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화 교훈

Author: 고기가 좋아
last update Last Updated: 2022-07-09 23:24:51
실망과 고통에 잠식되어 몸도 마음도 무거웠지만 소은정은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법원으로 향했다.

시간이 1분, 1초 흐르고, 그 사이 박수혁은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왔지만 전부 무시해 버렸다.

소은정은 창백한 얼굴로 하염없이 그를 기다렸다. 1시간쯤 지났을까? 박수혁은 잔뜩 굳은 얼굴로 법원 앞에 나타났다. 소은정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그래, 이번 달에 유난히 많이 부탁했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나도 충분히 보상은 해줬잖아.”

“이혼하자...”

소은정은 고개를 들어 그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했다. 솔직히 지금 그녀의 기분으로는 더 이상 박수혁과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

박수혁은 소은정이 왜 갑자기 이혼을 요구하는지 이유조차 제대로 모르는 눈치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입씨름을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겠지.

소은정은 잘생긴 박수혁의 이목구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만한 얼굴, 하지만 이 얼굴로 한 번도 그에게 웃어주지 않았다.

지금까지 소은정은 행여나 박수혁의 심기를 건드릴까 조심조심,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그런데 이혼을 결정하고 나니 굳이 왜 그렇게 비굴하게 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더 이상 박수혁이 두렵지 않았다.

소은정의 담담한 표정을 보며 박수혁은 짜증이 치밀었다. 차라리 돈을 더 요구했다면 얼마든지 들어줬을 것이다. 그런데 이 건방진 태도는 뭐지? 이 정도 돈이라면 굳이 소은정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자신의 피를 내놓을 사람이 수두룩할 텐데 말이다.

“소은정, 후회하지 마!”

“후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바로 당신이랑 결혼한 거야.”

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왜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된 걸까?

박수혁과 사는 동안 그녀의 몸도 마음도 전부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이제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다! 결국 박수혁도 소은정의 의견을 받아들였는지 별말 없이 법원으로 향했다. 형식적인 접수 절차가 끝나고 단 몇 분 만에 3년간 이어진 결혼생활이 끝나버렸다.

미리 각오한 일임에도 이혼조정 서류를 받아든 순간 새삼스레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법원에서 나온 박수혁은 더 이상 그녀 따위는 제대로 쳐다볼 가치도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병원으로 가자.”

역시, 이 남자는 마지막까지 그녀를 이용해 먹을 생각뿐이다.

소은정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박수혁, 그 여자가 죽든 말든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야. 지금부터 내 피 한 방울도 주지 않을 거야.”

소은정의 말에 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쏘아붙였다.

“민영이가 지금 얼마나 위독한 상황인데. 이런 식으로 저주를 해? 애초에 너랑 결혼하는 조건이 그거였잖아. 언제든지 필요할 때면 피를 내놓는 거 말이야.”

박수혁의 말이 비수처럼 소은정의 마음에 꽂혔다.

그렇다. 처음부터 보잘것없는 그녀가 박수혁과 결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그녀의 희귀한 혈액형 덕분이었다. 서민영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헌혈을 하겠다고 분명 약속했었지.

소은정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눈앞의 남자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3년 동안 질리도록 봐왔던 차가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박수혁에게 그녀란 존재는 살아있는 혈액 창고일 뿐. 무슨 대접을 더 바랐던 걸까?

“박수혁, 박씨 집안의 며느리, 박수혁의 아내, 이런 타이틀에 이제 관심 없어. 그래, 마지막으로 해줄게. 마침 나도 그 여자한테 볼일이 있으니까.”

소은정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남긴 채 자리를 떴다.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바뀐 것 같은 소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박수혁은 짜증이 치밀었다. 그가 완벽하게 통제해 왔던 여자가 이제 벗어나려 하고 있다.

3년 동안 살면서 박수혁은 자신이 소은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결혼 전의 헌신적인 사랑, 결혼 후에 보여주던 순종적인 모습, 그나마 박수혁이 소은정을 곁에 둔 이유이기도 했다.

요즘 서민영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져 헌혈을 요구하는 횟수가 많아졌다. 이는 박수혁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군말 없이 따라나서는 소은정을 보며 어떻게든 보상을 해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목적이야 어떻든 3년간 소은정은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는 아내였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이혼이라니.

물론, 이혼 따위가 그에게 타격을 줄 일은 없지만 말이다.

박수혁은 마음속에 드리운 짜증을 떨쳐내려 애썼다. 됐어. 어차피 힘들어지면 다시 돌아와서 애원할 테니까.

......

소은정은 박수혁을 남겨두고 택시를 잡아 훌쩍 떠나버렸다. 병원에 도착한 소은정은 곧바로 서민영이 입원해 있는 VIP 병실로 들어섰다.

의사, 간호사들이 잔뜩 모여 서민영을 상전처럼 모시고 있었다.

소은정이 병실에 들어서자 서민영의 눈동자에 갑자기 생기가 어렸다.

“은정 씨, 왔어? 화난 건 아니지? 미안해.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자꾸 신세를 지게 되네. 은정 씨도 힘들지?”

소은정은 차가운 얼굴로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 문자, 당신이 보낸 거지?”

확신이 담긴 질문이었다.

그러니 굳이 대답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소은정은 손을 들어 서민영의 뺨을 힘껏 내리쳤다.

“아악!”

서민영은 뺨을 감싸 쥔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Related chapters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3화 복수

    이때 어느새 달려온 박수혁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소리쳤다.“소은정!”“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남자의 목소리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빨리도 달려오셨네. 내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까 봐 무서웠나 보지?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던 서민영은 박수혁이 나타나자 바로 눈물을 글썽이더니 변명을 시작했다.“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래? 은정 씨, 뭔가 오해가 있는 게 아닐까?”소은정, 이 여자가 드디어 미쳤나.감히 박수혁 앞에서 나를 때려?하지만 소은정에게 그런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모르는 척, 순진한 척 연기하지 마. 네가 보냈다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소은정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매서운 표정으로 반박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미리 프린트해 놓은 문제의 사진을 서민영의 얼굴에 던져버렸다.사진을 발견한 박수혁의 얼굴에도 보기 드문 당혹스러움이 서렸고 서민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어제는 박수혁에게도 유난히 버거운 날이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서민영의 곁을 지키기 위해 병원에 왔었고 잠깐 눈을 붙였었는데. 언제 이런 사진이 찍힌 거지?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병실에는 서민영뿐이었으니까. 서민영이 일부러 사진을 찍어 소은정에게 보낸 것이겠지.순진한 척, 착한 척하던 서민영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예전이라면 박수혁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겠지만 이혼도장까지 찍은 마당에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소은정은 차갑게 웃었다.“내가 말했잖아? 따로 볼일이 있어서 온 거라고. 서민영, 정신 차려.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하는 사람을 상간녀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 세 사람 사이에서 그 상간녀는 바로 너고. 어쨌든 축하해. 원하는 대로 됐으니까. 앞으로 두 사람 잘해 봐.”박수혁도 바보가 아니니 그 사진이 누가 찍은 건지, 어떻게 소은정에게까지 전달된 건지 단번에 눈치챘고 가슴에 뭐가 박힌 듯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박수혁은 고개를 들어 서민영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차갑고 매정한

    Last Updated : 2022-07-09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4화 다시 시작

    왼쪽 다리에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는 모습이었다. 당황한 서민영은 버둥거리며 다리를 숨기려 했지만 소은정은 결국 그 붕대를 풀어냈다.순간, 병실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살짝 긁힌 듯 보이는 작은 상처를 보며 소은정은 코웃음을 쳤다.“많이 다쳤네? 내가 좀 더 늦게 왔으면 어쩔뻔했어? 상처가 보이지도 않았겠어”“은정 씨... 수혁아, 그런 거 아니야. 나 몸이 약하잖아. 수혈을 받으면 더 빨리 낫는다고 해서...”박수혁의 시선을 의식한 서민영이 다급하게 소리쳤다.“한 달에 큰 부상을 네 번이나 당해? 그냥 내 피를 다 뽑아가겠다고 말해.”소은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뭐, 앞으로 그럴 기회도 없겠지만. 박수혁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연기는 그때 다시 시작해.”말을 마친 소은정은 단호하게 병실 문을 나섰다.하지만 방금 전, 당당하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이 세상 모두에게 버림받은 듯한 느낌에 몸도 마음도 고통스러웠다.북받치는 서러움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소은정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오빠...”소은정의 목소리에 수화기 저편에 있는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침착하게 물었다.“어디야? 데리러 갈게.”몇 분 뒤,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병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남자는 어느새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소은정을 안고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한편, 박수혁은 주치의 멱살을 잡은 채 밖으로 끌고 나오더니 최대한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뭐? 다리 부상이 심각해? 겨우 저 정도로 수혈을 해? 대학병원 수준이 겨우 이 정도야?”말투에 담긴 분노와 한기에 의사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연이어 이어지는 수혈에 점점 창백해져 가던 소은정의 얼굴이 떠오르며 박수혁의 마음속에도 죄책감이 피어올랐다.박수혁의 포스에 겁을 먹은 의사는 결국 모든 걸 실토했다.“민

    Last Updated : 2022-07-09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5화 비난

    소찬식이 앞으로 다가가자 침대에서 일어난 소은정은 그의 품에 안겨 모든 억울함을 쏟아냈다.딸을 품에 안은 소찬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3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던 딸이 미우면서도 부쩍 수척해진 모습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어려서부터 고생 한번 하지 않고 자란 아이가 박수혁에게 빠져 그 집안사람들의 비난과 멸시를 받았다니.소은정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진작 박씨 가문을 풍비박산내고 박수혁 그 자식도 다리를 분질렀을 것이다.“은정아, 네가 말했었지? 3년이 지난 뒤에도 박수혁이 널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가업을 이어받기로. 이제 약속을 지켜야지?”소찬식은 딸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한참을 울고 난 뒤에야 소은정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이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니까.”“사랑”을 위해 가족을 버렸다. 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재벌집 아가씨가 사랑에 빠져 모두가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결혼을 선택했다. 마치 불길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처럼 말이다.고통스럽지만 이제, 그 남자를 마음속에서 지워야 할 때다.“그래. 오빠가 도와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단 회사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해. 그리고 좋은 날을 선택해 환영 파티를 열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네가 누군지 말할 거야.”그가 가장 아끼는 딸이 드디어 그의 사업을 이어받으려 한다니. 소찬식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소은정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은정의 베프 한유라는 어디에서 소식을 들었는지 부리나케 소씨 저택으로 달려왔다.몇 년 만에 보는 친구의 모습, 한유라와 소은정은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은정아,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이혼했다며? 잘했어!”3년 전, 그녀의 신분을 숨기고 박수혁과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심하게 반대했던 사람이 바로 한유라였다. 하지만 소은정은 결국 모든 걸 버리고 박수혁을 택했고 한유라와도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한유라의 얼굴을 본

    Last Updated : 2022-07-09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6화 훔쳐보기

    무례한 이민혜의 말에 한유라는 더 이상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소은정, 3년 동안 헌신하면서 산 결과가 겨우 이거야? 구질구질? 이런 말을 들으면서 3년을 지냈던 거야? 넌 참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 아니야!”말을 마친 한유라는 이민혜를 밀쳤고 그 충격에 이민혜는 비틀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저기, 아줌마, 내 말 잘 들어요. 은정이만 아니었으면 이깟 집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깟 돈 몇 푼 좀 있다고 유세는. 아줌마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까 꼭 교양 없는 졸부네요. 박씨 집안 수준 대충 알겠어요. 난 안 나갈 거니까 때리든 말든 알아서 해요. 나이 든 아줌마 주제에 나랑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한유라의 말에 이민혜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소은정과 한유라를 번갈아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너... 너희들이 감히! 소은정, 너 정말 집에서 쫓겨나고 싶어?”하지만 소은정은 전처럼 비굴하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로 전 시어머니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아니요, 쫓아내실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나갈 거니까요. 오늘 온 것도 짐 챙기러 온 거예요.”처음 보는 소은정의 모습에 이민혜는 잔뜩 충격을 먹었지만 소은정은 개의치 않고 바로 안방으로 걸어갔다.과거의 그녀는 참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때문에 자존심이며 존엄이며 모두 내려놓았다니. 3년 동안 이민혜는 그녀를 돈을 위해 자기 아들을 꼬인 불여우 같은 여자라며 그녀를 모욕했었다. 돈으로 사람의 계급을 나누는 저딴 여자한테 굽신거리며 살다니. 하지만 이제 그녀도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소은정은 중요한 서류만 몇 가지 챙기고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한편, 한유라와 이민혜는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며 기싸움 중이었다. 소은정이 방에서 나오자 한유라가 의기양양해서 물었다.“다 챙겼어?”“그래, 이제 가자.”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일 수혁이한테 전부 다 이를 거야. 이대로 넘어갈 줄 알았다면 오산이야. 울면서 다시

    Last Updated : 2022-07-09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7화 댓글 테러

    한편,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한유라는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아까 그 아줌마 도대체 뭐야? 어른만 아니었으면 정말 때렸을 거야.”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소은정은 싱긋 웃더니 말했다.“됐어. 그런 사람한테 왜 화를 내. 어차피 앞으로 다시 볼 사람도 아닌데.”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이야기꽃을 피우며 집으로 돌아갔다. 기업 경영으로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소은호가 소파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별거 아닌 동작임에도 고급스러움이 배어 나오는 모습이었다.3년 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소은정은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은호에게 달려가며 바로 애교를 부렸다.“오빠, 드디어 집에 왔네. 저번에 병원까지 날 데리러 왔으면 좀 더 있다가 가지. 왜 바로 가버렸어?”소은호는 여동생의 애교를 그대로 받아주었다. 방금 전까지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중요한 미팅이 있었어. 그래서 끝나자마자 바로 왔잖아. 자, 선물이야.”소은호의 습관이었다. 출장이나 여행을 갔다 올 때면 항상 여동생에게 선물을 안기곤 했었다. 국내에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한정판 핸드백, 액세서리들, 전부 억대를 육박하는 고가의 물건들이었지만 하나뿐인 여동생을 위해서라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물론, 한유라도 함께 있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는 센스 있게 그녀에게도 샤넬 향수를 준비했다. 항상 털털하고 장난기 넘치는 한유라는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고마워요.”하지만 여동생에게 모든 시선을 빼앗긴 소은호는 한유라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3년간 어떻게 지냈는지 그도 대충 들어 알고 있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로 소중한 여동생이 그런 고초를 당하다니.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하지만 예리한 소은정은 어울리지 않게 수줍어하는 한유라의 표정을 의식하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오빠를 좋아하는 건가? 뭐야? 그럼 유라가 새 언니가 되는 거야?’소은정은 벌써 이런저런 상상을 시작했다.“

    Last Updated : 2022-07-09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8화 사과

    그녀가 올린 사진은 바로 서민영과 박수혁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함께 잠든 모습만 봐도 두 사람의 사이가 보통 사이가 아님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보낸 사진이 오히려 그녀를 보호하는 무기가 되다니.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박수혁 씨:고가의 목걸이 “아름다운 꿈”이 절도 당했다는 소식에 저도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밤새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탐정분께 목걸이의 행방 조사에 대해 의뢰했고 그 결과 지금 목걸이는 대서양 J국 태한 그룹 장녀 박예리 씨한테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예리 씨는 해외 카지노에서 게임 도중 자금 부족으로 인해 몰래 목걸이를 훔쳐 간 것으로 추측됩니다. 해명글과 함께 제 탐정님께서 보낸 사진을 첨부합니다. J국 카지노 게임 테이블 위, “아름다운 꿈”, 박예리 씨의 모습을 모두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소은정이 사진을 업로드한 뒤 사건은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약자의 위치였던 소은정이 단 하룻밤 사이에 태한 그룹의 입장을 완벽하게 반박할 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나타나다니.그리고 별다른 언급은 없었지만 따로 첨부한 박수혁과 서민영의 사진을 통해 사람들은 두 사람의 파경 원인이 박수혁의 외도 때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도대체 누가 나쁜 사람이란 말인가?군더더기 하나 없는 해명글과 완벽한 증거에 네티즌들의 여론은 또 달라지기 시작했다. 소은정은 누명을 완벽하게 벗을 수 있었고 유튜버들도 재벌가 갑질이라는 자극적인 주제로 태한 그룹을 비난하기 시작했다.한편, 박수혁은 심란한 마음에 친구들과 함께 술이나 한 잔하고 있었다. 그런데 밤새 이렇게 많은 일이 벌여졌을 줄이야. 태한 그룹의 주가 또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이른 아침, 박수혁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사무실에 도착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비서 이한석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누가 감히 회사 공식 계정으로 그딴 루머를 퍼트리라고 한 거지?”무시무시한 표정을 짓던 박수혁이 이를 악물

    Last Updated : 2022-07-09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9화 파티

    짜증스레 전화를 끊은 박수혁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혹시나 해서 소은정한테도 전화를 걸었지만 들리는 건 전화기가 꺼졌다는 음성뿐, 그의 연락처를 차단이라도 했나 보다.박수혁은 거칠게 휴대폰을 책상에 던져버리더니 이한석을 향해 말했다.“소은정, 지금 어디 있어?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 15분 준다.”대표의 무리한 요구에 이한석은 지금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더 깊이 숙이며 말했다.“대표님, 사모님 행방은 한참 전부터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가 없는걸 보면 A시를 떠난 게 아닐까요?”비서의 보고에 박수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30분 후, 태한 그룹은 소은정을 모함했던 글을 지우고 모든 게 오해였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하지만 사과문 하나로 이미 돌아선 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박수혁은 소은정이 SNS에 업로드한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한 글이었음에도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오늘은 남편이 일찍 집에 와서 기분이 좋아요...”“비가 오네요. 우리 남편 우산은 챙겼으려나?”“남편이 직접 데리러 와줬어요.”“남편을 위해 준비한 아침...”......뭔가에 홀린 듯 모든 글을 읽은 박수혁은 그가 형식뿐이라 생각했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은정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소은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한 번도 그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박수혁을 더 괴롭게 만들었다.지금까지 업로드한 수많은 글에서 소은정 자신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건 남편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오늘 아침 8시, 마지막으로 업로드한 딱딱한 글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그들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듯한 느낌에 왠지 공허해졌다. 그녀가 올린 글들을 다시 확인하려고 스크린을 올리는 순간, 페이지에 렉이 걸렸다. 새로

    Last Updated : 2022-07-09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10화 버림받은 여자

    파티장은 오늘 파티의 규모와 테마에 맞게 번쩍이는 인테리어로 최대한 고급스러움을 어필하고 있었다. 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이름만 대도 알만한 정도의 유명 인사들이었다.파티에 참석하면 박수혁을 만날 거란 걸 소은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을 내려놓은 그녀의 마음에 박수혁은 더 이상 그 어떤 파장도 일지 못했다.박수혁에게 전처가 있다는 건 다들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한 번도 공식적인 장소에 함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데다 “절도 스캔들”로 들썩거릴 때도 완벽한 보안 덕분에 소은정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유출되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그저 소은정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박수혁의 옆에 서 있는 서민영을 본 순간, 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빨리 그 옆자리를 꿰찰 줄은 몰랐는데. 대단한걸?그런 동생이 신경 쓰였는지 소은호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겁먹지 마. 오빠가 있잖아.”하지만 소은정은 더 밝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겁은 저쪽에서 먹어야죠.”이제 그녀는 지켜야 할 것이 없다. 지킬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두려움도 없기 마련이다. 소은호와 소은정은 여유롭게 박수혁에게 다가갔다. 전 매형과 전 처남이라는 미묘한 관계,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과찬이십니다. 저야말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두 사람은 형식적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한편, 박수혁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은호 옆에 있는 여자에게 꽂혀있었다.소은호의 옆에서 눈부시고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 빛내주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에 그는 눈을 뗄 수 없었다.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모습의 소은정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편안하면서도 위험한 기분이 들었다. 치명적인 매력을 흘리는 그녀를 그는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곁을 떠나 소은호에게 간 걸까?소은호와는 무슨 사이인 걸까?달라진 모습에 대한 놀라움, 그

    Last Updated : 2022-07-09

Latest chapter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2631화 행복한 결말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2630화 새봄이와 준서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2629화 기억이 안 나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2628화 새봄이의 남자친구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2627화 사건의 결말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2626화 사고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2625화 그녀는 원하지 않았다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2624화 헛수고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 이혼 후 나는 재벌이 되었다   제2623화 법을 잘 안다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