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은 당황했음을 감추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분명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은 얼굴만 아는 사이, 일로써 엮인 이들일 텐데. 왜 전동하는 소은정을 특별히 여기는 거지?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저리도 가볍게 내준다고?박수혁은 프로젝트를 못 따낸 것 보다도 전동하가 소은정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가 더욱 신경 쓰였다.전동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것은 소은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가 장난 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이 공간에 있는 모두가 알 것이다.지금 소은정의 머릿속에는 왜? 라는 단 한마디의 의문만 들 뿐이었다.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을 읽어 보려 해도 그는 여전히 진중한 표정일 뿐이었다. 마이크가 자신을 유독 좋아하기 때문일까?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말을 끝맺어버린 전동하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자리를 뜨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이 모임은 간결하고 풍격적으로 막을 내렸다.이 공간에 남은 것은 소은정 자신과 박수혁 둘뿐이었다. 소은정은 전동하의 입장을 확신 받기 위함이었고, 박수혁은 소은정 혼자 이 곳에 두고 떠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그렇게 남은 두 사람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전동하였다.“그래요. 은정씨께서 궁금한 게 많으실 거예요. 하지만 빈말이 아니었어요. 후에 SC쪽으로 연락 드릴 겁니다.”“저는 이해가 안 돼서요…. 왜 저희 SC를 고르신 거죠?”전동하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진지한 말투로 대답했다.“전 SC를 고른 게 아니라 당신을 선택한 겁니다.”그에게서는 가식 없는 온화함만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해 다시금 되물었다.“제가 마이크를 구해줘 서요”“아니요.”전동하는 웃으며 대답해주었다.그 때, 경호원이 다가와 전동하에게 무언가 담긴 봉투를 건네 주었다. 그를 의아해하며 바라보니 전동하는 성급하지 않는 손짓으로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었다.봉투 안에는 두 장의 사진이 있었으며, 박수혁과 소은정에게 한 장씩 나누어졌
이건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기억, 차마 꺼내보지도 못하는 그런 기억이었다. 터치하는 순간 마음이 약해지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지게 될까 봐...그녀가 남자아이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이 포착된 사진, 누가 찍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 거리의 연기의 내음과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리고 죽음의 공포가 그대로 느껴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전동하의 웃음소리에 소은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블랙홀처럼 까만 박수혁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그녀의 영혼을 빨아들일 듯 깊고 매력적인 눈동자에 소은정의 심장이 또 주책맞게 뛰기 시작했다. 마치 세계 최고의 조각가가 하나하나 조각한 듯 완벽한 이목구비, 턱선... 처음 만났을 때 피가 잔뜩 묻어있던 모습과 지금 너무나 멀끔한 그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남자아이를 꼭 안고 있는 소은정, 그리고 그런 소은정을 향해 달려가는 박수혁, 결연한 두 사람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이 일만은 끝까지 숨기려 했는데 어쩔 수 없네...그리고 놀랍게도 소은정이 몸을 바쳐 지키려 했던 아이가 바로 마이크였다. 황금빛 곱슬머리, 똘망똘망한 눈매, 3년이 흘렀지만 귀엽고 잘생긴 모습만은 그대로였다.사진을 통해 자신을 구해주는 소은정의 모습을 확인한 마이크도 자신을 구해주는 박수혁의 모습을 다시 떠올린 소은정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그 침묵을 깬 건 바로 전동하였다.“죄송합니다. 박 대표님과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태한그룹과 협력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죠. 사실 3년 전, 누군가 제 아이를 구해 주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워낙 정신이 없어 그분을 찾지 못했죠. 그런데 이번에 귀국한 뒤 아들이 소은정 대표님을 먼저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소 대표님에 관해 조사를 하기 시작했죠. 두 분 모두 제 아들의 은인이시지만 그래도 전... 가장 먼저, 직접적으로 마이크를 지키신 소은정 대표님께 더 보답하고 싶군요. 소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제 아들은 아마...”
마이크는 입술을 쭉 내밀고 애교를 부렸다. 그의 맑은 눈동자와 기대에 찬 입꼬리는 사람을 녹이는 재주가 있었다.“마이크, 예쁜 누나는 일이 있으니, 넌 올라가서 숙제해!”전동하는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마이크에게 말했다.마이크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스럽게 보았다.‘숙제 한번 안 한다고 어디 덧나나!’소은정은 사진에 있던 남자아이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하고 놀라워하며 사진으로 본 아이라 그런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그의 곱슬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그를 바라보았다.“누나랑 내일 또 놀까?”마이크는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눈만 끔벅거렸다. 그러다 마이크가 갑자기 소은정의 옷을 잡아당겨 두 팔로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싫어! 싫어! 난 예쁜 누나랑 같이 잘 거야! 숙제하기 싫어! 난 에쁜 누나 따라서 집에 갈 거야! 아빠는 혼자 늙어 죽어!”그의 통통 튀는 맑은 목소리를 듣자 소은정은 순간 그를 데리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마이크는 이렇게 애교를 떨면 예쁜 누나랑 같이 있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전동하는 그의 속셈을 눈치채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손을 허공에 휘휘 저으니 건장한 경호원이 마이크에게 다가왔다. 경호원은 한 손으로 마이크를 들어 어깨에 멨다. 마이크는 맥없이 경호원의 어깨에 매달려 바둥거렸다. “아아아아! 살려주세요! 예쁜 누나! 예쁜 누나랑 평생 같이 살 거야!”마이크는 고함 몇 마디 지르더니 계단 위로 사라졌다.“소은정 아가씨, 박 사장님 조심히 가세요.”전동하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었다. 소은정은 시선을 거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예. 안녕히 계세요.”문 앞에는 박수혁의 운전기사가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박수혁은 그녀보다 먼저 걸어가더니 뒷좌석의 오른쪽 문을 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태워다 줄게.”소은정은 그제야 자신이 마이크를 따라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도 가져오지 않았고, 택시를 잡기 쉬운 위치도 아니었다.
집에 도착한 소은정은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따냈는데도 불구하고 텐션이 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과거의 일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걸 수도 있다.깊은 밤, 그녀가 침대에 누워 사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다.그녀는 초조한 눈빛으로 휴대폰을 들어 누구인지 확인했다. 박수혁이다.그녀의 눈살이 한순간에 찌푸려졌다. -소은정 네가 나를 구해줘서 정말 기뻐.-다른 사람이 아니라 소은정이 자신을 구해줘서 기쁜 박수혁이었다.소은정은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와 따듯한 우유 한 잔을 따라 마신 후 다시 위층으로 올라왔다.‘과거는 과거일 뿐, 다시 오지 않을 시간에 왜 이렇게 얽매여 있는 거야?’오늘은 정말 푹 자야겠다.규모가 큰 프로젝트여서 그런지 하룻밤 사이에 소문이 떠들썩하게 돌기 시작했다. 여러 큰 그룹들이 연달아 SC그룹에게 호의를 표했고, 규모가 큰 프로젝트이니 발이라도 담그려고 난리가 났다.잠에서 깬 소은정이 휴대폰을 켜자 안에는 셀 수 없는 많은 메시지들이 와있었다. ‘무음으로 해두고 자길 잘했네.’소호량은 으쓱거리며 방으로 들어와 “마마,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했다.소은정은 한유라에게 답장을 한 후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은 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오빠?”소은호가 차가운 표정으로 거실에 서 있었다. 그는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녀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야 너 간도 크다!”소은정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소찬식은 신문을 들고 식탁에 앉더니 그 둘을 보고 씩 웃었다.“프로젝트 진행을 어떻게 한 거야? 그거 원래 큰형이랑 얘기가 오갔던 건데, 이렇게 갑자기 태세 돌변?”소은정은 한숨을 내쉬더니 그들에게 어제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모두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은해만 빼고. 소은해는 고개를 저으며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전동하 아들도 저렇게 컸다니, 보아하니 다들 글렀어!”“뭐래 꺼져!”소찬
강상원 같은 작자는 회사에 실제 아무 도움도 안 되면서 이득을 제일 많이 보려고만 하는 기생충 같은 사람이다. 저런 작자를 그대로 두면 회사에 안 좋은 영향만 끼칠 것이다.‘겁도 없지 밥줄로 내기를 하다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강상원을 순순히 놓아줄 수는 없었다.강상원의 얼굴이 벌게지더니 소은호를 쳐다보았다. “사장님, 이게 다 우리 회사를 위해서 그런거죠. 저와 강치훈도 회사가 이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어서……, 더군다나 소은정 씨가 이 프로젝트를 따냈다고 하니 누구보다 기쁘다고요!”소은호가 차가운 얼굴로 강상원을 보았다.“그러니까, 그냥 어영부영 넘어가자는 말입니까?”그의 말 한마디에 회의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강상원을 쳐다보니, 그는 난처한 듯 얼굴이 한층 더 달아올랐다.‘내 밥줄 절대 못 뺏겨!’그는 이렇게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하지만, 소은호의 냉정한 태도에는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강상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쳐다봤지만, 그녀도 소은호를 만류할 기색이 없었다.그는 이를 꽉 깨물고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나가라면 나가야 해? 나 또한 SC그룹의 주주야! 회장님께서 허락했어? 난 절대 못 나가!”강상원은 뻔뻔한 표정으로 씩씩거렸다. 소은정은 눈썹을 치켜들고 웃었다. “그래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바로 소찬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굳은 표정의 강상원은 식은땀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뚜… 뚜… 어 은정아 점심에 낚시하러 갈까? 아니면 밥 먹으러 올래?”경쾌한 소찬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밖에 나와있는지 통화에 바람 소리가 들렸다. 소은정은 어색한 상황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아버지, 저 지금 회의중이예요. 방금 강상원 씨가 우리 SC그룹에서 나가게 됐는데, 아버지 동의 없이는 나갈 수 없다고 하네요? 아버지 의견은 어떠세요?”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는 강상원을 힐끗 흘겨보았다.강상원은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 연신 입에
당황스러운 눈빛의 한유라가 먼 곳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이 외국 꼬마는 너무 귀엽지만, 손에 들린 국화꽃이 영 눈에 거슬렸다.‘이게 무슨 의미지? 이제 어린아이도 소은정을 얕잡아 보기 시작한건가?’한유라가 곰곰이 생각을 하던 찰나 소은정이 급히 건물에서 빠져나와 그녀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어디 가는 길에 들렀어?”한유라는 금발 꼬마의 등장에 당황한 듯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마이크는 소은정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의 허벅지를 껴안았다. 그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예쁜 누나! 너무 보고 싶었어……”이 광경을 보고 한유라는 깜짝 놀라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소은정은 온화하게 웃으며 마이크의 귀여운 얼굴을 어루만졌다. “누나도 마이크 보고 싶었어!”마이크는 손에 들린 국화꽃을 내밀었다. “이건 예쁜 누나가 제일 좋아하는 국화꽃!”소은정은 복잡한 눈빛으로 억지웃음을 지었다. ‘내가 언제 국화꽃을 좋아한다고 했지? 어휴, 어린애의 마음을 어찌 알겠어…….’한유라는 이 광경에 놀란 듯 한참을 서있었다. ‘소은정은 초롱꽃을 좋아했는데, 언제부터 국화꽃을 좋아하게 된 거지?’그녀는 천천히 걸어와 소은정 앞에 섰다. “은정아, 너 언제부터 남동생이 생겼어? 혹시 네 아버지의 사생아?”그녀는 누가 들을까 무서워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은정은 그녀를 보며 “이 유전자가 우리 아빠 씨라고? 가당키나 해?”라고 되물었다.한유라가 그의 아버지인 소찬식의 얼굴을 떠올렸다. ‘200% 절대 불가.’전동하의 얼굴형은 아시아에 가까웠지만 그도 이탈리아 혼혈이었고, 그의 부인은 100% 외국인이기에 마이크 같은 금발의 파란 눈을 낳을 수 있었다. 한유라는 납득이 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유전자로는 절대 불가능이지.’소씨 집안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공이 크다. 어머니의 유전자가 없었더라면 상상하기도 싫다.마이크가 한유라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래도 예쁜 누나의 친구라고 예의를 갖춰 상냥하게 대했다. 그의 파란
세 사람은 호기롭게 상가로 들어섰고, 한유라는 물건을 사고 싶은 대로 짚으며 돈을 지불한 뒤사람을 시켜 집으로 배달시켰다.소은정이 옷을 입어보고 있자 마이크는 거울 옆 벤치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와, 너무 예쁘다……”“이 옷 너무 잘 어울려요, 그 누구도 누나 보다 예쁘진 않을 거예요!”“누나 선녀 같아요,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소은정은 칭찬을 듣자 입이 귀에 걸리며 기분이 매우 좋아져 다 사버렸다.뒤 편에 서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한 한유라는 아무 말이 없었다.이 사람은 말하는 것도 이렇게 달콤하다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하지만 소은정에게만 그렇다는 것!옆에 있던 직원은 자신이 할 말을 마이크가 다 해버려서 말 한마디도 보태지 않았다.설마 급여가 깎이진 않겠지?아쿠아리움.쇼핑을 다 한 뒤, 마이크는 아쿠아리움에 가서 놀고 싶었다. 비록 그는 해외에 개인 아쿠아리움이 있었고, 각종 해양 생물들을 볼 수 있었지만 송화시에는 국내에서 제일 큰 아쿠아리움이 있었기에 해양 애호가라면 필수 코스였다!소은정과 한유라는 굳게 닫힌 출입문 앞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오늘은 휴관인 거 같은데, 잘 됐다. 그럼 우리 돌아갈까?”한유라는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하지만 마이크는 콧방귀를 뀌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그의 순수한 눈동자에는 집요함이 서려 있었다.“아빠한테 전화해서 연락 좀 해달라고 했어요!”그가 할 수 없는 일은 모두 전동하의 몫이었다.그러자 소은정은 그를 말리며 말했다.“잠시만, 내가 연락하면 돼.”아무래도 그녀가 주최자였기에 그녀가 나서서 하는 게 맞았다.그녀는 곧바로 우연준에게 전화를 걸어 간단히 설명했고, 5분이 채 되지도 않아 아쿠아리움 문이열렸다.소은정은 매우 놀라 고개를 내저었고, 역시 돈이면 안 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한 책임자가 와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가며 말했다.“소 회장님, 여기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 오늘 휴관이라서 사람이 없으니 시끄러울 일
소은정과 한유라는 헤엄쳐 다니는 거대한 고래에게는 관심이 없어 조용한 곳을 찾아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곁에 있던 안내원은 이곳의 커피가 두 아가씨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이때 소은정이 눈동자를 한 번 굴리더니 말을 꺼냈다.“여기는 물고기가 없네?”정말 너무 마음에 들었다!“맞습니다, 아가씨. 이곳은 갯가재 관이라고, 별로 희귀한 종은 아니어서 참관하는 사람이 적지요, 한 번 보시겠어요?”갯가재?안내원의 기대 섞인 시선을 본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구경하기보다는 먹고 싶은 마음이 역력했다.곧 안내원이 주위의 불빛을 끄자 특수 재질로 되어 있던 바닥과 벽은 금세 푸른빛으로 물들여졌고, 매우 어둡고 깊어 보이는 것이 마치 바다의 환경과 같았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자, 안에서는 갯가재들이 헤엄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식탁 위의 갯가재들과는 달리 주변을 헤엄치는 모습이 매우 귀여웠고, 품종에 따라 크기가 다르고 단순하고 소박하며 고귀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어떠한 종은 밝은 초록빛에 끝부분은 선명한 색을 띠어 사람을 매혹시켰고, 몸에는 각기 다른 무늬를 지니고 있었다.그들은 모두 깊고 끝없는 자갈투성이의 바다 밑에서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소은정과 한유라는 불이 꺼지는 그 순간, 마치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 있는 듯했고, 앞에 있는 벽은 보이지 않았다.머리 위, 발아래와 벽 쪽 모두 바닷속과 똑같은 환경이었고, 그녀들이 방금 들어온 긴 복도는 해저 터널이 되었다.이렇게 입체적으로 둘러싸인 장면은 순간적으로 사람을 울린다.머리 위에서는 해초와 산호까지 떠다니고 있었고, 대해의 신비로움을 담고 있는 출렁이는 바닷소리도 들려왔다.과학기술이 더해지니 그녀들이 본 것은 마치 깊이가 만연한 바다 밑 바닥처럼 끝이 없었다.한유라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이게 갯가재 전시야?”안내원은 곧바로 전문적인 해설을 시작했다.“갯가재는 자하류로 중생대 쥐라기에 기원했는데……”한유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