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단 1초라도 더 기다리기 싫었다.박예리의 배속에는 생명이 아니라 시한폭탄이 자라고 있었다.윤재수가 망한 뒤에 박예리가 이 아이를 낳는다면 그의 가문은 비난과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그는 다른 사람의 아이를 키워줄 정도로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이한석은 전화를 받고 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리고 박예리를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연락했다.“아가씨 집에 있지?”“네. 외출은 하지 않았어요.”이한석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바로 병원으로 가서 대기했다.박예리는 순순히 병원으로 따라왔고 오는 내내 울지도 않았다.체념한 것 같았다.그녀가 수술실로 들어가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수술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약 30분 정도, 이한석은 경호원들을 쉬게 하고 자신이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했다.그리고 박수혁에게는 수술 끝나는 시간에 맞춰 연락할 생각이었다.그런데 수술실로 들어간지 10분도 안 돼서 안에서 물건을 집어 던지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이한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수술실에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의사가 밖으로 뛰쳐나왔다.“박예리 씨가….”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를 감싸고 한 손에는 메스를 든 박예리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안에서 나왔다.이한석은 인상을 쓰며 그녀를 말리려 했다.“예리 씨….”박예리가 흐느끼며 절규했다.“난 내 아이를 지킬 거야. 이 아이가 없으면 윤재수가 다시는 나한테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그녀는 이를 꽉 악물었다.날카로운 메스 때문에 아무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겁에 질린 의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이한석은 조용히 그녀를 달래려고 했다.“예리 씨, 일단 진정해요. 지금 당장 대표님께 연락할게요.”박예리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든지 말든지 상관없어. 어차피 오빠는 자기만 생각하니까!”그녀는 메스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누가 지키고 있을까 봐 우려한 그녀는 바로 계단으로 뛰었다.하지만 한 층도 채 내려가지 못해서 발목을 삐끗했고 다리에 힘이 풀려
여직원도 집에 아이가 있는 워킹맘이었기에 아동 문제에 대해 아주 민감했다.아이가 많이 불안해하고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옆에 있던 남자직원이 다가와서 맞장구를 쳤다.“그러니까. 어젯밤에 기숙사에서 같이 잠을 자는데 처음에는 엄청 걱정했어. 애가 울고 떼를 쓸까 봐. 밤까지 새울 마음의 준비까지 마쳤는데 애가 스스로 씻고 알아서 자더라고. 다음 날에 내가 잠에서 깨니까 애도 같이 깨더라고. 이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철이 들었어. 저런 아이가 내 아이였으면 정말 행복했을 것 같아.”“일단 여자친구를 만나야 애를 낳지!”옆에 있던 동료들이 농담을 하는데 박수혁이 음침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이한석은 경고의 의미로 헛기침을 했다.직원들은 즉시 웃음을 멈추었다.박수혁은 말없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얌전히 의자에 있던 아이는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더니 의자에서 내려 조용히 박수혁에게 다가갔다.아이는 여전히 어제 입던 옷을 입고 있었는데 많이 구겨진 상태였다.아이는 기대에 찬 눈으로 박수혁을 바라보다가 가방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 글자를 썼다.“아빠.”박수혁은 말없이 아이를 노려보기만 했다.아이는 계속해서 써내려 갔다.“아빠도 저를 버릴 건가요?”아이는 메모지를 들고 조심스럽게 박수혁의 눈치를 살폈다.참 안쓰러운 모습이었다.박수혁은 조금 죄책감이 들었지만 아이 엄마를 생각하니 그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는 취조하는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이름이 뭐야?”안진에게서 아이의 이름을 들은 적은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아이는 표정을 풀고 바로 자신의 이름을 메모지에 적었다.“박시준이요.”박수혁은 어린 아이가 글자를 이렇게 정확하게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아이의 상태를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이 배운 게 틀림없었다.박씨라….안진이 집요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너 벙어리야?”박시준은 순간 고개를 떨어뜨리고 뭔가 크게
박수혁은 박예리에게 시선을 돌렸다.박예리는 침대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그녀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채, 증오로 가득한 눈으로 박수혁을 노려보고 있었다.그 순간 박수혁은 모든 걸 알 것 같았다.그는 냉랭한 시선으로 윤재수를 쏘아보며 말했다.“어차피 당신에게 예리는 이용할만한 도구일 뿐이잖아요. 내 동생을 이용해서 우리 집안 전체를 통제할 생각 아닌가요?”윤재수가 잔인한 미소를 짓더니 정색하며 말했다.“박수혁,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내 동생도 네 아이를 낳았는데 네 동생이 내 아이를 낳겠다는 게 뭐가 문제가 되지?”박수혁은 담담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 아이는 데려가도 좋습니다.”그 말을 들은 윤재수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박수혁을 노려보며 말했다.“이거 정말 독한 놈일세. 자기 아들을 버리려 하다니. 그 아이, 안진이랑 며칠 같이 생활하지도 않았어. 계속 학교나 어린이집에서 생활했지. 동남아 학교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 아마 학대나 괴롭힘도 많이 당했을 거야. 안진이도 애가 세 살이 되어서야 말을 못한다는 걸 알고 집으로 데려왔어.”박수혁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가련한 모습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옆에 있던 박예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유산된 자신의 아이가 떠올랐던 것이다.윤재수는 짜증스럽게 그녀를 노려보다가 다시 박수혁에게 시선을 돌렸다.“박수혁, 내 동생이 아이를 너한테 보냈으면 잘 보살펴야지. 애한테 무슨 일 생기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박수혁은 피식 웃고는 섬뜩한 표정으로 말했다.“윤재수 씨, 자신의 실력을 너무 믿지 마세요.”그는 이미 참을만큼 참았다.윤재수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박수혁, 너 설마 내 돈에 손댔어?”그는 전문가까지 보내서 박수혁을 감시했으니 돈은 안전할 거라고 자신했다.그런데 묘하게 바뀐 박수혁의 태도가 의심스러웠다.박수혁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다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어떻게 했을 것 같나요?”“
비꼬는 건지, 진담인 건지 알 수 없었다.박수혁은 말을 마친 후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그는 돌아서서 떠났다.박예리는 그를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다시 울고 불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 사람을 돌려줘 오빠, 나 진짜 그 사람 좋아해. 왜 나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거야. 어려서도 그렇고 지금까지 나 무시하고, 다른 사람 때문에 나 괴롭히더니, 이젠 내가 좋아하는 사람까지 해치려고 하잖아...”박수혁은 귀찮다는 듯 그녀를 뿌리쳤고, 그녀의 멱살을 잡고 위로 들어 올렸다. 매서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너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넌 멍청한 척하는거냐, 아니면 천박한 거냐? 저 자식들이 아버지를 베고 할아버지를 죽였어. 너랑 어머니를 데려가 나를 협박까지 했는데, 넌 아직도 저딴 원수랑 연애를 하고 싶니?”박수혁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표정은 차가웠고 매서웠다.“내가 하나만 묻자. 엄마가 저 자식들 손에 있지 않았다면, 내가 너 생사 따위를 신경 썼을 것 같아?”그는 쓰레기봉투 버리듯 그녀를 바닥에 내팽개쳤다.박예리는 무릎을 찧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널브러졌다.박수혁은 고개를 숙인 채 옷소매를 정리했다. “그놈은 곧 죽을 거야. 네가 저놈 때문에 죽는 다 해도 난 상관없어. 오늘부터 네가 죽든 말든, 박 가와는 거리를 둬.”그는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말을 마친 후, 그는 주저하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정 국장은 밖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무언가를 말하려다 멈칫하였다.“대표님, 저....”박수혁의 말투는 담담했고, 미간은 약간 찌푸려져 있었다.“머릿속에 연애로 가득 찬 얼간이 일뿐입니다. 윤재수 일이라면 사리분별 못하는 애예요. 알아서 자멸하게 내버려 두죠.”정 국장은 고개를 숙이고 몇 초간 침묵하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체면을 생각해, 저희가 예리 씨를 피해자로 지정하겠습니다.”공범이 아닌, 피해자.그렇지 않다면 오늘 잡혀갈 사람은 박예리였을 것이다.정 국장은
왠지 모르게 안진의 말을 듣고, 그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뭔가 있는 것 같았다. 파헤쳐 봐야 한다.이런 느낌은, 윤재수를 잡았을 때 보다 더한 쾌감이었다.도대체 뭘까?박수혁은 스스로를 진정시켰다.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안진 역시 개의치 않았다.그녀의 목소리는 나긋나긋했고, 약간의 잔혹함과 따뜻함을 담고 있었다. “내가 당신 위해서라면 누구든 죽일 수 있는데, 왜 당신을 향한 내 마음을 몰라주니?”“너 어디 아파?”“지금은 예전이랑 달라. 이 세상에 윤재수는 사라졌지만, 안진은 계속 있을거야.”그녀는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박수혁은 싸늘한 표정으로 검은 화면을 바라보았다.계속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전동하가 안진을 돌려보냈다. 어떤 거래를 한 걸까?그는 당시 배에서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어떻게 그녀를 놓아줄 수가 있나?무엇이 전동하가 안진을 놓아주게 했을까?만약 그가 이 답을 알 수 있다면, 모든 어려운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박수혁은 화가 나서 휴대폰을 던졌다. 안색이 매우 어두웠다.정말 끝이 보이지 않았다.박대한의 장례식은 이달 말로 예정되었다.이한석은 매우 성대하게 준비했고, 박대한의 생전 취향과도 잘 맞았다.소은정과 전동하는 소찬식의 전화를 받고 미리 비행기를 타고 돌아갔다.박대한은 업계에서 명망이 높았다.만약 그들이 참석하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았다.더구나 두 집안의 관계가 주목을 받고 있어 한번 자리를 빠지면 외부로부터 불필요한 추측들이 생길 것이다.그렇기에 소은정도 무조건 돌아가야 했다.전동하는 그녀가 요 며칠 산 물건들을 사람을 시켜 모두 들고가라고 했다.전용기라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또 한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소은정은 집에 돌아왔고, 집사 아저씨는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여행 하시느라 바빠 따님이 있으신 줄도 잊으신거죠?”비록 잔소리를 들었지만 소은정은 여전히 기뻤다.그녀는 전동하의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 웃으며 집사 아저씨를 돌아보았다.“새봄이가
카펫은 두껍고 날카로운 부분이 부드러운 막으로 덮여 있어 넘어져 다칠 일이 전혀 없었다.새봄이의 DNA에는 끈기가 심어져 있었다.울지도 않고 엄마와 아빠를 따라 계단을 한 계단씩 내려놨고, 안정적이었다.소찬식은 눈앞의 두 사람을 노려보더니 달려가 새봄이를 품에 안았다. “우리 새봄이 참 대단하네, 이렇게 어린 나이에 계단을 내려오다니, 천재예요!”전동하는 멈칫하였다. 이 말, 어딘가 익숙하다!김하늘은 달려와 소은정을 안았다.“드디어 돌아왔구나, 휴가를 너무 갑작스럽게 가서 가는 줄도 몰랐어!”확실히 갑작스럽긴 했다.소은정이 웃었다. 하지만 어떤 일은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이거 너랑 오빠한테 둘만의 공간을 마련해 주는 거잖아.”소은해는 거실 소파에 나른하게 앉아 고개를 젖혔다.“아이고, 고양이 쥐 생각하시네.”김하늘은 혀를 찼고, 소은해는 입을 다물었다.소은정은 웃었다. 쌤통이다.모두 모이니 소은정이 새봄이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그래서 김하늘과 밖에 있는 화방에 가서 차를 마셨다.김하늘은 그곳에서 식탁보를 정리하다 소은정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한숨을 쉬었다.“그동안 별 일 없었어?”“응, 보다시피. ”김하늘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외국에서 치료하는 동안 동하 씨가 줄곧 좋은 소식만 들려줬어. 잠깐 나도 모르게 그 사람 속임수에 빠졌지. 모두 걸러진 소식만 듣고 있었어.”김하늘은 순간 몸이 굳었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치료? 어디 다쳤어?”그녀는 한 발자국 다가왔다. 눈빛은 의아함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소은정이 웃었다. “다 나았어, 그냥 작은 상처일 뿐이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우리 아빠가 알게 되면 또 걱정하시니까.”김하늘은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어떻게 그래? 너 휴가간 거 아니었어? 어떻게 다칠 수 있지?”소은정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렇게 큰 일 아니야. 이제 걱정할 거 없어, 윤재수도 잡혔는 걸.”김하늘은 침묵했다.소
위층에서 내려오던 전동하가 이를 듣고 웃으며 말했다.“형님, 새봄이는 제대로 걷지도 못해요. 학교에서도 다시 돌려 보낼텐데, 2년만 더 기다리세요.”소은호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래. 지혁이 하는거 보면 앞으로 새봄이 지켜주는 데는 문제없을 거야.”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그는 생각에 잠긴 듯 한숨을 내쉬었다.불쌍한 지혁이!소은정이 급히 걸어왔다.“아까 아빠가 서재에서 뭐라셨어요?”전동하가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매는 옥처럼 온화했고, 옅은 그림자를 띠고 있었다. “맞춰볼래요?”그의 담담한 모습에 소은정은 그의 생각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그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전동하는 입술을 오므리고 그녀의 귓가에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못 맞추면 벌 받아야 할거예요.”그의 목소리가 마치 소은정의 심장을 전류처럼 뚫고 갔다.그녀는 손을 들어 웃으며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냥 벌 받을래요.”두 사람은 꼭 붙어 서로를 마주 보고 웃었다.소은호는 그곳에서 보지 못한 듯 기침을 한 번 하고는 그들의 아름다운 분위기를 망치려고 했다.한시연은 웃으며 그를 힐끗 보고는 돌아서서 아들을 달래러 갔다.소지혁은 등교 문제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어차피 유치원에 다닐 나이에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을 마쳤고, 소은호의 엄격함은 그에게 있어 받아 줄만한 정도였다.다만 그는 엄마와 떨어지는 게 아쉬웠다.얼마 뒤.전동하와 소은정은 새봄이를 데리고 오빠 부부네랑 함께 소지혁의 등교길에 나섰다.가는 길에 소은호가 위로한 것은 자신의 아들이 아니였다.오히려 소지혁이 위로한 사람은 한시연이었다.한시연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뒤에 앉아 있었고, 소은호는 옆에서 부드럽게 그녀를 달래주었다.소지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자 조수석에 앉아 그들을 돌아보았다. “엄마, 엄마가 학교 가는 것도 아니고, 제가 울어야 맞죠!”한시연은 눈물을 닦았다. “엄마는 너가 너무 걱정돼. 반에서
새봄이는 울지 않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아이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아이는 손이 다 까졌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지혁이 달려왔고, 다가와 새봄이의 치마를 털어주고는 그제야 맞은편에 서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미안해, 내 동생이 고의로 그런 건 아니야. 얘가 아직 뭘 모르거든. 괜찮아?”소지혁이 맞은편에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남자아이는 아주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혼혈처럼 보였는데 피부가 희고 의젓했다.그리고 매우 내성적이었다.아이는 소지혁과 새봄이를 번갈아 보고는 입술을 깨물었다.하얀 솜사탕을 닮은 새봄이는 정말 예쁘고 귀여운 공주님 같았다.아이는 참지 못하고 몇 번 더 힐끔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그러고는 다친 손을 몸에 아무렇게나 문지르고 돌아서 떠나려 했다.소지혁은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너 다쳤잖아. 내가 아빠한테 도와달라고 할까?”아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을 뿌리쳤다.소지혁은 아이가 아파서 말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아이의 팔목을 붙잡았다.그러고는 새봄이를 보고 다급하게 말했다.“새봄이도 따라와.”소지혁은 아이를 데리고 화원 중심의 분수대 근처로 갔다.작은 분수에는 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는데, 디자인이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바닥에는 얕은 물이 고여 있었다. 오빠들을 따라온 새봄이의 눈이 빛났다.소지혁은 물가로 가서 아이의 손을 깨끗이 씻겨준 후, 자신의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그리고 아이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미안해, 내 동생은 아직 사과할 줄 몰라. 내가 대신 사과할 게.”아이는 잠시 멍하니 소지혁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괜찮다고 하는 것 같았다.하지만 소지혁은 아이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아이는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천천히 적었다. “괜찮아.”소지혁은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그들에게 화가 나서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아예 말을 못하는 애였다니!소지혁의 엄마인 한시연은 늘 예의를 갖추라고 아들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