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설아는 더욱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그 곳에 서서 덤덤한 표정으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노크소리는 더욱 격렬해지기 시작하였다.이상준은 당장이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올 기세였다.‘아…’‘이제 어쩌지…’‘어쩌면 좋지…’‘하…’성강희는 창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뛰어내리는 건 자살 행위와도 같아.”문설아가 말했다. 그녀의 수수한 얼굴은 약간 차가운 모습을 띠고 있었다.비록 그녀는 평소 얼음 미인으로 불리지만, 이는 그녀의 성격 때문에 붙혀진 별명이 아닌 그녀의 차가운 외모 때문에 붙혀진 별명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성강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차가운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미모는 여전히 빛이 났다.그녀의 외모로 말하자면, 이상준이 아름다운 그녀의 외모에 반해 처음 본 그날에 청혼을 할 정도였다.이때, 문을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녀는 창문으로 뛰어내리려는 성강희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목숨 귀한 줄 모르는 거야? 너한테 책임지라고 안 할게. 어서 빨리 숨어!”그녀는 급히 화장실 안으로 성강희를 밀어 넣은 다음 급히 문을 닫았다.성강희는 처음 직면한 상황에 더욱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동시에 그는 화장실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행동이 너무 창피하다고 느껴졌다.만약 이 일이 한유라와 소은정에게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이는 그의 평생 놀림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이때 문설아는 문을 벌컥 열었다.그녀는 밖에 서 있는 이상준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동시에 그녀는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이는 다시 말해서 복수를 성공한 듯한 기분이었다.진작에 바람을 피우지 않은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다.‘너와 결혼을 한 것 자체가 후회돼…너도 똑같이 당해봐.’이상준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는 약간의 비웃음이 어려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이상준에 대한 조금의 미련도 남아있지 않았다.“문 다 부숴지겠어. 이게 얼마짜리 문인지는 알아?”이상준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
문설아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이상준은 이미 이성을 잃은 터라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을 살필 수 없었다.지금 그는 이미 격노로 머리가 혼미해져 있는 상태였다.“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어떻게 해야만 날 용서해줄 거야?”“난 이전에도 말했듯이 너와 다시 시작하고 싶어.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거야!”문설아는 고개를 돌려 힘겹게 콜록거리기 시작하였다.하지만, 이상준은 여전히 그녀의 목을 놓아주지 않았다.이때,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성강희는 성큼성큼 이상준에게 다가가 힘껏 그를 밀어냈다.이상준은 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등장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그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된 이상준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지고 말았다.이상준은 망설임 없이 성강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더 이상 성강희는 이번 일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이어서 이상준의 팔을 비틀어 힘껏 땅에 내동댕이쳤다.그는 왕년에 소은정과 함께 싸움으로 이름을 떨쳤었다. 비록 오랫동안 싸움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실력은 여전하였다.이상준은 생각지도 못한 성강희의 반격에 더욱 표정이 일그러졌다.하지만 이때, 문설아의 괴로운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은 곧바로 이성을 되찾고 동시에 문설아를 바라보았다.이상준은 그제서야 자신이 그녀에게 저지른 행동들이 생각났다. 그녀의 목에 있는 푸른 손가락 자국이 바로 그가 저지른 일의 결과였다.동시에 이상준은 문설아에 대한 미안함이 몰려오기 시작하였다.그가 문설아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문설아는 놀라서 그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이상준의 눈빛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사과하고 싶었으나, 차마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그렇게 몇 분의 시간이 흐른 뒤, 이상준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리 와. 우리 일은 우리끼리 해결해야 하지 않겠어?”성강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해결이요? 더 이야기할 게 남아있나요?”“우리의 일은 그쪽이랑 상관없는 거 같은데요. 나중에 반드시 그쪽과 결판을 낼 테니,
“어차피 결혼할 상대일 뿐이잖아! 진짜 남편은 나야!”이상준은 이렇게 자기합리화를 하였다.지금 문설아는 자신을 두고 바람을 피웠다. 이는 남편으로써 절대 그냥은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그는 피식 웃으며 매섭게 성강희를 노려보았다.“성강희 씨, 이게 정말 당신의 선택인가요? 남편도 있는 여자를 넘보다니…당신, 소은정을 좋아하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도대체 어느 쪽이 진심인 거죠? 이 사실이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려고…”이상준의 입에서 소은정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성강희는 안색이 어둡게 변하였다. “젠장, 당신 미쳤어?”문설아는 이상준의 말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이상준, 난 너와 결혼한 것 자체가 후회돼. 여기 강희 씨는 너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멋진 남자야. 그러니, 이만 하고 빨리 꺼져.”“네가 순순히 나와 이혼해주지 않으면, 난 매체에 내가 바람을 피운 사실을 모두 알려버릴 거야. 그렇게 되면, 네 명예 그리고 내 명예 둘 다 실추되겠지.”이상준은 자신의 명예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문설아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고, 이 점을 이용하여 계속해서 이상준을 협박하였다.설령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게 된다면, 그녀의 명예 또한 실추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있어서 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이상준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다!문설아는 덤덤한 표정으로 이상준을 바라보았다.이어서 문설아는 이상준의 손목을 덥석 잡으며 소리쳤다.“가자. 난 이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려야겠어. 어서 따라와!”하지만, 이때 이상준이 소리쳤다.“멈춰!”“너 정말 이럴 거야?”“응”문설아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문설아의 단호한 대답에 이상준은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그는 이를 악물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였다.눈가에는 붉은 핏발이 잔뜩 서려 있었다.“그래, 이혼해!”“이런 사소한 일로 핑계 삼아 이혼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이러면 너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게 되어있어.”“그리고, 성강
이상준은 방금 전 자신이 함부로 내뱉은 말들을 당장이라도 주워담고 싶었다.하지만 그가 후회할 겨를도 없이 성강희는 이상준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너, 제정신이야?”“어딜 함부로 말을 지껄여?”성강희가 소리쳤다.이상준은 고개를 돌려 침을 뱉았다.“우리 일에 그만 끼어들…”이상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설아가 앞으로 걸어 나와 이상준의 뺨을 세게 내려쳤다.이상준은 생각지도 못한 문설아의 행동에 그만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고 말았다.그는 그제서야 문설아와 자신은 정말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너랑 난 이제 끝났어. 지금 당장 이혼하러 가자. 안 그러면, 기자들한테 너가 한 짓들을 모조리 까발려 버릴 거야!”문설아가 소리쳤다.“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겠지?”“그래, 이혼하자. 하지만 너도 바람을 피운 이상, 재산은 반으로 나누지 않을 거야.”단, 이것이 그의 조건이다.그의 마지막 발악인 셈이다.성강희의 집도 매우 부유한 편이다.하지만, 그의 집안은 최근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터라 재산은 이상준보다 조금 뒤쳐졌다.그러나 그의 집안은 지위면에서 이상준의 집안보다 훨씬 세력이 강했다.하물며 문설아와 이상준이 이혼한 후 성강희가 문설아와 결혼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문설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아. 이혼하자. 난 네 재산 한 푼도 원하지 않아.”“뭐? 진심이야? 한 푼도 필요없다고?”이상준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그렇게 돈을 잘 쓰는 여자가 한 푼도 가져가지 않겠다고 말하니 놀랄 수 밖에 없었다.“응. 필요없어.”문설아는 말을 마치자 마자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성강희도 몸을 돌려 그녀를 따라갔다.“이제 그만 가봐. 이 일은 너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문설아가 말했다.“내가 정말 따라가지 않아도 되겠어?”성강희가 말했다.“법원에 따라가겠다고?”“너가 뭐하러 가. 좋은 일도 아닌데.”문설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그녀의 말에 성강희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다소 망설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
결혼생활 내내 그녀는 이상준 어머니의 예쁨을 받았다.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괴롭히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고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기에 문설아는 바로 승낙했다.“좋아요, 어머니. 어머니께서 약속하신 대로 제 계좌에 송금하신다면 바로 삭제할게요.”이상준의 어머니는 머뭇거리더니 결국 하고 싶은 말을 도로 삼켜버렸다.“그래. 고마워.”문설아의 늘 손해 보지 않으려는 일관된 태도는 듣는 사람의 기분에 영향 주었고 심지어는 그녀를 아니꼽게 보던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했다.하지만 이 일로 놓고 말하면 이상준의 잘못이었기에 이대로 있으면 모순을 극대화해 서로 얼굴을 붉힐 것이 뻔했다.이상준과 문설아 사이는 결국 문설아가 SNS를 삭제하고 이상준의 어머니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이상준은 이 일에 대해 지나치게 반대하지 않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문설아에게 있어서 이번 일은 큰 성공이었다.겉보기에는 두 집안이 평화롭게 맺었던 인연을 끊은 것 같았지만 오로지 그들만이 얼마나 찌질하고 이기적으로 싸우면서 얼굴을 붉혔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문설아는 다시 싱글로 돌아온 것을 축하하기 위해 졸부 네에서 이혼 파티를 열었다. 말이 이혼 파티지, 그녀의 친한 친구들을 불러 재밌게 놀면서 겸사겸사 이혼했다는 소식을 알리는 자리였다.소은정도 당연히 이 파티에 참석하게 되었다.그녀는 참석할 생각이 없었는데 소찬식이 그녀가 매일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온종일 전동하가 미국에서 생긴 일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할까 봐 기분전환도 할 겸 파티에 참석하라고 했던 것이다.소은정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이라이너를 과감하게 그렸는데 마치 고양이의 눈매 같았고 입체적인 오관과 요염한 화장이 어우러져 그녀의 섹시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위기를 돋보여주었다. 그것은 내적으로부터 느껴지는 아우라였고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이에 맞춰 그녀는 진한 녹색의 민소매 원피스를 선택했다. 원피스는 슬림 하면서도 캐주얼한데 어딘가 매
“바르게 했는데?”소은정은 핸드폰을 흔들며 대답했다.성강희는 화가 났지만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고 그녀가 웃는 모습을 바라보더니 차올랐던 분노도 가라앉았다.“됐고. 왜 불렀어?”소은정은 미소를 지었다.“왜 부르긴. 너 이런 곳 되게 좋아하잖아. 와서 같이 놀자.”성강희는 이런 곳에서 놀기를 즐긴다.그런데 오늘, 그는 소은정이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찝찝했다.성강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눈썹을 찡그렸다.“나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소은정은 그가 불편해하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고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만. 나 화장실 좀 들렸다가 같이 가자. 나 골프장까지만 데려다줘.”성강희는 시간을 보더니 한숨만 내쉬었다.‘됐어. 얘랑 뭘 따지겠냐.’그는 폰에 달린 차 키를 흔들며 재촉했다.“빨리 다녀와. 나 오래는 못 기다려.”“칫.”소은정은 얼른 화장실로 향했다.얼마 후.그는 소은정으로부터 이미 문 앞에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차 키를 손에 쥐고 나간 성강희는 계단에서 마침 문설아와 마주쳤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성강희는 멈칫했다.문설아는 오히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었다.“가는 거야?”성강희는 머리를 끄덕였다.“응. 나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될 것 같아. 다음에 또 보자.”문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비켜주었다.두 사람은 스쳐 지나갔고 성강희는 계단을 내려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까처럼 긴장한 느낌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소은정은 문 앞에서 화분을 보고 있었다.그녀는 화분 앞에서 기웃거리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성강희는 웃으며 다가갔다.“갖고 싶어? 하나 줄까?”소은정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난 지금 화분 통을 보고 있는 거야. 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면 싫어.”성강희는 피식 웃었다.“웃기고 있네.”두 사람은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며 나갔다.문설아는 두 사람이 차에 타는 것을 내려보고 있었고 성강희가 소은정을 바라보는 멜로적인 눈
소은정의 말에 성강희는 발끈하며 화를 냈다.“나도 쉬운 남자 아니거든! 이유가 어떻든 넌 날 선택하지 않았겠지만.”소은정은 혀를 끌끌 차더니 인상을 찌푸렸다.“성강희, 난 널 친구로 생각하니까 이러지 마!”성강희는 미소를 지었다.“재미없긴. 장난이야.”소은정은 부드럽고 따뜻한 말투로 얘기했다.“네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게 될 거야. 넌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 성강희잖아.”성강희의 눈이 빛났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마음속에 엉켰던 실타래가 풀린 느낌이었다.그의 집념도 이 순간 막을 내렸다.그녀가 그한테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자라고 해주었으니 말이다.제일 멋진 남자.그거면 됐다.“그럼, 그럼! 날 사랑하지 않는 건 너의 문제라고!”성강희의 오만한 말투에 소은정은 깔깔 웃었다.“네,네. 저의 문제입니다요. 그렇고말고요.”그녀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성강희의 핸드폰이 울렸다.문설아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소은정도 그의 핸드폰에 뜬 이름을 보고는 눈썹을 올리더니 흥미진진한 얼굴로 바라보았다.성강희는 태연한 척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성강희, 너 지갑 두고 갔지? 진한 하늘색 지갑.”성강희는 주머니를 살펴보더니 깜짝 놀랐다.진짜 지갑을 두고 온 것이다!그는 헛기침을 했다.“어… 그런 것 같아, 그럼 언제...”“시간 있을 때 와서 가져가. 아니면 내가 택배나 퀵으로 보내줄게.”문설아는 용건만 간단하게 말했다.“일단 카운터에 맡길게. 끊어.”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는 끊겼다.그녀가 일부러 그를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성강희는 멈칫하더니 소은정을 바라보았다.“나 먼저 가볼게.”소은정은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얼른 가. 너의 인연을 놓치지 말고!”성강희는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발을 동동 구르던 그는 대답했다.“뭐라는 거야!”그러고는 뒤돌아 달아갔다.소은정은 그저 미소만 지었다.십여 분 후.그녀는 시간을 확인했고 아직도 약속시간이 8분이나 남았다.소은정은 지각하는 사람을
박수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착잡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미안해.”“아까 그 사람 누구야?”소은정이 물었다.감히 그녀에게 도전장을 내민 사람이다. 그러니 미리 대비를 해두어야 했다.박수혁은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신경 쓸 거 없어. 그 인간은 당신한테 어떻게 하지 못해.”소은정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런 인간이랑 어울리다니. 박수혁, 당신 많이 변했다? 인간쓰레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해외 범죄집단과 연관이 있다고 들었어. 당신이 왜 저런 사람들이랑 어울려? 사업 파트너라는 거야?”박수혁의 웃는 얼굴이 창백했다.“당신이 기억하는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나 봐?”소은정은 움찔하다가 짐을 들고 뒤돌아섰다.박수혁이 약간 거칠어진 목소리로 물었다.“전동하 씨는 국내에 없는 것 같은데? 어디 갔어?”“내 남편에게 관심이 이렇게 많았다니. 고마워.”소은정은 차갑게 대꾸했다.비록 소찬식에게서 태한그룹 쪽 사정을 듣기는 했지만 박수혁에게 이민혜와 박예리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는 말은 믿고 싶지 않았다.그는 천하의 박수혁이 아닌가!군수물자 상인의 딸 안진을 상대할 때도 전혀 기 죽지 않았던 그였다.그런데 상대가 이민혜와 박예리를 잡고 있다고 그에게 위협이 될까?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가족이라 고려해야 할 것이 많아 보였다.소은정은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박수혁은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 다치는 건 원하지 않아. 하지만 은정아, 전동하는 당신이랑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그 사람이 해외에서 건전한 사업만 하는 줄 알았어?”소은정은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박수혁은 입만 열면 전동하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그래서 분노가 치밀었다.뭘 믿고 저렇게 다른 사람 욕을 하는 거지?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거지?“하고 싶은 말이 뭐야? 박수혁, 당신 일이나 신경 써. 전동하 씨가 어떤 사람인지 남한테 들을 이유는 없으니까!”거리감이 느껴지는 차가운 말투였다. 말을 마친 소은정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