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너튜브 계정은 비록 업로드 속도는 빠르지 않았지만 몇백만의 팔로워를 자랑하고 있었다. 박우혁의 잘생긴 얼굴도 한몫했지만 인기를 끌고 있는 진짜 이유는 바로 그 어떤 조작도 없는 리얼한 앵글 덕분이었다.1달이나 새로운 콘텐츠가 업로드되지 않자 다들 박우혁이 무슨 사고라도 당한 게 아닐까 팬들의 걱정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던 그때,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되었고 곧 큰 파장을 일으켰다.단 몇 분뿐인 영상이 이토록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 대서양의 이름 모를 섬에서 살고 있는 야인들의 존재 그리고 박우혁과 함께 있는 소은정 때문이었다.소은정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실종된 상태. 하지만 말이 실종이지 며칠이 지나도 소식 하나 들리지 않으니 사람들은 소은정이 이미 사망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멀쩡히 살아있다니!소은정이 앵글에 잡히는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비 오는 밤, 야인들에게 쫓기는 그 스릴 넘치는 모습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정신없이 도망치는 모습. 그리고 함정에 떨어지려는 일촉즉발의 순간, 그녀의 팔을 잡아당긴 박우혁...그리고 그 뒤로 넘어지고 다쳐도 동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는 소은정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입을 떡 벌렸다.영상은 그들이 해적을 만나기 전 엉망이 된 옷차림으로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으로 끝을 맺었다.위기에서 벗어난 뒤 살았다는 안도감에 보여준 맑고 청량한 미소...그리고 박우혁이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순간, 마침 바닷바람이 불어오며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장면은 이온음료 CF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영상은 업로드된 지 단 한 시간만에 500만 뷰를 돌파했다.“헐! 은정 언니! 살아있었어!”“역시 무사할 줄 알았어요!”“예쁜 사람은 저렇게 망가져도 이쁘구나... CF인 줄?”“나 왜 주책 맞게 눈물이 나지?”“다른 승객들은 어떻게 된 거죠?”“저런 상황에서 둘만 있으면 마음이 싹 트지 않기도 힘들겠
소란스러운 소리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뭐야? 유라 목소리 아니야?”소은정의 말에 소은해가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래?”병실 문을 연 순간, 한유라, 김하늘, 성강희까지 우르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세 사람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은정아...”한유라가 먼저 소은정에게 달려갔다.김하늘도 다가가려는 순간, 소은해가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다.“한 명, 한 명씩 가. 아직 상처도 채 안 나았다고!”김하늘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다쳤어?”품에서 훌쩍이는 한유라의 등을 토닥이던 소은정이 싱긋 미소 지었다.“별거 아니야. 거의 다 나았어!”성강희도 그 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는지 핼쑥해진 얼굴이었다. 소은정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성강희는 털썩 주저앉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어색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찬식은 큼큼 헛기침을 하더니 소호랑을 안고 병실을 나섰다. 소은해도 한참을 고개를 젓더니 그 뒤를 따라나섰다.김하늘이 성강희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야, 초상났어? 무사히 돌아왔잖아! 울긴 왜 울어!”성강희는 소은정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흐느꼈다.“난 진짜...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겨우 감정을 추슬렀던 한유라도 다시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이 나쁜 계집애야! 무사히 살아 돌아왔으면서 어떻게 우리한테 말 한마디 없을 수 있어!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는 모습에 소은정의 코끝이 시큰해졌다.“미안... 다 낫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고 싶었어.”항상 차분하던 김하늘도 눈시울을 붉혔다.“괜찮아.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어.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야.”눈물의 상봉을 마치고 세 사람은 그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캐묻기 시작했고 소은정은 모든 걸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흥미진진한 표정의 한유라, 김하늘과 달리 성강희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무용담을 자랑하 듯 괜히 더 오버
영상이 업로드되고 며칠이 흘렀지만 그 화제성은 시들해지긴커녕 일파만파 퍼져나갔다.건강을 회복하고 퇴원 수속을 마친 소은정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가렸음에도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기자들에게 둘러싸이고 말았다.수많은 카메라와 마이크가 오직 소은정만을 바라보고 있었다.“소은정 대표님, 영상 내용 전부 사실입니까?”“큰 사고를 겪고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으셨는데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이번 비행기 추락 사고가 정말 사고라고 생각하십니까?”“생사를 함께 한 박우혁 씨와 따로 연락을 주고받고 계십니까?”......경호원들이 바로 다가와 소은정과 소은해의 앞을 막아섰다. 점점 더 몰려드는 인파들에 소은해는 짜증이 치밀었지만 대중 앞에 서는 게 직업인 소은해는 이들이 결코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소은해는 소은정을 품에 안은 채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이때 소은정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든 그녀는 슬픈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제 무사귀환을 축하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비행기에 동승했던 30여 명의 승객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다른 승객분들의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번 사건으로 지나친 관심은 지양해 주시기 바랍니다.”목소리는 살짝 쉬었지만 말투만은 명확했다. 말을 마친 소은정은 기자들을 향해, 다른 승객들의 가족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방금 전까지 북적이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소은정의 발언에 대해 네티즌들은 칭찬 일색이었다.“이런 일에서 인성이 보이는 법. 자기도 힘들 텐데 다른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다니.”“언니, 저랑 결혼해 주세요!”“이번 비행기 추락 사고 피해자 가족입니다. 저희 엄마도 소은정 대표님처럼 어딘가에 조난당했다고... 언젠가 돌아오실 거라 믿습니다. 소은정 대표님, 어서 건강을 회복하세요. 당신은 저희들의 유일한 희망입니다.”......피해자 가족이 남긴 댓글에 좋아요가 가장 많이 클릭되고 역시 그
트렁크를 들고 그 뒤를 따르던 이한석은 쓸쓸한 박수혁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 기사 휴대폰은 이만...”이 기사는 박수혁이 이대로 휴대폰을 바닥에 부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이한석 번호도 소은정이 알고 있을 거란 생각에 다른 사람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한 건데...어쩌저찌 해도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니 통화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그런데 이름을 듣자마자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다니.박수혁은 통화기록을 지우고 이한석에게 휴대폰을 던져주었고 이 기사에게 휴대폰을 돌려준 이한석이 바로 그 뒤를 따랐다.“대표님, 오늘 밤 윤 화백님의 미술 전시 레스토랑 개업 파티가 열립니다. 대표님도 초대되셨는데...”한편, 소은정의 본가.소은정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늘 파티에 입을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다. 사고 후 처음 공식적인 장소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니 옷차림에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박수혁의 전화를 매정하게 끊어버린 소은정은 자신이 정확한 선택을 한 것이라 마음을 다잡았다.목숨을 구해준 건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걸 빌미로 재결합? 꿈 개!소은해는 스타일리스트처럼 소은정에게 신상 드레스들을 추천해 주었고 소찬식도 상자에 고이 간직해 둔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한바탕 방구석 패션쇼 치른 끝에 소은정은 연핑크톤의 드레스를 픽했다. 타이트한 라인이 완벽한 소은정의 몸매를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고 싱그러운 연핑크톤이 소은정의 청순한 얼굴에 러블리함을 한 스푼 더 얹어주었다.이때, 소찬식이 꺼낸 목걸이를 발견한 소은해의 눈빛이 흔들렸다.“아빠, 그건 우리 집안 며느리한테 주실 거라면서 똑같은 걸로 세 개 사신 거잖아요!”소은해의 질문에 소찬식이 괜히 눈을 흘겼다.“아무리 생각해도 너 좋다는 여자는 없을 것 같아서.”뭐야? 그러니까 내 거라는 거지?또 투닥대는 부자의 모습에 소은정은 소은해를 향해 혀를 내밀었다.“오빠, 좀 더 분발해야겠어...”어깨를 으쓱하던 소은해가 옷을 갈아입으려던 그때,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
당황한 소은정이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박수혁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는지 다시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낸 박수혁은 사진과 그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어떻게 이런 일이...”“그 사진 자네가 가지고 갔나?”창백해진 박수혁을 향해 윤 화백이 물었다.박수혁은 고개를 돌려 소은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지만 소은정은 일부러 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연핑크 원피스를 입은 소은정은 평소의 도도한 분위기와는 달리 훨씬 더 러블리한 모습이었다.“윤 화백님, 이 사진은...”“그래, 내가 찍은 거네. 저 아이가 자네를 구할 때 내가 바로 그 거리 맞은편에 있었거든. 내 인생의 역작이라 할 수 있지. 자네 이 그림 사지 않겠나?”윤 화백의 말에 사진과 그림 속 여자가 소은정이란 사실은 이미 밝혀진 거나 마찬가지, 게다가 박수혁에게 그림을 팔겠다고 하니 소은정이 다급하게 소리쳤다.“제가 먼저 사겠다고 했잖아요!”아까까지 절대 안 팔겠다고 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게 무슨 변덕이란 말인가?“글쎄 난 그림의 주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윤 화백이 껄껄 웃었다.“윤 화백님, 얼마면 되겠습니까?”박수혁의 새카만 눈동자가 살짝 반짝였다.“500억. 지금 바로 입금해.”윤 화백이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500억이라니!직장인인 이한석은 이 상황이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아무리 윤 화백님의 작품이라지만 그림 한 장에 500억이라니...윤 화백은 싱글싱글 웃으며 고개를 돌려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았다.“돈은 얘한테 입금해. 어차피 주인공은 저 아이니까.”이 영감탱이가 갑자기 노망이 났나. 왜 이래!화가 치민 소은정이 당장 자리를 뜨려던 그때, 박우혁이 다가왔다.“누나, 여기 있었어? 한참 찾... 어? 삼촌!”박우혁의 애교 넘치는 누나 소리에 박수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박우혁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소은정의 팔짱까지 끼면서 말했다.“우리 밥 먹고 심야영화 보러 갈까?”“이쪽은...”묘한 삼각관계에 윤 화백의 눈빛이 의미심
박수혁의 포스에 박우혁은 저도 모르게 한발 물러섰지만 입만 살아서는 반박을 멈추지 않았다.“누... 누나도 내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따라온 거겠죠. 삼촌, 나 하나 떼어낸다고 누나가 삼촌한테 돌아갈 것...”박우혁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성큼성큼 다가간 박수혁이 조카의 멱살을 잡고 벽으로 콱 밀쳤다.모험가로서 생활 잔근육을 키워온 박우혁이지만 박수혁 앞에서는 힘 한 번 쓸 수 없었다. 아, 누나가 이 꼴을 안 봐서 다행이다...박수혁은 차가운 눈동자로 조카를 노려보았다. “박우혁, 너 정말 죽고 싶어?”상황을 살피던 이한석이 다급하게 다가갔다.“대표님, 말로 하시죠, 말로. 우혁 도련님도 장난하신 거겠죠. 은정 씨가 우혁 도련님을 좋아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기가 확 눌린 박우혁이지만 이한석의 말에 바로 발끈했다.“이 비서, 말 이상하게 하네? 내가 뭐 어때서? 지금까지 누나랑 스캔들 난 사람들 보니까 다 나 같은 스타일이더구만! 사랑도, 이상형도 바뀌기 마련이거든. 누나는 이제 무게만 잡는 남자 안 좋아해. 어리고 애교 넘치는 연하남 취향이라고!”하, 이 건방진 조카 자식을 어떻게 하면 좋으려나...박수혁은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박우혁, 다시 경고하는데 은정이한테서 떨어져. 자꾸만 선 넘으면 아무 여자랑 확 결혼시켜버릴 테니까.”압도적인 포스와 경고가 아닌 통보에 박우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뜩이나 집안에서도 정략결혼이네 약혼이네 떠들어대는 차에 박수혁까지 거든다면 정말 기정사실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그 말을 마지막으로 박수혁은 잡고 있던 멱살을 풀고 돌아섰다. 이한석은 방금 전 구매한 그림까지 야무지게 챙기고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박우혁을 바라보았다.그러게 왜 하필 대표님 여자를 건드려서는...한편, 소은정은 혼자서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이 연락처를 달라며 다가왔고 괜히 거절했다간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싶어 연락처를 건넸다.그런데 한 사람이 성공하니 사람
소은정이 전혀 믿지 않는 눈치자 박우혁도 눈을 질끈 감고 차에서 내렸다.범퍼가 찌그러진 박수혁의 차와 달리 박우혁의 차는 멀쩡한 모습에 박우혁은 속이 부글거렸다.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밑지는 장사인 것 같은데...평소라면 대충 보험사에 맡길 테지만 상대가 박수혁이니 머리가 지끈거렸다.박수혁이 피식 웃더니 물었다.“어떻게 할래?박우혁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삼촌 하고 싶은 대로 해요.”“그래? 그럼 너희 아버지한테 연락한다?”박수혁의 덤덤한 말투에 박우혁의 낯빛이 창백해지더니 바로 고,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요! 우리끼리 해결해요.”그제야 박수혁은 휴대폰을 내리고 차 키를 던져주었다.“그럼 지금 바로 내 차부터 수리해.”“지금이요?”차 키를 받은 박우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누나랑 영화 보기로 했는데...망설이는 박우혁의 모습에 박수혁이 다그쳤다.“안 가고 뭐해? 형한테 전화한다?”그제야 박우혁은 돌아서서 소은정에게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소은정은 의아한 얼굴로 박우혁이 박수혁의 차에 타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옷매무새를 정리한 박수혁이 운전석에 탔다.“뭐야? 왜 여기 타?”방금 전까지 일그러져 있던 박수혁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했다.“굳이 내 차를 수리해 주겠다고 해서. 영화 보러 간다며? 나랑 가지?”말을 마친 박수혁은 바로 영화관으로 차를 돌렸다.소은정과 안 지 몇 년이나 되지만 두 사람은 영화 한 번 함께 본 기억이 없었다. 연인으로서, 부부로서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못 해봤다는 생각에 박수혁의 마음이 착잡해졌다.한편 소은정도 이 상황이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됐어. 이혼한 부부가 영화관 데이트라니.”박수혁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그게 뭐? 이혼했다가 다시 재결합하는 부부도 많아.”박수혁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소은정은 아무 감정 없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운전 중인 박수혁의 시선은 계속 앞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소은정의 차가운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여자
박수혁에게 손목이 잡힌 소은정이 겨울 칼바람 같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재결합? 꿈 깨라고 해!그딴 제안은 농담이라고 해도 싫었다. 박수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왜 거짓말했어? 사진 속 그 여자 너 맞잖아.”왜 인정하지 않았던 걸까?하지만 그럼에도 소은정이 맞다는 걸 확인한 순간, 박수혁의 마음이 가벼워졌다. 실낱같은 인연이라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하지만 소은정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어 보였다.“나면 뭐가 달라져? 이제 와서 그 여자가 나라는 걸 알았다고 뭐가 달라지냐고?”소은정의 질문에 박수혁은 말문이 막혔다. 박수혁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곧 인내심이 바닥날 것 같은 모습에 소은정은 도발을 이어갔다.“내가 왜 거짓말을 했는지 정말 몰라서 물어? 난 당신이랑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다고. 난 한 번 끊어낸 관계는 다시 돌아보지 않아. 재결합? 그건 불가능해. 당신도 나한테 집착하지 말고 다른 여자 만나. 이제 각자 갈 길 가자고. 당신이 앞으로 누구랑 사귀든 누구랑 재혼을 하든 진심으로 축복할 테니까.”웃으면서 하는 말이었지만 한 마디 한 마디가 못처럼 가슴에 박혀버렸다.정말 이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건가? 말을 마친 소은정이 다시 차에서 내리려 했다.“소은정, 네 목숨은 내가 구한 거야. 정말 이대로 입 싹 닫고 넘어갈 거야?”치사하다는 것 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녀를 잡고 싶었다.과연, 그의 말에 소은정이 다시 박수혁을 돌아보았다.박수혁의 맑은 미소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섞여있었다.“그래. 재결합에 대한 얘기 다시 안 꺼낼게. 네 말대로 우리 결혼은 이제 끝났어. 우린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러니까 평범한 친구로 지낼 수도 있는 거 아니야?”그의 말에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 박수혁은 소은정의 표정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려 애썼다.하, 정말 생명의 은인만 아니었어도 그냥 무시하고 가는 건데...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고개를 돌린 박수혁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