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은 당황했음을 감추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분명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은 얼굴만 아는 사이, 일로써 엮인 이들일 텐데. 왜 전동하는 소은정을 특별히 여기는 거지? 이렇게 큰 프로젝트를 저리도 가볍게 내준다고?박수혁은 프로젝트를 못 따낸 것 보다도 전동하가 소은정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가 더욱 신경 쓰였다.전동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한 것은 소은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질 않았다. 그가 장난 칠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이 공간에 있는 모두가 알 것이다.지금 소은정의 머릿속에는 왜? 라는 단 한마디의 의문만 들 뿐이었다.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표정을 읽어 보려 해도 그는 여전히 진중한 표정일 뿐이었다. 마이크가 자신을 유독 좋아하기 때문일까?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말을 끝맺어버린 전동하에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자리를 뜨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이 모임은 간결하고 풍격적으로 막을 내렸다.이 공간에 남은 것은 소은정 자신과 박수혁 둘뿐이었다. 소은정은 전동하의 입장을 확신 받기 위함이었고, 박수혁은 소은정 혼자 이 곳에 두고 떠나기 싫었기 때문이었다.그렇게 남은 두 사람을 보며 웃음을 터뜨리는 전동하였다.“그래요. 은정씨께서 궁금한 게 많으실 거예요. 하지만 빈말이 아니었어요. 후에 SC쪽으로 연락 드릴 겁니다.”“저는 이해가 안 돼서요…. 왜 저희 SC를 고르신 거죠?”전동하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진지한 말투로 대답했다.“전 SC를 고른 게 아니라 당신을 선택한 겁니다.”그에게서는 가식 없는 온화함만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리둥절해 다시금 되물었다.“제가 마이크를 구해줘 서요”“아니요.”전동하는 웃으며 대답해주었다.그 때, 경호원이 다가와 전동하에게 무언가 담긴 봉투를 건네 주었다. 그를 의아해하며 바라보니 전동하는 성급하지 않는 손짓으로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내었다.봉투 안에는 두 장의 사진이 있었으며, 박수혁과 소은정에게 한 장씩 나누어졌
이건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기억, 차마 꺼내보지도 못하는 그런 기억이었다. 터치하는 순간 마음이 약해지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지게 될까 봐...그녀가 남자아이를 향해 달려가는 순간이 포착된 사진, 누가 찍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날 거리의 연기의 내음과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리고 죽음의 공포가 그대로 느껴지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전동하의 웃음소리에 소은정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블랙홀처럼 까만 박수혁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그녀의 영혼을 빨아들일 듯 깊고 매력적인 눈동자에 소은정의 심장이 또 주책맞게 뛰기 시작했다. 마치 세계 최고의 조각가가 하나하나 조각한 듯 완벽한 이목구비, 턱선... 처음 만났을 때 피가 잔뜩 묻어있던 모습과 지금 너무나 멀끔한 그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남자아이를 꼭 안고 있는 소은정, 그리고 그런 소은정을 향해 달려가는 박수혁, 결연한 두 사람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이 일만은 끝까지 숨기려 했는데 어쩔 수 없네...그리고 놀랍게도 소은정이 몸을 바쳐 지키려 했던 아이가 바로 마이크였다. 황금빛 곱슬머리, 똘망똘망한 눈매, 3년이 흘렀지만 귀엽고 잘생긴 모습만은 그대로였다.사진을 통해 자신을 구해주는 소은정의 모습을 확인한 마이크도 자신을 구해주는 박수혁의 모습을 다시 떠올린 소은정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그 침묵을 깬 건 바로 전동하였다.“죄송합니다. 박 대표님과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래서 태한그룹과 협력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죠. 사실 3년 전, 누군가 제 아이를 구해 주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워낙 정신이 없어 그분을 찾지 못했죠. 그런데 이번에 귀국한 뒤 아들이 소은정 대표님을 먼저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소 대표님에 관해 조사를 하기 시작했죠. 두 분 모두 제 아들의 은인이시지만 그래도 전... 가장 먼저, 직접적으로 마이크를 지키신 소은정 대표님께 더 보답하고 싶군요. 소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제 아들은 아마...”
마이크는 입술을 쭉 내밀고 애교를 부렸다. 그의 맑은 눈동자와 기대에 찬 입꼬리는 사람을 녹이는 재주가 있었다.“마이크, 예쁜 누나는 일이 있으니, 넌 올라가서 숙제해!”전동하는 시계를 한 번 보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마이크에게 말했다.마이크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스럽게 보았다.‘숙제 한번 안 한다고 어디 덧나나!’소은정은 사진에 있던 남자아이가 벌써 이렇게 컸구나 하고 놀라워하며 사진으로 본 아이라 그런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그의 곱슬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그를 바라보았다.“누나랑 내일 또 놀까?”마이크는 실망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눈만 끔벅거렸다. 그러다 마이크가 갑자기 소은정의 옷을 잡아당겨 두 팔로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싫어! 싫어! 난 예쁜 누나랑 같이 잘 거야! 숙제하기 싫어! 난 에쁜 누나 따라서 집에 갈 거야! 아빠는 혼자 늙어 죽어!”그의 통통 튀는 맑은 목소리를 듣자 소은정은 순간 그를 데리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마이크는 이렇게 애교를 떨면 예쁜 누나랑 같이 있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전동하는 그의 속셈을 눈치채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손을 허공에 휘휘 저으니 건장한 경호원이 마이크에게 다가왔다. 경호원은 한 손으로 마이크를 들어 어깨에 멨다. 마이크는 맥없이 경호원의 어깨에 매달려 바둥거렸다. “아아아아! 살려주세요! 예쁜 누나! 예쁜 누나랑 평생 같이 살 거야!”마이크는 고함 몇 마디 지르더니 계단 위로 사라졌다.“소은정 아가씨, 박 사장님 조심히 가세요.”전동하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었다. 소은정은 시선을 거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예. 안녕히 계세요.”문 앞에는 박수혁의 운전기사가 차를 대기하고 있었다.박수혁은 그녀보다 먼저 걸어가더니 뒷좌석의 오른쪽 문을 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태워다 줄게.”소은정은 그제야 자신이 마이크를 따라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도 가져오지 않았고, 택시를 잡기 쉬운 위치도 아니었다.
집에 도착한 소은정은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따냈는데도 불구하고 텐션이 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과거의 일을 마주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걸 수도 있다.깊은 밤, 그녀가 침대에 누워 사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 알림음이 울렸다.그녀는 초조한 눈빛으로 휴대폰을 들어 누구인지 확인했다. 박수혁이다.그녀의 눈살이 한순간에 찌푸려졌다. -소은정 네가 나를 구해줘서 정말 기뻐.-다른 사람이 아니라 소은정이 자신을 구해줘서 기쁜 박수혁이었다.소은정은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와 따듯한 우유 한 잔을 따라 마신 후 다시 위층으로 올라왔다.‘과거는 과거일 뿐, 다시 오지 않을 시간에 왜 이렇게 얽매여 있는 거야?’오늘은 정말 푹 자야겠다.규모가 큰 프로젝트여서 그런지 하룻밤 사이에 소문이 떠들썩하게 돌기 시작했다. 여러 큰 그룹들이 연달아 SC그룹에게 호의를 표했고, 규모가 큰 프로젝트이니 발이라도 담그려고 난리가 났다.잠에서 깬 소은정이 휴대폰을 켜자 안에는 셀 수 없는 많은 메시지들이 와있었다. ‘무음으로 해두고 자길 잘했네.’소호량은 으쓱거리며 방으로 들어와 “마마, 모두가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말했다.소은정은 한유라에게 답장을 한 후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은 후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오빠?”소은호가 차가운 표정으로 거실에 서 있었다. 그는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녀가 내려오는 것을 보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야 너 간도 크다!”소은정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소찬식은 신문을 들고 식탁에 앉더니 그 둘을 보고 씩 웃었다.“프로젝트 진행을 어떻게 한 거야? 그거 원래 큰형이랑 얘기가 오갔던 건데, 이렇게 갑자기 태세 돌변?”소은정은 한숨을 내쉬더니 그들에게 어제의 일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모두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은해만 빼고. 소은해는 고개를 저으며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전동하 아들도 저렇게 컸다니, 보아하니 다들 글렀어!”“뭐래 꺼져!”소찬
강상원 같은 작자는 회사에 실제 아무 도움도 안 되면서 이득을 제일 많이 보려고만 하는 기생충 같은 사람이다. 저런 작자를 그대로 두면 회사에 안 좋은 영향만 끼칠 것이다.‘겁도 없지 밥줄로 내기를 하다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강상원을 순순히 놓아줄 수는 없었다.강상원의 얼굴이 벌게지더니 소은호를 쳐다보았다. “사장님, 이게 다 우리 회사를 위해서 그런거죠. 저와 강치훈도 회사가 이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어서……, 더군다나 소은정 씨가 이 프로젝트를 따냈다고 하니 누구보다 기쁘다고요!”소은호가 차가운 얼굴로 강상원을 보았다.“그러니까, 그냥 어영부영 넘어가자는 말입니까?”그의 말 한마디에 회의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강상원을 쳐다보니, 그는 난처한 듯 얼굴이 한층 더 달아올랐다.‘내 밥줄 절대 못 뺏겨!’그는 이렇게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하지만, 소은호의 냉정한 태도에는 인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강상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소은정을 쳐다봤지만, 그녀도 소은호를 만류할 기색이 없었다.그는 이를 꽉 깨물고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다.“나가라면 나가야 해? 나 또한 SC그룹의 주주야! 회장님께서 허락했어? 난 절대 못 나가!”강상원은 뻔뻔한 표정으로 씩씩거렸다. 소은정은 눈썹을 치켜들고 웃었다. “그래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바로 소찬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굳은 표정의 강상원은 식은땀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뚜… 뚜… 어 은정아 점심에 낚시하러 갈까? 아니면 밥 먹으러 올래?”경쾌한 소찬식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밖에 나와있는지 통화에 바람 소리가 들렸다. 소은정은 어색한 상황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아버지, 저 지금 회의중이예요. 방금 강상원 씨가 우리 SC그룹에서 나가게 됐는데, 아버지 동의 없이는 나갈 수 없다고 하네요? 아버지 의견은 어떠세요?”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는 강상원을 힐끗 흘겨보았다.강상원은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 연신 입에
당황스러운 눈빛의 한유라가 먼 곳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이 외국 꼬마는 너무 귀엽지만, 손에 들린 국화꽃이 영 눈에 거슬렸다.‘이게 무슨 의미지? 이제 어린아이도 소은정을 얕잡아 보기 시작한건가?’한유라가 곰곰이 생각을 하던 찰나 소은정이 급히 건물에서 빠져나와 그녀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어디 가는 길에 들렀어?”한유라는 금발 꼬마의 등장에 당황한 듯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마이크는 소은정을 보고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의 허벅지를 껴안았다. 그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예쁜 누나! 너무 보고 싶었어……”이 광경을 보고 한유라는 깜짝 놀라 망부석처럼 서있었다. 소은정은 온화하게 웃으며 마이크의 귀여운 얼굴을 어루만졌다. “누나도 마이크 보고 싶었어!”마이크는 손에 들린 국화꽃을 내밀었다. “이건 예쁜 누나가 제일 좋아하는 국화꽃!”소은정은 복잡한 눈빛으로 억지웃음을 지었다. ‘내가 언제 국화꽃을 좋아한다고 했지? 어휴, 어린애의 마음을 어찌 알겠어…….’한유라는 이 광경에 놀란 듯 한참을 서있었다. ‘소은정은 초롱꽃을 좋아했는데, 언제부터 국화꽃을 좋아하게 된 거지?’그녀는 천천히 걸어와 소은정 앞에 섰다. “은정아, 너 언제부터 남동생이 생겼어? 혹시 네 아버지의 사생아?”그녀는 누가 들을까 무서워 조심스럽게 물었다.소은정은 그녀를 보며 “이 유전자가 우리 아빠 씨라고? 가당키나 해?”라고 되물었다.한유라가 그의 아버지인 소찬식의 얼굴을 떠올렸다. ‘200% 절대 불가.’전동하의 얼굴형은 아시아에 가까웠지만 그도 이탈리아 혼혈이었고, 그의 부인은 100% 외국인이기에 마이크 같은 금발의 파란 눈을 낳을 수 있었다. 한유라는 납득이 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유전자로는 절대 불가능이지.’소씨 집안은 전적으로 어머니의 공이 크다. 어머니의 유전자가 없었더라면 상상하기도 싫다.마이크가 한유라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래도 예쁜 누나의 친구라고 예의를 갖춰 상냥하게 대했다. 그의 파란
세 사람은 호기롭게 상가로 들어섰고, 한유라는 물건을 사고 싶은 대로 짚으며 돈을 지불한 뒤사람을 시켜 집으로 배달시켰다.소은정이 옷을 입어보고 있자 마이크는 거울 옆 벤치에 앉아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와, 너무 예쁘다……”“이 옷 너무 잘 어울려요, 그 누구도 누나 보다 예쁘진 않을 거예요!”“누나 선녀 같아요, 정말 너무 아름다워요!”……소은정은 칭찬을 듣자 입이 귀에 걸리며 기분이 매우 좋아져 다 사버렸다.뒤 편에 서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한 한유라는 아무 말이 없었다.이 사람은 말하는 것도 이렇게 달콤하다니,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하지만 소은정에게만 그렇다는 것!옆에 있던 직원은 자신이 할 말을 마이크가 다 해버려서 말 한마디도 보태지 않았다.설마 급여가 깎이진 않겠지?아쿠아리움.쇼핑을 다 한 뒤, 마이크는 아쿠아리움에 가서 놀고 싶었다. 비록 그는 해외에 개인 아쿠아리움이 있었고, 각종 해양 생물들을 볼 수 있었지만 송화시에는 국내에서 제일 큰 아쿠아리움이 있었기에 해양 애호가라면 필수 코스였다!소은정과 한유라는 굳게 닫힌 출입문 앞에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오늘은 휴관인 거 같은데, 잘 됐다. 그럼 우리 돌아갈까?”한유라는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하지만 마이크는 콧방귀를 뀌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고, 그의 순수한 눈동자에는 집요함이 서려 있었다.“아빠한테 전화해서 연락 좀 해달라고 했어요!”그가 할 수 없는 일은 모두 전동하의 몫이었다.그러자 소은정은 그를 말리며 말했다.“잠시만, 내가 연락하면 돼.”아무래도 그녀가 주최자였기에 그녀가 나서서 하는 게 맞았다.그녀는 곧바로 우연준에게 전화를 걸어 간단히 설명했고, 5분이 채 되지도 않아 아쿠아리움 문이열렸다.소은정은 매우 놀라 고개를 내저었고, 역시 돈이면 안 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한 책임자가 와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가며 말했다.“소 회장님, 여기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마침 오늘 휴관이라서 사람이 없으니 시끄러울 일
소은정과 한유라는 헤엄쳐 다니는 거대한 고래에게는 관심이 없어 조용한 곳을 찾아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곁에 있던 안내원은 이곳의 커피가 두 아가씨의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봐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이때 소은정이 눈동자를 한 번 굴리더니 말을 꺼냈다.“여기는 물고기가 없네?”정말 너무 마음에 들었다!“맞습니다, 아가씨. 이곳은 갯가재 관이라고, 별로 희귀한 종은 아니어서 참관하는 사람이 적지요, 한 번 보시겠어요?”갯가재?안내원의 기대 섞인 시선을 본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구경하기보다는 먹고 싶은 마음이 역력했다.곧 안내원이 주위의 불빛을 끄자 특수 재질로 되어 있던 바닥과 벽은 금세 푸른빛으로 물들여졌고, 매우 어둡고 깊어 보이는 것이 마치 바다의 환경과 같았다.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자, 안에서는 갯가재들이 헤엄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식탁 위의 갯가재들과는 달리 주변을 헤엄치는 모습이 매우 귀여웠고, 품종에 따라 크기가 다르고 단순하고 소박하며 고귀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어떠한 종은 밝은 초록빛에 끝부분은 선명한 색을 띠어 사람을 매혹시켰고, 몸에는 각기 다른 무늬를 지니고 있었다.그들은 모두 깊고 끝없는 자갈투성이의 바다 밑에서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소은정과 한유라는 불이 꺼지는 그 순간, 마치 깊고 어두운 바닷속에 있는 듯했고, 앞에 있는 벽은 보이지 않았다.머리 위, 발아래와 벽 쪽 모두 바닷속과 똑같은 환경이었고, 그녀들이 방금 들어온 긴 복도는 해저 터널이 되었다.이렇게 입체적으로 둘러싸인 장면은 순간적으로 사람을 울린다.머리 위에서는 해초와 산호까지 떠다니고 있었고, 대해의 신비로움을 담고 있는 출렁이는 바닷소리도 들려왔다.과학기술이 더해지니 그녀들이 본 것은 마치 깊이가 만연한 바다 밑 바닥처럼 끝이 없었다.한유라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이게 갯가재 전시야?”안내원은 곧바로 전문적인 해설을 시작했다.“갯가재는 자하류로 중생대 쥐라기에 기원했는데……”한유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