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이 반짝이는 밤, 소은정은 와인잔을 가볍게 흔들며 2층 난간에서 섰다. 그녀의 시야에 가식적인 얼굴로 형식적인 안부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들어왔다.이때 저쪽에서 걸어오던 박수혁이 순간 고개를 돌려 소은정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 소은정은 불편함을 억지로 억누르며 시선을 피했다.방금 전, 두 사람이 무대에서 키스를 할 뻔한 순간, 모든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었다. 누가 먼저 스텝이 흩트려졌는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과거 부부사이었던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스킨십에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두 사람이 무슨 반응을 보였어도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피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소은정은 고개를 살짝 돌렸다. 마침 음악이 멈추고 그녀는 바로 그의 품에서 벗어나 박수혁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런 미련 없이 돌아섰다...한편, 강서진은 옆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겨우 그들을 따돌린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박수혁을 힐끗 바라보았다. 차갑지만 아름다운 박수혁의 얼굴을 본 순간, 강서진 방금 전 상황을 떠올리며 물었다.“아까 춤출 때, 형 일부러 그런 거지?”박수혁은 어려서부터 엘리트 교육을 완벽하게 받으며 자랐다. 사교계에서 춤 수업은 기본인데 스탭이 흐트러질 리가.설마 일부러 그런 건가?강서진의 질문에 박수혁은 그저 차갑게 한 마디 던졌다.“아니야.”“그럼 다행이고. 그 여자한테 관심 가지지 마. 형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면 그 여자가 일부러 그런 거겠지. 역시 보통이 아니라니까!”박수혁의 말이라면 무조건 신뢰하는 강서진은 방금 전까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던 의심을 전부 지워버렸다.파티장 2층.소은호는 다른 곳에서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고 소은정은 지루한 얼굴로 여기저기 훑어보고 있었다. 이때, 문 어귀에서 누군가 그녀를 향해 손을 저었다. 그녀도 미소를 지으며 손을 저었다. 성강희가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강희 왔어?”성강희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나간에 기댔다.“뭐 네가 왔다고 하니까 온 거지 뭐. 난
박예리의 말에 깜짝 놀란 성강희도 흠칫 놀랐지만 일단은 이 여자를 따돌리는 게 먼저니 바로 반박했다.“네 오빠와 키스? 그쪽이야말로 꿈 깨시지? 은정이가 바보도 아니고 그딴 찌질이한테 두 번이나 빠질까 봐?”“지금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거야? 사람들한테 물어봐. 다들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박예리가 변명했다. 그녀 뒤에 서 있던 친구들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성강희는 개의치 않는다는 어깨를 으쓱했다.“사람들 누구? 그쪽이 데려온 이 친구들 말하는 건가? 짜고 치는 수작일지 내가 알게 뭐야?”이에 박예리는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해지더니 소리쳤다.“어쨌든 내 말은 진짜야. 소은정, 너도 인정해. 우리 오빠가 좋아하는 건 민영 언니야. 우리 집안에서 넌 가정부자 혈액 창고였다고. 그래. 너 같은 건 또 어떻게든 남자한테 빌붙어 살아가겠지. 하지만 우리 집안은 안 돼. 그러니까 다른 데 알아보도록 해.”박예리는 서민영이 소은정에게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언급해 소은정을 자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소은정은 여전히 여유만만인 모습이었다. 소은정은 입꼬리를 씨익 올리더니 뒤에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그쪽 오빠와 서민영이 불륜 관계였다는 건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에요. 굳이 여기서 다시 확인시켜줄 필요는 없어요. 아무리 멍청해도 그 잘난 집안 얼굴에 먹칠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요?”소은정의 조롱에 박예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성을 잃은 박예리가 소은정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비난을 이어갔다.“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얘가 입는 거 먹는 거, 다 몸 팔아서 사는 거야. 뭐 창녀가 별건가? 남자한테 빌붙어서 돈을 뜯어내면 그게 창녀야.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나? 그렇게 입으면 정말 네가 재벌집 아가씨라도 될 줄 알았어?”그녀의 말에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박예리의 목소리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의아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은정은 살짝 미간
박수혁은 소은정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그는 바로 박예리에게 다가갔다.“네가 한 말 전부 다 사실이야?”어찌나 화가 났는지 얼굴의 핏줄이 터져 나올 듯 팽창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화가 난 박수혁의 모습을 처음 보는 박예리는 그저 입술을 꽉 깨물며 침묵할 뿐이었다.그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자랐지만 박수혁은 어린 나이에 해외로 유학을 떠났기에 두 사람은 남매임에도 조금 어색한 사이였다. 그리고 귀국한 뒤 바로 뛰어난 사업수단으로 태한 그룹의 시가를 몇 배나 성장시킨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박예리는 그런 오빠가 부러우면서도 무서웠다.“말하라고!”망설이는 박예리의 모습에 박수혁은 바로 다그치기 시작했다.이때, 청량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의 정체는 바로 소은정이었다.“다 진짜야.”본인이 인정하자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도 뭔가 묘해졌다. 이렇게 화려한 그녀가 그런 비참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니.박예리의 폭로에 불륜으로 인한 이혼이라며 인터넷에서 떠돌던 찌라시도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누군가는 역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일이 없다며 수군댔다.재벌가의 며느리로 사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구나...한편, 소은정이 담담한 표정으로 인정한 순간, 박수혁은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의 친구뿐만이 아니었다. 가족들까지 그녀를 무시하고 괴롭혔었는데 남편이라는 작자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니.3년 동안의 결혼 생활 중, 박수혁이 신혼집을 찾았던 일은 손에 꼽을 지경이었고 그마저도 서민영의 상태에 대해 말해주기 위한 게 전부였다. 얼굴이라도 보며 말하면 더 고분고분 헌혈을 해주지 않아서 싶어서였다.그때마다 그는 친절하게 용돈은 부족하지 않냐고 물으며 카드를 쥐여주고는 자신이 나름 괜찮은 남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모든 건 그의 착각이자 오만이었다.속상함, 미안함, 죄책감... 수많은 감정들이 밀려오며 더 이상 소은정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는 뻣뻣하게 굳은 상태로 한참을 가만히 서
소은정은 차갑게 웃으며 박예리를 바라보았다.“박예리 씨, 설마 그런 얘기를 하면 내가 슬퍼할 거라 생각했어요? 아니요. 창피해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오히려 당신, 그리고 당신의 그 잘난 집안이에요. 며느리를 하인처럼 부려먹은 게 뭐가 그렇게 자랑이라고 떠벌리는 건데요?”“그건 네가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니까 그런 거잖아! 아까도! 어떻게든 우리 오빠한테 다시 들러붙으려고 아주 생쇼를 하더구만? 내가 모를 줄 알아?”박예리는 방금 전 두 사람의 키스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소은정은 뭐가 저렇게 당당한 걸까? 그리고 그녀의 오빠는 왜 오히려 저딴 여자의 편이나 들고 있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박예리 씨는 내가 그쪽 오빠를 일부러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소은정이 피식 웃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유혹?방금 전, 키스로 인해 그녀가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놀라움도 쑥스러움도 아니라 분노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녀가 박수혁을 유혹하고 있는 거라고 의심하게 될 테니까.그 의심의 싹을 자르기 위해 소은정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3년 전엔 내가 미쳤었죠. 저딴 남자한테 목을 매다니. 하지만 이젠 달라요. 유혹이요? 그쪽 말대로 내가 정말 남자를 유혹해 등골이나 빨아먹는 여자라고 쳐요. 그렇다고 해도 그쪽 오빠는 건드릴 일 없으니 안심해요.”숨이 턱턱 막히는 3년의 시간들은 이미 그녀에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소은정의 차분하지만 단호하고 차가운 눈빛에 박예리도 흠칫 놀라고 말았다. 지금 그녀 앞에 있는 이 여자가 3년 전, 고개도 못 들고 말도 제대로 못하던 그 소은정이 맞긴 한 걸까?탁.소은정은 와인잔을 크리스털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성강희도 박수혁, 박예리 두 남매를 매섭게 노려본 뒤 그 뒤를 따랐다.한편, 박수혁은 그녀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소은정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성강희는 박수혁의 처지를 조롱이라도 하듯 고개를 돌려 피식 미소를 지었다.천하의 박수혁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곧 달려온 강서진은 박수혁의 시선 끝에서 소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하곤 고개를 저었다.“형, 그래 봤자 이미 이혼한 사이야. 전 와이프라고. 설마 후회하는 건 아니지? 그것도 저 여자의 전략일 수도 있어. 조심해.”강서진의 말에 박수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언제부터 네가 일일이 내 일에 참견하기 시작한 거지?”등골이 서늘해지는 그의 말투에 강서진도 입을 다물었다.사실 소은정이 공적인 자리에서 모든 진실을 밝히는 순간, 강서진은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그 여자의 입을 막고 싶었다. 박예리의 말이 좀 심하긴 했지만 애초에 그 모든 건 돈만 보고 소은정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 아닌가? 뭐가 그렇게 억울한 건지.소은정이 다시 파티장으로 들어가자 SC그룹의 여파 때문인지 오늘 밤 일어났던 일 때문인지 그녀의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뭐 그녀도 인맥을 넓히기 위해 파티에 온 것이니 싱긋 웃으며 대화에 응하고 그들과 술잔을 부딪혔다.파티가 끝난 뒤, 성강희가 나름 흑기사 역할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소은정은 왠지 어지러워 핑계를 댄 뒤 화장실로 향했다.그녀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찬물로 세수를 한 뒤 티슈를 뽑았다. 이때, 밖에서부터 박예리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소은정, 내가 절대 가만히 안 둘 거야. 이게 무슨 망신이야. 그리고 남자들은 그딴 여자가 뭐가 좋다고 쩔쩔매는지 몰라. 어이가 없어서 정말. 남자를 등에 업고 출세한 주제에 어디서 커리어 우먼 코스프레를 하고 있어!”친구와 얘기를 하며 들어오던 박예리는 역시 화장실에 있던 소은정을 보고 바로 팔짱을 끼며 비아냥댔다.“참나, 재수가 없으려니까 정말.”“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소은정이 피식 웃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난 알아. 네가 얼마나 천박하고 추악한 사람인지. 과거를 묻고 새로운 인생이라도 살고 싶은가
박예리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찬물이 그녀의 얼굴을 타고 내려오며 옷을 흠뻑 적셨다. 소은정은 세면대 위에 인테리어 용으로 놓인 화병을 내려놓으며 손을 털었다.“난 분명 경고했어요. 그쪽이 자초한 일이에요.”“소은정 네가 감히...”박예리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오늘 파티를 위해 디올에서 특별히 구매한 드레스인데... 비록 소은정이 착용한 드레스만큼은 아니었지만 유명 연예인들도 쉽게 협찬을 받을 수 없는 고가의 제품이었다. 이 옷에 물을 뿌려?하지만 소은정은 여전히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정말 내가 예전처럼 가만히 참고만 있을 거라 생각했어? 야, 마지막으로 말할 거니까 똑똑히 들어. 앞으로 또 까불면 예전에 내가 당했던 것까지 10배, 100배로 갚아줄 거니까 제발 좀 얌전히 있어.”소름 돋는 소은정의 미소에 박예리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처음 느껴보는 모욕과 항상 무시하던 존재에게 당했다는 분노가 곧 두려움을 뒤덮었다.어딜 가나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그녀가 파티장에서 이런 망신을 당하고 곱게 물러날 수는 없었다.물에 젖은 생쥐 꼴로 나가면 다들 수군댈 테고, 예비용으로 준비해 둔 드레스는 훨씬 더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들이었다.박예리는 이를 악문 채 부들거리더니 그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들었다.“소은정, 두고 봐. 절대 이대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니까.”소은정 이 천 것에게 그녀가 누구를 건드렸는지 제대로 알려주리라 다짐했다.하지만 그녀의 손이 소은정의 뺨에 닿기도 전, 소은정은 오히려 그녀가 먼저 움직이길 기다렸다는 듯 픽 웃었다. 박예리의 손을 피한 소은정은 바로 그녀의 팔을 꺾어 무력화시킨 뒤 다른 손으로는 박예리의 머리채를 확 잡아당겼다.아까부터 물을 틀어둔 탓에 세면대에는 이미 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소은정은 망설이지 않고 박예리의 얼굴을 세면대 안으로 쑤셔넣었다.뒤에서 상황을 보고만 있던 박예리의 친구들도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소은정의 차가운 눈빛에 겁에 질려
지금쯤 아마 박예리는 아주 비참한 꼴일 테니 대충 수습을 하기 전까지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박수혁은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우리 가족들이 너한테 그렇게 못 되게 굴었다는 거 왜 나한테 말 안 했어?”“뭐?”소은정이 나름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왜 나한테 말 안 했냐고?”사랑 없는 결혼이었지만 만약 그녀가 솔직하게 말했다면 분명 그가 직접 나서서 막았을 것이다. 분명.박수혁은 그녀의 그 어떤 표정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뚫어져라 소은정을 쳐다보고 있었다.“어차피 다 지난 일이야. 우린 이제 이혼한 사이라고. 좋은 일도 아닌데 괜히 다시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고.”소은정이 웃었다.말하면 뭐가 달라졌을까? 아마 몰래 고자질을 했다며 더 비참하게 그녀를 모욕했을 테지.“그래, 네 말대로 어차피 우린 이혼했고 지난 일이야. 그러니까 이제 말해줘도 상관없잖아?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던 건지? 정말 그것 때문에 갑자기 이혼을 제안한 건지 말이야.”흥분 때문인지 초조함 때문인지 박수혁의 심장이 거세게 쿵쾅거렸다.“갑자기?”소은정이 입꼬리를 올리더니 중얼거렸다.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소은정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우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박수혁, 결혼 생활 3년 동안 우리가 사적으로 만났던 적이 있었어? 아니, 그럴 기회라도 있었어?”주위 사람들도 눈이 달려있으니 박수혁이 소은정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을 테고 그랬기 때문에 더 잔인하게 그녀를 무시하고 멸시할 수 있었다. 가족, 친구, 운영하는 기업의 직원들까지, 그녀에 대한 냉대와 무시는 전부 박수혁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만날 때마다 직원을 대하 듯 적당히 친절하면서도 딱딱한 태도, 게다가 그녀를 찾는 명분은 항상 서민영 그 여자 때문이었다. 이제 그녀는 서민영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었다.소은정은 오랜만에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신혼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박수혁이 왜 그녀에게 이토록 차가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는 차 안, 소은정이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린 버전의 가 울려 퍼졌다. 시냇물 흐르듯 시원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평소 소은정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중 하나였다.하지만 소은정은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은정아, 성강희 말이야... 혹시 너 좋아한대?”소은호가 동생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사실 진작 짐작하고 있었지만 방금 전 그가 보여준 행동 때문에 소은호의 짐작은 어느새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오빠의 목소리에 소은정은 그제야 사색에서 벗어났다.“아니야. 그냥 장난치는 거야.”“그래? 그럼 다행이고.”소은호가 그럼 안심이라는 듯 피식 웃었다.“왜? 오빠는 강희가 마음에 안 들어?”성강희의 가문과는 아버지들 끼리도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을 텐데. 소은정은 오빠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성강희 그 자식,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만 몇 명인 줄 알아? 사생활이 너무 난잡해. 그렇지만... 만약 은정이 네가 좋다면...”소은호가 말끝을 흐렸다.“오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랑 강희가 알고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우린 정말 친구야. 그리고 나 남자한테 관심 없어. 지금은 그냥 일에 집중할래.”소은정의 대답이 마음에 든 듯 소은호가 활짝 웃었다.“그래. 어차피 이 자식이고 저 자식이고 만나면 다 똑같아. 시간 낭비, 감정 낭비일 뿐이지.”소은호는 어떻게든 소은정을 어엿한 대표, 아니 세계 최고의 사업가로 성장시키리라 다짐했다.“사운드” 클럽.박수혁과 근처에 있던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하지만 친구들이 전부 도착하기도 전에, 룸 테이블 위에는 빈 술병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옆에서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자 강서진은 아예 포기하고 함께 술잔을 부딪혔다. 잠시 후, 부랴부랴 룸으로 들어온 이태성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몇 년 전, 성준상이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나서 한동안 술에 빠져 살던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인사불성으로 취한 모습은 정말 너무 오랜만이었으니까.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