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의사가 도착했다.민하준은 출혈과다로 기절했다.부하들이 그를 침실로 옮겼다.주변에 온통 그의 부하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한유라는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다.그녀는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 귀를 막았다.아직도 총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악몽이었다.예전에 소은정이 사고를 당할 뻔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는 항상 평화주의를 외치고 다녔다.그런데 정작 자신이 이곳에 와보니 여태 알았던 세계관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소은정은 아마 그녀에게 경험담을 말할 때도 잔인한 장면은 숨기고 말했을 것이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정신은 말짱한테 괴로웠다.“다 나가세요. 환자는 지금 휴식이 필요해요!”의사는 잔뜩 긴장했으면서도 단호하게 사람들을 내쫓았다.부하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의사를 쏘아보았다. 마치 실수라도 하면 당장 목을 치겠다는 태세였다.언젠가부터 민하준에게도 힘이 생겼다.부하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이 곧 그의 힘이었다.주방장이 나서서 그들을 바깥으로 내보냈다.“다 나가. 여기서 버티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긴장해서 진료를 못 보잖아. 여긴 나랑 한유라 씨가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들 하지 마!”부하들 중 한 명은 구석에서 떨고 있는 한유라를 힐끗 보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형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저 여자를 못 믿겠어서 그러죠. 저 꼬라지 좀 보세요.”부하들은 너도나도 한유라를 비웃었다.유독 곽현만 웃지 않았다.주방장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살생을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누군들 안 무섭겠어? 게다가 여자야. 형님이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몰라? 이러다가 형님 깨면 한유라 씨가 너희들이 자기 비웃었다고 고자질하면 어쩌려고 그래?”부하들은 분노한 눈빛으로 방시혁을 쏘아보았다.“이거 너무한 거 아니오?”주방장은 힘껏 사람들을 밖으로 밀었다.“다 나가! 의사 선생님 진료 끝나면 다시 부를 테니까 가서 샤
한유라는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안으로 들어가서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주방장이 안으로 들어오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맛있는 냄새가 나서 와봤더니 유라 씨가 있었네요. 형님이 이 사실을 알면 아마 사발도 씹어 드실 겁니다!”한유라는 최대한 죄책감 어린 표정으로 대답했다.“날 구하다가 다쳤잖아. 이런 거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지 않겠어?”주방장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요. 형님이 한유라 씨를 데려온 과정이 좀 과격하기는 해도 결국엔 미련을 놓지 못해서잖아요. 그러니까 형님한테 잘해줘요. 목숨 걸고 자신을 지켜준 남자잖아요!”한유라는 슬픔을 머금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다 지나간 일인걸. 이거로 우리 서로 빚진 거 없는 거야. 이제 과거로 돌아가지도 못하잖아. 사람들이 심해그룹 사모님이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하면 다들 비웃을 거야. 아마 그 집에서도 나를 받아주지 않겠지.”주방장은 안타깝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한유라 씨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이해할 거예요. 우리가 하는 일이 떳떳하지 못한 일인 건 알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아무도 한유라 씨를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한유라 씨가 원하는 건 형님이 다 해주실 거고 형님 신변에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내조자가 필요하죠. 서로 원하는 걸 얻었으니 된 거죠, 뭐. 우리가 하는 일이 범죄 행위이긴 하지만 그건 국내 한정이고 해외에서는 아무도 이런 일을 신경 쓰지 않아요.”말을 마친 주방장은 그녀에게 가서 쉬라고 하고 자기가 가스레인지 앞에 마주섰다.그는 형님과 이 여자가 더 가까워지기를 바랐다.그녀가 독을 타거나 그런 걸 걱정한 건 아니었다.어차피 그녀의 일거일동은 전부 민하준의 통제 범위 안에 있으니 독을 타려고 해도 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한유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준이가 너무 위험한 일을 하고 있어서 걱정돼. 노경우도 허무하게 갔잖아.”주방장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그는 애써 정신을 가다듬고
곽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그럼 우리한테 불리하잖아요. 우리가 여기를 먹은지 얼마되지도 않았고 아직 고객과의 신뢰도 쌓지 못했는데 영감님 쪽에서 손을 쓰면 주도권을 빼앗기는 게 아닌가요?”민하준은 매서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곽현은 평소와는 다르게 조급한 기색을 내비쳤다.“형님, 우리도 미리 대비를 해야 합니다. 저쪽에서 움직이면 승산이 거의 없어요. 유일한 방법은….”“그게 뭔데?”“독사를 우리 고객으로 만드는 거죠. 동남아에서는 꽤 탄탄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데 만약 그쪽이랑 손을 잡으면 영감님 쪽에서 먼저 공격해 올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죠.”한유라는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그녀는 신중한 표정으로 곽현의 눈빛을 살폈다.겉으로 보면 모든 게 민하준을 위해서, 걱정해서 이러는 것 같았다.민하준도 그를 엄청 신임하고 있었다.잠시 정적이 흘렀다.한유라는 숨을 죽이고 그들의 대화를 기다렸다.민하준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오늘 독사를 만났어. 생각처럼 교활한 놈이더라고. 말하는데 빈틈을 주지 않아. 영감님하고 오래 거래하기도 했고. 그쪽보다 더 높은 수익을 보장하지 않는 한, 우리 쪽으로 완전히 넘어올 것 같지는 않아.”“일단 손해보는 장사부터 시작해야겠군요.”민하준은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쪽에 사람을 보내서 시간과 장소 확인하고 내가 직접 나갈 거야.”곽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인상을 썼다.“직접 가신다고요? 너무 위험해요. 그런 건 제가….”민하준이 그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야 해. 걱정하지 마. 여긴 국내도 아니고 지키는 사람이 몇 없어. 그쪽이랑 장소만 잘 확인하면 안전할 거야.”곽현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같이 가겠습니다.”“그래.”민하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창밖을 바라보며 물었다.“유경한 시체는 어떻게 처리했어?”“아직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여자한테 총 맞아 뒤지는 종말이라니. 찌질하긴 해도 본인
옆에 있던 부하들이 웃음을 터뜨렸다.한유라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떴다.여기 오기 전까지 겪었던 일이 아니었으면 민하준의 이런 배려에 감동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사실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민하준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주방에서 요란하게 요리를 준비하던 주방장이 한유라를 반기며 말했다.“한유라 씨, 어서 먹어요. 이건 형님이 특별히 부탁하신 특제 메뉴인데 맛있어요.”한유라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아 식사에 집중했다.현지 요리는 그리 맛이 없었다. 다행히 주방장이 요리를 잘해서 다른 반찬은 먹을만했다.그녀는 별장에서 하루를 보냈다.민하준은 다음 날에 같이 데이트나 나가자고 했다. 정말 데이트가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들을 따라 나온 자는 곽현과 주방장 둘뿐이었다.그녀는 곽현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기회가 없었다.그들은 하루종일 현지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여가를 즐겼다.그렇게 2주가 흐른 어느 날.쇼핑을 하다 지친 한유라는 크루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잠시 낮잠을 자는데 민하준이 그녀를 깨웠다.한유라가 인상을 쓰자 그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어르고 달랬다.“가자. 중요한 자리에 가기로 했어.”한유라는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어디 가는데?”“도착하면 알게 될 거야.”민하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밖에는 차가 이미 대기 중이었다.평소처럼 나들이가 아닌 검은색 제복으로 무장한 민하준의 부하들과 수십 대의 차량이 대기하고 있었다.한유라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별장에서 안면을 텄던 사람들은 아니었다.온몸에서 살기를 내뿜는 것이 잘 훈련된 용병 같았다.민하준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고는 손을 잡고 차량을 향해 걸어갔다.방탄복으로 갈아입은 주방장이 평소보다 근엄한 표정으로 차 문을 열어주었다.한유라는 그를 힐끗 보고는 긴장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이렇게 많은 사람이 움직인다는 건 일반 행사는 아닌 것 같았다.
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한유라는 휘청거리며 의자를 잡았다.한유라의 다리에 자그마한 가방 하나가 나타났다.그녀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번 거래, 저쪽에서 널 지목했어. 안 그러면 우리를 못 믿겠대.”한유라는 불에 데이기라도 한 것처럼 손이 뜨끔했다.“이게 무슨….”남자는 건조한 손으로 그녀의 귓불을 살짝 꼬집었다.온몸에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걱정하지마. 나랑 시혁이가 뒤에서 엄호해 줄게. 그리고 우리가 데려온 애들도 있는데 뭐가 두려워? 내가 어떻게 하는지 알려줄게.”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였다.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한유라를 더러운 지옥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한유라는 독사가 숨통을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이제는 조금 믿어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녀의 마음을 가지고 계산질이나 하고 있었다니.처음부터 자상하게 대한 것도, 그녀를 위해 총을 맞은 것도 연기로 보였다.한유라는 굳은 표정으로 방시혁이 하는 말을 조용히 들었다.“한유라 씨, 어차피 이제 형님 사람이잖아요. 뭔가를 증명해야 애들이 한유라 씨를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장민이도 한유라 씨가 못 미더워서 싸가지 없게 대한 것 아닙니까?”“한유라 씨가 직접 물건을 거래하고 오면 앞으로 다들 형수님이라고 불러드릴 거예요. 모두가 형수님 말을 형님 말처럼 믿고 따르게 될 거라고요!”한유라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누가 그런 걸 바란대? 난 처음부터 너희들과 같은 세상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런데 범죄에 날 끌어들이겠다고? 내가 언제 너희들 인정이 필요하다고 했어?”민하준은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한유라, 별거 아니야. 정말 간단한 거야. 몇 분만 딱 참으면 끝나. 다른 의도는 없어. 어차피 널 놓아줄 생각도 없으니 내 옆에서 마음 편히 살아. 하지만 애들에게도 뭔가는 보여줘야 하잖아? 노경우 애인이 왜 애들한테 인정을 받았는지 알아?”한유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민하준을 노려보았다
민하준은 피식 웃고는 방시혁에게 눈짓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방시혁은 경계 태세를 취하며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왔다.그들은 폐공장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맨 끝에 있는 방까지 도착했다.구조가 복잡해서 몸을 숨기기 완벽한 구조였다.안으로 들어서자 강한 휘발유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서 불쾌한 냄새가 났다.한유라가 인상을 쓰며 코를 막자 옆에 있던 민하준이 그녀를 끌고 남쪽 계단으로 향했다.한유라가 거세게 반항했지만 민하준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위층으로 올라가자 민하준이 앞장섰다.한유라는 그 뒤에서 걸었고 그녀의 뒤에는 방시혁이 있었다.겉으로 보기에는 그녀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여도 한유라는 기분이 불쾌했다.그녀는 괴이쩍은 눈빛으로 방시혁을 노려보았다.방시혁은 그녀가 긴장한 줄 알고 웃으며 말했다.“너무 겁낼 거 없어요. 위험한 거래였다면 형님도 한유라 씨 데리고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한유라는 목소리를 깔고 차갑게 대꾸했다.“그냥 요리만 할 줄 아는 사람인 줄 알았더니 사실 진정한 2인자는 너였구나!”이런 장소에 방시혁만 데리고 온다는 건 굉장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뜻이었다.방시혁이 말했다.“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죠. 곽현이는 성격이 너무 직설적이에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큰일난다고요.”그냥 핑계일 뿐이었다.곽현은 아마 위장용 장소로 지정된 곳으로 출발했을 것이다.만약 거기서 경찰이 나타난다면 곽현이 스파이로 지목될 수 있었다.곽현까지 잡히면 한유라는 여기를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그녀는 긴장감속에서 머리를 굴렸다.성패는 오늘에 달렸다.그녀는 긴장을 풀려고 귀를 만졌다.위층으로 올라가자 캐주얼한 복장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그는 싱글싱글 웃으며 그들을 맞아주었다.“반가워요, 민 사장님.”민하준도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독사는 왔나요?”“물론이죠. 우리 형님도 이번 거래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답니다.”그 남자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민하준의 뒤에 있는 한유라를 힐끗 보았다.“이분이 애인이신가요?
민하준이 데리고 온 용병들은 이미 포위된 상태였다.그들은 강제로 무기를 내려놓았다.제복을 입은 형사들이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한국 형사도 있었고 현지인 형사도 있었다.방시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도망칠 수 있는 통로도 사라졌다. 거래가 아닌 함정이었던 것이다!방시혁은 다급히 민하준의 팔목을 잡았다.“형님, 도망가세요. 경찰이 여기를 포위했어요. 시간만 끌다가는 우리한테 더 불리해요.”민하준도 바깥의 상황을 확인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의 표정이 서서히 온기를 잃었다.양면으로 포위된 상황.독사가 이걸 계획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독사가 경찰과 손을 잡았다면 결과는 끔찍했다.민하준은 자신이 떨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방시혁이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형님, 먼저 도망쳐요!”민하준은 다시 모습을 드러낸 독사를 음침하게 노려보았다.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동생, 형 너무 원망하지 마. 그러게 누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리래?”“그게 누굽니까?”독사가 웃으며 대답했다.“영감님이 나랑 거래를 하나 했거든. 경찰 출동 작전에 협조하면 그쪽에서도 나한테 유리한 딜이 들어올 거라고. 그리고 네가 가지고 있는 생산기지도 나한테 넘길 거라고 했어. 아무 조건 없이!”“돈 한푼 들이지 않고 생산기지를 손에 넣을 수 있는데 왜 기성품을 돈 주고 사겠어? 누구나 꿈꾸던 그림 아닌가? 네가 운영하는 것보다는 내가 더 잘할 것 같아서 영감님도 나한테 넘긴 거 아니겠어? 얌전히 고개 숙이고 영감님한테 가서 사과나 해!”방시혁은 상대를 죽일듯이 쏘아보며 비난을 퍼부었다.“경찰과 손을 잡아? 그러고도 이쪽 세계 사람이야? 다른 조직에서 이걸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독사는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대꾸했다.“아직도 어리네. 이 바닥에서 몇 년을 굴렀어? 내 위치까지 올라온 이상,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못해. 내 욕하는 놈들은 잡아서 죽이면 되거든. 얼마나 쉽겠어?”그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민하준을
민하준은 뚫어지게 그녀를 응시했다.“한유라, 너 아닌 거 알아. 너랑 상관없는 거 아니까 기다려.”다시 찾아갈게, 기다려!사다리는 그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하지만 이걸 잡는 순간 총탄이 날아올 것이다.그가 사다리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등 뒤에 손을 감추고 있던 한유라가 팔을 뻗었다.“민하준, 내가 말했지? 넌 내 손에 죽을 거라고!”민하준은 경직된 자세로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눈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공기마저 냉각된 기분.방시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한유라를 쏘아보았다.“형님, 빨리 가세요!”겨우 지탱하고 있던 민하준의 마음이 순식간에 부서지고 있었다.그녀가 했던 그 말, 한 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홧김에 그냥 뱉은 말이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짜증이 날 때면 유사한 말을 많이 했다.이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눈에는 그녀만 보였다.그는 입가에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한유라, 넌 쏘지 못해.”그는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그녀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하지만 그녀는 방아쇠를 당길 용기가 없었다.어느 정도는 그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며칠 함께 지내면서 그녀의 마음이 자신에게 기우는 것을 확인했다. 더 이상 그와의 스킨십을 거부하지 않았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의 상처를 바라본 것도 확인했다.그들도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했다.탕!찢어질 듯한 총성이 적막을 깨뜨렸다.민하준의 마음도 같이 부서졌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닥에 쓰러지는 방시혁을 바라보았다.방시혁은 가슴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방아쇠를 당긴 사람은 한유라였다.민하준을 향해 쏘았지만 방시혁이 대신 맞았다.정말 방아쇠를 당길 줄이야!방시혁은 민하준의 팔을 꽉 잡으며 말했다.“형님, 빨리 가세요!”민하준은 음산한 표정으로 한유라를 쏘아보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