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두 사람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왜 강서진은 다시 추하나와 재결합을 하고 난 은정이랑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하는 걸까...’한때 강서진에게서 희망의 불꽃을 느끼기도 했었다. 질색팔색 하다가 결국 강서진과 재결합한 추하나처럼, 박우혁과 사귀다가 결국 강서진을 선택한 추하나처럼 이렇게 은근히 곁을 맴돌다 보면 전동하와 헤어지고 그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었다.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전동하와 소은정의 사이는 점점 더 돈독해져만 갔고 희망의 불꽃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대신 절망이라는 늪이 끝없이 박수혁의 다리를 잡아당겼다.예상치 못한 질문에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강서진이 겨우 입을 열었다.“미워하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날 용서할 수 있겠어.”강서진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솔직히... 나도 비겁했어. 하나랑 박우혁 그 자식이 싸운 틈에 내가 비집고 들어간 거거든. 뭐, 운이 좋았지 뭐.”아직도 그에게 냉랭하기만 한 추하나를 떠올리니 강서진의 마음은 더 갑갑해졌다.“됐다. 이런 얘기 그만하자. 형,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마. 형이 그런다 해도 은정 씨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아. 그런 사람이잖아, 은정 씨는.”진심어린 위로를 담아 박수혁의 어깨를 토닥인 강서진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한편, 위로를 하겠다고 들어간 강서진이 사색이 되어 나오자 이한식이 다급하게 다가갔다.“강 대표님, 괜찮으시죠?”‘지금 몸 상태로 강 대표님을 때리지도 못할 텐데... 도대체...’이에 강서진이 손을 저었다.“아, 괜찮아. 형 좀 부탁할게.’말을 마친 강서진이 넋을 잃은 사람처럼 터덜터덜 병원을 나섰다.자신의 처지를 인지하고 나니 무슨 자격으로 박수혁을 위로하려고 했던 건가 싶어 부끄러워졌다.추하나가 마음을 돌린 건 강서진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어서가 아니라 아이 때문이라는 걸 강서진도 알고 있었다.술에 약을 타 부정당한 관계로 태어난 아이.당연히 성폭행이었고 그때문에 구치소 신세까지 졌지만 빵빵한 집안 덕에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나올 수
모든 것이 이미 정해졌다면 그가 한 모든 것도 아무 소용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불쌍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속일 필요도 없다.박수혁은 눈을 감았다. 적어도 소은정이 아직 살아있으니 그는 누구보다 기뻐해야 했다.하지만 이한석은 그의 말을 듣곤 한순간 얼어버리고 말았다.그리고 눈을 감고 입을 다무는 박수혁의 모습을 보곤 알아서 물러나 음식을 준비하러 갔다.박수혁은 나무껍질을 씹듯 밥을 먹었다. 이한석은 강서진의 말이 소용이 있다고 생각해 다시 회사로 돌아가 일을 할 준비를 했다.하지만 박수혁은 샤워를 마치더니 옷을 바꾸곤 멀끔한 모습으로 나왔다.이한석은 그런 그를 보니 불안해졌다."박 대표님…"박수혁은 담담하게 이한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무척이나 위험해 보였다."마지막으로 한 번만 찾아가 볼 거야."박수혁이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네, 제가 연락해 보겠습니다."마지막이라고 하더라도 몰래 만나는 건 하고 싶지 않았다.......전동하는 내일 퇴원하기 전, 마지막 검사를 하고 있었다.소은정은 내일 그와 함께 퇴원할 생각으로 그곳에 남았다. 하지만 한유라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짐들을 챙겨 들고 소은정을 찾으러 왔다.다행히 그들이 있는 층에 다른 환자가 없었기에 그들은 제멋대로 할 수 있었다.소은해는 그들 사이에 끼어 김하늘이 자신과 데이트를 하지 않고 소은정과 한유라의 드레스를 골라주는 일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죄다 하얀색뿐인 드레스는 그의 눈에 고르고 말 것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이거 어때?"한유라가 들뜬 얼굴로 드레스를 바꿔 입곤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며 물었다.드레스는 모두 최신 디자인이었다. 그중 두 벌은 한유라가 주문 제작한 것이었기에 그녀는 모두 마음에 쏙 들어 신중하게 고를 생각이었다."등 다 내놓겠다고?"소은정이 자리에 앉아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한유라는 등이 예쁘기도 했고 그녀는 자신의 우세를 발휘할 줄도 알았다."당연하지."한유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턱을
그 말이 끝나자마자 병실 안은 괴이한 침묵이 흘렀다.그중 제일 빠르게 정신을 차린 소은해가 휴대폰을 테이블 위로 던졌다."무슨 그런 뻔뻔한 놈이 다 있어? 하마터면 사람을 죽일 뻔하더니 지금 어디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우리가 찾아가지 않은 걸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지, 지금 감히 찾아오겠다고 말하는 거야?"소은해가 화를 내며 일어서더니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일단 나부터 좀 만나자."그런 소은해의 모습을 본 소은정과 김하늘이 얼른 그를 막았다."오빠, 진정해, 박수혁 소란 피우러 온 거 아닐 거야. 우리 은정이한테 사과하러 온 걸 거야."김하늘이 소은해의 허리를 안고 다급하게 말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소은해는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사과를 하러 왔든 말든 여기까지 친히 왔으니 내가 가서 만나줘야지, 사과하러 왔다고 해서 내가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오빠, 그런 놈한테 손댈 필요 없어, 앞으로 모르는 척하면 그만이야."그 말을 들은 소은정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곤 다시 우연준을 바라봤다."안 만난다고 전해줘요.""이 비서님이 박 대표님께서 이미 도착하셨다고 했습니다, 만나주지 않으면 가지 않을 거라고도 했습니다."그 말을 들은 소은해는 더욱 화가 났다, 이는 소은정을 협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소은정도 방금전과는 달리 눈빛이 차가워졌다."은정아, 그냥 미리 퇴원하는 건 어때?"김하늘이 물었다.피하는 게 가장 선택이었다.하지만 우연준은 소은정을 힐끔 보더니 다시 말했다."소 대표님, 박 대표님께서 마지막으로 대표님을 만나러 오는 거라고 하셨습니다."만나는 것과 마지막 만남은 분명 달랐다."왜? 이제 죽는대?"소은해가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그럴 필요 없다고 해요."우연준의 말을 들은 소은정이 말했다.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난 사이였기에 이렇게 정중하게 이별할 필요가 없었다.얼마나 애틋한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소은정은 박수혁에게 맞춰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드러난 곳이 많지 않았지만 한유라의 몸매가 좋았던 덕분에 모든 우세가 집중적으로 드러났다.하지만 한유라는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방금 전 왜 싸우고 있었던 거야?"한유라는 아직 방금 전 안에서 들었던 시끄러운 소리를 잊지 않았다."박수혁이 왔다고 해서 욕 좀 했지."소은정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왜 나를 안 부른 거야? 같이 욕했어야지, 내가 침으로 그놈을 익사시켰을 텐데!"소은정의 말을 들은 한유라가 화를 내며 말했다."유라야, 너는 결혼식 준비나 열심히 해."김하늘이 그런 한유라를 보며 웃었다."하늘이 말이 맞아, 너는 이제 곧 결혼해야 하니까 이 일에 끼지 마.""화가 나서 그러지, 박수혁 그놈만 아니었으면 내가 은정이 때문에 며칠 동안이나 조마조마해할 필요도 없었을 거야.""맞아, 우리 유라 말이 다 맞아."소은해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오빠, 우리 언제 사람 죽이러 갈까? 내가 칼 들어줄게."한유라가 그 말을 하며 드레스를 바꿔 입으러 갔다.세 사람을 그런 한유라를 보며 심강열을 걱정하기 시작했다.한유라는 화가 났지만 드레스를 입은 사진을 심강열에게 보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심강열은 온갖 예쁘다는 말을 동원해 그녀를 칭찬해 줬다. 마치 이 드레스를 그가 디자인한 사람처럼.심강열의 칭찬을 듣고 나니 한유라는 드레스가 마음에 들었다.머지않아 소은해와 김하늘은 밥을 먹으러 갔고 한유라도 짐들을 정리해 떠났다.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소은정은 전동하에게 갔다.마지막 검사는 유난히 자세하게 진행되었다.전동하는 소은정과 몇 마디 하지 못하고 약 기운에 취해 잠들었다.밖의 날씨는 무척 좋았고 소은정은 소은해와 김하늘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렸다.소은정은 날씨를 감상하려 밖을 내려다보다 얼어버리고 말았다.아래에 서 있는 사람이 너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꼼짝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선 채 차가운 얼굴을 한 그 사람은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소은정이 박수혁을 본 순간, 그
"전 대표님, 제가 아주머니한테 얘기해서 집 청소하라고 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가시면 됩니다. 회사 일도 다 처리했고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드렸으니까 시간 되실 때 한 번 봐주세요."윤이한이 말을 하며 전동하를 부축했다.하지만 전동하는 윤이한을 바라보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윤이한은 그제야 무언가 생각난 듯 한쪽으로 물러섰다."소 대표님, 여기로 오시죠."윤이한은 별다른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전동하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전동하가 병원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놀라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전동하는 소은정을 보며 선뜻 팔을 내어주며 그녀가 부축하기를 기다렸다.소은정은 조금 어이없었다. 다른 사람도 있는 곳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전동하에게 다가간 그녀가 그의 팔을 툭 치더니 문을 열고 병실을 나섰다."전 대표님, 두 분 만나고 계신 거죠?"윤이한이 두 사람 뒤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전동하는 다정했던 눈빛을 거두곤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윤이한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기회를 틈타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났다.머지않아, 소은정이 전동하의 팔을 부축해 병원을 벗어나자 그가 숨을 깊게 들이켰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병원에 있었던 시간이 많이 답답했던 듯했다.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웃었고 전동하가 고개를 숙이고 소은정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역시 집이 더 좋은것 같아요, 무얼 해도 편리하니까."그 말을 들은 소은정은 이상한 쪽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한 번 툭 친 손을 전동하가 더욱 꼭 잡았다.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은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다른 이의 눈에는 퍽 거슬렸다.박수혁을 확인한 두 사람이 살짝 굳었다. 박수혁을 본 전동하의 눈에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 미간을 찌푸렸던 그가 금방 표정을 풀었다.소은정의 손을 꼭 잡은 그가 깍지를 끼더니 웃었다.박수혁이 포기하지 않을 줄 알았지만 이렇게 주동적으로 찾아올 줄은 몰랐다. 그 자존심
박수혁은 소은정을 보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그는 숨을 쉬는 것도 버겁게 느껴졌다.그는 얼른 눈길을 내리며 감정을 숨겼다. 그리고 한참을 침묵을 지키다 입을 떼었다."다른 뜻은 없어, 그냥 사과하고 싶어서. 둘이 만나는 게 싫으면 다른 사람 있어도 돼."박수혁이 한 걸음 물러섰다. 박수혁은 이미 자신이 졌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다른 사람이 전동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전동하는 의외라는 듯 박수혁을 바라봤다. 그의 복잡한 안색을 보니 전동하는 기분이 좋아졌다.적의 고통은 그의 행복이었다.하지만 이런 상황도 소은정은 달갑지 않았다.박수혁과의 만남은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속이 넓은 사람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자신을 용서하라고 협박을 하는 건지.그때, 옆에 있던 윤이한이 입을 뗐다."전 대표님, 소 대표님, 짐을 다 실었으니 이제 떠나도 될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들은 소은정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윤이한을 바라봤다.그리고 소은정이 발걸음을 떼려던 찰나, 박수혁이 빠르게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박수혁은 눈을 감았다 뜨더니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은정아, 내가 이렇게 빌게. 그냥 내가 하는 말 좀 들어줘, 용서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어, 앞으로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을게."박수혁은 그 말들을 하면서도 칼로 심장을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마치 심장의 중요한 일부분을 도려내는 듯 모든 것이 아팠다."나는 듣고 싶은 말 없는데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야?"소은정이 증오를 감추며 말했다.그녀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온도도 없었다.심지어 낯선 이를 대하는 것보다도 못했다.박수혁은 한참을 침묵을 지키다 다시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소은정은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박수혁을 바라봤다."마지막이니까 할 말만 간단하게 해, 내 남자친구 옆에 있는 거 상관없지?"방금 박수혁이 다른 사람이 있어도 된다고 했기에 남자친구는 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박수혁은 숨이 멎을 것 같은 기분으로 소은정을 바라봤다.
전동하가 웃으며 말했다.병원에 있는 동안 회사의 일을 처리하지 않았지만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박수혁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그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그런 일은 없으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박수혁이 전동하를 한 눈 보더니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전동하도 미소를 짓더니 대답하지 않았다."할 말 있으면 얼른 해, 우리 해야 할 일이 남았어."소은정이 박수혁을 재촉했다.소은정을 바라보는 박수혁의 눈빛에 슬픔이 가득 찼다."나, 죽도록 밉지?"소은정은 침묵을 지키며 인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았다.그 모습을 본 박수혁이 자신의 실망을 감추려 웃었다."하긴, 나였어도 내가 죽도록 미웠을 거야."박수혁은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뗐다."너 잡혀가고 도혁이 나한테 연락해서 안진으로 인질을 맞바꾸자고 했어. 하지만 내가 갔을 때, 도혁이 그럴 생각이 없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나를 이용해서 자기 돈세탁을 하고 날 군기상에 끌어들여서 내가 힘들게 일으켜 세운 모든 것들을 자기 세력으로 만들려고 했어. 하지만 너도 알잖아, 내 손에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있는지, 군대에서 퇴역하긴 했지만 암암리에 군부대를 도와주고 있었어. 아니면 네가 그때 섬에서 해적에게 협박당했을 때에도 그렇게 쉽게 군부대의 도움을 받지 못했을 거야, 그래서 난 도혁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어."여전히 무표정한 소은정의 얼굴을 보니 박수혁은 심장이 더욱 아팠다."미안해, 나는 시간을 끌어서 다시 협상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도혁은 박수혁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가 소은정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곤 인질을 직접 죽일 생각을 했다.이는 복수이기도 했고 벌이기도 했다.도혁은 박수혁에게 후회할 기회도 남겨주지 않았다.박수혁도 고충이 있었지만 이런 고충은 소은정의 목숨 앞에서, 그녀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박수혁은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 다시는 똑같은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는 무조건 소은정을
전동하는 직감적으로 자신이 빠뜨린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두 사람이 통화한 적이 있다면 소은정이 중요한 말을 남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과연 그 말은 누구와 연관이 있는 말이었을까?"너 안 전해 줬잖아, 네가 다 해결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너는 네가 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한 말은 마음에 두지도 않았던 거야, 그 말들이 내 유언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소은정이 말을 할수록 박수혁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그녀의 질책은 생각보다 차갑고 무정했다.박수혁은 반박할 기회도 없었다.또다시 침묵이 흐르고 소은정이 벤치에 기대어 다시 차가운 말들을 내뱉었다."나는 너 때문에 그런 위험 속에 빠졌는데 너는 나를 구하지 않았어. 결국 네 이익이 더 중요했던 거야. 네가 몰랐다는 그런 소리는 하지 마, 납치범이 원하는걸 얻지 못하면 인질을 죽일 거라는 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야, 더구나 나를 납치한 건 무기상이었잖아. 비즈니스 하는 사람끼리 알 거 다 알잖아, 그러니까 그런 황당한 설명 늘어놓지 마, 네 마음 편하자고 하는 말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면 그냥 위선적이고 역겹게 느껴지니까."소은정은 잔인하게 그의 위선적인 가면을 벗겨내고 그 속에 들어있는 추잡함을 들추어냈다.그녀는 갑자기 속이 시원했다. 소은정은 우세를 차지하고도 자신을 살려주지 않은 그런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이 남자를 얼마나 사랑했을지라도.소은정은 차가운 말들로 박수혁의 가장 취약한 곳을 난도질했다.박수혁은 순애보와는 어울리지 않았다.박수혁은 그 말들을 들으며 눈에 빛을 잃어갔다.그는 적어도 소은정이 겉으로 예의를 차릴 줄 알았다.그리고 소은정의 친구로서 그녀가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소은정은 그에게 그 어떤 기회도 남겨주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의 기다림으로 소은정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지만 결국 마주한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차가웠다.자신을 향한 증오를 드러내는 소은정을 보며 그