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황망한 표정으로 아래로 추락하려던 그때, 귀 옆으로 찬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 뒤에 있던 곽현이 그녀를 붙잡은 것이다.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다시 난간을 꼭 잡았다.곽현이 건장한 몸으로 가볍게 뛰어올라 난간 안으로 들어갔다.곧바로 그가 한유라를 향해 손을 내민 후 그녀를 베란다 안으로 끌어올렸다.한유라는 놀란 가슴이 진정되질 않아 제대로 서 있지조차 못했다. 순간 맥이 탁 풀리며 간신이 벽만 붙잡고 서 있는 게 전부였다.만약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이 눈앞에 있지 않았다면 당장 바닥에 주저앉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방금 자신이 죽을뻔했던 걸 잊지 않았다.그녀는 진작 노경우가 자신에 대한 적의와 경멸을 눈치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그에게 만만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아무리 그래도 이곳에서 그녀는 민하준의 여자였다. 그가 감히 자신을 함부로 어떻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노경우를 노려보았다.하지만 상대는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그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곽현을 쏘아보며 말했다.“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저런 여자를 왜 구해?”곽현이 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옷을 정리하며 말했다.“형님의 여자야. 당연히 구해야지.”노경우가 어이없어는 표정으로 웃었다. 웃는 모습이 웃지 않는 것보다 한층 더 못생겨 보였다. 얼굴에 있는 흉터가 더욱 인상이 험악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멍청한 놈. 이 여자가 없어지면 다음 여자가 또 나타날 거야. 다음 여자는 분명 더 좋을 거라고. 갑자기 웬 착한 사람 흉내를 내고 있어?”곽현이 입술을 깨물고 아래의 상황을 살폈다. 차량 한 대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았다.“아까 형님이 한유라 씨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너도 봤을 거 아니야. 만약 방금 네가 차서 한유라 씨가 정말 죽기라도 했다면……”“했다면 뭐? 설마 형님이 이런 여자 하나 때문에 우리 형제들한테 등이라도 돌린다는 거야?”노경우가 반문했다.곽현이 담담하게 눈을 내려뜨더니 입꼬리를 씩 올렸다.“장민이 어떻게
민하준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귀 옆에 삐쭉 튀어나온 잔머리를 정리해 주었다.“곧 도착하니까 너무 겁내지 마. 여기만 벗어나면 우린 자유로워질 수 있어.”민하준이 두 손을 펼쳐 보이며 거만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한유라는 고개만 푹 수그리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도 더 이상 깊게 신경 쓰지 않았다.곽현이 와인 한 병을 따더니 잔까지 챙겨서 다가왔다. 흥분한 민하준의 눈이 살짝 붉어졌다.한유라에게 잔을 건넸지만 한유라는 받지 않았다.민하준이 그녀의 옆에 잔을 놓아주었다.남은 세 사람이 잔을 부딪혔다. 와인잔이 부딪히는 청명한 소리가 헬기 소리에 묻혀 사라지고 있었다.민하준이 도착한 곳은 동남아였다.한유라는 이곳이 싫었다.공기조차 탁한 이곳은 마약 하는 사람들의 천국이었다.어쩐지 민하준의 모습이 들떠 보였다. 그는 마치 오랫동안 이곳을 동경해온 사람처럼 느껴졌다.외국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아니면 그가 한유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는 그녀가 외국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걸 알고 그녀를 심하게 구속하지 않았다.그녀를 위한 거처도 따로 마련하지 않고, 자신이 진작 준비해 두었던 본거지로 데리고 갔다.그곳은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있는 곳이었다. 중무기가 아니라 평범한 총알로는 절대 유리 하나 깨트리지 못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거기다 주위를 지키는 사람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아마 이곳이 민하준의 핵심 구역인 것 같았다.그들과 함께 온 여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문밖만 주시하고 있었다.다음날 점심이 되어서야 노경우가 나타났다. 그는 아주 살짝 긁힌 상처가 전부였다.그를 본 여자가 주저하지 않고 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 모습에 곁에 서있던 형제들이 그들을 놀려주며 비웃었다.이층 발코니에 서서 그 장면을 보고 있던 한유라의 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속으로 살짝 탄식했다.순간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아주 낮은 소리였지만 그녀는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그녀처럼 밑
문은 밖에서 잠겨 있지 않았다. 어차피 문을 열어도 멀리 도망 못갈 것을 알아서 그런 것 같았다.겉으로 보기에는 민하준이 한유라를 믿어서 그런 것처럼 보여도 한유라에게는 오히려 수치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입구에 서서 조용히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역시 형님은 대단하십니다. 첫 거래에서 영감님의 고객들을 형님 사람으로 만드셨네요. 영감님 나중에 알면 뒷목 잡고 쓰러지겠는데요?”“그러니까요. 이 지역이 대마 주요 생산 기지이니까 여기서 자리를 잘 잡으면 돈이 그냥 굴러들어오겠는데요? 우리 세력도 커지면 영감님도 섣불리 우리에게 칼을 겨누지 못할 거고요! 굳이 싸우지 않고도 힘으로 영감님을 압도할 수 있겠어요.”“맞아요. 이 일대만 잘 장악하고 있으면 어차피 형님 손에 영감님의 다른 세력도 쥐고 있으니까 진짜 킹은 형님이 되는 거죠!”한유라는 그 말을 듣고 있자니 구역질이 올라왔다. 도대체 범죄 행위를 왜 저렇게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걸까?만약 바깥과 연락을 취할 수만 있다면….순간 그녀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한유라는 조심스럽게 귓불을 어루만졌다.다이아 귀걸이가 만져졌다.그녀는 다시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그녀가 귀걸이에 숨겨진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다급히 손을 내리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노크소리가 들리고 곽현이 안으로 들어왔다.민하준의 부하들 중에 그나마 그녀에게 예의를 갖춰 대하는 사람이 곽현이었다.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범죄자였기에 호감이 가지는 않았다.한유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곽현은 가지고 온 반찬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한유라 씨, 뭐라도 좀 드세요. 형님이 보내서 가져온 거예요. 저녁에 배고플 것 같아서요.”한유라는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안 먹으니까 가져가.”입맛이 있을 리 만무했다.곽현은 그 자리에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한유라 씨, 어떻게든 살아야 여길
민하준은 그녀의 표정은 보지 못한 듯, 집요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유라야, 나 오늘 기분이 정말 좋아.”그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자 한유라는 천천히 경계를 풀었다.“기분 좋아? 범죄를 저질러 놓고 기분이 좋아?”민하준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사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거든. 예전에는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했어.”한유라는 가소롭다는 듯이 그를 노려보며 대꾸했다.“그 핑계로 범죄의 길을 선택해 놓고 이제 되돌릴 수도 없을 텐데 그렇게 좋아?”민하준은 그녀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난 지금이 너무 행복해. 자기 사업이 있고 너도 돌아왔고. 한유라, 원하는 건 내가 다 줄 수 있어. 이 세상에 나보다 널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갑작스러운 사랑고백에 한유라는 침묵했다.그녀는 착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사랑?사랑하는 사람을 거래 매물로 이용한다고?민하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과거의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여도 극도의 이기주의자였다. 그가 사랑한 건 그 자신뿐이었다.한유라는 그가 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많이 고독해 보였다.그는 다른 부하들처럼 욕구를 잠재우기 위해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그는 점점 심연으로 빠져들어가면서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했다.정말 아이러니한 사람이었다.과거의 그는 지금과 다른 사람이었다.과거에는 광명을 좇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으나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실패의 충격 때문에 모든 걸 놓아버린 걸까?어쨌든 민하준은 되돌릴 길이 없어 보였다.한유라는 잠든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결국 그날 자신의 집에 무단 침입했던 그 모습만 떠올랐다. 그는 그대로 그녀의 인생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인간.그런 인간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심강열에게 미안했다.숨통이 조여왔지만 그녀는 곽현을 생각하고 얕은 한숨을 토해냈다.아무도 모르는 비밀.다음 날 아침, 햇살이 창밖을 통해 들
한유라가 욕실로 들어가서 세수를 하는데 민하준도 기어코 비집고 들어왔다.그는 자상하게도 치약까지 짜서 대령했다.한유라는 당연한 듯이 그가 해주는 것을 받아들였다.민하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 볼, 코에 입을 맞추었다.다시 사랑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곽현이 와서 문을 두드려서야 민하준은 아쉬운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한유라도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두 사람이 손잡고 아래층에 나타나자 다른 사람들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그들과 오래 함께한 곽현만 덤덤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갔다.한유라의 등장에 불쾌감을 표시하는 부하도 있었다.노경우는 대놓고 한유라를 노려보다가 옆에 앉은 여자가 눈치를 줘서야 표정을 풀었다.“밥 먹자.”민하준은 냉정한 표정으로 부하들을 둘러보며 짧게 말했다.아침 일찍 와서 식사를 준비한 주방장은 초췌해 보였다.그는 특별히 한유라를 위해 전복죽까지 준비했다.노경우가 그를 째려보았지만 주방장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만 긁적일 뿐이었다.“다른 여성분들도 계신 줄 알았으면 좀 넉넉하게 준비하는 건데, 제가 소홀했네요. 다음에는 조심할게요!”민하준은 전복죽을 한유라의 앞에 가져다주었다.“이거 좀 먹어.”한유라는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노경우를 보자 전복죽을 옆으로 밀었다.“저 사람한테 줘.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있잖아.”민하준은 냉랭한 시선으로 노경우를 쏘아보았다.“경우야.”노경우가 이를 부드득 소리 나게 갈자 옆에 있던 여자가 다급히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저 전복 안 좋아해요.”노경우는 콧방귀를 뀌며 민하준에게 말했다.“형님,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이 여자 때문에 우리와 생사를 함께하기로 한 장민을 버렸잖아요!”노경우는 장민을 그렇게 보낸 게 억울한 모양이었다.식탁에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민하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티슈를 집어 입을 닦으며 차갑게 말했다.“장민이 날 먼저 배신했어. 그래서 죽였어. 이의 있어? 내 여자를
민하준은 자신의 방에도 치밀하게 도청기를 설치했다.그는 아직도 그녀를 완전히 믿지는 않고 있었다.한유라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곽현을 바라보았다.곽현은 조용히 접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한유라 씨, 입맛에 안 맞으면 주방장한테 원하는 디저트 말씀하세요. 저는 이런 거 잘 모르니까요.”한유라는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호텔 디저트랑 비교하면 정말 엉망이네. 내가 직접 만들고 싶은데 밑에 재료 같은 건 다 있으려나?”“아마 있을 겁니다.”말을 마친 곽현은 미련없이 방을 나섰다.한유라는 그를 따라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주방에는 아무도 없었다.곽현은 그녀에게 들어가라고 눈짓하고 자신은 입구에 서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멀리서 보면 그가 한유라를 감시하는 것처럼 보였다.한유라는 익숙한 공구를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심강열과 결혼한 뒤로 베이커리를 공부했고 평소에도 빵이나 디저트를 만드는 게 취미였다.그녀는 익숙하게 밀가루와 계란을 풀고 반죽을 시작했다.곽현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한유라 씨, 난 신분이 드러나면 안 되는 입장입니다. 밖에 나가서 지원군을 요청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요. 한유라 씨는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함부로 도망치려고 하지는 마세요. 기회가 될 때, 민하준과 같이 거래 장소에 나가세요. 그래야 민하준을 법의 심판대에 올릴 수 있습니다.”한유라의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곽현의 말에 일리가 있지만 과연 자신이 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제가 외부와 연락이 가능하단 건 어떻게 아셨어요?”곽현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한유라 씨가 하고 있는 그 귀걸이, 내부 장치를 제가 만들었습니다.”그래서 그날 한유라의 귀걸이를 유심히 쳐다봤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그 귀걸이를 보고 곽현은 자신의 신분까지 드러내며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것이다.한유라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동료분들께서 제가 돌아갔을 때 이렇게 말하더군요. 다시 이
상대는 주방장과 곽현을 힐끗 보고는 한유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그래. 한유라 씨 무섭게 이러지 말고 민 사장한테 전화해서 돌아오라고 해. 우리 영감님께서 한유라 씨를 기다리고 계시거든.”주방장은 난감한 얼굴로 곽현의 눈치를 살폈다.곽현은 주저없이 핸드폰을 꺼냈다.불청객은 자기 집인 것처럼 편하게 소파에 가서 앉았다.“하준이도 보면 참 대단해. 어쨌든 영감님이 믿고 맡겼으니 실망시키면 안 돼. 성과가 부진하면 영감님이 다시 회수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주방장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배고프지 않으세요? 뭐라도 만들어 드릴까요?”“아니, 됐어.”10분 뒤, 민하준이 도착했다.그는 서늘한 표정을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경태 아저씨가 갑자기 어떤 일이세요? 연락이라도 하고 오셨으면 마중을 나갔을 텐데.”구경태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말했다.“하준아, 우리 사이에 인사치레는 그만두고 본론부터 얘기하자. 영감님이 한유라 씨랑 차를 마시고 싶어하셨는데 네가 연락도 없이 사람을 데리고 간 건 너무한 거 아니야?”민하준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어찌 영감님 뜻을 무시하겠습니까? 유라가 집으로 돌아갔길래 영감님이 이제 싫증난 줄 알고 제가 데려왔죠. 이런 일로 굳이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구경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게 아니라 한유라 씨가 가족들이 그립다고 해서 보내준 거야. 넌 어떻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사람을 데려가니. 그러니까 이런 오해가 생긴 거 아니야? 이렇게 하자. 내가 한유라 씨를 데려갈 테니 한달 약속 기간이 끝나면 네가 와서 다시 데려가.”민하준의 표정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유라는 여기가 마음에 든다고 며칠 더 놀고 싶다고 했거든요.”구경태는 고개를 저으며 경고의 의미를 담아 이야기했다.“민하준, 네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잊지 마.”민하준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대답했다.“영원히 잊지 못하죠.”옆에 있던 주방장이
구경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오랜 경험에서 나온 근엄함과 위압감, 그건 누가 가르친다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민하준은 자신이 어르신의 모든 인맥과 자원을 통제하고 있다고 자신했다.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어르신은 한바탕 분노를 터뜨리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낮고 미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놈이 데려간 거 맞아. 내가 소홀했어. 어떻게든 그 아이는 내가 구할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구해준다고 했으면 이 목숨 던져서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할게!”말을 마친 어르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는 고통스럽게 가슴을 부여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구경태는 다급히 다가가서 노인을 부축했다.전화는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바깥이 소란스러웠다.문밖을 지키던 어린 직원이 들어와서 보고했다.“유 사장님 오셨습니다.”구경태가 인상을 쓰고 있는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어르신이 구경태를 보며 말했다.“자네가 가. 경한이가 뭘 원하는지 알아. 경한이 시켜서 한유라 데려오라고 해. 서로 개처럼 물어뜯게 해보자고!”구경태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사무실을 나갔다.그는 미소를 지으며 유경한에게 다가갔다.“유 사장이 이 시간에 웬일이야?”유경한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민하준이 영감님 여자를 데려갔다면서? 불의를 보고 모르는 척할 수 없어서 내가 왔지. 민하준 요새 좀 잘나간다고 안하무인이네. 이럴 때 기강을 잡지 않으면 하늘 높은 줄 몰라! 어떻게 한유라를 말없이 빼돌릴 야무진 생각을 했지? 영감님을 대놓고 무시한 거잖아?”구경태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 안 그래도 내가 영감님께 우리가 호랑이새끼를 키운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 여자 때문이 아니라 그냥 영감님께 대놓고 선전포고한 거잖아!”유경한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애가 주제를 몰라. 구 실장, 우리야 영감님 모신지 오래 됐고 갖은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잖아. 미꾸라지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