧장 왔다는 건가?공항에서 찍혔던 소은정과 소은해의 사진과 스캔들 기사는 이미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이는 제재할 수준이 아니었다.박수혁은 수 많은 방법을 동원해 소은정의 현재 거처를 알아내었다. 그는 지난 3년의 빚을 갚을 의항이 있었고, 직접 만나 대화하길 희망했다.지난번 소은정의 제안, 서민영과 비취 담뱃대 둘 중 무엇을 택해야 하나?그는 도저히 결단을 내릴 수 없었고, 소은정을 찾아 분명하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조건들을 들이대어도 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것이었다.그러나 이 상황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백주대낮부터 저 둘은 이곳에서 함께였다.저 둘이 무엇을 하고있었는지, 그의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그의 불난 속에 기름을 붓는 듯, 소은해는
세 사람은 그 소리에 벙찐 듯 했으나, 소은정은 곧 화난 얼굴을 하였다. 어쩐지 배신감이 드는 기분이었다. 실험실의 사람들이 ‘꼬마 배신자’ 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이 순간 그 별명의 이유가 더욱 확실해졌다.“소호랑!”소은정은 큰 소리를 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방금 주문한 몇 천만원 가치의 스카프들을 몽땅 취소하고 싶은 심정이었다.박수혁은 굳은 얼굴을 유지한 채 몸을 숙여 소호랑의 한 발을 잡아 들어올렸다.“어떻게 네가 여기 있지?”소호랑은 이리저리 바둥대며 대꾸하였다.“신나리가 날 여기로 데려왔어. 난 여기가 좋아…. 그러니까 싸우지 마.”박수혁이 그 말에 잠시 멈칫한 순간, 소은해가 재빨리 그의 손에서 소호랑을 낚아 채 소은정의 품에 안겨주었고 상황을 인지할 틈도 주지 않은 채 ‘쾅’ 소리를 내며 현관문을 닫아버렸다.단 몇 초만에 모든 임무를 완수 한 소은해였다.“우리 집 애완 호랑이를 남이 막 만지면 안되지!”곧 표정을 굳힌 소은해가 소은정의 품에 안긴 소호랑을 바라보며 말했다.“이 오빠가 몇 일 교육 좀 시켜줄까?”소호랑은 소은정의 품에 더욱 파고들며 그녀의 팔을 꼭 끌어 안았다.“마미, 나 무서워. 이 사람 나를 마미랑 뗴어놓으려고 하는 거야?”순간 화 났던 마음을 진정시킨 소은정이 소호랑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소은해에게 대답했다.“됐어. 내가 다른 방법 생각해볼게.”인공지능이니, 변화가 필요할 땐 당연히 인공지능이 필요한 것이였다.그런 생각을 막 하던 찰나, 소은정은 문 밖의 박수혁이 떠올랐다. 그래서 여기 온 목적이 뭐라는 거야?아니야, 됐다. 알고싶지 않았다. 해봤자 비취 담뱃대 얘기겠지. 서민영과 비취 담뱃대 둘 중에서도 못 고르겠다면, 안타깝지만 내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소은해는 여전히 더 할 말이 있어 보였으나 소은정은 분이 가라앉지 않은 듯 소호랑을 안아 들고 신나리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소호랑이 박수혁을 아빠라고 부르는 점은 무조건 고쳐야겠다
“됐고, 날 위해서라도 고쳐줘요. 그 사람 이름만 들어도 괴로울 지경이니까….”소은정은 이마를 짚었다.신나리는 우물쭈물 손을 머뭇 거리다 입을 열 듯하더니 이내 입술을 앙 다물었다.“고치치 못하는 건가요?”사람이 만들었는데, 사람이 고치지 못할 리가…….“아니요. 이미 아름다움의 기준이 박수혁의 인상으로 남았을 테니… 고치고 싶다면 그의 존재를 대체할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이 방법이겠네요.”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둘은 아무 말도 없을 수밖에 없었다.차갑게 굳은 소은정을 보던 신나리가 큼 큼 헛기침하더니 입을 열었다.“소은해… 는 어때요?”소은정은 머리까지 지끈거려왔다. 왜 또 그 사람이지?신나리는 핸드폰을 집어 들더니 소은정에게로 화면을 비추었다.“봐요. 인터넷에 둘의 기사가 이렇게나 가득한 걸요? 다들 공식 입장을 기다리나본데…. 아무튼 박수혁만한 얼굴이고…. 어떻게 생각해요?”소호랑이 소은해를 아빠라고 부른다고…?소은정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안돼!”그러나 제 주위에 박수혁만한 외모를 가진 이가 또 있던가…?두 사람은 한참을 고민에 빠졌고, 소은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박수혁을 싫어하게 만드는 건 어때요?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소은정은 그저 박수혁만 도려내고 싶을 뿐이었다.신나리는 묵묵히 생각을 하는 듯했다. 이내 두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안되는 건 아니예요. 그 인물에 대한 사고에 장벽을 세운다면…….”소은정은 그제서야 웃을 수 있었다.“좋아요,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해요. 지금 바로 데리고 나올 게요.”“아, 아니예요. 제가 컴퓨터로 작업하면 돼요.”신나리는 노트북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것에는 브랜드의 로고도 없었기에 어느 회사의 물건인지 분간이 힘들었다. 게다가 시중의 노트북들과는 어딘가 모양새가 달랐다. 생각해보니 제 둘째 오빠인 소은찬 역시 비슷한 것을 하나 가지고 있던 것 같았다.신나리가 자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