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주는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으며 배를 움켜쥐고 걸어갔다.“박 대표님, 술을 제조하는 방법은 언제 배우신 거예요?”앉아있던 박수혁은 짜증이 났지만 참을 수 밖에 없었다.그녀의 말에 솔직하게 말했다.“할 줄 몰라, 내 맘대로 섞은 거야. 어차피 막 섞어도 무슨 맛인지 모를 텐데. 방금 그 사람들은 술맛을 모르는 게 확실해.” 알고 보니 아가씨들을 속이기 쉽다고 생각한 거네? 박수혁은 또 한 잔을 만들더니 건네주었다.“공짜로 줄게.”남유주는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박 대표님, 여기가 누구의 영역인지 잊으셨어요?”“내가 유주 씨 영역에서 만든 술을 공짜로 주는 것도 안돼?”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정말 부끄러운 줄 모르네!남유주는 참지 못하고 혀를 내둘렀다.“박 대표님, 신분이 높아서 다행이에요.”“그렇지 않으면?”“벌써 맞아 죽었을걸요.”박수혁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두 사람은 모처럼 평화로운 모습이다.심지어 싸우고 나서 처음 아무렇지 않게 하는 대화였다. 방금 전 경직된 분위기보다 훨씬 나았다.남유주는 말은 그렇게 해도 술잔을 집어 들고 살짝 맛보더니 눈을 찡그리며 바로 뱉어냈다.“레몬주스를 얼마나 넣은 거예요?”심지어 농축액이었다.박수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의 병을 보았다.“반 병쯤 넣은 것 같은데.”남유주가 입을 다물었다.“......”사업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박수혁에 대해 다시 알게 된 것 같았다.남유주는 카운터에서 그를 내보냈다.박수혁은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어쨌든 돈을 내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는 명분이라도 있었으니.“왜 다시 돌아온 거예요?”“음, 유주 씨가 생각 다 할 때까지 기다리려고.”“참나...”남유주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이었다.밤새도록 남유주는 그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결국 그를 따라갔다.화해가 아니라 그만두는 것이었다.그녀도 확실하게 생각했다.이번 생은 그냥 대
“아닙니다, 기사가 데리러 올 겁니다.”천유희가 웃음을 지었다.그가 사양하는 말들을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진심도 아닐 텐데 왜 이렇게 적극적일까?박수혁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머리부터 발끝까지 도도하고 차갑고 낯선 사람이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침울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난번에 분명 그가 곁에 있던 여자에게 따뜻하게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았다.착각이 아니었다.천유희는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사업을 할만한 사람이 아니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잠시 그녀를 밀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하지만 앞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천유희는 CK 그룹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정확히 말하면 남편, 그녀의 사업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그녀 대신 CK 그룹을 관리하고 감히 아무도 넘보지 못하도록.박수혁이 바로 최고의 선택이었다.그녀는 그의 감정을 탐내지 않고 그의 주변에 여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단지 괜찮은 거래라고 생각했다.다만 아버지는 그녀에게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당부했다.허나 성안 그룹에서 겪었던 일이 아직도 생생했으니.그녀는 당연히 그렇게 바보처럼 행동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각자 기사를 기다리며 함께 서있었다.역시나 천유희의 기사가 먼저 왔다.박수혁은 예의상 그녀를 위해 차 문을 열어주었다.천유희는 부드럽게 감사 인사를 하고 허리를 굽혀 차에 올라탔다.다만 치마가 너무 길어 문틈에 끼어버리고 말았다.그녀가 막 허리를 굽히려 하는 순간 박수혁은 허리를 굽힌 김에 머리를 숙여 끼어버린 치맛자락을 빼주었다.불빛에 비친 남자의 옆모습이 유난히 밝게 비났다. 마치 조각을 한 얼굴처럼 섹시하고 차분해 보였다.왠지 모르게 천유희의 마음이 흔들리더니 뭔가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날 박수혁이 옆에 있던 남유주에게 웃음을 짓는 모습이 보인 것 같기도 했다.그녀는
“CK 그룹 사람들에게 말해, 유희 아가씨만 괜찮다면 두 번째 방안을 선택하겠다고.”인터넷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화풀이하는 게 분명했다.구경만 하게 할 수는 없으니 그는 이 판을 갖고 놀려고 했다.이한석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박 대표님.”박수혁의 결정은 회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위해 내린 것으로, 지적할 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었다.그러다 오후.실기간 검색어의 열기는 점차 사라졌다.구경꾼들도 흥미를 잃고 하나 둘 흩어졌다.그러다 잔잔해졌을 무렵,태한 그룹과 CK 그룹이 공동으로 이번 협력의 초점을 제시했다.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분위기를 띄우기 시작했다.그뿐만이 아니다.사람들은 낭만적인 이야기를 지어내기도 했고 포토샵으로 웨딩사진까지 만들어냈다.그러나 이에 대해 양측 모두 감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하지만 인터넷에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태한 그룹과 CK 그룹의 주가는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이 일의 최종 결과는 자본가들의 이득으로 번지고 말았다.태한 그룹 직원들은 기쁨과 즐거움에 잠겼고 박수혁이 천유희와 결혼하길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오히려 박수혁 본인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비록 이 싸움에서 이긴 격이었지만 마음은 좀 불편했다.심지어 숨이 막혔다.말할 수 없는 불안감도 느껴졌다.시간을 보니 5시 반이다, 퇴근할 시간이다.박수혁은 물건을 챙겨서 나갔다.이한석은 그의 그런 모습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차 안.박수혁은 남유주에 대해 미리 물어보려고 가정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집에 있을까?아니면 와인바에 찾아갈까?그는 마침내 불안해하고 있는 원인을 찾았다.남유주 때문인거잖아?싸웠던 게 고작 며칠 전 일이고 지금은 화가 난 나머지 두 번째 방안을 선택했는데 그녀가 알게 되면 분명 오해할 것이었다.그는 일찍 돌아가 그녀에게 확실하게 설명해야 했다.가정부가 전화를 받자, 수혁은 유주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유주 아가씨요? 아, 점심에 나가셨
“지금 과일이 얼마나 비싼데요.”박수혁이 쓰레기 인간이라 과일도 주기 아까웠다.남유주는 할 말을 잃었다.박수혁이 룸으로 들어간지 꽤 오래되었지만 아무도 들어 가지 않았다.그곳에 앉아 있는 박수혁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남유주의 말에 처음에는 침묵했고, 그러다가 반성했다.‘내가 잘못한 거 맞지?’다들 그와 천유희의 관계를 추측하고 있었지만,그는 아무런 해석도 하지 않았다.남유주는 정말 그를 믿고 있는 것일까?아니면 신경 쓰지 않는 것일까?박수혁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실타래가 엉킨 듯 도무지 두서가 잡히지 않았다.짜증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왜 아직도 안 오는 거지?’생각을 하던 그때,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한수근이 과일 쟁반과 술을 들고 들어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사장님이 드리라고 했어요. 박 대표님 필요한 게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유주 씨는요? 직접 오라고 해요.”박수혁은 초조함과 불안감을 억누르며 말했다.그렇다, 그런 불안감이 다시 몰려왔다.그는 도무지 이 불안감을 진정시킬 방법이 없었다.박수혁은 당장 그녀를 만나 그녀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설마 정말 내가 천유희와 어울리니까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설마 이미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날 고작 그런 놈으로 생각한 건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여자와 어울린다고 할 수 있지?’한수근은 담담하게 웃으며 정중히 거절했다.“죄송해요, 박 대표님. 사장님은 바쁘시니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박수혁은 쌀쌀맞은 눈빛으로 한수근을 노려보았다.“뭐라고요? 유주 씨가 그렇게 말하라고 했어요?”순간 한수근은 숨이 멎을 것 같았지만 침착하게 박수혁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아니요, 아무도 그렇게 말하라고 시킨 적 없어요. 박 대표님, 전에 두 분을 지지했던 건 박 대표님이 사장님을 지켜드리고 돌봐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지금 보니 제가 순진했네요.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입구를 바라보며 한참을 생각했다.이때 강서진은 눈빛이 반짝이더니 뭔가 알아차린 것 같았다.‘아무 사이 아니라던 말은, 어쩌면 평범한 사이가 아니라서 그랬던 건 아닐까? 오늘 천유희와의 스캔들이 시끌벅적하게 터졌는데 어떤 여자가 참을 수 있겠어. 그러니까 지금 남유주는 완전 빡친거 맞지?’계단을 내려온 박수혁은 아무렇지 않게 리듬에 맞춰 몸을 가볍게 흔들며 손님들과 대화하는 남유주를 보았다.더는 참을 수 없다.박수혁은 표정이 멈칫하더니 화가 폭발하는 것 같았다.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남유주를 끌고 나갔다.그렇게 두 사람은 입구에 도달했다.남유주가 아무리 반항해도, 아무리 뭐라고 말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어이가 없었다.입구를 나서니 박수혁도 긴장이 풀렸고, 남유주는 그 틈을 타서 손을 뿌리쳤다.그녀는 일초라도 박수혁과 얽히기 싫었고 이로 인해 오해받는 것도 싫었다.그는 그녀가 생각이 깊다고 생각했어야 했지만, 오히려 마음이 불쾌했다.화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그러다 지금, 결국 극치에 도달했다.남유주가 먼저 선수를 쳤다.“미쳤어요?”“오늘 왜 이래요? 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죠?”박수혁은 곧게 서서 날카롭고 차가운 기운을 풍겨왔다.남유주를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온통 남유주밖에 없었다.그녀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그는 바로 알아챘다.남유주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오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뭘 물어야 할까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해요. 빙빙 돌리지 말고.그리고, 전화하면 되지 왜 끌고 나와요? 보는 눈이 얼마나 많은데.”박수혁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전화를 몇 통이나 걸었는데, 받았어요?”박수혁의 목소리는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남유주는 멈칫하더니 주머니를 만졌다.그제야 휴대폰을 카운터에 둔 것이 생각났다.하지만 그녀는 전혀 기가 죽지 않았으며 강한 어조로 말했다.“저녁에는 바빠서 전화 받을 시간이 없어요
박수혁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표정은 극도로 일그러졌다.한참 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유주 씨 생각은요?”남유주는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그래요, 그렇다면 오늘부로 연락처도 지우고 다신 찾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박수혁 씨도 저 찾지 말아 주세요. 서로 몰랐던 때로 돌아가자고요.”남유주는 이성적으로 두 사람의 미래를 생각했다.꼭 두 사람이 남이였던 그때와 같은 말이다.박수혁은 표정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무거워졌다.수많은 감정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헤집었다. 이 순간 끝을 알 수 없는 바다 위에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바람만 불면 거센 파토가 몰아치는 바다.“아니요.”박수혁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금 매우 고통스러웠다.“네?”“나와 아무 상관 없는 여자야. 그러니까 결혼은 더욱 말도 안 돼. 설명하려고 찾아왔어.”박수혁은 남유주의 표정을 찬찬히 보았지만,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호수처럼 잔잔했다.하여 박수혁은 남을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렇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그는 깊은숨을 내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두 기업은 곧 협력을 앞두고 있어. 그런데 이 상황에 관계에 선을 긋게 되면 사람들은 두 기업의 협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해. 그렇게 되면 모두 불리해. 그래서 대응하지 않기로 했어.”박수혁은 뜨거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마음에 찔리는 부분도 있었다.그에겐 두 가지 방안이 있었다.대응하더라도 큰 손해는 없다. 그저 지금의 효과가 없을 뿐이다.하지만 이 방안을 말하게 되면 제 발등을 제가 찍는 격이 되어버린다.이 순간,박수혁은 남유주의 표정에 변화가 있기를 기다렸다.잔잔하지만 않으면 된다.하지만 그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박수혁의 말을 듣고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만 끄덕였다.믿는 건지, 믿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었다.“아, 작별 인사 하러 온 줄 알았어요.”왠지 실망한 것 같은 말투다.박수혁은 표정이 굳어지더
곰곰이 생각하던 박시준은 가족을 위해 힘을 보태기로 했다.박시준은 몸을 돌려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기사에게 와인바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내가 직접 아줌마 데려올 거야!’와인바.남유주는 영업이 끝날 때까지 버티려고 했다.하지만 요즘 생체시계가 너무 불규칙해서 그런지 새벽도 안 되었는데 잠이 몰려왔다.한수근은 그녀에게 올라가서 눈을 좀 붙이라고 했다. 어쨌든 이 시간에는 할 일이 별로 없다.남유주가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그때, 한수근이 다급히 말했다.“올라갈 필요 없겠네요. 데리러 왔어요.”남유주는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그곳에는 박시준이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남유주는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왔어? 수업 끝난 거야?”박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아빠가 너무 늦어서 아줌마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기사 아저씨 보내라고 하셨는데 저도 같이 왔어요. 아줌마, 집에 갈까요?”박시준은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의 손을 잡았다.맑은 눈동자에 찬란한 불빛이 비추어 마치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였다.남유주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어차피 지금 돌아가도 박수혁에게 할 말이 없으니, 그녀는 그저 위층에서 자려고 했었다.하지만 박시준이 직접 왔으니 거절하기도 애매하다.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두 사람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박시준은 그녀의 어깨에 기대 잠이 들었고 그녀도 졸려서 눈을 뜰 수 없었다.드디어 집에 도착했다.기사는 그들이 놀라기라도 할까 봐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유주 씨, 집에 도착했어요.”남유주는 졸린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눈을 제대로 뜨기도 전에 차 문이 열렸다.박수혁의 모습이 뒤에 있는 가로등 불빛을 가로막고 있었다.그는 어둠과 하나가 되었고 남유주는 그의 정서를 보아낼 수 없었다.그런데 박수혁이 직접 데리러 내려오다니, 정말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박수혁은 깊게 잠든 박시준을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박수혁은 아이를
바깥바람이 따뜻하게 불어 들어오자,차안의 침향목 냄새가 옅어졌다.차는 안정적이고 편하게 달렸다.차 안의 남자는 날카롭고 엄숙한 얼굴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아무도 주의하지 못했다.바로 옆 차선에서 검은색 벤틀리의 왼쪽 뒤편 차가 보였다.원망으로 가득 찬 시뻘건 핏발이 선 눈동자가 검은 벤틀리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그녀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 대표님, 때가 되었어요. 사람은요?”전화기에서 희미한 전류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부드럽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성미려 씨 차 뒤편의 세 번째 빨간색 일반 승용차를 따라가세요. 일이 성사되고 보는 시선이 없을 때 차에 오르면 기사가 모셔다 드릴 겁니다.”그 말에 성미려는 백미러를 바라보았다.말 그대로 세 번째 차가 바로 빨간 차였다.그녀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래요.”성미려는 만족스러운 듯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박수혁과 함께 죽으려 했으나 죽기 싫었다. 그러니 박수혁이 혼자 죽는 모습을 지켜볼 생각이다!그녀의 실력으로 인터넷에서 박수혁을 깎아내리긴 힘들었다. 박수혁은 너무 쉽게 자본을 장악할 수 있다.하여 그녀는 가장 어리석지만 효과적인 방법을 사용하려고 한다.그때에도 잔인하게 그의 몸에 칼을 찔렀다.여기까지 생각한 성미려는 긴장감이 사라지고, 순간 의욕으로 가득 찼다.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바람에 그녀는 저도 몰래 눈을 감았고, 그 사이 갑자기 앞길이 막혀버렸다.하얀색 차 한 대가 갑자기 그녀의 앞으로 끼어들려고 했다.이렇게 되면 그녀는 검은색 벤틀리를 볼 수 없게 된다.그녀는 불만스럽게 경적을 울렸다.하얀 차도 물러서지 않고 여러 번 경적을 울렸다.당황한 성미려는 분노가 싹 가셨고, 경적 소리에 박수혁이 눈치라도 챌까 봐 걱정되었다.그녀는 다급히 양쪽의 차창을 올리고 약간 뒤로 차를 후진시켰다.하얀 차는 완전히 성미려 차 앞으로 끼어들었다.차주는 남자였는데 갑자기 차창을 내리더니 가운뎃 손가락을 치켜들고 도발했다.화가 난 성미려는 안색이 새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