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가 먼저 연락하기 전엔 가만히 있어. 강열 씨 일이니까 알아서 해결하게 냅두라고.”소은정의 말에 한유라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굳이 내 손 더럽힐 필요 없잖아?”그렇게 한동안 대화를 나눈 소은정은 한유라의 말투가 훨씬 가벼워진 뒤에야 안심하고 통화를 마쳤다.그러자 다가온 전동하가 그녀를 꼭 안았다.“은정 씨도 은근히 오지랖 넓은 스타일인 거 알아요? 회사 일도 바쁘면서.”이에 소은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어쩌겠어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정도로 걱정하진 않았을걸요? 그런데 유라는... 달라요. 한번 사랑에 빠지면 뭐랄까? 이성적인 사고가 거의 불가능한 사람이라서 막 나가지 않게 곁에서 잘 지켜봐줘야 한다고요.”전동하의 부드러운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를 살짝 스쳤다.“심강열 대표도 참... 어쩌다 그런 여자랑 사귄 걸까요?”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전동하의 옷깃을 정리해 주며 말했다.“우리 동하 씨는 나 만나기 전에 모솔이었으니까 이런 일로 속 끓일 일은 없겠다. 맞죠?”그러자 전동하의 눈이 미소로 예쁘게 휘어지더니 그녀의 허리를 안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그럼요. 어, 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겠는데요? 상 줘요.”유혹하 듯 속삭이는 목소리가 소은정의 마음을 간질거리고 두 사람은 뜨거운 키스를 시작했다.후끈 달아오르는 분위기에 전동하의 손이 못된 장난을 시작하려 할 때,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이에 그를 확 밀어낸 소은정이 부랴부랴 아기를 향해 달려가고 혼자 남겨진 전동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휴, 우리 딸. 타이밍 한번 죽여주네.’한편 통화를 마친 한유라는 여유롭게 회의실로 걸음을 옮겼다.문을 여니 상석에 앉은 심강열과 어딘가 긴장한 듯한 임원들의 모습이 보였다.그녀의 등장에 방금 전까지 차갑던 심강열의 눈동자가 순간 부드러워졌다.한유라가 손을 젓는 심강열의 옆자리에 앉고 살짝 풀어진 분위기에 임원진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한 실장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C시 프로젝트 담
다시 심각해진 분위기, 회의실은 정적이 감돌았다.새카만 눈동자로 한유라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심강열은 차라리 그녀가 화가 나서 일부러 하는 말이길 바라고 또 바랐다.하지만 놀랍게도 그녀의 표정은 차분하기만 했다.두 사람의 사이와 상관없이 진작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린 듯 말이다.잠깐 침묵하던 심강열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한 실장은 아직 더 배워야 할 것도 많잖아? 다른 직원을 보내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하지만 심강열이 곱게 그녀를 보내주지 않을 거라는 것쯤은 진작 예상하고 있었기에 한유라는 여유로운 미소로 응했다.“아직 배워야 하는 게 많으니까 이번 기회에 제대로 배우고 오는 게 맞지 않겠어? 그리고 그쪽에선 나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을 테니까 내가 가야 오히려 당황할 것 같은데.”이에 임원들 중 한 명이 눈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일리가... 있는 말이네요.”하지만 다음 순간 얼음 비수 같이 내리꽂히는 심강열의 눈빛에 다들 입을 꾹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아, 대표님께선 실장님을 보내고 싶지 않으신 거구나. 하긴. 알콩달콩 깨 볶을 신혼인데 반 년이나 파견 근무라니. 말도 안 되지.’숨 막히는 침묵에 한유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다들 반대 의견은 없는 것 같으니까 그냥 내가...”“이 일은 추후에 다시 얘기하죠.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이때 심강열이 벌떡 자리에 서더니 한유라의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회의실을 나가버렸다.남은 임원들이 멀뚱멀뚱 눈치만 보고 있던 그때 비서가 들어왔다.“이만 사무실로 돌아가주시죠. 아, 진 팀장님, 잠깐 저랑 얘기 좀 하실까요?”잠시 후, 회의실에 진 팀장만 남고 그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로 절?”이에 비서가 주머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이 카드 진 팀장님 거 맞죠?”“네.”“12층 이상의 공용구역과 휴식구역을 사용할 수 있는 카드죠. 하지만 회사 규정에 따르면 이 카드는 본인만 사용할 수 있죠?”이에 진 팀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니. 그냥 잠깐
하지만 다급해 보이는 진 팀장과 달리 비서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했다.“적어도 지금까진 인사팀에서 별다른 연락은 없네요.”이 말을 마지막으로 비서는 다시 단호하게 돌아서고 진 팀장은 창백해진 낯빛으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그 모습을 곁눈질로 지켜보던 비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휴, 난 계속 사모님 편이었으니 망정이지. 나까지 큰일날 뻔했네.한편, 심강열은 한유라의 손목을 끌고 성큼성큼 사무실로 향하고...한유라가 거칠게 손목을 뿌리치며 그를 노려보았다.“미쳤어?”욱신거리는 손목을 만지작거리는 한유라는 왠지 서글픔이 밀려왔다.‘불쌍한 손목... 주인 잘못 만나서 고생이 많네...’“왜 나한테 미리 말도 안 하고 그런 결정을 내려?”이때, 주먹을 꽉 쥔 심강열이 물었다.“당신 공사 구분도 못하는 사람 아니잖아. 공적인 일이니까 회사에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아까 한 거야. 뭐 문제 있어?”한유라의 차분한 표정, 완벽한 논리.흠 잡을 데 없는 모습이었지만 심강열은 왠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아직도 유은진 그 여자 때문에 나한테 화난 거야? 그 일은 내가 다 얘기 끝냈고...”하지만 한유라는 그의 말을 바로 잘라버렸다.“멀쩡한 사람 애 취급하지 마. 그 여자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야. 나도 나름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라고.”그러자 심강열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소리쳤다.“너 거기가 얼마나 위험한 데인 줄 알아? 그런 곳에서 반 년 동안이나... 네가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이대로 프로젝트를 망칠까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회계 장부가 이 정도로 엉망으로 될 때까지 그 누구도 몰랐다는 건 현지 정치계 인사, 어쩌면 어둠의 세력들까지 연루된 게 분명, 그런 위험한 곳에 한유라 혼자 보내면 어디 다리나 제대로 뻗고 잘 수 있으려나 싶었다.‘그 자식들이 무슨 미친 짓을 저지를 줄 알고... 다른 건 몰라도... 넌... 널 잃는 건 절대 안 돼.’심강열이 진심으로 화를 내자 무덤덤하기만 하던 한유라의 표정이 조금 부드
사무실을 나선 비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아직 회사 걱정하시는 걸 보면 대표님이랑 진짜 갈라서실 건 아닌가 보네.’한편, 혼자 남은 한유라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 김현숙에게 전화를 걸었다.자초지종을 들은 김현숙이 한동안 침묵하다 한 마디 물었다.“정말 가려고?”“네. 제가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도 이제 입지를 다져야죠. 엄마랑 남편 가문 그림자 아래에서 살 순 없는 거잖아요?”한유라의 말에 김현숙은 한숨을 내쉬었다.딸도 분명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그래. 가는 건 좋은데... 조심해. 엄마도 네가 성장하는 건 좋지만 위험해지는 건 싫으니까. 알겠지?”따뜻한 김현숙의 목소리에 한유라는 왠지 울컥하는 기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럼요. 그런데 심 서방이 아직 오케이를 안 해줘서. 어머님한테 부탁드려볼까 싶네요. 어머님이 허락하면 심 서방도 그 뜻에 따르는 수밖에 없겠죠.”“음, 그래. 시율이한테는 내가 직접 얘기할게.”그리고 잠깐 멈칫하던 김현숙이 말을 이어갔다.“심 서방 전 여자친구란 사람이 나타났다면서? 너한테 해코지 같은 거 한 건 아니지?”김현숙의 질문에 한유라는 웃음을 터트렸다.“그럴 리가요. 다들 우리 부부가 이대로 헤어지는 건 아닌지 그것만 신경 쓰던데 엄마는 왜 그게 궁금하신데요?”“엄마가 돼서 딸이 억울하게 사는 꼴은 못 보지. 어디까지나 정략결혼이고 내가 억지로 몰아붙이다시피 했던 결혼이라는 거 알아. 엄마도 고르고 또 고른 신랑감이고 인품 하나만은 괜찮겠다 싶어서 너랑 이어준 거야. 하지만... 여자 문제로 네 속 썩이면 얘기가 달라지지. 행여나 이혼하고 싶은 거면 집안 눈치 보지 말고 해. 엄마는 네 선택이라면 뭐든 존중할 거니까.”진심 어린 김현숙의 말에 참고 참았던 눈물이 정말 흘러내리고 말았다.수화기 너머, 김현숙이 어떤 표정을 지으며 이런 말을 하고 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한유라는 김현숙에게 항상 못난 딸이었다. 성인이
복도에서 심강열이 보여주었던 행동은 한유라에겐 실망 그 자체였다.다른 사람들의 시선? 그딴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민하준도, 심강열도. 마음 가는대로 뜨겁게 사랑했고 그랬기에 지금 이 순간마저도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어쩌면 심강열도 나름 억울해 하고 있을지도 몰라. 정말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닌데 말이지.’한유라가 피식 웃었다.심강열과 즐겼던 달콤한 신혼생활은 분명 아름다운 추억이었지만 영원히 그 달콤함에만 잠겨있을 수 없다는 걸 이번 기회에 한유라는 깨닫게 되었다.그리고 무능한 자신은 이런 불만을 토로할 자격 조차 없다는 것도 말이다.‘직원들이 내게 굽신대는 것도 어디까지나 내가 심강열 와이프기 때문이니까. 누굴 탓하겠어.’“후우...”마음을 다잡으며 심호흡을 내쉰 한유라는 C시 프로젝트 재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한편, 심강열은 한유라를 C시로 보내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었다.한유라를 대신할 적임자를 찾기 위해 오전 내내 여러 임원들을 만났으니까.점심시간.한유라가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대충 점심을 때우려던 그때.비서가 사무실로 들어왔다.“대표님께서 식사 준비하셨답니다. 대표 사무실로 모시겠습니다.”잠깐 멈칫하던 한유라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심강열이 먼저 손을 내민 이상, 언제까지고 애처럼 삐쳐있을 수만은 없는 법.‘심강열, 이제 달콤한 신혼은 끝이야. 이제부터 현실 결혼생활 시작이라고. 역시 사랑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니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구만.’한유라가 어깨를 으쓱했다.잠시 후, 한유라가 대표 사무실에 들어서고 소파에 앉아 배달 온 음식을 세팅하던 심강열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손은 씻었어?”‘하, 진짜 어이가 없어서...’코웃음을 치던 한유라는 바로 대표 사무실 화장실로 향했다.“누구처럼 사무실에 화장실이 없어서 깜박했네.”한유라의 목소리에 심강열 역시 피식 웃었다.“여기가 마음에 드나봐? 그럼 나랑 사무실 바꿔. 난 상관 없으니까.”한유라의 비아냥거림에 심강열이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심강열의 눈동자가 살짝 어두워졌다.‘왜... 왜 저런 표정인 걸까? 예전이었다면 분명 좋아했을 텐데. 왜...’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유라야, 아직도 그 일 때문에 나한테 화난 거야?”이에 한유라가 눈을 흘겼다.“그 일? 어느 일 말하는 거야?”요 며칠 사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을 저지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한 질문이기도 했다.한유라의 표정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심강열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유은진...에 관한 일 말이야.”하지만 한유라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다.“어차피 지난 일이잖아. 아니야?”심강열이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마음에 안 드는 거 있으면 그냥 얘기해. 너 이러는 거 진짜 미칠 것 같으니까.”“그 여자의 존재에 대해선 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잖아. 그리고 당신이 엄한 짓 한 것도 아니고. 나 화난 거 없어. 그리고 나도 전 남자친구들은 많아. 과거 연애사 일일이 해명할 필요 없어.”전 남자친구...민하준을 떠올린 심강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만약 민하준이 갑자기 나타나 어차피 정락결혼이니 자기와는 연애만 하자고 말한다면 심강열 본인도 이성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래서 한유라의 반응이 더욱 놀라웠다.누구보다 다혈질인 그녀가 화 한번 내지 않았는데 왜일까?안도감 대신 느껴지는 건 가슴이 턱 막힌 듯한 답답함이었다.“그럼 C시 프로젝트 때문에 그래? 말했잖아. 거긴 너무 위험하다고. 그쪽 상황은 네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야.”심강열은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한유라를 설득하려 애썼다.하지만 한유라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렇게 생각해? 해보기도 전에 내가 무조건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잖아.”“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난 어쩌라고.”“내가 애야? 내가 알아서 조심할 거야. 그리고 나 혼자 가는 거야? 경호원이며 비서며 다 대동할 텐데 뭐가 그렇게 걱정인데?”“그것 봐. 그렇게 쉽
오후 근무시간이 끝나고 한유라와 심강열은 함께 하시율의 집으로 향했다.오늘따라 조용한 분위기에 운전기사도 가시 방식이었다.평소라면 한유라가 재잘거리며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심강열 역시 누구보다 그 얘기를 들으며 리액션을 해줄 텐데 모기소리 하나 들리지 않으니 요즘 두 사람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이 사실인 건가 싶었다.그렇게 숨 막힐 듯한 드라이브가 이어지고 차량은 드디어 하시율의 저택 앞에 멈춰 섰다.부지면적이 크진 않지만 정원이 유난히 아름다운 아기자기한 별장이었다.가장 먼저 두 사람을 맞이한 건 바로 별장에서 일하는 한씨 아주머니였다.“두 분 드디어 오셨네요. 사모님께서 하루 종일 얼마나 기다리셨는데요.”고개를 끄덕인 심강열과 한유라가 저택에 들어선다.역시 버선발로 마중나온 하시율이 한유라를 발견하고 화사하게 웃는다.“어머, 왔어?”한유라에게 뜨거운 포옹을 안긴 하시율이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물었다.“아니, 너 왜 이렇게 말랐어?”엄마의 따가운 눈총을 느낀 심강열이 어깨를 으쓱했다.“전 모르는 일입니다. 저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이에 한유라가 미소를 짓더니 하시율의 어깨를 끌어안았다.“어머님, 저 일부러 다이어트한 거예요. 아, 이건 선물이에요. 스카프랑 향수인데. 마음에 드세요?”하시율의 취향을 완벽히 반영한 선물에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어머나,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는 또 어떻게 알았대? 우리 무뚝뚝한 아들놈... 무슨 복에 겨워 이렇게 착하고 예쁜 와이프를 만났나 몰라.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오버스러운 하시율의 표정에 한유라가 웃음을 터트렸다....세 사람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집안으로 들어가고 잠시 후 아주머니가 다가왔다.“식사 준비 거의 다 되어 가니까 잠시만 기다리세요.”“알겠습니다. 천천히 하세요.”이때 하시율이 한유라의 손목을 잡아끌어 소파에 앉혔다.“아참. 며칠 전에 내가 쇼핑하다 우리 유라한테 어울릴만한 백 몇 개 샀거든? 너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고.”“어머, 진
한유라의 가벼운 목소리에도 하시율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처음엔 하시율도 별일 아니겠거니 했는데 오늘 어딘가 소원해진 두 사람의 사이를 보아하니 보통 일이 아님을 직감하는 수밖에 없었다.‘유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강열이를 보는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었는데... 오늘은 달라.’결혼생활에 있어선 선배였기에 하시율은 빛을 잃은 그 눈동자가 뭘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그래. 유라 네 말이 맞긴 한데... 그 애 뭔가 노리고 나타난 것만은 사실이잖니? 미리미리 대비해 두는 게 좋겠다 싶어서. 너희 두 사람 정략결혼으로 이어진 사이이긴 하지만 그 누구보다 알콩달콩하게 살아가는 거 보면서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그래서 그런 애 때문에 두 사람 사이가 틀어지는 건 절대 용납 못 해.”“엄마...”심강열이 나지막히 입을 열었지만 하시율의 엄한 눈빛에 결국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엄마 말 끝까지 들어. 강열아, 네가 유은진 그 여자랑 사귈 때 내가 왜 그렇게까지 결혼을 반대했는 줄 알아? 집안 차이가 심해서?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핑계일 뿐이었어. 솔직히 그때 우리 심해그룹도 위기였잖니? 그리고 이 엄마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야. 너희 두 사람이 정말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그 결혼... 허락했을 거야. 하지만... 걔가 너 모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긴 해? 네 인맥, 네 돈. 전부 다 이용하면서 뒤에선 회사 정보를 다른 곳으로 빼돌리고 있었어. 그때 프로젝트 입찰에서 왜 심해그룹이 번번히 실패했었는데... 정말 우리 그룹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니?”하시율의 말에 심강열의 표정이 점점 어둡게 굳고 하시율은 기 막히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그리고 나한테 들키고 나서 그 애가 한 짓은 더 가관이었지. 네 아버지랑 가장 친한 친구였던 유지승 대표... 우리 그룹이 가장 위험할 때 우릴 배신했었잖아. 왜 그랬는지 알아?”하시율의 말을 듣고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한유라의 눈이 점점 더 커다래졌다.‘이게 다 무슨 소리야... 뭔가 대단한 비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