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가는 차 안, 소은정이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린 버전의 가 울려 퍼졌다. 시냇물 흐르듯 시원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평소 소은정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중 하나였다.하지만 소은정은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은정아, 성강희 말이야... 혹시 너 좋아한대?”소은호가 동생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사실 진작 짐작하고 있었지만 방금 전 그가 보여준 행동 때문에 소은호의 짐작은 어느새 확신으로 바뀌어 있었다.오빠의 목소리에 소은정은 그제야 사색에서 벗어났다.“아니야. 그냥 장난치는 거야.”“그래? 그럼 다행이고.”소은호가 그럼 안심이라는 듯 피식 웃었다.“왜? 오빠는 강희가 마음에 안 들어?”성강희의 가문과는 아버지들 끼리도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을 텐데. 소은정은 오빠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성강희 그 자식, 지금까지 만났던 여자만 몇 명인 줄 알아? 사생활이 너무 난잡해. 그렇지만... 만약 은정이 네가 좋다면...”소은호가 말끝을 흐렸다.“오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나랑 강희가 알고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우린 정말 친구야. 그리고 나 남자한테 관심 없어. 지금은 그냥 일에 집중할래.”소은정의 대답이 마음에 든 듯 소은호가 활짝 웃었다.“그래. 어차피 이 자식이고 저 자식이고 만나면 다 똑같아. 시간 낭비, 감정 낭비일 뿐이지.”소은호는 어떻게든 소은정을 어엿한 대표, 아니 세계 최고의 사업가로 성장시키리라 다짐했다.“사운드” 클럽.박수혁과 근처에 있던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하지만 친구들이 전부 도착하기도 전에, 룸 테이블 위에는 빈 술병들이 하나둘씩 늘어가기 시작했다.옆에서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자 강서진은 아예 포기하고 함께 술잔을 부딪혔다. 잠시 후, 부랴부랴 룸으로 들어온 이태성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몇 년 전, 성준상이 죽었다는 비보를 듣고 나서 한동안 술에 빠져 살던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인사불성으로 취한 모습은 정말 너무 오랜만이었으니까.
알람이 울리고 소은정이 부스스 눈을 떴다.어제 그녀의 강력한 어필로 다시 오피스텔로 돌아온 소은정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극진한 공주 대접으로 오히려 그녀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자연스레 휴대폰을 꺼내 기사를 훑어보던 소은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어젯밤, 파티에서 찍힌 소은정과 박수혁의 사진이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소은정, 박수혁, 재결합 가능성도 보여”기사 제목 아래에 첨부된 사진은 바로 두 사람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이었다. 누가 찍었는지 각도며 조명이며 완벽한 사진에 소은정은 피식 웃으며 기사 페이지를 꺼버린 뒤 메일에 로그인했다.우연준이 보내준 오늘 스케줄을 확인한 뒤 소은정은 샤워와 화장을 마치고 영어 뉴스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시작되니 어젯밤에 일어났던 일들이 왠지 전부 꿈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천천히 박수혁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울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저었다.그녀가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휴대폰을 보지 않은 잠깐 사이에, 한유라는 끊임없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나 보다. 부재중 전화 20통이라는 글귀를 확인한 소은정이 어이없다는 듯 미소를 흘렸다.마침 다시 걸려오는 한유라의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는 참아왔던 질문들을 전부 쏟아냈다. 합성은 아닌 것 같고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 거냐? 도대체 왜 다시 만난 거냐? 춤은 왜 같이 춘 거냐...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만 해대는 한유라에게 소은정은 모든 걸 솔직하게 얘기해 주었다. 그제야 안심했는지 한유라는 한숨을 푹 쉬더니 갑자기 소리쳤다.“야, 너랑 박수혁에 관한 기사들이 전부 사라졌어!”다시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니 한유라의 말이 사실이었다. 소은정은 사실도 아닌 가십에 괜한 돈을 낭비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에 상당히 의아했다.누구지? 설마 박수혁이?이때, 한유라가 웃음을 터트리더니 말했다.“너 단톡방 좀 봐봐. 강희가 한 거래!”소은정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임상희는 얄밉게 말하는 소은정에게 화가 치밀었지만 자신의 약점을 잡고 있는 사람 앞에서 자신의 불쾌함을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었다.“저는 프로젝트 경험도 많고 관리직들 중에서도 실적도 가장 좋은 직원입니다. 본부장님, 설마 저번 일로 아직 화가 채 풀리지 않으신 건가요?”임상희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물론 아닙니다. 임 팀장은 거성과의 협력을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요.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면 제대로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여유로운 소은정의 말에 임상희가 다급하게 해명했다.“아니요. 회사의 결정이라면 전 무엇이든 따를 겁니다.”“글쎄요. 리스트는 이미 이사회에까지 보고된 상황이라 수정은 불가능할 것 같네요. 뭐 이번만 기회인가요?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소은정은 가식적인 위로를 건넨 뒤 다시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아니요. 방법은 있을 거예요. 어디 두고 보시죠.”임상희는 이를 갈며 대답한 뒤 또각또각 사무실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소은정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좋아.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오후가 되고 그녀의 예상대로 우연준의 보고를 들을 수 있었다.“본부장님, 장한명 이사가 본부장님과 만나고 싶답니다.”곧 정년퇴직을 앞둔 이사가 굳이?“알겠어요.”어차피 회사에서 그녀의 진짜 신분을 아는 사람은 소은호와 우연진 뿐이다. 장한명이 새로 부임한 본부장에게 무슨 말을 할지 나름 궁금하기도 했다.장한명은 주식 투기라는 희한한 방법으로 회사 주주이자 이사가 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차지한 지분도 별로 많지 않고 회사에 위협이 갈만한 인물도 아니었기에 소은호도 그를 굳이 자르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똑똑똑.”소은정의 노크 소리에 피곤에 찌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요.”소은정이 웃으며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장 이사님, 부르셨다면서요? 무슨 일이시죠?”그녀를 보는 순간, 얼굴이 확 밝아진 장한명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고개를 저었다.“자, 앉아요.”장한명
사적인 자리면 몰라도 공적으로 엮이면 접촉을 피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다음 날 아침, 소은정은 직원들과 함께 거성그룹으로 향했고 미리 소식을 알고 있었던 임춘식이 직접 그들에게 연구실을 소개해 주었다.연구실 참관을 통해 최신 연구 성과에 대한 브리핑을 들은 소은정은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놀라움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실험실을 나서려던 그때, 작은 체구의 새끼 호랑이가 비틀거리며 달려왔다. “조심해...”그 뒤를 따르는 누군가의 만류에도 호랑이는 웃으며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뾰족한 귀, 수염 그리고 이마에 새겨진 왕자까지 누가 봐도 영락없는 호랑이의 모습이었다.다들 갑자기 나타난 아이의 모습에 깜짝 놀라 멍하니 서 있던 그때, 뒤를 보며 달려가던 아이가 소은정의 발을 밟고 그녀의 다리에 부딪혔다.“아야!”자연스레 바닥을 뒹굴며 일어난 새끼 호랑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행동 하나하나까지 이 세상 사물에 호기심을 가지는 새끼 호랑이와 아주 흡사했다.“아기 호랑이”는 눈을 깜박이더니 통통한 몸통에서 보슬보슬한 앞발을 꺼내 소은정의 신발을 닦아주었다. 나름 미안함의 표현인 듯싶었다. 소은정은 놀란 가슴을 억누르며 아이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예쁜 누나다!”호랑이의 입에서 3, 4살 남짓 되는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호랑이가 어떻게 말을...”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던 소은정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주위를 훑어보았다. 1급 보호동물인 호랑이가 도시 한복판에 나타날 리가 없으니까.다들 충격에 휩싸인 그때, 임춘식이 웃음을 터트렸다.“죄송합니다. 다들 많이 놀라셨죠?”임춘식은 고개를 돌려 “아기 호랑이”에게 말했다.“손님이 놀라셨잖아. 이럴 땐 사과를 해야 해.”“아기 호랑이”는 그녀의 다리에 볼을 비비며 대답했다.“미안해요. 생긴 건 좀 무서워도 전 아주 착하답니다. 겁먹지 마세요...”억울한 감정이 리얼하게 담긴 말투는 영락없는 사람의 목
물론 남자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쑥스러운 기색 하나 없이 상의를 벗은 뒤 이런저런 포즈를 취했다. 남자의 행동에 당황한 소은정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고개를 돌려버렸다.“이게 도대체...”“사람들의 여러 취향을 만족하는 맞춤형 로봇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여러 인체 샘플을 수집해야 해요.”그제야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소은정이 몰래 감탄하던 그때, 임춘식의 비서가 부랴부랴 달려와 그에게 속삭였다. 비서의 말에 표정이 굳은 임춘식이 말했다.“본부장님, 천천히 둘러보세요. 잠깐 실례하겠습니다.”그의 말에 직원들이 우르르 모두 따라나갔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소은정은 품속에 안긴 아기 호랑이를 만지작거리며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바로 이때, 누군가 실험실로 들어왔다.호랑이에게 눈이 팔린 소은정은 역시 인체 샘플 채취를 도와주기 위한 피실험자일 거라 생각하고 직원의 말투를 따라 했다.“벗으세요.”최대한 아무 감정 없는 사무적인 말투, 그녀가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던 그때, 여전히 조용한 남자의 반응에 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인지 다 알고 왔으면서 왜 그래요? 어차피 곧 끝나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그와 동시에 고개를 든 소은정은 충격에 잠겼다. 잘생긴 얼굴, 차가운 눈빛, 방금 전 실험실로 들어온 남자는 바로 박수혁이었다.뭐야? 태한그룹은 며칠 뒤에 온다고 하지 않았나?당황한 와중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소은정의 표정도 차갑게 굳었다.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은 그때, 임춘식이 달려왔다.“본부장님 그게... 오늘 박 대표님도 저희 회사를 방문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워낙 급하게 결정된 일이라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이때, 고개를 돌린 임춘식은 박수혁의 존재와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아, 두 분 이미 만나셨군요... 제가 늦었습니다.”“옷을 벗는다니. 이게 무슨 소리죠?”박수혁이 물었다.“아, 마침 잘 됐습니다. 박 대표님은 몸매도 완벽하시잖아요?
소은정은 진작 박수혁의 전화번호와 SNS 계정 등 연락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차단해 버린 뒤였다. 그런데 성강희가 업로드한 사진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다니. 새삼스레 이 바닥은 참 좁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박수혁: 꿩 대신 닭 아니고?박수혁의 도발에 성강희는 바로 답장으로 욕을 날렸지만 박수혁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성강희 얘 요즘 진짜 왜 이래? 그렇게 한가한가?”소은정이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진심으로 널 좋아한다는 거겠지. 다들 진작 눈치채고 있었어. 이참에 받아주는 게 어때? 박수혁 그 자식 콧대도 콱 꺾어주고...”“친구끼리 연애하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내 성격 몰라? 강희한테 호감이 있었으면 내가 먼저 들이댔을 거야.”한유라의 말을 가볍게 맞받아친 소은정이지만 성강희가 마음을 접을 수 있게 더 확실히 거절해야겠다는 생각에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그래, 뭐. 네가 알아서 하겠지. 아, 아까 둘러봤는데 마음에 꼭 드는 목걸이 하나를 발견했어. 얼른 먹고 가보자.”한유라는 고개를 끄덕인 뒤 화제를 돌렸고 소은정도 고개를 끄덕였다.식사를 마친 후, 한유라와 소은정은 바로 매장으로 향했다. 한유라가 가리키는 목걸이는 액세서리에 별로 관심이 없는 소은정도 놀랄 만큼 아름다웠다.“이 목걸이는 유명 디자이너 파이어 씨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두 분 정말 안목이 좋으시네요. 한 번 착용해 보시겠어요?”딱 봐도 귀티가 흐르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직원도 바로 공손한 태도를 갖추었다.“네가 해봐.”고개를 끄덕인 한유라가 소은정에게 말했다.기념일마다 고급 브랜드 신제품 액세서리나 옷을 선물하는 오빠들 덕분에 쇼핑을 즐기지 않는 소은정이지만 집에는 항상 옷과 장신구들이 넘쳐났었다. 워낙 쇼핑을 즐기지 않는 데다 그럴 필요까지 사라졌으니 웬만해서는 매장을 찾지 않는 그녀였지만 쇼핑이라도 하며 짜증을 지워버리고 싶었던 소은정도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이때, 누군가의 비아냥거림이 그녀의 신경을 자극했다.“해보면 뭐해? 어차피 살 돈도
박예리가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로 자리를 뜨자 한유라가 바로 그녀의 카드를 빼앗더니 물었다.“네가 어떻게 이 카드를 가지고 있어?”“18살 생일에 은해 오빠가 준 거야. 항상 가지고 다니라고 말하더니.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네.”“왜 나한테는 그런 오빠가 없는 걸까?”한유라가 짐짓 소은정을 흘겨보며 말했다.“마음에 들어? 그럼 네가 쓸래?”싱긋 웃던 소은정이 카드를 건넸다.“에이, 이렇게 귀한 걸 어떻게 받아. 갖고 있어. 사고 싶은 물건 있으면 너한테 따로 부탁할게.”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드를 다시 집어넣었다. 원하는 대로 목걸이를 구매하고 다시 기분이 좋아진 한유라는 소은정을 끌고 이리저리 쇼핑몰을 누볐다. 기분 전환을 마친 소은정은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프로젝트 팀에 선발되지 않은 뒤로 몰래 뭔가를 꾸미는 것 같았지만 확실한 증거를 잡기 전까지 가만히 내버려 두기로 한 소은정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어차피 소은호가 모든 걸 컨트롤하고 있는 상황에서 임상희가 함부로 움직여 봤자 자멸을 일으킬 뿐이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퇴근시간, 퇴근 준비를 하던 소은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를 받자마자 김하늘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은정아, 나 좀 도와줘. 오늘 밤 자선 파티가 있을 예정인데 우리 회사 소속 연예인 윤지섭와 함께 파티에 참석할 파트너가 필요해. 난 지금 해외라 안 되고 네가 대신 가주면 안 될까?”시계를 쳐다보던 소은정이 대답했다.“그래, 뭐 특별한 약속도 없고. 그러지 뭐.”“친구야, 네가 나 살렸다. 내가 크게 한턱 쏠게. 드레스는 윤지섭 매니저가 준비할 거야.”전화를 끊은 소은정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뭐야? 거절하면 어쩌려고 미리 드레스까지 준비해 뒀대?우연준에게 자신의 일정을 알린 뒤 그녀는 바로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윤지섭은 신인이지만 나름 인지도를 쌓고 있는 연예인이라 괜히 회사 입구에 사람들이 모이면 곤란해질 것을 염려해서였다. 지금 상황에서 또 연예인인 윤지섭과 엮인다면 또 괜한 풍문이
10억? 순간 파티장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윤지섭도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저게 뭐라고 10억을 불러요?”“딱 봐도 좋은 물건이잖아요. 안 그래요?”소은정이 입술을 씨익 올렸다.“글쎄요.”아무리 봐도 그냥 옥으로 만든 담뱃대일 뿐인데 뭐가 좋다는 걸까?이민혜와 박예리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낀 소은정은 두 사람을 향해 여유로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소은정이 이 물건의 가치를 알고 있다는 걸 생각해낸 이민혜와 박예리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과거 이민혜는 소은정더러 야밤에 사당을 청소하라고 시킨 뒤 일부러 담뱃대를 금고 안에 넣지 않고 높은 서랍장 위에 올려두었다. 혹시나 소은정이 “실수로” 이 물건을 깨트리기라도 한다면 가문에서 바로 쫓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사실 그녀가 직접 깨트리고 소은정에게 뒤집어 씌울까도 생각해 봤지만 담뱃대를 목숨보다 더 아끼는 박대한은 특별히 사당에 CCTV까지 설치해 둔 터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취 담뱃대에 대해서는 한동안 잊고 있던 이민혜였지만 박예리는 “아름다운 꿈” 목걸이로 마카오에서 도박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사교계에서 체면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박예리는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다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이런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자선 파티 경매에 물건을 내놓으면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이미지는 물론, 물건을 다시 낙찰받았을 때 그녀의 재력까지 과시할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잃어버린 센터의 자리를 어떻게든 되찾으리라 박예리는 다짐하며 이민혜에게 한참을 졸라 겨우 비취 담뱃대를 경매품으로 훔칠 수 있었다.그리고 온르, 일단 마지막 경매품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이목을 끌며 어깨가 으쓱해진 박대한의 보물이라는 걸 알아본 사람들은 감히 입찰에 뛰어들지 않을 테고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관심도 두지 않을 테니 자신의 완벽하게 계획에 감탄하고 있었다.그런데 이 자리에 소은정도 있을 줄이야.이민혜는 불안한 듯 손톱을 깨물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