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옆에 있던 문상아가 살짝 끼어들었다.“성 대표님. 다음 번에 그런 배우 필요하시면 저한테 연락하세요. 제가 아는 동생들 소개해 드릴게요. 페이는 비싼데 A/S는 확실해요.”진심인 듯 농담인 듯 애매한 문상아의 말에 다들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고 그 덕분에 어딘가 굳어있었던 분위기도 자연스레 풀어졌다.“좋죠. 다음엔 무조건 상아 씨한테 연락할게요.”그 뒤로는 다행히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졌고 파티의 막바지, 촬영팀에선 성강희를 위한 케이크 자르기 이벤트까지 준비했다.솔직히 다들 흥미가 떨어지긴 했지만 생일자를 위한 예의이니 다들 억지로나마 참여하는 수밖에 없었다.조명이 어두워지고 생일 축하노래 흘러나오니 성강희의 입가에도 미소가 스쳤다.노래가 끝나고 감독을 선두로 모두가 그를 향해 외쳤다.“얼른 소원 비세요.”쑥스러운 미소를 짓던 성강희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진지하게 소원을 빌고 소은정과 그 친구들은 왠지 감개무량한 기분에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아직 처음 만났을 때 앳된 얼굴이 눈앞에 선한데 언제 이렇게 컸나 싶으면서도 그만큼 나도 나이가 먹었겠지라는 생각도 들었다.그리고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이 우정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잠시 후, 고개를 든 성강희가 입을 열었다.“다 빌었어요.”그 순간, 누군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성강희의 머리를 눌러 케이크에 박아버렸다.다음 순간 조명이 다시 밝아지고...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무리 생일파티라지만 누가 감히 이런 짓을 하나 싶던 찰나.한유라가 꺄르르 웃으며 외쳤다.“성강희, 생일 축하한다!”이미 크림 범벅이 된 성강희가 고개를 들더니 한유라를 째려보다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그리고 그녀가 성강희의 꼴을 비웃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 얼굴에 묻은 크림을 떼어내 그녀의 얼굴에도 확 묻혀버렸다.“야, 너 진짜 치사하게!”한유라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두 사람의 유치한 전쟁에 끼고 싶지 않았던 김하늘과 소은정은 슬금슬금 멀어졌다.이때 어느샌가 옆으로 다가온 문상아가 물었
싱긋 미소 짓던 성강희가 차키를 다시 주머니에 챙겨넣었다.“아, 술 마셨잖아요. 그래서 기사 불렀죠.”잠시 후, 두 사람이 나오는 모습에 기사 역시 흠칫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성강희가 말없이 문상아를 바라보고 그녀는 자연스레 주소를 얘기했다.하지만 당연히 집으로 갈 것이라는 성강희의 예상과 달리 문상아가 얘기한 주소는 방송국이었다.“촬영... 다 끝난 거 아니었어요? 방송국엔 왜요?”성강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그 질문에 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던 문상아가 부스스 눈을 떴다.“아, 내일 또 촬영이 잡혀있거든요. 그냥 그 근처 호텔에서 자려고요.”잠 기운이 가득한 몽롱한 눈빛, 순간 누군가의 눈이 생각나며 성강희의 가슴이 살랑였다.“그렇게나 바빠요?”“쉴 틈 없이 일할 수 있는 게 복이죠 뭐. 대중들이 아직 절 원한다는 걸 의미하니까요.”문상아가 싱긋 웃었다.이 세상에 돈 버는 일 치고 쉬운 일 하나 없다지만 배우와 같은 연예인들은 대중들의 관심이 성과에 대한 유일한 평가 잣대가 되는 일이라 더 가늠키 힘들었다.그리고 한때 누구보다 잘 나가다가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는 배우들이 한, 두 명이 아니었기에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문상아는 고마웠다.집에 누워서 한물 간 게 아닌가 불안해 하느니 촬영장에서 피곤함에 쓰러지는 게 낫다라는 것이 문상아의 신조였다.문상아의 대답에 말없이 웃은 성강희가 전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술을 마셔서일까? 방금 전 그 눈빛이 집요할 정도로 그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약 10분 뒤, 차량이 방송국 앞에 멈춰 서고 차에서 내린 문상아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데려다주셔서 고맙습니다.”“별말씀을요.”“탁.”차문이 닫히고 잠깐 동안의 정적을 깬 건 기사의 목소리였다.“댁으로 모실까요?”“그래요.”짧게 대답한 성강희가 미간 사이를 꾹꾹 눌렀다.‘정말 취한 건가? 아까 왜... 갑자기 은정이가 생각난 거지? 두 사람 솔직히 하나도 안 닮았
소은정의 얼굴에 충격이 그대로 드리웠다.“제대로 본 거 맞아요?”전동하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 그날 파티에서 이상준 대표 파트너는 분명 문상아였어요. 내가 잘못 기억했을 리가 없어요.”‘헐, 뭐야...’할말을 잃은 소은정은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주위에 막장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막힌 일들이 많고도 많았지만 자기 언니 남편과 어떻게...게다가 오늘 저녁 봤던 문상아는 아무리 봐도 그런 배덕한 짓을 저지를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그리고 사생아라는 말을 듣는 순간 왠지 모르게 전동하가 생각나며 묘한 호감까지 생길 정도였는데.‘역시 사람 얼굴로 판단하는 거 아니라더니. 뒤에선 그런 짓을 저지를 줄은 정말... 몰랐네.’착잡한 표정의 소은정을 힐끗 바라보던 전동하가 물었다.“밀크티 마실래요?”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어떻게 이런 일이...”“됐어요. 어차피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요.”“그렇긴 하지만...”소은정이 한숨을 내쉬었다.“설아 걔는 아무것도 모를 거 아니에요. 투자를 그렇게 말아먹더니 이젠 남편까지 말아먹으려고...”요상한 비유에 전동하가 웃음을 터트렸다.“만약 문상아, 이상준이 정말 그렇고 그런 사이라면 차라리 정리하는 게 맞지 않나요?”어쨌든 문설아와 친분이 더 있는 소은정은 그녀에게 마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문설아의 순진함과 멍청함은 이미 이 바닥에 소문이 쫙 나있는 반면 그 여동생은 침착하고 똑똑해 보이는 이미지였다.‘설아가 당해낼 수 있는 그런 레벨이 아니라고...’잠시 후, 소은정의 본가.새봄이는 소찬식과 마이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전동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자기가 요즘 보고 있는 물리 교재를 들고 와선 선생님 역할을 하고 있는 마이크. 그 얘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얌전히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새봄 때문이었다.‘아직 말도 못 배운 애한테 물리학이라니...’하지만 이미 눈에 콩깍지 필터
역시나. 숙제는 진작 뒷전이었던 마이크가 스르륵 자리를 뜨고...소은정이 짐짓 전동하의 등을 찰싹 때렸다.“자기도 좋으면서 왜 엄한 애 겁을 주고 그래요?”너무나 평범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일상에 전동하의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졌다.그렇게 한 손은 소은정의 손을 잡고 다른 한 팔엔 새봄이를 안은 전동하가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며칠 뒤.임진호와 이율에 대한 소문이 조금씩 퍼져나가기 시작했다.자존심 하나로 살아가던 임진호에겐 그 소문은 치욕 그 자체였다.진심으로 사랑한 여자면 모를까?그저 한동안 데리고 놀고 버리려던 이율이 주제도 모르고 밖으로 나돈 탓에 그는 하루아침에 여자친구 간수 하나 제대로 못한 천하의 찌질이 남자친구가 되어버렸으니 화가 날만도 했다.얼굴, 몸매가 마음에 꼭 드는 건 아니었지만 순종적인 태도와 아양을 떠는 그 모습이 나름 귀여워 돈도 많이 썼는데...이렇게 그를 배신했을 줄이야.‘두고 봐. 내가 그렇게 당하고 가만히 있을 줄 알아...?’임진호가 주먹을 꽉 쥐었다.한편, 이 이야기의 여주인공 이율은 더 죽을 맛이었다.그날 파티에서 성강희 버프로 연예계 인사들에게 얼굴 도장이라도 찍을 예정이었는데 다른 의미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여배우, 특히 신인 여배우에게 이미지는 곧 생명과 같은 것.앞으로는 그나마 간간히 들어오던 단역 대본들도 뚝 끊기게 될 게 분명했다.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건 바로 임진호의 복수였다.‘그 짐승같은 자식한테 걸리면 정말 죽을지도 몰라...’그렇게 이율은 두문불출하며 하루하루를 불안감속에서 살아갔다.며칠 뒤. 새봄이의 돌잔치.백일 잔치는 가족들끼리 소소하게 한 대신 돌 잔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성대하게 치러야 한다는 소찬식의 고집 때문에 장소는 유명 호텔 파티홀로 정해졌고 잔치 현장은 하객들로 북적댔다.게다가 전동하는 파티장 테이블에 놓을 생화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쓰는 정성을 보여주었다.두 남자의 남다른 열정에 소은정은 괜히 왜 이렇게 유난을 떠나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한석이 오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전동하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말을 아끼지 않았다.이한석은 웃으며 큰 박스 하나 작은 박스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새봄이랑 은정 씨 선물이에요. 받아주셨으면 해요.”전동하는 차가운 눈빛으로 웃었고 그 상황을 즐기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좋아요. 감사합니다.”이한석은 금방까지도 전동하가 거절하면 어쩌나 긴장했었다.이렇게 쉽게 선물을 받을 줄은 몰랐다.전동하는 손에 들린 술을 가볍게 한 모금 마셨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말했다. “선물 주신 분께도 빨리 건강한 아이 낳으라고 전해주세요.”이한석은 움찔했다.전동하는 진작에 이 물건을 누가 준 것인지 알았다.까놓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았다.그는 웃으며 말했다.“네. 꼭 전달하겠습니다.”그는 그 말을 전달할 용기가 없었다.박수혁은 여자도 없는데 어디 가서 아이를 낳는단 말인가?박수혁이 열 받을 게 분명하지 않은가?이한석은 선물을 전해주고 자리를 뜨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전 대표님, 이만 가보겠습니다.”“안녕히 가세요. 멀리 안 나갑니다.”전동하는 그가 멀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시선을 돌린다. 그가 두고 간 박스 두 개를 보는 눈빛은 한없이 차가웠다.그가 손을 흔들자, 옆에 있던 종업원이 다가온다.전동하가 감정 없이 말했다.“버려요.”종업원은 깜짝 놀랐다. 얼핏 봐도 보통 물건이 아닌 것 같았다.종업원이 다시 묻기 전에 전동하는 이미 들어가 버렸다.소은정은 새봄이를 안은 채 친구들의 칭찬을 듣고 있었다.한유라가 말했다.“새봄이는 손도 예쁘네. 커서 피아니스트 해도 되겠다!”김하늘이 한술 더 떠 말했다.“손이 예뻐서 돈도 잘 세겠다. 갑부가 되겠어!”성강희도 한마디 거든다.“팔다리도 기네. 국가대표가 돼서 메달 따면 좋겠다!”한유라가 한마디 더 한다.“피부도 어쩜 이리 좋아? 새봄이보다 예쁜 애는 본 적이 없어!”김하늘이 맞장구를 친다.“맞아!”오늘따라 늦게 온 문설아가 웃으면서 걸어오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는 전동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했다.“그래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새봄이를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던데요!”전동하는 그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저도 못 건드리게 할 거예요.”이상준은 놀라 아무 말도 못 했다.“......”너무 앞서갔나?......소은정은 새봄이를 안고 문설아를 흘깃 보더니 무심한 듯 말했다.“며칠 전에 강희 생일에 네 여동생 봤는데!”문설아는 고개를 숙여 새봄이와 놀고 있었다.그 말을 듣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나도 들었어. 내 여동생도 일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을 거야. 시간 나면 가서 봐야지.”소은정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사이가 좋은가 봐? 소문에 너네……”문설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리를 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남의 프라이버시를 왜 마음대로 말해? 그것도 내 앞에서?”소은정은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은정은 그저 문설아가 문상아를 조심 했으면 해서 한 말이었다!김하늘은 그 상황을 모두 들었다.소은정은 호기심이 생겼다.그녀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소은정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뒤에서 말한 것도 아닌데.”문설아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기에 내뱉은 말이었다.문설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알려져도 상관없어. 나한테는 그냥 친동생이야. 엄마가 다르면 어때? 어차피 아빠가 같은데!”김하늘이 웃으며 말했다.“다른 집은 엄청나게 물고 뜯고 한다던데 정말 기적이다!”문설아는 활짝 웃으면서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우린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았어. 내 공부도 도와주고 친구들도 대신 괴롭혀 주고 목숨까지 구해줬어. 이런 동생이 어딨냐?”김하늘이 한마디 거든다.“그랬구나. 괜히 말했다 정말.”문설아가 소은정을 보며 말했다.“들었지?”소은정이 웃으며 잘못을 인정했다.“내가 잘못했어. 그 얘기 안 꺼낼게.”한창 얘기하고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한 여종업원이 소은정을 본 순간 얼굴빛이 좋지 않게 변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소은정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것이 그저 그녀 곁을 스쳐 지나갈 뿐이다. 수많은 그림자가 눈앞을 스치고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은 기억보다 더 빨랐다.그녀는 왜 갑자기 마음이 괴로운지 알지 못했다.괴로움도 잠시, 마음은 금세 진정이 됐다.술병이 깨지는 순간, 주위의 소리가 선명해졌다.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이마가 깨질듯한 고통도 점점 심해져만 갔다.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났다.그녀는 휘청거리기 시작했다.그 순간, 그녀는 지극히 따뜻한 품에 안겼다.“은정 씨......”익숙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그 순간, 그녀의 마음은 순식간에 편안해졌다.조금 전의 슬픔과 숨 막히는 감정은 착각인 듯싶었다.그녀는 해냈고 새 출발 했다.박수혁을 잊고 지낸 나날들에 그녀는 얼마나 쾌활했는가!그가 정말로 나타난 적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다행히도 그녀는 모두 잊었다.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도 했다.전동하가 준 모든 것들은 공기처럼 그녀의 삶에 스며들었고 그녀를 다시 살게 했다.정말 행운이 따로 없다!눈앞의 빛은 점점 흐려졌다.그녀는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지만, 눈을 뜰 힘조차 없었다.눈앞에 어둠이 찾아왔다.화려하고 빛나는 연회장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누구도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온화하고 다정하던 전동하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위험이 닥치는 순간, 김하늘은 재빨리 새봄이를 안아올렸다.위기의 순간에 전동하는 소은정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범인 이율을 잡았다.이율도 겁만 살짝 주려 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그렇게까지 그녀의 머리에 명중할 줄은 정말로 몰랐다.그녀는 분노로 이성을 잃어 소은정의 신분을 까먹었다.그 자리에 있는 권세 있는 사람 중에 누군들 소은정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그녀는
파티 분위기가 깨지고 많은 사람이 자리를 떠났고 일부만 남아있었다. 성강희는 전동하와 함께 소은정이 서 있던 자리에 섰다. 고개를 숙여 바닥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이율을 경멸의 눈길로 쳐다보았다. 이율이 전에 치근거리는 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혐오스러울 지경이었다. 자칫하다가는 여자도 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율은 바닥에서 계속해서 엉엉거리면서 울고 있었다. 얼굴의 화장마저 눈물에 지워져 버렸다. 이제야 자신이 무슨 멍청하고 큰 실수를 했는지 알았나 보다. 소은정의 집안은 임진호의 집안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했다. 임진호조차 소은정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데 무슨 용기로 소은정을 다치게 한 거지? 눈앞이 깜깜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성강희는 차가운 표정으로 이율에게 다가가서 말했다.“미친 거야?”이율은 울음을 뚝 멈추고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성강희의 앞에 달려갔다.“강희야, 나 좀 도와줘, 제발! 은정 씨한테 한 번만 봐달라고 부탁해 줘!”성강희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봐달라고? 지금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잘못했어, 순간 정신이 나갔나봐... 강희야, 정말 잘못했어!”이율이 울면서 말했다. 잘못한 것을 안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울부짖는 것이다. 성강희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도 널 구해줄 수 없어.”죽일 듯이 차가운 침묵이 흐르고 이율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표정으로 말했다. “강희야, 은정이랑 친하잖아. 제발 부탁 좀 할게. 아까는 내가 정신이 어떻게 됐나봐, 고의는 아니었다고 제발 전해줘. 이번만 넘어가 주면 다시는 찾아갈 일도 없고 네 발목도 잡지 않을게.”성강희는 차가운 웃음을 짧게 내뱉더니 말했다. “무슨 자격으로 지금 협상하는 거야? 너정도 없어지게 하는 건 일도 아니야. 단지 내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을 뿐이지.”말을 마친 성강희는 붙잡는 이율을 보는 체도 하지 않고 뒤돌아갔다. 이율은 그 자리에 앉아 더 소리치면서 울부짖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