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리가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로 자리를 뜨자 한유라가 바로 그녀의 카드를 빼앗더니 물었다.“네가 어떻게 이 카드를 가지고 있어?”“18살 생일에 은해 오빠가 준 거야. 항상 가지고 다니라고 말하더니.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네.”“왜 나한테는 그런 오빠가 없는 걸까?”한유라가 짐짓 소은정을 흘겨보며 말했다.“마음에 들어? 그럼 네가 쓸래?”싱긋 웃던 소은정이 카드를 건넸다.“에이, 이렇게 귀한 걸 어떻게 받아. 갖고 있어. 사고 싶은 물건 있으면 너한테 따로 부탁할게.”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드를 다시 집어넣었다. 원하는 대로 목걸이를 구매하고 다시 기분이 좋아진 한유라는 소은정을 끌고 이리저리 쇼핑몰을 누볐다. 기분 전환을 마친 소은정은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프로젝트 팀에 선발되지 않은 뒤로 몰래 뭔가를 꾸미는 것 같았지만 확실한 증거를 잡기 전까지 가만히 내버려 두기로 한 소은정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어차피 소은호가 모든 걸 컨트롤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상희가 함부로 움직여 봤자 자멸을 일으킬 뿐이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퇴근시간, 퇴근 준비를 하던 소은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를 받자마자 김하늘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은정아, 나 좀 도와줘. 오늘 밤 자선 파티가 있을 예정인데 우리 회사 소속 연예인 윤지섭와 함께 파티에 참석할 파트너가 필요해. 난 지금 해외라 안 되고 네가 대신 가주면 안 될까?”시계를 쳐다보던 소은정이 대답했다.“그래, 뭐 특별한 약속도 없고. 그러지 뭐.”“친구야, 네가 나 살렸다. 내가 크게 한턱 쏠게. 드레스는 윤지섭 매니저가 준비할 거야.”전화를 끊은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뭐야? 거절하면 어쩌려고 미리 드레스까지 준비해 뒀대?우연준에게 자신의 일정을 알린 뒤 그녀는 바로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윤지섭은 신인이지만 나름 인지도를 쌓고 있는 연예인이라 괜히 회사 입구에 사람들이 모이면 곤란해질 것을 염려해서였다. 지금 상황에서 또 연예인인 윤지섭과 엮인다면 또 괜한 풍문이
10억? 순간 파티장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윤지섭도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저게 뭐라고 10억을 불러요?”“딱 봐도 좋은 물건이잖아요. 안 그래요?”소은정이 입술을 씨익 올렸다.“글쎄요.”아무리 봐도 그냥 옥으로 만든 담뱃대일 뿐인데 뭐가 좋다는 걸까?이민혜와 박예리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낀 소은정은 두 사람을 향해 여유로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소은정이 이 물건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걸 생각해낸 이민혜와 박예리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과거 이민혜는 소은정더러 야밤에 사당을 청소하라고 시킨 뒤 일부러 담뱃대를 금고 안에 넣지 않고 높은 서랍장 위에 올려두었다. 혹시나 소은정이 “실수로” 이 물건을 깨트리기라도 한다면 가문에서 바로 쫓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사실 그녀가 직접 깨트리고 소은정에게 뒤집어 씌울까도 생각해 봤지만 담뱃대를 목숨보다 더 아끼는 박대한은 특별히 사당에 CCTV까지 설치해 둔 터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취 담뱃대에 대해서는 한동안 잊고 있던 이민혜였지만 박예리는 “아름다운 꿈” 목걸이로 마카오에서 도박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사교계에서 체면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박예리는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다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이런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자선 파티 경매에 물건을 내놓으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이미지는 물론, 물건을 다시 낙찰받았을 때 그녀의 재력까지 과시할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잃어버린 센터의 자리를 어떻게든 되찾으리라 박예리는 다짐하며 이민혜에게 한참을 졸라 겨우 비취 담뱃대를 경매품으로 훔칠 수 있었다.그리고 온르, 일단 마지막 경매품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목을 끌며 어깨가 으쓱해진 박대한의 보물이라는 걸 알아본 사람들은 감히 입찰에 뛰어들지 않을 테고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관심도 두지 않을 테니 자신의 완벽하게 계획에 감탄하고 있었다.그런데 이 자리에 소은정도 있을 줄이야.이민혜는 불안한 듯 손톱을 깨물었다. 1
그녀의 곁에 있던 직원이 경매품을 소은정에게 건넸다. 담뱃대 밑부분의 붉은색 작은 반점을 확인한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진품이었다.“고맙습니다.”이민혜와 박예리 두 사람을 아예 투명인간 취급하는 소은정의 모습에 마음이 조급해진 이민혜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소은정, 넌 어른을 봤으면 인사부터 해야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이래서 못 배우는 것들은...”그녀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이민혜가 이제 와서 어른 대접이라도 받고 싶은 건가?소은정은 정말 이제야 그녀를 발견했다는 듯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아, 사모님도 계셨어요?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당돌한 소은정의 모습에 이민혜가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너 정말 이렇게 나올 거야? 호구 하나 물었다고 이제 우리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는 거야? 잊지 마! 난 네 시어머니였던 사람이야!”결혼생활 내내 그녀를 며느리로 인정한 적 없던 사람의 입에서 시어머니라는 단어가 나올 줄이야.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이혼 전, 소은정이 시댁을 찾을 때마다 이민혜는 그녀의 집안 사정으로 트집을 잡으며 궂은일을 시키는 건 물론 벌을 세우기도 했다. 친하게 지내는 다른 기업 사모님들을 일부러 불러 그녀를 조롱하기도 했다. 소은정은 이민혜의 눈엣가시나 마찬가지인 존재였다.“사모님도 이제 많이 늙으셨나 봐요. 잊으셨어요? 전 그 댁 아드님과 이미 이혼했어요. 시어머니 노릇은 다음 며느리한테나 하세요.”“소은정, 너 우리 엄마한테 이게 무슨 말버릇이야?”옆에서 듣고만 있던 박예리가 소리를 질렀다. 오늘은 무턱대고 덤비지 않기에 정신을 차렸나 했더니 또 몸이 근질거리나 보다.게다가 이민혜까지 곁에 있으니 더 무서울 게 없었다.박예리의 말에 방금 전까지 미소 지으며 예의 바르게 말을 건네던 소은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왜요? 절 혼내기라도 하게요?”다시 떠오르는 악몽에 박예리는 뒤로 움츠러들었다. 사실 소은정의 기를 눌러버리고 담뱃대를 빼앗아갈 생각이었는데 소은정이 예상대로 나오지 않
박수혁이 나타나자 이민혜는 바로 눈시울을 붉히며 다가갔다.“수혁아...”“오빠, 소은정이 우리 집안 가보를 빼앗아갔어. 할아버지가 가장 아끼시는 물건이잖아. 이대로 가져가면 정말 끝이야!”박예리가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하지만 차가운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박수혁이 단호한 말투로 소리쳤다.“닥쳐! 할아버지 물건을 건드리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알았어?”박수혁의 무시무시한 목소리에 박예리는 바로 고개를 푹 숙이고 이민혜의 뒤에 숨었다. 박수혁의 뒤를 따라 들어온 행사 주최자는 안절부절못하다 옆에 서 있는 직원을 향해 속삭였다.“절차는 이미 다 밟은 거야?”“네, 전부 다 끝났습니다.”직원이 조심스레 대답했다.이제 비취 담뱃대는 완벽하게 그녀의 물건, 소은정이 물러설 필요는 없었다.그녀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옆에 서 있는 윤지섭에게 말했다.“우린 이만 가죠. 가족들끼리 오붓한 시간 보내게 빠져주자고요.”인사도 없이 경매장을 나서려던 그때, 박수혁이 말했다.“소은정, 물건은 놓고 가.”차가운 아들의 목소리에 이민혜는 큰 지원군을 얻은 것마냥 거들었다.“그래, 수혁아,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해.”참, 고상한 척 잘난 척은 다하는 분들이 어쩜 이렇게 막무가내이실까...소은정은 피식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들어 보였다.“이것 봐. 이제 당신이랑 당신 가족들 말 한마디로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야. 그 담뱃대는 이제 법적으로 완벽하게 내 물건이야.”잔뜩 일그러진 박수혁의 표정을 보니 통쾌함이 밀려왔다.“사모님, 저한테 이러실 시간에 차라리 할아버님한테 어떻게 해명하실지 핑계나 생각하시는 게 어때요? 아끼는 보물이 자선 경매에 출품된 걸 보면 어떻게 나오실지 사모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이민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괜히 딸의 꼬드김에 넘어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 겉드리다니. 박대한이 이 사실을 안다면 화를 내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무일푼인 채로 이혼을 당할 수도 있었다.“수혁아...”이민혜는 지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히고 박수혁을 바라보는 소은정의 눈빛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단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헌신적이던 그 여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차에 탄 뒤에야 윤지섭은 질문을 털어놓았다.“이 담뱃대가 그렇게나 대단한 물건이에요? 왜 다들 이렇게까지 집착하는 거죠?”소은정은 고풍스러운 나무상자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천 년 전의 물건이에요. 누군가 궁에서 몰래 빼돌린 거죠. 박씨 가문에서 이 물건을 손에 넣은 게 아마 500년 전이던가? 어때요? 30억이면 싸게 먹힌 거죠?”소은정의 말에 윤지섭이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뭐? 천 년?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물건은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국가급 보물이었다.이런 물건을 경매에 내놔?이 정도면 백 억, 아니 그 이상의 가격도 훨씬 호가할 것이다.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한 윤지섭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이때 소은정의 휴대폰이 울렸다. 소은호인 걸 확인한 그녀가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재잘거렸다.“오빠, 내가 오늘...”그러자 소은호가 피식 웃었다.“다 들었어. 겨우 30억에 그 담뱃대를 샀다고? 그쪽 집안에서 화가 단단히 났겠는데?”이민혜와 박예리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책임을 상상하던 소은정이 웃음을 터트렸다.“어차피 이제 법적으로 이 물건은 내 거야. 절대 그냥 내주지 않을 거라고.”소은호도 동생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박씨 가문이라면 이제 치가 떨릴 텐데 이렇게라도 한풀이를 해야겠지. 그리고 소은호 본인도 동생이 행복하다면 상관없었다.다음 날 아침, 소은정은 여느 때처럼 출근해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오며 가며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임상의는 그녀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지만 이미 약점이 잡힌 상태라 움직이지는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이때 사무실로 들어온 우연준이 그녀에게 파일을 건넸다.“본부장님, 임상희 팀장에 대한 내사가 시작되었습니다.”우연준의 말에 소은정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오빠가 드디어 칼을 빼든
박수혁은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에서 불쾌함을 읽을 수 있었다. 소은정은 일부러 성강희의 팔짱을 끼며 받아쳤다.“그럼요. 아주 바쁘죠. 그런데 제가 몇 명을 만나든 강서진 씨랑 무슨 상관이죠? 아, 혹시 그쪽도 나랑 데이트라도 하고 싶은 거예요?”소은정의 말에 강서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왜 항상 이 여자 앞에만 서면 이렇게 작아지는 걸까?“뭐? 내가 뭐가 모자라서 당신 같은 여자랑 데이트를 합니까!”“뭐, 저도 사절이네요. 강서진 씨는 몸이 별로더라고요. 저는 남자 얼굴도 중요하지만 몸도 많이 보는 사람이라.”뭐? 몸매가 안 좋아?은연중에 그의 알몸 사진을 언급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강서진이 잔뜩 화가 나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감히 날 협박해?“우리 은정이 안목이야 내가 인정하지. 뭐 딱 한 번 실수하긴 했지만. 강 대표님, 다들 식사하러 오셨을 텐데 그냥 조용히 밥이나 드시죠. 괜히 서로 심기 건드리지 말고요.”성강희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소은정은 박수혁의 존재는 깔끔하게 무시한 채 룸으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서진이 짜증스레 머리를 헝클었다.“저 여자가 감히... 뭐? 몸이 별로야? 나 정도면 준수하지.”강서진의 자뻑에 박수혁도 어이가 없었는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준수하다고? 거울이나 제대로 봐.”하지만 강서진에게 농담을 던진 박수혁의 표정은 또다시 차갑게 굳었다. 소은정과의 약속도 못 잡고 할아버지의 담뱃대를 되찾지 못한 일도 짜증 나지만 소은정이 강서진의 알몸을 봤다는 사실이 왠지 더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그의 말에 강서진은 혼자 중얼거렸다.왜 나한테 화풀이야...하긴, 오늘 점심 박수혁을 만나기 위해 태한그룹으로 향했던 강서진은 마침 그의 비서가 소은정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목격했었다. 그런데 단호하게 거절할 줄이야. 언짢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기로 왔더니 하필 소은정과 성강희의 데이트 현장을 마주치다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겠지.이때, 강서진이 뭔가 생각난 듯 캐어물었다.“너희
말을 마친 소은정은 바로 룸으로 돌아와 성강희를 깨웠다. 차에 타려던 순간, 룸에 핸드백을 두고 온 사실을 떠올린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다시 레스토랑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성강희가 그녀를 막아섰다.“내가 갈 테니까 먼저 타.”비틀거리며 들어가는 성강희가 왠지 걱정되어 뒤를 따르던 그때, 역시 레스토랑으로 나오는 강서진과 박수혁을 발견하고 분수대 뒤에 몸을 숨겼다.“민영이 곧 귀국이라면서?”강서진이 물었다.“그래.”“보고 싶었는데 잘 됐다. 민영이가 잘못한 건 맞지만 너도 너무 심했어. 이제 그만 용서해 줘. 미워도 서민영은 네 사람이잖아...”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자리를 떴다...그들의 차량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소은정의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서민영은 박수혁의 사람이다라... 소은정은 박수혁에게 어떤 의미였을까?3년 동안 그녀의 정신을 갉아먹었던 서민영의 이름을 듣는 순간,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제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아니었나 보다.얼마 전 파티에서 큰 망신을 당하고 출국했다는 소식을 들은 소은정은 한동안 그 여자의 존재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출국? 그게 벌이라고? 이렇게 쉽게 용서해 준다고? 3년 동안 뜨거운 피를 바친 그녀에게는 정작 진심 어린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조차 없는 남자지만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서민영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던 소은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 다시 돌아온다고? 좋아. 큰 선물을 준비해 주지.가방을 가지고 나온 성강희는 창백하게 질린 그녀의 얼굴을 보고 다급하게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성강희의 목소리에 소은정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난 집에 가봐야겠다. 기사도 도착했대.”“내가 데려다줄게.”성강희는 억지로 그녀의 옆자리에 몸을 구겨 넣었다. 그의 억지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소은정을 바라보던 성강희는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달싹거렸지만 결국 고개를 숙였다.어느새
처음 보는 성강희의 진지한 모습에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이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나?3년 전, 장난기 많던 소년이던 그가 왠지 다르게 보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깐, 성강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소은정은 표정을 감췄다. 적어도 지금은 사랑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강희야, 못 본 사이에 여자 홀리는 스킬이 많이 늘었네.”성강희는 흠칫하더니 뒤로 물러섰다.“다른 사람한테는 이렇게 안 해.”“하긴. 너 좋다는 여자애들이 한둘도 아니고. 네가 굳이 나설 필요는 없겠지.”소은정은 괜히 농담을 던졌다. 뭐, 성강희의 여성 편력은 친구들은 물론 재벌 2세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이었으니까.“다 지난 일이야. 그리고 제대로 된 연애는 해본 적도 없었다는 거 알잖아...”“그래. 오늘 위로해 줘서 고마웠어. 그런데 지금은 너무 피곤해...”그녀는 순간적인 설렘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성강희와는 오랫동안 친구로 지냈던 사이, 사랑이라는 순간적인 감정 때문에 좋은 친구를 잊고 싶지 않았다.다시 기운을 차린 듯한 소은정의 모습에 성강희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그럼 난 이만 가볼게. 푹 쉬어.”가벼움이 항상 묻어나던 행동에서 느껴지는 그녀에 대한 사랑, 여자라면 빠지지 않기 힘들었다. 이런 엉큼한 남자 같으니. 소은정이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고개를 돌린 그녀의 시야에 아무렇게나 탁자 위에 올려둔 비취 담뱃대가 들어왔다. 입꼬리를 씩 올리던 소은정은 다가가 담뱃대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천천히, 얼굴에 핀 미소가 사라지고 소은정은 다시 아무렇게나 탁자 위에 올려두고 안방으로 들어갔다.자신의 보물 1호가 이런 대접을 당하고 있다는 걸 박대한이 안다면... 아마 화가 치밀어 쓰러질지도 모르지.이런 생각을 하며 잠에 든 소은정이 다시 깨어났을 때는 어느새 저녁 10시였다. 휴대폰을 확인한 소은정은 소은호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일 때문에 며칠 동안 해외에 나가있을 거야. 회사 잘 보고 있어.오빠도 참. 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