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의 질문에 박수혁의 무표정인 얼굴로 대답했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무표정으로 팔을 거둔 박수혁의 눈동자는 분노아 욕정으로 불타고 있었다.그는 와인이 묻은 정장 재킷을 벗어 옆에 있는 의자에 걸어두었다.그리고 거칠게 넥타이를 푼 그의 손은 천천히 셔츠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단추가 하나둘씩 풀리고 박수혁의 섹시한 목젖과 쇄골이 드러났다.방안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소은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콩닥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소은정이 물었다.“글쎄.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나랑은 상관없잖아? 관심도 없고.”박수혁이 심채린과 사귀든 무슨 짓을 하든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박수혁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소은정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정말? 정말 관심없어?”박수혁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소은정은 애써 무시하며 대답했다.“당연하지.”소은정이 방을 나서려는 순간, 박수혁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이 남자...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아직도 그를 좋아하는지 시험이라도 하려는 걸까?소은정이 따져물으려는 순간, 박수혁은 다시 그녀를 벽에 밀쳤다.그리고 망설임없이 커다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입을 맞추었다.박수혁은 마음껏 달콤한 그녀의 입술을 탐닉했다. 그가 수없이 상상했던 것만큼.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황홀했다.갑자기 시작된 키스에 소은정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의 향기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박수혁의 손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려던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소은정이 박수혁의 입술을 꽉 깨물었다.“짝!”소은정은 망설임없이 박수혁의 뺨을 날렸다.그녀는 거칠게 박수혁을 밀친 뒤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그딴 선물 좀 안겨줬다고 내가 다시 돌아갈 줄 알았어? 당신 장단에 맞춰주고 싶어 하는 여자들은 널렸잖아? 나한테 이러지 마.”뜨거운 눈동자로 소은정을 바라보던 박수혁이 살짝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다
문 밖에서 기다리던 성강희는 무사히 나온 소은정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난 네가 납치라도 당한 줄 알았잖아. 뭐, 이 세상에 널 납치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소은정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걸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그녀는 실없는 농담을 내뱉는 성강희를 평소처럼 흘겨본 뒤 우아하게 계단을 내려갔다.“언니, 수혁 씨... 괜찮은 거지?”그녀의 뒤를 따라온 심채린이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소은정은 고개를 들어 심채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이렇게 얕은 수로 박수혁을 꼬시겠다고 달려들다니. 멍청한 건지 순진한 건지.차라리 당당하게 마음을 밝혔다면 그 솔직함을 인정해줬을 텐데. 착한 척 약한 척하는 심채린의 모습이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었다.소은정은 턱으로 방문을 가리키며 말했다.“궁금하면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아... 아니야...”심채린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소은정은 이제 아무렇지 않게 속마음을 숨길 수 있는 자신의 모습에 감탄했다. 한편 성강희는 미간을 찌푸리고 심채린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소은정에게 사촌동생이 있었나? 그런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성강희는 심채린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대놓고 물었다.“그런데 사촌 동생이라면서 왜 심채린이야? 소씨여야 하는 거 아닌가?”성강희의 지적에 심채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소은정이 모든 걸 밝히면 어떡하나 싶어 소은정의 눈치를 살폈다.“우리 숙모 딸이야.”소은정은 대충 둘러댄 뒤 계단을 내려갔다.상간녀니, 사생아니, 사정을 구구절절 밝히는 것도 귀찮았고 말해봤자 자기 얼굴에 침 뱉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성강희도 고개를 끄덕인 뒤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사실 소은정 말고 다른 여자에게는 관심도 없는 그녀였으니까.혼자 남겨진 심채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멀어져가는 소은정을 바라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그녀도 소씨 성을 이어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 심청하가 몇 번이나 소찬학에게 이 얘기를 떠냈지만 그
미래의 형님이 되실 분의 말씀인데 당연히 따를 수밖에...성강희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네, 오늘은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가 너무 급했네요. 앞으로는 제 감정 최대한 숨겨볼게요...”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내뱉는 닭살 멘트에 소은호는 미간을 찌푸렸고 소은찬은 오버스럽게 구역질을 하더니 소리쳤다.“야, 작작해라?”이 모습을 지켜보던 소은정은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섰다.소은찬이 특별히 섭외한 밴드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에 취해 사람들은 춤을 추고 있었다.바람이라도 쐬며 기분을 정리하려던 소은정이 밖으로 걸음을 옮기던 그때, 들려오는 대화소리에 소은정은 그곳으로 발길을 돌렸다.이때,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그녀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어머, 은정아 여기 있었구나...”소은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심청하도, 심채린도 초대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걸까?하긴 심청하 모녀가 이렇게 쉽게 물러나지 않을 거라고 예상하긴 했었다. 게다가 소은정의 생일파티에는 정재계 유명인사들이 잔뜩 모일 테니 어떻게든 안면을 트고 싶었겠지.소은정은 심청하의 손을 뿌리치려 했으나 심청하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 듯 손바닥에 더 힘을 주었다.사람들 앞에서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아 소은정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우리 은정이 이쁘죠? 이렇게 이쁜데 능력도 출중하고. 저희 은정이 예쁘게 봐주세요?”심청하가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던 회장들에게 소은정을 칭찬했다.오늘 파티에 주인공의 등장에 회장들은 앞다투어 소은정에게 한 잔 올리겠다며 나섰다. 이번 기회에 소은정과 안면을 틀 수 있다면 그야말로 땡 잡은 거니까.소은정은 와인 잔을 들고 그들과 잔을 부딪혔다. 와인을 바로 원샷하는 그들과 달리 소은정은 그저 살짝 잔을 들어보일 뿐이었다.이때 심청하가 소은정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은정아, 뭐 해? 어서 마시지 않고. 예의없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어린 나이에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겸솜해야 하는 법이야.”심청하의 말에 와인을 원샷한 사장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소은정과 잔을 부딪히던 회장들은 소찬식에게 인사를 건넨 뒤 자리를 떴다. 괜히 가족들 싸움에 끼었다가 불편해지기 싫어서였다.소찬식도 역시 그들과 잔을 부딪힌 뒤 술을 마시지 않았다.방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소찬식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사실 오늘 파티에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소씨 일가에서 직접 파티를 주최하는 건 흔치 않은 일, 어떻게든 그들과 안면을 트려는 자들이 인맥을 동원해 은근슬쩍 참석했다는 걸 소찬식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좋은 일로 모인 것만큼 매정하게 내쫓고 싶지 않아 모르는 척했던 것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술을 마시는 입장에서 모든 사람들과 건배를 하고 원샷할 수는 없다는 걸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알고 있고 이해했다.함께 잔을 부딪히고 눈도장을 찍는 것만으로도 파티에 참석한 목적을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그런데 예의가 없어? 소찬학도 어이가 없다는 듯 심청하를 바라보았다. 소은정이 그녀를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굳이 참견한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억울함을 토로해 그의 체면까지 난처해졌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그만해. 오늘 은정이 생일이야. 좋은 날에 왜 울고 난리야?”소찬학이 불만섞인 목소리로 심청하를 꾸짖었다.“찬학아, 이만 집에 가는 게 좋겠다. 좋은 날 집안 일로 얼굴 붉히고 싶지 않으니까.”소찬식의 말에 소찬학도 아직 눈물이 그렁그렁한 심청하도 흠칫 놀라고 말았다.이렇게 쫓아낸다고?오늘 어떻게든 상류인사 사람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며칠 내내 소찬학을 졸라 겨우 참석한 심청하였다. 이렇게 쫓겨나면 앞으로 콧대높은 사모들 사이에서 고개도 들 수 없을 것이다.“형님, 그건 좀...”소찬학이 난처한 표정으로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십여 년간 그의 곁을 지킨 심청하에게 아내라는 명분조차 주지 못한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소찬학은 매정하게 그녀를 내칠 수 없었다.빈틈을 캐치한 심청하가 바로 소찬학의
소은정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때마침 밴드의 연주가 멈추고 적막과 함께 모두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다.심청하는 참을 수 없는 치욕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소은정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너... 너 지금 어른한테 이게 무슨 말버릇이야!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하, 어른도 어른다워야 어른 대접을 해주지...소은정이 도도한 시선으로 심청하를 내려다 보았다.“가정교육? 난 잘난 건 나이 먹은 것밖에 없으면서 텃세를 부리는 어른한테 굳이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다고 배웠어. 그 사람이 멀쩡한 가정을 파탄낸 상간녀라면 더더욱. 다른 사람 눈에 피눈물 나게 해놓고 아줌마는 평생 행복하게 하하호호 살 줄 알았나 봐?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자랑스러워? 그럼 아줌마 딸도 그렇게 살길 바랄게.”소은정을 말을 듣고 있던 심채린이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번 기회에 다른 소은정의 사촌 동생이라는 명분으로 재벌 2세들과 안면을 트고 박수혁과도 가까워지려 했는데...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된 것도 모자라 사생아라는 사실까지 까밝혀지다니.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면 모든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어떻게든 소은정까지 끌어내려야 했다.심채린은 바로 연기력을 발휘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언니, 어...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 있어?”“어디서 여우짓이야? 내 말이 심해? 더 심한 말도 할 수 있는데 이 자리에서 다 말해 볼까?”지금까지 조용히 살던 사람들이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녀의 가족과 그룹에 빌붙으려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 연기에 장단을 맞춰주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뻔뻔하게 나온다면 추악한 민낯을 하나하나 까밝혀주겠어. 언제까지 그렇게 나오는지 두고볼게.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심채린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는 건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아빠... 도대체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모습에 소은정은 혀를 끌끌 찼다. 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
소찬식은 이 모든 걸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동생에게 생긴 일 따위는 관심없었다. 다 큰 어른의 인생에 간섭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과거 가정을 져버린 건 어디까지나 소찬학의 선택이었으니 지금 이 상황도 인과응보라고 생각했으니까.소찬식을 화 나게 만드는 건 저 두 여자 때문에 소은정의 생일파티가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여기 더 있어봤자 좋은 꼴은 못 볼 거란 생각에 도망치 듯 자리를 떴고 소찬학도 소찬식에게 대충 인사를 한 뒤 파티장을 나섰다.상황이 종료되자 몰려들었던 사람들은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소씨 일가의 가정사는 충분히 흥미로운 가십거리였지만 적어도 감히 이 자리에서는 떠들 수 없으니까.소은정은 그제야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여유롭게 입꼬리를 올렸다.고개를 돌려 여전히 씩씩거리는 소찬식의 모습에 소은정은 바로 아빠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아빠, 됐어요. 제가 이긴 거잖아요? 왜 저런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세요? 오늘은 제 생일이니까 즐겁게 보내요.”방금 전까지 얼음의 여왕처럼 매서운 포스를 내뿜던 소은정이 바로 소찬식에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그들을 힐끔힐끔 바라보던 사람들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찬학이 저 자식... 여기가 어디라고 저 여자를 데리고 와? 여자한테 단단히 미쳐서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소찬식은 소은정의 애교에 마음이 조금 풀리긴 했지만 여전히 분이 채 풀리지 않은 듯 중얼거렸다.“아이 참, 화 내지 마시라니까.”소은정의 애교에 소찬식도 결국 피식 웃음을 터트렸고 다시 손님들과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유난히 길었던 생일파티가 끝나고 몸도 마음도 지친 소은정은 소찬식에게 언질을 준 뒤 바로 파티장을 나섰다.피한다고 피했지만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 탓에 취기가 살짝 오른 그녀는 술도 깰겸 조금 걷고 싶었다.박수혁의 키스, 성강희의 장미... 생일파티를 빙자한 친목 쌓기 행사라 즐겁지만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답답한 마음에 소은정은 한
처음 만난 경매장, 쇼핑몰, 성강희의 집, 그리고 오늘 파티... 송지현은 항상 이 향수를 뿌렸었다. 독특한 향기라 기억하고 있었던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하, 어떻게 알았어요?”송지현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소은정은 대답하지 않았다.성강희 사건과 별개로 소은정은 어린 나이에 유산을 물려받아 회사를 훌륭하게 경영하는 송지현을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런 추잡한 방법을 쓸 줄이야.충동적으로 벌인 일도 아니고 돈을 노리고 벌인 일도 아님을 소은정은 직감했다.“선수까지 푸신 걸 보니 좋은 일로 부른 건 아닌 것 같고. 피차 바쁜 사람들끼리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죠? 원하는 게 뭡니까?”송지현의 호흡이 급박해졌다. 아마 최대한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거겠지.두 장정에게 붙잡혀서가 아닌, 덤덤한 얼굴로 다가오는 소은정의 모습도 놀라웠지만 두려움은커녕 찰나의 순간 그녀의 신분까지 알아낸 소은정은 확실히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정체가 들킨 이상 더 이상 모습을 숨기는 건 의미가 없다. 송지현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소은정과 시선을 마주했다.“소 대표님, 무섭지 않으세요? 제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고분고분 따라오셨어요?”은근한 협박에 소은정은 웃음을 터트렸다.“어디 보자... 왜 송지현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화가 나셨을까? 아, 강희 때문이구나?”소은정의 대답에 분위기가 또다시 싸해졌다. 성강희, 어린 나이에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그녀를 유일하게 흔들리게 만드는 이름이었다.10년 전, 성강희에게 첫눈에 반한 그녀는 성강희가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설을 뿌리고 다녔음에도 개의치 않았다.언젠가 그녀에게도 기회가 돌아올 거라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오늘 소은정의 생일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한 성강희의 서프라이즈 선물을 확인한 순간, 송지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어쩌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추잡한 수를 써서 성강희와 결혼에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마음만큼은 평생 가지지 못 하겠구나...그래서 소
송지현이 손을 드는 순간, 뒤에 서 있던 장정 두 명이 동시에 다가섰다.두 사람의 손이 소은정에게 닿으려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두 남자의 얼굴을 스쳤다. 눈 깜박할 사이에 소은정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방금 전까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어둠이 오히려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었다.소은정은 민첩하게 옆으로 피한 뒤 중심을 최대한 낮추었고 눈 깜박할 새에 그들의 뒤로 이동했다.어둠 속에서 두 남자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소은정은 신고 있던 하이힐 하나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하이힐을 들어 두 남자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등 뒤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기분에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낮추었지만 소은정의 목표는 그들이 아니었다. 소은정은 손목을 살짝 돌리더니 송지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이힐 굽은 길고 얇아 센 힘으로 급소를 노려야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송지현이 당황하기 시작했지만 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 그녀는 대단한 기업가였으나 피지컬적으로는 연약한 여자에 불과했고 소은정처럼 따로 무술을 익힌 것도 아니었다.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하이힐 굽이 그녀의 머리통에 내리꽂혔다. 송지현은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머리를 움켜쥐었다.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까 봐 걱정되어서인지 처량한 모습을 소은정이 비웃을까 봐서인지 고통이 밀려와도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머리가 울리고 따뜻한 액체가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렇게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두 장정이 멍한 표정으로 송지현을 바라보고 있던 틈을 타 소은정은 남자 중 한 명의 머리를 찍었다.두 사람 중 하나라도 정신을 차리면 그녀가 불리해진다. 최대한 빨리 정확하게 끝내야 했다. 하이힐을 맞은 남자는 비틀거리며 송지현의 앞을 막아섰다.여리여리한 몸매에 화려한 외모, 딱 봐도 고생 한 번 안 해보고 곱게만 자랐을 것 같은 부잣집 아가씨가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니.대충 자기 몸 하나 지키려 배운 호신술 따위가 아니었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