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가면을 벗어던진 사람의 더러움을 모든 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그랬기에 소은정은 아직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이렇게 하죠, 납치된 여자랑 아이들을 돕는 기구를 하나 만들죠, 그 사람들을 도와서 집에 보내주고 안식처를 만들어주는거죠."전동하가 소은정의 손을 잡고 말했다.그 말을 들은 소은정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 속에 빛이 반짝였다."정말요? 내가 도와주고 싶었는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고 있었거든요. 도혁이 죽긴 했지만 납치된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정말 그럴 수 있으면 너무 좋죠."소은정의 말을 들은 전동하가 웃었다.이렇게 착한 사람도 있다니.전동하는 결국 남은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분명 힘들고 돈도 많이 들어갈 것이 분명했지만 소은정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충분했다."조직을 하나 만들어서 그 사람들이 찾은 정보들을 전문인한테 제공하고 전문 인한테 맡기는 거 어때요? 그 정보들을 각 국의 대사관이랑 경찰들한테 알릴 수 있다면 더 좋은 일 일테고 그러면 더 도움이 될 거예요."소은정이 전동하의 어깨에 기대어 말했다.“그럴수 있으면 너무 좋죠."생각이 있으면 행동하면 그만이었다.하지만 간단한 일은 아니었기에 소은정은 소은호와 상의해 보고 준비할 생각이었다.소은호는 소은정보다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었다.소은정은 무척 기분이 좋아보였다.......적지 않은 것을 먹은 두 사람은 점심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은정아, 나 옷 더러워졌어, 옷 좀 가져다주면 안 돼?"그리고 그때, 한유라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소은정은 전동하와 조금 떨어져 전화를 받았다."회사야? 여분의 옷 준비하지 않은 거야?"그러자 한유라가 코를 훌쩍이며 대답했다."밖에서 프로젝트 축하 파티하고 있는데 내 옷 다 더러워졌어, 속옷도. 다른 사람한테 말하기 좀 그래서… 심강열은 아직 일하는 중이고."한유라가 억울하게 말했다.소은정은
소은정은 자신의 얼굴만으로도 초대장 없이 파티에 들어갈 수 있었다.최성문은 뒤에서 옷을 들고 마치 방금 소은정과 쇼핑을 마친 듯한 모습으로 들어섰다.소은정이 위층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심강열과 마주쳤다.심강열과 한유라가 이미 혼인신고를 했고 곧 결혼식을 올릴 걸 아는 소은정은 그가 전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사람들은 소은정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왔다."소 대표님, 여기에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소 대표님, 조금 일찍 오셨으면 바비큐 파티를 놓치지 않았을 텐데…""소 대표님, 저랑 골프 한 번 치실래요?"......하지만 소은정은 웃으며 그들을 거절했다."제 친구를 찾으러 온 거라서, 다음에 시간되면 다시 만나죠."소은정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녀를 강요하지 않았다.하지만 심강열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소은정이 말하는 친구가 한유라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파티 참석자 명에 없었던 소은정이 여기로 욌다는건 한유라한테 분명 뭔 일이 생겼다는 뜻인데, 게다가 경호원이 들고 있는 저 옷들… 한유라, 뭔 일 생겼으면서 남편인 날 부르지 않고 친구를 불렀다 이거지?’심강열과 눈을 마주친 소은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말 없이 위층으로 올라갔고 최성문이 그 뒤를 따라갔다.심강열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뒤돌아봤을 때, 자신의 비서인 도지아가 웃으며 다가오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대표님,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먼저 떠나시겠습니까?"조희찬은 그의 결혼식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예전에 조희찬을 잠깐 도와줬던 여비서가 지금 심강열의 곁에 있었다.심강열은 일 처리도 깔끔하고 유연하게 모든 이를 대하는 여비서가 나름 나쁘지 않았다.그렇기에 이 파티 진행도 모두 그녀에게 맡겼다.역시나 도지아는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다.하지만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계속 들었기에 조희찬이 돌아오면 그녀를 다시 보낼 생각이었다."내 휴대폰은 어디 있죠?"심강열이 손을 내밀고 물었다.그 말을 들은 도지아가 멈칫하더니 대답했다."차에 있는 제 가
심강열은 한유라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했지만 한참이 지나도 도지아의 대답을 기다리지 못했다.예상치 못한 상황에 도지아는 꽤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한유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진 못했던 것이다.회사 사람들 모두 한유라가 낙하산이며 심강열과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쯤은 눈치채고 있었다.대표가 친히 비서에게 기획안 작성법부터 엑셀 사용법까지 자세하게 알려주는 회사가 어디 있단 말인가?게다가 조희찬의 태도도 상당히 묘했다.회사 직원들에게 항상 굳은 표정인데다 일적으로도 상당히 까다로운 완벽주의자인 그가 한유라한테만큼은 한없이 친절해지는 모습에 직원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비록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한유라에 대한 소문은 이미 회사 전체에 퍼진 상태, 그런 그녀가 다른 직원들에게 업무에 대해 묻기 시작하니 그 모습이 예쁘게 보일 리가 없었다.그런 그녀에게 복수라도 하려는 듯 도지아는 며칠 전 엑셀 공식 실수를 빌미로 한유라를 된통 혼냈고 다른 직원들이 다들 그녀를 고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 한유라도 더 이상 그녀에게 업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우린 당신이랑 근본부터가 달라. 부잣집 아가씨로 꽤 곱게 살았나 본데 열심히 살아온 우리 밥그릇까지 뺐으면... 진짜 가만히 안 있을 거야.’그렇게 눈치를 주었으면 대충 알아서 떨어져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의 예상을 깨고 한유라는 아예 심강열을 공략하기 시작했다.게다가 더 어이없었던 건 바쁜 와중에도 한유라에게 인상 하나 찌푸리지 않는 심강열의 태도였다.‘내가 대표님 곁으로 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조 비서도 다른 부서로 옮기고 이제 드디어 내가 직접 대표님을 모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게 뭐야.’...이때 심강열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유라 씨 어느 방에 있냐고 물었습니다.”혼자만의 세상에 빠져있던 도지아가 움찔했다.“아... 그건 저도 잘...”그녀의 대답에 고개를 돌린 심강열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내 휴대폰 좀 가지고 와요.”
‘이렇게 큰 리조트에 직원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돼?’한유라가 어깨를 으쓱했다.“동료가 대신 직원한테 연락하겠다고 했는데 감감무소식이더라고. 그래서 일단 방으로 와서 샤워부터 했어. 지금 이 꼴을 다른 사람들한텐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너한테 전화한 거고.”한유라는 별거 아니라는 듯 옷을 안고 침실로 들어갔지만 소은정의 표정은 묘하게 굳어갔다.잠시 후, 누군가 호텔 방문을 두드렸다.“최 팀장님이세요?”소은정이 물었다.“네, 접니다. 심 대표님께서 유라 아가씨를 만나고 싶으시다던데요.”최성문의 말에 소은정이 눈을 흘겼다.‘딱 봐도 심강열 때문에 유라가 왕따당하는 거네. 눈치없는 유라면 몰라도 내 눈은 못 속이지.’한유라가 팔자에도 없는 결혼도 모자라 회사에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다는 생각에 소은정은 짜증이 치밀었다.“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니까 썩 꺼지라고 하세요.”그녀의 말에 최성문도, 심강열도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니까 썩 꺼지라고 하십니다.”분명 심강열도 들었을 텐데 융통성 없는 최성문은 굳이 한번 더 전달함으로써 심강열을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살짝 당황하던 심강열이 한발 앞으로 다가섰다.“은정 씨, 저 심강열입니다. 유라 얼굴이라도 보게 해주세요. 정 안 되면 말이라도 전해 주세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가끔씩 한유라도 심통을 부릴 때가 많았지만 워낙 털털한 성격이라 하룻밤 자고 나면 뒤끝은 없는 스타일이었다.‘그렇다면 이건... 은정 씨의 의견이라는 소린데...’심강열의 애원에도 피식 웃은 소은정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녀의 언짢음을 눈치챘는지 심강열도, 최성문도 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머리까지 말린 한유라가 한결 산뜻한 모습으로 나왔다.기분이 좋아졌는지 빙그르르 턴까지 돈 한유라가 물었다.“이 옷 완전 새거지? 택도 안 뗐던데? 네가 나보다 마르긴 한가 보다. 조금 작긴 한데... 뭐, 나쁘지 않네.”나쁘지 않다는 말과
한유라가 망설이고 있던 그때 스윽 다가온 소은정이 입을 열었다.“일단 회사로 들어가.”“그래도 너 혼자 있으면...”이에 소은정이 피식 웃었다.“내가 뭐 애야? 어차피 난 오후에 회사 안 들어가 봐도 되고... 너 퇴근 시간에 맞춰서 내가 회사 앞까지 갈게. 퇴근하고 같이 가면 좋잖아.”그러자 이번엔 심강열이 미간을 찌푸렸지만 속없는 한유라는 바로 환하게 웃으며 소은정의 팔짱을 꼈다.“뭐야, 플랜맨이야? 왜 이렇게 플랜을 잘 짜?”“오늘은 제가 우리 유라 좀 빌려도 되죠?”의미심장한 소은정의 표정에 심강열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공적으론 소은정이 홍경그룹을 인수한 덕에 심해그룹이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었고 사적으론 와이프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겠다는데 그걸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났다는 기쁨에 빠진 한유라는 입꼬리가 귀에 걸린 모습이었다.“단톡방에서 강희한테 새로 산 피규어 좀 가지고 오라고 해. 맨날 자랑만 하고... 짜증 나 죽겠다니까.”“말해 줄순 있는데... 강희가 그걸 가지고 올까?”한유라와 소은정은 평소와 다름없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지만 심강열은 어딘가 이상하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뭘까? 이 찜찜한 기분은... 최 팀장이라고 했나? 아깐 쇼핑백을 들고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빈손이네. 그렇다는 건 은정 씨가 유라한테 옷을 주려고 여기까지 왔다는 건데... 그렇게 급하게 옷을 갈아입어야 할 이유가 뭘까?’이런 생각을 하며 일행은 로비로 내려왔다.호텔 앞, 심강열의 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늘씬한 여자가 서 있었다.평범한 외모였지만 반짝이는 눈이 인상적인 여자였다.‘심강열 코트도 들고 있고 폰도 들고 있는 걸 보면... 비서인가?’심강열 옆에 서 있는 소은정, 한유라를 발견한 도지아의 미소가 살짝 어색해졌지만 곧 예의있게 허리를 숙였다.“안녕하세요, 소 대표님.”“네.”소은정 역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도지아가 휴대폰을 건네고 심강열의 재킷을 다시 걸쳐주었다.
롤스로이스에 최성문, 소은정까지 탑승하니 널찍한 차가 왠지 더 좁게 느껴졌다.소은정 역시 한 그룹의 대표이니 심강열과 나란히 앉는 게 당연했지만 소은정은 당연하다는 듯 한유라 옆에 앉았고 심강열도 별 기색 없이 뒷자리를 자처했다.차에 탄 심강열의 시선이 다시 한유라에게 머물었지만 그를 돌아볼 생각 조차 하지 않는 듯한 모습에 가슴이 또 덜컹 내려앉았다.‘뭘까... 이 불편한 기분은...’잠깐 고민하던 심강열이 불쑥 물었다.“아, 전 대표님은 좀 어떠세요? 잘 회복하고 계세요?”그의 질문에 소은정이 싱긋 웃었다.“네. 사실 오후에 데이트 하려고 했었는데 유라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요.”소은정이 싱긋 웃었다.이에 심강열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유라의 얼굴에 닿았다.“유라가 두 사람 데이트를 방해했네요.”“너... 너무 급하니까 전화한 거거든!”한유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급한 일 뭐?”심강열이 드디어 진작부터 묻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하지만 순간 한유라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고 분위기는 정적으로 바뀌었다.잠시 후, 침묵을 깬 건 한유라도, 심강열도 아닌 도지아였다.“아, 대표님. 오늘 사인하신 계약서 다시 확인해 보시겠습니까?”도지아가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 건넸지만 심강열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오늘따라 자꾸만 선을 넘어오는 그녀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다.“일단 법무팀에 결재 올리세요.”“지금 입사 몇 년차인데 이런 기본적인 절차도 모릅니까?”가시돋친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옆에 소은정에 그 보디가드까지 있으니 심강열은 꾹 참기로 했다.다른 회사 대표 앞에서 직원을 혼내봤자 자기 얼굴에 침뱉기니까.심강열의 질타에 도지아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곧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아, 아까 한 비서님이 디저트 테이블 쪽으로 넘어졌거든요. 다행히 호텔 측에서 디저트 여분을 가지고 있어서 파티에 지장은 없었지만요. 제가 분명 직원한테 옷 세탁을 부탁했었는데... 그쪽에서 사람 안 보냈나 봐요?”친절한 목소리와 달
도지아가 입을 뻐끔거리더니 변명을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감췄다.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 기사님의 숨소리마저 크게 낼 수 없었다. 소은정은 조용히 창밖을 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심강열이 바로 문제를 찾아낸 것을 보면 그렇게까지 멍청하지는 않군.한유라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말했다.“대표님,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사실 다른 사람과는 상관없어요. 이미 다 지난 일이고 잘못된 것도 없잖아요. 은정이가 저한테 옷을 가져다주었고요.”한유라가 소은정을 보면서 눈짓하였다. 소은정이 한마디 해야 이 상황이 무마될 것이다.심강열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경직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소은정은 웃으면서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강열씨, 그때는 긴급한 상황이었던 터라 정신이 없었지만, 반드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꼼꼼히 조사해 보셔야 합니다. 직원이 바로 올라오지 않은 것도 그렇고 호텔 전화기마저 선이 뽑혀 있는 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해요. 만약 마침 저와의 약속이 없어 제가 가지 않고 다른 남자라도 갔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끔찍해요.”소은정의 말이 끝나고 차 안의 공기가 차갑게 변했다. 도지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럴 리 없어!”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도지아도 놀라 두 눈이 동그래졌다. 소은정은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도지아를 훑어보았다. 한유라를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눈빛이었다. 도지아의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말실수를 어떻게든 수습하려 하였다.“그 리조트 사장님은 심대표님의 오랜 친구예요, 리조트 직원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요.”그녀는 억지웃음을 지으면서 수습하려 하였다. 소은정은 그녀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심강열에게 한 말에 이렇게 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도지아가 제 발을 저린 것이 분명했다. 심강열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업무를 맡겨도 심사숙고하여 처리하던 도지아가
심강열은 더 이상 소은정을 붙잡지 않았고 한유라를 보면서 부탁했다.“그럼 은정씨 데리고 제 사무실 옆에서 쉬게 하도록 하세요. 잘 부탁해요.”한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습니다.”한유라는 소은정을 보면서 미소를 띠었다. 세 사람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세 명 모두 뒤에 있는 도지아를 투명 인간 취급하였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크게 한숨을 몰아쉰 그녀는 옆에 있는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그녀는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자격이 없었다. 심강열의 집안에서 사업확장을 할 때 초반에는 GD 그룹을 넘어설 조건이 되지 않아 대표를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전에 출근할 때 일찍 회사에 와 일 층에서 서성이다 심강열이 정시에 출근하면 우연을 가장해 그와 함께 올라오곤 하였다. 그때가 어쩌면 도지아의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언제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 했었지?잠시 생각하던 도지아의 머릿속에 한유라가 스쳐 지나갔다. 우연인가? 처음에는 우연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말 우연이었을까?한유라는 이런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하였지만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하였다. 다들 한유라가 몰래 탄다고 생각했지만, 비서실에 있는 사람이라 아무도 폭로하지 못했다. 도지아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초기에 그가 먼저 중북부 본사에서 지사 발령을 신청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말렸다.하지만 그녀는 심강열을 옆에서 조금이라도 더 돕고 싶어 신청했다. 이렇게 해야지만 심강열이 한번이라도 다시 자신을 봐줄 것이라 생각했다. 도지아는 심호흡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몇 발짝 걷지 않았을 때 동료가 다가와 얘기했다.“지아님, 금방 대표님이 찾으시던데요, 대표실로 오라고 하십니다.”도지아의 표정이 굳더니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애써 웃으면서 알겠다고 답했다.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