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습에 강서진도 혀를 끌끌 찼다. 소은해 저 자식은 연예인이면서 이미지 관리도 안 하나? 소은정도 그래. 아무리 솔로라지만 남자관계가 너무 복잡하잖아.이때, 은사랑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한발 다가섰다.“은해 선배님, 모두 앞에서 해명하세요. 저 여자 때문에 억지로 스캔들을 참고 계신 거죠? 혹시 저 여자가 협박한 거예요? 혹시... 스, 스폰이라도 받으시는 거예요?”한참을 망설이던 은사랑이 결국 스폰이라는 단어를 꺼냈다.“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면 저희가 어떻게든 구해 드릴게요. 저 여자랑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으시잖아요!”은사랑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선 소은해는 그녀를 훑어보더니 물었다.“너 뭐야? 미쳤어? 미치려거든 곱게 미쳐. 뚫린 입이라고 마음대로 지껄이지 말고.”소은정과 김하늘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어깨를 으쓱했다.스폰이라니. 여동생에게 스폰을 받냐고 물으니 화가 날 수밖에.항상 짝사랑하던 소은해의 불같은 반응에 은사랑이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던 함세연이 한숨을 내쉬더니 다가갔다.“은해 씨, 진정하세요. 사랑이가 데뷔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하고 일본에서 자라서 뭘 잘 몰라요. 그냥 걱정돼서...”“넌 또 뭐야?”하지만 소은해는 바로 함세연을 흘겨보았다.비록 집안의 입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나름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배우이다. 동료에게 인지도를 짓밟히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하지만 소은해와 비교해 연기력, 화제성도 부족하고 제대로 된 작품 하나 없는 건 사실이었기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은사랑의 입을 빌려 소은정의 기를 눌러주려던 건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그게...”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던 함세연은 사람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박수혁을 발견했다. 구세주라도 본 듯 눈을 반짝이던 함세연이 바로 그를 향해 다가갔다.“수혁 씨, 왔어요?”옆에 있던 강서진이 박수혁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형 함세연이랑 아는 사이였어?”박수혁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은 또다시 박수혁에게
소은해의 말에 충격을 받고 한참을 멍하니 있던 은사랑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에 은사랑은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뭐야? 두 사람 곧 약혼할 거라고 세연 언니가 직접 말해줬는데. 그리고 박대한 회장과 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까지 보여줬잖아!은사랑이 나지막하게 함세연의 이름을 불렀다.“세연 언니...”한편 함세연은 그녀의 망신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표정의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집요하게 달려드는 기자들보다 침묵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무서웠다.살짝 고개를 떨군 그녀는 겨우 핑계를 생각해 냈다.“어른들 사이에 오해가 있으셨나 봐요. 진지하게 받아들이실 필요 없어요.”“뭐야? 거짓말이었어? 이런저런 사칭은 다 들어봤지만 약혼녀 사칭은 처음이네.”소은해가 비아냥거렸다.사칭... 함세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행여나 이 사실이 기자들 귀에 들어간다면...다시 변명하려던 그때, 소은정이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했다. 이에 소은해는 바로 핸드백을 들더니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가자. 약혼을 하든 파혼을 하든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소은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김하늘을 바라보았다.“너도 갈래?”“당연하지.”김하늘도 핸드백을 챙기고 함께 파티장을 나섰다.세 사람이 자리를 뜨고 함세연은 어떻게든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박수혁에게 다가가 머뭇거렸다.“수혁 씨 그게... 집안 어른들이 결혼에 대해 말씀을 나누시니까... 전 당연히 수혁 씨도 아는 일인 줄 알고...”“그럴 일 없으니까 기대하지 마요.”하지만 박수혁은 단호한 거절로 일말의 희망마저 전부 짓밟아버렸다.명분뿐인 결혼이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뼈저리게 느낀 박수혁은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모든 기대가 물거품으로 사라진 함세연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소은정의 뒤를 쫓았다.소은정... 다 너 때문이야.“세연 언니, 왜 그렇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차 안, 한참을 가만히 있던 김하늘이 입을 열었다.“은정아, 아무리 생각해도 박수혁 좀 이상한 것 같아. 설마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김하늘의 질문에 소은정은 박수혁이 임춘식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그럴 리가? 함진그룹과 결혼 얘기가 오갔다는 그 말,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은 아닐 거야.”함세연이 아무리 뻔뻔하다지만 빌미 없이 박세혁의 약혼녀를 사칭할만큼 멍청하진 않을 테니까.“하긴. 그런데 태한그룹이 왜 굳이 함진그룹이랑 정략결혼을 하려는 걸까?”김하늘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알 게 뭐야.”조용히 운전을 하던 소은해가 피식 웃어다.김하늘을 집까지 데려다준 뒤 소은해와 소은정은 본가로 향했다.다음 날 이른 아침, 1층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목소리에 소은정이 부스스 눈을 떴다.“너, 너 도대체 뭐야? 네 동생 혼사길 막으려고 작정했어? 저, 저 로봇보다도 못한 놈!”소찬식이 소은해를 혼 내는 소리였다.눈을 비비적거리며 내려온 소은정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러세요?”소찬식이 대답하기 전에 집사 아저씨가 태블릿을 건넸다.“소은정이 소은해의 스폰서?”“톱스타 소은해, 재벌 2세에게 스폰을 받다?”자극적인 기사 타이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너 같은 걸 요즘 애들 말로 관종이라고 한다더라. 아주 인기 좀 얻더니 점점 막 나가고 있어!”아버지의 분노에 소은해는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아빠, 기사 제대로 보신 거 맞죠? 지금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건 저거든요?”“이 자식이 뭘 잘했다고. 그러니까 진작 친동생이라고 말했으면 될 걸. 뭘 꽁꽁 숨기고 있었어!”거친 숨을 몰아쉬던 소찬식이 다시 입을 열었다.“분명 누군가 일부러 루머를 퍼트린 거야.”“이렇게 된 이상 루머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은 오빠랑 제가 남매라고 밝히는 수밖에 없어요.”소은정이 한숨을 쉬었다.“하이고, 잘 됐네. 이제 다들 네가 집안 배경 덕분에 톱스타가 된 걸 알게 되겠네?”“아빠, 전 제 실력으로 당당하게 된 거거
태한그룹요즘 따라 연예 기사를 살펴보는 데 맛을 들인 박수혁은 오늘도 태블릿을 살펴보고 있었다.역시 소식을 접한 이한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 어쨌든 라이벌이 하나 줄어든 셈이니 기뻐하시겠지?하지만 박수혁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저기, 대표님?”이한석의 생각과 달리 지금 박수혁은 그야말로 후회막심이었다.다시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연예인으로 일하면서 스캔들 한 번 없던 사람이 굳이 소은정에게만큼은 다정하게 구는 게 이상하긴 했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표정도 마음에 걸렸었고.그런데 남매 사이였다니.이혼을 하지 않았다면 형님이라고 불렀을 사람. 그런 사람에게 어제 참견하지 말라는둥 하는 말을 건넸으니...가뜩이나 밉보인 상태에서 또 점수가 깎였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했다.물론 박수혁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이한석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안 나가? 왜 서 있어?”“아, 함진그룹 함웅진 대표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들어오라고 해.”“네.”이한석의 안내로 사무실로 들어온 함웅진은 아들 뻘인 박수혁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었다.“박 대표, 저번 서해안 프로젝트에 대해서 생각해 봤나?”이번 프로젝트만 따낸다면 적어도 1년 동안 매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빅 프로젝트, 풍전등화인 함진에게는 꼭 잡아야 할 기회이기도 했다.하지만 박수혁은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알아봤는데 서해안 프로젝트는 SC그룹이 이미 진행 중이던데요? 함진이 무슨 수로 다 넘어간 프로젝트를 빼앗는다는 거죠?”박수혁의 질문에 함웅진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박 대표, 자네가 오케이만 하면 프로젝트는 결국 우리 게 될 거야. 박 대표는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앉아서 돈이나 세면 돼.”“대표님. 그러니까 무슨 수로 빼앗으실 거냐고요.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투자부터 할 만큼 무모하지도 멍청하지도 않습니다.”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끝까지 물어질 듯한 눈치에 잠시 망설이던 함웅진이 결국 모든
함웅진이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뭐? 무슨 일이야?”“저는 그냥… 인터넷에 소은정과 소은해에 관한 소문을 퍼트렸는데 소은정이 저를 신고해 버렸어요! 아빠, 빨리 무슨 방법을 쓰든지 이 사건을 덮어야 해요. 저는 연예인이라고요… 제발…”소은정이 이렇게 대처할 줄은 꿈에도 몰라 놀란 함세연은 아빠에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였다. 심지어 소은해가 소은정의 친오빠일 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함웅진은 박수혁에게 바로 달려갔으나 이한석에게 의해 저지당했다.“함대표님, 박태표님이 지금 화상 미팅 중이시니 이만 돌아가 주시길 바랍니다.”이한석의 공손하고도 단호한 태도에 함웅진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함웅진은 이내 석동우에게 연락해 SC그룹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함웅진과 석동우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인제 와서 감출 필요가 없었다.함웅진은 이 프로젝트를 자신이 포기하기만 하면 함세연의 실수는 눈감아 주겠다고 생각하고 찾아온 SC그룹이었는데 이게 웬걸! 소은정은 그들을 만나주지도 않았다. 조급해진 함웅진은 문 앞에서 초조하게 배회하였다. 석동우도 옆에서 아쉽다는 듯 한마디 하였다. “함대표님, 이렇게 물러서는 건가요? 무려 30%의 이윤이예요…”“조용히 해!”어두컴컴해지자 퇴근한 소은정과 우연준이 로비에 나타났다. 돌아가려 했던 함웅진은 소은정을 보자마자 헐레벌떡 그녀에게 다가갔다. “소 아가씨…”소리를 들은 소은정은 일부러 고개를 돌려 그를 못 본 체하였고 석동우에게 인사를 건넸다. “석대표님 아닌가요, 이분은 아마 항진그룹의 함대표님이시겠죠?”소은정이 자신을 한눈에 알아본 것에 대해 적잖이 놀란 함웅진은 문뜩 이 협상이 자신한테 그렇게 큰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함웅진이 입을 열었다.“소대표님, 함세연은 저의 딸입니다. 부디 은혜를 베풀어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못난 딸이지만 연예인의 신분이라 경찰에 잡히면 안 돼요.”“함대표님이 자식을 곱게 키운 덕에 경찰에 잡힐 수밖에 없겠네요. 공인인 만큼 더욱
얼마 지나지 않아 함세연이 한 짓이 인터넷에서 퍼져나갔다. 큰 사건 사고가 없었던 함세연인지라 모두 놀랐다. 네티즌들을 더 분노케 했었던 것은 함세연이 네티즌들을 멍청이라고 생각하고 농락했다는 것이다. 함세연은 연예계 활동 중단은 물론이거니와 적지 않은 손해 배상금을 배상할 것이다. 어쩔 수 없었던 함세연은 나와서 사과 영상을 업로드하면서 은퇴선언을 하고 가업을 이어간다고 하였다. 순간 함세연의 집안이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온갖 소문이 퍼져나갔다. 함세연이 이렇게 빨리 사과한 것에 대해 소은정도 놀랐다. 눈 깜빡할 새에 성강희의 생일이 돌아왔다. 김하늘과 한유라는 매해 심사숙고하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선물을 해주었고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소은정은 자신이 무엇을 선물하던지 성강희가 좋아할 것으로 생각하여 딱히 고민하지 않았다. 한유라는 성강희의 선물을 고른답시고 소은정을 끌고 가 온통 자신의 물건만 샀고 어느새 쇼핑백이 양손에 가득하였다. 한유라가 사람을 불러 차에 싣게 하였다. 소은정은 파텍필립의 시계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화려한 것이 성강희와 어울렸다. 시계를 구경하려는 때에 우연히 박예리와 강서진을 만났다. 네 명이 함께 있는 화면이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강서진이 입을 뗐다. “소은정, 너희들도 쇼핑 중 인거야?”“보면 몰라?”한유라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강서진이 소은정을 찾아와 사과를 할 때부터 강서진의 기세가 수그러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소은정이 강서진의 약점을 쥐고 있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하민호 꼴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 박예리는 쓴웃음을 짓더니 팔짱을 낀 채로 소은정을 째려보았다. “여기는 웬일이야?”“여기가 네 것이라도 되는 거야?”한유라가 날카롭게 받아쳤다. 소은정은 그들을 무시한 채 파텍필립의 제일 고가의 한정판 제품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거 주세요.”“잠깐, 이거 우리가 먼저 본 제품이야.”박예리는 소은정한테서 시계를 빼앗으면서 말했다.
“진짜야. 예리랑 같이 있었는데 네가 좋아하는 파텍필립 한정판 남자 시계를 사더라니깐. 선물 받을 준비나 하고 있어.”강서진은 신이 나 자신이 본 일들을 박수혁에게 전했다. 박수혁의 마음속에 놀람과 우울함이 교차하여 지나갔다. 마음속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 끊어.”올해는 생일 파티를 준비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소은정을 위해 성대하게 주최하여 소은정을 초대할 거로 생각했다. 원래는 몇 명의 친한 친구들과 함께 소소하게 축하 파티를 해왔었다.이혼전 소은정은 매해 박수혁의 생일이 돌아오면 선물을 준비하고 들뜬 마음으로 생일상을 준비했으나 단둘이 생일을 보내기 싫었던 박수혁이 매해 핑계를 대면서 거절하였었다. 문뜩 이 생각이 난 박수혁이 이한석에게 전화하였다.“내가 전에 받은 생일 선물 어디에 두었지?”예상치 못한 질문에 이한석이 멈칫하였으나 금방 생각해냈다. “대표님, 선물과 같이 귀중한 물건들은 모두 금고거나 서랍에 넣어두었습니다.”소은정이 삼 년 동안 무슨 선물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소은정이 선물 한 것은?”이한석은 몇초간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느 해에 받은 선물 말씀이십니까?”“전부.”이한석은 전화기 너머에서 헛기침하더니 말을 이어갔다.“대표님, 소은정씨가 첫해에 선물하신 반지는 대표님이 잃어버리셨습니다.”이한석의 말에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박수혁의 안색이 어둡게 가라앉고 어두워졌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듯이 마음이 아파졌다. 그들이 결혼을 한 뒤 반지 하나 없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이런 형식적인 물건에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았었지만, 그녀가 준비한 것이라니...박수혁은 반지를 끼고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불편하여 옷 주머니에 넣었던 기억이 났다. 그 이후로 다시는 그 반지를 보지 못했다. 이한석이 말을 이어갔다. “소은정씨가 2년 차에는 직접 뜬 목도리를 선물해주었습니다. 제가 알기론 대표님이 목도리를 서민영에게 주었고 서민영이 버려 버린 것으로 알고
말을 마친 소은정이 전화를 끊었다. 박수혁에게 해명의 기회를 주지도 않았다. 소은정은 속으로 박수혁의 생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지? 라고 생각했다. 박수혁의 마음이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자신의 생일 선물까지 골랐다는 강서진의 말에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음날, 소은정이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간밤에 내린 빗소리를 취침 ASMR삼아 듣고 자서인지 개운한 아침을 맞이하였다. 테라스 문을 여니 쌀쌀한 공기가 불어 들어왔다. 일어나자마자 성강희의 전화가 걸려 왔다. “성강희! 생일 축하해 백 살까지 살아.”소은정의 말에 성강희가 웃었다. “이건 할아버지 칠순 잔치 인사말 아니야?”소은정이 입을 삐죽거렸다.“뭐? 오늘 생일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줄 알아.”그녀는 스피커 모드로 전환한 뒤 메이크업하였다. 그리고는 한정판 롱 원피스를 꺼내입고 진주 귀걸이로 포인트를 주었다. 그 모습은 화려하면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하이힐까지 신은 소은정은 여왕의 포스를 풍기였다. “저의 여왕 폐하, 저에게 준비한 선물이 무엇인지오? 궁금해서 잠을 설쳤어...”강서진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며칠 전부터 소은정의 선물을 기대했던 강서진이었다. “뭐가 필요한데?”“여자친구 필요해.”강서진은 망설임 없이 대답하였다. “정식으로 고백하는 거야!”소은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남자친구 필요 없어.”“내 입장에서 말하는거야. 너가 동의하든 말든 상관없어. 나의 사랑은 마치 생명 중에서 끓는...”뚜뚜...뚜...소은정은 주저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미친놈! 준비를 마친 소은정은 회사로 향했다. 우연준이 아침 회의 자료를 그녀의 테이블에 놓고서는 머뭇거렸다. “소대표님...”“왜 그러세요?”“태한그룹에서 박수혁의 생일 파티 초대장이 왔는데요.”우연준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박수혁이 어디서 나온 자신감으로 소은정이 자신의 생일 파티에 참석할 거로 생각하는 것이지? 현재의 둘 사이의 관계는 물과 기름의 관계보다도 더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