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태한 그룹의 유일한 핏줄이었다.그와 같이 있다가 사고를 당했으면 목숨을 바쳐 사죄해도 모자랄 판이었다.이한석은 침묵했다.잠시 후, 지배인이 문을 노크했다.문밖에는 앳되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사람들 틈에 있어도 전혀 눈에 띄지 않을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지배인이 말했다.“이쪽이 송호연 씨입니다.”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이한석은 지배인을 힐끗 바라보았다. 지배인이 험악한 표정으로 그 여직원에게 말했다.“시준 도련님이 방에 들어간 뒤로 그 방에 출입한 사람은 너밖에 없어. 애한테 뭘 먹인 거야?”송호연이 흠칫하며 부인했다.“별거 아니었어요. 애가 배가 고프다길래 식당 주방으로 가서 먹을 것을 좀 챙겨다 줬어요. 애가 밥을 다 먹은 뒤에 식기를 회수해서 제 자리로 돌아갔고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지배인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주방장이 누구야? 설마 직원들 먹던 음식을 그대로 가져다줬어?”송호연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하지만 지배인님께서 따로 음식을 챙겨드리라는 말씀이 없으셔서 뭘 줘야할지 몰랐는걸요. 물어보니까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거면 된다고 해서 가져다드린 거예요. 시준 도련님 점심을 드신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라 많이 배고파 보이길래 가장 빨리 먹을 수 있는 걸로 가져다드렸죠. 제가 잘못한 건가요?”지배인은 한숨이 나왔다.딱히 그녀의 말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송호연이 죄가 있다면 눈치가 좀 없는 거랄까.그는 이한석의 눈치를 살폈다.박시준이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는데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한 건 명백한 실수였다.이한석이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물었다.“진통제도 그쪽이 줬습니까?”송호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먹고 얼마 안 지나서 배가 아프다고 해서요. 그래서 가지고 있던 진통제를 드렸죠.”“어떻게 시준 도련님한테 아무 약이나 줄 수 있어? 그러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네가 책임질 거야?”지배인이 욕설을 퍼부었다.
박수혁은 저도 모르게 의심부터 들었다.설마 다른 목적이 있어서 찾아온 건 아닐까?그의 굳은 표정과 온몸에서 풍기는 압박감에 남유주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자리에서 일어선 그녀가 약간 싸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의사랑 같이 왔어요. 가장 먼저 이상 증세를 발견한 사람이 저거든요. 그런데 박 대표님한테 연락했는데 연락을 안 받으시더라고요. 도대체 왜 연락을 안 받으신 거예요? 제가 데이트하는데 방해했나요? 아니면 회의 중인데 제가 무례하게 전화했나요?”“우린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고 박 대표님께는 정말 감사한 마음밖에 없어요. 제가 박 대표님한테 다른 의도를 드러낸 적도 없을 텐데 그렇게 도둑 보듯이 저를 경계할 필요는 없잖아요. 물론 대표님의 친구가 되기에는 제가 한없이 부족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매번 연락을 피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대표님이 연락을 제때 받았어도 시준이 빨리 진료받고 지금쯤 상태가 안정되었을지도 몰라요!”박수혁의 표정이 음침하게 굳었다.“지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남유주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제가 괜한 소리를 했나요? 시준이 대표님 아들 아니에요? 어떻게 애가 아파서 응급실에 왔는데 밖에 지켜줄 어른 한 명 없어요? 대표님은 뒤늦게 도착했죠. 애한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가슴이 안 아파요?”“박수혁 씨, 당신은 정말 냉정한 사람이군요. 그러니까 시준이가 아프면서도 티를 안 내고 꾹 참고 있었죠. 당신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할까 봐, 어차피 말해도 귀찮다고 애한테 뭐라고 했을 것 같은데요?”남유주는 박시준이 안타까웠다.몸에 문제가 생겼는데 어린애가 진통제를 먹고 버티다니!혼자 방 안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주변에는 아이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만 넘쳐난다.왜 어린아이의 눈빛이 그토록 외롭고 서글퍼 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박수혁은 음침하게 굳은 얼굴로 상대를 노려보았다.주변 공기마저 차갑게 가라앉았다.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원장이 다급히 그들을 말렸다.“뭔가 오
아까 연회장에서 박수혁과 꽤 오래 대화를 나누던 여자였다.분위기나 배경이나 그와 꽤 어울리는 여자였다.성화 그룹의 외동딸이자 현 성화 그룹 실질적인 오너.예쁜 얼굴에 학벌, 능력까지 어디 한군데 빠지는 게 없는 여자였다.박수혁은 되도 않는 교태를 부리면서 달려드는 여자는 극혐하지만 자신만의 개성과 능력을 갖춘 여자에게는 꽤 관대했다.그녀들에게 소은정과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인정하기는 싫지만 이게 사실이었다.조금 전 연회에서 성미려는 유일하게 그와 유쾌하게 대화를 나누었던 여자였다.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녀가 박수혁이 선택한 미래의 약혼녀라고 추측했다. 그녀는 그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룹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인재였다.그래서 성미려의 출현에 많은 여자들이 스스로 포기했다.두 사람의 다툼을 성미려가 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편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그녀는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대신, 친근한 태도로 박수혁에게 말했다.“아까 일이 있어서 먼저 나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시준이가 아팠다면서요? 아빠가 보내서 문안 왔어요. 시준이는 지금 좀 어때요?”그녀는 적당한 선에서 그에게 관심을 표했다.그러더니 남유주에게도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했다.참 미워할 수도 없는 여자였다.두 사람의 다툼은 그렇게 끝이 났다.박수혁은 당황한 티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성 회장님께는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시준이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래야 돌아가서 아빠한테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아서요.”박수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남유주를 무시한 채, 성미려를 데리고 병실로 향했다.남유주는 그들의 뒷모습을 힘껏 흘겨보고는 자리를 떴다.그런데 박수혁이 내던진 큐브가 눈에 띄었다.그녀는 천천히 다가가서 그것을 집어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엘리베이터에서 익숙한 얼굴이 내렸다.“남유주 씨?”이한석은 남유주를 반갑게 맞아주었다.그가 미소를 지
이한석은 목을 움츠리며 입을 다물었다.그는 잠시 주저하다가 손에 든 큐브를 그에게 건넸다.“남유주 씨가 시준 도련님한테 준 선물이래요. 시준 도련님이 아주 좋아하는 물건이라고 하니까 침대머리에 놔둘까요?”물건을 힐끗 확인한 박수혁이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런 유치한 걸 누가 좋아해? 애가 예의상 한 말이겠지! 그런 것도 분간 못해?”이한석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민하시지?병실로 돌아오자 진료를 마친 의사는 돌아가고 원장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박 대표님, 성미려 씨는 조금전에 돌아갔습니다. 인사도 못 하고 간다고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하더군요.”박수혁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두 사람은 아직 연락처를 교환하지 않은 상태였다.성미려가 먼저 달라고 하지 않았기에 굳이 주지 않았다. 이 점이 그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하지만 남유주가 했던 말을 떠올리니 또 화가 치밀었다.‘내가 죽어도 아무도 날 위해 울어주지 않을 거라고? 도움을 달라고 할 때는 전혀 안 그러더니 이제야 본모습을 드러냈군!’그런데 성미려의 이름을 들은 이한석이 인상을 썼다.“성미려 씨요? 그게 누군데요?”비서인 그마저 현장 조사를 마치고 이제 도착했는데 그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니!게다가 박시준이 병원에 실려갔다는 내용은 기밀이었다.호텔 지배인과 남유주만 아는 사실을 벌써 알고 달려온 사람이 있다니!박수혁이 불쾌한 표정으로 이한석을 노려보았다.이한석은 일단 원장을 먼저 돌려보내기로 했다.“원장님은 일단 돌아가 계세요. 여긴 담당의사가 자주 와서 상태 체크하면 될 테니까 제가 차로 모시겠습니다.”원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번거롭게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 저는 병원에서 지낼 거예요. 시준 도련님이 무사히 깨어나야 저도 안심이 될 것 같아서요.”“그건 안 되죠. 연세도 있으신데 일찍 돌아가서 쉬세요. 저희는 담당의사를 믿습니다.”원장은 박수혁의 눈치를 한번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먼저 돌
이한석은 가슴이 철렁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었다.“그럴 리가요. 도련님한테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곧장 연회장에서 병원으로 달려오셨어요. 사실 그분은 도련님을 아주 많이 걱정하고 계신답니다. 점차 좋아질 거예요. 우리 대표님한테 시간을 좀 더 주자고요!”박시준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아침 식사는 전문 영양사가 준비한 영양죽이었다.“천천히 먹어요. 너무 많이 먹지는 말고요. 아직은 다 회복된 게 아니라서 소화가 잘 안 될 거예요.”아이가 수저를 들고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주삿바늘을 꽂아서 손등에 생긴 퍼런 멍자국이 더 안쓰럽게 보였다.아이는 줄곧 그 큐브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이한석이 웃으며 물었다.“큐브가 그렇게 좋아요?”박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그 이모가 선물로 주신 거예요.”박시준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이유로 어제 연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었다.하지만 아무도 아이에게 꼭 맞는 선물을 준비해 오지 않았다.남유주만 제외하고.“그 이모가 도련님을 구했어요. 그 이모 참 좋은 사람이죠?”박시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제가 아프다고 하니까 물도 가져다주시고 의사도 불러주셨어요.”남유주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상한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지 않아서 좋았다.그리고 아이에게 곤란한 질문을 하지도 않았다.이한석은 한숨을 쉬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밥 먹고 있어요. 저는 회사 나가봐야 해요. 오늘 새로운 고용인이 올 거예요.”“전에 일하시던 분은요?”“그 사람들이 일을 못해서 대표님이 해고하고 새로 구하셨어요.”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이한석은 아이가 혹시나 그 사람들 해고하지 말라고 말리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다.하지만 걱정했던 반응은 아니었다.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어딘가 마음이 복잡했다.옆에서 챙겨주던 고용인이 해고당했는데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건 평소에 정말 그들이 일을 못했다는 게 아닐까?그는 안쓰러운 마음에 다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만약
성미려는 약간 움찔하다가 다시 웃으며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시준이 너 정말 사랑스럽게 생겼구나. 박 대표님이랑 많이 닮았어. TV에 나오는 아역들보다 네가 더 예뻐!”성근석도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이한석은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그들은 그 뒤로도 십여 분 동안 아이를 칭찬했다. 박시준이 부담스러운 티를 안 내서 다행이었다.어린 아이지만 불편한 내색도 하지 않고 말도 예의 바르게 했다.성근석은 잠시 앉았다가 다시 일어섰다.나가기 전, 그는 성미려에게 말했다.“박 대표는 할 일이 많고 우린 최근에 태한이랑 같이 진행하는 사업도 많으니 네가 옆에서 잘 도와줘. 시준이한테도 더 신경 써주고. 남자가 집에 신경 쓰이는 일이 없어야 사업도 잘 되는 법이야.”성미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아빠. 안 그래도 시준이 보러 자주 오려고 했어요. 이 아이가 정말 마음에 들었거든요.”“그래, 그럼 다행이고.”말을 마친 성근석은 박시준에게 인사를 건넨 뒤, 밖으로 나갔다.박시준도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했으나 아쉬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이한석은 그 모습들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었다.성근석이 자리를 뜨자 성미려는 이한석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 비서님, 무슨 상황 생기면 저한테 바로 연락해요. 박 대표님은 다망하신 분이니까 제가 잘 도울게요.”이한석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면 저희야 감사하죠. 어제 도련님을 걱정해서 문안 오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솔직히 조금 놀랐어요. 도련님이 병원에 호송된 건 저희 빼고는 아무도 몰랐거든요!”성미려의 표정이 살짝 굳더니 이내 태연하게 대처했다.“호텔 지배인한테 들었어요. 그분이 저희 아빠의 매제거든요. 저한테는 이모부이기도 하죠.”이는 이한석이 예상하지 못했던 관계였다.그는 이내 화제를 돌렸다.성미려까지 배웅한 뒤, 그는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점심이었다. 회사에 할 일이 많았기에 계속 여기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성근석이
박수혁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돌았다.“죄송한데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다음에 다시 얘기하죠.”그는 이한석에게 눈짓을 한 뒤, 먼저 식당을 빠져나갔다.이한석은 고객사 직원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다급히 밖으로 달려나갔다.박수혁은 이미 차에 타고 있었다.이한석이 차에 오르자 운전기사는 바로 출발했다.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애 상황은 지금 어떤데?”술기운이 올라온 박수혁이 차 창을 열며 물었다.“갑자기 열이 난다고 하는데 아마 수입제 약품에 부작용이 생긴 것 같다고 합니다. 그쪽으로는 먼저 사람을 보냈어요.”물론 누굴 보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박수혁이 사실을 알고 남유주에게 연락해서 또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을까 봐서였다.오늘 밤은 유독 공기가 찼다.박수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뒷좌석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이한석은 손에 땀이 났다.그들은 전속력으로 달려 두 시간 뒤에 병원에 도착했다.박수혁은 급급히 안으로 들어갔다.응급실에서 아이가 실려 나오고 있었다.의사들이 밖에서 무언가 의논하고 있다가 박수혁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대표님….”“어떻게 됐나요?”“걱정하지 마세요. 지금은 약을 먹고 열도 내리고 잠들었습니다. 30분에 한번씩 상태를 관찰할 거예요. 다행히 빨리 발견해서 다른 장기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어요.”박수혁은 음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이한석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제가 보낸 사람은요? 사인하라고 사람 보냈었는데요.”“안에서 도련님 돌보고 있어요.”이한석은 고개를 끄덕인 뒤, 박수혁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그런데 안에 뜻밖의 인물이 앉아 있었다.“성미려 씨?”성미려가 병상 옆에 앉아 조심스럽게 아이의 마른 입술을 면봉으로 닦아주고 있었다.고개를 든 그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빨리 오셨네요? 안 그래도 여기 상황은 안정됐으니 올 필요 없다고 연락하려고 했었거든요. 많이 피곤하시죠?”그녀는 시선을 박수혁에게 고정하고 있었다.성미려는
남유주는 앙칼진 목소리로 차갑게 비아냥거렸다.“제가 눈이 멀어서 그런 사람을 마음에 품겠어요? 걱정 붙들어 매라고 하세요. 아무나 만나도 그 사람은 안 만나니까!”이한석은 난감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평소에 유순하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거칠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이혼한 뒤로 그녀는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 박수혁에게까지 화를 낼 정도라니.하지만 상사의 말이 듣기 거북한 게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그에게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사람이 아닌 이상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였다.이한석은 그녀를 이해했다.“많이 속상하셨겠네요. 성미려 씨는 어떻게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죠? 그래도 제가 도움을 부탁드린 사람인데!”“괜찮아요, 이 비서님. 어차피 이 비서님 얼굴 봐서 간 거니까 상관없어요.”남유주의 통쾌한 답변에 이한석은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고마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가 식사 한번 살게요.”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그는 병실로 들어가며 전화를 끊었다.박수혁은 병상 옆에 앉아 큐브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이한석은 그가 홧김에 그것을 쓰레기통에 처박을까 봐 걱정했다.그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박시준의 상태를 확인했다. 얼굴이 붉은 것을 보니 아직도 미열이 있는 듯했다.박수혁은 큐브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다.이한석은 그를 따라가서 거실에 마주 앉았다.“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에요.”박수혁은 어두운 창밖을 지그시 내다보며 그에게 물었다.“집까지 모실 줄 알았는데 왜 벌써 돌아왔어?”이한석이 움찔했다.상사가 무언가 불만이 있다는 얘기였다.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설마 성미려 씨로 선택하신 겁니까?”“이 비서가 준 서류만 보면 가장 어울리는 상대가 그쪽 아닌가?”냉기가 뚝뚝 흐르는 싸늘한 말투였다.그는 마치 사업 얘기를 하듯이 결혼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적당히 선을 지키고 박시준을 잘 챙기는 것 같고 성격도 좋아 보였다.그게 박수혁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였다.이한석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서류 한 장을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