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어제저녁에는 대표님 약 챙겨주는 것도 까먹은 거 있죠? 그러곤 아침에 2회분 약을 챙겨주는데... 하, 참 어이가 없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대표님한테 복수하려고 다시 돌아온 것 같은데요? 사모님, 저 여자가 다시 돌아오면 분명 집안이 시끄러워질 거예요...”......흐뭇한 미소를 띠고 있던 박수혁의 표정은 의아함에서 언짢음으로 바뀌었다.휠체어를 잡은 박수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주머니가 통화하는 상대가 바로 그의 어머니 이민혜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한편, 계단에 앉은 채 이 대화를 엿듣고 있는 소은정의 모습은 마치 자신과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의 가십을 듣고 있는 듯 담담, 아니 흥미로워 보였다.그 덤덤함이 오히려 비수처럼 박수혁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말도 안 되는 억지까지 부려가며 그녀를 이 집으로 불러들인 이유는 단 한 가지, 이 집에서 있었던 불행했던 과거를 다시 행복한 기억으로 덮어주고 싶어서였다.그런데... 이게 뭐야?결혼 생활 중에도 아주머니는 이 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가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던 이 집에서 어머니가 꽂은 스파이와 함께 지내는 소은정의 기분은 어땠을까?지난 3년간... 어떻게 살아왔을지 눈앞에 선했지만 그 상상만으로 끔찍해 박수혁은 고개를 힘껏 저었다.어젯밤... 다시 서재로 돌아온 소은정의 눈동자에 담긴 혐오가 덤덤함으로 덤덤함에서 다시 차가움으로 바뀐 것도 이것 때문일까?한동안 소은정의 흉을 보던 아주머니는 15분은 족히 더 떠들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계단을 다시 올라가려던 소은정은 잔뜩 굳은 박수혁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 험담도 아니고 왜 저런대?그러든지 말든지 다시 2층으로 올라가려던 그때, 박수혁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은정아, 화나지 않아? 화난다고 한 마디만 말해 줘. 그럼 내가... 복수해 줄 테니까.”차라리 화라도 내면 3년 동안의 불쾌함을 모두 쏟아버릴 수 있지 않을까?하지만 소은정은 화를 내기는커녕 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
게다가 필리핀 메이드 학교라니. 이 나이에 처음부터 허드렛일을 배우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설마... 사모님과 통화하는 걸 전부 들으신 걸까?공포가 발끝에서부터 온몸에 퍼지고 아주머니는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지금의 박수혁은 결혼생활 내내 한 번도 신혼집을 와보지 않은 무정했던 박수혁이 아니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특히 소은정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의 눈빛이었으니까...그래서 날 내치려는 건가?방으로 돌아온 유씨 아주머니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이민혜에게 전화를 걸었다.1시간 뒤, 이민혜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마침 기분 전환 겸 쇼핑하러 나가려던 소은정과 마주친 이민혜는 바로 삿대질을 시작했다.“이런 불여우 같은 X. 이혼 도장 찍었으면 내 아들 곁에서 떨어질 것이지.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무슨 염치로 다시 내 아들 집으로 들어와!”하, 이 아줌마는 정말 하나도 안 바뀌었네.“사모님, 말씀 조심하세요. 제가 아직도 사모님 말 한 마디에 굽신대던 며느리인 줄 아세요? 어른 대접도 어른처럼 행동하셔야 받는 겁니다.”소은정의 당당한 태도에 이민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네가 감히... 내 아들을 업고 나한테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들어?인기척에 방에서 달려나온 유씨 아주머니가 이민헤의 치맛자락을 붙잡은 채 오열했다.“사, 사모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대표님께서 절 필리핀으로 보내시겠다잖아요.”“걱정하지 마. 내가 있는 한 누구도 자네를 쫓아낼 수 없으니까. 자네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나 본데. 그럴수록 더 마음 독하게 먹고 붙어있어야지!”이민혜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 이 무슨 피해망상인지. 정말 내가 박수혁한테 저 아줌마가 한 일을 전부 이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해명하기도 귀찮고 말이 안 통하는 아줌마와 입씨름도 하고 싶지 않았던 소은정이 문을 나서려던 순간, 이민혜가 다시 소은정의 앞을 가로막았다.“소은정, 경고하는데
소은정이 집을 나서자 이민혜는 핸드백까지 바닥에 내팽개치고 소리쳤다.“저 계집애 당장 내쫓아! 두 사람 결혼 난 절대 허락 못 하니까!”“어머니, 이 집안에서 어머니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게다가 제가 다섯살 먹은 애도 아니고 연애나 결혼 같은 거 어머니 허락을 받아야 하는 나이는 지났지 않습니까?”차가운 아들의 태도에 이민혜는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넌 내 아들이야! 어떻게 내 앞에서 저딴 여자 편을 들 수 있어!”아들이라... 박수혁은 생각에 잠겼다. 박수혁은 5살 때부터 박대한 손에 이끌려 해외 유학을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울면서 이민혜에게 전화를 걸 때면 항상 쇼핑 중이던 그의 어머니는 짜증스레 전화를 끊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을 할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체벌까지 받아야 했다.그렇게 내놓은 자식처럼 키워놓고 이제 와서 아들을 치맛자락에 품으려고 해?하, 웃기지도 않아.과거를 회상하던 박수혁이 코웃음을 쳤다.“어머니라서 이 정도까지 봐드리는 겁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세요? 아, 모르실 리가 없지. 이렇게 키우신 게 바로 어머니니까. 아니면 정말 이대로 쫓겨나고 싶으세요? 생모라는 알량한 명분이라도 유지하고 싶으시다면... 가만히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박수혁의 말에 이민혜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한 번도 살가운 적 없는 아들이지만 이렇게 매정한 말까지 내뱉는 건 처음이었으니까.안쓰러운 눈빛으로 창문을 통해 멀어져 가는 소은정을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에 이민헤는 속이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딸도 집안에서 쫓겨나고 아들이란 자식은 여자한테 미쳐서 엄마 취급도 안 해주는데다 항상 발밑에서 굽신대던 소은정까지 이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드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왜! 감히 태한그룹 사모님인 나한테 어떻게 다들... 그래, 이게 다 소은정 저 불여우 때문이야.소은정이 살아있는 한 난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몰라.순간 무서운 생각이 이민혜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광기 어린 눈빛의 이민혜는 테이블에
연남동.휠체어에 앉은 박수혁은 이민혜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슬픔? 기쁨?아니, 그가 느끼는 감정은 충격이었다.소은정을 싫어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죽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니. 그리고 그 증오를 부추긴 데는 그의 무심함도 한몫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조여왔다.급한 일을 처리하고 고개를 돌린 이한석은 휠체어에 꼿꼿이 앉아있는 박수혁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던 사람이 이번에는 꽤나 충격을 먹은 듯한 모양이었다.하긴, 하나뿐인 어머니가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려 했다.그 누구라도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닌가?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간 이한석이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피를 많이 흘리시긴 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랍니다.”손가락으로 휠체어 휠을 톡톡 두드리던 박수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아줌마는 필리핀으로 보내. 앞으로 절대 돌아오지 못하게 조치해 두고. 그리고 어머니는...”박수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퇴원하시면 바로 정신병원으로 옮겨. 내 명령 없이 퇴원은 금지야.”박수혁의 말에 이한석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곧 다시 담담한 표정을 되찾았다.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한석도 직접 목격한 터였다. 먼저 공격한 건 이민혜였고 소은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민혜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그래도 사람이라면 원망의 마음이 들 만도 한데... 소은정 대표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시는 건가...하지만 박수혁이 내린 결정에 그의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네, 대표님.”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이한석이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소은정 대표님 아마... 다시 돌아오지 않으시겠죠?”박수혁의 표정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이런 일까지 있었으니 다시 돌아오지 않은 건 분명했고 이번 기회까지 놓치면 정말 영원히 소은정을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저녁은 뭘 드시고 싶으신지 전화라도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제가 포장
이한석은 바로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20분 뒤, 어림잡아 100kg는 되어 보이는 남자가 박수혁의 앞에 나타났다. 특히 그 능글맞은 웃음이 박수혁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형.”이한석이 남자의 옆구리를 쿡 찌르자 남자는 바로 걸걸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대표님, 오한진이라고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절 집안에 들이신 거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한 달 안에 소은정 대표님과는 화해하게 되실 거고 늦어도 일 년 안에는 다시 살림 합칠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오한진은 과장을 섞어 포부부터 밝혔다. 이 정도 보장도 주지 않으면 정말 금방이라도 쫓겨날 것만 같은 기분에서였다.반면, 오한진의 모습을 본 순간, 박수혁은 혀라도 씹고 싶은 기분이었다. 내가 정말 미쳤지라는 생각이 들려던 순간, 오한진의 자신만만한 말에 다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저 껄렁대는 몸뚱아리를 1년 정도는 참아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한편, 이한석은 또다시 오한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아니, 허풍도 적당히 쳐야지. 형 그 혓바닥에 내 커리어가 달렸다고! 제발 좀 신중해져 봐!서재에 침묵이 감돌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던 박수혁이 입을 열었다.“직장 생활을 했다고 들었는데 어쩌다 창업할 생각을 했지?”박수혁은 아무나 곁에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집사 역할로 지낼 남자라면 더더욱 자세히 알아봐야 했다.하지만 오한진은 차가운 박수혁의 눈빛에 전혀 기가 죽지 않은 듯 짐짓 한숨을 푹 내쉬었다.“글쎄 구내식당에서 제가 밥 좀 많이 먹었다고 눈치를 주지 뭡니까? 아니 제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요...”오한진은 애교를 부리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니 제가 영업을 뛰면서 회사에 벌어준 돈이 얼만데... 식대 좀 많이 나간다고 눈치를 주는 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바로 때려치웠죠!”말도 안 되는 이유에 박수혁은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럼... 창업한 뒤로 몇 커플이나 성사시켰지?”박수혁의 질문에 흠
연결음 소리가 두 번 정도 울리고 차가운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누구시죠?”“소은정 대표님 맞으시죠? 저 연남동에 새로 온 집사 오한진입니다. 제가 대표님 방을 청소하다 화장품을 살짝 건드렸거든요? 박 대표님께서는 전부 새 걸로 갈아치우라고 하시는데 아... 제가 여자 화장품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요...”오한진이 불쌍한 말투로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소은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버리지 마세요. 지금 바로 돌아갈 거니까. 내 물건에 손이라도 대봐요!”서재 안에서 통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박수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렇게 쉽다고?한편 전화를 받은 소은정은 바로 최성문에게 차를 돌리라 지시했다. 그녀가 사용하는 화장품들은 전부 자주 가는 에스테틱에서 그녀만을 위해 커스터마이징한 것, 시중에서는 구매가 불가능한 것들이었다.이런 멍청한 남자들. 내 화장품에 손이라도 대봐.부리나케 달려온 소은정은 연남동 집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방금 전 피를 철철 흘리던 사람이 쓰러져있던 곳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경찰에는 신고가 안 되었다는 뜻, 박수혁 측에서 이 일로 꼬투리를 잡지 않으면 소은정도 문제를 삼지 않을 생각이었다.박수혁이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것만 2번, 괜히 끝까지 파고들었다가 박씨 집안사람들과 완전히 사이가 틀어지는 것도 애매한 일이니까.심호흡을 깊이 하고 문으로 들어서려던 그때, 딱 봐도 과체중인 남자 한 명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은정 앞에 나타났다.“소은정 대표님?”오한진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새로 온 오한진 집사라고 합니다. TV에서 뵌 것보다 실물이 훨씬 더 이쁘시네요. 평범한 여배우들과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이랄까. 정말 최고십니다.”갑작스럽게 나타나 칭찬부터 내뱉는 오한진의 모습에 소은정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것 참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이때 뒤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최성문이 짜증스레 입을 열었다.“말 다 끝났습니까?”“아, 이쪽이
오한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두 사람을 다시 이어주는 것, 절대 단둘이 함께 있을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오버스러운 오한진의 말투에 최성문은 물론 박수혁도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하, 당신 저런 직원을 좋아했었나? 한 시간 사이에 스타일이라도 바뀐 거야?”박수혁 주위에는 전부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뿐이었다. 그런데 이 오한진이라는 남자는 껄렁한 말투부터 특출한 것 하나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집사로 뽑은 거지?무슨 꿍꿍이야.박수혁이 적당한 핑계를 찾으려던 그때, 오한진이 싱긋 웃었다.“대표님, 사실 저 낙하산이에요.”스스로를 낙하산이라 밝히는 낙하산이라니. 소은정이 흥미로운 듯 물었다.“누구 백으로 들어온 거죠?”오한진은 짐짓 큰 비밀이라도 되는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저 사실 한석이 사촌 형입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세요. 보시다시피 제가 외모부터 스펙까지 한석이한테 많이 꿀립니다. 창피하잖아요.”“네, 그럴게요.”이한석의 친척이라... 수행비서로 아끼는 줄은 알았지만 그 인맥으로 직원까지 들일 수 있는 정도였다니.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하며 계단을 올랐다.“아, 제 물건은...”“전부 그대로 있습니다. 알코올로 소독까지 다 해뒀으니 안심하고 쓰십시오!”소은정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푹 쉬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한편, 식사시간, 식탁에 앉아있던 박수혁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소은정이 그렇게 부리나케 돌아온 이유가 화장품이라는 게 괘나 귀엽게 느껴졌다.반면 소은정은 혼자 피식거리는 박수혁을 힐끔 노려보았다.뭐야, 이 인간. 밥이나 조용히 먹을 것이지 왜 웃고 난리래?오한진은 체중이 100Kg를 육박하는 거구였지만 움직임만은 아주 가벼웠다. 그리고 만든 요리들도 전혀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것이 소은정의 입맛에 꼭 맞았다.유씨 아주머니가 만든 음식은 입에도 안 대던 소은정이 곧잘 먹는 모습에 박수혁의 입맛도 다시 되살아나는 듯했다.두 사람이 대충 식사를 마친 듯하자 오한진이 바로 칭찬을 시작했다.
2층 방 발코니에서 햇빛을 즐기며 차를 마시던 소은정이 솔솔 밀려드는 잠에 눈을 감으려던 그때, 살금살금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오 집사님?”“역시 은정 대표님, 돌아보지도 않고 저인 걸 아셨네요? 역시 평범한 여자들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십니다. 후식 과일 좀 준비해 왔습니다. 오늘 저녁 식사는 마음에 드셨습니까?”소은정이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자 오한진이 짐짓 불안한 듯 두 손을 비비며 말을 이어갔다.“대표님께서 분부하신 메뉴대로 준비하긴 했는데 은정 대표님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사실 저 오늘 첫 출근이라서요. 집사로서 이런 기본적인 식사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바로 쫓겨날지도 모릅니다...”오한진의 말에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박수혁이 분부한 거라고? 전부 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라 의아했었는데 박수혁이 시킨 대로 한 거였다니.그녀의 음식 취향은 어떻게 아는 걸까?불편했다. 박수혁이 그녀에게 신경을 쓰면 쓸수록 마음은 꽉 막힌 듯 답답해져만 갔다.하지만 그녀는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저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어차피 산해진미를 차려준다 해도 박수혁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서 마음 편히 밥을 먹을 수는 없을 테니까.“아, 그리고 저녁에 친구랑 쇼핑하기로 했어요.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주무세요.”“쇼핑이요? 제가 백이라도 들어드릴까요?”오한진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두 사람을 이어주려면 우선 소은정의 신뢰를 어는 게 급선무! 어떻게든 소은정의 마음을 열어야 했다.“아니요. 경호원이 있으니 괜찮습니다.”......한 시간 후, 소은정은 한유라와 김하늘이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갑자기 웬 쇼핑이야?”소은정의 질문에 김하늘이 눈을 흘겼다.“얘 좀 봐? 너 혼자 맨날 박수혁이랑 얼굴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 받을 게 뻔하니까 데리고 나와줬더니? 아니면 뭐? 같은 집에서 있으니까 옛정이 막 살아나고 그래?”한유라도 김하늘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