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석의 설명을 들은 한 임원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놈이네요. 돈을 주겠다는데 거절하다니. 일확천금을 꿈꾸는 걸까요? 요즘 어린애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요!”“그러니까요. 아예 투자자들을 설득해서 투자를 끊어 버리는 건 어떨까요? 돈이 없이 회사를 어떻게 운영하려고요. 유동자금에 문제가 생기면 아마 한 달도 못 가 파산할걸요?”“남종석 씨는 무슨 방법으로 그 회사에 접근했어요? 부하들을 그 회사에 취직시켰나요? 알아낸 정보가 확실하긴 한 거죠?”사람들이 또 떠들어대기 시작하자 소은정은 짜증이 치밀었다. 그녀는 어느새 차가워진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아직 얘기 안 끝났잖아요. 토론은 얘기 다 끝나고 하시죠.”임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뭐라고 이의를 제기할 용기는 없었다.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은 모두 회사에서 중요한 보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소은정의 눈치를 많이 봤다.다른 주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은정은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한 차례 인원을 물갈이 해버린 전적이 있기에 소찬식이 있을 때 위풍당당하던 임원들은 소은정 앞에서 몸을 사리기 바빴다.소은정을 향한 소씨 가문 남자들의 유별난 사랑도 한몫 했다.남종석은 목청을 가다듬고 계속해서 브리핑을 이어갔다.“보다시피 엄지환은 소액 투자보다는 대규모 투자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에게는 이윤을 적게 분배하고 싶겠죠. 사실 엄지환이 시중에 내놓으려는 회사 지분은 고작 10퍼센트로 주식을 전부 매수했다고 해도 회사에서 큰 발언권은 없어요.”그 말이 끝나자 사람들의 얼굴색이 안 좋게 변했다.소은정도 인상을 찌푸렸다. 10퍼센트밖에 안 되는 지분, 게다가 아무런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라.‘자기 회사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하네.’“금방 사업에 뛰어든 새내기 경영인들은 당연히 자신이 나중에 세계적인 갑부가 될 수 있을 거라 꿈꾸겠죠. 그래서 첫 시작부터 많은 주식을 풀고 싶지 않은 거고요. 오늘은 여기까지 알아보는 거로 하죠
남종석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인상을 썼다.“대표님이 직접 만나시려고요? 너무 과분한 거 아니에요?”소은정이 웃으며 말했다.“저쪽에서는 우리가 똥줄이 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최후통첩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죠.”물론 이번 만남이 마지막은 아니겠지만 엄지환에게 압박감을 주려는 작전이었다.남종석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저랑 같이 가시죠?”소은정은 단호하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소은정은 혼자 이 어린 대표를 만나볼 생각이었다. 주요 목적은 ‘당신은 아주 중요한 고객이다’라는 착각을 주기 위해서였다.우연준은 성공적으로 엄지환과 연락을 취하고 정일테크 사무실에서 미팅을 약속했다.소은정은 가기 전에 캐주얼 치마로 갈아입고 편한 운동화를 신었다. 이 신발도 전동하가 사온 신발이었는데 쇼핑하거나 산책할 때 정말 편했다.소은정은 가벼운 소재로 된 이 신발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우연준은 사무실 거울 앞에서 신발을 감상하는 그녀를 보며 재촉해야 할지 더 기다려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더니 신발 인증샷을 찍어 어딘가로 전송하고는 상대와 메시지를 주고 받았다.물론 상대는 전동하였다.전동하에게서는 바로 답장이 왔다.전동하 -“외근해요?”소은정 -“네. 인수 합병건에 관해 고객사 대표 좀 만나려고요. 동하 씨 이런 거 꽤 잘하던데 팀 좀 알려줄 수 있어요?”전동하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같이 갈까요?”갑자기 팁을 전수해 달라니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하지만 소은정은 단칼에 거절했다.“그럴 필요는 없어요. 상업기밀이라 외부로 누설하면 안 돼요.”전동하는 어이가 없었다.돈 벌 기회가 생기니까 상업기밀이라니!소은정은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사무실을 나섰다.“이제 가요.”우연준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녀를 따라갔다.운전기사는 주차장에서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소은정은 임신하고 외부 미팅을 거의 안 나갔기에 운전기사도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목적지에 도착한 소은정은 밖
소은정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이쪽으로 오시죠.”소은정과 우연준은 그 여직원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우연준은 살짝 기분이 상했다. 신분이나 지위나 소은정이 압도적인데 엄지환이 로비까지 마중을 안 나왔다는 게 조금 거부감이 들었다.‘허세가 너무 심한 거 아니야?’하지만 소은정은 별다른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조용히 그녀를 뒤따랐다.앞장선 여직원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수시로 그들을 뒤돌아보았다.그녀의 시선을 느낀 소은정은 여직원을 향해 우호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여직원은 움찔하더니 급히 고개를 돌리고 앞장서서 걸었다.소은정은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고 했다.‘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겁을 먹었지?’모퉁이를 돌자 대표 사무실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여직원은 가볍게 노크한 뒤 소은정에게 말했다.“대표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죠.”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잠시 내부 환경을 둘러보았다. 깔끔하게 정돈된 사무 구역은 IT 기술자들이 근무하는 곳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깨끗했다.하지만 모두가 머리를 숙이고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프로페셔널하네!’이런 생각이 들자 이 회사에 대한 호감이 조금 더 상승했다.회사 직원들이 이런 업무 태도로 일한다면 돈을 조금 더 얹어 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안으로 들어가자 엄지환이 그녀를 반겨주었다.“소 대표님, 만나서 반갑습니다.”소은정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고 도도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반가워요.”엄지환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처럼 고리타분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키도 크고 하얀 피부에 앳된 느낌은 있지만 금방 학교를 졸업한 새내기보다는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하지만 만만한 상대였다면 몇 달 사이에 정일테크를 이 정도로 성장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사무실은 아담하지만 정돈되고 깔끔한 인상을 주었다. 화려한 장식품은 없었고 그레이톤을 위주로 꼭 필요한 물건들만 들여놓았다. 소파에 앉자 아까 봤던 여직원이
소은정은 잠시 침묵하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밝은 햇살을 마주하자 혼란스러웠던 기분이 조금은 가라앉았다.엄지환은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 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어차피 이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 믿고 자신에게 더 유리한 쪽으로 담판을 끌어가려고 하고 있었다.소은정은 커피잔에 손을 가져가다가 다시 움츠렸다.그녀는 창문을 통해 바깥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아까처럼 엄숙하고 차분한 모습 대신 모여서 무언가 의논하고 있었는데 수시로 이쪽 사무실을 힐끔거리고 있었다.소은정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들었다.“엄 대표님은 이 프로젝트가 출시하고 꼭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있나요?”엄지환이 당황한 표정을 짓자 소은정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제가 알기로 대표님이 추진하는 이 플랫폼은 오래 전에 다른 회사에서 특허를 신청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대표님이 먼저 출시하면 이목이야 끌겠지만 특허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울 겁니다. 앞으로 꽤 오랜 시간을 상대 회사와의 소송에 허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상황은 전혀 이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겠죠.”엄지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을 소은정이 꼬집었다. 그들의 내부 심사 과정이 그만큼 허술했다는 얘기였다.이런 류의 프로젝트는 일단은 투자금을 끌어오고 작업을 추진한 뒤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대부분 투자자들이 눈앞의 이득만 보고 미래에 발생할 문제에 대해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소은정은 그들과 달랐다.‘내가 경솔했군.’엄지환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어떻게든 해결할 방법이 있겠죠. 그때 가서 변호사를 선임하면 됩니다.”사실 그는 투자 유치를 받은 뒤, 일류 변호사를 선임해서 상대 회사와 합의하거나 배상금을 물어주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었다.소은정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엄지환 씨는 해결 못할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이 프로젝트의
우연준은 문득 소은정이 왜 직접 온 건지 깨닫고 말았다.‘최후통첩을 내리러 오신 거구나.’소은정의 달콤한 목소리가 차가운 말을 뱉어냈다.“엄 대표님, 비록 SC그룹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선수를 빼앗긴 건 사실이지만 저희는 오랫 동안 많은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시작 후 일어날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상응하는 대책을 생각해 두었죠. 하지만 정일테크는 다릅니다. 이 프로젝트 정말 끝까지 진행시킬 자신 있으십니까?”소은정의 팩폭에 표정이 확 굳은 엄지환이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방금 전의 온화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제가 SC그룹에게 넘기는 건 싫다면요?”그 모습에 오히려 소은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흥, 조급한가 보지?’자연스레 커핏잔을 든 소은정을 향해 우연준이 헛기침으로 눈치를 주었다.‘아차, 나 지금 임산부였지?’“SC그룹에게 넘기는 게 싫다고요? 엄지환 대표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엄 대표님의 재능을 높게 사지 않았다면 진작 고소했을 겁니다. 저야 많은 게 돈이나 시간이니 대표님이 파산할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졌겠죠. 프로젝트로 인해 소송까지 걸린 회사에게 누가 투자를 할까요? 시가총액은 떨어지고 주가도 폭락하겠죠.”엄지환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지고 소은정은 훨씬 더 풀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이번 프로젝트로 얻은 수익으로 그 구멍을 메꿀 수 있을까요? 아니, 회사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릅니다.”엄지환은 전형적인 창업 초기에 큰 성공을 거두고 붕 들뜬 상태의 CEO, 이런 부류 사람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방법은 차가운 현실을 알려주는 것이다.설립된 지 일년도 채 되지 않은 회사 따위 너무나 쉽게 망가트릴 수 있지만 잠재력을 나름 높게 사 인수하려 하는 것이다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분노를 애써 억누르는 듯 엄지환의 목소리가 무섭게 가라앉았다.“지금 저 협박하시는 겁니까?”“글쎄요. 이걸 협박으로 생각하신다면 너무 실망인데요? 역시 창업하신 지 얼마 안 돼서 순진하시네요.
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진지한 얼굴로 엄지환을 훑어보다 싱긋 웃었다.“알겠습니다. 엄 대표님이 자존심 버리고 이렇게까지 나오시는데 저도 한발 물러서야죠. 49%, 더는 안 됩니다.”하지만 엄지환의 표정은 여전히 불만스러웠고 이에 소은정이 말을 이어갔다.“엄 대표님, 경제 상황이 안 좋다지만 희한하게도 해마다 창업을 시도하는 젊은이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회사를 400억으로 인수하려는 회사가 몇이나 될까요? 제가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와서 착각하시나 본데 솔직히 400억,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그리고 SC그룹을 등에 업으면 진정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엄 대표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정일테크 인수는 SC그룹에게 어찌 보면 조금 밑지는 장사, 그러니 엄지환이 아무리 불만이 많다 해도 더 이상 양보는 불가능했다.‘여기서 더 양보하느니 차라리 인수 포기하고 소송으로 가는 게 훨씬 더 나을지도 몰라.’소은정의 말을 듣고 움찔하던 엄지환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그래도... 제 동업자들과 의논할 수 있게 해주세요.”이에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알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죠. 제 비서 통해서 연락주세요.”말을 마친 소은정이 문을 나서고 방금 전까지 토론 열기를 불태우던 사람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다들 커다래진 눈으로 소은정을 바라보고 그녀는 그게 상반되게 너무나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우연준과 함께 자리를 떴다.“와, 정말 소은정이야? 봤어? 나한테 웃어주는 거?”“미친, 나 보고 웃은 거거든.”“실물이 사진보다 100배는 더 예쁜 것 같아. 피부는 또 왜 저렇게 좋아?”“그러니까... 화장품은 도대체 뭘 쓰는 걸까? 꼭 고등학생 같아.”“소은정 대표님이 직접 오신 줄 알았으면 미친 척 하고 사무실에 난입하는 건데! 나 진짜 팬이라고.”“야, 우리 회사 SC그룹에 인수될지도 모른다며. 그렇다는 건... 앞으로 우리 대표님이 소은정이 되는 건가?”“정말? 그런데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고 설인하가 기침으로 눈치를 주었다.“그냥 솔직하게 말해. 다들 대충 예상하고 있으니까.”다른 직원들도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그래. 괜히 겁주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소은정 대표, 우리 회사 인수하는 거 거절한 거지? 솔직히 직접 여기까지 와서 조금이나마 가능성이 있을 줄 알았는데...”“뭐야. 소은정 대표랑 같은 곳에서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네.”이때 다시 기운을 차린 엄지환이 싱긋 미소를 지었다.“다들 SC그룹의 소은정 대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거 같으니까 오늘 미팅 결과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게.”이에 직원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소은정 대표의 제안에 응했어. 우리 회사는 400억에 인수될 거고 SC그룹에서 49%의 지분을 확보하게 될 거야. 그런데... SC그룹의 지분 확보율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다함께 의논을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엄지환의 말을 듣던 직원들이 입을 벌렸다.꽤 충격을 먹은 것 같은 직원들의 모습에 엄지환이 미간을 찌푸렸다.“역시 49%는 너무 심했지? 다시 협상해 보는 게 좋겠어.”이때 직원 중 한명이 시험조로 물었다.“400억? 지금 농담하는 거 아니지?”다른 직원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400억으로 인수하면서 지분을 49%밖에 안 가진다고? 이건 완전 대박이잖아!”설인하도 마음이 벅차오르긴 마찬가지였지만 일단 엄지환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49%면 좀 많긴 하지...”하지만 이때 다른 직원이 바로 반박했다.“49%가 뭐가 많아. 내가 전에 알아봤었는데 우리 회사 시가 총액 40억이면 많이 쳐준 거래. 향후 3년 안에 순조롭게 성장한다 해도 최대 200억 정도를 달성하는 게 최선이라던데. 400억이라니... 말도 안돼.”잔뜩 흥분한 직원들이 너도 나도 입을 열었다.“무조건 오케이 해야지. 형, 이런 기회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니야. 얼른 알겠다고 해. 소은정 대표 마음 바뀌면 어쩌려고.”“...”‘하, 이 오합지졸들을 데리고 회사를
엄지환의 말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400억이라는 거금이 그들의 노력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말해 주는 듯했고 그 기쁨이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덜어내 주었다.아무리 400억을 나눈다 해도 또래보다 훨씬 더 성공하는 거나 마찬가지, 만족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이때 설인하가 싱긋 웃었다.“그럼 우리 오늘은 회식할까?”“좋지!”모두의 시선이 엄지환에게 쏠리고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차에 탄 소은정은 바로 한숨을 쉬었다.“대표님, 엄지환 대표가 제안을 거절할까요?”우연준이 물었다.이에 고개를 젓던 소은정이 눈을 살짝 감았다.“아니요. 엄지환 대표는 똑똑한 사람입니다.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이득이라는 걸 깨달을 거예요.”“그런데 왜 한숨을 쉬십니까?”우연준이 의아한 듯 물었다.“400억... 내가 너무 많이 불렀나?”하지만 곧 고개를 젓던 그녀가 스스로를 위로했다.“아니지. 엄지환 대표는 충분히 능력자이니 400억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수 있죠.”SC그룹이 관여하지 않았다면 엄지환은 5년 안에 업계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고 그가 미래에 창출할 수 있는 가치는 분명 200억 이상일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훨 편해졌다.한편, 소은정은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 전동하에게로 향했다.전동하의 회사는 SC그룹의 근처, 비록 점차 국내로 본거지를 옮기고 있긴 했지만 아직도 월가에서 벌이는 프로젝트가 주수입원이라 한국 지사는 겨우 4층짜리 건물일 뿐이었다.그마저도 금싸라기 땅에 자리잡은 건물이라 몇백 억은 될 테다.회사에 들어서니 진지한 얼굴로 바쁘게 회사를 누비는 직원들의 얼굴이 보였다.소은정은 바로 대표 사무실로 향했다.집에서는 한없이 부드럽던 전동하였지만 회사에서는 단 한 마디 군더더기 말도 하지 않는 차가운 모습이었다.소은정을 발견한 전동하가 비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이만 나가보세요.”고개를 끄덕인 비서가 부랴부랴 사무실을 나서고 넥타이를 살짝 풀어헤쳤다.“은정 씨가 여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