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는 전동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했다.“그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새봄이를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던데요!”전동하는 그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저도 못 건드리게 할 거예요.”이상준은 놀라 아무 말도 못 했다.“......”너무 앞서갔나?......소은정은 새봄이를 안고 문설아를 흘깃 보더니 무심한 듯 말했다.“며칠 전에 강희 생일에 네 여동생 봤는데!”문설아는 고개를 숙여 새봄이와 놀고 있었다.그 말을 듣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나도 들었어. 내 여동생도 일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을 거야. 시간 나면 가서 봐야지.”소은정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사이가 좋은가 봐? 소문에 너네……”문설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리를 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남의 프라이버시를 왜 마음대로 말해? 그것도 내 앞에서?”소은정은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은정은 그저 문설아가 문상아를 조심 했으면 해서 한 말이었다!김하늘은 그 상황을 모두 들었다.소은정은 호기심이 생겼다.그녀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소은정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뒤에서 말한 것도 아닌데.”문설아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기에 내뱉은 말이었다.문설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알려져도 상관없어. 나한테는 그냥 친동생이야. 엄마가 다르면 어때? 어차피 아빠가 같은데!”김하늘이 웃으며 말했다.“다른 집은 엄청나게 물고 뜯고 한다던데 정말 기적이다!”문설아는 활짝 웃으면서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우린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았어. 내 공부도 도와주고 친구들도 대신 괴롭혀 주고 목숨까지 구해줬어. 이런 동생이 어딨냐?”김하늘이 한마디 거든다.“그랬구나. 괜히 말했다 정말.”문설아가 소은정을 보며 말했다.“들었지?”소은정이 웃으며 잘못을 인정했다.“내가 잘못했어. 그 얘기 안 꺼낼게.”한창 얘기하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한 여종업원이 소은정을 본 순간 얼굴빛이 좋지 않게 변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소은정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저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수많은 그림자가 눈앞을 스치고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은 기억보다 더 빨랐다.그녀는 왜 갑자기 마음이 괴로운지 알지 못했다.괴로움도 잠시, 마음은 금세 진정이 됐다.술병이 깨지는 순간, 주위의 소리가 선명해졌다.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이마가 깨질듯한 고통도 점점 심해져만 갔다.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났다.그녀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그 순간, 그녀는 지극히 따뜻한 품에 안겼다.“은정 씨......”익숙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편안해졌다.조금 전의 슬픔과 숨 막히는 감정은 착각인 듯싶었다.그녀는 해냈고 새 출발 했다.박수혁을 잊고 지낸 나날들에 그녀는 얼마나 쾌활했는가!그가 정말로 나타난 적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다행히도 그녀는 모두 잊었다.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도 했다.전동하가 준 모든 것들은 공기처럼 그녀의 삶에 스며들었고 그녀를 다시 살게 했다.정말 행운이 따로 없다!눈앞의 빛은 점점 흐려졌다.그녀는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눈을 뜰 힘조차 없었다.눈앞에 어둠이 찾아왔다.화려하고 빛나는 연회장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누구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온화하고 다정하던 전동하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위험이 닥치는 순간, 김하늘은 재빨리 새봄이를 안아올렸다.위기의 순간에 전동하는 소은정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범인 이율을 잡았다.이율도 겁만 살짝 주려 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그렇게까지 그녀의 머리에 명중할 줄은 정말로 몰랐다.그녀는 분노로 이성을 잃어 소은정의 신분을 까먹었다.그 자리에 있는 권세 있는 사람 중에 누군들 소은정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그녀는
파티 분위기가 깨지고 많은 사람이 자리를 떠났고 일부만 남아있었다. 성강희는 전동하와 함께 소은정이 서 있던 자리에 섰다. 고개를 숙여 바닥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이율을 경멸의 눈길로 쳐다보았다. 이율이 전에 치근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혐오스러울 지경이었다. 자칫하다가는 여자도 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율은 바닥에서 계속해서 엉엉거리면서 울고 있었다. 얼굴의 화장마저 눈물에 지워져 버렸다. 이제야 자신이 무슨 멍청하고 큰 실수를 했는지 알았나 보다. 소은정의 집안은 임진호의 집안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했다. 임진호조차 소은정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데 무슨 용기로 소은정을 다치게 한 거지? 눈앞이 깜깜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성강희는 차가운 표정으로 이율에게 다가가서 말했다.“미친 거야?”이율은 울음을 뚝 멈추고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성강희의 앞에 달려갔다.“강희야, 나 좀 도와줘, 제발! 은정 씨한테 한 번만 봐달라고 부탁해 줘!”성강희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봐달라고? 지금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잘못했어, 순간 정신이 나갔나봐... 강희야, 정말 잘못했어!”이율이 울면서 말했다. 잘못한 것을 안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울부짖는 것이다. 성강희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널 구해줄 수 없어.”죽일 듯이 차가운 침묵이 흐르고 이율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표정으로 말했다. “강희야, 은정이랑 친하잖아. 제발 부탁 좀 할게. 아까는 내가 정신이 어떻게 됐나봐, 고의는 아니었다고 제발 전해줘. 이번만 넘어가 주면 다시는 찾아갈 일도 없고 네 발목도 잡지 않을게.”성강희는 차가운 웃음을 짧게 내뱉더니 말했다. “무슨 자격으로 지금 협상하는 거야? 너정도 없어지게 하는 건 일도 아니야. 단지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을 뿐이지.”말을 마친 성강희는 붙잡는 이율을 보는 체도 하지 않고 뒤돌아갔다. 이율은 그 자리에 앉아 더 소리치면서 울부짖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
소찬식은 전동하가 내려가 그 여자에게 손을 쓰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캐묻지는 않았다. 전동하가 무슨 일을 하든지 소찬식이 다 해결해 줄 것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자기 딸의 행복을 깨버리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손님들의 배웅을 끝낸 소은해는 올라가지 않고 소은호와 함께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미친 여자를 지켜보았다. 그 여자를 본 호텔 직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호텔 앞에서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아닌지 지켜보고 있었는데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호텔에서 그는 찰스라고 불렸다. 찰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황급히 옆에서 설명했다.“소대표님, 저의 불찰입니다. 파티 준비에 일손이 부족해 급하게 알바를 구했는데 이런 미친 여자가 들어와 은정아가씨를 해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소은호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옆에 있던 소은해가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미안하다면 다예요? 파티 처음 준비해요? 여기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인가요? 알바도 신원조사 똑바로 했어야죠!”이런 파티 준비 직원은 적어도 삼 년 이상 경력의 검증된 직원들로 파티 준비를 해야 했다. 전문 트레이닝을 받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준비해야하는 게 맞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삼 일 전에 모집해 온 여자라니? 찰스는 이마의 땀을 닦더니 연신 허리를 굽히며 사과했다.“인사과에서 이런 저급한 실수를 할 줄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SC그룹 분들이 오신다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더는 이런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은정 씨의 병원비는 저희가 전부 책임지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소은해가 코웃음을 치더니 말했다.“풉, 우리가 병원비 받자고 이래요? 누가 보면 우리 집안이 망하기라도 한 줄 알겠어요.”찰스의 얼굴이 더욱더 하얗게 질리고 어찌할 줄을 몰라 발을 동동 굴렸다. 만약 소은정한테 정말 무슨일이라도 생긴다면 호텔 측에서 누가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찰스는 증오의
이율은 서럽게 흐느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뒤의 경호원이 그녀의 팔을 힘껏 잡았다.그녀는 고통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끝내 입을 열었다.“소은정 씨가 저와 강희 씨의 관계를 임진호한테 알렸어요. 임진호가 저를 찾아왔고 저는 임진호이랑 실랑이를 벌이는 게 너무 끔찍해서 은정 씨한테 복수하려고 마음먹었어요!”아래층으로 달려온 한유라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은정이한테 덤빌 용기는 있고 임진호를 상대하기는 무서워? 너 바보야?”겁에 질린 이율이 흐느끼며 대꾸했다.“그냥 한순간 충동이었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야!”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전동하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정말 그게 다야?”이율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시선을 거둔 전동하는 이 매니저에게 손짓하고는 그의 귓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이 매니저의 얼굴이 순간 굳더니 착잡한 눈빛으로 이율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는 의견을 제기할 여유가 없었다.이 매니저 자신도 난감한 상황인데 당연히 소씨 가문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다급히 뒤쪽으로 달려갔다.그가 뭘 하려는지 모르는 이율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애원했다.“이제 저 좀 풀어주세요. 제가… 은정 씨한테 가서 사과할게요!”소은해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꿈 깨! 평생 은정이랑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너 같은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내 동생을 만나?”그리고 3분 뒤.이 매니저는 밖에서 커다란 박스를 들고 왔다. 박스 안에는 빈 병이 잔뜩 들어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뒤에는 또 누군가가 박스 하나를 더 들고 들어왔는데 무게가 좀 있어 보였다.이율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리고 눈빛은 공포로 가득 찼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이 사람들 중에서 가장 화가 난 사람은 가장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겉보기엔 매너 좋고 자상하고 성격도 좋아 보였다.하지만 이율은 겉으로 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전동하는 오싹한 눈빛으로 이율을 노려보
그렇게 1분이 또 지났다.인내심을 상실한 남자는 고개를 들고 그녀는 쳐다보기도 싫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선택하기 싫다면 내가 대신 선택해 주지.”이율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아… 아니에요! 제가… 제가 선택할게요!”그녀는 절망한 목소리로 절규하듯 소리쳤다.“술… 술 마실게요!”이 박스에 든 술을 다 마시면 살아 있을지도 의문이었다.하지만 다른 박스에 든 빈 병으로 머리를 친다면 완전히 죽은 목숨이었다.두렵고 혼란스러웠지만 이율은 조금은 쉬운 길을 택했다.더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그녀는 다가가서 양주 뚜껑을 따고 입에 털어 넣었다.알코올의 자극적인 향기 때문에 구역질이 올라왔다.하지만 냉랭한 시선을 마주하자 토해낼 용기가 없었다.그녀는 그렇게 한 모금, 또 한 모금 술을 삼켰다.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가엾게 느껴졌다.양주 두 병이 비워졌다. 의식이 흐릿해지고 배가 불러서 더 마시기 힘들었다.행동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그녀는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아서 울음을 터뜨렸다.전동하는 옆에 있는 이 매니저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사람 불러서 좀 도와줘. 오늘 밤 안에 다 마실 수 있도록.”그 말을 들은 이 매니저의 얼굴도 창백하게 질렸지만 그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네.”‘다 이 여자가 자처한 거야.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려서 우리까지 고생시키네!’그들은 이제 이율에게 그 어떤 연민도 느끼지 않았다.겁에 질린 이율이 입술을 움찔거리며 뭐라 말하려 했지만 옆에 있던 사람이 그녀의 어깨를 단단히 잡고 양주를 그녀의 입에 털어 넣었다. 그녀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었다.소은호와 소은해는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뒤돌아섰다.그들은 전동하의 결정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그리고 이때, 밖에서 차량이 들어왔다.소리를 들은 소은호는 전동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은정이 안고 내려와.”전동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섰다.나머지 사람들도 전동하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거의 의
소은호는 담담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난 전혀 놀랍지 않던데? 전씨 가문 같은 지옥에서 역전승을 이뤄낸 사람이야. 처음부터 보통내기가 아니었다고. 만약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나약하고 무능한 인간이었으면 아무리 은정이를 잘 챙긴다고 해도 나랑 아버지가 결혼까지 동의하지는 않았을 거야.”그 말을 들은 소은해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그는 약간 짜증난 말투로 말했다.“그러니까 나 빼고 다 알고 있었다는 거네? 그 자식 여태 연기했던 거였어?”소은해는 담담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연기했다고 볼 수는 없지. 그냥 사람을 편하게 대해줘야 막내가 좋아하니까.”소은해는 약간 배신당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있었던 일로 전동하에 대한 인상이 확 바뀌어 버렸다.‘나만 이게 충격 받았다니!’그 뒤로 그는 입을 꾹 다물고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이걸 어떤 느낌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사실 전동하가 좀 달라 보이긴 했다.어쩌면 이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소은정이 사람들의 괴롭힘을 당할 일은 없어졌으니.병원에 도착한 전동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소은정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깨었다가 다시 잠드는 상태가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그날 밤, 아무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김하늘은 새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갔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갓난아기는 한참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소은정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벌써 이틀이 지난 뒤의 오후였다.자극적인 소독약 냄새에 그녀는 눈을 떴다. 눈을 뜨고 가장 먼저 보인 것이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색 커튼이었다.밝은 햇살이 대지를 비추고 서늘한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고개를 돌려 보니 전동하가 그녀의 손을 잡고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잠을 자는 동안 긴 꿈을 꾸었다. 단편적인 기억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유럽 거리를 걷다가 총격사건에 휘말린 일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그녀는 중간에 길을 여러 번 잘못 들었지만 그래도 결과는 아름다웠고 만족스러웠다.처음에 마이크를 구해서 맺어진 인연이
병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그들은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그녀는 시선을 살짝 떨구고 고개를 끄덕였다.의사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외부적인 충격으로 기억을 회복한 케이스로군요. 가벼운 뇌진탕이 있긴 하지만 며칠 쉬면 괜찮아질 겁니다.”전동하를 제외한 병실의 모두가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소은정이 혼수상태에 빠진 이틀은 의료진에게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전동하를 바라보았다.남자의 눈동자는 고요해서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안쓰러운 걸까, 아니면 아쉬워하는 걸까?사실 소은정에게는 다소 잔인한 기억들도 있었다. 그는 그녀가 기억을 잃은 채로 살아갈지라도 그때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가 기억을 회복했다고 했을 때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기억을 되찾은 지금도 예전처럼 아무 고민도 없이 웃을 수 있을까?의사들이 나가고 소은정은 그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좀 괜찮아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 기억났어요.”전동하는 어두워진 눈빛으로 말했다.“사실 영원히 기억을 되찾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소은정은 그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당신과의 추억도 영원히 기억하지 못하잖아요.”전동하는 흠칫하며 손을 내밀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소은정의 눈시울이 빨개졌지만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걸렸다.“봐봐요. 난 어떤 상황에서든 당신을 사랑하게 됐잖아요. 사실 속으로 자랑스럽죠?”전동하가 움찔하더니 더 힘주어 그녀를 끌어안았다.그녀가 지금처럼 명확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그가 줄곧 기대하고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그 한마디 말은 봄바람처럼 초조한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은정 씨, 영원히 내 옆에 있어요. 알았죠?”그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며 뜨거운 입술로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소중한 것을 다루듯이 조심스러운 행동에 소은정은 울컥했다.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