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어느새 달려온 박수혁이 무시무시한 얼굴로 소리쳤다.“소은정!”“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남자의 목소리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빨리도 달려오셨네. 내가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까 봐 무서웠나 보지?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짓던 서민영은 박수혁이 나타나자 바로 눈물을 글썽이더니 변명을 시작했다.“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그래? 은정 씨, 뭔가 오해가 있는 게 아닐까?”소은정, 이 여자가 드디어 미쳤나.감히 박수혁 앞에서 나를 때려?하지만 소은정에게 그런 변명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모르는 척, 순진한 척 연기하지 마. 네가 보냈다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소은정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매서운 표정으로 반박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미리 프린트해 놓은 문제의 사진을 서민영의 얼굴에 던져버렸다.사진을 발견한 박수혁의 얼굴에도 보기 드문 당혹스러움이 서렸고 서민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어제는 박수혁에게도 유난히 버거운 날이었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서민영의 곁을 지키기 위해 병원에 왔었고 잠깐 눈을 붙였었는데. 언제 이런 사진이 찍힌 거지?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병실에는 서민영뿐이었으니까. 서민영이 일부러 사진을 찍어 소은정에게 보낸 것이겠지.순진한 척, 착한 척하던 서민영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예전이라면 박수혁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겠지만 이혼도장까지 찍은 마당에 그럴 이유가 없어졌다.소은정은 차갑게 웃었다.“내가 말했잖아? 따로 볼일이 있어서 온 거라고. 서민영, 정신 차려.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하는 사람을 상간녀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 세 사람 사이에서 그 상간녀는 바로 너고. 어쨌든 축하해. 원하는 대로 됐으니까. 앞으로 두 사람 잘해 봐.”박수혁도 바보가 아니니 그 사진이 누가 찍은 건지, 어떻게 소은정에게까지 전달된 건지 단번에 눈치챘고 가슴에 뭐가 박힌 듯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박수혁은 고개를 들어 서민영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차갑고 매정한
왼쪽 다리에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는 모습이었다. 당황한 서민영은 버둥거리며 다리를 숨기려 했지만 소은정은 결국 그 붕대를 풀어냈다.순간, 병실의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살짝 긁힌 듯 보이는 작은 상처를 보며 소은정은 코웃음을 쳤다.“많이 다쳤네? 내가 좀 더 늦게 왔으면 어쩔뻔했어? 상처가 보이지도 않았겠어”“은정 씨... 수혁아, 그런 거 아니야. 나 몸이 약하잖아. 수혈을 받으면 더 빨리 낫는다고 해서...”박수혁의 시선을 의식한 서민영이 다급하게 소리쳤다.“한 달에 큰 부상을 네 번이나 당해? 그냥 내 피를 다 뽑아가겠다고 말해.”소은정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뭐, 앞으로 그럴 기회도 없겠지만. 박수혁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연기는 그때 다시 시작해.”말을 마친 소은정은 단호하게 병실 문을 나섰다.하지만 방금 전, 당당하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았다. 이 세상 모두에게 버림받은 듯한 느낌에 몸도 마음도 고통스러웠다.북받치는 서러움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소은정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오빠...”소은정의 목소리에 수화기 저편에 있는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침착하게 물었다.“어디야? 데리러 갈게.”몇 분 뒤,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병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선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남자는 어느새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소은정을 안고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한편, 박수혁은 주치의 멱살을 잡은 채 밖으로 끌고 나오더니 최대한 분노를 억누르며 물었다.“뭐? 다리 부상이 심각해? 겨우 저 정도로 수혈을 해? 대학병원 수준이 겨우 이 정도야?”말투에 담긴 분노와 한기에 의사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연이어 이어지는 수혈에 점점 창백해져 가던 소은정의 얼굴이 떠오르며 박수혁의 마음속에도 죄책감이 피어올랐다.박수혁의 포스에 겁을 먹은 의사는 결국 모든 걸 실토했다.“민
소찬식이 앞으로 다가가자 침대에서 일어난 소은정은 그의 품에 안겨 모든 억울함을 쏟아냈다.딸을 품에 안은 소찬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3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던 딸이 미우면서도 부쩍 수척해진 모습에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어려서부터 고생 한번 하지 않고 자란 아이가 박수혁에게 빠져 그 집안사람들의 비난과 멸시를 받았다니.소은정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진작 박씨 가문을 풍비박산내고 박수혁 그 자식도 다리를 분질렀을 것이다.“은정아, 네가 말했었지? 3년이 지난 뒤에도 박수혁이 널 사랑하지 않는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가업을 이어받기로. 이제 약속을 지켜야지?”소찬식은 딸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한참을 울고 난 뒤에야 소은정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이제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니까.”“사랑”을 위해 가족을 버렸다. 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재벌집 아가씨가 사랑에 빠져 모두가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 결혼을 선택했다. 마치 불길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처럼 말이다.고통스럽지만 이제, 그 남자를 마음속에서 지워야 할 때다.“그래. 오빠가 도와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일단 회사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해. 그리고 좋은 날을 선택해 환영 파티를 열고 모든 사람들 앞에서 네가 누군지 말할 거야.”그가 가장 아끼는 딸이 드디어 그의 사업을 이어받으려 한다니. 소찬식은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소은정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아직 발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은정의 베프 한유라는 어디에서 소식을 들었는지 부리나케 소씨 저택으로 달려왔다.몇 년 만에 보는 친구의 모습, 한유라와 소은정은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은정아,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이혼했다며? 잘했어!”3년 전, 그녀의 신분을 숨기고 박수혁과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가장 심하게 반대했던 사람이 바로 한유라였다. 하지만 소은정은 결국 모든 걸 버리고 박수혁을 택했고 한유라와도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한유라의 얼굴을 본
무례한 이민혜의 말에 한유라는 더 이상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소은정, 3년 동안 헌신하면서 산 결과가 겨우 이거야? 구질구질? 이런 말을 들으면서 3년을 지냈던 거야? 넌 참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난 아니야!”말을 마친 한유라는 이민혜를 밀쳤고 그 충격에 이민혜는 비틀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저기, 아줌마, 내 말 잘 들어요. 은정이만 아니었으면 이깟 집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깟 돈 몇 푼 좀 있다고 유세는. 아줌마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까 꼭 교양 없는 졸부네요. 박씨 집안 수준 대충 알겠어요. 난 안 나갈 거니까 때리든 말든 알아서 해요. 나이 든 아줌마 주제에 나랑 싸워서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한유라의 말에 이민혜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소은정과 한유라를 번갈아 가리키며 고래고래 소리쳤다.“너... 너희들이 감히! 소은정, 너 정말 집에서 쫓겨나고 싶어?”하지만 소은정은 전처럼 비굴하게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표정한 얼굴로 전 시어머니를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아니요, 쫓아내실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나갈 거니까요. 오늘 온 것도 짐 챙기러 온 거예요.”처음 보는 소은정의 모습에 이민혜는 잔뜩 충격을 먹었지만 소은정은 개의치 않고 바로 안방으로 걸어갔다.과거의 그녀는 참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때문에 자존심이며 존엄이며 모두 내려놓았다니. 3년 동안 이민혜는 그녀를 돈을 위해 자기 아들을 꼬인 불여우 같은 여자라며 그녀를 모욕했었다. 돈으로 사람의 계급을 나누는 저딴 여자한테 굽신거리며 살다니. 하지만 이제 그녀도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소은정은 중요한 서류만 몇 가지 챙기고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한편, 한유라와 이민혜는 여전히 서로를 노려보며 기싸움 중이었다. 소은정이 방에서 나오자 한유라가 의기양양해서 물었다.“다 챙겼어?”“그래, 이제 가자.”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일 수혁이한테 전부 다 이를 거야. 이대로 넘어갈 줄 알았다면 오산이야. 울면서 다시
한편,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한유라는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아까 그 아줌마 도대체 뭐야? 어른만 아니었으면 정말 때렸을 거야.”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소은정은 싱긋 웃더니 말했다.“됐어. 그런 사람한테 왜 화를 내. 어차피 앞으로 다시 볼 사람도 아닌데.”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이야기꽃을 피우며 집으로 돌아갔다. 기업 경영으로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소은호가 소파에 앉아 진지한 얼굴로 신문을 읽고 있었다. 별거 아닌 동작임에도 고급스러움이 배어 나오는 모습이었다.3년 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소은정은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소은호에게 달려가며 바로 애교를 부렸다.“오빠, 드디어 집에 왔네. 저번에 병원까지 날 데리러 왔으면 좀 더 있다가 가지. 왜 바로 가버렸어?”소은호는 여동생의 애교를 그대로 받아주었다. 방금 전까지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중요한 미팅이 있었어. 그래서 끝나자마자 바로 왔잖아. 자, 선물이야.”소은호의 습관이었다. 출장이나 여행을 갔다 올 때면 항상 여동생에게 선물을 안기곤 했었다. 국내에 아직 출시도 되지 않은 한정판 핸드백, 액세서리들, 전부 억대를 육박하는 고가의 물건들이었지만 하나뿐인 여동생을 위해서라면 전혀 아깝지 않았다.물론, 한유라도 함께 있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는 센스 있게 그녀에게도 샤넬 향수를 준비했다. 항상 털털하고 장난기 넘치는 한유라는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고마워요.”하지만 여동생에게 모든 시선을 빼앗긴 소은호는 한유라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3년간 어떻게 지냈는지 그도 대충 들어 알고 있었다. 이 세상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로 소중한 여동생이 그런 고초를 당하다니.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하지만 예리한 소은정은 어울리지 않게 수줍어하는 한유라의 표정을 의식하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오빠를 좋아하는 건가? 뭐야? 그럼 유라가 새 언니가 되는 거야?’소은정은 벌써 이런저런 상상을 시작했다.“
그녀가 올린 사진은 바로 서민영과 박수혁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함께 잠든 모습만 봐도 두 사람의 사이가 보통 사이가 아님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그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보낸 사진이 오히려 그녀를 보호하는 무기가 되다니.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는 모양이다.“박수혁 씨:고가의 목걸이 “아름다운 꿈”이 절도 당했다는 소식에 저도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밤새 제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탐정분께 목걸이의 행방 조사에 대해 의뢰했고 그 결과 지금 목걸이는 대서양 J국 태한 그룹 장녀 박예리 씨한테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예리 씨는 해외 카지노에서 게임 도중 자금 부족으로 인해 몰래 목걸이를 훔쳐 간 것으로 추측됩니다. 해명글과 함께 제 탐정님께서 보낸 사진을 첨부합니다. J국 카지노 게임 테이블 위, “아름다운 꿈”, 박예리 씨의 모습을 모두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소은정이 사진을 업로드한 뒤 사건은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약자의 위치였던 소은정이 단 하룻밤 사이에 태한 그룹의 입장을 완벽하게 반박할 수 있는 증거를 가지고 나타나다니.그리고 별다른 언급은 없었지만 따로 첨부한 박수혁과 서민영의 사진을 통해 사람들은 두 사람의 파경 원인이 박수혁의 외도 때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도대체 누가 나쁜 사람이란 말인가?군더더기 하나 없는 해명글과 완벽한 증거에 네티즌들의 여론은 또 달라지기 시작했다. 소은정은 누명을 완벽하게 벗을 수 있었고 유튜버들도 재벌가 갑질이라는 자극적인 주제로 태한 그룹을 비난하기 시작했다.한편, 박수혁은 심란한 마음에 친구들과 함께 술이나 한 잔하고 있었다. 그런데 밤새 이렇게 많은 일이 벌여졌을 줄이야. 태한 그룹의 주가 또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이른 아침, 박수혁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사무실에 도착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비서 이한석은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누가 감히 회사 공식 계정으로 그딴 루머를 퍼트리라고 한 거지?”무시무시한 표정을 짓던 박수혁이 이를 악물
짜증스레 전화를 끊은 박수혁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혹시나 해서 소은정한테도 전화를 걸었지만 들리는 건 전화기가 꺼졌다는 음성뿐, 그의 연락처를 차단이라도 했나 보다.박수혁은 거칠게 휴대폰을 책상에 던져버리더니 이한석을 향해 말했다.“소은정, 지금 어디 있어?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 15분 준다.”대표의 무리한 요구에 이한석은 지금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더 깊이 숙이며 말했다.“대표님, 사모님 행방은 한참 전부터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가 없는걸 보면 A시를 떠난 게 아닐까요?”비서의 보고에 박수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30분 후, 태한 그룹은 소은정을 모함했던 글을 지우고 모든 게 오해였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하지만 사과문 하나로 이미 돌아선 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박수혁은 소은정이 SNS에 업로드한 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대한 글이었음에도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오늘은 남편이 일찍 집에 와서 기분이 좋아요...”“비가 오네요. 우리 남편 우산은 챙겼으려나?”“남편이 직접 데리러 와줬어요.”“남편을 위해 준비한 아침...”......뭔가에 홀린 듯 모든 글을 읽은 박수혁은 그가 형식뿐이라 생각했던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은정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그리고 소은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한 번도 그녀를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박수혁을 더 괴롭게 만들었다.지금까지 업로드한 수많은 글에서 소은정 자신의 그림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건 남편에 대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오늘 아침 8시, 마지막으로 업로드한 딱딱한 글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그들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듯한 느낌에 왠지 공허해졌다. 그녀가 올린 글들을 다시 확인하려고 스크린을 올리는 순간, 페이지에 렉이 걸렸다. 새로
파티장은 오늘 파티의 규모와 테마에 맞게 번쩍이는 인테리어로 최대한 고급스러움을 어필하고 있었다. 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이름만 대도 알만한 정도의 유명 인사들이었다.파티에 참석하면 박수혁을 만날 거란 걸 소은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감정을 내려놓은 그녀의 마음에 박수혁은 더 이상 그 어떤 파장도 일지 못했다.박수혁에게 전처가 있다는 건 다들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한 번도 공식적인 장소에 함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데다 “절도 스캔들”로 들썩거릴 때도 완벽한 보안 덕분에 소은정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유출되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그저 소은정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박수혁의 옆에 서 있는 서민영을 본 순간, 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렇게 빨리 그 옆자리를 꿰찰 줄은 몰랐는데. 대단한걸?그런 동생이 신경 쓰였는지 소은호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겁먹지 마. 오빠가 있잖아.”하지만 소은정은 더 밝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겁은 저쪽에서 먹어야죠.”이제 그녀는 지켜야 할 것이 없다. 지킬 것이 없는 사람에게는 두려움도 없기 마련이다. 소은호와 소은정은 여유롭게 박수혁에게 다가갔다. 전 매형과 전 처남이라는 미묘한 관계,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박 대표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과찬이십니다. 저야말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두 사람은 형식적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한편, 박수혁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은호 옆에 있는 여자에게 꽂혀있었다.소은호의 옆에서 눈부시고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더 빛내주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에 그는 눈을 뗄 수 없었다.화려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모습의 소은정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고 편안하면서도 위험한 기분이 들었다. 치명적인 매력을 흘리는 그녀를 그는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곁을 떠나 소은호에게 간 걸까?소은호와는 무슨 사이인 걸까?달라진 모습에 대한 놀라움,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