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어제저녁에는 대표님 약 챙겨주는 것도 까먹은 거 있죠? 그러곤 아침에 2회분 약을 챙겨주는데... 하, 참 어이가 없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대표님한테 복수하려고 다시 돌아온 것 같은데요? 사모님, 저 여자가 다시 돌아오면 분명 집안이 시끄러워질 거예요...”......흐뭇한 미소를 띠고 있던 박수혁의 표정은 의아함에서 언짢음으로 바뀌었다.휠체어를 잡은 박수혁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주머니가 통화하는 상대가 바로 그의 어머니 이민혜라는 걸 알아차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한편, 계단에 앉은 채 이 대화를 엿듣고 있는 소은정의 모습은 마치 자신과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의 가십을 듣고 있는 듯 담담, 아니 흥미로워 보였다.그 덤덤함이 오히려 비수처럼 박수혁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말도 안 되는 억지까지 부려가며 그녀를 이 집으로 불러들인 이유는 단 한 가지, 이 집에서 있었던 불행했던 과거를 다시 행복한 기억으로 덮어주고 싶어서였다.그런데... 이게 뭐야?결혼 생활 중에도 아주머니는 이 집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가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던 이 집에서 어머니가 꽂은 스파이와 함께 지내는 소은정의 기분은 어땠을까?지난 3년간... 어떻게 살아왔을지 눈앞에 선했지만 그 상상만으로 끔찍해 박수혁은 고개를 힘껏 저었다.어젯밤... 다시 서재로 돌아온 소은정의 눈동자에 담긴 혐오가 덤덤함으로 덤덤함에서 다시 차가움으로 바뀐 것도 이것 때문일까?한동안 소은정의 흉을 보던 아주머니는 15분은 족히 더 떠들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계단을 다시 올라가려던 소은정은 잔뜩 굳은 박수혁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 험담도 아니고 왜 저런대?그러든지 말든지 다시 2층으로 올라가려던 그때, 박수혁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은정아, 화나지 않아? 화난다고 한 마디만 말해 줘. 그럼 내가... 복수해 줄 테니까.”차라리 화라도 내면 3년 동안의 불쾌함을 모두 쏟아버릴 수 있지 않을까?하지만 소은정은 화를 내기는커녕 묘한 미소를 지을 뿐이
게다가 필리핀 메이드 학교라니. 이 나이에 처음부터 허드렛일을 배우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설마... 사모님과 통화하는 걸 전부 들으신 걸까?공포가 발끝에서부터 온몸에 퍼지고 아주머니는 사시나무처럼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지금의 박수혁은 결혼생활 내내 한 번도 신혼집을 와보지 않은 무정했던 박수혁이 아니라는 것쯤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특히 소은정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남자의 눈빛이었으니까...그래서 날 내치려는 건가?방으로 돌아온 유씨 아주머니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이민혜에게 전화를 걸었다.1시간 뒤, 이민혜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마침 기분 전환 겸 쇼핑하러 나가려던 소은정과 마주친 이민혜는 바로 삿대질을 시작했다.“이런 불여우 같은 X. 이혼 도장 찍었으면 내 아들 곁에서 떨어질 것이지. 싫다고 할 때는 언제고 무슨 염치로 다시 내 아들 집으로 들어와!”하, 이 아줌마는 정말 하나도 안 바뀌었네.“사모님, 말씀 조심하세요. 제가 아직도 사모님 말 한 마디에 굽신대던 며느리인 줄 아세요? 어른 대접도 어른처럼 행동하셔야 받는 겁니다.”소은정의 당당한 태도에 이민혜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네가 감히... 내 아들을 업고 나한테 눈을 똑바로 뜨고 대들어?인기척에 방에서 달려나온 유씨 아주머니가 이민헤의 치맛자락을 붙잡은 채 오열했다.“사, 사모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대표님께서 절 필리핀으로 보내시겠다잖아요.”“걱정하지 마. 내가 있는 한 누구도 자네를 쫓아낼 수 없으니까. 자네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이 있나 본데. 그럴수록 더 마음 독하게 먹고 붙어있어야지!”이민혜의 기세등등한 모습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 이 무슨 피해망상인지. 정말 내가 박수혁한테 저 아줌마가 한 일을 전부 이른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해명하기도 귀찮고 말이 안 통하는 아줌마와 입씨름도 하고 싶지 않았던 소은정이 문을 나서려던 순간, 이민혜가 다시 소은정의 앞을 가로막았다.“소은정, 경고하는데
소은정이 집을 나서자 이민혜는 핸드백까지 바닥에 내팽개치고 소리쳤다.“저 계집애 당장 내쫓아! 두 사람 결혼 난 절대 허락 못 하니까!”“어머니, 이 집안에서 어머니가 결정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게다가 제가 다섯살 먹은 애도 아니고 연애나 결혼 같은 거 어머니 허락을 받아야 하는 나이는 지났지 않습니까?”차가운 아들의 태도에 이민혜는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넌 내 아들이야! 어떻게 내 앞에서 저딴 여자 편을 들 수 있어!”아들이라... 박수혁은 생각에 잠겼다. 박수혁은 5살 때부터 박대한 손에 이끌려 해외 유학을 시작했다. 어린 마음에 울면서 이민혜에게 전화를 걸 때면 항상 쇼핑 중이던 그의 어머니는 짜증스레 전화를 끊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을 할아버지에게 고자질을 하는 바람에 체벌까지 받아야 했다.그렇게 내놓은 자식처럼 키워놓고 이제 와서 아들을 치맛자락에 품으려고 해?하, 웃기지도 않아.과거를 회상하던 박수혁이 코웃음을 쳤다.“어머니라서 이 정도까지 봐드리는 겁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세요? 아, 모르실 리가 없지. 이렇게 키우신 게 바로 어머니니까. 아니면 정말 이대로 쫓겨나고 싶으세요? 생모라는 알량한 명분이라도 유지하고 싶으시다면... 가만히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박수혁의 말에 이민혜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한 번도 살가운 적 없는 아들이지만 이렇게 매정한 말까지 내뱉는 건 처음이었으니까.안쓰러운 눈빛으로 창문을 통해 멀어져 가는 소은정을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에 이민헤는 속이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딸도 집안에서 쫓겨나고 아들이란 자식은 여자한테 미쳐서 엄마 취급도 안 해주는데다 항상 발밑에서 굽신대던 소은정까지 이젠 고개를 빳빳이 들고 대드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왜! 감히 태한그룹 사모님인 나한테 어떻게 다들... 그래, 이게 다 소은정 저 불여우 때문이야.소은정이 살아있는 한 난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할지도 몰라.순간 무서운 생각이 이민혜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광기 어린 눈빛의 이민혜는 테이블에
연남동.휠체어에 앉은 박수혁은 이민혜가 구급차에 실려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슬픔? 기쁨?아니, 그가 느끼는 감정은 충격이었다.소은정을 싫어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죽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니. 그리고 그 증오를 부추긴 데는 그의 무심함도 한몫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조여왔다.급한 일을 처리하고 고개를 돌린 이한석은 휠체어에 꼿꼿이 앉아있는 박수혁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던 사람이 이번에는 꽤나 충격을 먹은 듯한 모양이었다.하긴, 하나뿐인 어머니가 사랑하는 여자를 죽이려 했다.그 누구라도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닌가?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간 이한석이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피를 많이 흘리시긴 했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랍니다.”손가락으로 휠체어 휠을 톡톡 두드리던 박수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아줌마는 필리핀으로 보내. 앞으로 절대 돌아오지 못하게 조치해 두고. 그리고 어머니는...”박수혁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퇴원하시면 바로 정신병원으로 옮겨. 내 명령 없이 퇴원은 금지야.”박수혁의 말에 이한석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곧 다시 담담한 표정을 되찾았다.방금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한석도 직접 목격한 터였다. 먼저 공격한 건 이민혜였고 소은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민혜에게 손끝 하나 대지 않았다.그래도 사람이라면 원망의 마음이 들 만도 한데... 소은정 대표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시는 건가...하지만 박수혁이 내린 결정에 그의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네, 대표님.”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이한석이 조심스레 물었다.“대표님, 소은정 대표님 아마... 다시 돌아오지 않으시겠죠?”박수혁의 표정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이런 일까지 있었으니 다시 돌아오지 않은 건 분명했고 이번 기회까지 놓치면 정말 영원히 소은정을 되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저녁은 뭘 드시고 싶으신지 전화라도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 제가 포장
이한석은 바로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20분 뒤, 어림잡아 100kg는 되어 보이는 남자가 박수혁의 앞에 나타났다. 특히 그 능글맞은 웃음이 박수혁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형.”이한석이 남자의 옆구리를 쿡 찌르자 남자는 바로 걸걸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대표님, 오한진이라고 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절 집안에 들이신 거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한 달 안에 소은정 대표님과는 화해하게 되실 거고 늦어도 일 년 안에는 다시 살림 합칠 수 있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오한진은 과장을 섞어 포부부터 밝혔다. 이 정도 보장도 주지 않으면 정말 금방이라도 쫓겨날 것만 같은 기분에서였다.반면, 오한진의 모습을 본 순간, 박수혁은 혀라도 씹고 싶은 기분이었다. 내가 정말 미쳤지라는 생각이 들려던 순간, 오한진의 자신만만한 말에 다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저 껄렁대는 몸뚱아리를 1년 정도는 참아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한편, 이한석은 또다시 오한진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아니, 허풍도 적당히 쳐야지. 형 그 혓바닥에 내 커리어가 달렸다고! 제발 좀 신중해져 봐!서재에 침묵이 감돌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던 박수혁이 입을 열었다.“직장 생활을 했다고 들었는데 어쩌다 창업할 생각을 했지?”박수혁은 아무나 곁에 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집사 역할로 지낼 남자라면 더더욱 자세히 알아봐야 했다.하지만 오한진은 차가운 박수혁의 눈빛에 전혀 기가 죽지 않은 듯 짐짓 한숨을 푹 내쉬었다.“글쎄 구내식당에서 제가 밥 좀 많이 먹었다고 눈치를 주지 뭡니까? 아니 제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요...”오한진은 애교를 부리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니 제가 영업을 뛰면서 회사에 벌어준 돈이 얼만데... 식대 좀 많이 나간다고 눈치를 주는 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바로 때려치웠죠!”말도 안 되는 이유에 박수혁은 말문이 막혀버렸다.“그럼... 창업한 뒤로 몇 커플이나 성사시켰지?”박수혁의 질문에 흠
연결음 소리가 두 번 정도 울리고 차가운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누구시죠?”“소은정 대표님 맞으시죠? 저 연남동에 새로 온 집사 오한진입니다. 제가 대표님 방을 청소하다 화장품을 살짝 건드렸거든요? 박 대표님께서는 전부 새 걸로 갈아치우라고 하시는데 아... 제가 여자 화장품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요...”오한진이 불쌍한 말투로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소은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버리지 마세요. 지금 바로 돌아갈 거니까. 내 물건에 손이라도 대봐요!”서재 안에서 통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박수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이렇게 쉽다고?한편 전화를 받은 소은정은 바로 최성문에게 차를 돌리라 지시했다. 그녀가 사용하는 화장품들은 전부 자주 가는 에스테틱에서 그녀만을 위해 커스터마이징한 것, 시중에서는 구매가 불가능한 것들이었다.이런 멍청한 남자들. 내 화장품에 손이라도 대봐.부리나케 달려온 소은정은 연남동 집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방금 전 피를 철철 흘리던 사람이 쓰러져있던 곳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경찰에는 신고가 안 되었다는 뜻, 박수혁 측에서 이 일로 꼬투리를 잡지 않으면 소은정도 문제를 삼지 않을 생각이었다.박수혁이 그녀의 목숨을 구해준 것만 2번, 괜히 끝까지 파고들었다가 박씨 집안사람들과 완전히 사이가 틀어지는 것도 애매한 일이니까.심호흡을 깊이 하고 문으로 들어서려던 그때, 딱 봐도 과체중인 남자 한 명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은정 앞에 나타났다.“소은정 대표님?”오한진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새로 온 오한진 집사라고 합니다. TV에서 뵌 것보다 실물이 훨씬 더 이쁘시네요. 평범한 여배우들과는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이랄까. 정말 최고십니다.”갑작스럽게 나타나 칭찬부터 내뱉는 오한진의 모습에 소은정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것 참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이때 뒤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최성문이 짜증스레 입을 열었다.“말 다 끝났습니까?”“아, 이쪽이
오한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두 사람을 다시 이어주는 것, 절대 단둘이 함께 있을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오버스러운 오한진의 말투에 최성문은 물론 박수혁도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하, 당신 저런 직원을 좋아했었나? 한 시간 사이에 스타일이라도 바뀐 거야?”박수혁 주위에는 전부 최고의 교육을 받은 엘리트들뿐이었다. 그런데 이 오한진이라는 남자는 껄렁한 말투부터 특출한 것 하나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집사로 뽑은 거지?무슨 꿍꿍이야.박수혁이 적당한 핑계를 찾으려던 그때, 오한진이 싱긋 웃었다.“대표님, 사실 저 낙하산이에요.”스스로를 낙하산이라 밝히는 낙하산이라니. 소은정이 흥미로운 듯 물었다.“누구 백으로 들어온 거죠?”오한진은 짐짓 큰 비밀이라도 되는 듯 목소리를 낮추었다.“저 사실 한석이 사촌 형입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세요. 보시다시피 제가 외모부터 스펙까지 한석이한테 많이 꿀립니다. 창피하잖아요.”“네, 그럴게요.”이한석의 친척이라... 수행비서로 아끼는 줄은 알았지만 그 인맥으로 직원까지 들일 수 있는 정도였다니.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하며 계단을 올랐다.“아, 제 물건은...”“전부 그대로 있습니다. 알코올로 소독까지 다 해뒀으니 안심하고 쓰십시오!”소은정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푹 쉬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한편, 식사시간, 식탁에 앉아있던 박수혁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소은정이 그렇게 부리나케 돌아온 이유가 화장품이라는 게 괘나 귀엽게 느껴졌다.반면 소은정은 혼자 피식거리는 박수혁을 힐끔 노려보았다.뭐야, 이 인간. 밥이나 조용히 먹을 것이지 왜 웃고 난리래?오한진은 체중이 100Kg를 육박하는 거구였지만 움직임만은 아주 가벼웠다. 그리고 만든 요리들도 전혀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것이 소은정의 입맛에 꼭 맞았다.유씨 아주머니가 만든 음식은 입에도 안 대던 소은정이 곧잘 먹는 모습에 박수혁의 입맛도 다시 되살아나는 듯했다.두 사람이 대충 식사를 마친 듯하자 오한진이 바로 칭찬을 시작했다.
2층 방 발코니에서 햇빛을 즐기며 차를 마시던 소은정이 솔솔 밀려드는 잠에 눈을 감으려던 그때, 살금살금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오 집사님?”“역시 은정 대표님, 돌아보지도 않고 저인 걸 아셨네요? 역시 평범한 여자들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십니다. 후식 과일 좀 준비해 왔습니다. 오늘 저녁 식사는 마음에 드셨습니까?”소은정이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자 오한진이 짐짓 불안한 듯 두 손을 비비며 말을 이어갔다.“대표님께서 분부하신 메뉴대로 준비하긴 했는데 은정 대표님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사실 저 오늘 첫 출근이라서요. 집사로서 이런 기본적인 식사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다면 바로 쫓겨날지도 모릅니다...”오한진의 말에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박수혁이 분부한 거라고? 전부 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라 의아했었는데 박수혁이 시킨 대로 한 거였다니.그녀의 음식 취향은 어떻게 아는 걸까?불편했다. 박수혁이 그녀에게 신경을 쓰면 쓸수록 마음은 꽉 막힌 듯 답답해져만 갔다.하지만 그녀는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저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어차피 산해진미를 차려준다 해도 박수혁과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서 마음 편히 밥을 먹을 수는 없을 테니까.“아, 그리고 저녁에 친구랑 쇼핑하기로 했어요. 저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주무세요.”“쇼핑이요? 제가 백이라도 들어드릴까요?”오한진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두 사람을 이어주려면 우선 소은정의 신뢰를 어는 게 급선무! 어떻게든 소은정의 마음을 열어야 했다.“아니요. 경호원이 있으니 괜찮습니다.”......한 시간 후, 소은정은 한유라와 김하늘이 있는 쇼핑몰로 향했다.“갑자기 웬 쇼핑이야?”소은정의 질문에 김하늘이 눈을 흘겼다.“얘 좀 봐? 너 혼자 맨날 박수혁이랑 얼굴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 받을 게 뻔하니까 데리고 나와줬더니? 아니면 뭐? 같은 집에서 있으니까 옛정이 막 살아나고 그래?”한유라도 김하늘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