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스레 전화를 끊은 박수혁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혹시나 해서 소은정한테도 전화를 걸었지만 들리는 건 전화기가 꺼졌다는 음성뿐, 그의 연락처를 차단이라도 했나 보다.박수혁은 거칠게 휴대폰을 책상에 던져버리더니 이한석을 향해 말했다.“소은정, 지금 어디 있어?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 15분 준다.”대표의 무리한 요구에 이한석은 지금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더 깊이 숙이며 말했다.“대표님, 사모님 행방은 한참 전부터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가 없는걸 보면 A시를 떠난 게 아닐까요?”비서의 보고에 박수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30분 후, 태한 그룹은 소은정을 모함했던 글을 지우고 모든 게 오해였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하지만 사과문 하나로 이미 돌아선 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박수혁은 소은정이 SNS에 업로드한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한 글이었음에도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오늘은 남편이 일찍 집에 와서 기분이 좋아요...”“비가 오네요. 우리 남편 우산은 챙겼으려나?”“남편이 직접 데리러 와줬어요.”“남편을 위해 준비한 아침...”......뭔가에 홀린 듯 모든 글을 읽은 박수혁은 그가 형식뿐이라 생각했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은정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소은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한 번도 그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박수혁을 더 괴롭게 만들었다.지금까지 업로드한 수많은 글에서 소은정 자신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건 남편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오늘 아침 8시, 마지막으로 업로드한 딱딱한 글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그들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듯한 느낌에 왠지 공허해졌다. 그녀가 올린 글들을 다시 확인하려고 스크린을 올리는 순간, 페이지에 렉이 걸렸다. 새로
파티장은 오늘 파티의 규모와 테마에 맞게 번쩍이는 인테리어로 최대한 고급스러움을 어필하고 있었다. 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이름만 대도 알만한 정도의 유명 인사들이었다.파티에 참석하면 박수혁을 만날 거란 걸 소은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을 내려놓은 그녀의 마음에 박수혁은 더 이상 그 어떤 파장도 일지 못했다.박수혁에게 전처가 있다는 건 다들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한 번도 공식적인 장소에 함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데다 “절도 스캔들”로 들썩거릴 때도 완벽한 보안 덕분에 소은정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유출되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그저 소은정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박수혁의 옆에 서 있는 서민영을 본 순간, 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빨리 그 옆자리를 꿰찰 줄은 몰랐는데. 대단한걸?그런 동생이 신경 쓰였는지 소은호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겁먹지 마. 오빠가 있잖아.”하지만 소은정은 더 밝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겁은 저쪽에서 먹어야죠.”이제 그녀는 지켜야 할 것이 없다. 지킬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두려움도 없기 마련이다. 소은호와 소은정은 여유롭게 박수혁에게 다가갔다. 전 매형과 전 처남이라는 미묘한 관계,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과찬이십니다. 저야말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두 사람은 형식적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한편, 박수혁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은호 옆에 있는 여자에게 꽂혀있었다.소은호의 옆에서 눈부시고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 빛내주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에 그는 눈을 뗄 수 없었다.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모습의 소은정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편안하면서도 위험한 기분이 들었다. 치명적인 매력을 흘리는 그녀를 그는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곁을 떠나 소은호에게 간 걸까?소은호와는 무슨 사이인 걸까?달라진 모습에 대한 놀라움, 그
소은정을 발견한 서민영은 잔뜩 독기가 오른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갔다.“소은정...”사실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건 진작 눈치챈 상태였다. 그리고 굳이 파티장에서 그녀에게 말을 걸 사람은 서민영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소은정은 여유롭게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 앞에서 청순한 모습이던 서민영은 드디어 가면을 벗어던지고 물었다.“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파티에는 왜 온 건데? 설마 수혁이한테 다시 접근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두 사람 이미 이혼했잖아.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거야? 내가 은정 씨였으면 평생 숨어서 지냈을 거야.”하지만 소은정은 차가운 미소로 응수했다.“그동안 잘 지냈어? 온 세상 사람들이 당신이 상간녀라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기분이 어때?”1달 전, 박수혁의 이혼 기사와 함께 외도 사실이 폭로되며 네티즌들은 서민영의 신분을 전부 조사해냈다. 비록 태한 그룹에서는 이를 루머일 뿐이라고 발표하고 관련 기사들을 전부 삭제했지만 서민영은 “상간녀”라는 악명을 그대로 떠안게 되었다. 매일 쏟아지는 악플과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도 파다했다.“사람들 시선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한 지금 수혁이 옆에는 내가 있다는 거야. 당신이 진 거라고.”서민영은 소은정을 훑어보며 비아냥거렸다.“그 초대장 어떻게 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나한테 수혈하고 받은 돈으로 산 거겠지? 안 그럼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곳에 올 수 있었겠어? 이 드레스, 액세서리들 전부 대여한 거라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말을 마친 서민영은 갑자기 눈을 반짝이더니 수영장 변두리로 걸어가 차갑게 웃었다.“소은정, 이건 다 네가 자초한 거야...”말을 마친 서민영은 갑자기 수영장에 뛰어들었다. 물이 튀기는 소리에 파티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당황한 뭇사람과 달리 소은정만은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그녀의 눈앞에 3년 전, 박수혁과의 결혼식 날, 피로연장에서 일어났던 일이 펼쳐졌다.“은정 씨, 이 결혼 축하는
순간,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세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한 달 전, 박수혁이 불미스러운 일로 이혼을 당했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으나 태한 그룹의 권세에 눌려 대놓고 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재밌는 장면이 연출되지 마다할 리가 없었다.설마 소은정도 숨기고 있는 일이 있었던 건가? 오늘에야말로 이 이혼의 진실을 알게 되는 건가?한편, 서민영의 폭탄 발언에 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설령 소은정이 서민영을 민 것이라고 해도 서민영의 말은 도를 넘은 것, 그가 다가가서 말리려는 순간, 소은정이 잔뜩 굳은 얼굴로 돌아섰다.그리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소은정은 서민영의 팔을 끌고 다시 수영장 쪽으로 걸어갔다. 서민영은 그런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발버둥 쳤지만 분노에 찬 소은정을 힘으로 당해낼 수가 없었다.수영장 변두리까지 걸어간 소은정은 거세게 서민영의 뺨을 날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서민영은 비명을 질렸다. 하지만 서민영이 반격을 하기도 전에 소은정은 꽉 잡고 있던 손목에 힘을 풀었고 한참을 버둥거리던 서민영은 결국 다시 물에 빠지고 말았다. 물에 빠진 서민영은 비참한 모습으로 물속에서 퍼덕거렸다.하지만 소은정의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하지도 않은 일로 욕을 먹느니 차라리 하고 먹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이제 더 이상 연기는 필요 없어.”소은정의 당당한 태도에 사람들의 의심은 또다시 서민영에게로 쏟아졌다. 박수혁은 완전히 달라진 소은정의 모습에 잔뜩 충격을 먹었는지 서민영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누구도 그녀를 구하러 오지 않자 서민영은 극도의 수치심에 휩싸였다. 애초에 수심이 별로 깊지도 않은 수영장, 그녀는 이를 악물고 스스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민영이 수영장 벽 타일을 잡는 순간, 수상한 액체가 그녀의 머리 위로 흘러내렸다. 82년산 라피트 와인의 고급스러운 향이 그녀의 코를 찔렀다. 와인을 뒤집어쓴 서민영이 눈이 휘둥그레진 채 고개를 들었
“박수혁, 3년 동안 수혈을 대가로 나한테 줬던 돈이야. 돌려줄게. 이제 우리 서로 깔끔하게 정리된 거야. 그러니까 다시 들러붙지 마.”소은정의 목소리에는 결연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이 상황을 살펴보던 박수혁의 가슴속에 또다시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하지만 소은정의 이 화끈한 퍼포먼스 덕분에 돈 때문에 박수혁과 결혼생활을 유지했다는 서민영의 말도 완벽한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소은정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고 서민영은 차오르는 분노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 덜덜 떨리는 이 몸이 분노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소은정,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걸림돌인 여자가 오늘 또다시 그녀에게 모욕감을 안겨주었다.“수혁아, 은정 씨가 아직 나한테 화가 많이 났나 봐. 그냥 가자.”하지만 겨우 만난 소은정을 이렇게 보낼 수 없었던 박수혁이 말했다.“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말을 마친 박수혁은 다시 파티장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소은정은 테이블에 앉아있었고 여색을 멀리하기로 소문난 소은호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이힐 때문에 빨갛게 부어오른 그녀의 발목을 살펴보고 있었다.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에 왠지 박수혁은 가슴이 욱신거렸다.인기척에 고개를 든 두 사람은 불청객 박수혁의 존재를 발견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소은호는 일어서 소은정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박 대표님, 파트너분한테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설마 직접 복수라도 하려고 오신 건가요?”박수혁은 소은정의 어깨를 감싼 소은호의 손을 한참 동안 노려보다 차갑게 말했다.“은정아,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불만 있으면 나한테 풀어. 그리고 지금은 민영이한테 사과하고.”그의 말에 소은정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박수혁과 눈빛을 마주했다.“싫다면? 왜? 내가 했던 것처럼 나도 수영장에 빠트리게?”과거의 일은 다 털어놓았다는 듯 가볍게 웃는 그녀의 표정이, 이렇게 빨리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박수혁의 신경을 건드렸다.“어쨌든 3년 동
박수혁의 말에 서민영은 그녀를 버리지 말라며 애처롭게 애원했지만 박수혁은 뜨겁게 차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가슴만 답답할 따름이었다.이번 사건과 더불어 이혼 당일 다쳤다고 서민영이 거짓말을 한 일까지 떠오르며 3년간 몇 번이나 저 여자한테 놀아난 건지 혼란스러웠다.차가운 바람이 휘몰아치던 그때, 멋진 스포츠카가 도로에 멈춰 서더니 누군가 그를 향해 손을 저었다.“형, 타.”강서진은 오랫동안 박수혁과 친하게 지내는 친구, 사실 그도 오늘 파티에 참석해야 했지만 방금 전 일어난 소란으로 인해 박수혁이 파티장을 뜨고 괜히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어 역시 핑계를 대고 나와버렸다. 그런데 도로에서 만날 줄이야.조수석에 탄 박수혁은 습관적으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 순간, 테라스에서 여유롭게 담배를 물던 소은정의 모습이 떠오르며 살짝 멈칫했다.“형? 오늘 소은정 봤지? 소은호랑은 무슨 사이래?”강서진의 질문에 박수혁은 더욱 짜증이 치밀었다. 그가 한 질문은 박수혁이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사실이었으니까. 다행히 기자들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된 파티라 다행이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지만 태한 그룹의 입지가 있는 이상, 다들 함부로 떠벌리지는 못할 것이다.“솔직히 소은정 정도 되는 여자가 형이랑 결혼할 수 있었던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이게 무슨 망신이야. 그리고 민영 누나가 또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형, 이혼 잘했어. 그런 여자랑 계속 살았으면 형 가족이 그런 꼴을 당했을 수도 있다고. 그런데 그 여자도 참 대단해? 그 사이에 소은호는 어떻게 꼬인 거지? 비결이 뭘까? 반반한 얼굴?”박수혁은 얼굴, 몸매, 재력, 집안까지 빠지는 게 없는 최고의 남자, 그와 한번 만나보고 싶은 재벌집 영애들은 세려야 셀 수 없을 지경이었다. 물론 강서진도 소은정이 박수혁의 돈만 보고 결혼을 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그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웃어넘겼을 강서진의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거슬렸다.“됐어. 그만해.”박수혁이
대서양 J국 카지노에서 죽을 치고 있던 박예리는 자신이 도박에 빠져 집에 있던 액세서리까지 훔친 일로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는 사실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그런 그녀가 다시 귀국하고 평소 친한 척하던 다른 재벌가 자제들이 그녀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때에야 박예리는 자초지종을 듣고 크게 분노했다. 게다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쫓겨난 올케 소은정이 있었다니?그렇게 한참을 벼르고 있던 박예리는 마침 레스토랑에서 소은정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바로 이성을 잃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역시 소은정을 가난한 집안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녀는 바로 매니저를 호출했다. 그녀가 받은 치욕을 10, 100배로 갚아주리라 다짐했다.갑작스러운 소란에 매니저가 부랴부랴 달려왔다. 하지만 그가 관리하고 있는 레스토랑은 모두 맴버십으로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는 예약제, 이곳을 찾는 손님들 중 그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손님, 정말 죄송합니다.”박예리는 당장이라도 소은정의 뺨을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보는 눈들이 많이 그저 그녀를 매섭게 노려볼 뿐이었다.“저 여자 당장 내쫓아. 저 여자 때문에 밥맛이 떨어진다고! 우리가 누군지는 알고 있지?”박예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매니저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저분은 SC 그룹의 대표 소은호가 아닌가? 그리고 그와 동행하고 있는 고급스럽고 청순한 외모의 여자는 박예리의 무례한 행동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매니저는 부랴부랴 달려가 소은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소 대표님, 오셨습니까? 예약하신 자리는 이미 준비해 두었습니다. 따라오세요.”예상치 못한 상황에 박예리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비쳤다. 그리고 소은호의 잘생긴 외모에 또 한 번 흠칫 놀랐지만 소은정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바로 미간을 찌푸리더니 더 악을 쓰며 소리쳤다.“야! 내 말 안 들려? 저 사람들 당장 내쫓으라고!”이민혜도 질세라 곁에서 거들었다. 그
말을 마친 소은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박예리는 화도 내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오히려 이민혜가 소리를 지르며 매니저와 직원들을 부르기 시작했다.“소은정, 너 정말 미쳤어? 이게 지금 어느 안전이라고!”이민혜가 욕설을 내뱉으려던 순간, 소은정은 이미 매니저의 에스코트를 받아 VIP 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붉은 레드와인을 뒤집어쓰고 머리도, 옷도 엉망이 된 박예리는 한참을 부들거리다 벌떡 일어서 그 뒤를 따르려 했으나 직원들이 그녀를 막아섰다.“손님, 저희가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다른 손님들의 시선을 눈치챈 박예리는 하이힐로 바닥을 세차게 구르더니 중얼거렸다.“소은정, 두고 봐. 이 치욕 언젠가는 다시 갚아줄 테니까.”......VIP룸, 소은호는 여전히 불쾌함을 지우지 못한 모습이었으나 오히려 당사자인 소은정은 별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웃었다.“오빠, 나 유라랑 같이 쇼핑하기로 했는데 오빠도 같이 갈래?”소은호는 그런 그녀를 흘겨보더니 말했다.“넌 애가 속도 없어? 그 꼴을 당하고도 쇼핑이 하고 싶어? 저 집안사람들 도대체 지금까지 널 어떻게 생각했던 거야? 기르던 개한테도 그렇게는 안 할 거야!”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했다. 방금 전까지 환하게 웃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됐어. 어차피 다 지난 일이야. 앞으로 날 또 건드린다면 그때는 나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을 나온 두 사람의 시야에 박수혁의 차량이 들어왔다. 차 안에 있던 박예리는 소은정이 나온 걸 보고 바로 울면서 고자질을 시작했다.“쟤가 그랬다고. 오빠, 내가 아까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 내 몸에 손까지 댔다고. 엄마도 곁에서 다 봤단 말이야.”소은정은 박수혁과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소은호의 손을 잡고 자리를 뜨려 했다. 소은정의 반응에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항상 순종적이던 소은정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