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정리한 소은정은 샤워를 마치고 팩까지 끝낸 뒤 침대에 누웠다.잠들기 전 휴대폰을 뒤적거리던 소은정은 카톡 친구 추가 화면이 온통 박수혁의 프로필 사진으로 가득 찬 걸 발견했다.보통 친구.그가 친구 추가 글에 적은 글귀였다.방금 전까지 박우혁한테서 떨어지라며 협박을 하더니 왜 갑자기 친구 추가를 하려는 걸까?박수혁의 변덕에 소은정은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이었다.친구 추가 요청을 깔끔하게 무시한 소은정은 잠자리에 들었다.한편, 아무런 반응 없는 휴대폰을 바라보는 박수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만 갔다.젠장, 아까 조금만 더 참았어야 했는데...저녁내내 소은정에게 잘 보이기 위해 쌓은 공든 탑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다시 절망의 심연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어두운 하늘, 누군가는 달콤한 꿈속을 거닐고 누군가는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지고 있었다.다음 날, 태한그룹.조심스럽게 노크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간 이한석은 바로 박수혁의 표정을 살폈다. 요즘 따라 대표님의 기분이 안 좋은 이유는 아마 소은정 대표 때문이겠지.“대표님, 그림값은 소은정 대표의 비서 우연준 씨 편에 보냈습니다.”이한석의 말에 잠시 멈칫하던 박수혁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박우혁 도련님의 스튜디오는 현재 모든 자금 출처가 끊긴 상태입니다. 스튜디오 측이 받은 광고도 전부 계약 해지되었으니 아마 얼마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사실 가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의 꿈만을 바라보고 이 정도 성과를 이룬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순간 잘못된 욕심으로 인해 모든 게 물거품이 되다니. 이한석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이때 박수혁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박우혁이었다. 박수혁은 짜증스레 전화를 끊어버렸지만 박우혁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전화를 멈추지 않았다.박수혁이 아예 박우혁의 번호를 차단해 버린 그때, 이번에는 이한석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이한석은 난처한 얼굴로 박수혁의 표정을 살피더니 살며시 거절 버튼을 눌렀다.“나가봐.”한참을 침묵하던 박수혁
선셋 클럽, 이곳은 럭셔리 프라이빗 클럽이다.회사 업무를 마친 소은정이 이곳에 도착했다. 문에 들어선 순간, 바로 직원이 그녀를 1004번 룸으로 안내했다.오늘은 한유라, 김하늘이 주도하여 주최한 프라이빗 파티가 열리는 날이었다. 물론 두 사람을 제외하고도 눈에 익은 얼굴도 여럿 보였다. 심지어 연예계 신인 모델, 배우들도 있었는데 별다른 접점이 없는 듯한 게스트들의 공통점은 바로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유준열과 윤지섭도 소은정을 발견하고 목례를 건넸다.한유라가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는 소은정의 옆으로 다가가며 속삭였다.“미남파티야. 널 위해 준비한 선물이랄까? 마음에 드는 사람이랑 바로 나가도 돼.”소은정은 어색한 표정으로 한유라를 바라보았다.“또 무슨 꿍꿍인데?”“너 죽다 살아났잖아. 눈앞의 즐거움도 좀 더 즐겨야지. 맛있는 것도 좀 먹고 술도 좀 마시고 잘생긴 남자들이랑 연애도 좀 실컷 해보고!”한유라의 말에 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흘겨보았다. 방식이 조금 과격하긴 했지만 두 사람의 호의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 결국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그래, 고맙다.”“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네 스타일인 애들로 특별히 엄선했으니까 오늘은 즐기는 거야?”이때 휴대폰이 울렸다. 박우혁이었다.“누나, 어디야?”잠깐 고민하던 소은정은 결국 문자로 위치를 보내주었다.“한 명 더 와도 괜찮지?”한유라가 어깨를 으쓱했다.“남자야? 그렇다면 얼마든지.”파티가 시작되고 다들 시답잖은 농담에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20분 뒤, 박우혁이 파티장에 도착했다.다급한 얼굴의 박우혁이 바로 소은정에게 다가갔다.“누나, 나 좀 도와줘.”박수혁의 잔인한 수단에 박우혁도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게다가 지사로 출근을 시킨다니 집안 어른들도 전부 삼촌 편. 지금 그의 곁에 서줄 사람은 소은정뿐이었다.“왜 그래?”고개를 돌린 소은정은 잔뜩 굳은 표정의 박우혁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삼촌 때문에 우리 스튜디오 지금 부도 일보 직전이야.
박우혁의 말에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저 아이의 몸과 마음을 가져서 어디에 쓸까 싶었다.카드를 받은 박우혁은 부랴부랴 파티장을 나섰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유라와 김하늘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렸다.“역시. 너한테는 부잣집 아가씨-가난한 연하남 콘셉트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한유라가 소은정의 어깨를 토닥였다.소은정은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매력적으로 웃어 보였다.“콘셉트라니. 난 부잣집 아가씨 맞는데?”어느새 파티의 분위기는 고조로 치닫고 고막이 터질 듯한 음악소리가 파티장을 가득 메웠다.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얼큰하게 취한 소은정은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소은정은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여자는 비명소리와 함께 더러운 쓰레기라도 묻은 듯 옷을 털어내더니 대뜸 짜증부터 내기 시작했다.“뭐야? 도대체 눈을 어디에 두고 다니는 거야! 옷 더러워지면 네가 배상할 거야?”익숙한 목소리에 소은정은 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소은정이 묘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사모님, 오랜만이네요?”그녀와 부딪힌 여자는 바로 이민혜였다.이민혜도 역시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실 이민혜는 박예리가 이곳에 있다는 소리에 찾으러 왔다가 결국 성과 없이 돌아간다는 생각에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그래서 부딪힌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도 보지 않고 욕설부터 내뱉었었다. 그런데 소은정일 줄이야.예전 같았으면 옳다고나 하고 달려들었겠지만 이제 그녀는 SC그룹 대표이사 예전과는 차원이 달라졌다.이민혜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한껏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너였구나?”사실 아무리 신분이 바뀌었다 해도 이민혜는 여전히 소은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민혜는 소은정이 살아돌아온 그날, 집으로 돌아와 이번 생에 그가 다시 결혼을 한다면 그 사람은 소은정뿐이라고 못을 박던 아들의 표정을 떠올렸다. 그리고 소은정에게 허튼짓을 했다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였었지.
이민혜의 말이 끝나자마자 소은정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곧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제가 박수혁과 다시 사귀기로 했다고요? 전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박수혁 혼자서 내린 결정에 왜 내가 사생활을 관리해야 하지? 어이가 없어서.소은정의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이민혜도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며칠 뒤 아버님이 직접 소 회장님을 찾아뵙고 결혼 얘기를 꺼내실 거야. 두 가문 모두 손해 볼 게 없는 결혼이야. 네가 우리 가문보다 더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갈 수 있을 것 같니?”이민혜는 한 번 이혼한 소은정을 다시 집안에 들이는 것만으로도 최대한의 자비를 베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제도 모르고 튕겨?아무리 재벌가라지만 재혼이 아닌가? 이 정도로 자세를 굽혔으면 냉큼 기회를 잡는 게 인지상정일 텐데. 저 아이는 뭐가 잘났다고 저렇게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는 거지?하지만 소은정은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아니요. 전 그럴 생각 없습니다. 박 회장님한테도 말씀 전해주세요. 저희 가족들은 박씨 집안과 다시 얽히고 싶지 않으니 찾아오실 필요도 없다고요. 박씨 집안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아서요.”소은정의 마에 이민혜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너...! 이건 가문과 가문 사이의 연합이야. 네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네가 뭐가 그렇게 잘났어! 이번에도 우리 수혁이 아니었어 봐. 네까짓 게 그 해적들 소굴에서 살아돌아올 수 있었을 것 같아?”“그래서요?”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했다.“제가 박수혁한테 제발 구하러 와달라고 빌기를 했나요? 알아서 구하러 온 것도 다른 보상을 거절한 것도 박수혁입니다. 전 할 만큼 했어요. 그리고 제 마음대로 될 것 같냐고요? 뭐, 그건 앞으로 두고 보시죠.”말을 마치고 돌아서던 소은정이 멈칫하더니 말을 이어갔다.“아, 그리고 제 사생활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제가 남자를 후리고 다니든 스폰을 하든 제 인생이니 신경 꺼주세요.”이 정도로 말했으면 콧대 높은 박씨 가문에서도 알아서 포기하겠지. 갑자기 한유
박수혁이 왜 갑자기 전화를? 게다가 이 번호는 처음 보는데?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사모님이 사진만 보내고 위치까지는 안 알려주셨나 봐?”이민혜의 생각 정도야 이미 꿰뚫고 있는 소은정이었다. 아마 사진을 보내고 있는 일 없는 일까지 지어내며 그녀를 천박한 여자, 남자를 밝히는 여자로 몰아갔겠지.하지만 소은정은 딱히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박수혁이 그 말을 듣고 실망해 떨어져 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원하는 바였으니까.그녀의 말에 박수혁은 한참을 침묵했다. 소은정이 짜증스레 전화를 끊으려던 그때, 박수혁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의 낮은 목소리에서 그가 얼마나 감정을 꾹꾹 억누르고 있는지 느껴질 정도였다.“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일찍 들어가.”생각지 못한 대사에 당황한 건 소은정도 마찬가지였다. 박수혁이 대답하면 바로 쏟아내려던 비난과 욕설이 목구멍에 걸린 듯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뭐야? 네가 뭔데 날 짜증 나게 만들어.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남이사?”말을 마친 소은정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도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요즘 따라 더 이상하게 행동하는 박수혁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조용히 와인잔을 만지작거리던 김하늘이 입을 열었다.“그 사람 설마... 너랑 진짜 화해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그녀의 말에 한유라가 고개를 저었다.“그럴지도 몰라. 뭔가 달라진 것 같긴 한데 그게 진심인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태한그룹 정도 되는 집안에서 무슨 꿍꿍이를 꾸미겠어. 그런 거라면 설마...”이에 한유라는 바로 고개를 젓더니 소은정의 팔을 덥석 잡았다.“은정아, 너 절대 흔들리면 안 돼. 같은 실수 두 번 할 수는 없잖아! 이 세상에 반이 남자야. 그 자식한테 목맬 필요가 없다고!”“그럼. 당연하지.”소은정도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시간이 또 흐르고 한유라의 손에 이끌려 또 술을 몇 잔 더 마신 소은정은 머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멀쩡한 김하늘이 사람들을
순식간에 일어난 일, 소은정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한편 박수혁의 어두운 눈동자에서 발사되고 있는 경고의 레이저에 윤지섭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박수혁은 그렇게 두 남자가 미처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단호하게 돌아섰다. 혼자 남겨진 윤지섭은 주먹을 꽉 쥐었다.완벽한 그의 패배였다.그 모습에 유준열이 한숨을 쉬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연예계에서 나름 오랫동안 뒹군 그는 눈치 보기와 상황 파악에는 도가 튼 상태였다.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누구도 박수혁에서 소은정을 빼앗아 올 수 없다는 걸.“지섭 씨, 하늘이 누나한테 연락하죠.”소은정을 뒷좌석에 눕힌 박수혁은 그녀의 숨결에서 느껴지는 알코올 향헤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 앉아 조심스럽게 소은정의 잔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텅 빈 거리를 비추는 가로등처럼 그의 눈빛에는 쓸쓸함과 고독이 그대로 담겨있었다.박수혁은 조용히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잠들어있을 때만 이렇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게 느껴지던 그때, 방금 전 만난 윤지섭을 떠올리며 박수혁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감히, 주제도 모르고.20분 정도가 흘렀을까? 누군가 차창을 두드렸다. 박수혁은 자연스레 고개를 들었고 소은정도 그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뭐야?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던 소은정은 박수혁의 얼굴을 보고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마침 이 근처에서 약속이 있어서.”박수혁이 담담한 말투로 대답했다. 한편 소은정은 방금 전까지 술을 마시고 있던 그녀가 왜 지금 박수혁의 차에 있는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그 모습에 박수혁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지어내기 시작했다.“네가 날 보자마자 바로 달려들던데? 말려도 소용없었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단 뒷좌석에 눕힌 거고.” “헛소리하지 마!”소은정이 소리쳤다.“그럼 블랙박스 돌려봐?”소은정은 한참 동안 박수혁을 노려보았다. 당당한 박수
말을 마친 소은해는 여유로운 자태로 차에 탔고 차는 곧 박수혁의 시야에서 사라졌다.다음 날, 따스한 햇살이 소은정의 얼굴을 비추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소은정은 바로 소호랑부터 찾기 시작했다. 베란다에 달아둔 그네에 탄 소호랑은 무서운 듯 네 발을 움찔움찔하고 있었다.바로 소호랑에게 달려가 뽀뽀를 퍼부어주려던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너랑 유라 도대체 왜 그러니? 둘이서 내 전담 모닝콜이라도 해주려고 그래? 잠 좀 자자.”농담을 던지는 소은정과 달리 김하늘은 초조한 말투로 물었다.“어제 박수혁이 널 데리고 갔다면서. 별일 없었지?”“뭐? 날 데리고 나갔다고?”소은정은 잠이 번쩍 깨는 기분이었다. 내가 내 발로 그 자식 차에 탔다더니 이게 무슨...“윤지섭 그 자식, 박수혁한테 기가 눌려서는 결국 널 빼앗겼다잖아. 은해 오빠가 바로 도착하긴 했지만 그 사이에... 별일 없었지?”하, 박수혁 이 여우 같은 자식. 감히 날 속여?“응, 아무 일도 없었어.”“그래? 그럼 다행이고.”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전화를 끊은 소은정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잠시 후 준비를 마친 소은정이 내려오자 주방 아주머니는 바로 해장국을 곁들인 아침 식사를 차려주었다. 시원하게 해장까지 끝낸 소은정은 바로 소호랑을 안고 거성그룹으로 향했다. 이대로 그녀가 극혐하는 사람을 아빠라 부르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오빠가 고친 거라지만 소호랑은 신나리의 작품이니 어떻게든 다시 수정할 수 있을 테지.소은정의 등장에 프런트 직원에 바로 인사를 건넸다.“소은정 대표님, 여기까진 무슨 일로... 대표님께서는 아마 미팅 중이실 겁니다. 지금 바로 비서실에 연락을...”“아니요. 오늘은 신나리 연구원을 만나러 왔습니다. 지금 자리에 있죠?”소은정이 손을 들며 말했다.그녀의 말에 멈칫하던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아, 네. 그럼 접견실에서 기다려주세요.”이제 곧 골칫거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소은정이 가벼운 한숨을 푹 쉬었다
박수혁의 말에 분위기가 순간 싸해졌다.소은정의 미소는 어색하게 굳고 신나리, 임춘식도 곁눈질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아, 그럼. 그리고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똑똑히 기억나더라. 당신이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도 전부 다.”박수혁이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에게 말을 걸어올 때마다 사실 소은정은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고 당장이라도 저 가증스러운 가면을 벗겨내고 싶었다.하지만 거짓말이 들통났음에도 박수혁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눈치였다. 박수혁이 담담하니 오히려 소은정이 생떼를 부리는 듯한 이상한 상황이 연출되었다.“그래? 다행이네.”박수혁은 마치 소은정의 이 정도 투정은 백 번이라도 받아줄 수 있다는 듯 부드럽게 웃었다.소은정은 눈을 흘기더니 화를 삭이려는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푹 내쉬었다.이 상황을 견디다 못한 신나리가 나섰다.“언니, 무슨 일로 절 찾으신 거예요?”소은정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소호랑은 박수혁을 발견하고 두 눈을 반짝이더니 바로 박수혁 곁으로 달려갔다.“아빠, 너무 보고 싶었어요...”소호랑을 떼어내려던 박수혁도 아빠라는 단어에 흠칫 놀란 얼굴이었다.그리고 허리를 숙여 소호랑을 안더니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자상한 말투로 대답했다.“나도 보고 싶었어...”소호랑의 무조건적인 호감과,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박수혁의 눈빛에 임춘식, 신나리, 소은정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박수혁,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나?눈이 커다래진 채 소호랑과 박수혁을 훑어보던 임춘식은 골치 아프다는 듯한 소은정의 얼굴에 바로 신나리를 찾아온 용건을 눈치챘다.소호랑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네 발을 버둥거렸다.“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어요.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예뻐요. 그러니까 두 사람...”말을 채 끝내기 전에 소은정은 박수혁의 품에서 소호랑을 홱 낚아챘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소은정은 소호랑의 입을 움켜쥔 채 그를 노려보았다.“조용히 해!”그리고 소호랑을 신나리에게 건네주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