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고개를 숙여 아들의 머리를 만지며 중얼거렸다.“제까짓 게 뭐라고 이래라 저래라야. 자기가 이 집안 주인이라도 돼?”여자는 중얼거리며 아들을 데리고 돌아섰다.하지만 두 걸음도 걷지 못하고, 별장 2층의 베란다로 담배꽁초 하나가 그녀의 앞에 떨어졌다.다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고, 그곳에는 박수혁과 강서진, 그리고 약간 뚱뚱한 남자가 서 있었다.뚱뚱한 남자는 창백한 얼굴로 박수혁의 눈치를 살피더니 여자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여자는 순간 사색이 되어 제자리에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뒤에서 호박씨를 까다가 들켜버린 것이다. 여자는 박수혁에게 이런 상황을 들켜버릴 줄 생각도 못 했다.남유주도 깜짝 놀란 표정으로 시선을 옮겼다가 박수혁을 발견하고는, 이내 박시준의 손을 잡고 흥분하며 말했다.“박수혁 씨, 여기 누가 당신 아들 괴롭히는데 모르는 척할래요? 바로 이 뚱땡이 아줌마예요!”그녀의 거침없는 말은 얼어붙어 있던 정적을 완전히 깨버렸다.여자는 창백한 얼굴로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박 대표님……”하지만 그 여자의 옆에 있던 아들이 참지 못하고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엄마, 거짓말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박시준 엄마 살인범 맞아요. 박시준도 나중에 살인범이 될 거라 박시준 아빠도 인정하지 않은 아이예요! 그러다가 박시준 아빠가 결혼해서 박시준의 동생이 생기면 박시준은 버려지잖아요!”여자는 황급히 아이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박수혁의 얼굴은 굳어져 버렸고 그의 눈빛은 사람도 얼려 죽일 수 있을 만큼 차가워졌다.박수혁 옆에 있는 뚱뚱한 남자가 바로 여자의 남편이었고, 그 말에 남자는 아이에게 호통을 쳤다. “그 입 닥쳐!”남자는 박수혁에게 투자를 청하려고 했고, 겨우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하필 이런 장면을 보게 되다니. 남자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박 대표님,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라 악의는 없습니다. 집에 돌아가 제가 단단히 혼을 내겠습니다!”남자는 아래층의 아
따사로운 날씨와, 상쾌한 공기.박수혁은 그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그는 강서진의 말을 다소 못마땅하게 생각했다.욕을 한다는 건 예의가 없다는 것이고, 융통성이 없다는 건 멍청하다는 뜻이며 예쁜데 순진해 보이는 건 자신을 지킬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괜찮은 것 같다고?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남유주를 박수혁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박수혁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직도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지속하다가 결국 참을 수 없어서 살인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박수혁은 어린양을 구하는 하나님이 아니었고, 그녀에게 동정심이 별로 없었다.그저 이제야 점점 정체가 드러나는 남유주의 본 모습에 호기심이 생길 뿐이었다. 그녀는 실패한 결혼 때문에 자기 자신을 나약한 모습으로 만들었다.강서진은 무덤덤한 박수혁의 표정에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리고 아이들이 하는 말은 전부 어른들에게서 들은 말이야. 그런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네가 시준이를 아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이 시준이를 괴롭히게 놔둘 수는 없잖아.시준이가 엄청 철이 들었던데, 그런 모욕을 당했는데도 참고만 있다니. 저 여자가 아니었으면 시준이는 아마 평생 너한테 일러바치지 않았을 거야.왜인 줄 알아?”박수혁은 멈칫하더니 무거운 눈빛으로 강서진을 바라보며 되물었다.“왜인데?”강서진은 한숨을 내쉬며 진지하게 말했다.“일러바칠 줄 아는 애들은 모두 믿는 구석이 있어서야. 자기가 일러바치면 누군가 대신 나서줄 걸 아니까.하지만 일러바치지 않는 아이는 어차피 일러바쳐 봐야 도와줄 사람도 없고 오히려 혼날 것만 같아서 그래.수혁아, 아이와 사업은 달라. 먹고 입는 것만 충족해서 되는 게 아니야.소씨 가문의 큰아들 소지혁 좀 봐봐. 말수도 적어서 조용한 성격이지만 당하고만 있는 성격은 아니잖아.아까 그 뚱뚱한 애가 모래 좀 집어던졌다고 소지혁 그 아이는 바로 돌을 던졌어.그러니 뚱뚱한 아이도 감히 소지혁을 괴롭히지 못했지. 이
남유주의 말에 박수혁은 멈칫했지만 이내 그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갑자기, 누군가 물에 뛰어드는 소리가 들렸다.그제야 박수혁은 찌푸렸던 미간을 풀고 남유주의 손을 놓아주었다.박수혁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남유주는 이미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녀는 뭔가……오해한 것 같다.박수혁은 마음이 초조해졌지만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도련님이 물에 빠졌어요—”누군가 소리를 질러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고, 안에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도 전부 밖으로 나왔다.박수혁이 밖으로 나왔을 때, 성미려는 박시준을 품에 안고 힘겹게 수영장에서 나왔다.두 사람은 흠뻑 젖은 채 추위에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흠뻑 젖은 성미려의 머리카락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화장도 다 지워졌다.박수혁이 수영장을 향해 걸어갔을 때, 마침 성미려가 수영장의 마지막 계단을 딛고 올라고 있었다. 그녀는 한발 늦은 남유주와 눈을 마주쳤다.성미려의 눈빛은 평온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하지만 남유주는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다급히 달려가 외투를 벗어 온몸을 떨고 있는 박시준의 몸을 감쌌다.가을 날씨는 쌀쌀했다. 수영장의 물을 따뜻한 물로 교체하지 않았으니 물은 매우 차가웠다. 성미려는 불편한 것을 참으며 박시준의 상태를 걱정했다.“도련님 어때요? 괜찮은 거죠?”박시준의 호흡은 정상이지만 물을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남유주는 즉각 응급조치를 취했다. 가슴을 몇 번 누르니 박시준은 물을 뱉으며 심하게 기침을 했다.창백한 얼굴의 아이는 너무 가여웠다.남유주도 너무 놀라 온몸이 떨려왔다.왠지 모르게, 그녀는 너무 무서웠고, 눈앞에서 이 아이가 목숨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그녀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함께 맛있는 것을 먹자던 박시준이었기에…성미려는 입술을 꽉 깨물고 박수혁을 향해 말했다.“박 대표님, 우선 의사 선생님부터 찾아주세요. 아이한테 별일 없었으면 좋겠네요.”말을 끝낸 그녀는 기침을 하며 온몸을 떨었다.하지만 박수혁은 전혀 외투를 벗
주위 사람들은 복잡한 눈빛으로 성미려를 바라보았다.성미려도 더는 침착할 수 없었다.송호연의 폭로는 그녀를 당황하게 했고, 이는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녀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러졌다.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그녀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다.그러니 이런 풍파도 겪어봤을 것이고, 이런 상황에 크게 겁먹지 않았다.당황하고 혼란스러웠지만 그녀는 추위를 참고 벌벌 떨며 일어나더니 두려움과 당황함을 숨기고 가여운 눈빛으로 박수혁을 바라보았다.“박 대표님, 이게 목적이었다면 도달하셨네요. 이 여자의 헛소리는 오직 바보만이 믿을 거예요. 이 여자를 어디서 찾아왔는지, 그리고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저는 전혀 알 수가 없어요.하지만 제가 시준 도련님을 구했다는 건 변함이 없어요. 만약 박 대표님이 저 여자의 말만 믿는다면 저도 굳이 할 말은 없네요.오늘은 그저 시준 도련님의 생일 파티라 참석한 것뿐이에요. 이런 해프닝이 생겨서 죄송하게 생각해요. 이렇게 된 이상 저도 더는 머무를 이유가 없겠네요. 만약 충분한 증거가 있으시다면 신고하셔도 좋아요. 저 여자 말만 듣지 마시고요.”성미려는 싸늘한 눈빛으로 송호연을 바라보았다.송호연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고, 그녀는 조마조마했다. 그녀는 성미려가 무서웠지만, 박수혁이 더 무서운 존재였다. 턱에서 전해지는 고통은 그녀의 모든 신경을 자극했다.이렇게 된 이상 그녀도 굳이 성미려를 위해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다. 미안하지만 사실을 말해야 했다.성미려는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이만하면 됐다고 판단해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다 해도 이런 몰골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반드시 옷을 갈아입고 당당하게 여기서 나가야 한다.아니면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이 된다.사람들은 서로 눈치 보기 바빴다.이한석은 자연스럽게 박수혁을 쳐다보았고 박수혁은 싸늘한 눈빛으로 서 있었다. 박수혁은 지금 기분이 아주 더러웠다. 이미 밝혀진 사실 앞에서, 만약 성미려가 고분고분
남유주의 눈빛에는 거부감과 복잡한 감정이 오갔다.그녀는 이 말들을 줄곧 마음속에 두었다가 결국 내뱉었다.아무리 박수혁이 박시준을 소홀하게 생각해도 마음속에는 아들의 존재가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하지만 오늘 그녀의 생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박수혁은 자신의 아들이 물속에서 몸부림치는 것을 직접 보았고, 아무 상관 없는 남유주도 차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아이를 구하려고 하는데 아버지라는 사람은 그녀를 막았다.‘이 남자에게 정말 감정이란 게 존재할까?’그녀는 박수혁이라는 사람에게 의심을 품었다.자기 아들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박수혁의 행동은 그녀를 두렵게 했다.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처럼 낯설었다.하지만 사실은 눈앞에 펼쳐져 있다.자신을 속이려 해도 그럴만한 근거가 없다.하지만 그녀는 박시준을 위해 논쟁할 자격이 없다, 그녀는 그저 아무 상관 없는 남일 뿐이니까. 그녀는 추웠고,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박수혁은 눈빛이 점차 식어가더니 가슴속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온몸으로 치솟았다.“남유주 씨가 뭘 안다고 그래요? 이게 최선이었어요. 그렇다고 시준이 옆에 시한폭탄을 그대로 놔둬요?”한시라도 빨리 시한폭탄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대체 뭘 안다고 날 비난해? 무슨 근거로?’“시한폭탄이요? 박수혁 씨가 아들에게 골라준 새엄마 아니었어요? 박수혁 씨가 데려온 사람 아닌가요?”남유주의 말은 찬물처럼 박수혁의 머리에 끼얹었고, 그 추위는 뼛속까지 스며들었다.“그래서 가여운 아이를 이용해 시한폭탄을 제거했다고요? 박수혁 씨가 말해 놓고도 웃기지 않나요?”말을 끝낸 남유주는 몸을 돌려 떠나갔다.박수혁은 그녀의 팔목을 당기더니 벽으로 밀쳤고 그림자는 햇빛을 가렸다.그녀는 그저 빛과 그림자에 희미하게 묻혀버린 박수혁의 날카롭고 차가운 윤곽만 보였다.“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남유주 씨 신분을 기억해요. 그쪽은 손님일 뿐인데 절 비난할 자격이 있어요?설마 남유
박시준은 아직도 방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텐데 이 상황에서 남유주를 데려다 줄 생각을 하다니?남유주는 심지어 박시준에게 죄책감이 생겼고, 그녀는 박수혁의 호의를 받고 싶지 않았다.박수혁은 똑바로 선 채로 그녀를 차갑고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기사도 감히 차를 출발시킬 엄두를 내지 못했고, 혹시라도 박수혁을 다치게 한다면 뒷감당이 어마어마할 것이다.양측 모두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으려 했고, 옆에 있던 성미려는 안색이 점점 일그러졌다.추운 것도 있지만 이 상황에 화가 났다.아무리 바보라도 박수혁이 남유주를 특별하게 대한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성미려는 몰래 주먹을 꽉 쥐고 차갑게 웃었다.그녀는 박수혁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고, 오히려 남유주를 담담하게 쳐다보며 귀찮은 듯한 말투로 말했다.“남유주 씨, 보시다시피 저는 물속에 들어갔다 나와서 몸이 많이 불편해요. 병원에 가봐야 해서 남유주 씨를 바래다 드릴 수 없겠네요.”남유주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박수혁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다 이 남자 때문이야.’남유주는 하는 수 없이 차에서 내렸다.비록 그녀도 성미려를 싫어하지만, 박수혁과 비하면 성미려는 아직 애송이다.남유주가 차에서 내리자 박수혁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성미려가 가든 말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경찰에서 정확히 조사할 때까지 성미려를 용의자로 끌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수영장 주변에 휘발유를 부은 송호연만 데려갔고, 성미려는 송호연의 증언이 있어야만 호송된다.성씨 가문에서 송호연의 입을 계속 막을지는 그들의 선택이다.박수혁은 끝까지 몰아붙일 생각은 없다.차에서 내린 남유주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태양은 구름에 가려 공기는 서늘했고 차가운 바람도 쌀쌀하게 불어왔다.그녀는 오싹한 몸을 감싸며 박수혁에게 물었다.“박수혁 씨, 대체 뭘 하려는 거죠? 가는 것도 제 마음대로 가면 안 돼요?”사실 박수혁도 왜 이러는지 알 수 없다.남유주에게 그렇게 핀잔을 듣고서도 그녀를 쫓아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다니.그는 남유주가
소지혁은 침묵했다.“괜히 말했어요. 말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안 그러면 시준이가 슬퍼할 거예요.”소은정은 마지못해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고모 아무것도 못 들었어. 하지만 그 가문의 일은 멀리하는 게 좋아.”소지혁은 입술을 오므리더니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시준이는 아빠를 무서워하겠지만 전 하나도 안 무서워요. 저한테 어떻게 할 수 없어요!”전동하는 소지혁의 말에 찬성한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맞아. 우리 씩씩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러니 다른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어. 게다가 누구나 다 그 사람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야.”소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전동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빨리 먹어. 이따가 고모부가 맛있는 거 사줄게. 햄버거 어때?”소은정은 아무 말 없이 전동하를 노려보았다.소지혁이 말했다.“아빠가 햄버거 못 먹게 해요.”“고모부가 먹고 싶어서 그래. 그리고 새봄이한테 사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약속은 지켜야지!”전동하는 배 째라는 식으로 말했다.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누가 그런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라고 했어요?”전동하가 나약한 목소리로 말했다.“숙제 만점 맞으면 사주겠다고 했는데 정말 만점 맞아온 걸 어떡해요!”소은정은 할 말을 잃었다.결국 다들 함께 햄버거를 먹고 소지혁을 집으로 데려다주었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소지혁은 박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박시준은 이미 회복되었고 목소리에도 힘이 생겼다.소지혁은 선을 지키며 박시준을 위로하고 이 일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친구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친구가 좋은 친구인 것이다. ……보름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남유주의 와인바는 순조롭게 돌아갔고, 가끔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있었지만 금방 해결되었다.박우혁은 가끔 모습을 드러내며 남유주에게 집착을 보였다.마침내 어느 날, 소은정과 전동하는 몇몇 친구들과 이곳을 찾았고 박우혁과 마주치게 되었다. 박우혁은 화들짝 놀
성근석은 일부러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고 박수혁은 이미 사무실로 돌아왔다.다들 함께 나와 이미 회의실이 있는 층을 떠났기에 성근석이 나왔을 때는 거의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부지런한 이한석만 기다리고 있었고, 성근석을 발견한 이한석은 예의 있게 웃으며 말했다.“성 대표님, 이번 회의에 직접 와주셔서 영광입니다.”성근석은 웃는 듯 마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황송하네요. 우리 딸이 그날 수모를 당한 후로 밖에도 못 나오고 있는데 제가 와야지 어쩌겠어요? 박 대표는 어디 있죠? 얘기 좀 나누고 싶은데.”이한석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그러셔야죠. 저희 대표님은 성 대표님께서 그러실 줄 알고 스케줄을 다 미루고 기다리고 계십니다.”성근석은 콧방귀를 뀌더니 박수혁의 사무실로 향했다.한참 뒤 이한석은 커피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갔다.지금 이 순간, 사무실의 분위기는 꽁꽁 얼어붙었다.성근석은 박수혁의 맞은편에 앉아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박수혁의 쌀쌀한 얼굴에는 늘 그렇듯 열정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성근석은 이런 박수혁에게 더욱 화가 났다.하지만 성근석은 소란을 피우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었고, 그는 박수혁에게 화낼 깜냥도 되지 않았다. 그날 박수혁의 행동은 그들 가문을 난처하게 했으며 소문은 이미 그의 귀에 들어갔다.보나 마나 성미려는 지금쯤 바늘방석에 앉은 듯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것이다.이한석은 성근석 앞에 커피를 놓았다.하지만 곧바로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성근석은 이한석을 힐끔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때 박수혁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건은 이미 경찰에 넘겼고 만약 성미려 씨가 억울하다면 공개 사과를 할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절 비난할 자격은 없으십니다.일을 저질렀다면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겠죠. 성 대표님도 잘 아실 겁니다.”성근석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그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박 대표. 나는 우리 사이에 티키타카가 꽤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협력의 목적이 바로 두 가문의 거리를 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