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함께 있지만, 그녀가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박수혁은 거의 자지 못했다.다음날 의료팀은 박수혁의 상태를 재검하기 위해 준비했다. 남유주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박수혁은 어젯밤 빛을 느꼈다, 이 변화는 의료진에게 알렸고 두 시간의 검사를 마친 의료진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대표님 한 달도 안 됐는데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왼쪽 눈도 시력을 회복했고, 오른쪽 눈의 어혈도 풀리기 시작했으니 곧 정상적으로 돌아올 겁니다. 다만, 오른쪽 눈은 조금 더 치료가 필요한 상태이니 딱딱한 물건이 닿지 않게 조심하세요."박수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참, 유주 씨는 어디 갔습니까? 대표님 소식을 들었으면 분명 엄청나게 좋아하셨을 텐데!"회진할 때마다 남유주가 걱정을 했던 모습을 의료진은 기억하고 있었다. 박수혁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직 자고 있습니다."서로 바라보던 의사들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남유주는 10시 반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여태까지 잤다. 깊은 잠이 들었던 덕분에 그녀는 체력을 회복했다. 하품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남유주는 그제야 누구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박수혁의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시 롱 원피스로 갈아입고 있었다, 박수혁이 갈아입힌 것으로 보였다.화장실로 가서 세수한 그녀는 갑자기 손가락 부분에서 차가운 느낌을 받았다.고개를 숙여 손가락을 확인한 그녀는 자기의 약지에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눈살을 찌푸린 그녀는 이 반지가 언제 자기 손에 끼워진 것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어젯밤 술을 마시지 않았던 그녀는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의 기억은 없었다.박수혁은 그녀에게 명품 가방과 다이아몬드 액세서리 같은 것을 줬다, 남유주는 이것들을 자주 사용하지 않았기에 파우더룸에 보관했다.그녀도 명품이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걸 사용할 수 없었다. 그녀는 수천만 원에 달하는
남유주가 가자 박수혁도 내려왔다. 고용인은 그의 왼쪽 눈이 회복된 것을 알고 있었다."대표님, 유주 씨가 와인바로 간다고 했습니다."박수혁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난 회사로 가볼게."운전기사가 밖에서 줄곧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수혁은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남유주는 모두에게 음식을 대접한 뒤 돈도 따로 챙겨주었다. 아쉬워하던 그들은 괴로워했다.밥을 먹기 전, 한수근은 그녀에게 두 가지 선택이 가져오는 장단점에 관해 얘기했다.만약 장소를 옮기기로 선택한다면, 기존의 단골손님을 잃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왜냐하면, 모두 편하게 올 술집을 찾지, 굳이 멀리 있는 곳까지 가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곳은 아파트와 더 가까운 곳이라 민폐를 끼치면 신고를 당할 수 있었다. 득보다 실이 많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유주의 가족들이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게 장사가 잘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비뚤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들은 이 위험을 무릅쓰면서 장사를 하는 게 고민되었다. 하지만 만약 원지리에서 장사를 한다면 2년 이상 영업을 중지해야 한다. 2년 동안 적자일 것이다.그러나 박수혁이 제안한 조건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기존의 단골손님을 석권하는 동시에 그 거리 전체가 시내의 특색 있는 관광지로 만들어져 미래의 손님들도 잡을 수 있었다.한수근이 제시한 방안은 우선 2년 동안 다른 가게를 임대해 장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임대 대신 매각을 원했고, 단기간 내에 반드시 현금을 줘야 했다. 그래서 그의 계획도 잠시 보류되었다.남유주는 우선 모두에게 며칠간 휴가를 주기로 했다."서두르지 말자, 돈은 없어도 되지만, 목숨은 중요한 거니까.""역시 사장님은 마인드가 다르네요, 부자들은 말투부터 아주 여유가 넘쳐요."박수혁이 며칠 만에 출근하자 회사 사람들은 그를 반겼다.하지만 그의 안색이 너무 안 좋아 감히 그에게 인사를 건네지는 못했다."대표님, 건드리지 말자,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박수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시준에게 케이크 상자를 건네주며 담담한 어조로 당부했다."저녁에는 디저트 먹지 마, 오늘은 눈으로 감상만 하고, 먹지 마."눈으로만 보고 먹지 말라는 말에 박시준은 살짝 굳었다.작은 얼굴이 금세 괴롭게 변했다.남유주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박시준을 귀엽게 쳐다보았다.그녀는 기침을 한 번 하고 걸어갔다. "한입만 먹으면 돼. 양치질하고 나머지는 아래층에 둬.”박수혁이 그녀의 말에 반대하지 않자 박시준은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박시준이 방으로 들어가자, 남유주는 박수혁을 바라보며 문을 열어주고 팔을 잡아당겨 안으로 들어갔다."휴가 다 반납하시려고요?"그녀가 걱정을 해주는 것이 기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그가 억울한 듯 말했다."일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었어. 다음부터는 최대한 일찍 오도록 할게.”그는 자신이 너무 늦게 돌아왔기 때문에 남유주가 자기를 걱정해서, 불평하고 있다고 여겼다. 씁쓸했던 그의 마음은 따듯해졌다.남유주는 그의 눈이 좋아진 것을 몰랐다.그래서 둘이 지낼 때, 그래도 그녀가 돌봐줬다.다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이틀 동안 박수혁은 침대에서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피곤했던 남유주는 바로 잠이 들고 싶었다.다음 날 아침, 눈을 뜬 그녀는 손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텅 빈 손가락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더는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여겼다.박수혁은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했다.남유주는 한수근과 함께 와인바 자리를 알아보러 다녔다.2년 동안은 원자리에서 장사할 수 없었기에,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 했다.돌고 돌았지만, 지난번에 봤던 그 자리가 최적이었다.어쩌면,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간절히 원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었다.남유주와 한수근은 다시 한번 그곳으로 향했다.임대료를 올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곳에서 장사하고 싶었다.다행히, 지난번에 못 보았던 집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있었다.그녀 말
남유주는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흘겨보았다.그런 말은 더 이상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처음 만났던 순간의 불편함은 남씨 가문의 우울한 분위기가 급작스럽게 다가오면서 많은 불쾌한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하지만 남연의 말을 그녀가 전에 들은 적이 없었고, 생각을 안 해봤을 리가 없었다.남연이 어떻게 화를 내고 놀랄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그녀는 두 사람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한수근은 차마 그녀의 말을 들어줄 수가 없어서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입에서 왜 이렇게 구린내가 나요? 양치질 안 하고 나왔어요? 지금 사장님과 대표님이 사귀는 걸 질투하는 거예요? 하긴, 사장님은 대표님과 사귀기라도 하지, 당신은 쳐다보지도 않으니까, 말이 어쩔 수 없이 많은 것인가 싶기도 하네요! 저런 사람들은 상종하지 마요. 저들이야말로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페미니스트에요. 가서 대표님께 도움을 청해요."한수근은 남유주를 이끌고 돌아서서 나가려던 찰나, 남연은 그들의 얼굴에 비수를 꽂았다."잘한다, 잘한다 해줬더니, 넌 네가 진짜 배우라도 된 줄 아나 봐? 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 수혁 씨가 널 도와줄 거였으면 네가 굳이 여기까지 올 필요가 있겠어?"남유주는 무덤덤하고 무표정한 말투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 집이 마음에 들어서 온 거야, 만약 집주인이 당신인 줄 알았다면 오지도 않았을 거야. 미안한데, 내 신발이 더러워질까 봐 걱정될 정도야."말하는 동시에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카카오 택시를 부르고 콧방귀를 뀌면서 한수근과 함께 떠났다.남연은 코웃음을 치며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저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칠 뿐이었다.그녀는 인터넷 뉴스를 믿지 않았지만, 연예계를 접촉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을 뿐이고, 박수혁이 남유주를 스폰한다는 루머를 퍼뜨린 것은 강지민이었다.'근데 그게 뭐?''스폰'이라는 단어 자체는 경멸을 뜻하는 용어일 뿐이었다.두 사람은 차례로 밖으로 나갔다.한수근은
물론, 곽 감독은 핏기 없는 얼굴로 서 있었고, 이목구비가 잔뜩 구겨져 있었다.또한 몇 초 동안 얼어붙어 그 자리에 멍하니 있다가 침을 꿀꺽꿀꺽 삼키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박 대표님, 시간 잴 필요 없어요. 지금 갈 거예요. 지금 간다고요."그는 서둘러 짐을 챙기고 와인바에서 뛰쳐나오면서 외쳤다."갈게요... 갈게요..."그제야 술집은 다시 평화로움을 찾았고, 남유주는 킥킥 웃기에 바빴다."됐어요, 그 사람 갔어요. 이제 끊어요."그녀가 수화기 너머의 박수혁에게 말했다."잠깐만, 유주 씨! 어떤 색의 꽃을 좋아해?""..."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침묵하다, 자신의 청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그러자 박수혁이 인내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다시 한번 물었다."어떤 색깔의 꽃을 좋아해?"남유주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설마 나한테 꽃을 선물해 주려고요? 맘대로 하세요. 길가에서 어떤 꽃을 팔지 모르잖아요."그녀는 빙긋이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지난번에 박수혁이 선물한 꽃은 길거리에서 노파의 꽃이 다 팔리지 않아서, 인도주의 차원에서 꽃을 사서 욕조에 넣어서 사용했다.그들 사이에 꽃을 선물하는 것은 이제 적절하지 않고, 로맨스보다는 실용적인 것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했다."..."그는 가만히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기분이 갑자기 오르락내리락했다.'이게 다 곽 감독 때문이야, 그놈이 내 기분을 망쳤어!'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박수혁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단지 프러포즈 현장의 색상에 대해 물어봤을 뿐인데 박수혁의 굳은 표정을 보고 그들은 전전긍긍했다."박 대표님, 사모님은 어떤 색을 좋아하세요? 화이트?""재수 털려요.""핑크색은 어떠세요?""별로예요.""와인색은요?""딱딱해요.""파란색은 어떤가요?""새롭지 않아요."박수혁은 조바심이 난 얼굴로 하나하나 반박했다.다들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모두 일제히 고개를 푹 숙이고 침묵했다.모두들 하나같이 마음속으로 일하기
선생님은 시준이가 학교에서 조용하고 공부도 잘하는 착한 아이라고 말해주었다.그래서 성적은 크게 걱정할 것 없는데 심리적인 문제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박시준은 처음 전학을 왔을 때도 말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도 여전하다고 했다.선생님은 아이가 말수가 적은 이유가 가족들의 관심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이야기를 다 들은 남유주는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교무실을 나섰다.외부인인 그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그녀가 해줄 수 있는 건 지금 상황을 박수혁에게 사실대로 알리는 일뿐이었다.박시준은 남유주를 보자 환한 얼굴로 그녀에게 달려왔다.남유주는 아이한테 책가방을 건네받자, 아이는 활짝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모가 매일 저 데리러 오셨으면 좋겠어요.”남유주가 웃으며 말했다.“나도 그러고 싶은데 새로 오픈한 가게에 아직 할 일이 많아. 다음에 가게로 놀러와. 나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집에 가도 되고.”“좋아요!”아이는 뛸 듯이 기뻐했다.두 사람이 차에 오르자마자 박수혁한테 연락이 왔다.한수근이 말한 것처럼 그가 너무 빈번히 연락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지금 집으로 가려고. 왜?”“아직 학교야? 지금 운전기사 보낼게.”“밥 한끼 먹는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내가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출발하지 말고 거기서 기다려.”남유주는 옆에 있는 박시준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마침 나도 할 얘기가 있었어.”전화를 끊은 그녀는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다.“아빠가 우리 데리러 오신대. 근처에 차 세우고 기다리자.”박수혁은 직접 온 게 아니라 운전기사만 보냈다.남유주는 좀 어이가 없었지만, 인사를 건네고 차에 올랐다.어딘가 들떠 보이는 운전기사는 가는 길에 웃기는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하지만 남유주는 피곤해서 대충 응대만 해주고 말았다.운전기사는 근교에 있는 리조트로 향했다. 한정된 인물에게만 예약을 받고 운영하는 리조트였다.운전기사가 리조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남유주는 웃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너무 충동적으로 저지른 것 같아.”박수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품에서 반지를 꺼냈다.전에 이유도 없이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졌다가 그녀가 돌려줬던 그 반지였다.남유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억지로 유지하고 있던 미소도 사라졌다.그녀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고 있는데 박수혁은 열정이 넘쳤다.그는 약간 격앙된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를 아래에서 내려다보고 있자니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그는 진심일까?하지만 그 진심은 너무 일방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남유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눈물을 흘리고 기뻐해야 했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녀 자신조차 놀라고 있었다.전혀 감동도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차분해졌다.그녀는 어떤 방식으로 거절해야 그가 곤란해지지 않을지 고민했다.탕 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폭죽이 터졌다.하늘을 수놓는 불꽃에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그녀는 결심을 굳힌 듯, 한숨을 내쉬었다.불꽃은 아름답지만 그걸 감상할 기분은 아니었다.이 모든 게 그가 준비한 이벤트였을 줄이야.박수혁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반지를 끼워주려고 했다.남유주는 차가운 촉감이 느껴지자, 손을 움츠리며 주먹을 쥐었다.그리고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돌아가서 얘기하자. 여긴 사람이 너무 많아.”박수혁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살짝 굳더니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어. 남유주, 당신은 항상 결혼하고 싶어했잖아? 많이 고민했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예전에 내가 너무 질질 끌어서 당신이 상처받은 걸 알고 나도 괴로웠어. 더 이상 당신이 속상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만약 꼭 결혼해야 한다면 신부는 남유주 당신이었으면 좋겠어. 비록 함께한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그는 멘트마저 완벽하게 준비해 왔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감정
그때부터 이미 그녀의 마음은 멀어지고 있었다.그녀는 발 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박수혁은 차를 세우고 차 문을 열었다.남유주는 박시준을 먼저 태우고 자신도 뒷좌석에 올랐다.차 안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그에게는 1분 1초가 고역이었다.손에는 벌써 식은땀이 고였는데 그를 제외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박시준도 무거운 분위기를 느꼈는지 눈치를 보며 입을 꼭 다물었다.남유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깥 풍경에 시선을 고정했다.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하늘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그들은 가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집으로 돌아오자, 박시준은 얌전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남유주도 차에서 내렸다.박수혁은 굳은 표정으로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그는 흡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가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만 찾았는데 지금은 니코틴이 필요했다.담배에 불을 붙이자 뽀얀 연기가 공중에 흩어졌다.그렇게 15분이 지나가고 그는 차에서 내렸다.그는 용기를 내서 침실로 들어갔다.샤워를 마친 남유주가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그는 창가에 있는 소파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아까 있었던 일이 꿈만 같이 느껴졌다.남유주가 다가오더니 그를 힐끗 바라보았다.아무렇지 않게 웃고 싶은데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밖에서 분주하게 보내다 보니 몸에 땀 냄새가 배이지 않았더라면 오자마자 욕실부터 찾지 않았을 것이다.그에게 해야 할 얘기가 있었다.그녀는 어색한 표정으로 기침했다.자리에서 일어선 박수혁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설수록 마음은 무거워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남유주는 소파에 앉아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한테 할 말이 많은 거 알아. 우리 사이의 일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둘이 얘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 사람들 앞에서 얼굴 붉히고 싸우면 좀 그렇잖아.”박수혁은 가슴이 칼에 찔린 듯 아팠다.그는 입술을 꾹 깨물고 가라앉은 목소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