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믿어라”, “괜찮을 거다” 이런 말은 어차피 그냥 하는 말이라는 생각에 소은정은 그저 싱긋 웃어보였다.뭐, 그녀에겐 전동하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 해도 든든했기에 가능한 미소였다.이때 전동하의 휴대폰이 울리고 미간을 찌푸리던 그가 말했다.“나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이에 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여보세요?”...또 10분 정도가 흐르고 저편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자리를 피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남자는 어느새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어, 은정 씨. 저 기억하세요?”이에 소은정이 영혼 없이 피식 웃었다.“아, 채태현 씨? 여긴 무슨 일로?”채태현, 박수혁과 조금 닮은 외모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리얼 예능에서 배우 양예영과의 불미스러운 스캔들로 반짝 떴다 반짝 사라진 흔한 연예인 중 하나였다.한편, 소은정은 가뜩이나 마음이 불편한데 박수혁과 닮은 얼굴이 눈앞에서 얼쩡거리니 기분이 더 나빠졌다.‘그냥 눈치껏 좀 가라...’하지만 채태현은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논란이 생긴 뒤로 조연 자리도 얻기 힘들어진 그는 가수로 전향해 보려 앨범까지 내보았지만 그 결과도 참담한 상태.정말 이대로 내처질까 두려워 보이는 동아줄은 다 잡고 싶은 마음뿐이었다.“해외 영화제에 참석하느라고요. 이번에 제가 찍은 영화가 해외에서 좀 반응이 좀 좋더라고요.”“아, 네.”소은정은 그에게 눈빛 조차 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 씨, 지금 저 밖에 사람들 쫙 깔린 거 알아요?”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 채태현이 머리를 긁적였다.“그게... 저희 매니저가 물 들어온 김에 노를 저어야 한다면서 가짜 팬들을 잔뜩 풀어놨거든요. 지금 여기서 바로 나가면 저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스캔들 날지도 몰라요.”“그래서요?”‘재수가 없으려니까 별 게 다 꼬이네. 동하 씨는 여디 간 거야...’괜히 기자들 눈에 띄였다가 또 희한한 타이틀로 기사를 써제낄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저랑
발없는 소문이 멀리 퍼진다고 소은정이 등장했다는 소식에 알바로 고용된 가짜 팬들은 물론이고 평범한 행인들까지 몰려들었다.대중들에게 널리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보다 신비로운 베일에 감춰진 재벌들의 삶이 사람들에겐 더 큰 먹잇감으로 다가왔다.어느새 개미떼처럼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앞으로 움직이는 것마저 힘들어지고 그 와중에 채태현은 “보디가드” 연기에 심취한 것인지 그녀를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미안해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요. 괜히 스캔들 나지 않게 제가 똑바로 해명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분명 그녀를 일부러 이쪽으로 유인한 거면서 그녀를 위로하는 척하는 채태현의 뻔뻔한 얼굴에 소은정은 화가 치밀었지만 애써 입꼬리를 올려보았다.‘동하 씨, 제발 나 좀 구해 줘요...’이때 인파를 뚫고 나타난 기자가 미친 듯이 소은정을 향해 외쳤다.“소은정 대표님, 최근 SC그룹이 아시아 최초로 스마트칩 프로젝트를 따내셨다면서요? 이 덕분에 회사 주가도 많이 상승했는데 뭐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기자의 말대로 SC그룹이 유럽 스마트칩 생산건을 독점으로 따낸 덕분에 기사도 많이 나고 주가도 예쁘게 상승 곡선을 이어가고 있었다.뭐, 최근 소찬식의 건강 상태 때문에 그 일로 기뻐할 겨를 조차 없었지만 말이다.하지만 적어도 회사에 관한 질문이니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국민 여러분들의 응원 덕분입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는 SC그룹이 되겠습니다.”기자의 질문에 소은정이 꽤 친절한 말투로 대답하자 사람들은 더 열광하기 시작했다.“소은정 대표님, 이번 프로젝트에 태한그룹도 투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사적인 관계 덕분에 투자금을 따내신 겁니까?”“회사 일에 사적인 감정은 석지 않습니다.”‘또... 또 박수혁...’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봐도 낙인처럼 따라오는 박수혁의 존재가 소은정은 혐오스러웠다.‘누구 한 명이 죽어야 끝이 나려나...’하지만 굳은 소은정의 표정에도 눈치없는 기자는 질문을 이어갔다.
수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박수혁의 귀에는 그들의 웅성거림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이 공간에 소은정, 박수혁 그저 두 사람만 있는 것만 같았다.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고 했던가?촉 좋은 기자들 역시 박수혁의 눈동자에 담긴 애틋한 사랑의 눈빛을 바로 캐치했다.“박수혁 대표잖아?”“뭐야... 나 지금 드라마 보는 줄 알았잖아.”“설마... 다시 재결합하는 건가?”...한편 박수혁의 등장으로 완전히 화제의 중심에서 밀려나게 된 채태현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를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젠장, 이번 기회에 화제성 좀 끌어보려고 했는데... 이게 뭐야.’하지만 아침드라마 뺨치는 막장 스토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저 멀리서 경호원들이 사람들 사이를 뚫기 시작했고 홍해처럼 갈라진 길 사이로 전동하가 모습을 드러냈다.전 남편과 얼마 전 스캔들이 난 남자.두 남자가 서로 마주하자 지나가던 행인들은 물론이고 질문 세례를 던지려던 기자들까지 미리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숨죽여 이 상황을 지켜보기 시작했다.전동하의 등장에 어딘가 그늘졌던 소은정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공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적에 잠긴 공간을 넘어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전동하의 모습은 마치 구세주와도 같았다.‘와줄 줄 알았어요, 동하 씨.’소은정의 앞에 선 전동하가 자연스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에 한번, 그런 스킨십에 전혀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 소은정의 모습에 두번, 구경꾼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다래졌다.‘뭐야? 박수혁 대표랑은 정말 끝난 걸까?’세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팝콘각을 세우고 있을 때 전동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안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왜 여기 나와있어요.”봄바람처럼 살랑이는 전동하의 목소리와 달리 그 모습을 지켜보는 박수혁은 어둠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이대로 밀리면 안 돼...’주먹을 꽉 쥔 채 다가간 박수혁이 물었다.“나 마중 나온 거 아니었어?”‘오늘은 나랑만 있어주기로 했잖아...’소은정의 눈을 빤히
협박과 명령을 가장한 박수혁의 부탁 덕분에 박상훈은 마지 못해 이번 수술 주치의를 맡기로 동의한 상태였기에 박수혁은 확신에 잠긴 표정이었다.‘적어도 오늘만큼은 은정이는 내 거야. 그러니까 눈치껏 빠져...’역시나 그의 말에 소은정의 얼굴에 난처함이 실렸다.지금 당장 전동하의 손을 잡고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병상에 누워있는 소찬식의 핼쓱한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려 도저히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고민으로 살짝 떨리는 소은정의 손을 더 꼭 잡은 전동하가 물었다.“위기에 빠진 사람 협박하는 거 비겁하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묘한 긴장감에 사람들은 다시 숨을 죽였다.전동하의 말에 박수혁이 코웃음을 쳤다.“협박? 협박도 가진 카드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지금 그 감정 얼마나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승자인 거 알죠?”거의 체념한 상태에서 주어진 마지막 기회, 있는 힘을 다해 잡아야 했다.‘비겁하다고 욕해도 좋아. 날 더 경멸하게 된다고 해도 상관없어. 그냥... 내 곁에만 있어줘.’하지만 전동하도 밀리지 않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소은정의 손을 잡은 채 전동하가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그럼 두고 보시죠. 누가 끝까지 웃을 수 있을지 저도 궁금하니까요.”한편, 두 사람의 기싸움을 지켜보는 소은정은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지금 이 자리에서 박수혁의 손을 뿌리치면 소찬식의 목숨이 위험해지겠지만 그렇다고 매정하게 전동하를 버릴 수도 없었다. 상처받은 그녀의 영혼을 아무런 대가없이 품었던 사람이 바로 전동하, 최소한 인간으로서 이런 배신감을 안겨줄 순 없었다.그리고 꼭 잡은 전동하의 손을 통해 왠지 모를 자신감이 느껴졌다.‘설마...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막연한 기대감을 안은 채 소은정은 결국 전동하와 함께 공항을 떴다.정처없이 주차장으로 향하는 소은정의 머릿속에 수많은 광경이 펼쳐졌다.손만 뻗으면 행복하고 아름다운 미래가 잡힐 것만 같은데 뒤편에서 웅크리고 있는 심연이 자꾸만 그녀의
차 앞을 막은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박수혁이었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하루만 함께하길 원했었는데.이게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었는데.전동하는 또다시 중간에 끼어들어 그의 소은정을 빼앗아가버렸다.그런 박수혁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전동하가 창문을 살짝 내렸다.짙게 된 선팅, 하지만 뒷좌석을 들여다 보기엔 너무나 작은 틈이 그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박 대표님. 더 이상 비겁하게 굴지 마세요. 제 여자한테 찝적대지 마시라고요.”경멸로 가득찬 전동하의 표정보다 박수혁을 더 거슬리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뭐? 네 여자? 누구 마음대로.”‘누구 마음대로 은정이가 네 여자야. 내 거였어. 내 여자였다고.’“박수혁 씨, 이제 그만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지금의 은정 씨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네, 맞아요. 한때는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했었죠. 그런 은정 씨의 사랑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도, 한없이 밀어내기만 한 것도 당신이었어요. 은정 씨는 당신한테 잘못한 게 없어요. 은정 씨가 평생 그 자리에서 당신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나요? 무슨 자신감이죠?”전동하의 말을 듣고 있던 박수혁이 이를 악물었다.‘뭐야. 그 표정... 네까짓 게 뭔데 날 그딴 눈으로 바라봐. 네가 뭔데 날 동정하냐고!’“너 때문이잖아. 네가 끼어들어서 이렇게 된 거잖아!”박수혁이 울부짖었다.이마를 뚫고나올 듯한 핏줄이 그의 분노를, 질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평생 이기기만 했던 박수혁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굴러온 돌에게 자리를 빼앗긴 것도, 그를 위해 모든 걸 바치던 소은정이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도...박수혁에게는 생경한 좌절감으로 다가왔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를 더 미치게 만드는 건, 분명 뒷좌석에서 모든 걸 듣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소은정이었다.“네, 맞습니다. 제가 끼어들었고 제가 빼앗았죠. 박수혁 당신한테 조금의 염치라는 게 남아있다면 다신... 은정 씨 앞에 나타나지 말아요.”이
공항 사건이 벌어진 뒤.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SNS는 다음과 같은 태그로 도배되었다.#소은정 박수혁 재결합#소은정 박수혁 재결합 무산#새 남친 전동하#비련의 남주인공 박수혁현실판 막장드라마에 사람들은 열광했다.“은정 언니, 전 남편이랑은 다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예쁜 사랑하세요!”“와, 저렇게까지 매달리는데 안 받아주냐?”“뭐야. 꼭 드라마 같아. 은정 언니 앞으로 꽃길만 걸으세요!”“전동하라는 사람, 인상만 봐도 좋은 사람 같아. 두 사람 너무 잘 어울려요!”“우리 은정 언니한테 잘해 주세요!”“은정 누나 괴롭히면 죽는다!”한편, 세 사람의 스토리에 묻힌 채태현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채태현... 알바까지 풀면서 생쇼를 하더니 묻혀버렸죠?”“연예인 화제성이 이렇게 밀릴 수가 있나?”한편, 구경꾼들에게 밀려 진작 저 뒤편으로 나떨어진 채태현은 몰래 택시를 잡아 공항을 떴다.선글라스와 마스크 뒤에 숨은 그의 얼굴은 불안함으로 가득했다.나름 거금을 들여 알바들까지 푼 건데 화제성 몰이는 이미 물 건너 간데다 괜히 소은정까지 끌어들여 또 미운 털이 박히게 되었다.‘이번에도 잘못되면 난 정말 연예계 퇴출이야... 제발... 제발 오늘 일은 잊어주세요, 은정님.’이렇게 애원하며 휴대폰을 확인한 채태현은 다시 절망감에 잠겼다.역시나, 그의 이름은 세 사람의 러브스토리에 저 멀리 밀려난 상태.게다가 팬 알바로 고용되었다는 네티즌의 자백글까지 올라오면서 자작극을 벌였다는 사실까지 전부 까밝혀지고 말았다.‘으악,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한편, 전동하의 차 안.공항과 멀어지자 무거운 추라도 달아놓은 듯하던 소은정의 마음은 점점 더 홀가분해졌다.조금은 어색한 분위기를 푼 건 역시나 전동하였다.“이 교수님은 15년 전, 25살에 레지던트로 수술실에 함께 들어갔을 정도로 천재 의사셨어요. 은정 씨는 기억 못 하려나?”하지만 지금 소은정의 귀에는 전동하의 설명마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솔... 솔직히 너무 오래전 일인
별거 아니라는 듯한 이석구의 말투에 소은정은 긴장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그리고 이석구의 자신감은 실질적인 실력에서 오는 것이었다.심장질환 최고 전문가인 기 교수의 직속 제자로서 이석구는 오랫 동안 함께 연구를 이어왔었고 15년 전, 소찬식의 수술에도 레지던트로서 참여했었기에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도 세상을 뜬 기 교수 다음으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소은정은 이석구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길가에서 봤다면 그저 그런 행인 1로 지나쳤을 남자가 그녀의 아버지를 구해 줄 은인이라니.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묘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병원에 도착한 이석구는 바로 소찬식의 차트부터 확인했다.한편, 의아한 표정을 짓는 한 원장을 발견한 전동하가 이석구를 소개했다.“아, 이 분은 기 교수님 직속 후배, 이석구 교수님이십니다.”전동하의 말에 한 원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석구 교수님?”큰 충격을 먹은 한 원장과 달리 이석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차트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하지만 한 원장은 다시 조심스럽게 질문을 이어갔다.“정... 정말 이석구 교수님이십니까?”나름 의학계에선 실력자라고 불리는 한 원장이 이토록 조심스럽게 말을 걸 정도라니.“네. 선배님이신데 말 편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지금은 일단 환자 상태부터 파악해야 할 것 같아서요. 대화는 잠시 뒤에 나누시죠.”이석구의 말에 여전히 충격을 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한 원장이 조심스레 병실을 나섰다.그리고 바로 소은정을 향해 엄지를 내밀었다.“은정아, 어떻게 이 교수님을 모셔왔어. 대단하네...”한 원장의 반응에 소은정이 오히려 당황하기 시작했다.“저 분이 그렇게나 대단한 사람이에요?”“그걸 말이라고? 서울 의대 최연소 수석 입학, 수석 졸업, 대한민국 최연소 교수까지 단 분이셔.”단순히 기 교수의 후배라는 말에 놀랐었던 소은정의 눈이 동그래지고 한 원장은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특히 심장외과에선 이 교수를 따라올 사람이 없어. 세계적
별거 아니라는 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지만 한 원장은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어쨌든 은정아. 이제 안심해도 되겠어. 소 회장... 운 하나는 참 좋은 사람이라니까. 자식 복에 이어서 사위 복까지...”한 원장의 말에 소은정도, 전동하도 쑥스러운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난 이 교수님이랑 대화 좀 나눠야겠다. 은정아, 어쨌든 이제 안심하고 일단 집에 가서 한숨 푹 자고 와. 알겠지?”말을 마친 한 원장이 후다닥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이 교수님한텐... 언제 연락한 거예요?”고개를 돌린 소은정이 물었다.“미안,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는데... 본의 아니게 속인 꼴이 됐네요. 솔직히 그날 한 원장님이 박상훈 교수를 언급할 때부터 뭔가 이상했어요.”“뭐가요?”“그게... 몇 년 전에 기 교수님이 이끄는 의로팀에 투자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이석구, 박상훈 교수 모두 의료팀 멤버였죠. 그런데... 기 교수님이 세상을 뜨시고 연구팀 팀장 자리를 두고 묘한 권력 다툼이 있었다는 걸 들은 생각이 나서 알아봤더니... 역시나. 박상훈 그 사람, 태한그룹 일가 친척이라는 백을 이용해 이석구 교수님을 밀어내고 팀장 자리를 차지한 거였어요.”전동하의 설명을 듣던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렸다.‘세상에... 그런 다툼은 그룹 내부에서나 일어나는 줄 알았더니... 학술계도 별 다르지 않구만.’“그럼 이 교수님은...”“이석구 교수는 그 뒤로 따로 연구팀을 구성했고 그쪽에도 제가 직접 투자를 했었어요. 솔직히 기 교수님도 대단하지만 이석구 교수는 천재들만 모인다는 의대에서도 화타의 환생이라 불릴 정도로 실력자였어요. 그 분의 실력을 믿으니까 언젠가 성과를 이뤄낼 거라 믿고 투자를 한 거기도 하고요.”“좀 더 일찍 말해 주지. 그럼 박수혁한테 부탁할 필요도 없었잖아요...”소은정의 목소리에 억울함이 묻어났다.“미안해요. 솔직히... 잊고 있던 프로젝트였어요. 의료 분야는 워낙 수익이 잘 안 나는 쪽이라... 윤 비서님이 확실한 정보를 주기 전엔 은정 씨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