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라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동하 씨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설마 처음부터?”‘설마 우리가 대화한 내용을 다 들은 건가?’소은정이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야. 방금 들어왔어.”한유라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물었다.“넌 몸은 좀 어때? 배 속의 아기가 말썽부리지 않아?”아기 얘기가 나오자 소은정은 웃으며 배를 쓰다듬었다.“아직 아무 반응 없어. 출근하는데는 전혀 문제 없어!”한유라는 소은정과 한참을 수다를 떨다가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급급히 전화를 끊었다.소은정이 아직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이, 전동하는 냉큼 다가가서 핸드폰을 빼앗았다.“심 대표가 돌아왔겠죠. 유라 씨 아마 다시 전화 안 올 거예요.”소은정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유라 이 나쁜 녀석, 사랑을 만났다고 친구를 소홀히 하다니!’전동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전복죽 다 끓었는데 가져올까요?”소은정이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아니요. 시간이 너무 늦었잖아요. 이 시간에 먹으면 살 쪄요.”전동하도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그녀가 서류를 검토하는 사이, 그는 조용히 주방으로 가서 전복죽을 가져왔다.“따뜻할 때 맛만 봐요. 이거 한 숟가락 먹는다고 살 안 쪄요.”요즘 소은정의 식단은 전문 영양사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전동하는 저녁 때는 꼭 자신이 직접 요리를 했고 그들의 집에는 기숙하는 가정부를 두지 않았다.전동하가 바빠서 야근이 잦을 때를 제외하고 가정부는 이 집에서 밤을 새우지 않았다.반면 소은정은 이런 사소한 것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전동하와 소찬식, 그리고 오빠들의 극진한 보살핌이 있었기에 전혀 소외감을 느끼지 않았다.처음에 그녀는 임신해서 전동하가 이렇게 자상하게 자신을 대한다고 생각했다.물론 임신 전에도 그녀를 실망시킨 적은 없지만 임신한 뒤로 감수성이 풍부해져서 그런지 잡생각이 많아졌다.하지만 점차 그런 생각은 자취를 감추었다. 어느 날 그
심야에 나긋나긋하게 울리는 전동하의 목소리는 자장가처럼 아늑하고 편안했다.어느새 소은정은 깊은 잠에 빠졌다.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한 전동하는 조심스럽게 침대를 내려 서재로 갔다.다음 날.날씨가 싸늘해져서 그런지 소은정은 이불을 돌돌 말고 잠에서 깼다. 오늘 따라 하늘도 우중충했다.전동하는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그녀에게 집에서만 휴식할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끔 출근 시간에 농땡이를 부릴 때도 있지만 자기 일을 사랑하는 여자였다.아침 식사를 준비한 뒤, 전동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깨웠다. 일어나기 귀찮았던 소은정은 그의 품에 안겨 얼굴을 비볐다.아침부터 사랑스러운 아내가 몸을 밀착해 오니 전동하는 난감하기도 하고 괴로웠다.그는 욕망을 억지로 잠재우고 그녀를 깨웠다.“그만하고 이제 일어나죠?”소은정은 그 뒤로도 그의 몸 곳곳에 욕망의 씨앗을 남기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일어났다.그런데 전동하가 그녀의 팔목을 잡아당겨 다시 침대로 데려왔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렇게 일어나기 싫으면 오늘 하루는 휴가 내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손으로 그의 탄탄한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촉감이 너무 좋았다.그녀는 그의 몸 곳곳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게으름 부리면 안 되죠! 휴가 낼 이유가 없잖아요.”사랑스럽지만 얄미운 표정은 참고 있던 전동하의 욕망을 폭발시켰다.그는 긴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소은정은 그제야 아침부터 그를 자극한 것을 후회했다.결국 그녀는 잘못했다고 그에게 사정했다. 오늘은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빠질 수 없었다. 소은해가 출장 중이기에 그녀가 무조건 참석해야 했다.전동하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끝으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자가 있을까?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기진맥진한 소은정을 데리고 가서 세수를 시키고 옷방까지 따라 들어갔다. 참다 못한 소은정이 그를 내쫓았다.모든 준비가 끝난 뒤, 소은정
소은정과 우연준 두 사람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재빨리 로비를 지나쳤다.다행히 회의 시작 전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소은정은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안으로 들어갔다.기획팀 팀장이 새 프로젝트 기획서를 그녀에게 건넸다.“대표님, 이 프로젝트는 본부장님과 몇 번이나 상의했는데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경쟁상대에게 빼앗기게 될 상황이에요. 어떻게 할까요?”기획팀 이 팀장은 많이 조급해 보였다.대학을 금방 졸업한 학생이 설립한 작은 회사였는데 그렇게 보잘 것 없는 회사가 그들의 경쟁 상대가 되었다.이유는 간단했다.그 회사에서 출시한 플랫폼이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반 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수많은 투자자와 인수 의향자들을 끌어 모았다.기업 대표는 인수는 거절하고 투자만 받는 형식으로 회사를 운영했다.그들은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회사의 비전을 팔아 넘기는 짓은 하지 않았다.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큰 회사라는 얘기였다.그런데 하필 SC가 추진하는 프로젝트와 컨셉이 겹치게 되었다. SC 그룹이 2년 동안 공들여 준비한 프로젝트였고 출시만 앞둔 상황이었다.중요한 시기에 혜성 같은 신인 기업이 갑자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으니 SC 입장에서는 그들이 곱게 보일 수 없었다.SC그룹이 2년 동안 프로젝트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신인 기업은 독특함과 창의성을 앞세웠고 SC그룹은 고리타분한 옛날 방식을 고수해 왔기에 떠오르는 신예를 능가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의 생각이었다.소은해는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고 싶어했다.어차피 경쟁사에서 먼저 비슷한 상품을 세상에 내놓았고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에 그와 성향이 비슷한 플랫폼을 SC에서 출시한다면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여론의 물매를 맞을 수도 있었다.일부는 그들이 신인 작품을 베꼈다고 비난할 것이다.이미지를 중시하는 대기업에게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소은정도 이 프로젝트를 포기할지 계속 추진할지 고민하고 있었다.포기하자니 투자한 돈이 어
남종석의 설명을 들은 한 임원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놈이네요. 돈을 주겠다는데 거절하다니. 일확천금을 꿈꾸는 걸까요? 요즘 어린애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요!”“그러니까요. 아예 투자자들을 설득해서 투자를 끊어 버리는 건 어떨까요? 돈이 없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려고요. 유동자금에 문제가 생기면 아마 한 달도 못 가 파산할걸요?”“남종석 씨는 무슨 방법으로 그 회사에 접근했어요? 부하들을 그 회사에 취직시켰나요? 알아낸 정보가 확실하긴 한 거죠?”사람들이 또 떠들어대기 시작하자 소은정은 짜증이 치밀었다. 그녀는 어느새 차가워진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아직 얘기 안 끝났잖아요. 토론은 얘기 다 끝나고 하시죠.”임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뭐라고 이의를 제기할 용기는 없었다.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은 모두 회사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소은정의 눈치를 많이 봤다.다른 주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은정은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한 차례 인원을 물갈이 해버린 전적이 있기에 소찬식이 있을 때 위풍당당하던 임원들은 소은정 앞에서 몸을 사리기 바빴다.소은정을 향한 소씨 가문 남자들의 유별난 사랑도 한몫 했다.남종석은 목청을 가다듬고 계속해서 브리핑을 이어갔다.“보다시피 엄지환은 소액 투자보다는 대규모 투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에게는 이윤을 적게 분배하고 싶겠죠. 사실 엄지환이 시중에 내놓으려는 회사 지분은 고작 10퍼센트로 주식을 전부 매수했다고 해도 회사에서 큰 발언권은 없어요.”그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얼굴색이 안 좋게 변했다.소은정도 인상을 찌푸렸다. 10퍼센트밖에 안 되는 지분, 게다가 아무런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라.‘자기 회사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하네.’“금방 사업에 뛰어든 새내기 경영인들은 당연히 자신이 나중에 세계적인 갑부가 될 수 있을 거라 꿈꾸겠죠. 그래서 첫 시작부터 많은 주식을 풀고 싶지 않은 거고요. 오늘은 여기까지 알아보는 거로 하죠
남종석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인상을 썼다.“대표님이 직접 만나시려고요? 너무 과분한 거 아니에요?”소은정이 웃으며 말했다.“저쪽에서는 우리가 똥줄이 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최후통첩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죠.”물론 이번 만남이 마지막은 아니겠지만 엄지환에게 압박감을 주려는 작전이었다.남종석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저랑 같이 가시죠?”소은정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소은정은 혼자 이 어린 대표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주요 목적은 ‘당신은 아주 중요한 고객이다’라는 착각을 주기 위해서였다.우연준은 성공적으로 엄지환과 연락을 취하고 정일테크 사무실에서 미팅을 약속했다.소은정은 가기 전에 캐주얼 치마로 갈아입고 편한 운동화를 신었다. 이 신발도 전동하가 사온 신발이었는데 쇼핑하거나 산책할 때 정말 편했다.소은정은 가벼운 소재로 된 이 신발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우연준은 사무실 거울 앞에서 신발을 감상하는 그녀를 보며 재촉해야 할지 더 기다려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신발 인증샷을 찍어 어딘가로 전송하고는 상대와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물론 상대는 전동하였다.전동하에게서는 바로 답장이 왔다.전동하 -“외근해요?”소은정 -“네. 인수 합병건에 관해 고객사 대표 좀 만나려고요. 동하 씨 이런 거 꽤 잘하던데 팀 좀 알려줄 수 있어요?”전동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같이 갈까요?”갑자기 팁을 전수해 달라니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하지만 소은정은 단칼에 거절했다.“그럴 필요는 없어요. 상업기밀이라 외부로 누설하면 안 돼요.”전동하는 어이가 없었다.돈 벌 기회가 생기니까 상업기밀이라니!소은정은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사무실을 나섰다.“이제 가요.”우연준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녀를 따라갔다.운전기사는 주차장에서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소은정은 임신하고 외부 미팅을 거의 안 나갔기에 운전기사도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목적지에 도착한 소은정은 밖
소은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으로 오시죠.”소은정과 우연준은 그 여직원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우연준은 살짝 기분이 상했다. 신분이나 지위나 소은정이 압도적인데 엄지환이 로비까지 마중을 안 나왔다는 게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허세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하지만 소은정은 별다른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조용히 그녀를 뒤따랐다.앞장선 여직원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수시로 그들을 뒤돌아보았다.그녀의 시선을 느낀 소은정은 여직원을 향해 우호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여직원은 움찔하더니 급히 고개를 돌리고 앞장서서 걸었다.소은정은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겁을 먹었지?’모퉁이를 돌자 대표 사무실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여직원은 가볍게 노크한 뒤 소은정에게 말했다.“대표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죠.”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잠시 내부 환경을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사무 구역은 IT 기술자들이 근무하는 곳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깨끗했다.하지만 모두가 머리를 숙이고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프로페셔널하네!’이런 생각이 들자 이 회사에 대한 호감이 조금 더 상승했다.회사 직원들이 이런 업무 태도로 일한다면 돈을 조금 더 얹어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안으로 들어가자 엄지환이 그녀를 반겨주었다.“소 대표님, 만나서 반갑습니다.”소은정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도도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반가워요.”엄지환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키도 크고 하얀 피부에 앳된 느낌은 있지만 금방 학교를 졸업한 새내기보다는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하지만 만만한 상대였다면 몇 달 사이에 정일테크를 이 정도로 성장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사무실은 아담하지만 정돈되고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화려한 장식품은 없었고 그레이톤을 위주로 꼭 필요한 물건들만 들여놓았다. 소파에 앉자 아까 봤던 여직원이
소은정은 잠시 침묵하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밝은 햇살을 마주하자 혼란스러웠던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았다.엄지환은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 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어차피 이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 믿고 자신에게 더 유리한 쪽으로 담판을 끌어가려고 하고 있었다.소은정은 커피잔에 손을 가져가다가 다시 움츠렸다.그녀는 창문을 통해 바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까처럼 엄숙하고 차분한 모습 대신 모여서 무언가 의논하고 있었는데 수시로 이쪽 사무실을 힐끔거리고 있었다.소은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었다.“엄 대표님은 이 프로젝트가 출시하고 꼭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나요?”엄지환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소은정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제가 알기로 대표님이 추진하는 이 플랫폼은 오래 전에 다른 회사에서 특허를 신청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대표님이 먼저 출시하면 이목이야 끌겠지만 특허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울 겁니다. 앞으로 꽤 오랜 시간을 상대 회사와의 소송에 허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상황은 전혀 이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겠죠.”엄지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을 소은정이 꼬집었다. 그들의 내부 심사 과정이 그만큼 허술했다는 얘기였다.이런 류의 프로젝트는 일단은 투자금을 끌어오고 작업을 추진한 뒤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대부분 투자자들이 눈앞의 이득만 보고 미래에 발생할 문제에 대해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소은정은 그들과 달랐다.‘내가 경솔했군.’엄지환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있겠죠. 그때 가서 변호사를 선임하면 됩니다.”사실 그는 투자 유치를 받은 뒤, 일류 변호사를 선임해서 상대 회사와 합의하거나 배상금을 물어주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었다.소은정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엄지환 씨는 해결 못할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 프로젝트의
우연준은 문득 소은정이 왜 직접 온 건지 깨닫고 말았다.‘최후통첩을 내리러 오신 거구나.’소은정의 달콤한 목소리가 차가운 말을 뱉어냈다.“엄 대표님, 비록 SC그룹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선수를 빼앗긴 건 사실이지만 저희는 오랫 동안 많은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시작 후 일어날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상응하는 대책을 생각해 두었죠. 하지만 정일테크는 다릅니다. 이 프로젝트 정말 끝까지 진행시킬 자신 있으십니까?”소은정의 팩폭에 표정이 확 굳은 엄지환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방금 전의 온화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제가 SC그룹에게 넘기는 건 싫다면요?”그 모습에 오히려 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흥, 조급한가 보지?’자연스레 커핏잔을 든 소은정을 향해 우연준이 헛기침으로 눈치를 주었다.‘아차, 나 지금 임산부였지?’“SC그룹에게 넘기는 게 싫다고요? 엄지환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엄 대표님의 재능을 높게 사지 않았다면 진작 고소했을 겁니다. 저야 많은 게 돈이나 시간이니 대표님이 파산할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졌겠죠. 프로젝트로 인해 소송까지 걸린 회사에게 누가 투자를 할까요? 시가총액은 떨어지고 주가도 폭락하겠죠.”엄지환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지고 소은정은 훨씬 더 풀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이번 프로젝트로 얻은 수익으로 그 구멍을 메꿀 수 있을까요? 아니, 회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엄지환은 전형적인 창업 초기에 큰 성공을 거두고 붕 들뜬 상태의 CEO, 이런 부류 사람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방법은 차가운 현실을 알려주는 것이다.설립된 지 일년도 채 되지 않은 회사 따위 너무나 쉽게 망가트릴 수 있지만 잠재력을 나름 높게 사 인수하려 하는 것이다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분노를 애써 억누르는 듯 엄지환의 목소리가 무섭게 가라앉았다.“지금 저 협박하시는 겁니까?”“글쎄요. 이걸 협박으로 생각하신다면 너무 실망인데요? 역시 창업하신 지 얼마 안 돼서 순진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