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스레 전화를 끊은 박수혁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혹시나 해서 소은정한테도 전화를 걸었지만 들리는 건 전화기가 꺼졌다는 음성뿐, 그의 연락처를 차단이라도 했나 보다.박수혁은 거칠게 휴대폰을 책상에 던져버리더니 이한석을 향해 말했다.“소은정, 지금 어디 있어?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 15분 준다.”대표의 무리한 요구에 이한석은 지금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더 깊이 숙이며 말했다.“대표님, 사모님 행방은 한참 전부터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가 없는걸 보면 A시를 떠난 게 아닐까요?”비서의 보고에 박수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30분 후, 태한 그룹은 소은정을 모함했던 글을 지우고 모든 게 오해였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하지만 사과문 하나로 이미 돌아선 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박수혁은 소은정이 SNS에 업로드한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한 글이었음에도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오늘은 남편이 일찍 집에 와서 기분이 좋아요...”“비가 오네요. 우리 남편 우산은 챙겼으려나?”“남편이 직접 데리러 와줬어요.”“남편을 위해 준비한 아침...”......뭔가에 홀린 듯 모든 글을 읽은 박수혁은 그가 형식뿐이라 생각했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은정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소은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한 번도 그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박수혁을 더 괴롭게 만들었다.지금까지 업로드한 수많은 글에서 소은정 자신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건 남편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오늘 아침 8시, 마지막으로 업로드한 딱딱한 글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그들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듯한 느낌에 왠지 공허해졌다. 그녀가 올린 글들을 다시 확인하려고 스크린을 올리는 순간, 페이지에 렉이 걸렸다. 새로
파티장은 오늘 파티의 규모와 테마에 맞게 번쩍이는 인테리어로 최대한 고급스러움을 어필하고 있었다. 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이름만 대도 알만한 정도의 유명 인사들이었다.파티에 참석하면 박수혁을 만날 거란 걸 소은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을 내려놓은 그녀의 마음에 박수혁은 더 이상 그 어떤 파장도 일지 못했다.박수혁에게 전처가 있다는 건 다들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한 번도 공식적인 장소에 함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데다 “절도 스캔들”로 들썩거릴 때도 완벽한 보안 덕분에 소은정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유출되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그저 소은정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박수혁의 옆에 서 있는 서민영을 본 순간, 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빨리 그 옆자리를 꿰찰 줄은 몰랐는데. 대단한걸?그런 동생이 신경 쓰였는지 소은호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겁먹지 마. 오빠가 있잖아.”하지만 소은정은 더 밝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겁은 저쪽에서 먹어야죠.”이제 그녀는 지켜야 할 것이 없다. 지킬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두려움도 없기 마련이다. 소은호와 소은정은 여유롭게 박수혁에게 다가갔다. 전 매형과 전 처남이라는 미묘한 관계,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과찬이십니다. 저야말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두 사람은 형식적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한편, 박수혁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은호 옆에 있는 여자에게 꽂혀있었다.소은호의 옆에서 눈부시고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 빛내주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에 그는 눈을 뗄 수 없었다.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모습의 소은정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편안하면서도 위험한 기분이 들었다. 치명적인 매력을 흘리는 그녀를 그는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곁을 떠나 소은호에게 간 걸까?소은호와는 무슨 사이인 걸까?달라진 모습에 대한 놀라움, 그
소은정을 발견한 서민영은 잔뜩 독기가 오른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갔다.“소은정...”사실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건 진작 눈치챈 상태였다. 그리고 굳이 파티장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 사람은 서민영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소은정은 여유롭게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 앞에서 청순한 모습이던 서민영은 드디어 가면을 벗어던지고 물었다.“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파티에는 왜 온 건데? 설마 수혁이한테 다시 접근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두 사람 이미 이혼했잖아.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거야? 내가 은정 씨였으면 평생 숨어서 지냈을 거야.”하지만 소은정은 차가운 미소로 응수했다.“그동안 잘 지냈어?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이 상간녀라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기분이 어때?”1달 전, 박수혁의 이혼 기사와 함께 외도 사실이 폭로되며 네티즌들은 서민영의 신분을 전부 조사해냈다. 비록 태한 그룹에서는 이를 루머일 뿐이라고 발표하고 관련 기사들을 전부 삭제했지만 서민영은 “상간녀”라는 악명을 그대로 떠안게 되었다. 매일 쏟아지는 악플과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파다했다.“사람들 시선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한 지금 수혁이 옆에는 내가 있다는 거야. 당신이 진 거라고.”서민영은 소은정을 훑어보며 비아냥거렸다.“그 초대장 어떻게 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한테 수혈하고 받은 돈으로 산 거겠지? 안 그럼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곳에 올 수 있었겠어? 이 드레스, 액세서리들 전부 대여한 거라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말을 마친 서민영은 갑자기 눈을 반짝이더니 수영장 변두리로 걸어가 차갑게 웃었다.“소은정, 이건 다 네가 자초한 거야...”말을 마친 서민영은 갑자기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물이 튀기는 소리에 파티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당황한 뭇사람과 달리 소은정만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녀의 눈앞에 3년 전, 박수혁과의 결혼식 날, 피로연장에서 일어났던 일이 펼쳐졌다.“은정 씨, 이 결혼 축하는
순간,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세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 박수혁이 불미스러운 일로 이혼을 당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으나 태한 그룹의 권세에 눌려 대놓고 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재밌는 장면이 연출되지 마다할 리가 없었다.설마 소은정도 숨기고 있는 일이 있었던 건가? 오늘에야말로 이 이혼의 진실을 알게 되는 건가?한편, 서민영의 폭탄 발언에 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설령 소은정이 서민영을 민 것이라고 해도 서민영의 말은 도를 넘은 것, 그가 다가가서 말리려는 순간, 소은정이 잔뜩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소은정은 서민영의 팔을 끌고 다시 수영장 쪽으로 걸어갔다. 서민영은 그런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발버둥 쳤지만 분노에 찬 소은정을 힘으로 당해낼 수가 없었다.수영장 변두리까지 걸어간 소은정은 거세게 서민영의 뺨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서민영은 비명을 질렸다. 하지만 서민영이 반격을 하기도 전에 소은정은 꽉 잡고 있던 손목에 힘을 풀었고 한참을 버둥거리던 서민영은 결국 다시 물에 빠지고 말았다. 물에 빠진 서민영은 비참한 모습으로 물속에서 퍼덕거렸다.하지만 소은정의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도 않은 일로 욕을 먹느니 차라리 하고 먹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이제 더 이상 연기는 필요 없어.”소은정의 당당한 태도에 사람들의 의심은 또다시 서민영에게로 쏟아졌다. 박수혁은 완전히 달라진 소은정의 모습에 잔뜩 충격을 먹었는지 서민영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누구도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자 서민영은 극도의 수치심에 휩싸였다. 애초에 수심이 별로 깊지도 않은 수영장, 그녀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민영이 수영장 벽 타일을 잡는 순간, 수상한 액체가 그녀의 머리 위로 흘러내렸다. 82년산 라피트 와인의 고급스러운 향이 그녀의 코를 찔렀다. 와인을 뒤집어쓴 서민영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고개를 들었
“박수혁, 3년 동안 수혈을 대가로 나한테 줬던 돈이야. 돌려줄게. 이제 우리 서로 깔끔하게 정리된 거야. 그러니까 다시 들러붙지 마.”소은정의 목소리에는 결연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이 상황을 살펴보던 박수혁의 가슴속에 또다시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하지만 소은정의 이 화끈한 퍼포먼스 덕분에 돈 때문에 박수혁과 결혼생활을 유지했다는 서민영의 말도 완벽한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소은정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고 서민영은 차오르는 분노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 덜덜 떨리는 이 몸이 분노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소은정,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걸림돌인 여자가 오늘 또다시 그녀에게 모욕감을 안겨주었다.“수혁아, 은정 씨가 아직 나한테 화가 많이 났나 봐. 그냥 가자.”하지만 겨우 만난 소은정을 이렇게 보낼 수 없었던 박수혁이 말했다.“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말을 마친 박수혁은 다시 파티장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소은정은 테이블에 앉아있었고 여색을 멀리하기로 소문난 소은호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이힐 때문에 빨갛게 부어오른 그녀의 발목을 살펴보고 있었다.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에 왠지 박수혁은 가슴이 욱신거렸다.인기척에 고개를 든 두 사람은 불청객 박수혁의 존재를 발견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소은호는 일어서 소은정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박 대표님, 파트너분한테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설마 직접 복수라도 하려고 오신 건가요?”박수혁은 소은정의 어깨를 감싼 소은호의 손을 한참 동안 노려보다 차갑게 말했다.“은정아,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불만 있으면 나한테 풀어. 그리고 지금은 민영이한테 사과하고.”그의 말에 소은정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박수혁과 눈빛을 마주했다.“싫다면? 왜? 내가 했던 것처럼 나도 수영장에 빠트리게?”과거의 일은 다 털어놓았다는 듯 가볍게 웃는 그녀의 표정이, 이렇게 빨리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박수혁의 신경을 건드렸다.“어쨌든 3년 동
박수혁의 말에 서민영은 그녀를 버리지 말라며 애처롭게 애원했지만 박수혁은 뜨겁게 차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가슴만 답답할 따름이었다.이번 사건과 더불어 이혼 당일 다쳤다고 서민영이 거짓말을 한 일까지 떠오르며 3년간 몇 번이나 저 여자한테 놀아난 건지 혼란스러웠다.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던 그때, 멋진 스포츠카가 도로에 멈춰 서더니 누군가 그를 향해 손을 저었다.“형, 타.”강서진은 오랫동안 박수혁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 사실 그도 오늘 파티에 참석해야 했지만 방금 전 일어난 소란으로 인해 박수혁이 파티장을 뜨고 괜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어 역시 핑계를 대고 나와버렸다. 그런데 도로에서 만날 줄이야.조수석에 탄 박수혁은 습관적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순간, 테라스에서 여유롭게 담배를 물던 소은정의 모습이 떠오르며 살짝 멈칫했다.“형? 오늘 소은정 봤지? 소은호랑은 무슨 사이래?”강서진의 질문에 박수혁은 더욱 짜증이 치밀었다. 그가 한 질문은 박수혁이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이었으니까. 다행히 기자들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된 파티라 다행이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지만 태한 그룹의 입지가 있는 이상, 다들 함부로 떠벌리지는 못할 것이다.“솔직히 소은정 정도 되는 여자가 형이랑 결혼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이게 무슨 망신이야. 그리고 민영 누나가 또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형, 이혼 잘했어. 그런 여자랑 계속 살았으면 형 가족이 그런 꼴을 당했을 수도 있다고. 그런데 그 여자도 참 대단해? 그 사이에 소은호는 어떻게 꼬인 거지? 비결이 뭘까? 반반한 얼굴?”박수혁은 얼굴, 몸매, 재력, 집안까지 빠지는 게 없는 최고의 남자, 그와 한번 만나보고 싶은 재벌집 영애들은 세려야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물론 강서진도 소은정이 박수혁의 돈만 보고 결혼을 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웃어넘겼을 강서진의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렸다.“됐어. 그만해.”박수혁이
대서양 J국 카지노에서 죽을 치고 있던 박예리는 자신이 도박에 빠져 집에 있던 액세서리까지 훔친 일로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는 사실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그런 그녀가 다시 귀국하고 평소 친한 척하던 다른 재벌가 자제들이 그녀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때에야 박예리는 자초지종을 듣고 크게 분노했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쫓겨난 올케 소은정이 있었다니?그렇게 한참을 벼르고 있던 박예리는 마침 레스토랑에서 소은정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바로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역시 소은정을 가난한 집안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녀는 바로 매니저를 호출했다. 그녀가 받은 치욕을 10, 100배로 갚아주리라 다짐했다.갑작스러운 소란에 매니저가 부랴부랴 달려왔다. 하지만 그가 관리하고 있는 레스토랑은 모두 맴버십으로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 예약제, 이곳을 찾는 손님들 중 그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손님, 정말 죄송합니다.”박예리는 당장이라도 소은정의 뺨을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보는 눈들이 많이 그저 그녀를 매섭게 노려볼 뿐이었다.“저 여자 당장 내쫓아. 저 여자 때문에 밥맛이 떨어진다고!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있지?”박예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매니저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저분은 SC 그룹의 대표 소은호가 아닌가? 그리고 그와 동행하고 있는 고급스럽고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박예리의 무례한 행동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매니저는 부랴부랴 달려가 소은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소 대표님, 오셨습니까? 예약하신 자리는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따라오세요.”예상치 못한 상황에 박예리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비쳤다. 그리고 소은호의 잘생긴 외모에 또 한 번 흠칫 놀랐지만 소은정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바로 미간을 찌푸리더니 더 악을 쓰며 소리쳤다.“야! 내 말 안 들려? 저 사람들 당장 내쫓으라고!”이민혜도 질세라 곁에서 거들었다. 그
말을 마친 소은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박예리는 화도 내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오히려 이민혜가 소리를 지르며 매니저와 직원들을 부르기 시작했다.“소은정, 너 정말 미쳤어? 이게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이민혜가 욕설을 내뱉으려던 순간, 소은정은 이미 매니저의 에스코트를 받아 VIP 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붉은 레드와인을 뒤집어쓰고 머리도, 옷도 엉망이 된 박예리는 한참을 부들거리다 벌떡 일어서 그 뒤를 따르려 했으나 직원들이 그녀를 막아섰다.“손님, 저희가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다른 손님들의 시선을 눈치챈 박예리는 하이힐로 바닥을 세차게 구르더니 중얼거렸다.“소은정, 두고 봐. 이 치욕 언젠가는 다시 갚아줄 테니까.”......VIP룸, 소은호는 여전히 불쾌함을 지우지 못한 모습이었으나 오히려 당사자인 소은정은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었다.“오빠, 나 유라랑 같이 쇼핑하기로 했는데 오빠도 같이 갈래?”소은호는 그런 그녀를 흘겨보더니 말했다.“넌 애가 속도 없어? 그 꼴을 당하고도 쇼핑이 하고 싶어? 저 집안사람들 도대체 지금까지 널 어떻게 생각했던 거야? 기르던 개한테도 그렇게는 안 할 거야!”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방금 전까지 환하게 웃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됐어. 어차피 다 지난 일이야. 앞으로 날 또 건드린다면 그때는 나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온 두 사람의 시야에 박수혁의 차량이 들어왔다. 차 안에 있던 박예리는 소은정이 나온 걸 보고 바로 울면서 고자질을 시작했다.“쟤가 그랬다고. 오빠, 내가 아까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 내 몸에 손까지 댔다고. 엄마도 곁에서 다 봤단 말이야.”소은정은 박수혁과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소은호의 손을 잡고 자리를 뜨려 했다. 소은정의 반응에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항상 순종적이던 소은정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