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은정이 정말 친정의 힘으로 입지를 다지고 싶었다면 그녀를 볼 때마다 비난을 퍼붓는 가족들에게 얼마든지 진짜 신분을 밝혔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한 건 결혼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박수혁 그의 사랑이었다. 물론 그 기회를 차버렸지만.“그 아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걸 지켜볼 셈이냐? 그건 우리 태한그룹에게 큰 손해나 마찬가지야!”소은정이 다른 누구와 재혼을 한다면 전 남편이었던 박수혁과 태한그룹, 박씨 일가까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게 분명했다. 비록 발칙한 소은정이 며느릿감으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니었지만 그 뒤에 있는 강력한 SC그룹의 서포트를 얻을 수 있다면 지난 과거는 잊고 편견 없이 다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박대한은 생각했다.한편, 박대한의 말에 박수혁의 마음은 다른 의미로 복잡해졌다.다른 사람과 결혼을 한다고? 은정이가?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였다.비록 이혼 뒤 염문이 끊이지 않는 소은정이었지만 그들 중 누구와 결혼을 할 거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하지만 만약 정말 소은정이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면...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거부감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그건 안 돼!“소은정이 싫다고 하면 비슷한 집안의 여자와 결혼해. 그래야 SC그룹과 싸울 수 있어.”결혼은 결국 그룹과 가문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박대한의 말이 역겹게 느껴졌다.“아니요. 필요 없습니다. 더 이상 SC그룹 건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나서지 마세요.”괜히 재결합이라는 말을 꺼내 소은정과의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것도 싫었지만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는 건 더 최악이었다.할 말을 마친 박수혁은 미련 없이 서재를 나섰다.한편 계단에서 할아버지의 호통을 기다리던 박예리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들어가고 찻잔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 걸 제외하고 큰소리 한 번 나지 않았다. 하지만 엿들을 용기도 없어 서성이던 그때, 박수혁이 내려왔다.“오빠, 내가 말했지. 소은정이랑 엮이지 말라고. 걔한테 잘해 주지 마. 걔는 그럼 자
이른 아침 햇살이 커튼을 뚫고 흘러들고 소은정은 부스스 눈을 떴다.소은정은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바로 회사로 향했다. 거성그룹 프로젝트는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어 매일 직접 연구실로 가볼 필요가 없어졌다.이제 소은정은 새로운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에 눈길을 돌렸다.회사에 도착해 최신 기사를 검색해 보니 어느새 사람들은 “소은정&소은해”파, “소은정&유준열”파로 나뉘어 저희들끼리 싸우고 있었다.그중 일부는 “소은정&박수혁”을 응원하기도 했지만 불륜남 옹호라며 바로 사람들의 질투를 받았다.하, 다른 건 몰라도 박수혁 욕하는 건 마음에 드네.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우연준이 물었다.“대표님, 기사 내려달라고 할까요?”“아니에요. 재밌는데 뭐. 어차피 이 사람들 말대로 될 것도 아니고. 왜 그런 데 신경을 써요?”소은정은 언젠가 소은해와 그녀의 관계를 알게 된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했다.소은정의 반응에 우연준도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무실을 나섰다.한편 태한그룹, 이한석은 요즘 따라 점점 더 이상해지는 박수혁의 눈치를 다시 살폈다. 가끔씩 뉴스는 확인하셔도 스캔들이나 루머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던 분이 요즘 따라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계신다.가끔씩 그를 향해 악플을 다는 유저들에게는 직접 답글을 달기도 했다. 그럴수록 이미지만 나빠진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소은정&소은해”파, “소은정&유준열”파로 나뉘어 더 잘 어울리네 어쩌네 떠드는 사람들을 보니 박수혁은 화가 치밀어 미칠 지경이었다.소은해, 유준열, 걔들이 나보다 더 낫다고?왜 나보다 더 인기가 많은 건데!남자 보는 눈이 어떻게 된 거 아니야?박수혁은 짜증스레 태블릿을 책상 위로 던졌다.힐끗 기사를 확인한 이한석은 몰래 한숨을 쉬었다.또 소은정 씨에 관한 거네.“대표님, 이 글들 전부 내리시는 게 어떨까요?”보다 못한 이한석이 제안했다.“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저 두 자식보다 더 떨어진다는 게 말이 돼?”박수혁의
소은정이 맡은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는 거성 건처럼 순조롭지 않았다. 가격 협상까지 끝마친 상황에서 갑자기 상대편이 가격을 300%나 인상했기 때문이었다.소은정은 당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SC그룹의 대형 프로젝트, 이사, 주주들이 모두 주시하고 있는 사안이었다.협상을 위해 파견한 직원들도 별다른 성과 없이 돌아오더니 갑자기 건설 업체의 태도가 더 강경하게 변했다.의미없는 기싸움을 해봤자 양쪽 모두에게 좋을 게 없다. 게다가 소은호는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 즉 그녀 혼자서 온전히 이 일을 해결해야 함을 의미했다.협상을 나갔던 직원들이 올린 보고서를 읽어보던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왜 갑자기 태도가 바뀐 거지?그 표정을 눈치챈 우연준이 덧붙였다.“알아봤는데 누군가 석동우 대표와 은밀히 접촉한 것 같습니다. 새 프로젝트와 보너스까지 제안한 것 같더군요. 지금 두 프로젝트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누군지는 알아냈어요?”“그건 아직. 워낙 신중하게 움직이는 자라 종적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괘씸하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다른 지역의 건설 업체와 협력한다면 원가가 더 올라갑니다. 어떻게든 석동우 대표와 협상을 이뤄내야 합니다.”“한번 만나자고 해요.”이대로 주도권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네.”만나자는 제안에 석동우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흔쾌히 응했다.하지만 약속시간이 맞춰 장소에 도착한 소은정과 달리 석동우는 30분이나 늦게 어슬렁어슬렁 나타났다. 잔뜩 굳은 소은정의 얼굴을 보며 석동우가 사과를 건넸다.“오래 기다리셨죠? 아 제가 급한 볼 일이 있어서. 죄송합니다.”죄송하다는 말과 달리 표정이며 제스처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하? 기싸움을 하시겠다?소은정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그렇게 바쁘시면 미리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오늘만 날인가요? 가보세요. 약속은 다시 잡으시죠.”말을 마친 소은정이 핸드백을 들고 일어서려 하자 석동우는 당황하더니 그녀의 앞을 막아 나섰다.“
한참을 침묵하던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알겠어요. 한 가지만 더 수고해 줘요...”항진그룹은 한때 잘나가는 기업이었지만 재계 순위에서도 많이 밀리고 재정적인 면에서도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이었다.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아무리 예전보다는 못하다고 해도 웬만한 중소기업이 맞먹을 정도는 아니었다.석동우 뒤에 항진그룹이 있었다라... 그리고 박수혁까지...저녁, 파티에 함께 참석하다는 김하늘의 초대에 문자에 소은정은 바로 응했다.파티장에 도착하고 오늘 하루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착잡했던 그녀는 혼자 바에 앉아 술을 들이켰다. 하지만 어두운 조명 속 술을 마시며 고민에 잠긴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고 남자들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이때 그 모습을 몰래 찍은 강서진은 바로 박수혁에게 문자를 보내고 확인도 하기 전에 전화를 걸었다. “뭔데?”“그러게 오라니까 왜 튕겼어? 내가 여기서 누굴 봤는지 알아?”강서진은 짐짓 뜸을 들였지만 박수혁은 이에 반응하지 않았다.“뭐냐고.”아이 참, 재미없게.“톡으로 사진 보냈으니까 확인해 보든가.”박수혁은 바로 전화를 끊고 문자를 확인했다.화려한 조명과 하나로 어우러진 듯한 소은정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아름다웠다. 사진을 한참 동안 쳐다보던 박수혁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혼자 술을 들이켜던 소은정은 어느새 취기가 올라 뺨이 상기되었다.이때,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하지만 고개를 돌려보니 모르는 사람이라 딱히 대꾸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그러자 여자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소은정의 손목을 잡아끌었다.“야, 너 뭐야? 왜 나 무시해?”초면에 반말부터 날리는 여자를 훑어보던 소은정이 물었다.“뭐야? 나 알아요?”“나 은사랑이잖아. 재일 교포 3세, 신민그룹 딸이자 가수. 팬클럽 회원만 30만인데 어디서 모르는 척이야?”은사랑은 얼마 전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팬덤을 얻은 신인 걸그룹 멤버였다. 어려서부터 일본에서 자랐지만 유
소은정의 인내심이 점점 바닥날 무렵.“사랑아, 지금 뭐 하는 거야?”저 멀리서 낯선 여자 한 명이 다가왔다. 화려한 옷차림, 우아한 몸짓, 그리고 입가에 걸린 친절하지만 가식적인 미소. 가까이에서 보니 어딘가 눈에 익었다. 전에 영화에서 봤던가?은사랑은 여자를 발견하고 바로 팔짱을 꼈다.“누군지 알지? 함진그룹 장녀 함세연이야.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했던 대배우시기도 하지.”아, 한때 반짝 인기를 끌긴 했지만 곧 연기력 논란으로 묻힌 함세연...하지만 소은정의 구미를 당기는 건 배우 경력이 아니었다.함진그룹?순간,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소은정 씨, 안녕하세요?”함세연이 친절한 미소와 함께 악수를 청했다.하지만 소은정은 고개만 까닥할 뿐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기분도 별로고 함진그룹 딸이라는 말에 형식적인 예의를 차릴 생각마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배우시라고요?”소은정은 함세연을 훑어보더니 미소를 지었다.악수를 거절당한 함세연은 아무렇지 않은 척 애기를 이어나갔다.“은정 씨, 사랑이가 아직 어리고 외국에서 오래 지내서 국내 상황은 잘 몰라요. 부족한 게 많으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세요.”그러고는 고개를 돌리더니 은사랑을 꾸짖었다.“너도 그래. 함진그룹 딸이라고 굳이 밝히지 말라고 했지. 집안 배경에 커리어가 묻히는 거 싫다고.”함세연의 말에 은사랑은 존경 어린 눈빛으로 눈을 반짝였지만 소은정을 다시 노려보았다.“언니야 뭐. 집안 도움 없이 스스로 모든 걸 이뤄내셨으니까 당당하시겠죠. 집에 돈 깨나 있다고 남자나 꼬시고 다니는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르잖아요?”하, 돈 깨나 있다고? SC그룹을 그렇게 묘사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싶어 헛웃음이 터져 나왔고 함세연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맞아요. 난 재벌집 딸이에요.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들과 차원이 다른 건 맞죠.”부러우면 부럽다고 할 것이지. 꼭 상대방을 깎아내리며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려는 족속들이 있다.소은정의 말에 함세연의 표
그 모습에 강서진도 혀를 끌끌 찼다. 소은해 저 자식은 연예인이면서 이미지 관리도 안 하나? 소은정도 그래. 아무리 솔로라지만 남자관계가 너무 복잡하잖아.이때, 은사랑이 잔뜩 흥분한 얼굴로 한발 다가섰다.“은해 선배님, 모두 앞에서 해명하세요. 저 여자 때문에 억지로 스캔들을 참고 계신 거죠? 혹시 저 여자가 협박한 거예요? 혹시... 스, 스폰이라도 받으시는 거예요?”한참을 망설이던 은사랑이 결국 스폰이라는 단어를 꺼냈다.“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하면 저희가 어떻게든 구해 드릴게요. 저 여자랑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으시잖아요!”은사랑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선 소은해는 그녀를 훑어보더니 물었다.“너 뭐야? 미쳤어? 미치려거든 곱게 미쳐. 뚫린 입이라고 마음대로 지껄이지 말고.”소은정과 김하늘은 서로를 바라보며 동시에 어깨를 으쓱했다.스폰이라니. 여동생에게 스폰을 받냐고 물으니 화가 날 수밖에.항상 짝사랑하던 소은해의 불같은 반응에 은사랑이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 모든 걸 지켜보던 함세연이 한숨을 내쉬더니 다가갔다.“은해 씨, 진정하세요. 사랑이가 데뷔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하고 일본에서 자라서 뭘 잘 몰라요. 그냥 걱정돼서...”“넌 또 뭐야?”하지만 소은해는 바로 함세연을 흘겨보았다.비록 집안의 입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나름 여우주연상까지 받은 배우이다. 동료에게 인지도를 짓밟히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하지만 소은해와 비교해 연기력, 화제성도 부족하고 제대로 된 작품 하나 없는 건 사실이었기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은사랑의 입을 빌려 소은정의 기를 눌러주려던 건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그게...”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살피던 함세연은 사람들 사이에 우뚝 서 있는 박수혁을 발견했다. 구세주라도 본 듯 눈을 반짝이던 함세연이 바로 그를 향해 다가갔다.“수혁 씨, 왔어요?”옆에 있던 강서진이 박수혁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형 함세연이랑 아는 사이였어?”박수혁의 등장에 모두의 시선은 또다시 박수혁에게
소은해의 말에 충격을 받고 한참을 멍하니 있던 은사랑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왠지 모를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에 은사랑은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뭐야? 두 사람 곧 약혼할 거라고 세연 언니가 직접 말해줬는데. 그리고 박대한 회장과 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까지 보여줬잖아!은사랑이 나지막하게 함세연의 이름을 불렀다.“세연 언니...”한편 함세연은 그녀의 망신살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표정의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집요하게 달려드는 기자들보다 침묵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무서웠다.살짝 고개를 떨군 그녀는 겨우 핑계를 생각해 냈다.“어른들 사이에 오해가 있으셨나 봐요. 진지하게 받아들이실 필요 없어요.”“뭐야? 거짓말이었어? 이런저런 사칭은 다 들어봤지만 약혼녀 사칭은 처음이네.”소은해가 비아냥거렸다.사칭... 함세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행여나 이 사실이 기자들 귀에 들어간다면...다시 변명하려던 그때, 소은정이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했다. 이에 소은해는 바로 핸드백을 들더니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가자. 약혼을 하든 파혼을 하든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소은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김하늘을 바라보았다.“너도 갈래?”“당연하지.”김하늘도 핸드백을 챙기고 함께 파티장을 나섰다.세 사람이 자리를 뜨고 함세연은 어떻게든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박수혁에게 다가가 머뭇거렸다.“수혁 씨 그게... 집안 어른들이 결혼에 대해 말씀을 나누시니까... 전 당연히 수혁 씨도 아는 일인 줄 알고...”“그럴 일 없으니까 기대하지 마요.”하지만 박수혁은 단호한 거절로 일말의 희망마저 전부 짓밟아버렸다.명분뿐인 결혼이 서로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뼈저리게 느낀 박수혁은 다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모든 기대가 물거품으로 사라진 함세연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박수혁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소은정의 뒤를 쫓았다.소은정... 다 너 때문이야.“세연 언니, 왜 그렇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차 안, 한참을 가만히 있던 김하늘이 입을 열었다.“은정아, 아무리 생각해도 박수혁 좀 이상한 것 같아. 설마 너 좋아하는 거 아니야?”김하늘의 질문에 소은정은 박수혁이 임춘식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그럴 리가? 함진그룹과 결혼 얘기가 오갔다는 그 말,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은 아닐 거야.”함세연이 아무리 뻔뻔하다지만 빌미 없이 박세혁의 약혼녀를 사칭할만큼 멍청하진 않을 테니까.“하긴. 그런데 태한그룹이 왜 굳이 함진그룹이랑 정략결혼을 하려는 걸까?”김하늘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알 게 뭐야.”조용히 운전을 하던 소은해가 피식 웃어다.김하늘을 집까지 데려다준 뒤 소은해와 소은정은 본가로 향했다.다음 날 이른 아침, 1층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목소리에 소은정이 부스스 눈을 떴다.“너, 너 도대체 뭐야? 네 동생 혼사길 막으려고 작정했어? 저, 저 로봇보다도 못한 놈!”소찬식이 소은해를 혼 내는 소리였다.눈을 비비적거리며 내려온 소은정이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러세요?”소찬식이 대답하기 전에 집사 아저씨가 태블릿을 건넸다.“소은정이 소은해의 스폰서?”“톱스타 소은해, 재벌 2세에게 스폰을 받다?”자극적인 기사 타이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너 같은 걸 요즘 애들 말로 관종이라고 한다더라. 아주 인기 좀 얻더니 점점 막 나가고 있어!”아버지의 분노에 소은해는 잔뜩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아빠, 기사 제대로 보신 거 맞죠? 지금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건 저거든요?”“이 자식이 뭘 잘했다고. 그러니까 진작 친동생이라고 말했으면 될 걸. 뭘 꽁꽁 숨기고 있었어!”거친 숨을 몰아쉬던 소찬식이 다시 입을 열었다.“분명 누군가 일부러 루머를 퍼트린 거야.”“이렇게 된 이상 루머를 밝힐 수 있는 방법은 오빠랑 제가 남매라고 밝히는 수밖에 없어요.”소은정이 한숨을 쉬었다.“하이고, 잘 됐네. 이제 다들 네가 집안 배경 덕분에 톱스타가 된 걸 알게 되겠네?”“아빠, 전 제 실력으로 당당하게 된 거거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문준서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죄책감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새봄이가 점차 울음이 잦아들자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새봄이는 길게 심호흡하고 감정을 식혔다.준서에게는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다.문준서는 울어서 빨갛게 부은 새봄이의 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커피 계속 마실 거야? 안 마실 거면 우리 집에 올래? 내가 맛있는 커피 만들어 줄게!”새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준서는 소녀의 손을 잡고 핸드백을 챙긴 뒤, 밖으로 나갔다.커피숍 직원들마저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새봄이는 그와 손을 잡고 걷고 있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어릴 때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는데 지금은 어딘가 어색했다.어린 문준서는 항상 새봄이를 우선으로 생각했는데 지금도 그럴까?문준서는 소녀가 기억하는 어린 준서가 아니었다. 그의 거대한 뒷모습은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었다.문준서가 웃으며 소녀에게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지게 봐?”“키 몇이야?”“192, 만족해?”새봄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내가 키 큰 사람 별로라고 하면 뼈라도 깎을 거야?”문준서는 웃으며 소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응. 네가 집도해.”새봄이도 덩달아 웃었다.10여 년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보고 싶었지만 점차 감정은 옅어져 갔다. 매번 부모님에게 준서의 안부를 물을 때면 그들은 머리만 흔들었다.그 뒤로 새봄이는 더 이상 준서를 찾지 않았다.말없이 사라진 그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가 해외에서 무사히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던 것 같았다.문준서는 길가에 세워진 스포츠카로 다가갔다.차도 주인을 닮아 검은색으로 차분하고 화려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처음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새봄이는 그가 문준서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티없이 맑고 순수했던 눈동자는 어릴 때와 비교해 변한 게 전혀 없었다.하지만 소녀
새봄이가 떠난 뒤로 전동하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소은정은 어이가 없었다.학교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따분하지 않았다.어릴 때부터 곱게 자란 새봄이지만 거만하지 않고 성격이 활발했기에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아이는 가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파티를 벌였다.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도 충분히 즐겼다.가끔 센 강변에 가서 산책도 하고 석양을 감상하며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했다.그런데 가끔 혼자 있을 때면 누군가가 지켜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주변에 수시로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새봄이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홀로 석양 아래에서 산책을 즐겼다. 손에는 엄마를 위해 준비한 선물인 한정판 명품백이 들려 있었다.이목구비가 화려한 동양소녀가 길을 걷고 있자 무수히 많은 시선들이 따라다녔다.하지만 프랑스의 치안은 별로 좋지 못했다.새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남자가 소녀의 핸드백을 가로채서 사람들 틈으로 도주했다.놀란 새봄이는 다급히 남자의 뒤를 따라가며 소리쳤다.“도둑이야!”안타깝게도 유럽에서 비슷한 사건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아무도 핸드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했다.새봄이는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기에 끝까지 남자를 쫓아갔다.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뒤를 돌아보며 뭐라고 욕설을 지껄이더니 골목으로 진입했다.새봄이가 쫓아갔을 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소녀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을 때, 갑자기 옆 골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남자는 바로 새봄이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손이 소녀에게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달려와서 남자를 걷어찼다.새봄이는 겁에 질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훤칠하고 잘생긴 동양인 남자가 등 뒤에 서 있었다.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새봄이의 앞으로 다가갔다.그에게서 익숙한 우드향이 풍겼다.그는 천천히 소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손가락이 가늘고 예쁜 손이었다.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강
전동하는 그날 밤 새봄이에게 해외유학 얘기를 꺼냈다.새봄이는 고민도 해보지 않고 바로 동의했다.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프랑스만 제외하고 아무데나 괜찮다고 했다.전동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준서 때문에 프랑스에 가기 싫은 거야?”새봄이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걔가 누군데? 하나도 기억 안 나! 걔 얘기하지 마!”아이는 억울함을 토로했다.줄곧 아이의 옆을 지켜주던 오빠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마치 꿈을 꾼 것 같았다.더 이상 아이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던 오빠는 없었다.아이는 준서가 보고 싶었지만 준서는 떠날 때 편지 한장 남기지 않았다.전동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새봄이도 이제 컸잖아. 준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연락이 없던 것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였어. 나중에 준서 만나도 너무 준서를 욕하지 마.”새봄이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부모의 사랑만 받고 자란 아이는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가끔 딸이 울기라도 하면 전동하는 항상 달려와서 딸을 위로해 주었다.태어날 때부터 다이아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는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그런데 어느 날 오빠가 보고 싶었던 아이가 준서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아이는 버려진 느낌을 받았다.출국이 결정되었으니 전동하는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보았다.결국 새봄이는 유럽을 선택했다.마치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처럼.떠나기 전, 아이는 일곱 남자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었다.아이가 출국하는 날, 온가족이 나와서 새봄이를 배웅햇다.새봄이는 딱히 슬프거나 아쉬운 티를 내지 않았다. 마치 부모님 손을 잡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아이는 활짝 웃으면서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전동하와 소은정은 영지까지 데리고 같이 프랑스로 출국하기로 했다.일가족이 탑승수속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새봄아!”고개를 돌리자 하얗게 질린 얼굴로 허겁지겁 이쪽
눈 깜짝할 사이에 새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라났다.고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그녀에게는 남자친구가 생겼다.새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이 소식을 소은정에게 알렸다.소은정은 딱히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렸을 때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해보는 게 아이에게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새봄이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전동하는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그는 아이와 대화를 나눠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새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친구들이 다들 남자친구를 사귀는데 나만 솔로면 유행에 뒤떨어지잖아. 그래서 만나보기로 했어.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도 아니잖아! 중학교 때부터 연애하는 애들도 많다고!”전동하는 인내심 있게 아이를 타일렀다.“그래도 넌 아직 너무 어려.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더 많이 접촉해 보면 알게 될 거야. 남자는 다 믿을 놈이 못 돼….”“그럼 엄마가 아빠를 만난 것도 사랑에 눈이 멀어서 만난 거겠네?”어릴 때부터 말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던 새봄이는 미소가 소은정을 닮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로 성장했다.그리고 총기 있는 눈동자와 말빨, 그리고 큰 키는 전동하를 많이 닮았다.소은정은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딸이 나중에 남자 여럿을 울릴 거라는 것을 알기에 아이에게는 사랑을 하면 꼭 아빠랑 엄마처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했다.새봄이는 전동하가 말이 없자 달려가서 그의 팔짱을 꼈다.“아빠, 걱정하지 마. 그냥 연애는 어떤 느낌인가 궁금해서 해보는 거야.”“그래서 그 남자친구는… 어떤 사람이야?”“어느 남자친구를 말하는 거야?”전동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몇이나 사귀었는데?”“다른 애들은 다 한명하고만 사귀는데 난 다른 애들 따라하기 싫어. 그래서 하루에 한 명, 일주일에 일곱 명이야! 주일을 정해서 따로 만나!”새봄이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전동하는 입을 뻐금거리며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그래도 다행인 건 사랑에 깊이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랄까.
다른 CCTV에서 정황이 포착되었다. 직원이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발을 헛디디며 하마터면 술잔을 쏟을 뻔한 정황이었는데 그때 잔을 안쪽으로 옮기며 위치가 바뀐 것 같았다.독극물 검사결과도 나왔다.청산가리였다.심청하의 몸에서 나온 독극물과 약병에 있던 독극물 성분이 일치했다.살인을 계획했던 심청하가 제 꾀에 당한 상황이었다.아마 그녀는 죽을 때까지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지 몰랐을 것이다.형사들은 밤을 새워 CCTV를 확인하면서 이 약병의 출처가 남유주의 큰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그렇게 큰어머니가 경찰에 소환되었다.큰어머니는 숨김없이 사건의 경과를 진술했는데 심청하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하지만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넘어지는 틈을 타 약병을 바닥에 버렸다고 했다.심청하가 포기를 못하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다가 제 꾀에 당했다는 말도 했다.형사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그랬다는 증거 있나요?”“당연히 있죠.”큰어머니는 딸인 남연을 호출했다.“형사님이 묻는 대로 사실을 대답해! 떨지 말고!”남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냈다.그리고 차 안에서 심청하와 대화했던 녹음을 재생했다.“그 여자가 아빠랑 엄마를 죽이겠다며 협박했어요. 그 파티 초대장은 제가 거금을 주고 산 거예요. 우린 태한그룹 사모님과 친척관계에요. 평소에 왕래는 하지 않지만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고요!”남연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형사님, 제가 아는 건 다 얘기했어요.”형사는 그녀의 진술에서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전에 남유주 씨를 해하려 한 적이 있죠?”“그래! 너도 직접 남유주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왜 쏙 빼고 말해?”녹음본에 담겼던 심청하의 목소리였다.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파일은 편집을 거치지 않았다.남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사실을 털어놓았다.“그것도 심청하가 협박해서 했어요. 하지만 언니 앞에서 이미 잘못을 인정했고 사과도 했어요. 언니는 저를 용서했고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건 박수혁 대표와
심청하는 한참 침묵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무슨 방법을 쓰든 그 사람들과 걔를 만나게 해. 안 그러면 이 약은 네 부모님 배 속으로 들어갈 거야!”남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떨어뜨렸다.“알겠어요.”결국 그녀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명령을 받아들였다.며칠 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오늘은 자선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박수혁은 남유주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그녀와 함께 자선회에 참석했다.그리고 자선회에서 많은 보석과 골동품을 구매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자선회가 끝나고 파티가 이어졌다.남연의 부모는 힘겹게 초대장을 입수했다.심청하는 파티홀에서 이어질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연의 부모는 뒤늦게 파티에 참석했고 그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파티가 다 끝난 뒤였다.심청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언제가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SC그룹에서는 지분 사건으로 그들을 물고늘어질 것이다.본사에서 움직이기 전에 남유주를 제거해야 했다.잠시 후, 남유주의 큰어머니는 사람이 없는 곳에 숨어들었다.그리고 약을 꺼내 술병에 쏟아넣으려고 했다.마침 취객이 그녀의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며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남유주 큰어머니가 고통에 신음을 흘리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약병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구석진 곳으로 굴러갔다.심청하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정말 뭐 하나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일가족이었다.남유주의 큰아버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급히 다가가서 아내의 손을 잡고 구급차를 호출했다.호텔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달려왔고 큰어머니를 들것에 실어 병원으로 호송했다.심청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사람들이 모두 흩어지고 그녀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틈을 타 약병을 손에 쥐었다.그리고 기회를 봐서 약을 와인에 쏟고 흔들었다.모든 게 끝난 뒤, 심청하는 손에 난 땀을 닦았다.이미 살인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녀였지만 직접 모든 일을 끝내고 나니
남유주는 미소를 지으며 소은정과 박수혁 사이를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남유주는 지나간 둘의 과거를 신경 쓰지 않았다.박수혁은 소은정에게 다른 마음이 없었고 그들은 각자 다른 사람과 행복한 삶을 살기로 했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남유주가 건넨 상자를 열었다.안에는 팔찌가 있었다, 반짝이며 아름다운 화려한 목걸이의 모든 보석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었고 본연의 미와 섬세함의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느낌이 들게 했다.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몇 년 동안 이런 것을 모으기를 좋아했는데... 고마워요, 진짜 마음에 들어요." 남유주는 화해의 의미로 소은정에게 팔찌를 건넸다.소은정은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착용했다."과거는 과거일 뿐이니 우린 서로 용서하는 게 어때요?"소은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안타깝게도 난 어떤 선물도 준비하지 못했네요…"그녀는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고 남유주에게 건넸다.남유주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서류 내용을 살펴보았다."이게 뭐예요?""원래는 소찬학의 주식이었지만 몇 년 전에 회사 소유로 되었어요. 아빠가 나이도 있고 해서 주식 대신 배당금을 주기로 했었어요, 근데 더는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니까, 아빠가 유주 씨한테 넘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주는 작은 선물이니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얼굴이 굳었던 남유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계약서를 다시 내밀었다."전 받지 않을래요.""유주 씨,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몰라요? 술집을 사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요? 이 돈으로 그 건물 같은 거 열 개는 살 수 있어요."소은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남유주는 웃음을 참고 머리를 흔들었다."이걸 받으면 소찬학이 내 생부라는 것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끊을 수 없는 혈연관계를 받아들여야 하고, 내가 관여하지 않은 과거의 강탈과 억압을 직면해야 해요. 태어난 이래로 부모가 없는 존재로 살아왔고, 아직 그것을 원하지 않아요. 나의 아버지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소씨 가문과 혈연적인 관계가
거침없이 내뱉는 심청하의 태도에 소찬식이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소씨 가문의 주식은 애초에 저희 집안 거에요. 그리고 둘째 삼촌이 직접 주식을 그룹 소유로 돌리겠다고 서명까지 했어요. 자기는 주식 배당만 챙기겠다고, 회사를 떠난 지금 삼촌한테 배당금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죠. 이모가 한 계산은 너무 터무니없어요. 이 주식들은 재산 분할과 관련이 없어요. 설령 분할을 한다 해도, 먼저 그룹의 이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원칙이고요."심청하는 얼굴이 이상하게 변했다."저는 어떻게 해요? 그이가 감옥에 가고, 우리는 손가락 빨면서 굶어 죽으라는 거예요? 주식을 전부 넘겨주세요, 그럼 더는 따지지 않을게요!" 그녀는 무례한 태도로 단호하게 앉아 있었다.소찬식의 표정이 음울하게 어두워졌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한번 쳐다보았다."그만 돌아가세요, 돌아가서 경찰 소식 기다리세요. 찬식이 회사 자금을 자기 돈처럼 써버렸고 수억 달러를 횡령했어요. 그럼에도 그룹이 이 돈에 대해 따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돈을, 주식을 요구할 수 있어요?" "나는 찬식 씨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사정은 모르겠고, 누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없어요."그는 말을 마친 뒤 옆에 서 있는 집사에게 눈짓했다."손님을 내보내.""네."집사의 대답에, 심청하는 일어서서 조급하게 말했다. "아주버님,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형제들끼리 어떻게 이렇게 매정하게 굴어요? 이 일을 언론에 알리면 어떻게 될지 저도 기대되네요, 아마 언론도 이 일에 엄청난 관심을 둘 것 같거든요!"소찬식의 표정은 신경질적으로 굳어졌다, 눈빛이 차갑고 어둡게 변했다.공기 안에는 침묵이 깔렸다.소은정은 갑작스럽게 직감했다. 심청하가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한 푼이라도 더 주면, 그녀는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더 달라고 요구할 것이다.그녀는 절대로 이번 한
심청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다 해봐야죠, 우선 믿을 만한 변호사를 찾아서 형량부터 줄여줘요."옆에서 듣고 있던 소은정이 참지 못하고 가볍게 웃으며 소리를 냈다.소은정이 입을 열었다."마침 잘 오셨어요, 우리도 지금 삼촌을 어떻게 구할지 토론하고 있었거든요!"심청하는 의아한 눈빛으로 소은정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을 논의했는데?"전동하는 멋도 모르고 웃었다. 그는 소은정의 대답을 기다렸다.소은정은 청량한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사실 우리가 변호사를 찾아서 물어봤어요. 판결이 심하게 나면, 사형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어쨌든 두 사람을 죽인 거니까.그래도 방법이 있어요, 둘째 삼촌은 그때 혼인 상태였잖아요?법정에 나서서 전부 둘째 삼촌이 한 게 아니라고 증언하면 돼요. 삼촌은 줄곧 숙모랑 함께 있었고, 그런 일을 꾸밀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고!"심청하는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일어섰다."너... 나보고 거짓 증언을 하라는 거야, 말이 되니? 그거야말로 불법이야!"소은정은 차가운 눈빛으로 비웃었다."불법이라는 것도 알고 계셨네요? 근데 왜 저희 아버지한테 당당하게 그런 짓을 요구하는 거예요?"심청하는 그제야 자신이 소은정에게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화가 난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은정아, 너 말 이상하게 하는 구나, 내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나온 말을 꼬투리 잡는 거니? 그리고 너희 삼촌 아직 유죄 판결도 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하면 돼."소은정은 눈썹을 찌푸렸다."그럼 혼자 잘 해보세요! 우린 응원이나 하고 있을게요!""너 지금 뭐하자는 거니?" 심청하는 화를 내며 소찬식을 바라보았다."진짜 이렇게 내버려두실 거예요?"소찬식의 눈빛이 어둡게 깔렸다."자기가 한 일에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저희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제수씨도 저희를 그만 찾아오세요."심청하는 소찬식의 태도가 이렇게 차갑고 딱딱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