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형님이 되실 분의 말씀인데 당연히 따를 수밖에...성강희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네, 오늘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가 너무 급했네요. 앞으로는 제 감정 최대한 숨겨볼게요...”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내뱉는 닭살 멘트에 소은호는 미간을 찌푸렸고 소은찬은 오버스럽게 구역질을 하더니 소리쳤다.“야, 작작해라?”이 모습을 지켜보던 소은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섰다.소은찬이 특별히 섭외한 밴드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에 취해 사람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바람이라도 쐬며 기분을 정리하려던 소은정이 밖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때, 들려오는 대화소리에 소은정은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이때,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그녀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어머, 은정아 여기 있었구나...”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심청하도, 심채린도 초대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걸까?하긴 심청하 모녀가 이렇게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었다. 게다가 소은정의 생일파티에는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잔뜩 모일 테니 어떻게든 안면을 트고 싶었겠지.소은정은 심청하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심청하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 듯 손바닥에 더 힘을 주었다.사람들 앞에서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아 소은정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우리 은정이 이쁘죠? 이렇게 이쁜데 능력도 출중하고. 저희 은정이 예쁘게 봐주세요?”심청하가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던 회장들에게 소은정을 칭찬했다.오늘 파티에 주인공의 등장에 회장들은 앞다투어 소은정에게 한 잔 올리겠다며 나섰다. 이번 기회에 소은정과 안면을 틀 수 있다면 그야말로 땡 잡은 거니까.소은정은 와인 잔을 들고 그들과 잔을 부딪혔다. 와인을 바로 원샷하는 그들과 달리 소은정은 그저 살짝 잔을 들어보일 뿐이었다.이때 심청하가 소은정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은정아, 뭐 해? 어서 마시지 않고. 예의없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어린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겸솜해야 하는 법이야.”심청하의 말에 와인을 원샷한 사장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소은정과 잔을 부딪히던 회장들은 소찬식에게 인사를 건넨 뒤 자리를 떴다. 괜히 가족들 싸움에 끼었다가 불편해지기 싫어서였다.소찬식도 역시 그들과 잔을 부딪힌 뒤 술을 마시지 않았다.방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소찬식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사실 오늘 파티에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소씨 일가에서 직접 파티를 주최하는 건 흔치 않은 일, 어떻게든 그들과 안면을 트려는 자들이 인맥을 동원해 은근슬쩍 참석했다는 걸 소찬식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좋은 일로 모인 것만큼 매정하게 내쫓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했던 것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술을 마시는 입장에서 모든 사람들과 건배를 하고 원샷할 수는 없다는 걸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고 이해했다.함께 잔을 부딪히고 눈도장을 찍는 것만으로도 파티에 참석한 목적을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그런데 예의가 없어? 소찬학도 어이가 없다는 듯 심청하를 바라보았다. 소은정이 그녀를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굳이 참견한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억울함을 토로해 그의 체면까지 난처해졌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그만해. 오늘 은정이 생일이야. 좋은 날에 왜 울고 난리야?”소찬학이 불만섞인 목소리로 심청하를 꾸짖었다.“찬학아, 이만 집에 가는 게 좋겠다. 좋은 날 집안 일로 얼굴 붉히고 싶지 않으니까.”소찬식의 말에 소찬학도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한 심청하도 흠칫 놀라고 말았다.이렇게 쫓아낸다고?오늘 어떻게든 상류인사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며칠 내내 소찬학을 졸라 겨우 참석한 심청하였다. 이렇게 쫓겨나면 앞으로 콧대높은 사모들 사이에서 고개도 들 수 없을 것이다.“형님, 그건 좀...”소찬학이 난처한 표정으로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십여 년간 그의 곁을 지킨 심청하에게 아내라는 명분조차 주지 못한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소찬학은 매정하게 그녀를 내칠 수 없었다.빈틈을 캐치한 심청하가 바로 소찬학의
소은정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때마침 밴드의 연주가 멈추고 적막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심청하는 참을 수 없는 치욕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소은정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너... 너 지금 어른한테 이게 무슨 말버릇이야!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하, 어른도 어른다워야 어른 대접을 해주지...소은정이 도도한 시선으로 심청하를 내려다 보았다.“가정교육? 난 잘난 건 나이 먹은 것밖에 없으면서 텃세를 부리는 어른한테 굳이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배웠어. 그 사람이 멀쩡한 가정을 파탄낸 상간녀라면 더더욱. 다른 사람 눈에 피눈물 나게 해놓고 아줌마는 평생 행복하게 하하호호 살 줄 알았나 봐?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자랑스러워? 그럼 아줌마 딸도 그렇게 살길 바랄게.”소은정을 말을 듣고 있던 심채린이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번 기회에 다른 소은정의 사촌 동생이라는 명분으로 재벌 2세들과 안면을 트고 박수혁과도 가까워지려 했는데...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된 것도 모자라 사생아라는 사실까지 까밝혀지다니.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면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어떻게든 소은정까지 끌어내려야 했다.심채린은 바로 연기력을 발휘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어...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어?”“어디서 여우짓이야? 내 말이 심해? 더 심한 말도 할 수 있는데 이 자리에서 다 말해 볼까?”지금까지 조용히 살던 사람들이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녀의 가족과 그룹에 빌붙으려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 연기에 장단을 맞춰주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뻔뻔하게 나온다면 추악한 민낯을 하나하나 까밝혀주겠어. 언제까지 그렇게 나오는지 두고볼게.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심채린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는 건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아빠... 도대체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모습에 소은정은 혀를 끌끌 찼다. 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소찬식은 이 모든 걸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동생에게 생긴 일 따위는 관심없었다. 다 큰 어른의 인생에 간섭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과거 가정을 져버린 건 어디까지나 소찬학의 선택이었으니 지금 이 상황도 인과응보라고 생각했으니까.소찬식을 화 나게 만드는 건 저 두 여자 때문에 소은정의 생일파티가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여기 더 있어봤자 좋은 꼴은 못 볼 거란 생각에 도망치 듯 자리를 떴고 소찬학도 소찬식에게 대충 인사를 한 뒤 파티장을 나섰다.상황이 종료되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소씨 일가의 가정사는 충분히 흥미로운 가십거리였지만 적어도 감히 이 자리에서는 떠들 수 없으니까.소은정은 그제야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렸다.고개를 돌려 여전히 씩씩거리는 소찬식의 모습에 소은정은 바로 아빠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아빠, 됐어요. 제가 이긴 거잖아요? 왜 저런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세요? 오늘은 제 생일이니까 즐겁게 보내요.”방금 전까지 얼음의 여왕처럼 매서운 포스를 내뿜던 소은정이 바로 소찬식에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그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던 사람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찬학이 저 자식... 여기가 어디라고 저 여자를 데리고 와? 여자한테 단단히 미쳐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소찬식은 소은정의 애교에 마음이 조금 풀리긴 했지만 여전히 분이 채 풀리지 않은 듯 중얼거렸다.“아이 참, 화 내지 마시라니까.”소은정의 애교에 소찬식도 결국 피식 웃음을 터트렸고 다시 손님들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유난히 길었던 생일파티가 끝나고 몸도 마음도 지친 소은정은 소찬식에게 언질을 준 뒤 바로 파티장을 나섰다.피한다고 피했지만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 탓에 취기가 살짝 오른 그녀는 술도 깰겸 조금 걷고 싶었다.박수혁의 키스, 성강희의 장미... 생일파티를 빙자한 친목 쌓기 행사라 즐겁지만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답답한 마음에 소은정은 한
처음 만난 경매장, 쇼핑몰, 성강희의 집, 그리고 오늘 파티... 송지현은 항상 이 향수를 뿌렸었다. 독특한 향기라 기억하고 있었던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하, 어떻게 알았어요?”송지현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소은정은 대답하지 않았다.성강희 사건과 별개로 소은정은 어린 나이에 유산을 물려받아 회사를 훌륭하게 경영하는 송지현을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런 추잡한 방법을 쓸 줄이야.충동적으로 벌인 일도 아니고 돈을 노리고 벌인 일도 아님을 소은정은 직감했다.“선수까지 푸신 걸 보니 좋은 일로 부른 건 아닌 것 같고. 피차 바쁜 사람들끼리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죠? 원하는 게 뭡니까?”송지현의 호흡이 급박해졌다. 아마 최대한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거겠지.두 장정에게 붙잡혀서가 아닌, 덤덤한 얼굴로 다가오는 소은정의 모습도 놀라웠지만 두려움은커녕 찰나의 순간 그녀의 신분까지 알아낸 소은정은 확실히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정체가 들킨 이상 더 이상 모습을 숨기는 건 의미가 없다. 송지현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소은정과 시선을 마주했다.“소 대표님, 무섭지 않으세요? 제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고분고분 따라오셨어요?”은근한 협박에 소은정은 웃음을 터트렸다.“어디 보자... 왜 송지현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화가 나셨을까? 아, 강희 때문이구나?”소은정의 대답에 분위기가 또다시 싸해졌다. 성강희, 어린 나이에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그녀를 유일하게 흔들리게 만드는 이름이었다.10년 전, 성강희에게 첫눈에 반한 그녀는 성강희가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설을 뿌리고 다녔음에도 개의치 않았다.언젠가 그녀에게도 기회가 돌아올 거라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오늘 소은정의 생일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한 성강희의 서프라이즈 선물을 확인한 순간, 송지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어쩌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추잡한 수를 써서 성강희와 결혼에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마음만큼은 평생 가지지 못 하겠구나...그래서 소
송지현이 손을 드는 순간, 뒤에 서 있던 장정 두 명이 동시에 다가섰다.두 사람의 손이 소은정에게 닿으려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두 남자의 얼굴을 스쳤다. 눈 깜박할 사이에 소은정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방금 전까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어둠이 오히려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었다.소은정은 민첩하게 옆으로 피한 뒤 중심을 최대한 낮추었고 눈 깜박할 새에 그들의 뒤로 이동했다.어둠 속에서 두 남자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소은정은 신고 있던 하이힐 하나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하이힐을 들어 두 남자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등 뒤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기분에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낮추었지만 소은정의 목표는 그들이 아니었다. 소은정은 손목을 살짝 돌리더니 송지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이힐 굽은 길고 얇아 센 힘으로 급소를 노려야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송지현이 당황하기 시작했지만 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 그녀는 대단한 기업가였으나 피지컬적으로는 연약한 여자에 불과했고 소은정처럼 따로 무술을 익힌 것도 아니었다.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하이힐 굽이 그녀의 머리통에 내리꽂혔다. 송지현은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머리를 움켜쥐었다.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까 봐 걱정되어서인지 처량한 모습을 소은정이 비웃을까 봐서인지 고통이 밀려와도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머리가 울리고 따뜻한 액체가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렇게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두 장정이 멍한 표정으로 송지현을 바라보고 있던 틈을 타 소은정은 남자 중 한 명의 머리를 찍었다.두 사람 중 하나라도 정신을 차리면 그녀가 불리해진다. 최대한 빨리 정확하게 끝내야 했다. 하이힐을 맞은 남자는 비틀거리며 송지현의 앞을 막아섰다.여리여리한 몸매에 화려한 외모, 딱 봐도 고생 한 번 안 해보고 곱게만 자랐을 것 같은 부잣집 아가씨가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니.대충 자기 몸 하나 지키려 배운 호신술 따위가 아니었
강서진의 질문에 송지현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소은정을 노려보았다. SC그룹보다는 아니지만 그녀는 유명 기업 송열그룹의 대표였다. 그런데 왜 소은정 저 여자는 그녀를 무시하는 걸까?송지현은 아직 멀쩡한 보디가드를 향해 명령했다.“뭘 멍하니 서 있어. 어서 처리해.송지현의 명령에 남자는 차가운 얼굴로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움직임을 제압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바로 정신을 잃게 만들면 그만이다.남자가 점점 다가옴에도 소은정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들고 있던 하이힐을 더 꽉 쥐었다...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남자는 왼손으로 소은정의 어깨를 잡은 뒤 뒤통수를 때려 바로 기절시키려 했다. 강서진과 이한석이 소은정에게 피하라고 소리치려던 그때, 박수혁이 전광석화의 속도로 달려나가 남자의 가슴을 퍽 하고 차버렸다.박수혁의 킥에 맞은 남자는 오장 육부가 찢어지고 영혼마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기절이라도 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약하게 들리는 숨소리만이 남자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그제야 송지현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그녀의 패배였다.박수혁 저 인간은 왜 갑자기 끼어들어서는...박수혁을 노려보던 송지현이 이를 악물었다.“박 대표님, 뭐 드라마 남자 주인공 코스프레라도 하시는 겁니까?”물론 박수혁의 눈빛도 차갑기는 마찬가지였다. 차가운 눈빛과 어울리지 않는 뜨거운 분노가 눈동자를 점점 잠식해 나갔다...귀신마저 떨게 만들 매서운 눈빛에 강서진마저 소름이 돋았다.“송지현 씨,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압니까? 부모님이 물려주신 귀한 회사인데 잘 지키셔야죠?”박수혁은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차오르는 분노를 참고 또 참았다.소은정이 맨발로 바닥에 서 있는 모습, 그리고 그녀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 세 사람... 이 모든 걸 눈에 담은 순간, 그는 당황스러웠고 행여나 소은정이 다칠까 두려웠지만 이 모든 감정을 압도하는 건 바로 무지막지한
소은정이 말이 끝나고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을 만큼 차가운 적막이 한동안 감돌았다.박수혁이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소은정의 눈동자에 담긴 불신을 보는 순간,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설... 설마 내가 시킨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박수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이에 소은정은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확실했다.어색한 분위기에 강서진도 이한석도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럼 왜 하필 당신이 여기에 나타났을까?”일촉즉발의 상황에 강서진이 다급하게 해명했다.“은정 씨, 오해예요. 형은 진짜 아무것도 몰랐어요. 형이 은정 씨랑 할 말이 있다고 이리저리 찾아다녔거든요. 발렛 기사가 은정 씨가 이쪽으로 갔다고 해서 그래서 저희도 이쪽으로 온 거예요. 정말요...”강서진이 이한석에게 눈치를 주자 이한석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습니다.”소은정은 그들의 말을 믿어도 되는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그래도 한때 부부로 한 이불 덮으며 지냈던 사이인데 형이 은정 씨한테 그런 짓까지 하겠어요? 형은 은정 씨가 위험해진 건 아닐까 미친 사람처럼 달려왔는데 그렇게 의심부터 하는 건 좀 심하잖아요.”호의로 나섰는데 괜한 오해가 받는 박수혁이 안쓰러웠을까 강서진의 말투에는 불평이 그대로 담겨있었다.한 이불 덮고 살던 부부 사이라...실제로 두 사람은 진짜 부부라 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었고 한 이불을 덮고 잠든 적은 더더욱 없었다.소은정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박수혁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그럼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네?”그녀가 거의 사건을 해결한 뒤에 겨우 나타난 박수혁이다. 강서진의 말 몇 마디에 그의 의도가 순수하다고 믿기엔 무리가 있었다.게다가 SC그룹이 참여하기 전 운산 프로젝트는 송열그룹과 협력하기로 했던 사안,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을 리가...박수혁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고 강서진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이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