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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훔쳐보기

무례한 이민혜의 말에 한유라는 더 이상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소은정, 3년 동안 헌신하면서 산 결과가 겨우 이거야? 구질구질? 이런 말을 들으면서 3년을 지냈던 거야? 넌 참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 아니야!”

말을 마친 한유라는 이민혜를 밀쳤고 그 충격에 이민혜는 비틀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

“저기, 아줌마, 내 말 잘 들어요. 은정이만 아니었으면 이깟 집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깟 돈 몇 푼 좀 있다고 유세는. 아줌마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까 꼭 교양 없는 졸부네요. 박씨 집안 수준 대충 알겠어요. 난 안 나갈 거니까 때리든 말든 알아서 해요. 나이 든 아줌마 주제에 나랑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유라의 말에 이민혜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소은정과 한유라를 번갈아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너... 너희들이 감히! 소은정, 너 정말 집에서 쫓겨나고 싶어?”

하지만 소은정은 전처럼 비굴하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로 전 시어머니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요, 쫓아내실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나갈 거니까요. 오늘 온 것도 짐 챙기러 온 거예요.”

처음 보는 소은정의 모습에 이민혜는 잔뜩 충격을 먹었지만 소은정은 개의치 않고 바로 안방으로 걸어갔다.

과거의 그녀는 참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때문에 자존심이며 존엄이며 모두 내려놓았다니. 3년 동안 이민혜는 그녀를 돈을 위해 자기 아들을 꼬인 불여우 같은 여자라며 그녀를 모욕했었다. 돈으로 사람의 계급을 나누는 저딴 여자한테 굽신거리며 살다니.

하지만 이제 그녀도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소은정은 중요한 서류만 몇 가지 챙기고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

한편, 한유라와 이민혜는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며 기싸움 중이었다. 소은정이 방에서 나오자 한유라가 의기양양해서 물었다.

“다 챙겼어?”

“그래, 이제 가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일 수혁이한테 전부 다 이를 거야. 이대로 넘어갈 줄 알았다면 오산이야. 울면서 다시 돌아와도 내가 내쫓을 거니까 알아서 해.”

이민혜는 아들의 이름을 언급하면 소은정이 바로 꼬리를 내릴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소은정은 여유로운 미소로 돌아보더니 받아쳤다.

“아, 이걸 말씀 안 드렸네요. 저 박수혁이랑 이혼했어요. 다시 이곳에 돌아올 일은 없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말을 마친 소은정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떴다.

혼자 남겨진 이민혜는 충격을 받고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이혼? 소은정이 이혼을 결심했다고? 그녀는 바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혁아, 너 소은정이랑 이혼했어?”

다짜고짜 이혼을 언급하는 어머니의 말에 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물었다.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은정이 만나셨어요?”

“정말이구나! 어머, 너무 잘했어! 그딴 계집애가 우리 가문에 가당키나 해? 남자한테 빌붙어서 인생역전이나 노리는 천박한 계집애 난 처음부터 싫었어. 수혁이 네가 뭐가 모자라서 그런 애랑 사니?”

어머니의 말에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그는 다급함이 실린 목소리로 물으며 이민혜의 말을 바로 끊어버렸다.

“은정이 지금 어디 있어요?”

병원에서 사라지고 수소문을 해도 소은정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런데 소은정이 나타나다니. 지금 그는 당장 소은정을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아까 집에 왔다가 바로 나가던데? 참, 안방에 가서 다른 거 훔쳐 간 건 없는지 확인해야겠다. 너 따로 위자료 챙겨주고 그런 건 아니지?”

“돈은 싫다고 했어요.”

소은정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에 박수혁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소은정은 누가 봐도 참한 며느리였고 그의 가족들과 잘 지내는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불만이 많았다니.

“그래도 마지막이라고 주제 파악은 제대로 한 모양이네.”

이민혜가 코웃음을 쳤다.

박수혁은 왠지 불편한 마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짜증스레 전화를 끊어버렸다. 설마... 어머니 때문에 이혼하려고 한 건가?

소은정은 이미 떠났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는 다시 집으로 달려갔다. 3년 동안, 몇 번 가지도 않은 그들의 신혼집으로 말이다. 안방에 들어간 박수혁은 주위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서랍에 있던 소은정의 여권, 민증 등 기본적인 서류를 제외하고 모든 건 그대로였다. 심지어 생활비로, 헌혈의 대가로 입금했던 통장도 그대로였다.

소은정이 떠났다는 게 실감이 나면서 박수혁은 왠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잉꼬부부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3년을 아내로 살아준 사람이다.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에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이때, 이민혜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방으로 들어오더니 소리쳤다.

“금고에 있던 “아름다운 꿈” 목걸이가 사라졌어. 그게 얼마짜린데! 10억이야, 10억! 소은정 그 계집애가 훔쳐 간 거야.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당장 신고해야겠어.”

어머니의 말에 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그만두세요. 은정이가 훔쳐 간 거 아니니까. 뭐 다른 곳에 있겠죠.”

소은정은 금고의 비밀번호도 모른다. 그런데 그 안에 있는 목걸이를 훔쳐 갔을 리가 없지 않은가? 설령 정말 소은정이 훔쳐 간 거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위자료 한 푼 못 준 것도 마음에 걸리고 3년 동안 아내에게 선물 하나 하지 않은 스스로가 부끄러워서였다.

박수혁은 아무 말 없이 차 키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차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지만 마음속 답답함은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이민혜는 달랐다. 그녀는 천박한 전 며느리에게 단 한 푼도 두고 싶지 않았다. 뭐, 신고를 안 해도 상관없었다. 그깟 여자애 하나 상대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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