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석은 코끝이 찡해졌다.이 세상에서 그런 안진을 그리워하는 건 오직 박시준밖에 없을 것이다.이한석은 허리를 굽혀 박시준을 달래며 온화하게 말했다.“아니요. 도련님은 영원히 태한 그룹의 작은 도련님이에요. 앞으로 누가 태한의 안주인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구도 도련님의 신분을 바꿀 수 없어요.시준 도련님, 겁내지 말아요. 대표님이 비록 엄격해 보이지만 절대로 작은 도련님을 싫어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아요. 대표님은 안주인을 찾는 거니 여러모로 따져볼 거예요.”비록 박시준이 이한석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최대한 명확하게 설명했다.이한석이 골라낸 여자들 중, 성격이 거칠고 까칠한 여자는 없었다.아니면 이한석의 관문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박시준이 눈을 붉히며 우는 모습은 정말 가여웠다.만약 박수혁이 평소에 그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 아이는 절대 이렇게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박시준은 이한석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바로 이때,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박수혁은 눈앞의 상황에 표정이 어두워졌다.하지만 그는 박시준에게 한 마디도 묻지 않았고 오히려 이한석을 바라보았다.“전화 안 받던데? 5분 뒤 화상 회의 바로 준비해.”그제야 이한석은 아직 하지 못한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박시준의 눈물을 닦아주고, 여기서 기다렸다가 박수혁과 함께 집으로 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그러고는 다급히 서류를 들고 박수혁의 사무실로 향했다.“대표님, 작은 도련님이……”박수혁은 이한석의 말을 끊었다.“설명할 필요 없어. 내가 어린 아이의 기분까지 신경 써야 해?”이한석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말해봤자 소용이 없었다.언젠가는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다.……박시준의 생일파티에는 많은 사람이 초대되었다.물론, 소 씨 가문도 초대 대상에 포함되었다.하지만 소은정과 전동하는 참석하지 않았고 한시연이 소지혁과 함께 참석했다.놀라운 건,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 남유주였다는 것
남유주는 깊은 심호흡을 하고 얼른 일어났다.“물 가져다줄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남유주는 다른 방으로 달려들어가 개봉하지 않은 생수 한 병을 가지고 나왔다.평범한 브랜드인 걸로 봐서는 아마 창고에 있는 것을 미처 받지 못한 것 같았다.그녀는 유통기한 같은 것도 확인하지 않고 바로 뚜껑을 따서 뜨거운 물에 섞었다.그리고 약의 설명서를 보니 해외 브랜드의 진통제였다.그녀는 알약 반 알을 쪼개 박시준의 입에 넣어줬다.박시준의 긴 속눈섭이 파르르 떨렸다. 아이는 뭐라고 할 정신도 없이 바로 약을 삼켰다.그리고 침을 꼴깍 삼키고 잠시 숨을 참더니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한참 뒤에야 서서히 컨디션이 회복되었다.약효가 작용한 모양이다.남유주는 박시준의 등을 두드렸다.휴지가 보이지 않자 그녀는 자기의 치마로 땀을 닦아주었다.박시준은 멈칫하더니 천천히 그녀를 밀어냈다.남유주는 박시준이 그녀를 꺼려한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미안해, 바로 사람 불러줄게.”박시준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비록 혈색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아까처럼 괴롭지는 않았다.“아줌마, 고마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저 곧 괜찮아질 거예요.”남유주는 멈칫하더니 몸을 일으켜 옆으로 가서 앉았다.분위기가 어색했다.‘하얗고 귀여운데 경계심이 너무 강해.’박시준이 나머지 반 알의 약을 집어먹으려는 순간, 남유주가 막았다.“방금 먹었잖아.”박시준은 입술을 오므리며 머뭇거렸다.“메이드가 한 알 먹으면 빨리 나을 거라고 했어요.”남유주는 박시준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국내에는 없는 약이야. 이 약 나도 해외에서 먹어봤어. 이건 성인의 복용량에 따라 개발한 약이라 어린이에겐 적합하지 않아. 그러니까 반 알이면 충분해. 한 알 다 먹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어.”남유주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이 귀여운 아이에게 설명했다.아니, 이 가여운 아이에게!곱슬머리의 박시준은 어른인 척 소파에 앉아있었다. 분명 생일인데 기쁜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며
정곡을 찔린 여자는 순간 얼굴을 쳐들지 못했다.그녀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날카롭게 말했다.“감히 나한테 이딴식으로 말해?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빠가 바로……”“남유주 씨……”이한석이 소리를 듣고 바로 달려왔다.그는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오정민 씨, 무슨 오해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이 사장님, 이 뻔뻔한 여자가 글쎄……”오정민은 남유주를 가리키며 일러바치러 했지만 이한석이 한 걸음 앞서서 그녀의 말을 중단시켰다.“오 대표님이 방금 오정민 씨한테 저희 대표님한테 인사드리라고 하셨어요. 빨리 가시죠?”오정민은 활짝 웃으며 물었다.“정말요?”그녀는 피식 웃으며 남유주를 힐끗 보았다.“이번 한 번은 내가 봐줄 거지만 다음부터는 내 눈에 띄지 마. 아니면 가만 안 둬!”“네가 개똥이야? 내가 피하며 다녀야 해?”남유주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오정민은 여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화가 난 그녀의 안색이 확 구겨졌다.욕설을 내뱉으려는 순간, 누군가 아래층에서 그녀를 불렀다.“정민아……”오정민이 화를 꾹꾹 눌러 삼키더니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내려갔다.이한석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남유주에게 다가가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 했지만 남유주가 먼저 이한석의 팔을 당기며 말했다.“시준 도련님이 아파요. 빨리 의사선생님 불러주세요!”이한석은 안색이 굳어졌다.“뭐라고요?”이한석은 바로 203호실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박시준은 소파에 누워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수입산 진통제가 놓여 있었다.이한석은 유난히 어두운 표정으로 바로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같은 날, 그들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익숙한 의사를 대기시켜 두었었다.1분도 안 되어 의사가 들어왔다.박시준을 관찰한 의사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배가 아픈 게 아니라 식중독이에요. 위세척이 필요하니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이한석은 당황했다.그는 여러모로 세심하게
아이는 태한 그룹의 유일한 핏줄이었다.그와 같이 있다가 사고를 당했으면 목숨을 바쳐 사죄해도 모자랄 판이었다.이한석은 침묵했다.잠시 후, 지배인이 문을 노크했다.문밖에는 앳되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사람들 틈에 있어도 전혀 눈에 띄지 않을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지배인이 말했다.“이쪽이 송호연 씨입니다.”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이한석은 지배인을 힐끗 바라보았다. 지배인이 험악한 표정으로 그 여직원에게 말했다.“시준 도련님이 방에 들어간 뒤로 그 방에 출입한 사람은 너밖에 없어. 애한테 뭘 먹인 거야?”송호연이 흠칫하며 부인했다.“별거 아니었어요. 애가 배가 고프다길래 식당 주방으로 가서 먹을 것을 좀 챙겨다 줬어요. 애가 밥을 다 먹은 뒤에 식기를 회수해서 제 자리로 돌아갔고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지배인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주방장이 누구야? 설마 직원들 먹던 음식을 그대로 가져다줬어?”송호연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하지만 지배인님께서 따로 음식을 챙겨드리라는 말씀이 없으셔서 뭘 줘야할지 몰랐는걸요. 물어보니까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거면 된다고 해서 가져다드린 거예요. 시준 도련님 점심을 드신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라 많이 배고파 보이길래 가장 빨리 먹을 수 있는 걸로 가져다드렸죠. 제가 잘못한 건가요?”지배인은 한숨이 나왔다.딱히 그녀의 말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송호연이 죄가 있다면 눈치가 좀 없는 거랄까.그는 이한석의 눈치를 살폈다.박시준이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는데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한 건 명백한 실수였다.이한석이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물었다.“진통제도 그쪽이 줬습니까?”송호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먹고 얼마 안 지나서 배가 아프다고 해서요. 그래서 가지고 있던 진통제를 드렸죠.”“어떻게 시준 도련님한테 아무 약이나 줄 수 있어? 그러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네가 책임질 거야?”지배인이 욕설을 퍼부었다.
박수혁은 저도 모르게 의심부터 들었다.설마 다른 목적이 있어서 찾아온 건 아닐까?그의 굳은 표정과 온몸에서 풍기는 압박감에 남유주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약간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의사랑 같이 왔어요. 가장 먼저 이상 증세를 발견한 사람이 저거든요. 그런데 박 대표님한테 연락했는데 연락을 안 받으시더라고요. 도대체 왜 연락을 안 받으신 거예요? 제가 데이트하는데 방해했나요? 아니면 회의 중인데 제가 무례하게 전화했나요?”“우린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고 박 대표님께는 정말 감사한 마음밖에 없어요. 제가 박 대표님한테 다른 의도를 드러낸 적도 없을 텐데 그렇게 도둑 보듯이 저를 경계할 필요는 없잖아요. 물론 대표님의 친구가 되기에는 제가 한없이 부족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매번 연락을 피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대표님이 연락을 제때 받았어도 시준이 빨리 진료받고 지금쯤 상태가 안정되었을지도 몰라요!”박수혁의 표정이 음침하게 굳었다.“지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남유주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제가 괜한 소리를 했나요? 시준이 대표님 아들 아니에요? 어떻게 애가 아파서 응급실에 왔는데 밖에 지켜줄 어른 한 명 없어요? 대표님은 뒤늦게 도착했죠. 애한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가슴이 안 아파요?”“박수혁 씨, 당신은 정말 냉정한 사람이군요. 그러니까 시준이가 아프면서도 티를 안 내고 꾹 참고 있었죠. 당신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할까 봐, 어차피 말해도 귀찮다고 애한테 뭐라고 했을 것 같은데요?”남유주는 박시준이 안타까웠다.몸에 문제가 생겼는데 어린애가 진통제를 먹고 버티다니!혼자 방 안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주변에는 아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넘쳐난다.왜 어린아이의 눈빛이 그토록 외롭고 서글퍼 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박수혁은 음침하게 굳은 얼굴로 상대를 노려보았다.주변 공기마저 차갑게 가라앉았다.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원장이 다급히 그들을 말렸다.“뭔가 오
아까 연회장에서 박수혁과 꽤 오래 대화를 나누던 여자였다.분위기나 배경이나 그와 꽤 어울리는 여자였다.성화 그룹의 외동딸이자 현 성화 그룹 실질적인 오너.예쁜 얼굴에 학벌, 능력까지 어디 한군데 빠지는 게 없는 여자였다.박수혁은 되도 않는 교태를 부리면서 달려드는 여자는 극혐하지만 자신만의 개성과 능력을 갖춘 여자에게는 꽤 관대했다.그녀들에게 소은정과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인정하기는 싫지만 이게 사실이었다.조금 전 연회에서 성미려는 유일하게 그와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었던 여자였다.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녀가 박수혁이 선택한 미래의 약혼녀라고 추측했다. 그녀는 그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룹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인재였다.그래서 성미려의 출현에 많은 여자들이 스스로 포기했다.두 사람의 다툼을 성미려가 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그녀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대신, 친근한 태도로 박수혁에게 말했다.“아까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시준이가 아팠다면서요? 아빠가 보내서 문안 왔어요. 시준이는 지금 좀 어때요?”그녀는 적당한 선에서 그에게 관심을 표했다.그러더니 남유주에게도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했다.참 미워할 수도 없는 여자였다.두 사람의 다툼은 그렇게 끝이 났다.박수혁은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성 회장님께는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시준이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래야 돌아가서 아빠한테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아서요.”박수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남유주를 무시한 채, 성미려를 데리고 병실로 향했다.남유주는 그들의 뒷모습을 힘껏 흘겨보고는 자리를 떴다.그런데 박수혁이 내던진 큐브가 눈에 띄었다.그녀는 천천히 다가가서 그것을 집어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엘리베이터에서 익숙한 얼굴이 내렸다.“남유주 씨?”이한석은 남유주를 반갑게 맞아주었다.그가 미소를 지
이한석은 목을 움츠리며 입을 다물었다.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손에 든 큐브를 그에게 건넸다.“남유주 씨가 시준 도련님한테 준 선물이래요. 시준 도련님이 아주 좋아하는 물건이라고 하니까 침대머리에 놔둘까요?”물건을 힐끗 확인한 박수혁이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런 유치한 걸 누가 좋아해? 애가 예의상 한 말이겠지! 그런 것도 분간 못해?”이한석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민하시지?병실로 돌아오자 진료를 마친 의사는 돌아가고 원장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박 대표님, 성미려 씨는 조금전에 돌아갔습니다. 인사도 못 하고 간다고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하더군요.”박수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두 사람은 아직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은 상태였다.성미려가 먼저 달라고 하지 않았기에 굳이 주지 않았다. 이 점이 그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하지만 남유주가 했던 말을 떠올리니 또 화가 치밀었다.‘내가 죽어도 아무도 날 위해 울어주지 않을 거라고? 도움을 달라고 할 때는 전혀 안 그러더니 이제야 본모습을 드러냈군!’그런데 성미려의 이름을 들은 이한석이 인상을 썼다.“성미려 씨요? 그게 누군데요?”비서인 그마저 현장 조사를 마치고 이제 도착했는데 그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니!게다가 박시준이 병원에 실려갔다는 내용은 기밀이었다.호텔 지배인과 남유주만 아는 사실을 벌써 알고 달려온 사람이 있다니!박수혁이 불쾌한 표정으로 이한석을 노려보았다.이한석은 일단 원장을 먼저 돌려보내기로 했다.“원장님은 일단 돌아가 계세요. 여긴 담당의사가 자주 와서 상태 체크하면 될 테니까 제가 차로 모시겠습니다.”원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번거롭게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저는 병원에서 지낼 거예요. 시준 도련님이 무사히 깨어나야 저도 안심이 될 것 같아서요.”“그건 안 되죠. 연세도 있으신데 일찍 돌아가서 쉬세요. 저희는 담당의사를 믿습니다.”원장은 박수혁의 눈치를 한번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먼저 돌
이한석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었다.“그럴 리가요. 도련님한테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곧장 연회장에서 병원으로 달려오셨어요. 사실 그분은 도련님을 아주 많이 걱정하고 계신답니다. 점차 좋아질 거예요. 우리 대표님한테 시간을 좀 더 주자고요!”박시준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아침 식사는 전문 영양사가 준비한 영양죽이었다.“천천히 먹어요. 너무 많이 먹지는 말고요. 아직은 다 회복된 게 아니라서 소화가 잘 안 될 거예요.”아이가 수저를 들고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주삿바늘을 꽂아서 손등에 생긴 퍼런 멍자국이 더 안쓰럽게 보였다.아이는 줄곧 그 큐브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이한석이 웃으며 물었다.“큐브가 그렇게 좋아요?”박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그 이모가 선물로 주신 거예요.”박시준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이유로 어제 연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었다.하지만 아무도 아이에게 꼭 맞는 선물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남유주만 제외하고.“그 이모가 도련님을 구했어요. 그 이모 참 좋은 사람이죠?”박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제가 아프다고 하니까 물도 가져다주시고 의사도 불러주셨어요.”남유주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상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지 않아서 좋았다.그리고 아이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이한석은 한숨을 쉬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밥 먹고 있어요. 저는 회사 나가봐야 해요. 오늘 새로운 고용인이 올 거예요.”“전에 일하시던 분은요?”“그 사람들이 일을 못해서 대표님이 해고하고 새로 구하셨어요.”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이한석은 아이가 혹시나 그 사람들 해고하지 말라고 말리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하지만 걱정했던 반응은 아니었다.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복잡했다.옆에서 챙겨주던 고용인이 해고당했는데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건 평소에 정말 그들이 일을 못했다는 게 아닐까?그는 안쓰러운 마음에 다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만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