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은 휴대폰을 한 번 보더니 발을 들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고맙다는 말을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다고 했을 텐데요? 제가 뭐 자선가도 아니고, 그쪽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인사 말은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닌가요?”남유주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박수혁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부족한 거 없으시잖아요. 그러니까 굳이 뭘 드릴지 생각이 안 나는데 힌트라도 주실래요?”박수혁은 그녀를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는 왠지 그녀가 흥미로웠다.박수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뭔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생각해 볼 게요. 전 재산 내놓을 준비는 됐어요?”남유주는 깜짝 놀랐다.‘전 재산을 내놓아야 할 일이야?’남유주는 순간 냉정해지면서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심지어 아래층에 도착한 뒤에도 그녀는 박수혁과 함께 나가고 싶지 않았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박수혁은 남유주의 중얼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박 악마……”박수혁은 고개를 돌려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물었다.“뭐라고요?”남유주는 활짝 웃으며 말을 바꿨다.“박 천사 씨!”박수혁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만족스러운 듯 떠나갔다.욕을 하더라도 등 뒤에서 하면 안 된다!남유주의 미소는 점차 사라졌다.결국 그녀는 찌푸린 얼굴로 이한석에게 전화를 걸었다.이한석은 그나마 박수혁보다 많이 쉬웠다.“유주 씨, 어쩐 일로 전화 주셨어요?”“이 비서님. 박수혁 씨가 저한테 말로만 하는 인사는 하지 말라고… 혹시 박수혁 씨 뭐 필요해요? 힌트 좀 주세요. 전 재산을 내 놓아야 할 그런 거 말이예요.”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녀에게는 재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거라고는 고작 작은 규모의 술집 뿐이다.이한석은 멈칫하더니 가볍게 웃었다.“정 안되면 몸으로 떼우라는 말도 있잖아요! 누가 누구의 전 재산을 얻을 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죠!”남유주는 치를 떨며 말했다.“그런 장난은 하지 마세요. 저 박수혁 씨한테 관심 없어요. 이혼을 얼
남유주는 바싹 마른 입술을 오므리고 말했다.“해외에서도 이런 걸 본 적 없어요. 티켓에 적혀 있지 않아서 저도 이런 전시회인 줄 몰랐어요.”박수혁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중단시키고 엄숙하게 말했다.“유주 씨의 목적이 뭔 지 모르겠지만 선을 넘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거예요. 이런 서프라이즈 성의는 마음만 받는 거로 하죠. 유주 씨 취향이 독특하다고 누구나 다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서요.”박수혁의 말에 남유주의 빨갛던 얼굴이 창백해졌다.‘내가 과분한 생각이라도 한다는 건가? 그래서 여길 데려왔다고? 그래,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지!’하지만 지금 무슨 말을 해도 핑계밖에 되지 않는다.박수혁은 비록 불쾌했지만 매너가 있는 사람이라 바로 떠나지 않았다.그들이 떠날 때는 역시 책임자가 직접 와서 그들을 배웅했다.남유주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설명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한석을 팔아 넘길 수도 없는 일이었다.기사는 이미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박수혁은 바로 차에 올라타 떠나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이한석은 남유주에게 연락했고 위치를 물었다.남유주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이 비서님, 그 티켓 말인데요…… 저 진짜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박수혁 씨가 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이젠 어떡해요.”이한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은 워낙 견식이 넓으셔서 그냥 말씀만 그렇게 하실 뿐 마음에 두지 않을 거예요.아, 맞다. 대표님이 뭐 좀 전해주시라고 하셨는데, 아직 갤러리에 계시죠?”“네 입구 맞은 켠 차 안에 있어요.”“잠시만요.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그녀는 의아했다.‘나한테 전해줄 게 있다고? 보나마나 좋은 건 아닐테고. 경고인가? 아니면 협박인가? 하, 무엇이든 받아드려야지. 내가 할 말이 없기는 해.”한참 뒤,이한석이 도착했다.그는 남유주에게 케이스를 내밀었다.“대표님이 특별히 유주 씨한테 드리는 선물이예요. 오늘 고생 많으셨으니 사양하지 말고 받아주세요.”남유주는 깜
두 아이가 재미있게 웃고 떠들었다.박시준의 작은 볼에는 보조개가 선명했고 눈에서는 맑은 빛이 새어나왔다.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티키타카가 잘 맞아 보였다.얼마 지나지 않아,전새봄과 문준서도 달려나왔다.소지혁은 전새봄의 책가방을 들어주더니 자기 가방 안에서 사탕을 꺼내 주었다. 그제야 전새봄이 얌전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그 모습에 박수혁은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순간,그는 통화 상대가 했던 말도 다 잊어버렸다.아이들은 언제나 귀엽고 항상 희망으로 가득찼다.그런데 그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며, 박수혁은 왠지 마음이 공허해졌다.더는 채워지지 못할 공허함.그 공허함은 그의 삶을 어둡게 만들었다.그는 자기가 또 망상에 빠졌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전동하가 돌아온 뒤로 박수혁은 소은정에 대한 그리움을 애써 억제했고, 그리움이 조금은 줄어들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감에 빠졌다.잡을 수도 없고 가질 수도 없었다.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하지만 이내,이런 고통마저 사라졌다.마치 아무 일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뒤에서 누군가 경적을 울리자 아이들의 시선은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소지혁과 전새봄, 그리고 문준서가 즐겁게 뛰어가자 박시준도 뒤따라 달려가 고개를 들고 소은정을 바라보았다.소은정은 활짝 웃으며 박시준의 머리를 쓰다듬고 몇 마디 하더니 세 아이들을 차에 태웠다.박시준이 손을 흔들며 그들에게 인사를 하려는 찰나, 누군가의 그림자가 다가왔다.박시준은 고개를 돌려 그 쪽을 바라보더니 활짝 웃으며 달려갔다.“아빠!”박수혁은 박시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소은정에게 다가갔다.다행히, 전동하는 보이지 않았다.아니면 이 대화는 어려워질 것이다.박수혁을 발견한 소은정은 미소를 거두었다. 그녀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에서 차가운 기운이 풍겼다.박수혁은 가슴이 아팠지만 애써 이런 아픔을 무시했다.“시간 있어? 얘기 좀 하자. 몇 분이면 돼.”소은정은 단칼에 거절했
말을 끝낸 소은정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기의 차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박수혁은 창백한 안색으로 그 곳에 서있었다. 어둡고 차가운 눈빛은 끝이 보이지 않는 블랙홀 같았다.심장이 찢어질 듯 한 고통은 그를 아프게 했고 온몸의 힘이 다 빠져버린 듯 나른 해났다.박수혁은 철저히 소은정을 잃었다.소은정은 차에 올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뒤를 보았다.사탕을 전새봄 입에 넣어주는 문준서의 모습에 소은정은 환히 웃으며 말했다.“준서야, 동생한테 사탕 그만 줘. 충치 생길라!”문준서가 다급히 말했다.“이건 충지 방지 사탕이에요.”소은정은 문준서를 힐끗 보았고 문준서는 이내 말을 바꿨다.“그래도 많이 먹으면 안 돼요.”그러더니 전새봄의 입에서 사탕을 도로 꺼냈다.전새봄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문준서를 바라보았다.전새봄은 아직 사탕의 맛도 느끼지 못했다!소은정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지혁을 바라보았다.“씩씩아. 오늘은 고모 집에서 자자. 할아버지 오늘 하루 쉬셔야 해.”“좋아요, 고모. 오늘은 낚시 안 해도 되겠네요!”소지혁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 모습에 소은정은 할 말을 잃었다.하지만 문준서와 전새봄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그들은 고택에서의 자유로운 생활을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박수혁은 한참을 제 자리에 서있다가 차로 돌아갔다.박수혁의 기분을 알아차린 박시준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는 박시준을 집이 아닌 회사로 데려갔다.박수혁은 곧 화상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박시준이 회사에 오자 이한석은 열정적으로 박시준에게 간식과 음료수를 가져다주었다.그제야 박시준은 긴장감이 조금 풀리는 듯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이한석은 서류를 가지고 박수혁의 사무실에 들어갔다.서류를 확인한 박수혁은 아무런 표정없이 오직 이익을 비교하며 여자들의 집안을 확인했다.그런데 마지막 여자는 이 서류에 나타나지 말아야 할 익숙한 여자였다.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한석을 바라보았다.이한석은 헛기침하며 미소를 지었다.“남
이한석은 코끝이 찡해졌다.이 세상에서 그런 안진을 그리워하는 건 오직 박시준밖에 없을 것이다.이한석은 허리를 굽혀 박시준을 달래며 온화하게 말했다.“아니요. 도련님은 영원히 태한 그룹의 작은 도련님이에요. 앞으로 누가 태한의 안주인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구도 도련님의 신분을 바꿀 수 없어요.시준 도련님, 겁내지 말아요. 대표님이 비록 엄격해 보이지만 절대로 작은 도련님을 싫어하는 여자와 결혼하지 않아요. 대표님은 안주인을 찾는 거니 여러모로 따져볼 거예요.”비록 박시준이 이한석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최대한 명확하게 설명했다.이한석이 골라낸 여자들 중, 성격이 거칠고 까칠한 여자는 없었다.아니면 이한석의 관문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박시준이 눈을 붉히며 우는 모습은 정말 가여웠다.만약 박수혁이 평소에 그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 아이는 절대 이렇게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박시준은 이한석의 품에 안겨 흐느꼈다.바로 이때,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박수혁은 눈앞의 상황에 표정이 어두워졌다.하지만 그는 박시준에게 한 마디도 묻지 않았고 오히려 이한석을 바라보았다.“전화 안 받던데? 5분 뒤 화상 회의 바로 준비해.”그제야 이한석은 아직 하지 못한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박시준의 눈물을 닦아주고, 여기서 기다렸다가 박수혁과 함께 집으로 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그러고는 다급히 서류를 들고 박수혁의 사무실로 향했다.“대표님, 작은 도련님이……”박수혁은 이한석의 말을 끊었다.“설명할 필요 없어. 내가 어린 아이의 기분까지 신경 써야 해?”이한석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말해봤자 소용이 없었다.언젠가는 후회할 날이 있을 것이다.……박시준의 생일파티에는 많은 사람이 초대되었다.물론, 소 씨 가문도 초대 대상에 포함되었다.하지만 소은정과 전동하는 참석하지 않았고 한시연이 소지혁과 함께 참석했다.놀라운 건,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이 남유주였다는 것
남유주는 깊은 심호흡을 하고 얼른 일어났다.“물 가져다줄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남유주는 다른 방으로 달려들어가 개봉하지 않은 생수 한 병을 가지고 나왔다.평범한 브랜드인 걸로 봐서는 아마 창고에 있는 것을 미처 받지 못한 것 같았다.그녀는 유통기한 같은 것도 확인하지 않고 바로 뚜껑을 따서 뜨거운 물에 섞었다.그리고 약의 설명서를 보니 해외 브랜드의 진통제였다.그녀는 알약 반 알을 쪼개 박시준의 입에 넣어줬다.박시준의 긴 속눈섭이 파르르 떨렸다. 아이는 뭐라고 할 정신도 없이 바로 약을 삼켰다.그리고 침을 꼴깍 삼키고 잠시 숨을 참더니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한참 뒤에야 서서히 컨디션이 회복되었다.약효가 작용한 모양이다.남유주는 박시준의 등을 두드렸다.휴지가 보이지 않자 그녀는 자기의 치마로 땀을 닦아주었다.박시준은 멈칫하더니 천천히 그녀를 밀어냈다.남유주는 박시준이 그녀를 꺼려한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미안해, 바로 사람 불러줄게.”박시준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비록 혈색이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아까처럼 괴롭지는 않았다.“아줌마, 고마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저 곧 괜찮아질 거예요.”남유주는 멈칫하더니 몸을 일으켜 옆으로 가서 앉았다.분위기가 어색했다.‘하얗고 귀여운데 경계심이 너무 강해.’박시준이 나머지 반 알의 약을 집어먹으려는 순간, 남유주가 막았다.“방금 먹었잖아.”박시준은 입술을 오므리며 머뭇거렸다.“메이드가 한 알 먹으면 빨리 나을 거라고 했어요.”남유주는 박시준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국내에는 없는 약이야. 이 약 나도 해외에서 먹어봤어. 이건 성인의 복용량에 따라 개발한 약이라 어린이에겐 적합하지 않아. 그러니까 반 알이면 충분해. 한 알 다 먹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어.”남유주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이 귀여운 아이에게 설명했다.아니, 이 가여운 아이에게!곱슬머리의 박시준은 어른인 척 소파에 앉아있었다. 분명 생일인데 기쁜 기색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며
정곡을 찔린 여자는 순간 얼굴을 쳐들지 못했다.그녀는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날카롭게 말했다.“감히 나한테 이딴식으로 말해?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빠가 바로……”“남유주 씨……”이한석이 소리를 듣고 바로 달려왔다.그는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오정민 씨, 무슨 오해가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소란 피우시면 안 됩니다.”“이 사장님, 이 뻔뻔한 여자가 글쎄……”오정민은 남유주를 가리키며 일러바치러 했지만 이한석이 한 걸음 앞서서 그녀의 말을 중단시켰다.“오 대표님이 방금 오정민 씨한테 저희 대표님한테 인사드리라고 하셨어요. 빨리 가시죠?”오정민은 활짝 웃으며 물었다.“정말요?”그녀는 피식 웃으며 남유주를 힐끗 보았다.“이번 한 번은 내가 봐줄 거지만 다음부터는 내 눈에 띄지 마. 아니면 가만 안 둬!”“네가 개똥이야? 내가 피하며 다녀야 해?”남유주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오정민은 여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화가 난 그녀의 안색이 확 구겨졌다.욕설을 내뱉으려는 순간, 누군가 아래층에서 그녀를 불렀다.“정민아……”오정민이 화를 꾹꾹 눌러 삼키더니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내려갔다.이한석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남유주에게 다가가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려 했지만 남유주가 먼저 이한석의 팔을 당기며 말했다.“시준 도련님이 아파요. 빨리 의사선생님 불러주세요!”이한석은 안색이 굳어졌다.“뭐라고요?”이한석은 바로 203호실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박시준은 소파에 누워 온몸을 웅크리고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수입산 진통제가 놓여 있었다.이한석은 유난히 어두운 표정으로 바로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늘 같은 날, 그들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익숙한 의사를 대기시켜 두었었다.1분도 안 되어 의사가 들어왔다.박시준을 관찰한 의사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했다.“배가 아픈 게 아니라 식중독이에요. 위세척이 필요하니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이한석은 당황했다.그는 여러모로 세심하게
아이는 태한 그룹의 유일한 핏줄이었다.그와 같이 있다가 사고를 당했으면 목숨을 바쳐 사죄해도 모자랄 판이었다.이한석은 침묵했다.잠시 후, 지배인이 문을 노크했다.문밖에는 앳되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사람들 틈에 있어도 전혀 눈에 띄지 않을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지배인이 말했다.“이쪽이 송호연 씨입니다.”그녀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이한석은 지배인을 힐끗 바라보았다. 지배인이 험악한 표정으로 그 여직원에게 말했다.“시준 도련님이 방에 들어간 뒤로 그 방에 출입한 사람은 너밖에 없어. 애한테 뭘 먹인 거야?”송호연이 흠칫하며 부인했다.“별거 아니었어요. 애가 배가 고프다길래 식당 주방으로 가서 먹을 것을 좀 챙겨다 줬어요. 애가 밥을 다 먹은 뒤에 식기를 회수해서 제 자리로 돌아갔고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지배인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주방장이 누구야? 설마 직원들 먹던 음식을 그대로 가져다줬어?”송호연이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하지만 지배인님께서 따로 음식을 챙겨드리라는 말씀이 없으셔서 뭘 줘야할지 몰랐는걸요. 물어보니까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거면 된다고 해서 가져다드린 거예요. 시준 도련님 점심을 드신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라 많이 배고파 보이길래 가장 빨리 먹을 수 있는 걸로 가져다드렸죠. 제가 잘못한 건가요?”지배인은 한숨이 나왔다.딱히 그녀의 말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송호연이 죄가 있다면 눈치가 좀 없는 거랄까.그는 이한석의 눈치를 살폈다.박시준이 점심 이후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는데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한 건 명백한 실수였다.이한석이 싸늘하게 식은 얼굴로 물었다.“진통제도 그쪽이 줬습니까?”송호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먹고 얼마 안 지나서 배가 아프다고 해서요. 그래서 가지고 있던 진통제를 드렸죠.”“어떻게 시준 도련님한테 아무 약이나 줄 수 있어? 그러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네가 책임질 거야?”지배인이 욕설을 퍼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