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하준은 그녀의 표정은 보지 못한 듯, 집요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유라야, 나 오늘 기분이 정말 좋아.”그가 더 이상 다가오지 않자 한유라는 천천히 경계를 풀었다.“기분 좋아? 범죄를 저질러 놓고 기분이 좋아?”민하준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사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거든. 예전에는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했어.”한유라는 가소롭다는 듯이 그를 노려보며 대꾸했다.“그 핑계로 범죄의 길을 선택해 놓고 이제 되돌릴 수도 없을 텐데 그렇게 좋아?”민하준은 그녀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난 지금이 너무 행복해. 자기 사업이 있고 너도 돌아왔고. 한유라, 원하는 건 내가 다 줄 수 있어. 이 세상에 나보다 널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갑작스러운 사랑고백에 한유라는 침묵했다.그녀는 착잡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사랑?사랑하는 사람을 거래 매물로 이용한다고?민하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과거의 그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여도 극도의 이기주의자였다. 그가 사랑한 건 그 자신뿐이었다.한유라는 그가 좀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많이 고독해 보였다.그는 다른 부하들처럼 욕구를 잠재우기 위해 여자를 만나지 않았다.그는 점점 심연으로 빠져들어가면서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했다.정말 아이러니한 사람이었다.과거의 그는 지금과 다른 사람이었다.과거에는 광명을 좇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으나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실패의 충격 때문에 모든 걸 놓아버린 걸까?어쨌든 민하준은 되돌릴 길이 없어 보였다.한유라는 잠든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결국 그날 자신의 집에 무단 침입했던 그 모습만 떠올랐다. 그는 그대로 그녀의 인생을 갈가리 찢어 버렸다.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인간.그런 인간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심강열에게 미안했다.숨통이 조여왔지만 그녀는 곽현을 생각하고 얕은 한숨을 토해냈다.아무도 모르는 비밀.다음 날 아침, 햇살이 창밖을 통해 들
한유라가 욕실로 들어가서 세수를 하는데 민하준도 기어코 비집고 들어왔다.그는 자상하게도 치약까지 짜서 대령했다.한유라는 당연한 듯이 그가 해주는 것을 받아들였다.민하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 볼, 코에 입을 맞추었다.다시 사랑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곽현이 와서 문을 두드려서야 민하준은 아쉬운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한유라도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두 사람이 손잡고 아래층에 나타나자 다른 사람들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그들과 오래 함께한 곽현만 덤덤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갔다.한유라의 등장에 불쾌감을 표시하는 부하도 있었다.노경우는 대놓고 한유라를 노려보다가 옆에 앉은 여자가 눈치를 줘서야 표정을 풀었다.“밥 먹자.”민하준은 냉정한 표정으로 부하들을 둘러보며 짧게 말했다.아침 일찍 와서 식사를 준비한 주방장은 초췌해 보였다.그는 특별히 한유라를 위해 전복죽까지 준비했다.노경우가 그를 째려보았지만 주방장은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만 긁적일 뿐이었다.“다른 여성분들도 계신 줄 알았으면 좀 넉넉하게 준비하는 건데, 제가 소홀했네요. 다음에는 조심할게요!”민하준은 전복죽을 한유라의 앞에 가져다주었다.“이거 좀 먹어.”한유라는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노경우를 보자 전복죽을 옆으로 밀었다.“저 사람한테 줘.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있잖아.”민하준은 냉랭한 시선으로 노경우를 쏘아보았다.“경우야.”노경우가 이를 부드득 소리 나게 갈자 옆에 있던 여자가 다급히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저 전복 안 좋아해요.”노경우는 콧방귀를 뀌며 민하준에게 말했다.“형님,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이 여자 때문에 우리와 생사를 함께하기로 한 장민을 버렸잖아요!”노경우는 장민을 그렇게 보낸 게 억울한 모양이었다.식탁에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민하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티슈를 집어 입을 닦으며 차갑게 말했다.“장민이 날 먼저 배신했어. 그래서 죽였어. 이의 있어? 내 여자를
민하준은 자신의 방에도 치밀하게 도청기를 설치했다.그는 아직도 그녀를 완전히 믿지는 않고 있었다.한유라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곽현을 바라보았다.곽현은 조용히 접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한유라 씨, 입맛에 안 맞으면 주방장한테 원하는 디저트 말씀하세요. 저는 이런 거 잘 모르니까요.”한유라는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호텔 디저트랑 비교하면 정말 엉망이네. 내가 직접 만들고 싶은데 밑에 재료 같은 건 다 있으려나?”“아마 있을 겁니다.”말을 마친 곽현은 미련없이 방을 나섰다.한유라는 그를 따라 천천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주방에는 아무도 없었다.곽현은 그녀에게 들어가라고 눈짓하고 자신은 입구에 서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멀리서 보면 그가 한유라를 감시하는 것처럼 보였다.한유라는 익숙한 공구를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심강열과 결혼한 뒤로 베이커리를 공부했고 평소에도 빵이나 디저트를 만드는 게 취미였다.그녀는 익숙하게 밀가루와 계란을 풀고 반죽을 시작했다.곽현은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다.“한유라 씨, 난 신분이 드러나면 안 되는 입장입니다. 밖에 나가서 지원군을 요청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요. 한유라 씨는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함부로 도망치려고 하지는 마세요. 기회가 될 때, 민하준과 같이 거래 장소에 나가세요. 그래야 민하준을 법의 심판대에 올릴 수 있습니다.”한유라의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곽현의 말에 일리가 있지만 과연 자신이 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제가 외부와 연락이 가능하단 건 어떻게 아셨어요?”곽현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한유라 씨가 하고 있는 그 귀걸이, 내부 장치를 제가 만들었습니다.”그래서 그날 한유라의 귀걸이를 유심히 쳐다봤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그 귀걸이를 보고 곽현은 자신의 신분까지 드러내며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것이다.한유라는 눈물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동료분들께서 제가 돌아갔을 때 이렇게 말하더군요. 다시 이
상대는 주방장과 곽현을 힐끗 보고는 한유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그래. 한유라 씨 무섭게 이러지 말고 민 사장한테 전화해서 돌아오라고 해. 우리 영감님께서 한유라 씨를 기다리고 계시거든.”주방장은 난감한 얼굴로 곽현의 눈치를 살폈다.곽현은 주저없이 핸드폰을 꺼냈다.불청객은 자기 집인 것처럼 편하게 소파에 가서 앉았다.“하준이도 보면 참 대단해. 어쨌든 영감님이 믿고 맡겼으니 실망시키면 안 돼. 성과가 부진하면 영감님이 다시 회수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주방장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배고프지 않으세요? 뭐라도 만들어 드릴까요?”“아니, 됐어.”10분 뒤, 민하준이 도착했다.그는 서늘한 표정을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경태 아저씨가 갑자기 어떤 일이세요? 연락이라도 하고 오셨으면 마중을 나갔을 텐데.”구경태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말했다.“하준아, 우리 사이에 인사치레는 그만두고 본론부터 얘기하자. 영감님이 한유라 씨랑 차를 마시고 싶어하셨는데 네가 연락도 없이 사람을 데리고 간 건 너무한 거 아니야?”민하준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어찌 영감님 뜻을 무시하겠습니까? 유라가 집으로 돌아갔길래 영감님이 이제 싫증난 줄 알고 제가 데려왔죠. 이런 일로 굳이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구경태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게 아니라 한유라 씨가 가족들이 그립다고 해서 보내준 거야. 넌 어떻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사람을 데려가니. 그러니까 이런 오해가 생긴 거 아니야? 이렇게 하자. 내가 한유라 씨를 데려갈 테니 한달 약속 기간이 끝나면 네가 와서 다시 데려가.”민하준의 표정이 보기 싫게 일그러졌다.“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유라는 여기가 마음에 든다고 며칠 더 놀고 싶다고 했거든요.”구경태는 고개를 저으며 경고의 의미를 담아 이야기했다.“민하준, 네가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잊지 마.”민하준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대답했다.“영원히 잊지 못하죠.”옆에 있던 주방장이
구경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오랜 경험에서 나온 근엄함과 위압감, 그건 누가 가르친다고 나올 수 있는 게 아니었다.민하준은 자신이 어르신의 모든 인맥과 자원을 통제하고 있다고 자신했다.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일 뿐이었다.어르신은 한바탕 분노를 터뜨리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낮고 미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놈이 데려간 거 맞아. 내가 소홀했어. 어떻게든 그 아이는 내가 구할게.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구해준다고 했으면 이 목숨 던져서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할게!”말을 마친 어르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는 고통스럽게 가슴을 부여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구경태는 다급히 다가가서 노인을 부축했다.전화는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바깥이 소란스러웠다.문밖을 지키던 어린 직원이 들어와서 보고했다.“유 사장님 오셨습니다.”구경태가 인상을 쓰고 있는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어르신이 구경태를 보며 말했다.“자네가 가. 경한이가 뭘 원하는지 알아. 경한이 시켜서 한유라 데려오라고 해. 서로 개처럼 물어뜯게 해보자고!”구경태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사무실을 나갔다.그는 미소를 지으며 유경한에게 다가갔다.“유 사장이 이 시간에 웬일이야?”유경한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민하준이 영감님 여자를 데려갔다면서? 불의를 보고 모르는 척할 수 없어서 내가 왔지. 민하준 요새 좀 잘나간다고 안하무인이네. 이럴 때 기강을 잡지 않으면 하늘 높은 줄 몰라! 어떻게 한유라를 말없이 빼돌릴 야무진 생각을 했지? 영감님을 대놓고 무시한 거잖아?”구경태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 안 그래도 내가 영감님께 우리가 호랑이새끼를 키운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 여자 때문이 아니라 그냥 영감님께 대놓고 선전포고한 거잖아!”유경한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애가 주제를 몰라. 구 실장, 우리야 영감님 모신지 오래 됐고 갖은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잖아. 미꾸라지새
바깥에서 총탄이 빗발치고 매캐한 탄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한유라는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민하준은 든든하게 그녀의 전방을 지키고 있었다.이렇게 빨리 위험이 찾아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그리고 사람이 이렇게 허무맹랑하게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조금 전까지 총을 들고 적과 대치하던 어린 청년이 순식간에 바닥에 쓰러져 시체로 나뒹굴었다.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후방을 바라보았다.곽현은 최전방으로 달려나가 길을 트고 있었다.하지만 유경한의 인원들은 집요하게 민하준을 잡으려는 듯, 포위망을 점점 좁히고 있었다.민하준은 영감이 보냈다는 것을 직감했다.하지만 그래서 뭐?여기까지 오면서 도덕과 양심은 이미 개나 줘버렸다.그는 무자비하게 총을 갈겼고 적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한유라는 구석에 숨어 온몸을 떨고 있었다.그녀는 멍하니 민하준의 귓가로 총탄이 스쳐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지금 민하준의 등을 떠밀면 총 맞고 죽지 않을까?이 인간만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닐까?그러면 힘겹게 증거를 수집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거래 시간을 기다릴 이유도 없었다.민하준만 죽는다면.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며 민하준을 잡고 있던 손을 빼려고 힘을 썼다.그리고 그 동작을 민하준도 눈치챈 건지 잡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주며 그녀에게 말했다.“유라 겁먹지 마. 내가 다 해결할 수 있어.”말을 마친 그는 계속해서 총을 쏘았다.한유라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전방에 있던 곽현이 고개를 돌리고 그녀를 바라보다가 소리쳤다.“뒤 조심해요!”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총성이 울렸고 이어서 한유라의 자지러진 비명소리가 저택을 울렸다.놀라운 점은, 한유라의 등을 노리던 총탄에 민하준이 맞았다는 점이었다.그는 순식간에 몸을 놀려 자신의 몸으로 한유라를 감쌌다. 총탄을 맞은 그의 어깨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곽현의 눈빛이 복잡해졌다.노경우가 어디서 난 건지 수많은 인원들을 데리고 전장에 뛰어들었다.유경
그 말을 들은 곽현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눈물을 질질 짜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의지는 확고했다.그녀의 시선은 집요하게 민하준을 쫓고 있었다.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를 엄청 걱정하고 안쓰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하지만 내뱉은 말은 칼 같고 단호했다.곽현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어차피 그녀의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충분했다.그는 민하준이 한유라를 구하다가 다친 일 때문에 그녀가 혹시라도 마음이 약해져서 계획이 틀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한유라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민하준을 더 증오하고 있었다.바깥.민하준은 음침한 눈빛으로 유경한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아저씨, 그만 나와요.”차 뒤에 숨어 있던 유경한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서서히 일어났다.“하준아, 내가 잘못했어. 내가 졌어. 앞으로 네가 하는 일에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한테 투항하는 건 모양새가 빠지지만 일단은 목숨을 부지하는 게 우선이었다.유경한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하준아, 나도 선동에 당한 거야. 사실은 말이지….”민하준은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부하들에게 눈짓했다. 유경한은 질질 끌려 나와서 쓰러진 노경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유경한은 시체를 보고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우리 애들도 많이 죽었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자.”“웃기는 소리 하네! 내 남자를 죽인 주제에 자기는 살겠다고 넘어가자고?”2층에서 눈물범벅이 된 여자가 뛰어나오며 욕설을 퍼부었다.그녀는 총격전이 시작했을 때부터 2층에 숨어 있었기에 다치지 않았다.하지만 노경우가 쓰러지는 모습을 봤을 때, 가슴에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몰려왔다.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쓰러진 사람에게서 권총을 빼앗아 유경한의 머리를 겨누었다.“죽여 버릴 거야!”그렇게 소리치는 그녀의 눈빛에 깊은 절망이 담겼다.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노경우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조금 전까지도 일
잠시 후, 의사가 도착했다.민하준은 출혈과다로 기절했다.부하들이 그를 침실로 옮겼다.주변에 온통 그의 부하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한유라는 비집고 들어갈 수 없었다.그녀는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 앉아 귀를 막았다.아직도 총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악몽이었다.예전에 소은정이 사고를 당할 뻔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그녀는 항상 평화주의를 외치고 다녔다.그런데 정작 자신이 이곳에 와보니 여태 알았던 세계관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소은정은 아마 그녀에게 경험담을 말할 때도 잔인한 장면은 숨기고 말했을 것이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정신은 말짱한테 괴로웠다.“다 나가세요. 환자는 지금 휴식이 필요해요!”의사는 잔뜩 긴장했으면서도 단호하게 사람들을 내쫓았다.부하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의사를 쏘아보았다. 마치 실수라도 하면 당장 목을 치겠다는 태세였다.언젠가부터 민하준에게도 힘이 생겼다.부하들과의 끈끈한 유대감이 곧 그의 힘이었다.주방장이 나서서 그들을 바깥으로 내보냈다.“다 나가. 여기서 버티고 있으니까 선생님이 긴장해서 진료를 못 보잖아. 여긴 나랑 한유라 씨가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들 하지 마!”부하들 중 한 명은 구석에서 떨고 있는 한유라를 힐끗 보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형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저 여자를 못 믿겠어서 그러죠. 저 꼬라지 좀 보세요.”부하들은 너도나도 한유라를 비웃었다.유독 곽현만 웃지 않았다.주방장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살생을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누군들 안 무섭겠어? 게다가 여자야. 형님이 얼마나 애지중지하는지 몰라? 이러다가 형님 깨면 한유라 씨가 너희들이 자기 비웃었다고 고자질하면 어쩌려고 그래?”부하들은 분노한 눈빛으로 방시혁을 쏘아보았다.“이거 너무한 거 아니오?”주방장은 힘껏 사람들을 밖으로 밀었다.“다 나가! 의사 선생님 진료 끝나면 다시 부를 테니까 가서 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