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의 포스에 박우혁은 저도 모르게 한발 물러섰지만 입만 살아서는 반박을 멈추지 않았다.“누... 누나도 내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따라온 거겠죠. 삼촌, 나 하나 떼어낸다고 누나가 삼촌한테 돌아갈 것...”박우혁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성큼성큼 다가간 박수혁이 조카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콱 밀쳤다.모험가로서 생활 잔근육을 키워온 박우혁이지만 박수혁 앞에서는 힘 한 번 쓸 수 없었다. 아, 누나가 이 꼴을 안 봐서 다행이다...박수혁은 차가운 눈동자로 조카를 노려보았다. “박우혁, 너 정말 죽고 싶어?”상황을 살피던 이한석이 다급하게 다가갔다.“대표님, 말로 하시죠, 말로. 우혁 도련님도 장난하신 거겠죠. 은정 씨가 우혁 도련님을 좋아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기가 확 눌린 박우혁이지만 이한석의 말에 바로 발끈했다.“이 비서, 말 이상하게 하네? 내가 뭐 어때서? 지금까지 누나랑 스캔들 난 사람들 보니까 다 나 같은 스타일이더구만! 사랑도, 이상형도 바뀌기 마련이거든. 누나는 이제 무게만 잡는 남자 안 좋아해. 어리고 애교 넘치는 연하남 취향이라고!”하, 이 건방진 조카 자식을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박수혁은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박우혁, 다시 경고하는데 은정이한테서 떨어져. 자꾸만 선 넘으면 아무 여자랑 확 결혼시켜버릴 테니까.”압도적인 포스와 경고가 아닌 통보에 박우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뜩이나 집안에서도 정략결혼이네 약혼이네 떠들어대는 차에 박수혁까지 거든다면 정말 기정사실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그 말을 마지막으로 박수혁은 잡고 있던 멱살을 풀고 돌아섰다. 이한석은 방금 전 구매한 그림까지 야무지게 챙기고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박우혁을 바라보았다.그러게 왜 하필 대표님 여자를 건드려서는...한편, 소은정은 혼자서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이 연락처를 달라며 다가왔고 괜히 거절했다간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싶어 연락처를 건넸다.그런데 한 사람이 성공하니 사람
소은정이 전혀 믿지 않는 눈치자 박우혁도 눈을 질끈 감고 차에서 내렸다.범퍼가 찌그러진 박수혁의 차와 달리 박우혁의 차는 멀쩡한 모습에 박우혁은 속이 부글거렸다.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밑지는 장사인 것 같은데...평소라면 대충 보험사에 맡길 테지만 상대가 박수혁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박수혁이 피식 웃더니 물었다.“어떻게 할래?박우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삼촌 하고 싶은 대로 해요.”“그래? 그럼 너희 아버지한테 연락한다?”박수혁의 덤덤한 말투에 박우혁의 낯빛이 창백해지더니 바로 고,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요! 우리끼리 해결해요.”그제야 박수혁은 휴대폰을 내리고 차 키를 던져주었다.“그럼 지금 바로 내 차부터 수리해.”“지금이요?”차 키를 받은 박우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누나랑 영화 보기로 했는데...망설이는 박우혁의 모습에 박수혁이 다그쳤다.“안 가고 뭐해? 형한테 전화한다?”그제야 박우혁은 돌아서서 소은정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소은정은 의아한 얼굴로 박우혁이 박수혁의 차에 타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옷매무새를 정리한 박수혁이 운전석에 탔다.“뭐야? 왜 여기 타?”방금 전까지 일그러져 있던 박수혁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했다.“굳이 내 차를 수리해 주겠다고 해서. 영화 보러 간다며? 나랑 가지?”말을 마친 박수혁은 바로 영화관으로 차를 돌렸다.소은정과 안 지 몇 년이나 되지만 두 사람은 영화 한 번 함께 본 기억이 없었다. 연인으로서, 부부로서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못 해봤다는 생각에 박수혁의 마음이 착잡해졌다.한편 소은정도 이 상황이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됐어. 이혼한 부부가 영화관 데이트라니.”박수혁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그게 뭐? 이혼했다가 다시 재결합하는 부부도 많아.”박수혁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소은정은 아무 감정 없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운전 중인 박수혁의 시선은 계속 앞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소은정의 차가운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여자
박수혁에게 손목이 잡힌 소은정이 겨울 칼바람 같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재결합? 꿈 깨라고 해!그딴 제안은 농담이라고 해도 싫었다. 박수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왜 거짓말했어? 사진 속 그 여자 너 맞잖아.”왜 인정하지 않았던 걸까?하지만 그럼에도 소은정이 맞다는 걸 확인한 순간, 박수혁의 마음이 가벼워졌다. 실낱같은 인연이라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하지만 소은정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어 보였다.“나면 뭐가 달라져? 이제 와서 그 여자가 나라는 걸 알았다고 뭐가 달라지냐고?”소은정의 질문에 박수혁은 말문이 막혔다. 박수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곧 인내심이 바닥날 것 같은 모습에 소은정은 도발을 이어갔다.“내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정말 몰라서 물어? 난 당신이랑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고. 난 한 번 끊어낸 관계는 다시 돌아보지 않아. 재결합? 그건 불가능해. 당신도 나한테 집착하지 말고 다른 여자 만나. 이제 각자 갈 길 가자고. 당신이 앞으로 누구랑 사귀든 누구랑 재혼을 하든 진심으로 축복할 테니까.”웃으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못처럼 가슴에 박혀버렸다.정말 이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건가? 말을 마친 소은정이 다시 차에서 내리려 했다.“소은정, 네 목숨은 내가 구한 거야. 정말 이대로 입 싹 닫고 넘어갈 거야?”치사하다는 것 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녀를 잡고 싶었다.과연, 그의 말에 소은정이 다시 박수혁을 돌아보았다.박수혁의 맑은 미소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섞여있었다.“그래. 재결합에 대한 얘기 다시 안 꺼낼게. 네 말대로 우리 결혼은 이제 끝났어. 우린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러니까 평범한 친구로 지낼 수도 있는 거 아니야?”그의 말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 박수혁은 소은정의 표정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려 애썼다.하, 정말 생명의 은인만 아니었어도 그냥 무시하고 가는 건데...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고개를 돌린 박수혁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
박수혁이 바로 키오스크로 다가갔다. 보기 드문 미남의 등장에 직원들과 사람들의 시선이 바로 집중되었다.박수혁은 가장 빨리 시작되는 영화를 고른 뒤 결제를 마쳤다. 고개를 돌린 그때, 커플세트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한편, 소은정은 지루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스키여행에 대해 의논하고 있는 단톡방의 대화를 훑어보던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 이 밤에 박수혁과 단둘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걸 알면 다들 어떤 표정을 지을까?그런데 이때,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가 상기된 얼굴로 다가왔다.“저기, 혹시 한국대 학생이세요?”갑작스러운 질문에 소은정이 흠칫했다.아, 이 근처에 한국대가 있었지?“전...”소은정이 해명하려던 순간, 남학생이 불쑥 휴대폰을 내밀었다.“연락처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연극 동아리에서 여주인공 배우를 찾고 있거든요...”남학생의 질문에 소은정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별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미소에 남학생이 넋을 잃은 그때, 박수혁이 다가와 차가운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고급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손목 사이로 보이는 파텍필립 시계... 딱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은 포스에 남자는 미안하다는 말만 남긴 채 서둘러 도망쳤다.멀어져 가는 남학생을 아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소은정의 눈빛에 박수혁의 마음도 무거워졌다.하지만 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콜라에 커다란 콤보 팝콘까지. 한정판 코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의아한 눈빛을 느꼈을까?박수혁이 부자연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이, 이벤트라고 해서.”소은정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박수혁이 직접 커플세트를 살 만큼 유치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영화관 입장 전, 티켓을 확인한 소은정은 다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뭐? 공포영화?추운 겨울 개봉한 공포영화가 인기를 끌 리가 없었고 커다란 영화관에는 커플을 제외하고 박수혁, 소은정 두 사람이
그 모습에 박수혁은 몰래 옆에 앉은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잔뜩 집중한 표정으로 스크린만 쳐다보고 있었다. 부드러운 옆라인, 오똑한 코... 박수혁은 그렇게 한참 동안 소은정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조용히 영화를 감상하고 있었다. 으스스한 음향효과와 툭툭 튀어나오는 점프 스케어에도 소은정은 놀라는 기색 하나 없었다. 오히려 일부러 조성하는 공포 분위기와 조잡한 CG를 비웃는 듯 가끔씩 웃음을 터트리기까지 했다.다시 고개를 돌려 앞자리에 앉은 커플을 바라보았다. 좌석 하나를 주어도 될 만큼 꼭 붙어있는 커플을 바라본 박수혁은 마음이 복잡했다.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특별히 공포영화를 선택한 건데... 그의 예상과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팝콘과 콜라에는 손도 안 대는 소은정의 모습에 박수혁은 짜증이 치밀어 애꿎은 콜라만 벌컥벌컥 마셨다.어느새 영화가 막바지로 흘러가고 소은정이 고개를 돌려 박수혁에게 물었다.“영화 보고 싶다고 해서 왔더니. 왜 영화는 안 보고 나만 봐?”소은정의 목소리에 앞자리에 앉은 커플이 후다닥 스킨십을 멈추었다.뭐야? 뒤에 사람이 있었나?“널 보면 안 된다는 법도 있나?”박수혁의 덤덤한 대답에 소은정은 말문이 막혔다.“그런데... 안 무서워?”“저건 가짜잖아. 며칠 전 내가 겪었던 일들... 그게 진짜 공포지.”저급한 CG, 개연성 없는 스토리보다 더 무서운 건 점점 스킨십이 짙어지는 두 커플이 영화관에서 19금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었다.뭐,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소은정의 덤덤한 말에 박수혁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렸다.잠시 후 영화가 끝나고 커플들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후다닥 영화관을 나섰다. 소은정도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시간이 많이 늦었네. 이제 가봐야겠어.”“데려다줄게.”박수혁도 바로 일어섰다.영화관에서 나온 소은정은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집사를 확인하곤 고개를 돌렸다.“내 목숨을 구해줬으니까 이런
박수혁의 눈동자에 날카로운 잔인함이 스쳐지났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고고함과 폭풍 같은 감정들이 소은정을 압도했다.말을 마친 박수혁이 소은정의 어깨를 풀어준 순간, 마침 집사가 다가왔다.“아가씨... 어? 박 대표님이 어떻게 여기에...”집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고 박수혁은 어느새 평소와 같은 포커페이스로 돌아온 상태였다.하지만 소은정은 화가 난 건지 창백한 안색이었고 그 모습에 집사는 바로 경계 어린 시선으로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소은정이 덮고 있는 재킷을 발견한 집사는 따로 챙긴 숄을 그녀에게 건넸다.“아가씨,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소은정은 심호흡을 한 뒤 박수혁의 어깨를 밀쳐냈다. 그리고 정장 재킷을 거칠게 벗어 바닥에 내팽개친 뒤 집사가 건넨 숄을 걸쳤다.차가운 눈빛으로 박수혁을 노려보던 소은정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돌렸고 집사가 바로 그 뒤를 따랐다.하, 젠틀한 척하더니 겨우 그 정도로 인내심이 바닥난 거야? 감히 날 협박해? 내가 아니라 박우혁을 건드리겠다? 양아치 같은 자식.화가 난 소은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박수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놀라게 한 건가?잠시 고민하던 박수혁이 휴대폰을 꺼냈다.“이 비서, 박우혁이 운영하는 스튜디오 폐쇄하고 내일부터 서진 지사로 출근하라고 해.”“네, 대표님.”한편, 소은정의 본가.소은호는 일찍 퇴근해 서재에서 소찬식과 회사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소은해는 소호랑을 씻겨주겠노라 애쓰고 있었다. 물론 소호랑은 강력하게 거부하는 상태였지만 말이다.집으로 돌아온 소은정을 발견한 소은해가 물었다.“뭐야?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인기척에 소은호와 소찬식도 서재에서 나왔다.“오늘 재밌었어?”소은호가 부드러운 미소로 물었다.가족들을 보니 방금 전까지 언짢던 기분이 눈 녹 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아빠, 오빠, 어서 태한그룹 쪽에 선물을 보내주세요. 어쨌든 박수혁이 절 구해준 건 사실이니까요. 저희를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어요.”생명의 은인이라며
생각을 정리한 소은정은 샤워를 마치고 팩까지 끝낸 뒤 침대에 누웠다.잠들기 전 휴대폰을 뒤적거리던 소은정은 카톡 친구 추가 화면이 온통 박수혁의 프로필 사진으로 가득 찬 걸 발견했다.보통 친구.그가 친구 추가 글에 적은 글귀였다.방금 전까지 박우혁한테서 떨어지라며 협박을 하더니 왜 갑자기 친구 추가를 하려는 걸까?박수혁의 변덕에 소은정은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친구 추가 요청을 깔끔하게 무시한 소은정은 잠자리에 들었다.한편, 아무런 반응 없는 휴대폰을 바라보는 박수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만 갔다.젠장, 아까 조금만 더 참았어야 했는데...저녁내내 소은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쌓은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다시 절망의 심연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어두운 하늘, 누군가는 달콤한 꿈속을 거닐고 누군가는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지고 있었다.다음 날, 태한그룹.조심스럽게 노크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간 이한석은 바로 박수혁의 표정을 살폈다. 요즘 따라 대표님의 기분이 안 좋은 이유는 아마 소은정 대표 때문이겠지.“대표님, 그림값은 소은정 대표의 비서 우연준 씨 편에 보냈습니다.”이한석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박수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박우혁 도련님의 스튜디오는 현재 모든 자금 출처가 끊긴 상태입니다. 스튜디오 측이 받은 광고도 전부 계약 해지되었으니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사실 가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의 꿈만을 바라보고 이 정도 성과를 이룬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순간 잘못된 욕심으로 인해 모든 게 물거품이 되다니. 이한석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이때 박수혁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박우혁이었다. 박수혁은 짜증스레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박우혁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전화를 멈추지 않았다.박수혁이 아예 박우혁의 번호를 차단해 버린 그때, 이번에는 이한석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이한석은 난처한 얼굴로 박수혁의 표정을 살피더니 살며시 거절 버튼을 눌렀다.“나가봐.”한참을 침묵하던 박수혁
선셋 클럽, 이곳은 럭셔리 프라이빗 클럽이다.회사 업무를 마친 소은정이 이곳에 도착했다. 문에 들어선 순간, 바로 직원이 그녀를 1004번 룸으로 안내했다.오늘은 한유라, 김하늘이 주도하여 주최한 프라이빗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물론 두 사람을 제외하고도 눈에 익은 얼굴도 여럿 보였다. 심지어 연예계 신인 모델, 배우들도 있었는데 별다른 접점이 없는 듯한 게스트들의 공통점은 바로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유준열과 윤지섭도 소은정을 발견하고 목례를 건넸다.한유라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는 소은정의 옆으로 다가가며 속삭였다.“미남파티야. 널 위해 준비한 선물이랄까?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바로 나가도 돼.”소은정은 어색한 표정으로 한유라를 바라보았다.“또 무슨 꿍꿍인데?”“너 죽다 살아났잖아. 눈앞의 즐거움도 좀 더 즐겨야지. 맛있는 것도 좀 먹고 술도 좀 마시고 잘생긴 남자들이랑 연애도 좀 실컷 해보고!”한유라의 말에 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흘겨보았다. 방식이 조금 과격하긴 했지만 두 사람의 호의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 결국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그래, 고맙다.”“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네 스타일인 애들로 특별히 엄선했으니까 오늘은 즐기는 거야?”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박우혁이었다.“누나, 어디야?”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은 결국 문자로 위치를 보내주었다.“한 명 더 와도 괜찮지?”한유라가 어깨를 으쓱했다.“남자야? 그렇다면 얼마든지.”파티가 시작되고 다들 시답잖은 농담에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20분 뒤, 박우혁이 파티장에 도착했다.다급한 얼굴의 박우혁이 바로 소은정에게 다가갔다.“누나, 나 좀 도와줘.”박수혁의 잔인한 수단에 박우혁도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게다가 지사로 출근을 시킨다니 집안 어른들도 전부 삼촌 편. 지금 그의 곁에 서줄 사람은 소은정뿐이었다.“왜 그래?”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잔뜩 굳은 표정의 박우혁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삼촌 때문에 우리 스튜디오 지금 부도 일보 직전이야.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