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경매장, 쇼핑몰, 성강희의 집, 그리고 오늘 파티... 송지현은 항상 이 향수를 뿌렸었다. 독특한 향기라 기억하고 있었던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하, 어떻게 알았어요?”송지현이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소은정은 대답하지 않았다.성강희 사건과 별개로 소은정은 어린 나이에 유산을 물려받아 회사를 훌륭하게 경영하는 송지현을 진심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런 추잡한 방법을 쓸 줄이야.충동적으로 벌인 일도 아니고 돈을 노리고 벌인 일도 아님을 소은정은 직감했다.“선수까지 푸신 걸 보니 좋은 일로 부른 건 아닌 것 같고. 피차 바쁜 사람들끼리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죠? 원하는 게 뭡니까?”송지현의 호흡이 급박해졌다. 아마 최대한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거겠지.두 장정에게 붙잡혀서가 아닌, 덤덤한 얼굴로 다가오는 소은정의 모습도 놀라웠지만 두려움은커녕 찰나의 순간 그녀의 신분까지 알아낸 소은정은 확실히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정체가 들킨 이상 더 이상 모습을 숨기는 건 의미가 없다. 송지현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소은정과 시선을 마주했다.“소 대표님, 무섭지 않으세요? 제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고분고분 따라오셨어요?”은근한 협박에 소은정은 웃음을 터트렸다.“어디 보자... 왜 송지현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화가 나셨을까? 아, 강희 때문이구나?”소은정의 대답에 분위기가 또다시 싸해졌다. 성강희, 어린 나이에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그녀를 유일하게 흔들리게 만드는 이름이었다.10년 전, 성강희에게 첫눈에 반한 그녀는 성강희가 수많은 여성들과 염문설을 뿌리고 다녔음에도 개의치 않았다.언젠가 그녀에게도 기회가 돌아올 거라 생각했으니까.하지만 오늘 소은정의 생일을 위해 정성스레 준비한 성강희의 서프라이즈 선물을 확인한 순간, 송지현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어쩌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추잡한 수를 써서 성강희와 결혼에 성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마음만큼은 평생 가지지 못 하겠구나...그래서 소
송지현이 손을 드는 순간, 뒤에 서 있던 장정 두 명이 동시에 다가섰다.두 사람의 손이 소은정에게 닿으려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두 남자의 얼굴을 스쳤다. 눈 깜박할 사이에 소은정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방금 전까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어둠이 오히려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었다.소은정은 민첩하게 옆으로 피한 뒤 중심을 최대한 낮추었고 눈 깜박할 새에 그들의 뒤로 이동했다.어둠 속에서 두 남자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소은정은 신고 있던 하이힐 하나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하이힐을 들어 두 남자를 향해 공격을 날렸다.등 뒤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듯한 기분에 남자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낮추었지만 소은정의 목표는 그들이 아니었다. 소은정은 손목을 살짝 돌리더니 송지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이힐 굽은 길고 얇아 센 힘으로 급소를 노려야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송지현이 당황하기 시작했지만 피하기엔 이미 늦은 상황, 그녀는 대단한 기업가였으나 피지컬적으로는 연약한 여자에 불과했고 소은정처럼 따로 무술을 익힌 것도 아니었다.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하이힐 굽이 그녀의 머리통에 내리꽂혔다. 송지현은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머리를 움켜쥐었다.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끌까 봐 걱정되어서인지 처량한 모습을 소은정이 비웃을까 봐서인지 고통이 밀려와도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머리가 울리고 따뜻한 액체가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렇게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두 장정이 멍한 표정으로 송지현을 바라보고 있던 틈을 타 소은정은 남자 중 한 명의 머리를 찍었다.두 사람 중 하나라도 정신을 차리면 그녀가 불리해진다. 최대한 빨리 정확하게 끝내야 했다. 하이힐을 맞은 남자는 비틀거리며 송지현의 앞을 막아섰다.여리여리한 몸매에 화려한 외모, 딱 봐도 고생 한 번 안 해보고 곱게만 자랐을 것 같은 부잣집 아가씨가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니.대충 자기 몸 하나 지키려 배운 호신술 따위가 아니었
강서진의 질문에 송지현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소은정을 노려보았다. SC그룹보다는 아니지만 그녀는 유명 기업 송열그룹의 대표였다. 그런데 왜 소은정 저 여자는 그녀를 무시하는 걸까?송지현은 아직 멀쩡한 보디가드를 향해 명령했다.“뭘 멍하니 서 있어. 어서 처리해.송지현의 명령에 남자는 차가운 얼굴로 한 발 앞으로 다가섰다. 움직임을 제압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바로 정신을 잃게 만들면 그만이다.남자가 점점 다가옴에도 소은정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들고 있던 하이힐을 더 꽉 쥐었다...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남자는 왼손으로 소은정의 어깨를 잡은 뒤 뒤통수를 때려 바로 기절시키려 했다. 강서진과 이한석이 소은정에게 피하라고 소리치려던 그때, 박수혁이 전광석화의 속도로 달려나가 남자의 가슴을 퍽 하고 차버렸다.박수혁의 킥에 맞은 남자는 오장 육부가 찢어지고 영혼마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는 기절이라도 한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약하게 들리는 숨소리만이 남자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그제야 송지현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완벽한 그녀의 패배였다.박수혁 저 인간은 왜 갑자기 끼어들어서는...박수혁을 노려보던 송지현이 이를 악물었다.“박 대표님, 뭐 드라마 남자 주인공 코스프레라도 하시는 겁니까?”물론 박수혁의 눈빛도 차갑기는 마찬가지였다. 차가운 눈빛과 어울리지 않는 뜨거운 분노가 눈동자를 점점 잠식해 나갔다...귀신마저 떨게 만들 매서운 눈빛에 강서진마저 소름이 돋았다.“송지현 씨, 정말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압니까? 부모님이 물려주신 귀한 회사인데 잘 지키셔야죠?”박수혁은 이성을 유지하기 위해 차오르는 분노를 참고 또 참았다.소은정이 맨발로 바닥에 서 있는 모습, 그리고 그녀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 세 사람... 이 모든 걸 눈에 담은 순간, 그는 당황스러웠고 행여나 소은정이 다칠까 두려웠지만 이 모든 감정을 압도하는 건 바로 무지막지한
소은정이 말이 끝나고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을 만큼 차가운 적막이 한동안 감돌았다.박수혁이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고 소은정의 눈동자에 담긴 불신을 보는 순간,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설... 설마 내가 시킨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박수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이에 소은정은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의미하는 바는 확실했다.어색한 분위기에 강서진도 이한석도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럼 왜 하필 당신이 여기에 나타났을까?”일촉즉발의 상황에 강서진이 다급하게 해명했다.“은정 씨, 오해예요. 형은 진짜 아무것도 몰랐어요. 형이 은정 씨랑 할 말이 있다고 이리저리 찾아다녔거든요. 발렛 기사가 은정 씨가 이쪽으로 갔다고 해서 그래서 저희도 이쪽으로 온 거예요. 정말요...”강서진이 이한석에게 눈치를 주자 이한석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습니다.”소은정은 그들의 말을 믿어도 되는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그래도 한때 부부로 한 이불 덮으며 지냈던 사이인데 형이 은정 씨한테 그런 짓까지 하겠어요? 형은 은정 씨가 위험해진 건 아닐까 미친 사람처럼 달려왔는데 그렇게 의심부터 하는 건 좀 심하잖아요.”호의로 나섰는데 괜한 오해가 받는 박수혁이 안쓰러웠을까 강서진의 말투에는 불평이 그대로 담겨있었다.한 이불 덮고 살던 부부 사이라...실제로 두 사람은 진짜 부부라 할 수 있는 사이도 아니었고 한 이불을 덮고 잠든 적은 더더욱 없었다.소은정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박수혁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그럼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네?”그녀가 거의 사건을 해결한 뒤에 겨우 나타난 박수혁이다. 강서진의 말 몇 마디에 그의 의도가 순수하다고 믿기엔 무리가 있었다.게다가 SC그룹이 참여하기 전 운산 프로젝트는 송열그룹과 협력하기로 했던 사안, 두 사람 사이에 아무런 관련이 없을 리가...박수혁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지고 강서진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이번
성강희의 질문에 송지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항상 장난기 넘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던 성강희가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몇 년 동안 일편단심 성강희만 바라봐 왔던 그녀의 사랑이 먼지처럼 보잘것없이 느껴졌다. 송지현의 눈빛이 살짝 슬퍼졌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의 표정 따위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그럴 리가.”소은정의 대답에 성강희와 소은호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맞은 게 아니었다면 왜 경보가 발동된 걸까?그리고 저 남자들은 박수혁의 부하들일까 아니면 송지현의 사람들일까?“박 대표님께서 왜 여기 계신 거죠?”박수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소은정을 바라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이번에도 역시 강서진이 앞으로 나서며 해명을 시작했고 이한석이 그를 거들었다.두 사람의 말에 소은호는 생각에 잠겼다. 박수혁의 성격상 음침하게 사람을 시켜 여자를 납치할 리는 없고... 송지현이 한 짓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잠시 침묵하던 그가 여동생을 향해 물었다.“은정아, 너 어떻게 할 생각이야?”“글쎄... 나한테 하려던 짓을 그대로 돌려주는 게 어떨까 싶어... 사진 몇 장 찍는 걸로 끝내는 거 괜찮으시죠?”송지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성강희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소은정, 네가 감히!”“내가 정말 못할 것 같아?”소은정이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송열그룹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날 건드린다면 앞으로 안연시 진출은 영원히 접어야 할 거야!”이에 소은호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송열그룹? 그게 우리한테 위협이 될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안연시의 주인도 이제 바뀔 때가 된 것 같군요...”소은호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송지현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지난 십여년 간 안연시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쏟았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었다.“일단 은정이 말대로 사진부터 찍죠.”송지현의 치욕 따위는 그와 아무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더 이상 그것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소은정은 바로 집으로 향했다.다음날 아침, 눈을 뜬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건 창밖의 푸릇푸릇한 나뭇잎들이었다. 귀한 나무들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느끼며 소은정은 천천히 일어났다.푹 자고 일어나니 어제 있었던 불쾌한 일들이 먼 과거처럼 느껴졌다.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마친 소은정은 오늘의 주식 뉴스를 확인하기 위해 태블릿을 켰다.새벽 네 시, 소은호가 그녀에게 보낸 메시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송지현은 이미 처리했으니까 안심하고 푹 자.”이렇게나 빨리? 소은호의 일처리 효율에 소은정은 혀를 내둘렀다. 식탁에 앉은 그녀는 박수혁이 이 사건에 정말 연루되었을까 잠깐 고민했다. 어제 그녀를 바라보던 그 복잡미묘한 눈빛... 도대체 무슨 의미였을까?하지만 곧 소은정은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어차피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곤 여유롭게 옷방으로 걸어갔다. 온갖 명품으로 가득 찬 옷장에서 그녀는 한정판 원피스를 꺼냈다.소은정이 집을 나서려던 순간, 그녀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한유라였다.“또 뭔데? 왜 아침마다 전화야...”“야, 어제 너 큰일 날 뻔했다면서. 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했어!”한유라가 구시렁댔다.“지금 알았으면 됐지. 뭐 좋은 일이라고 떠벌려.”“송지현 그 여자 정말 미친 거 아니야? 널 납치하려고 했다면서. 그리고 현장을 잡혀놓고 강희한테 고백까지 했다며? 진짜 이게 리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더 대박인 건 뭔 줄 알아? 내가 알아봤는데 널 납치하려고 했던 그 남자들 국가대표 출신이래. 너 정말 위험할 뻔했다고. 어디 다친 데 없지?”한유라의 말에 소은정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소은정의 실력이 뛰어난 건 맞지만 국가대표를 상대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첫 공격은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 치명타를 날렸다 치고 남은 보디가드 한 명을 제압하는 건 정말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에 소은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임춘식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장난기가 전혀 담겨있지 않은 진지한 표정에 소은정의 표정도 어두워졌다.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된 AI 칩은 최첨단 기술을 탑재해 인체의 질병을 스캔할 수 있는 제품, 출시되는 순간 의학계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획기적인 기술이었다.소은찬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임춘식은 AI 칩의 저작권을 거성그룹, SC그룹, 태한그룹이 연합하여 설립한 실험실 명의로 돌렸다. 이런 상황에서 SC그룹이 칩의 기술을 빼돌리는 건 세 회사 모두에게 좋을 게 없는 행동이었다. 세 회사의 유대관계가 흔들리는 건 물론, 주가 하락에 프로젝트도 결국 실패로 끝날 것이다.세 회사 모두 이번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본금을 투자했다. 제품을 출시하기도 전에 이런 일로 구설수에 오르는 건 그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잠시 침묵하던 소은정이 정신줄을 다잡으며 물었다.“어느 회사인지는 밝혀졌나요?”SC그룹의 수많은 계열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 임춘식이 여기까지 왔을 때는 이미 확실히 알아낸 게 있을 것이라 소은정은 확신했다.소은정의 질문에 그가 호주머니에서 쪽지 한 장을 꺼내며 의미심장한 말투로 말했다.“박수혁 대표가 직접 조사한 결과, 진한시에 위치한 지사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재 회장은 소찬학 씨더군요.”“아, 알겠어요.”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저번에 그 망신을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아, 루머를 해명하는 최선의 방식은 바로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정 안 되면 남자친구분한테 부탁하는 게 어떨지...”“네?”남자친구라니? 소은정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sunner이요. 그분이 직접 나선다면 모든 게 해결될 겁니다.”천재 물리학자 sunner이 모습을 드러낸다면 모두의 의심이 사라질 것이다. 세계 최고의 천재 물리학자가 굳이 그런 기술을 표절할 리가 없으니까. 소은정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SC그룹에서 나온 임춘식은 바로 박수혁에게 전화를
소은정은 물론 뒤를 따라 들어온 직원들은 검은 정장 차림에 굳은 표정도 잔뜩 굳어있어 포스가 넘쳤다.우연준이 소은정을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고 소은정은 아무 말 없이 직원을 힐끗 쳐다본 뒤 바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지원은 부랴부랴 대표 심채린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비서의 정체는 바로 심채린의 사촌동생 심세린, 심채린 못지않게 오만방자한 성격의 소유자였다.소은정이 왔다는 다급한 보고에도 그녀는 여유롭게 매니큐어를 계속 바르며 대답했다.“하, 우리가 큰돈을 벌 것 같으니까 슬쩍 발을 담그고 싶은 모양이지? 꿈 깨라고 해...”마침 그 말을 듣고 있던 본부장 사무실 앞에 도착한 소은정은 보디가드들의 안내를 받아 노크 한 번 없이 바로 사무실로 들어갔다.본사 대표의 방문에도 심세린은 자리에서 일어나지조차 않았다.“소은정 씨, 저희 대표님 지금 자리에 안 계세요. 다음에 다시 오시죠?”지사의 직원이 본사 대표에게 이런 태도로 말하다니. 듣도 보도 못한 상황에 우연준은 화가 치밀었다.하지만 소은정은 그런 비아냥거림에 기가 눌릴 위인이 아니었다.“5분 뒤, 간부진 회의를 열 겁니다. 외출 중이든 뭐든 참석하지 않는 직원은 전부 해고입니다.”“네.”우연준이 짧게 대답했다.심세린이 어이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소은정 씨, 제 말 못 들었어요? 저희 대표님 안 계시다고요. 대표도 없이 무슨 간부진 회의를 연다고 그러세요?”회의실로 들어가던 소은정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렸다.“대표? 누구야? 심채린이요?”“당연하죠. 전 하린 언니 사촌동생 심세린이고요. 아무리 본사 대표라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하셔도 되는 건가요?”우연준은 화가 나다 못해 이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소은정 대표님께 이렇게 무례하게 군 사람들 중에 무사한 사람은 없는 걸로 아는데...“아니요. 내일 당장 진한시 지사를 철수한다 해도 그쪽은 물론 심채린이 결정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지금 이 시각부터 주주들부터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